泰始七年薨,時年六十七,賻贈有加。望性儉吝而好聚斂,身亡之後,金帛盈溢,以此獲譏。


태시(泰始) 7(271), ()하였는데 당시 나이는 67세였고, (사마염은부의(-상가에 보내는 돈과 물품)를 더욱 많이 주었다사마망()은 성품이 검소하고 인색하였으면서도 취렴(聚斂)하기를 좋아하였는데사망한 이후 금과 비단이 차서 넘쳐나니 이로써 비웃음을 얻었다.

 

四子:弈、洪、整、楙


4명의 아들이 있었다사마혁(司馬), 사마홍(司馬), 사마정(司馬), 사마무(司馬).

 

弈至黃門,先望卒。整亦早亡。以弈子奇襲爵。奇亦好畜聚,不知紀極,遣三部使到交廣商貨,有司所奏,太康九年,詔貶三縱亭侯。更以章武王威望嗣。後威誅,復立奇棘陽王以嗣望


사마혁()은 황문랑(黃門)에 이르었었는데사마망()보다 먼저 졸()하였다사마정(역시 일찍 사망하였다이로써 사마혁()의 아들()사마기(司馬)가 작위를 이어받았다사마기 또한 축취(畜聚)하는 것을 좋아하였는데끝내는 법을 몰라서 삼부(三部)를 교광(交廣)의 상화(商貨)에 파견보내곤 하였는데이런 일이 있자 관리가 아뢰었다태강(太康) 9(288), (황제 사마충이조서를 내려 (사마기를삼종정후(三縱亭侯)로 낮추었다이로써 장무왕(章武王사마위(司馬)에게 사마망()을 잇도록 하였다이후 사마위()가 처형당하자사마기()를 다시 극양왕(棘陽王)으로 복립(復立)하여 사마망()을 잇도록 하였다.

 

河間平王洪字孔業,出繼叔父昌武亭侯遺。仕魏,歷位典農中將、原武太守,封襄賁男。武帝受禪,封河間王。立十二年,咸寧二年薨。


하간평왕(河間平王사마홍()의 자()는 공업(孔業)이었다출계(出繼)해서 숙부 창무정후(昌武亭侯사마유(司馬)를 잇도록 하였다()를 섬겼을 무렵에는 전농중랑장(典農中)과 원무태수(原武太守)를 역임하였고양분남(襄賁男)으로 봉해졌다무제(武帝-사마염)이 제위에 오르자 하간왕(河間王)으로 봉해졌다. (왕으로세워진지 12함녕(咸寧) 2(276)에 훙()하였다.

 

二子:威、混。威嗣,徙封章武。其後威繼義陽王望,更立混洪嗣。混歷位散騎常侍,薨


2명의 아들이 있었다사마위(司馬), 사마혼(司馬). 사마위가 계승하자장무(章武)로 옮겨 봉했다그후 사마위()가 이미 의양왕(義陽王사마망()을 계승했기에사마혼()이 사마홍()을 잇도록 고쳤다사마혼()은 산기상시(散騎常侍)를 역임하고()하였다.

 

及洛陽陷,混諸子皆沒于胡。


낙양(洛陽)이 함락당하자사마혼()의 아들들은 오랑캐로부터 몰살당했다.


而小子滔初嗣新蔡王確,亦與其兄俱沒。後得南還,與新蔡太妃不協。太興二年上疏,以兄弟並沒在遼東,章武國,宜還所生。太妃訟之,事下太常。太常賀循議:「章武、新蔡俱承一國不之統,義不得替其本宗而先後傍親。按滔已被命人後矣,必須無復兄弟,本國永,然後得還所生。今兄弟在遠,不得言無,道里雖阻,復非域。且鮮卑恭命,信使不。自宜詔下遼東,依劉群、盧諶等例,發遣令還,繼嗣本封。謂滔今未得便委離所後也。」元帝詔曰:「滔雖出養,自有所生母。新蔡太妃相待甚薄,滔執意如此。如其不聽,終當紛紜,更不可。今便順其所執,還襲章武。

 

소자(小子-어린아이?) 사마도(司馬)가 본래 신채왕(新蔡王)을 잇는게 확실해지자그의 형()과 함께 몰살당했다() (아이를 얻은 이후?) 남쪽으로 돌아오자더불어 신채태비(新蔡太妃)와 협조하지 아니하였다태흥(太興) 2(319), 상소(上疏)를 올렸는데이로써 형제가 나란히 몰살당해 (후손이?) 요동(遼東)에 있어장무국(章武國)이 단절되었으니 마땅히 소생(所生)이 돌아와야했다태비가 이를 쟁론하여태상(太常)이 일을 내렸다태상(太常하순(賀循)이 의논하기를장무(章武)와 신채(新蔡)를 모두 이을 일국(一國)은 계통이 끊이지 아니하였고본종(本宗)을 끊는 것은 옳지 못하니 앞뒤의 방친(傍親)을 먼저 고려해야 합니다. (이를억누르려 하더라도 사마도()는 이미 명을 받아서 인후(人後)를 들이도록 하였으나 형제(兄弟)가 복귀할 수가 없으며 본국이 오랬동안 절단되었으니틀림없이 후(-사마도?)가 돌아온 후에 소생(所生)을 얻어야 합니다지금 형제가 멀리 있어 말해봐야 이득이 없지만 도리(道里)가 비록 막혔다고 하나 회복한다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 것입니다또 선비(鮮卑)가 명을 받들이니신임할 수 있어 (길이끊이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스스로 마땅히 요동에 조서를 내려 유군(劉群)과 노심(盧諶등의 무리에 의지하여 일을 맡겨서 돌려보내 본봉(本封)을 잇도록 해야 합니다謂滔今未得便委離所後也」원제(元帝-사마예)가 조서를 내려 말하였다:사마도()가 비록 낳고 길렀다고 하나 그 소생(所生)의 어머니가 있다신채태비를 대접하였으나 (요새지나치게 야박해졌으니사마도에게 처리하게 하여 뜻이 같다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하더라도 마땅히 분운(紛紜)한 것을 마치고 옳지 않은 것을 개선하도록 하여라현재 편순(便順-편하고 순하니?)하니 맡은 일을 처리하고장무(章武)를 돌아오게 하여 잇도록 하여라

