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가장 제 글의 가장 큰 전제를 먼저 짚고 답변하겠습니다.

 

이궁의 변은 손권이 노망이 났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손권이 육손을 제거하기 위해 술수를 부린 것이 아니다. 하지만 육손이 중립적이었는데 괜히 손권 말리다가 해를 입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제 답변도 이 두가지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시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 점은 양해를 구하는 바입니다.

 

0. 태자는 그 자체로 게임 끝이 아닌가?

 

사실 게임 끝일 수가 없습니다. 태자가 어떻느냐에 따라 달린 문제거든요. 사실 손화의 자질 자체는 논할 건덕지가 없습니다. 뭐 없거든요. 뭔가 해보지도 못한 채 정쟁에 휘둘리기만 하다가 죽은 셈이란게 문제지요. 그런 면에서는 자질은 논할 거리가 못되고요.

 

태자 VS 번왕이란 건 원래라면 승부거리도 아닌데, 이 경우에는 손패가 노왕이 된 것 자체가 굉장히 특이한 사태입니다. 손등과 손화 사이에 손려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건창후였지요. 손등이 죽기 전 15세의 나이로 요절했습니다. 또한 손권은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자기 아들에게 왕작을 주는 것 자체를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손등이 죽고 손화가 태자가 되면서 손패를 노왕에 봉했습니다. 다른 아들 손분이나 손휴 등은 작위를 주지 않았어요. 손권이 죽기 직전에서야 얘네들이 제왕이니 낭야왕이니 하는 왕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손패만 무엇 때문인지 노왕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이건 특별한 무언가를 연상할 수밖에 없는거죠.

 

위나라를 예로 들었는데, 위나라 같은 경우에도 조비나 조식을 직접 모시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이 움직였습니다. 오질이나 양수의 경우가 그렇지요. 결국 조조가 조비를 태자로 책봉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오는 권모술수는 오나라와 비슷하면 비슷하지 덜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비 쪽이 더 절박하게 움직이지 조식 쪽은 그렇게까지 태자 자리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조비는 조식에 대한 위기감을 크게 느꼈고 어떻게든 자리를 지키려고 애써야 했습니다. 왜였을까요? 조조가 조식을 특별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건 손권에게 정당성을 줄 명분은 없으나 신하들에게는 이것이 무언가의 징조로 여겨졌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태자 쪽에서는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문제지요. 여차하면 태자를 노왕으로 바꾸겠다 라는.

 

다른 가능성도 있습니다. 태자가 혹시 건창후 손려 같이 요절하면 다음은 노왕이라는 메시지. 그렇다 해도 이건 쓸데없는 메시지입니다만.

 

1. 오나라 승계 시스템은 정말 실력주의였나?

 

장소가 손익을 지지한 것은 종실전 손익편에 나옵니다. 군권을 손익에게 주려고 했는데 손책이 일부러 손권에게 인수를 주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저 때 손익은 불과 17세입니다. 그리고 손권이 일찍부터 손책을 도와서 군을 다스리거나, 전쟁에 종군하거나 했지만 손익은 그런 커리어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손익이 물망에 올랐던걸까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손책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손휴가 죽고나서 태자인 손완이 아니라 오정후 손호가 황제가 된 이유도 복양흥이 손호가 손책과 비슷한 기질을 갖고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인심도 그러했고요. 손권과 손익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손권은 사실 손책 시절에는 철부지였습니다. 여범의 일화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과소비를 한다던가, 공금을 횡령한다던가 하는 그런 짓을 해버리니까 확실히 문제가 있어보이긴 했죠. 하지만 손책은 손권을 선택했습니다. 자기 아들도 아닌 자기 동생을요. 그리고 주유는 처음부터 손권을 지지하지요. 장소는 손책의 유훈이 있고 나서야 손익을 포기하고 손권을 지지합니다. 손책의 후계자는 손권이라는 게 기정사실이 된 것은 이 두 사람의 복종에서 기인합니다.

 

그래서 제가 손권과 손익에 관련해서는 실력 문제라고 한 겁니다. 만약 유학의 도리를 따랐다면 손책의 아들이 후계자가 되고 손권과 손익이 보좌하는게 옳은겁니다. 하지만 손책의 아들도, 손책과 가장 닮았다는 손익도 아닌 손권이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손견의 아들 중에서 손책 다음으로 공적이 많은 손권이 말이지요. 오나라의 시스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손권 자신이 그렇게 군주가 되었기에 손권이 후계자를 정할 때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라 여겼습니다.

