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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이라는 나라보다 스웨덴 왕이라는 인물에 더 큰 기대를 건다……그는 정말 위대한 사람이다" ─ 토마스 로


"저는 폐하를 신께서 내려보낸 천사로 여깁니다." ─ 존 두리 





1630년 7월 4일 스웨덴 왕 구스타프 아돌프는 우제돔에 상륙했다. 배에서 내릴 때 그는 넘어져 무릎을 살짝 다쳤다. 극적인 효과에 능한 당대의 역사가들은 그것을 의도적인 행동으로 각색했다. 신교의 영웅이 뭍에 발을 내딛자마자 무릎을 굽혀 자신의 정당한 대의에 대해 신의 축복을 빌었다는 것이다. 각색되긴 했지만 이 전설에는 시적 진실이 담겨 있다. 스웨덴 왕의 뒤에 어떤 세력이 있든 자신의 개인적 사명에 대한 그의 신념은 결코 꺾이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상륙할 무렵 그는 서른 여섯 살이었다. 키가 컸지만 어꺠가 넓어 상대적으로 그리 커 보이지 않았고, 살결이 희고 혈색이 좋은 사나이였다. 그의 뾰족한 수염과 짧은 갈색 머리털을 보고 이탈리아 용병들은 그를 '일 레 도르(황금의 왕' 이라고 불렀다. 그의 원래 별명도 '북방의 사자' 였다. 성격이 거칠고 힘이 센 그는 굼뜨고 느렸지만, 군대 내의 웬만한 공병보다도 삽이나 곡괭이를 잘 놀렸다. 그래도 피부는 햇볕에 타지 않아 소녀의 피부처럼 하얀 편이었다.



그는 자신이 설정한 임무와 무관하게 모든 행동거지에서 왕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세워이 지나자 그는 등이 약간 앞으로 굽었고, 시력이 나쁜 푸른 눈도 작아졌다. 식욕은 왕성했으나 옷차림은 소박했다. 그는 가죽 외투와 비버 모피로 된 군모를 좋아했으며, 그의 복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주홍색 허리띠와 망토뿐이었다. 군영에 못지않게 무도회에도 어울리는 차림이었지만, 그는 원정의 어려움을 회피하지는 않았다. 그는 병사들과 함께 땀흘리고 굶주리고 떨고 갈증에 시달렸으며, 열다섯 시간이나 말에서 내려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피와 오물 따위는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피가 발목까지 차오르는 전장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구스타프가 군인이기 때문이 어수룩했을 것이라고 생각 한다면 그보다 더한 착각은 없다. 각국 대사들은 그의 지나치게 느긋한 태도와 자신의 견해를 투박하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지만, 그의 신속한 판단의 배후에 집중적 사고와 실용적 지식이 있는 것을 알고는 처음에 가졌던 반감을 버렸다. 조신들이 그의 호의를 악용하면 그는 불같이 화를 냈다. 하인들이 우물거리며 불필요한 질문을 하면 그는 곧바로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호통을 쳤다. 외국 대사가 가져온 신임장에 자신의 직함이 올바르게 기재되어 있지 않으면 그는 그 실수가 바로잡힐 때까지 대사를 만나지 않았다.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왕으로서의 임무를 교육 받았으며, 걸음마를 배우기도 전에 아버지가 국정을 처리하는 동안 아버지의 서재에서 놀았다. 여섯 살 때는 군대를 따라 원정을 다녔고, 열 살 때는 회의에 참여해 자신의 의견을 발표했다. 십대 시절부터 그는 혼자서 대사들을 영접했다. 그는 10개 국어를 조금씩 다 알고 있었고, 학문에도 약간 관심을 가졌으며, 실용적 철학에 열정을 보였다.



리슐리외나 당대의 유명한 군주인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과 더불어 구스타프는 유럽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통치자였다. 열일곱 살에 명실상부한 왕이 되어 19년 동안 재위하면서 그는 스웨덴의 재정을 안정 시키고, 사법 행정을 중앙화하고, 구호시설, 병원, 우편제도, 교육을 체계화 하고, 정교하고 성공적인 징병제를 확립했다. 또한 나태하고 야심찬 귀족 계급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실에 리다르후세트라는 귀족 단체를 조직해 귀족들에게 스웨덴의 정치에 대한 책임을 맡겼다. 



그는 민주적인 군주와 거리가 먼, 귀족적인 정치 이론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귀족정치 시절에 150만 스웨덴과 핀란드 백성들은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통치를 받았다. 또한 그는 통상을 장려하고, 광물을 비롯한 스웨덴의 천연자원을 개발했다. 스웨덴에는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원료가 풍부했으므로 병기도 다량으로 제작되었다. 그가 왕위에 오른 이후로는 단 1년도 평화로운 시기가 없었다.



여느 위대한 지도자들처럼 구스타프도 자신의 대의와 더불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했다. 위기 때마다 신이 함께할 거라는 부동의 신념을 거듭 천명하곤 했다. 루터교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칼뱅교를 용인한 그의 태도는 신민들과 동맹자들에게 의심을 샀다. 하지만 그는 그런 데 개의치 않고 자신의 폭넓은 신교 신앙이 옳다고 확신했으며, 누구에게도 힘으로 신앙의 개종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관용적이었지만 강요에 의해 개종한 사람을 경멸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같았다. 그는 어떤 신앙이든 패배자든 그냥 오류에 빠져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구스타프는 명석한 통치자이자 노련한 군인이었으며, 대담하고 단호하고 충동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런 특성만으로는 그 시대 사람들을 압도했던 그의 힘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진정한 힘은 그의 마음, 그의 엄청난 자기 확신이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추종자들만이 아니라 그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까지 그에게 매혹되었다. 구스타프의 군대 내에 한 이탈리아 용병이 있었는데, 그는 조국으로 보나 신앙으로 보나 스웨덴 왕을 사랑할 만한 이유가 없는 병사였다. 



그는 돈에 매수되어 구스타프를 암살하라는 지시를 받고서 여러 차례 권총을 겨누었으나 쏘지는 못했다. 암살하기에 썩 좋은 기회가 오지도 않았지만, 그보다는 총을 겨눌 때마다 마음이 움직여 방아쇠를 잡고 있던 손이 말을 듣지 않았기 떄문이다. 운명이 왕에게 초자연적 갑옷을 준 걸까? 아니면 그가 지닌 엄청난 확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져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걸까? "그는 자기가 탄 배는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가 받은 계시, 예언자의 영감이 깃든 자기중심주의, 바로 이것이 그의 비결이었다.



구스타프가 가장 아끼는 친구는 백발이 성성하고 입이 무거운 학자풍의 총리인 악셀 옥센셰르나였다. 왕은 오직 그의 조언과 질책에만 귀를 기울였다. 구스타프는 천재가 그렇듯이 충동적인 열정을 가진 반면, 옥센셰르나는 냉철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언젠가 왕이 그에게 말했다.



"만약 모든 사람이 그대처럼 차갑다면 다들 얼어 죽을 걸세."



그러자 옥센셰르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 만약 모든 사람이 폐하처럼 뜨겁다면, 다들 불에 타서 죽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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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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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원

2014.03.27
15:3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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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하나씩 있나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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