 

(※또 다른 발번역 구간으로 이 또한 고수분의 도움을 요청합니다분명히 그의 형과 몰살되었다고 서술되어 있는 것같은데(其兄俱沒또 멀쩡히 요동에 포류된 듯양 언급하니 대체 무슨 의미인지 저로써도 불명입니다그나마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사마도가 몰살당했으나 살아남은 후가 그의 아이를 아이를 배었는데 신채태비에 의해 방해받아서 제대로된 승계절차를 받지 못했다는 내용인데 그렇다면 왜 요동이 언급되는지가 이해가 안됩니다이후 사마도가 산기상시를 역임했다는 것을 보면 멀쩡히 산 것같기도 한데 왜 또 그의 형과 함께 몰살당했다고 언급하는지  )  

 

滔歷位散騎常侍,薨,子休嗣。休與彭城王雄俱奔蘇峻。峻平,休已戰死。弟珍年八,以小弗坐。咸和六年襲爵,位至大宗正。薨,無嗣。河間王欽以子範之繼,位至游擊將軍。薨,子秀嗣。義熙元年,桂陽太守。秀妻桓振之妹,振作逆,秀不自安,謀反,伏誅,國除


사마도()는 산기상기(散騎常侍)를 역임하였으며 훙()하자 아들 사마휴()가 이었다사마휴와 더불어 팽성왕(彭城王사마웅()이 함께 소준(蘇峻)에게 도주하였다소준()이 평정되자사마휴는 이미 전사(戰死)하였다아우 사마진()의 나이가 8세였으니이로써 어려서 권좌에 앉지 못하였다함화 6(331), 작위를 이으니 대종정(大宗正)까지 이르었다()하였으나계승받을 이가 없었다이로써 하간왕(河間王사마흠()은 아들 사마범()에게 승계하도록 하였다. (사마범은유격장군(游擊將軍)까지 이르었다()하니아들 사마수()가 승계하였다의희(義熙원년(405), (사마수는계양태수(桂陽太守)로 임명되었다사마수의 처가 환진(桓振)의 누이였는데환진()이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수는 편안하지 아니하여서 모반(謀反)하였으나 복주(伏誅)당하여 (사마수의 영지를국제(國除-영지를 도로 회수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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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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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rz

2016.07.12
09:00:22
여기서 沒의 의미는 죽었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잡혀서 포로가 됐다는 의미인것 같습니다.

dragonrz

2016.07.12
09:32:04
추가로 제가 대충 번역한 부분을 첨부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而小子滔初嗣新蔡王確,亦與其兄俱沒。後得南還,與新蔡太妃不協。太興二年上疏,以兄弟並沒在遼東,章武國絕,宜還所生。太妃訟之,事下太常。太常賀循議:「章武、新蔡俱承一國不絕之統,義不得替其本宗而先後傍親。按滔既已被命為人後矣,必須無復兄弟,本國永絕,然後得還所生。今兄弟在遠,不得言無,道里雖阻,復非絕域。且鮮卑恭命,信使不絕。自宜詔下遼東,依劉群、盧諶等例,發遣令還,繼嗣本封。謂滔今未得便委離所後也。」元帝詔曰:「滔雖出養,自有所生母。新蔡太妃相待甚薄,滔執意如此。如其不聽,終當紛紜,更為不可。今便順其所執,還襲章武。」

그리고 작은 아들 사마도는 처음에 신채왕 사마확의 뒤를 이었는데 또한 그 형과 더불어 잡혀 포로가 되었다. 이후에 남쪽으로 돌아와 신채태비와 잘 맞지 않았다. 테흥 2년 상소를 올려 형제가 더불어 요동에 잡혀있어 장무국의 대가 끊기게 생겼으므로 응당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였다. 태비가 다투니 일이 태상에게 맡겨졌다. 태상 하순이 의논하여 말하길 :「장무, 신채는 모두 대가 끊어지면 안 되는데 도리 상 그 본종을 대신하여 방친의 후계를 먼저 이을 수는 없다. 생각건대 사마도는 이미 다른 사람의 후계가 되는 것으로 정해졌으니 반드시 모름지기 다시는 형제가 없어 본국의 계통이 영원히 끊어질 경우가 된 연후에야 소생지로 돌아갈 수 있다. 지금 형제가 멀리 있지만 없다고 할 수 없고 길이 비록 험난하지만 절역이 아니다. 또한 선비가 공손히 명을 듣고 사신의 왕래가 끊이지 않는다. 자연히 응당 조서를 요동에 내려 유군, 노심 등의 예에 의거하여 (그의 형제들을) 보내 돌아와서 본봉을 잇게 해야 한다. 생각건대 사마도는 지금 바로 후계자로 있는 곳을 버리면 안된다. 」하였다. 원제가 조서를 내려 이르길 :「사마도는 비록 양자로 나왔으나 스스로 낳아 준 어머니가 있다. 신채태비는 서로 대하는 것이 너무 박하고 사마도의 고집이 이와 같은데 만약 들어주지 않는다면 끝내 분란이 있을 것이므로 더욱 안 될 일이다. 지금 곧 그 고집을 따라서 장무로 보내 자리를 잇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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