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게 아리에스님 글이었군요. 눈에 익다 싶더니 예전에 삼도에서 잠깐 슥 훑어본 기억이 납니다.
다시 한 번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잘 몰라서 몇 가지 질문을 통해 배움을 요청합니다.(댓글이 길어져 아예 따로 글을 씁니다)

지금 아리에스님 글을 요약하자면,


1. 이궁 병립 자체는 큰 문제가 없었다.  정작 고옹-감택 시절에 조용했던 것이 그 증거.
2. 근데 콤비의 후계인 육손-오찬이 '태자파'로서 중립을 지키긴 개뿔, 선빵을 날리면서 일이 터졌다.
3. 결론적으로 선빵+전종건+손권 지침을 무시했던 육손에게도 책임이 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듯 한데 저는 조금 의문이 들어서요.


0. 태자는 그 자체로 게임 끝이 아닌가?


가장 궁금한 점이, '태자 vs 번왕'의 구도가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는 '경쟁'이 아닌지요?
번왕이 파벌을 만들고 태자를 위협하는 행보 자체가 당대 통념상으론 황제의 뜻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좀 심하게 말하면 역적질에 가까운 일이 아닌가 싶어서요. 이건 조비 vs 조식 간에 있었던 알력다툼과는 다르다고 보거든요.


이 때는 그냥 오관중랑장 vs 평원후의 구도였을 뿐, 둘 중 한 사람도 태자로 점지해두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선 두 아들의 아비이자 결정권을 지닌 조조가 개인 총애/판단에 따라 간을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손권은 황제인 그 자신이 아예 손화를 '태자'로 낙점했습니다.
그냥 노왕 무슨 왕 이런게 아니라 아예 '내가 죽으면 뒤를 이을 후계자'로 비정을 해버린거죠.
이건 이미 실력주의나 경쟁구도라는 것과는 카테고리가 다르지 않은가요?


본문에 '손등의 뜻에 따라' 라는 얘기가 있던데, 물론 손등의 유언이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긴 했겠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손화를 태자로 '삼아버린' 최종 결정권자는 손권입니다.
손권의 뜻이 만일 애초부터 손패와 손화를 놓고 경쟁을 붙이는데 있었다면 이런 행보는 모순이 아닐까요.



1. 오나라 승계 시스템은 정말 실력주의였나?


결론 부분에 주유와 장소가 손권을 손익 대신 지지한 얘기가 나오던데,
저는 도리어 이 부분이 왜 손패와 그 파벌들이 병크였는지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전거라고 봅니다.


장소가 손익을 지지한 것은 손책이 손권을 후계로 낙점하기 전의 일입니다.
하지만 손책이 손권에게 인수를 넘기자마자 장소와 주유는 두 말 없이 그를 절대적으로 지지했지요.
그 이유는 딴게 아닐겁니다. '손책이 점지한 후계자' 바로 손권이기 때문이죠.


실력주의란 말이 여기서 나왔는데,

이건 손권이 손익을 실력으로 제쳤다기보다는 '손책의 유조'가 더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이 아닐까요.
이때까지 손권과 손익은 정황상 그 대우나 실력에 있어 별 차등이 있었다고 보기가 힘드니까요.


저는 이 일화를 이궁의 변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손화는 다름 아닌 '손권이 낙점한 후계자'입니다. 그럼 대신들은 당연히 손화를 보좌하는 것이 맞습니다.


노왕의 대우가 태자와 같았다는 부분 자체가 실책이라고 봅니다만,
그러거나말거나 오나라 중신들이 지지해야 하는 사람은 태자인 손화가 되어야 하지 않나요.
(역시 대우와 지위가 비슷했던 손권과 손익에게 주유와 장소가 그랬듯이.)


육손은 선배들의 선례를 따라 이를 따랐지만 보즐과 전종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 건은 오나라의 전통을 봐도 전자가 옳지 후자가 옳다고는 안 보이더군요.


정리하자면, 손권이 태자를 손화로 낙점한 시점에서 이미 노왕'파'는 생겨선 안 되는 사파가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2. 감택 - 고옹이 정말 이상적인 콤비였나?(이궁 병립이 정말 별 문제가 아니었나?)


감택과 고옹이 살았을 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병립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다는 논지가 있던데,
이궁 병립이 243년 8월, 고옹 사망이 11월(오주전), 감택 사망이 겨울(10월~12월 중, 감택전)이면
이 시점에 고옹은 고작 3개월, 감택은 최대 4개월 밖에 재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본문에도 있듯이 정작 고옹 재직 시점에도 노왕 사부인 시의가 이건 아니라며 수 차례 표문을 올렸고,
은기통어나 통감을 봐도 이궁 병립은 이미 그 시점부터 수 많은 논란을 양산했습니다. 다만 표문을 올렸다고 기록된 게 시의 한 사람일 뿐이죠.
이걸 두고 '시의 혼자만 간언했으니 별 일 아니었다' 내지는 '고옹 감택이 잘해서 별 말 안나온거다' 라고 보기엔 좀 무리가 아닐까요.


