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출처 역개루 http://cafe.naver.com/historygall/58993



삼국지에서 공손찬하면 삼국지에 깊이 관심이 있어 아시는 분들은 한때 상당히 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원소와 싸우다 끝내 유우를 죽이는 등의 실책과 한계로 망했다는 사실을 아실것이며 잘 모른다고 하여도 최소한 유비친구라는 사실 정도는 다들 아실겁니다. 한 시절 할거세력 중 가운데 강한 세력을 형성하기도 하였던 공손찬입니다만은 이 세력의 기반이 상당히 기묘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먼저 공손찬의 세력기반이 무엇이 기묘한지 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먼저 유주에서의 기반이 모호합니다. 동탁이 낙양을 점거하고 반동탁세력이 일어남으로서 각지의 세력들이 할거하였는데 공손찬의 경우 할거기반에 있어 영토의 기반이 굉장히 모호합니다. 동탁 이전 유주는 유주자사 유우가 관리하였고 공손찬은 유주내에 영토적 기반이 없었었습니다. 다만, 영제시기 184년즘 양주적이 봉기하자 공손찬에게 유주돌기 3천과 도독사무를 행하는 전을 내린것과 장순의 난 때 유우가 각처의 주둔병을 파하고 공손찬에게 보기 1만명을 거느리고 우북평에 주둔하게 하여 군사적 기반을 가진것만이 확인될 뿐입니다. 

할거세력들의 세력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세가지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기존에 자신이 맡은 부임지의 주나 군현을 기반으로 삼는다. 둘째 다른 주의 자사나 군현의 장에게서 탈취한다. 셋째 공백화된 주와 군현에서 세력을 형성한다. 이렇게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손찬은 할거세력들이 등장할 당시 기존의 부임지가 없었습니다. 물론 공손찬이 이후 원소와 기주를 두고 다투거나 청주, 연주에 자신의 사람을 보내어 확보하려 했었기는 합니다. 

그러나 기주는 잠시 발해군을 얻은 적이 있었지만 결국 계속하여 원소와 싸워야 했고 청주의 일부만을 획득했을 뿐입니다. 가장 처음 기반이 될것이라 생각되는 유주에서는 공손찬이 가진 영토가 없었다는 점에서 공손찬이 왜 기주, 청주, 연주로 나아가려 했는지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런 영토적 기반이 없는 공손찬이 어떻게 강한 군사력을 가졌는지는 앞뒤가 맞아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대로라면 공손찬은 유주에서 보기 1만명밖에 없어야 했지만 정작 계교전투에서 보병 3만 기병 1만을 동원하였습니다. 
이는 장순의 난 이후 공손찬이 자신의 세력 당시로서 말하자면 자신의 부곡을 계속하여 증강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주자사 유우가 공손찬과의 갈등으로 전쟁하고 공손찬에게 죽기 이전까지 공손찬은 유주에 자신의 사람들을 배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공손찬의 부곡은 대체 어디서 나온 재화로 세력을 키워나갔던 것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공손찬은 기본적으로 유우의 절도를 받는 휘하로 유주에 소속된 군대라는 점이 있습니다. 공손찬의 군대가 실질적으로는 공손찬의 사병화되었지만 유주의 군대임으로 유주의 재화로 군량등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점들이 있습니다. 

할거시기 이전까지 공손찬이 유주의 군대로서 유우에게 군량등을 제공받았다고 하더라도 군대를 1만보다 더 증강시키는등의 일에 있어 유우가 협조하였을지가 의문이 됩니다. 혹 유우가 협조하였다고 가정하더라도 할거시기에 이르러 원소와 교전하고 점점 유우와 사이가 멀어졌으며, 유우를 죽인 이후로는 유주를 점거했지만 유우를 지지하던 이들의 반격으로 유주의 여러 지역을 상실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공손찬은 수년간을 버텼고 수만의 병력을 부렸습니다. 영토적 기반이 없고 유우를 죽인 후 얻은 유주의 땅도 상실하였는는데 대체 어디서 재화가 나와서 군대를 불리고 유지하였던 것일까요. 물론 단정적으로 영토가 하나도 없다고 할 수는 없더라도 유주의 대부분은 유우의 관할하에 있었습니다. 청주의 경우 청주의 전체도 아닐 뿐더러 결국 원소와 싸우느라 청주가 황폐화 되었습니다. 

