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역개루 http://cafe.naver.com/historygall/53015

231년에 이루어진 제갈량의 4차북벌은 흔히 노성전투에서 제갈량이 사마의를 이기고 잘되어가는데 이엄이 군량을 제대로 보내지 않아 말아먹었다가 흔히 알려진것입니다. 

노성전투를 포함하여 제갈량과 사마의의 대결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유리하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노성전투는 한진춘추에 나온 내용만을 우선시하여 제갈량이 사마의를 이겼다라고만 말합니다. 특히나 자치통감에서 사마광이 한진춘추의 내용을 기재하였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리고 흔히 선제기는 사실을 왜곡했다고들 말하는데 정확히 짚어 말하자면 선제기가 과장하거나 결과를 포장했다면 모를까 사실을 완전히 왜곡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4차북벌은 한진춘추와 선제기를 같이보고 교차검증해야지만이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위서 촉서 한진춘추 선제기를 교차검증하여 보면 일의 전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2월 제갈량 북벌개시 목우로 군량을 운반 이엄은 수송을 담당 기산에서 가사와 위평을 포위
북벌에 참가한것으로 보이는 촉나라 제장 
유염 위연 원침 오의 고상 오반 양의 등지 유파 비의 허윤 정함 유민 강유 상관옹 호제 염안 찬습 두의 두기 성발 번기

시기미상 제갈량이 기산을 포위하고 가비능을 부르자 가비능등이 북지의 석성에 이르러 호응

3월 조진사망 촉의 침공 소식이 전해짐 사마의와 장합을 파견 이후 지난해 겨울 10월부터 비가오지 않아 10일에 기우제를 지냄
위의 장수 비요 대릉 곽회 우금등 참전 

시기미상 사마의는 비요와 대릉에게 정병 4천명을 주어 상규현을 지키게함 장합은 군대를 나누어 옹과 미에 주둔시켜 후군을 삼기를 요청하나 거절됨 사마의와 장합은 유미로 진군

사마의는 유미로 진군 제갈량은 사마의가 출정한 소식을 듣고 기산의 포위를 유지하고 상규로 진군 사마의를 역격하려함
상규에서 곽회외 비요가 요격에 나서나 제갈량에게 패배 제갈량은 상규에서 보리를 수확
사마의는 제갈량이 영채를 만들고 방비를 굳게한뒤에 보리를 수확할것이라고 추측
사마의군 갑옷을 벗고 이틀간 급행하여 상규 동쪽에서 조우하나 먼지를 보고 제갈량은 물러남 

사마의는 제갈량이 위수를 점거하지 못하여 다루기 쉽다고 말하고 진군하여 한양에 주둔 
한양에서 제갈량과 사마의 조우하여 대치 사마의가 험한곳에 주둔하고 우금으로 경기병을 보내어 유인 
접전이 있으나 제갈량은 물러나 노성에 도착 뒤이어 사마의가 도착
농우에 식량이 없어 관중에서 군량을 수송이 의논됨 곽회가 오랑캐들에게서 곡식을 거두고 노역을 명해 식량을 충분하게함

제갈량은 노성에 주둔하며 남북으로 두산에 의지하여 물을 끊고 포위를 두텁게함 남쪽은 왕평이 담당함 
장합이 군을 나누어 기습군을 편성 제갈량의 배후를 노리는 것처럼 과시할것을 말하며 적군을 핍박하지 않는다면 군의 사기저하를 염려 사마의는 거절함 
사마의는 산에 영채를 두고 제갈량과 대치 가허와 위평이 여러차례 청하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다고 말함 
사마의가 한스럽게 여기고 제장들이 모두 싸울것을 요청함 

4월 선비족 부의왕 가비능이 부족사람과 정령대인 아선을 인손하여 유주에 와서 명마를 바침

5월 신사일 사마의 본인은 제갈량을 장합은 남쪽의 왕평을 공격 
왕평이 굳게 지켜 장합은 이기지 못함
제갈량 위연 고상 오반을 보내 사마의와 교전 결과 갑옷입은 병사의 수급 3천 철갑옷 5천벌 각노 3100개를 노획

6월 제갈량 군량이 부족하여 물러남 사마의는 장합의 반대에도 장합을 보내어 추격 장합이 전사하나 사로잡거나 죽인 촉군 1만 
시기미상 장마로 군량운송길이 막히자 이엄이 제갈량에게 퇴각을 권함 

7월 6일 조예가 공이 있는 자들에게 차등있게 작위를 봉하고 관직을 더함

삼국지의 후주전 제갈량전 이엄전 왕평전 명제기 장합전 곽회전 진서선제기를 종합하면 이러한 전개가 됩니다. 