 

 

2. 감택 - 고옹이 정말 이상적인 콤비였나?(이궁 병립이 정말 별 문제가 아니었나?)

 

고옹을 비판하는 건 처음 보는 견해입니다만, 일단 답변을 하지요. 이궁의 병립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냐고 물어보면 현대에는 가장 큰 문제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어째서 반론이 제기되지 않았는가를 묻는게 순서인거 같습니다. 어떻게 굴러가나를 보자고도 할 수 있겠고, 정말 문제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고옹 사후에 손자들이 상소를 올리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걸 보면 실제로 잡음을 막은 것은 고옹일 가능성이 제일 높습니다. 그리고 전례를 지키지 않았던게 과연 노왕궁만의 문제일까요? 태자궁도 포함입니다.

 

여일 사건의 경우에는 고옹 자신이 걸려들었기 때문에 고옹이 뭐라 말을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손권이 여일을 너무 신용한 것이 큰 잘못이지만 당사자인 고옹이 거기서 더 뭐라 말을 할 여지가 없지요. 게다가 이 사건에서 제대로 활약한 건 육손과 반준, 그리고 공금 횡령을 밝혀내어 주거의 누명을 벗기고 여일의 죄를 밝힌 관리(이름이 기억 안나네요)입니다. 나머지는 팔짱만 끼고 있었다고 손권이 한탄하죠. 다른 글에서 말씀하신 거지만 손권이 자신을 제 환공, 신하들을 관중으로 비유해서 따끔한 일침을 날렸는데 저는 이 교서를 손권이 나는 제 환공이지만 너네들은 관중보다 못하다는 식의 자뻑이 아니라 나는 제 환공처럼 신하들 말을 들으려 노력하는데 너네들은 관중처럼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까놓고 말해서 제갈근,여대,주연 등이 민사를 맡질 않는다는 핑계로 육손과 반준에게 떠넘기는 상황 자체가 말이 안되는거죠.

 

, 고옹 자신이 피소당한 시점에서 고옹이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신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데 함부로 움직여서 더 큰 논란을 일으키면 그것이야말로 병크지요. 이 부분은 육손과 반준이 굉장히 잘 해준 것이고, 손권이 너무 여일을 신뢰한게 잘못이지 고옹에게 책임을 전가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고옹의 정치가 한계에 왔다... 이건 제 지식이 부족해서 단정지을 수가 없네요. 다만 오나라의 승상정치는 제갈량 같은 전권정치는 아니라고 볼 뿐입니다.

 

 

3. 육손은 정말 선빵을 쳤나?

 

저는 육손이 중립을 지키지 않은 것을 비판하지, 육손이 선빵을 쳤다고는 안했습니다. 이미 고담이 선빵을 쳤다는걸 인정했다면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제가 쓴 이궁의 변 글 챕터 중에 이런게 있지요.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었다라고.

 

위나라 쪽에서는 조비와 조식의 싸움에 끼어들어서 조조를 자극한 사람이 없습니다. 조조의 마음에 들기 위해 뒷공작을 펼치는 수준이고, 최염이나 가후 정도가 의견을 내었을 뿐입니다. 이후에 조비가 무자비한 복수극을 펼친 대상도 형제들과 정씨 형제 정도지요. 신하들에게 너 조식 지지했지이러면서 복수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오나라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하필 전공 다툼으로 인하여 전당 전씨와 오군 고씨가 제대로 붙어버린 바람이지요. 애당초 고담은 전기를 성격적으로 좋아하지 않았고 전기 쪽은 고담 등이 군공을 채어갔다고 생각해서 굉장히 원망합니다. 이건 공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적인 문제라고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태자 쪽이 명분에서 우월한게 사실인데, 태자 쪽은 그 명분을 지켜야지 누굴 탄핵하고 이러는데 정력을 쏟아서 될 게 아닙니다. 여대나 보즐 등이 상소를 올려가며 노왕을 지키려 애쓴 흔적도 없고, 태자파로 분류되는 제갈각조차 자기 아들을 노왕 쪽에 보냈습니다. 오히려 날을 세운 것은 태자파의 빈객들입니다. 아픈 황제에게 격렬한 언사를 서슴치 않는 건 물론이요, 나중에 가면 아예 황제 앞에서 거짓말까지 해서 양축을 파멸로 몰아넣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지요. 사실 태자파가 명분이 있더라도 이런 사람들로는 글쎄요. 과연 태자로서의 덕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오주오자전 손등편에 실린 이 일화를 보충자료로 쓰도록 하지요.

