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가 노래하네

우리가 알면 알수록 삼국지는 웃는다!

시간이 없을 때는 주로 카페 삼국지도원결의에 글을 먼저 싣는 편입니다. 쓴 뒤에는 여유가 없어서 돌아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파성넷의 여러분께도 나누고자 합니다.

 

--------------------

삼국의 군웅을 평가함에 있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람은 물론 조조/유비입니다. 그 나머지 인물에는 2원, 유표, 유언, 마등 같은 한쪽 지방에 할거한 군웅들이 있어서 나름대로 뛰어났던 점과 모자랐던 점에 대한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좀처럼 명확하게 평가하기 힘는 사람도 있는데 제 경우는 손권과 사마의입니다. 손견, 손책이나 사마사, 사마염 같은 경우는 오히려 깔끔하게 정리가 되더군요.

 

손권에 대한 평가 중에서 제일 어이없게 기억되는 것은 '나름 조조와 유비에 필적할 만한 영웅이다'란 거였습니다. 물론 그에 대해 자기 나름의 근거를 잡다하게 내놓은 게 있기는 했지만 저로써는 실소조차 나지 않았죠. ^^; 군웅전 번역을 마치고 손권을 떠올렸을 때 대척점에 자연스럽게 놓인 사람은 조조나 유비가 아니라 원소였습니다.

 

손권은 다른 군웅에 비해 오래 살았으므로 노망으로 저지른 일은 떼어놓고 생각하자는 의견도 일리는 있죠. 그렇지만 어떤 사람을 전체적으로 평가할 때, 훌륭했던 시기와 무능했던 시기를 분리해서 평가한다는 자체가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보죠. 동탁은 량주에서 소수민족과 싸울 때는 명장이었지만 황건난 때부터 낙양을 점령하기까지 보인 조정과의 반목이 큰 흠일 뿐 아니라 정권을 잡은 뒤에는 그저 폭군이었습니다. 그런데 동탁을 평가할 때 나이먹기 전과 나이먹은 뒤를 나눠서 평가해보자고 말한다면 이게 공정한 제안이 될 수 있을까 싶거든요. 게다가 손권의 정년기와 장년기는 과연 뛰어났는가, 영웅이라고 할 만 했는가에 대해서도 차분한 분석이나 평가를 좀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손권의 노망은 242년 8월에 손패를 노왕으로 삼으면서부터 시작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노망이 났기 때문에 손패를 총애했다기보다는 손패에 대한 총애가 문제의 시작이라는 생각이죠. 이 때 손권은 한국 나이로 61살이었습니다. 조조는 65살이나 되는 때에도 한중을 놓고 유비와 다투고 있었고, 유비는 62살에 이릉을 앞에 두고 육손과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각각 법정과 육손의 활약에 의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퇴각하거나 패배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이 패배를 두고 '조조와 유비가 나이 먹어 노망이 들었으니까..'라고 비호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습니다.

 

이곳에서는 손권이 조조와 유비에 필적할 만한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가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천천히 개진해주셔도 됩니다. ^^

 

--------------------(두번째 글)

 

제가 토론에 앞서 서론(?)이 긴 타입의 사람이란 건 많은 분이 아시겠지만, 자주 들르지 않는 터라 처음 인사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덧글을 보면 대략 1주일 정도는 곱씹고 나서 원서 번역이나 일본어 자료 논문을 덧붙여 새로운 글을 쓰는데, 절 모르는 분들은 엥? 토론글 올려놓고 왜 잠잠해? 하고 생각할 수도 있으므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몇 가지 적습니다.

 