이에 대하여 몇가지 이의를 제기할 수 도 있을겁니다. 그 중에서 핵심만 뽑아보자면 이럴겁니다.

첫째 제갈량이 먼지만 보고 물러났는가 
둘째 노성전투에서 이겼는데 무엇이 사실과 다르다고 하는 것인가?
셋째 선제기의 추격하여 만명을 사로잡거나 죽였다는 신빙성이 있는가? 

첫째의 경우 이는 제갈량이 물러날만 하여 물러난 것입니다. 제갈량의 본래 의도대로라면 대군이 오기전에 상규를 선점하고 
영채를 만들고 방비를 굳히고 보리를 수확하여 군량을 확보하고 위수를 장악하여 사마의의 군대를 유리한 상황에서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상규의 보리로 군량이 충족되고 방비가 굳어진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위수를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사마의가 빨리 도착하여 이를 이룰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갈량의 곽회 비요 격파와 이후 사마의가 소식을 듣는 시간을 고려하면 짦으면 2~3일 정도의 시간입니다. 이는 사마의가 소식을 듣고 대군으로 급행하여 도착에 이틀이 걸린것과 사마의의 대군과 달리 소식이 전해지는것은 이보다 짦고 곽회등이 제갈량이 도착하자마자 소식을 알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래와 같은 순차가 될 것입니다.
1일 
제갈량 상규 도착 곽회격파 후 영채건설 또는 대치 
곽회 사마의에게 소식전달 제갈량과 교전 또는 대치
사마의 소식을 듣고 출발 또는 아직 출발하지 않음
2일 
제갈량 영채건설 및 보리수확 또는 곽회격파 
곽회 제갈량에게 격파됨 
사마의 소식을 전달받고 진군 또는 상규도착 
3일 
제갈량 보리수확중
사마의 상규도착 

따라서 제갈량은 불리한 교전을 피하고 물러난 것입니다. 

제갈량이 불리한 이유는 상규는 보리밭이 있던 곳으로 상대적으로 기병전력에서 불리한 촉군에게는 유리한 지역이 아닙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래의 상황에 처합니다.
첫째로 사마의가 말한 대로 영채의 준비와 방비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거나 완전하지 않다는 점
둘째로 충분한 보리수확을 하지 못하였다는 점 
셋째로 사마의의 도착으로 위수를 장악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곽회등과의 교전으로 인한 군의 피로가 아직 풀리지 않아 새롭게 등장한 사마의의 군대를 대적하는데 불리할 수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는 일부병력을 기산포위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넷째의 경우 제갈량으로서는 사마의 군대가 급행하여 피로한지를 알 수 없고 사마의가 너무 빠르게 도착하여 피로가 풀렸다고 보기 힘듭니다. 혹 추측하더라도 제갈량측 역시 피로하다면 유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갈량이 보리를 수확했는가 아니면 사마의의 추측대로 전혀하지 못했는가 여부는 사마의는 추측은 한것일 뿐이며 
한진춘추에서는 대거 수확을 했다고 나옵니다. 또한 곽회전에 따르면 농우에 곡식이 없어 관중에서 수송하는 것을 의논되었고 
곽회는 강족과 오랑캐들에게 위엄과 은혜로 어루만져 집집마다 곡식을 내게 하고 공평하게 노역을 부담하게 하여 식량이 충분해지고 이로 인해 양무장군이 됩니다.

즉 상규의 보리가 군대의 수요를 충족시킬수 없었다는 입니다. 제갈량이 수확의 여부나 많고 적음을 가리기에는 기록이 부족하지만 수확을 했다는 전제하에서는 보리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고 수확시간이 촉박하여 얻은 양이 충분하지 못했을 겁니다. 