 

손등(孫登)이 시중(侍中) 호종(胡綜)으로 하여금 빈우목(賔友目)을 만들게 했는데, 그곳에서 호종은

 

"영재탁월(英才卓越), 초유필부(超踰倫匹)하는 자는 곧 제갈각(諸葛恪)이요, 정식시기(精識時機)하고 달유구미(達幽究微)하는 것은 곧 고담(顧譚)이며, 응변굉달(凝辨宏達)하고 언능석결(言能釋結)하는 자는 곧 사경(謝景)이고, 구학견미(究學甄微)하고 유하동류(游夏同科)하는 자는 곧 범신(范慎)이다"

 

라고 했다.

 

 

이에 대해서 양도는 호종을 꾸짖으며 말했다.

 

 

"원손(元遜: 제갈각(諸葛恪)의 자)은 재능도 없고, 자묵(子嘿: 子黙: 고담(顧譚)의 자)은 정()이 사납고 비뚤어져 있고, 숙발(叔發: 사경(謝景)의 자)은 말이 뜬구름을 잡고 효경(孝敬: 범신(范慎)의 자)은 깊이가 없다."

 

 

고 하였고, 이말들은 모두들 지취(指趣)를 가진 말이었다. 그리하여 양도가 했던 이 말은 견계(見咎: 트집비슷한 말, 걸림돌?)가 되어, 양도는 죽을때까지도 제갈각과 친해지지 못했다. 나중에 이 네 사람이 모두 죽음을 당하자, 오나라 사람들은 양도의 말은 사실이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육손은 특히 민감한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손책의 사위요, 오군 오현 4성의 하나인 육씨 가문의 수장이며, 같은 4성인 고옹 집안과는 인척 지간입니다. 거기에 태자빈은 장승의 딸이요, 장승은 제갈근의 사위이지요. 이렇게 되면 아무리 육손이 중립을 지키려 해도 그렇게 보아줄 수 없는 위치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군권까지 쥐고 있으니 육손이란 인물 자체가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는거지요.

 

전종이 육손에게 상담한 것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시각 차이로 여겨지니 제 글의 설명으로 갈음하겠습니다. 전종이 켕겨서 상담한 것인지, 아니면 육손이 현명하니까 상담한 것인지는 사료만 봐서는 알 수 없으니까요. 저는 자식 걱정해서 상담하러 온 동료에게 집안 망한다는 소릴 했다는 건 도저히 이해가 안 가지만요.

 

2차 이궁의 변에서 손권이 노왕을 폐하고 손량을 올린 이유 또한 한 쪽 편을 들면 원소나 유표 같이 다른 한 쪽에 의한 내란이 우려된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손권의 처절한 고뇌를 엿볼 수 있는 결정입니다. 그리고 제 2차 이궁의 변 당시 주거가 근위군들을 동원하여 시위를 벌인 것이 이후에 내전으로 비화될 수 있겠구나 하는 걱정도 들어있을거고요.

 

손권이 육항에게 사죄한 점도 거기에 기인합니다. 당시 손권이 분노한 대상은 육손이 아니라 오찬과 고담입니다.(이 두 사람은 얄쨜없이 손권의 역린을 건드렸다고 봅니다.) 손권이 육손을 죽이고자 할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랬다면 일단 관직부터 삭탈하는게 순서지요. 양축이 육손 탄핵을 위해 꺼낸 20가지 죄목은 결국 허위로 밝혀졌고요. 그리고 손권이 육손을 비판한 글을 태워달라고 한 건 육항이 사적으로 태울 수 없는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황제가 내린 교서를 자기 집안 허물이라고 태워버리면 어떤 문제가 될지 굳이 거론 안해도 될 거라 봅니다.