245년에 들어 올라온 양도의 간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이궁의 병립을 찬양했다기 보다,
'태자와 노왕을 나누어 순리대로 적서의 구별을 잘 했다(처음엔). 그러나 갑자기 두 궁의 빈객 출입을 막게 되니,
두 궁은 서로간의 '전식'을 어기고 있으며,  그 사이에 의심이 쌓이면 걷잡을 수가 없게된다.
두 궁을 순리대로 처리하지 않게 되면 백성에게 설명할 길이 없게 된다
' 라고 얘기하며,


(이궁이)처음과 달리 전례를 지키지 않아 적서 구별이 모호해진 상황에
(이미 패가 나뉜 상황에서)빈객 출입까지 막게 되면 상호간 의심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점을 들고 있죠.
여기서 전식(典式)이란 구체적인 주가 없지만, 이게 만일 감택이 세운 이궁의 법식이라면
이미 그 시점에서 처음의 의도는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or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갔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고옹만해도 그렇습니다. 그의 한계는 이미 말년에 터진 여일 사건에서 드러났죠.
평소 고옹은 손권에게 노련한 처세와 간언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손권이 여일 한번 총애해 버리니 고옹이 탄핵받고 꾸지람을 듣는건 순식간이었습니다.


여일의 난동은 태상 반준이 여일과 동반자살하겠다는 초강수를 꺼내들고 나서야
겨우 진정되었고, 이 과정에서 정작 승상인 고옹은 승상으로서 속수무책이었죠.


즉, 손권이 누구 하나 총애해버리면 이미 그 시점에서 고옹 처럼 ' 손권의 뜻을 잘 받들고 그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
다스림을 펼친 신하조차 제 역할을 다 할 수 없었음을 뜻합니다.
손권이 육손에게 바랐던 '신하의 통괄'도 이 시점의 고옹은 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오찬과 육손은 모두 선배들의 선례가 한계로 드러나버린 시점에서 후임으로 오른 사람들입니다.
감택이 지정한 법식이 깨지고, 고옹의 치도가 한계를 보이며 반준이 극단적인 수를 쓰고 나서야 진정되던 정국.

저는 그 속에서 육손이 하나의 답을 찾았던게 아닐까 싶더군요.
물론 그 답도 답이 아니었다는게 안습입니다만.


정리하자면, 이건 육손 오찬이 이궁 병립 시점부터 썩어들어가고 있던 상황을 물려 받은거지,
고옹 감택이 잘 커버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병크 터뜨린거라 보기엔 힘들지 않나 하는 점입니다.



3. 육손은 정말 선빵을 쳤나?


본문에서 근거로 고담과 오찬, 육손의 일을 언급하셨는데 고담의 경우는 선빵으로 추정됩니다만(고옹 사후 수개월 후였으니)
나머지 두 사람의 일은 어떻게 선빵으로 해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통감은 이 두 사람의 일화를 손노반 난동 이후로 기록하고 있고, 본인의 기전에도 정확한 시기는 언급이 되어있지 않던데...


더불어 육손이 양축을 경계한 일은 그가 젊은 시절 광릉태수일 때의 일로서,
이궁의 변과는 무관하게 그의 평소 행실을 보고 양목에게 조언을 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일화 자체가 글염, 제갈각과 더불어 기재되면서 육손의 선견지명을 정리하는 부분에서 나오는 단막인데
단순히 이궁의 변 때 얽혔던 일이라고 보기엔 전거가 조금 부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종에게 충고한 일에 이르러서도 위 1과 맥락이 똑같은데.
애초에 전종이 자식 보내는 이 일을 육손에게 상담했다는 부분 부터가,
본인 생각에도 이게 영 꺼림칙하니까 물어본게 아닐까요?


정당한 일이었다면 굳이 육손한테 상의할 것 없이 바로 보내면 되지,
굳이 번거롭게 물어볼 필요가 있었을까 싶거든요.


육손은 신하들이 응당 태자를 섬겨야하는 와중에 계속 파벌을 만들어 나뉘는 걸 극도로 경계했던 입장인데,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전종이었다는 점에 실망을 하는게 당연하겠죠.


제가 이궁의 변 건에서 육손이 무고하다고 여기는 가장 확실한 근거는,
바로 주동자 손권이 말년에 이 모든 것을 후회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글이 길었습니다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황제가 태자를 정한 시점에서, 노왕(파)의 노골적인 위협은 이미 그 자체로 역적질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2. 육손-오찬은 주유-장소의 선례 - 군주가 낙점한 후계자를 받든다 - 를 따른 것 뿐이다.
3. 감택의 법식, 고옹의 처세는 이미 그 한계를 보였다. 즉, 오찬과 육손은 그 변화된 상황에 맞게 처신한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이 선빵을 날렸다고 보기도 힘들다. 선빵은 손노반이 아닐까)


정도입니다. 당연히 제가 오해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을테니 가르침을 꼭 청하고 싶습니다.
이 건은 제가 가장 흥미롭게 보고 있는 파트 중 하나라서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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