둘째 노성전투의 경우 한진춘추는 제갈량이 이겼다고 말하며 선제기는 그 포위를 공발했다고 합니다. 공발이란 성이나 보루따위를 함락한것을 말하는 것으로 포위한 보루들을 함락시켰다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제갈량이 밤중에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는 한진춘추에 상반됨은 물론이고 왕평전에는 장합이 왕평이 굳게지켜 왕평을 이기지 못했다고 나옵니다. 
남쪽 산의 촉군에 대한 장합의 공세는 실패했다는 것이됩니다.
그렇다면 북쪽산의 촉군에 대한 공세인 사마의의 공격이 무언가를 했다는 것이 되어야 하는데 한진춘추와 상반됩니다. 
그러나 정작 선제기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기록들 후주전 제갈량전 명제기등은 모두 제갈량이 군량이 부족하여 물러났다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제갈량이 군량이 부족하여 물러난것이 됩니다. 이는 상규에서 충분한 보리를 수확하지 못하였고 
장마로 인하여 이엄의 군량수송이 차질을 빚은 결과입니다. 다만 이엄의 건은 여러가지 일이 생기고 이상한점이 있지만 이는 넘어가고 사실만 놓고보자면 제갈량은 소위 말하는 노성의 전투후에 군량부족을 원인으로 물러납니다. 

그럼 선제기의 기산을 포위한 보루에 대한 함락은 거짓 또는 과장인가? 

지금까지 대체로 이에 대해서는 선제를 포장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던지 결과적으로 제갈량이 물러난것에 대하여 포장한것이라고 보고 자치통감 역시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경우 다른 부분에서 모순이 생깁니다. 

명제기와 선제기에 따르면 조예는 제갈량이 물러난후 군의 노고를 위로하고 봉읍을 늘려주며 공이 있는 자들에게 차등있게 작위를 봉하고 관직을 올려줍니다.

한진춘추로서 본다면 사마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고 곽회와 비요가 패전하고 이어 노성에서도 패전 특히나 사마의의 본대는 
3천명의 수급이 확인될 정도의 대패를 합니다. 그리고 끝내 제갈량은 군량 부족으로 물러났는데 곽회는 패전하였고 비록 군량수송에 공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누가 공이 있어서 작위를 받고 관직이 올라가고 왜 사마의의 봉읍이 올라갈까요? 

심지어 장합은 제갈량을 추격했다가 전사하며 위략에 따르면 장합이 반대했지만 사마의로 인해 부득이하게 출전했다가 전사한게 됩니다.

한진춘추만 가지고 본다면 상규패전 노성패전 목문패전으로 3차례나 패전합니다. 제갈량이 비록 인구나 영토를 획득하지 못했지만 장합을 죽였다는 성과를 가집니다. 이렇듯 모순되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또한 진서의 작성자체는 당나라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이런점에서 이엄의 일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엄전에 따르면 장마로 인하여 군량수송이 이어지지 못하였고 이엄은 이 사실을 휘하 장수 두명을 보내어 제갈량에게 알리고 
돌아올것을 말합니다. 

화양국지에 따르면 비가 온것이 5월이며 이 때 이엄은 조운이 이루어지지 못함을 두려워 하여 제갈량에게 군대의 위엄을 적에게 떨친 후 돌아올것을 서신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제갈량은 6월에 이를 따라 퇴각합니다. 

또한 군량수송에 있어 문제가 생길수 있음은 제갈량 또한 알고 우려하였고 화양국지에 따르면 이엄에게 상중하 계책이 있음을 말합니다. 

상책은 적의 후방의 길을 단절 시키는것 중책은 적과 지구전을 하는것 하책은 퇴각하여 돌아가는 것입니다. 
상책은 적극적으로 적에게 야전을 강요하는것이라면 중책은 심리적으로 야전을 강요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중책대로 끝내 사마의는 제장들의 요구로 야전에 나섭니다. 

또한 화양국지에 따르면 사마의 역시 군량이 다하였다고 하는데 다만 이는 그대로 볼 수 없습니다. 
곽회전에 따르면 곽회가 현지 강족등에게서 군량을 얻어 충분히 보급하였다고 하며 관중에서 수송하는 방안이 논의 되었었습니다.
즉 상규의 보리와 진중의 식량이 다할지라도 곽회의 현지 보급과 필요시 관중에서 수송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갈량은 장마로 인하여 군량수송이 이어질수 없자 중책을 사용할 수 없음으로 퇴각한 것입니다. 
처음 제갈량이 상규로 나아간것은 보리밭을 장악하고 중책을 사용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진춘추대로 라면 제갈량은 상규에서 이겼고 노성에서 승전하였으며 돌아올때는 장합을 참하였습니다. 

