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절 정복이나 그 밖의 요인에 의한 침략전쟁



 두 가지 다른 유형의 침략이 있다. 하나는 인접국가를 공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민이 중립적이거나 확신이 안 가거나 적대적인 가능성이 있는 원거리 국가를 공격하는 것이다.


 알렉산더, 카이사르, 나폴레옹 등이 자신들의 생애를 통하여 입증했듯이, 불행하게도 간혹 정복전쟁이 성행했다. 그러나 대참사를 겪지 않고는 지나쳐버릴 수 없었던 이러한 전쟁에는 당연히 한계가 존재한다. 누비아에서의 캄바세스, 세이티아에서의 다리우스, 그리고 파르티안에서의 크라수스와 줄리앙 황제는 엄청난 유혈을 통하여 이것이 진리임을 입증해주었다. 


 그러나 정복 자체를 즐기려는 것이 나폴레옹의 유일한 전쟁 동기는 아니었다. 그의 개인적인 위치와 영국과의 경쟁심이 절대자가 되겠다는 그의 야망을 부추겼다. 그가 전쟁과 전쟁에서의 모험을 전적으로 사랑했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출세하나 결국에는 영국에 굴복해야 했던 운명의 희생물이었다. 


 나폴레옹은 장군 및 정치인들에게 피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의 승리는 적극성 - 대담성 - 능력을 통하여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를 교훈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그가 당했던 불행은 후대인들에게 피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일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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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






 징기스칸이 행한 전쟁처럼 정당한 이유 없이 치르는 침략전쟁은 인간성에 대한 범죄행위가 된다. 그러나 이것이 커다란 이해관계나 또는 선한 동기로 수행될 경우에는 예외가 될 수 있다.


 1803년과 1823년의 스페인 침공은 목적과 결과에서 차이가 났다. 첫번째 것은 교활하고 무자비한 공격으로서 스페인의 국가 존립 치세를 위협했고, 스페인측의 당사자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둘째 것은 위험스러운 원칙에 맞서 싸우는 한편 국가의 보편적인 이익을 증진시켰고 침공 목적이 영토를 침략당한 국민 대다수의 찬성과 일치됨으로써 수월하게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사례는 모든 침략이 반드시 동일한 성격을 갖고 있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다. 첫번째 침략은 나폴레옹의 몰락을 크게 이바지했고, 두 번째 것은 결코 바뀔 수 없었던 프랑스와 스페인 간의 관계를 회복시켰다. 침략이 자주 일어나지 않기를 소원해본다. 아직도 침략자가 피침략자보다는 유리한 상황이므로, 정복과 불법 침입 기풍을 꺾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적기에 개입하여 이들에 대항하는 것이다.


 침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취해야 할 목적과 극복해야 할 장애물의 중요성을 균형 있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어떠한 희생이라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고 강력한 인접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의기 충천한 국민을 상대로 한 침략은 매우 위험한 시도이다. 이는 1808년의 스페인 전쟁과 1792년의 프랑스 혁명전쟁에 의해 분명하기 입증되었다. 이 두 전쟁에서, 만일 프랑스가 스페인보다 더 충실히 대비하고, 스페인이 강력한 동맹을 형성하지 못했다면, 스페인은 전 유럽으로부터 지상과 공중 양면에서 공격을 당했을 것이다.


 이와 다른 상황이지만, 러시아가 터키를 침략한 것은 어떤 면에서는 국가적 저항에 대한 동일한 징후를 발전시킨 것이다. 터키인에 대한 종교적 적개심이 그들을 무장으로 이끈 강력한 자극제였으나, 동일한 동기가 수적으로는 터키인의 두 배가 넘는 그리스인 사이에는 무력했다. 알사스와 프랑스의 이해관계가 합치되었던 것과 같이 그리스인과 터키인 간의 이해관계가 서로 조화를 이루었다면, 국가는 더욱 강력해졌을 것이나 종교적인 요인은 잔존하고 있었을 것이다. 1828년의 전쟁에서 터키가 내부적으로는 모든 것이 취약했지만, 가장 용맹스러운 부대가 배치된 국경선에서는 놀랄 정도로 강력했던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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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 1829년의 러시아 - 튀르크 전쟁. Akhalzic 전투






 인접 영토에 대한 침략이 예상되는 주민들의 저항을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 전략의 원칙이 전쟁의 추세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탈리아 - 오스트리아 - 프러시아에 대한 침략이 매우 신속했다는 느낌이 항간에 퍼졌다(이 문제에 대한 군사적 관점은 제 24절에서 다룰 것이다). 그러나 침략이 원거리의 광역 영토에 대한 개입이라면, 그 성공 여부는 전략보다는 외교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첫번째 단계는 적의 인접국가와 확실한 동맹관계를 맺는 것이다. 왜냐하면 동맹국은 증원군을 파견할 것이고, 더욱 중요한 점은 안전한 작전기지와 보급품 저장소, 그리고 어려움에 처할 경우에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동맹국으로부터 이러한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침략자로서 승리에 대한 동등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외교는 원정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인접국에 대한 침략시에도 전혀 무력한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접국의 개입이 가장 중요한 전투의 승패를 결정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프러시아가 개입했더라면, 1805년과 1809년의 오스트리아에 대한 프랑스의 침략은 그 판도가 판이했을지도 모른다. 예컨대, 1807년의 북부 독일에 대한 침략은 오스트리아에 의해서 허용되었더 것이다. 재반 개입 가능성을 배제하고 놀라운 정치적 수완으로 협상을 통하여 해결하지 못했더라면, 1829년 루멜리아에 대한 침공은 참사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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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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