남북조는 뒤로 재쳐놓고 위진만 따졌을 때 '영웅'은 누구냐, 흔히 말하는 '매스컴이 쫓아다니는 인물'이 누구냐를 묻는다면 두말할 것 없이 '조조'라고 답합니다. 제갈량, 사마의나 남북조의 석륵, 환온처럼 많은 일화를 남긴 사람들이 있지만 조조에 미치지는 못한다고 보고 있지요. 다만 제가 던진 질문은 조조평이 아니기 때문에 그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어떤 인물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중심에 두었을 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대척점을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개인적으론 조조라는 인물의 대척점에 4사람이 있다고 생각했고(사망한 순서로 나열하자면 여포, 원소, 유비, 손권) 유비라는 인물이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영웅임을 알았습니다.(언젠가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제가 늘 이상으로 꼽는 '조조-유비'의 대칭상보다 사실 한 사람의 남자로써 '조조-여포'의 대칭상을 파헤치는 게 재미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댓글 가운데 몇 분은 조조≒유비는 받아들일 수 없고 조조>(유비≒손권) 정도라면 받아들일 수 있겠다고 하셨는데 제가 조조≒유비라고 수긍하게 된 계기는 선주전이 아니라 원소전과 오주전 번역을 마치고였습니다. 유비가 어찌 조조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사람이냐고 의아해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이것도 설명하려면 길기 때문에 오늘은 우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가 보다..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주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조조>(유비≒손권) 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굳이 제 글을 읽기보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납득시킬만한 글을 쓰시면 될 것입니다. 전제가 다르면 건설적인 주고받음이 잘 안 이뤄지니까 우선은 자기 판단을 뒷받침을 자료부터 쌓아두는 게 유익하니까요.

 

손쉽게 손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은 역시 진수의 평입니다.

 

1) 評曰:孫權屈身忍辱任才尚計,有句踐之奇英,人之傑矣。

평하여 말한다. 손권은 몸을 굽혀 치욕을 참고, 재사를 임명하고 대계를 숭상하며, [월왕] 구천의 기이한 영재가 있으매 인걸이었다.

 

2) 故能自擅江表,成鼎峙之業。

까닭에 강표를 차지하여 솥발처럼 일어서는 대업을 이루었다.

 

3) 然性多嫌忌,果於殺戮,暨臻末年,彌以滋甚。

그러나 성정에 의심이 많고 살륙에 주저함이 없었으며, 만년에 이르러서는 더욱 심했다.

 

4) 至于讒說殄行,胤嗣廢斃,〔一〕豈所謂貽厥孫謀以燕翼子者哉?

참언을 듣고 믿어 인성을 멸하는 일을 하여 아들과 손자를 버리고 죽였으니[註1] 어찌 자손들에게 평안한 책모를 남기고, 신중하게 자손의 안전을 계획한 자라고 말하겠는가?

 

5) 其後葉陵遲,遂致覆國,未必不由此也。〔二〕

그 후대가 쇠미하여 끝내 나라가 뒤집히기에 이름은 틀림없이 여기에서 유래하지 않음이 없다.[註2]

 

-2)번 평가가 중요한 게 남조의 출발, 즉 강남 개발의 시초가 손권에게 있었다는 평가를 놓쳐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3)번 평가는 강남을 복속하는 과정에서 진행시킨 호족의 숙청, 이궁지란 이후에 육손의 분사를 비롯한 충신들을 해친 실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죠.

 

-4)번 평가는 손화와 손패를 모두 죽이고 내친 것과 손휴, 손분마저 물리치고 막내 손량을 세운 결과가 불러온 오나라의 쇠망을 얘기한 것인데 사실 더 심각한 후유증은 손씨 가문 형제들이 서로 도와가며 나라를 일으킬 의욕 자체를 말살시켜버린 것이라 봅니다.

 

-5)번 평가가 손권 인생의 총평에 가깝겠지요.

 

-이제 본론인 1)번을 자세히 보고 싶습니다.

 