장마로 인하여 군량수송이 되지 않아 돌아왔지만 3차례나 이겼다고 할 수 있고 죽인 적 또한 많습니다. 

그런데 제갈량이 돌아오자 한 이엄의 행동은 이엄전의 말에 따른다면 정신병에 걸렸다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1. 거짓을 놀란체 하고 제갈량에게 군량이 충분한데 어찌하여 편하게 돌아왔냐고 꾸짖어 묻습니다. 이엄전에 따른다면 
이엄이 힘써일하지 않은 책임을 면하고자 제갈량이 나아가지 않은 허물을 뚜렷하게하려 했다고 합니다. 

2. 그리고 유선에게 표를 올려 아군이 퇴각한 것은 적을 유인하여 같이 싸우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3. 그러나 이엄의 행동은 제갈량이 전후의 수필편지를 공개함에 따라 이엄의 앞뒤가 모순된 글이 명백해 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모순점이 있습니다.

1. 이엄이 제갈량에 대하여 모략한것은 힘써 일하지 않은 책임을 피하고자 제갈량의 허물을 들어내려 했다고 하는데 수송의 일은 장마로 인한 것인데 갑자기 힘써일하지 않은 책임이 어디서 생긴것일까요

2. 제갈량이 나아가지 않은 허물을 들어낸다고 말하는데 면책을 위해 그리한다면 그러고는 다시 유선에게 표를 올려 거짓퇴각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제갈량의 허물을 들어내는것이 아니라 전략적 후퇴가 됩니다. 

3. 화양국지에 따르면 제갈량이 돌아오자 이엄은 견책당할 것을 두려워하고 근심합니다. 제갈량의 후퇴는 이엄의 보고와 권유에 제갈량이 승낙한것으로 양측이 합의한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이엄에게 책임이 돌아가거나 이엄이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물며 제갈량에게 서신으로 보낸 대로 제갈량이 수용하고 그것이 이루어집니다. 노성에서는 이겼고 돌아오면서 목문에서 장합을 죽였습니다. 

특히나 진창성에서 학소에게 막히고 군량이 부족하여 돌아올때 제갈량은 추격해온 왕쌍을 죽였고 이 당시 군량담당자가 처벌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되려 유선이 무도, 음평 2군을 장악한 일과 왕쌍을 참한것을 이유로 제갈량의 관직을 복귀시켜줍니다. 

그렇다면 4차북벌에서 3차례나 이겼고 이엄의 일은 장마라는 자연재해로 인한것인데 어째서 이엄은 두려워하고 유선에게 거짓으로 퇴각한 것이라고 한 것일까요? 

게다가 군량보급의 일은 이엄만이 책임자가 아닙니다. 장완전에 따른다면 장완은 227년부터 승상부에 일을 총괄하며 제갈량이 출전할 때마다 병사와 군량을 충분하게 공급하였고 제갈량에게 칭찬받습니다. 

그런데 이상한점이 있습니다. 한중에 병사와 식량을 충분히 공급하는 역할이었다면 1차에서 5차까지 익주내의 인력과 물자를 한중으로 보내는 일은 장완이 담당한 것이며 승상부의 일을 총괄하였으니 행정사무의 상황을 알 고 있을겁니다. 

이렇게 장완이 사정을 알고 있고 수송의 출납기록은 문서로 남을 것이고 이 문서는 한중에만 있는것이 아닙니다. 제갈량의 진중에서도 기록합니다. 대체 그렇다면 이엄이 무슨수로 유선을 속이고 제갈량과 북벌군 제장들을 속일수 있겠습니까? 

글이 너무 길어져서 축약하자면 이렇습니다. 

1. 장마로 인한 수송의 문제인데 이엄에게 책임이 있는가?
2. 제갈량과 합의한 퇴각인데 왜 견책을 두려워할까?
3. 이엄이 거짓말을 하고 제갈량을 모략하면서 까지 견책을 피해야할 상황이 아니었다 
4. 이엄은 유선과 제갈량 그 누구도 속일 방법이 없다. 