 

저는 손권에게 모든 잘못을 전가하며 노망과 호족 탄압책이라는 양립 불가능한 설이 난무하는 중에 과연 이 분란에 태자 쪽 책임은 없는가?’ 에 의문을 품고 쓴 글이라, 육손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육손은 그 위치 때문에 결코 중립적일 수 없고, 또한 이궁의 병존을 우려했다면 당초부터 말을 했어야지 태자 쪽 사람들이 득세한 후에 이야기를 했다는 건 솔직히 그 의도가 순수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는게 제 의견이었습니다.

 

만족스런 답변이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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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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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

2014.11.01
23:12:28
(*.103.140.13)
장문의 답변 감사드립니다. 잘 읽어보았습니다.
말씀대로 관점의 차이에서 해석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아리에스님은 '손권의 노망이 일으킨 사건이 아니다' 이고,
저는 '이건 손권의 실수' 라고 보는 점에서 시각의 차이가 있군요.

관점 자체가 시작부터 다르면 토론을 해도 서로 도돌이표를 찍는 경우가 많더군요.
다만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몇 가지 첨언만 하겠습니다.

0. 저는 태자를 책봉한 시점에서 노왕을 책봉해 총애했다는 수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책봉이 그만큼 특별한 의미였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반대로 생각해서, 노왕 책봉 사건이 없었다면 신하들이 두 패로 갈릴 이유 자체가 없었을테니까요.
조비-조식의 경우를 예로 든 것이 그 때문입니다. 6년간 (태자 책봉 없이)경쟁 구도로 둔 상황에서는 신하들이 책모를 꾸몄지만 조비가 태자가 된 시점 이후로 그런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이게 두 나라 중신들이 보여준 모습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1. 이건 정말 잘 배웠습니다. 다만 저는 오의 승계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 라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과연 이것이 실력주의 승계인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2. 제 논지는 '고옹 때문에 이궁의 변이 일어났다' 는 것이 아닙니다.
'고옹 덕분에 변을 막을 수 있었다' 는 의견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지요.

그리고 고옹의 정치 내지는 처세 자체가 아예 잘못되었다 란 뜻이 아니라,
과연 이궁의 변 상황에서 고옹 같은 행보가 효력을 발휘했겠는가? 에 대한 의문입니다.
여일을 들고 온 것은 그 때문입니다. 여일(손화)처럼 '손권의 총애를 받는' 이들이 엮어내는
상황 속에서, '신하들을 통괄해야 할' 승상 고옹은 무력했죠.

여대, 주연, 제갈각 등이 위기상황에서 임무를 육손 반준에게 미루던 상황.
반준이 칼을 품고 여일을 살해한다는 비정상적인 상황까지 연출하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던
그 정국에 과연 고옹이(고옹 같은 행보가) 책임이 없겠냐는 뜻이었습니다.

여일을 총애한 것이 손권의 잘못이듯, 손패를 총애한 것도 손권의 실책이라고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육손에게 '신하를 통괄하라'는 명이 '고옹 같은 행보를 견지해라' 였다면
'손화와 반대 스탠스로 의심 받을 수 없는 입장의' 육손은, 고옹처럼 탄핵 당하고 꿀멍하는 시나리오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의문을 제기했던 것입니다.

3. 저는 승상 육손이 취할 '중립'은, 그리고 당시 통념에서의 정도는
정통(이자, 미래 자신들의 군주가 될) 태자 손화 이외의 파벌을 없애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명분과 위치를 지키면 된다고 하셨지만, 이미 노왕 쪽에서 노골적으로 그 위치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태자를 보위하던 신하들이 어떤 행보를 보여야 했다는 건지 전 이해가 잘 안되는군요.

그리고 이궁의 병립은 그 시작부터 이런저런 말이 나왔습니다.
시의의 표문과 은기통어의 기록이 그걸 증명하지요. 이 당시 손권의 행보와 별 기록이 없는 손패에 대해서
(당시의 통념을 가진)진수, 배송지 같은 사가들이 하나같이 비판적인 평을 가했던 이유도 딴게 아닙니다.
노왕 책봉이 잘못된 게 아니라, 이궁이 '병립'했다는 그 자체가 문제였던 거죠.

손권이 손패는 죽였어도 손화는 끝내 죽이지 않고 유폐 수준에 그쳤다는 것도,
말년에 그 손화를 복위시키려 했던 것도 모두 본인의 잘못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제 관점은 '말년의 손권은 그냥 노답 노망' 이런게 아닙니다.
다만 이궁의 변 하나 만큼은 손권 일생의 실드칠 수 없는 유일한 실수라고 보는 것이지요.
손권의 실수가 명백한 사건에 대해, 당대의 통념과 당연한 이치대로 '번왕'이 아니라 '태자'를 보위하려 했던 사람들이
그 책임을 나눠 갖는건 너무도 부당한 일이 아닌가 싶더군요.