孫權屈身忍辱

손권은 몸을 굽혀 치욕을 참고,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 1년 가까이 오주전을 번역하면서 곱씹어 봤는데 참으로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손권의 굴신이라고 하면 어떤 일화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손권은 신하를 얻기 위해서 기꺼이 몸을 굽혔고 그들의 충성에 보답하기 위해서 열의를 다했습니다. 진무, 능통, 주유전 등 일화가 넘쳐날 정도죠. 수비 뿐 아니라 애꿎은 공격으로 인한 국력 쇠퇴도 적극 막았습니다. 조조의 주요한 유수 공격은 3차였는데 조조가 손권을 곤경에 몰아넣으면서도 이기지는 못하는 상황 속에 놓여 끙끙거리고 있을 때, 손권이 먼저 화친을 청하여 조조에게 퇴군할 명분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또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평가받지 못한 부분이지만, 아버지와 형이 없는 가운데서 강맹한 호족들을 상대로 묵묵히 오의 기반을 다진 일도 보통의 인내와 수완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호족에게 인정받는데까지 대략 3년, 산월을 복속하기까지 또 대략 3년의 기간이 필요했는데, 손권이 조조나 유비와 다른 점은 중앙집권적이 아닌 정치 조직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아랫사람들이 따를 수 있는 중간 조직을 잘 컨트롤하는 능력을 갖췄다는 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조가 초기에 연주에서 원소의 비호를 받던 기간, 유비가 여포에게 서주를 뺏겨 조조의 비호를 받던 기간을 제외하면 상하관계에 선을 긋고 죽을 때까지 독자적인 행보를 보인 것과 달리 손권은 양주에 뿌리를 내리고 외정(형주 공략)이 가능해진 다음에도 동맹과 파기를 자주 되풀이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까지도 군주가 갖춰야할 외교적 유연성이라고 높게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최종적으로 무엇을 위한 유연성이었나를 생각하면 늘 아쉬웠습니다. 조조는 연주나 관도에서 아무리 핍절해도 원소에게 다시 굽히지 않았고, 유비도 한중과 형북에 위라는 강적을 그냥 방치하면서 강릉에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그 결과는 물론 각자마다 달랐습니다. 조조는 허유가 오지 않았으면 오소 기습도 못해보고 관도를 뺏겼을 수도 있었을 정도로 위기를 맞았고 유비는 이릉에서 북벌을 위해 준비한 국력을 다 말아먹었습니다. 그에 비해 손권은 조조와 협력하여 강릉을 뺏고, 위의 방관을 틈타 유비를 격파하는데 온 국력을 집중할 수 있었으니 실질적 이익은 손권이 누렸다는 점에 이의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유비가 몸을 굽혀 치욕을 참고 계속 조조 밑에서 유능한 장수로 있었다면, 그래서 한은 망하지만 새로운 위나라에서 한 지방을 맡아 외적을 막고 정치를 잘 했다면 그를 영웅이라 칭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몸을 굽혀 치욕을 참고 조비와 화친하여 손권이 합비 방어를 위해 절반의 군대를 돌려야 했다면, 그래서 혹여 이릉에서 육손을 격파했다면 그가 지금 내가 칭찬하고 있는 그 유비라고 인정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과적인 우열도 중요하지만 인생을 관철하는 뜻이나 일관성, 이런 점에서 조조/유비와 손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任才尚計

재사를 임명하고 대계를 숭상하며,

 

손권이 임명한 재능있는 인물들은 무척 많은데 여기서는 부자의 평으로 대신하겠습니다.

 

〔一〕傅子曰:及權繼其業,有張子布以為腹心,有陸議、諸葛瑾、步騭以為股肱,有呂範、朱然以為爪牙,分任授職,乘閒伺隙,兵不妄動,故戰少敗而江南安。

[註1:부자에 이르길, 손권이 그 [패]업을 [부형으로부터] 이어받자 장[소] 자포가 있어 복심이 되었고, 육의, 제갈근 보즐이 있어 고굉이 되었으며, 여범, 주연이 있어 조아가 되었으니 임무를 나눠 직무를 제수한 뒤 [적의] 방심과 틈을 엿보면서 병[전쟁]에는 망동함이 없었던 까닭에 싸워도 패배가 적었고 강남을 안정시켰다.]

 

부자의 평에 빠져 있지만 중요한 인물은 아시는 대로 주유, 노숙, 여몽, 주태이고 특히 여몽은 손권이 있었기에 國士라고 평가받는 인물로 성장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計(대계)를 숭상하여 무력을 낭비하기보다는 피해가 적고 안전한 승리를 취하고자 했음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조조/유비가 순욱/제갈량 등을 끼고 한평생 天下를 염두에 두고 움직였던 것에 비해 손권의 뜻은 그가 임명한 재사들의 그릇에 따라 점점 작아졌습니다. 주유에 앞서 노숙이 건의한 패업의 길, 주유의 천하2분론은 두말할 것 없는 패자론이지만 여몽과 육손의 형주기습론과 위오동맹에는 천하가 사라지고 오의 생존만 남아버렸고 실재로 육손 이후의 오는 적어도 위 전체를 동요시켜보려는 움직임은 없었다, 제갈각이 북정조차 합비를 제압해두기 위한 포석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조조/유비가 지향한 인생과 손권이 지향한 인생은 방향이 달랐다.. 그것이 삶의 질과 사람의 그릇을 결정지은 것 아닐까.. 이렇게 보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손권이 計를 숭상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리고 대계라고 통크게 번역해두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손권이 숭상한 것은 謨計이지 大計는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아쉬워할 때가 많습니다.

 

有句踐之奇英,人之傑矣。

[월왕] 구천의 기이한 영재가 있으매 인걸이었다.