이렇게 된다면 사실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이엄이 군량수송을 담당했다. 
2. 목우와 조운으로 수송했다. 
3. 5월에 장마로 물이넘쳤다. 
4. 물이 넘쳐 조운이 힘들어졌고 장마로 인해 결국 수송을 이어 나갈 수 없게되었다.
5. 호충과 성번을 보내어 사실을 알리고 서신을 보내어 군대의 위엄을 떨친 후 돌아올것을 말했다.
6. 6월에 제갈량이 이에 따라 퇴각하여 돌아왔다.
7. 이엄이 군량이 충분한데 왜 돌아왔냐고 물었다.
8. 이엄이 유선에게 표를 올려 거짓퇴각이라고 보고하였다. 
9. 제갈량이 앞뒤의 이엄의 편지를 공개하였다.
10. 편지의 공개로 이엄이 사죄하고 결국 탄핵되어 평민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5월에 이엄이 사실을 보고하고 퇴각을 권할 때와 6월에 제갈량이 돌아왔을때의 상황이 무언가 다르다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5월에는 퇴각을 권유하던 사람이 6월에는 합의한대로 퇴각해 돌아오자 견책당할 것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1개월 사이에 무슨일이 벌어진것일까요? 

1. 이엄전의 내용대로 힘써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이엄과 제갈량간의 소통에 무언가 오해가 있었다.
3. 1개월 사이에 이엄이 북벌실패의 책임을 져야되는 상황으로 변화가 생겼다. 

1번의 경우 이엄전의 내용이지만 지금까지의 상황과 모순이 됩니다. 하물며 이엄이 진짜 힘써 일하지 않은것이 실제 군량수송 문제의 원인이라면 대체 왜 퇴각하라고 권유한 것일까요? 장마를 이유로 지체된다고 설명하던가 그것을 이유로 견책을 피할 수 있습니다. 제갈량이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을까요? 화양국지에 따르면 이엄이 독운령 잠술을 죽여 책임을 피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엄이 진정으로 힘써 일하지 않았다면 그 일을 잠술 한 사람을 죽인다고 숨겨지지는 않을겁니다. 하물며 상대는 제갈량입니다. 또한 장마의 발생과 보고는 5월의 일로 그럼 어찌하여 6월에 이르러 제갈량이 퇴각한다고 하자 그제서야 잠술을 죽이려 하였을까요?

2번의 경우 이엄이 퇴각을 권한것이 과장이나 수송문제에 대한 호소였는데 제갈량이 수송이 불가한 진실로 받아들여 퇴군하는 바람에 이엄이 두려워했다면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보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단순히 과장이 아니라 어떻게 할지를 이엄은 분명하게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또한 참군과 독군인 호충과 성번이 직접갔다는 것에서 단순히 과장이 아닌 제대로된 상황전달을 위한것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3번의 경우 이엄의 보고이후 북벌의 상황이 변하였고 그 결과 군량수송문제의 책임을 이엄이 지지않을 수 없게되었다는 것입니다. 한진춘추 대로라면 제갈량은 연전연승하였고 이엄이 권유한 대로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진춘추대로의 상황이 아니라면 경우가 달라집니다. 

한진춘추 대로라면 위연은 사마의를 격파하는데 공을 세웠습니다만 위연전에는 이에 대한 말이 없습니다. 또한 이후 위연이 승진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물론 위연전에 없다는 것이 반드시 한진춘추의 내용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조진의 군대가 기곡의 조운을 이긴것에 대해서는 조진전에 기록이 없고 제갈량전에는 노성에서 교전한 사실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또한 왕평이 장합을 막은것은왕평전에 있지만 장합전에는 없습니다. 또한 장합을 막았음에도 이것으로 인한 승진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장비전에는 장비가 장합을 이겼다고 나오지만 장합전에는 장비와 겨루었다고 말하며 패전했을 장합이 탕구장군에 임명됩니다. 

이러한 상반되는 점을 한가지만 보고 결정할 수 없을겁니다. 

다만 한진춘추와 왕평전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왕평전에 따르면 왕평은 나가지 않고 굳게지켰고 한진춘추에 따르면 제갈량은 군대를 보내어 위연 고상 오반에게 나가 싸우도록 합니다. 

