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가 노래하네

우리가 알면 알수록 삼국지는 웃는다!

네이버 삼도에 올라운 질문에 대해서 제 생각을 적어본 것입니다.

 

전란이 발생하면 도회지가 피폐해지고 그 피폐를 금방 복구하지 못하면 가장 먼저 망가지는 게 도로와 수리시설입니다. 수리가 아니라 水利입니다. ^^;

 

동탁이 폭정을 하기는 했지만 중원 군웅들과의 싸움은 장안과는 거리가 먼 지역에서 주로 발생했기 때문에 장안 일대나 또 낙양으로 가는 길이 아닌 곳의 도로 사정이 급격히 나빠질 이유는 좀 적다 싶은 생각은 드네요.

 

우선 후한서 여포열전의 번역을 누가 제공하고 있는지 궁금한데 소개를 좀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번역을 도움받고 또 비교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흥미를 갖고 있는 부분은 2가지인데 하나는 삼국지 여포전과 후한서 열전의 내용에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꽤 많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삼국지고 후한서고 간에 여포는 굉장히 감성적이고 본능적인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포가 여포이게 만든 것은 원소의 기품도 조조의 지모도 유비의 인덕도 아닌 본능이라는 느낌이 든다는 말이죠.

 

[후한서 여포전]允既不赦涼州人,由是卓將李傕等遂相結,還攻長安。布與傕戰,敗,乃將數百騎,以卓頭繫馬鞍,走出武關,奔南陽。袁術待之甚厚。布自恃殺卓,有德袁氏,遂恣兵鈔掠。術患之。布不安,復去從張楊於河內。時李傕等購募求布急,楊下諸將皆欲圖之。布懼,謂楊曰:「與卿州里,今見殺,其功未必多。不如生賣布,可大得傕等爵寵。」楊以為然。有頃,布得走投袁紹,紹與布擊張燕於常山。燕精兵萬餘,騎數千匹。布常御良馬,號曰赤菟,能馳城飛塹,〔一〕與其健將成廉、魏越等數十騎馳突燕陣,一日或至三四,皆斬首而出。連戰十餘日,遂破燕軍。왕윤이 이미 량주사람을 사면하지 않으매 이 연유로 동탁의 장수 이각 등은 결국 서로 결탁하여 되돌아와 장안을 공격하였다. [6월] 여포는 이각과 싸웠으나 패하매 이에 수백 기를 이끌고 동탁의 머리를 말 안장에 달고 무관을 나와 달려서 남양으로 달아났다. 원술은 그를 심히 두텁게 대했다. 여포 스스로는 동탁을 죽여 원씨에 [베푼] 덕이 있음에 기대니 결국 병사들이 방자하게 초략했다. 원술은 그를 재앙으로 여겼다. 여포는 불안하여 다시 (원술을) 떠나 하내에 있는 장양을 따랐다. 이 때 이각 등이 여포를 현상금을 걸어[구모] 여포를 급박하게 구하매 장양의 아랫 제장은 모두 여포를 도모하고자 했다. 여포는 두려워 장양에게 말했다. "(나는) 경의 동향[주리]사람이니 지금 나를 죽이면 [고향 사람을 죽였다는 약점이 되므로] 그 공이 꼭 많게 되지는 않소. [죽이는 대신] 포를 산채로 파는 것만 못하니, [팔면] 이각 등에게 작위와 은총을 크게 얻을 수 있소." 장양은 옳다고 여겨 [여포를 보호했]다. 얼마 있다가 여포는 달아나 원소에게 [193년] 투신할 수 있었고, 원소는 여포와 함께 상산에서 장연을 공격했다. 장연은 정병이 1만여에 기병 수천 필이었다. 여포는 늘 양마를 함께 하매 적토라 불렸는데 능히 성을 달리고 참호를 뛰어넘으니[註1] 그의 건장[굳센 장수] 성렴, 위월 등 수십기와 함께 장연의 진으로 말달려 돌격하는데 하루에 혹은 서너차례에나 이르렀는데 모두 목을 베어 빠져나왔다. 십여일을 이어 싸우매 결국 장연의 군대를 쳐부쉈다.

 

이상이 여포의 장안 패전과 방랑기에 관한 얘기 전반부입니다.

 

삼국지에서는 여포가 이각에게 이긴 내용만 나와있고 장안성의 패배는 여포와 무관한 내응의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성문이 열린 이상, 살기 위해 모여든 량주 10여만의 군세를 장안에 있는 군대(태반은 동탁이 통제한 적이 있던)가 막기는 어려웠을 거다는 것이 한눈에 보이는 상황이죠.

 

여포가 본능적인 감각이 뛰어나다는 건 달아날 때 동탁의 머리를 챙겨서 움직였다는 것에서 느꼈습니다. 왜? 달아날 곳이 어디며 어떤 준비를 해야 자기가 대접받을 수 있을까, 최소한 위험하지 않을 수 있을까를 생각했기에 가능한 행동이니까.

 

원술의 장면에서 삼국지와 후한서의 설명은 다릅니다. 진수는 원술이 처음부터 여포를 꺼려했다고 했지만, 범엽은 원술이 여포를 후대했다고 합니다. 근데 그건 나중에 다루고 여포는 좋을 때 함부로 행동하고 그 행동이 재앙을 부르는 일이 계속 반복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포를 떠올리면 보통은 동탁이 떠오르고 다음으로는 조조를 떠올리기 쉽지만 여포는 굉장히 다양한 제후들과 인연을 맺습니다. 그 인연에는 장연, 장양, 원소, 원술까지 들어가는데 흥미로운 것은 하나하나가 다 유비와의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는 점이죠.

 

어쨌거나 처음 의문은 여포의 신속한 도주였으니 그것으로 마무리하자면, 도로 사정이 설령 나쁘고 여포에게 반감을 가진 제후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고 가정한다 하더라도 여포는 신속하게 도주한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왜냐면 본인의 행적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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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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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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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가 춤을 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