고왕

 

고왕의 이름은 조영으로 진국공의 아들이다.일찍이 고구려 장수가 되었는데,아주 용맹스러웠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 하였다. 진국공이 사망하고 걸사비우가 패하여 죽자 대조영은 이를 피하여 도망하였다. 이해고가 그를 뒤쫓아 천문령을 넘자, 대조영이 고구려와 말갈 병사를 이끌고 크게 격파하여 이해고는 겨우 몸만 빼서 탈출하였다. 대조영이 걸사비우의 무리를 병합하여 읍루족이 살았던 동모산을 거점으로 삼으니, 말갈과 고구려 유민들이 모두 그에게 돌아갔다.

 마침내 돌궐에 사신을 보내어 외교를 맺고, 부여 옥저 고조선 변한 등 바다 북쪽의 10여 국을 정복하였다. 동쪽으로 동해바다에 이르고, 서쪽으로 거란에 이르고, 남쪽으로 신라와 이하를 경계로 이웃하였다. 그 나라 땅은 사방 5천 리에 달하였고, 호구는 10여만 호였고, 정예의 병사가 수만 명이었다. 또 중국의 문자를 잘 익혔으며, 풍속은 고구려 거란과 대체로 비슷하였다.

 성력 연간에 나라 이름을 진이라 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라 진국왕이 되었다. 홀한성을 쌓아 살았으니 영주에서 동족으로 2천 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 때에 해와 거란이 모두 당나라에 반기를 들어서 도로가 가로막히자 측천무후가 발해를 토벌할 수가 없었다. 

 중종이 즉위한 뒤에 시어사 장행급을 발해에 파견하여 대조영을 위로하고 어루만지자, 고왕도 아들을 당나라에 보내 황제를 모시도록 하였다. 현종 선천 2(713)에 낭장 최흔을 보내고서 고왕을 좌효위대장군 발해군왕으로 책봉하였고, 이때부터 말갈이란 칭호를 버리고 오로지 발해라고만 부르게 되었다. 이후 대대로 당나라에 조공을 바쳤고, 유주절도부와 서로 사신을 교환하였다. 부여부에 강한 군대를 주둔시켜 거란을 방비하였다.

 현종 개원 7(719)에 왕이 사망하자, 3월 병진일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알렸다.

 

高 王

 

高王諱祚榮 震國公子也 嘗爲高句麗將 驍勇善騎射 及震國公卒 乞四比羽敗死 祚榮遁 李楷固窮躡度天門嶺 祚榮引高句麗靺鞨兵大破之 楷固僅以身免 祚榮卽幷比羽之衆 據挹婁之東牟山 靺鞨及高句麗舊人悉歸之 遂遣使交突厥 略有扶餘沃沮朝鮮弁韓海北十餘國 東窮海西契丹 南接新羅 以泥河爲界 地方五千里 戶十餘萬 勝兵數萬 學習書契 俗與高句麗契丹略同 聖歷中國號震 新唐書作振 文獻備考曰震朝 自立爲震國王 築忽汗城以居 直營州東二千里 時奚契丹皆叛唐 道路阻絶 武后不能致討焉 中宗卽位 遣侍御史張行岌 慰撫之 王亦遣子入侍 玄宗先天二年 遣郎將崔訢 冊王左驍衛大將軍渤海郡王 以所統爲忽汗州 領忽汗州都督 始去靺鞨號 專稱渤海 自是以後 世朝獻唐 餘幽州節度府相聘問 屯勁兵於扶餘府 以備契丹 玄宗開元七年王薨 三月丙辰赴唐

 

조회 수 :
5279
등록일 :
2013.08.09
00:51:52 (*.109.52.190)
엮인글 :
http://rexhistoria.net/Balhae/28655/701/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rexhistoria.net/28655

바람처럼

2013.08.09
00:52:09
(*.109.52.190)
네이버 lucky9th 님과 전륜성왕 님 자료 참조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 발해고 - 군고(왕에 대한 고찰) 3. 무왕 [1] 바람처럼 2013-08-09 5196
» 발해고 - 군고(왕에 대한 고찰) 2. 고왕 [1] 바람처럼 2013-08-09 5279
3 발해고 - 군고(왕에 관한 고찰) 1. 진국공(대걸중상) [1] 바람처럼 2013-08-09 5806
2 발해고 - 유득공의 서문 [1] 바람처럼 2013-08-09 6902
1 발해고 - 박제가의 서문 [1] 바람처럼 2013-08-09 50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