앞서의 말한 유우를 통해 얻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그나마도 유우와의 갈등과 유우 사망이후로는 유주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매우 적었습니다. 그럼으로 찾아봐야 할 것은 유우의 경우를 제외하고 공손찬이 얻을 수 있는 재화의 통로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공손찬의 협력자들입니다. 공손찬은 점쟁이 출신 유위대와 비단상인 이이자 상인 악하당 세명을 총애하여 형제의 맹약을 맺었는데 이들이 공손찬의 협력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재산이 거억에 달하였고 공손찬이 이들과 사돈관계를 맺었는데 거억의 재산을 가진 이들의 지원 즉 일종의 정경유착으로 부곡을 키우고 군대를 유지한것으로 보입니다.

둘째는 황건적의 격파입니다. 공손찬전에 따르면 청주와 서주의 황건적을 격파한 후 군세가 더욱 성해졌다고 하며 당시 흑산적과 연계하려 했던 이들 황건적의 수효는 30만으로 공손찬은 이들을 격파하고 포로 7만과 수레와 갑주 재물을 수없이 많이 취하였습니다. 흔히 조조가 황건적을 격파하고 그 세력을 흡수해 강성해졌다고들 하는데 공손찬이 조조와 같이 하지는 않았더라도 이 사건을 통해 인력과 재물을 흡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것에서 공손찬의 세력은 영토적 기반은 상당히 미흡하지만 군사력을 유지 증강시킬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동시에 영토적 기반의 부재와 공손찬의 세력형성의 협력자들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식자층과 호족들의 지지를 얻기 어렵고 특히나 유주의 경우 유우가 관할함에 따라 공손찬은 유주에서 호족등과의 관계형성을 하기 힘들다는 크나큰 약점을 지니게 됩니다. 

관직을 주고 이를 통해 소위 고리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는데 공손찬이 내릴수있는 관직인 굉장히 한정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주이 호족등은 유우와 오래 접촉하며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였다는 점에서 끝내 유우를 죽였지만 유주를 장악하지 못한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공손찬이 배치한 이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쫓겨난 점에서 공손찬이 유주의 호족과 기존 관료나 인재들을 흡수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공손찬의 성격이 기인한다고 볼 관점도 있지만 후한서 공손찬전에서 공손찬이 명망높은 선비들에게 위해를 가했다는 점을 말 할때 공손찬이 한 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손찬은 선비들에 대해 모두 자기 재주로 부귀해졌다고 여겨 타인의 은혜에 감사할줄 모른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자신이 그들에게 베풀어줬지만 감사할줄 모른다는 말로 결국 그가 호족등을 흡수하지 못했음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로서 정리해보자면 유주는 유우가 관할하며 호족등은 모두 유우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고 공손찬은 상인등의 비주류적 계층의 지원으로 부곡을 형성 강화하였으며 황건적 격파와 흡수를 통해 세력이 강성해졌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영토적 기반의 확장을 위해 기주 청주 연주로 나아갔지만 끝내는 실패하였고 이로 인해 더이상 호족층에 대한 흡수와 관계형성을 맺을 방법이 없어졌습니다.

기주는 명사이자 청류파의 거두가 된 원소가 있고 청주는 그나마 일부를 얻었으나 황폐해진 사실에서 공손찬의 세력은 친족과 점쟁이와 상인과 같은 이들의 지원 그리고 공손찬 개인의 군사력인 부곡집단으로 한정돕니다. 결국 유우와의 갈등 후 전쟁에서 유우를 사로잡았지만 유우에게 문서를 맡기는등의 행동에서 볼 때 유주라는 영토적 기반의 획득을 위해 유우와 타협할 생각이 있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협력이 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단훈이 옴으로서 공손찬이 전장군이 되었는데 전장군이라는 직위의 획득과 유우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단훈의 존재로 인해 유우를 죽인것이 아닌가도 추측이 되기도 합니다. 

동시에 공손찬의 강성한 세력을 지탱한 축이 황건적 흡수와 상인의 지원이라는 점 특히 상인의 지원에 있어 그의 동문수학은 유비 또한 출발이 상인의 지원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은 꽤 흥미롭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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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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