 

글을 적어주신 분들과 저에게 적어도 공통분모를 이루는 부분은 있습니다. 손권에게 기재가 있었고 걸물이라는 점이죠. 그러나 조조/유비와 나란히 할 영웅이라고 할 수 있을까.. 2%가 아니라 20% 부족해보이는 인상을 채울 만한 그 무언가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간략히 손권상에 대해서만 적어둡니다. 자세한 손권평은 조조/유비평과 이릉대전에 대해 만족할 만한 글을 쓴 다음에 언젠가 완성할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고 있고, 또 이 글에 대해서 적어주시는 댓글은 기억해두었다가 1주일이고 1달이고 지나서라도 더 완성된 글로 답을 해드리겠습니다. 더운데 건강 잘 지키시고 늘 시간을 아껴쓰시길 기원합니다. ^^

분류 :
손오
조회 수 :
5649
추천 수 :
1 / 0
등록일 :
2014.08.05
18:21:01 (*.230.114.105)
엮인글 :
http://rexhistoria.net/bong1717/135314/5e0/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rexhistoria.net/135314

작은나무

2014.08.05
18:47:16
(*.140.52.62)
글 잘 읽었습니다. 저 또한 손권에 대한 생각은 많이 헷갈리는 편인데요.

우선 손권을 전반기 / 후반기로 나눠서 평가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데엔 동의합니다.

저는 손권이 분명한 영웅의 그릇과 자질이 있었다고 생각하나, 아무래도 인간적인 면모가 강한데 그와 관련해서
정계와 전쟁판 속에서 줄초상을 겪게 된 것에 대해
고찰해 본 적이 있습니다. 후한 말에 워낙 쟁쟁한 인물들이 많아서 실적으로만 사람을 평가하게 되는 버릇이 생기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는데, 결국 손권도 한 사람의 인간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어느정도 동정이 가능하더군요.

아버지, 형, 장남 모두가 걸출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 트라우마가 손권에게 어떻게 작용했을까 생각해봅니다.
특히 태자 손등을 잃은 것은 결정타라고 볼 수 있죠. 그리고 그 것이 후반기의 나라 말아먹기에 제대로 시동을 건 것이라고 생각되구요.

그 유비조차 관우를 잃었을 때 이성이 나간 듯한 행보를 보이는데, 이 것은 아무리 영웅이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단순히 혈육의 문제를 떠나서, 한 무리를 대표하는 자가 마음을 떠맡기고 있는 사람을 잃었을 때 그 상심의 크기가 꽤 클 것 같군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0 촉한 유비와 리더십 승룡 2015-04-13 4668
29 군웅 [200년] 안량과 관우 [2] 승룡 2015-03-27 5989
28 군웅 [208년] 유표의 형주 양도 승룡 2015-01-28 4753
27 촉한 [221년] 유비의 즉위 승룡 2015-01-19 4229
26 촉한 [234년] 제갈량과 위연 승룡 2014-12-26 4796
25 조위 [280년] 사라진 후반기 [1] 승룡 2014-10-21 4613
24 군웅 [204년] 원씨의 신하들 [6] 승룡 2014-10-17 5505
23 조위 [220년] 조비 선양의 정당성 승룡 2014-10-14 4991
22 후한 [193년] 제갈량의 누이 승룡 2014-09-30 5316
21 군웅 [192년] 여포의 장안 탈출 승룡 2014-09-30 4807
20 조위 [223년] 위 신하의 유비 죽음 경하 승룡 2014-09-30 5229
19 촉한 [223년] 유비미화론 승룡 2014-09-26 4837
18 촉한 [219년] 관우의 죽음 승룡 2014-09-19 5855
17 손오 [211년] 손권의 여동생 승룡 2014-09-15 4750
16 촉한 [184년] 유비의 어머니 [1] 승룡 2014-09-11 5311
» 손오 [252년/오] 손권평 [1] 승룡 2014-08-05 5649
14 촉한 [234년/촉] 제갈량의 군재 승룡 2014-08-05 5198
13 조위 13. [249년] 회남삼반 중 왕릉 [3] 승룡 2014-05-09 5993
12 손오 12. [222년] 이릉대전과 병크 [7] 승룡 2014-01-15 8580
11 조위 11. [225년] 제갈량 없이 남정북벌 보기 [6] 승룡 2014-01-13 7431
삼국지가 춤을 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