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가 노래하네

우리가 알면 알수록 삼국지는 웃는다!

제가 모르는 사이에 위키백과 엔하위키 등의 사이트에는 들어본 적이 없는 정보들이 보충되고 있었네요. 이 글은 위키백과의 사실이 옳은지 확인해보고자 삼도 식구들에게 물어본 것입니다. 파성넷 식구들도 아시는 분들은 십시일반으로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Q1. 제갈량의 어머니는 동생 균을 낳고 얼마 후 제갈량이 9살 때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 출처와 기록을 알고 싶습니다.(위키백과 등 사전종류 말고 고전의 출처)

-제갈량전에는 '亮早孤 량은 어려서 고아였다.'고만 나와있고 몇살 때인지 기록이 없습니다.

 

Q2. 아버지도 제갈량이 14살이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 출처와 자세한 기록을 알고 싶습니다.

 

Q3.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제갈근은 계모를 모시고 오나라로 갔다는데 몇 년경인지 알고 싶습니다.

-제갈근전에는 제갈근이 어려서 경사에서 공부하였고 전란을 피해 강동으로 갔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제갈근의 少시적이니 황건난(184년)보다는 반동탁연맹 다툼(190년)이 이유일 것이고(저도 같은 추측), 아무리 늦어도 200년 이전에 강동으로 갔을 것이다고 추정해주셨습니다.

-계모 얘기는 제갈근전 주석에 있습니다.

 

Q4. 작은 누이가 명문 방(龐)씨 가문에 출가한 것은 방통전 주석 양양기에서 확인되는데, 큰 누이가 양양 명문 괴씨 가문에 출가했다는 것은 위키백과에만 나오고 출처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어지간한 정사 원문과 배송지주는 제 손으로 하나하나 확인해봤기 때문에, 위키백과 중 몇가지는 적어도 진수의 삼국지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어떤 자료에서 누가 무슨 근거로 이렇게 자신있게 적고 있는지가 사실 굉장히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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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차이나의 도움을 받아 누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諸葛亮有兩位姊姊,長姊嫁給襄陽望族蒯氏蒯祺,二姊嫁給龐德公之子龐山民

 

《襄陽耆舊記·卷二·人物·蒯欽》:欽從祖祺婦,即諸葛孔明之大姊也。

《襄陽耆舊記·卷一·人物·龐德公》:其子仙民,亦有令名,娶諸葛孔明小姊,為魏黃門侍郎,早卒。

《三國志·卷三十七·蜀書七·龐統法正傳第七》:德公子山民,亦有令名,娶諸葛孔明小姊,為魏黃門吏部郎,早卒。

 

제갈량이 과연 누이를 괴씨에게 시집보내는 것을 찬성했을까 싶은 의구심이 강합니다.Ⅹ

>> 양양기구기에서는 괴씨에게 시집갔다고 하니 제갈량이 찬성했건 안했건 사실입니다. 양양기구기를 위서라고 할 수는 없다고 보거든요.

 

제갈량 자신이 채씨의 친척이니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방씨까지는 몰라도 괴씨는 좀 많이 의심스럽지 않을까요?Ⅹ

>> 의심해서는 안되었군요.

 

Q. 그러나.. 의심해야 할 것은 위치차이나에도 남아있습니다.

 

初平三年 187年 6歲 諸葛亮父親諸葛珪去世  
興平元年 194年 13歲 諸葛亮與弟諸葛均及姊姊由叔父諸葛玄收養,其兄諸葛瑾同繼母赴江東

 

애들은 무슨 근거로 187년에 제갈규가 죽었다고 하며(왜 한국 위키 사전류와 다르며), 제갈현이 강동으로 피신한 해를 194년이라고 하는 걸까요.. 저도 193~194년 사이라고 추측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얘네들처럼 자신있을 근거가 없는데..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되지 뭘 세세한 걸 따지냐고 할 수도 있지만, 제게는 큰 문제거든요. 제갈근과 제갈량이 몇 년에 강동으로 피신했느냐가 밝혀지면 그들이 왜 중원의 제후를 섬길 생각을 갖지 않았느냐를 아는 데 도움되기 때문입니다.

 

삼도 동글뱅이님이 알려주신 바이두 백과의 글에는 출처가 나와있습니다.

 

诸葛珪(gui)(?—192年[一作187年]),又作诸葛硅诸葛矽。字君贡(一作子贡),琅琊阳都(今山东临沂市沂南县)人。妻章氏,弟弟诸葛玄。三国时期蜀国丞相诸葛亮的父亲,汉末为青州泰山郡丞。共育有三男两女:长子诸葛瑾,东吴重臣;次子诸葛亮,为蜀汉名相;幼子诸葛均,耕于南阳,后也随诸葛亮在蜀汉出仕担任长水校尉。 长女嫁给房陵太守蒯祺,次女嫁给黄门吏部郎庞山民
注:卒年187、诸葛硅、诸葛矽,及字子贡均出自清代张澍的《诸葛忠武侯文集》里的“诸葛氏谱”、“编集诸葛忠武侯文集自序”。
诸葛亮八岁那年,父亲诸葛珪又因病去世。清人张澍引《诸葛氏谱》说:“玄死时,瑾年十三,亮年八岁。”此说错误颇多,疑为“珪死时,瑾年十五,亮年八岁”。封建时代,父亲是一家之长,家中的顶梁柱。顶梁柱的崩折,给这个家带来了很大的变化。长子诸葛瑾已经十五岁,承担起奉养继母的义务,八岁的诸葛亮、年幼的弟弟诸葛均以及尚未出嫁的两个姐姐全部由叔父诸葛玄抚养。
 
문제는 이 문집이 당시 것이 아니라는 것에 있죠. 진수도 적지 못한(또는 않은) 년도를 장수가 도대체 어찌 알았을까? 제 느낌대로 검토해본다면 이것 역시 전설을 취합하거나 장수가 추산해보기에 그러했을 것 같다는 자신감에서 나온게 아닐까 싶거든요.
 
아무튼 지금까지 제공받은 자료를 토대로 제 의견을 밝히자면 제갈근과 제갈량이 조조에게 출사하지 않은 것은 조조의 도겸공격(및 서주 학살)이 직접적인 원인이라 볼 수 없다. 다만 자기 고향을 제대로 멸망시킨 조조에게 좋은 이미지가 있었을 수는 없다.
 
두번째로 제갈규는 집안을 건사할 만한 능력이 있었지만 제갈현은 그렇지 못했기에 제갈근이 굳이 분가하여 조금이나마 폐를 덜어주려고 시도한 것이 현실적인 추측이다.
 
세번째로 제갈현 또한 원술의 사람됨보다는 가문의 명성에 기대어보려고 하다가 마침 유요, 손책의 전쟁에 휘말려 형주로 도피할 수 밖에 없었고, 제갈량 남매도 어린 시절에 고생 꽤나 했을 가능성이 크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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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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