여자가 바지 안 입고 미니스커트 입었다고, 그게 범죄자에게 '욕구'를 불러일으켰다며 책임을 지울 순 없듯이 말입니다.

아리에스

2014.11.02
21:47:39
(*.144.59.105)
원래 글이 손권의 노망이 아니란 전제로 쓴 것이지 정윤님의 글이 그렇다는건 아닙니다. 올 3월에 쓴 글이다보니 현재진행형으로 반영이 안된 것도

일부 있고요.

다만 두어가지 반박하고 싶은게 있습니다.

일단 고옹의 정치에 대한 의견은 정윤님의 의견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옹의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겠지요.

하지만, 이게 태자와 노왕을 동등하게 세운 손권의 실책과는 별개로 비판해야할 점이 있습니다.

1. 당파를 만드는 것 자체가 신하로서 문제가 있는 행동이 아닌가?

태자파 노왕파를 떠나 애당초 결당이라는 행동 자체가 신하로서 바람직한 행동인가를 생각해봅시다. 이궁을 양립시킨 것도 잘못이지만, 신하들이 거기에 영합하여 당파를 결성한 게 잘한 것일까요? 노왕파 태자파 두 당에 속해 상소를 올리며 싸워댄 신하들이 과연 이궁의 변이 일어나게 된 책임을 면할 수 있는가요? 저는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시의와 고옹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약 10여 년 전 위나라에서 동소가 상소를 올려 제갈탄이나 등양 등이 결당한다는 이유로 관직을 삭탈당하게 만들었듯, 애당초 만인지상의 군주 밑에 당파를 결성하는 것 자체가 문제되는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궁의 변으로 신하들이 저울질 할 계기를 제공한 건 손권이지요. 하지만 계기가 생겼다고 해서 얼싸구나 하고 파가 갈린 건 신하들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윤님 댓글의 마지막 줄의 말은 여기에도 대입할 수 있다고 봅니다.

2. 손화 파만 남기고 없애야 한다?

이건 더더욱 말이 안되지요. 애당초 파가 갈렸다면 승상은 그 두 파를 어르고 달래어 하나로 만들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중립을 지킬 수가 없

다하더라도 최소한 한 쪽 편에서 다른 한 쪽을 탄압하는 형태의 정치는 재상으로서 최하점을 줄 수밖에 없는 행위입니다.어느 한 쪽을 완전히 배제해서 해결될 일이었다면 어째서 손권은 말년에 손패를 폐해야 했으며, 왜 손화를 포기하고 손량을 올려야 했을까요? 누가 봐도 태자가 덕을 쌓고 능력이 있어 황위를 이을 재목이라고 한다면 신하들은 저절로 복종합니다. 게다가 손권의 아들들은 모두 서자입니다. 그럼에도 손등이 어째서 존경받고 누구도 그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은걸까요? 그저 장남이라는 것 하나뿐이었을까요? 태자라는 지위가 권위를 스스로 뿜어냈을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고옹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색깔을 드러내며 탄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육손은 어땠습니까? 태자가 정통이라는 것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워서 신하들의 분쟁을 방조하고 태자파의 이익을 대변한 결과 태자파가 대거 숙청되는 극한 상황에 이르게 했습니다. 육손은 이 점에서 이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제 글의 취지 또한 그렇고요.

정윤

2014.11.02
23:03:00
(*.103.140.13)
크핫, 세심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다시 보니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첨언한다던 놈이 뭘 저렇게 전투적으로 적어놨나 싶네요-_-;;
혹여 거슬리는 부분이 있으셨다면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파당의 여지를 둔 건 문제지만, 그 여지에 걸려 덜컥 파당을 만든 신하들에게도 잘못이 있다'
'파당이 갈렸으면 승상은 응당 두 파를 중재시킬 필요가 있다. '

비록 관점 자체는 다르지만 댓글에 써주신 이 두 가지 골자엔 깊이 공감했습니다.
기꺼이 가르침에 응해주시고 좋은 의견 나누어주신 점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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