즉 남쪽이 왕평군은 방어를 하였고 북쪽의 제갈량군은 맞서 나아가 싸웠습니다. 

왕평은 방어에 성공한것이 확실하고 제갈량의 교전은 한진춘추와 선제기가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선제기대로라면 사마의는 포위망을 무너트렸고 한진춘추대로라면 제갈량은 사마의의 군대를 대파한게 됩니다. 

이런 경우 쌍방모두 승리를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쌍방의 논공행상을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명제기의 차등에 따른 작위와 관직의 포상과 달리 위연전 왕평전등에서 공을 세우고도 포상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한진춘추대로라면 노성에서 승전한 촉은 아무도 포상받지 아니 하였고 되려 패전한 그것도 상규와 노성 게다가 목문에서는 장합까지 전사한 위나라는 작위를 봉하고 관직을 올려줍니다. 

촉에서 포상받지 못한 것이 이엄으로 인하여 북벌이 결국 실패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힘듭니다. 1차북벌에서 패전하여 제갈량과 조운이 강등을 하였지만 가정에서 군대를 수습한 왕평은 진급합니다. 

그렇다면 4차 역시 죄는 이엄에게 있고 공은 위연 고상 오반 왕평에게 있는데 이들에 대한 포상은 언급이 없습니다. 

하물며 명제기에 나오는 포상이야 더 말할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명확한 사실이 한가지 도출됩니다. 
한진춘추에서 말하는 사마의군대 대파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렇다면 반대로 사마의가 포위를 허물어트리고 제갈량은 밤중에 도망간것이 사실인가? 라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분법적 결과가 나오는것은 아닙니다. 

사서에 나오는 적어도 사실관계에 따른다면 이런 결과나 나옵니다. 

1. 상규전투 곽회, 비요 vs 제갈량 제갈량승 
2. 사마의와 제갈량 한양에서 대치 사마의 우금을 보내어 제갈량을 유인하나 제갈량은 되려 노성으로 물러남 
3. 사마의 노성에 도착하고 산에 의지함 제갈량 기산의 포위를 두텁게 하고 남북으로 진을 나눔 
4. 사마의 제장들의 요청으로 사마의는 북쪽의 제갈량을 장합은 남쪽의 왕평을 공격 
5. 왕평은 굳게 지키고 장합은 성과를 얻지 못함 제갈량 위연, 고상, 오반을 보냄 

여기서 다시금 상황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기산의 가사와 위평이 포위되어있고 이들은 단수되어있습니다. 
또한 포위는 수개월이 된것인데 이는 2월부터 포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교전의 결과 한진춘추대로의 수급과 군수품의 획득이 있었더라도 
사마의의 군대가 가사와 위평을 구출해 내거나 포위망이 한축을 뚫어 물자를 수송하여주거나 촉군 역시 상당한 피해를 입어 
포위망의 유지가 어려워진다면 선제기에서 말하는 바가 틀리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며 그렇다면 명제기의 기록과 맞아떨어집니다. 

즉 교전결과 사마의 역시 무언가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다시금 상기할 것이 있습니다. 화양국지에서 제갈량이 말한 상중하책입니다. 

상책은 적의 퇴로를 막는것이고 중책은 지구전을 하는 것입니다. 

상책은 아마 상규를 선점하고 위수를 장악하여 끝내는 수로를 장악하여 이를 통해 사마의의 퇴로를 차단하려던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만 결과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루어진 중책이 중요합니다. 중책의 지구전은 앞서도 말하였듯이 사마의와 제갈량이 군량대결을 벌이는것이 아니라 끝내 심리전으로 야전으로 끌어내는것입니다. 특히나 기산의 위나라군대가 포위되어 있음으로 이런점에서는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장합 역시 이러한 점을 알고 사마의에게 기습군을 편성하여 촉군이 우려하는 보급로 공격을 하는것 처럼 하여 촉군을 압박하고 아군측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아니라 적극적 모습을 띄어 불만을 저하시키고 사기를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의는 거절하였고 그 결과 모든 제장들의 요구로 야전에 뛰어들게 됩니다. 

제갈량의 중책이 먹혀들은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한진춘추를 따른다고 하여도 사마의군을 완파하지 못하였고 대치상태가 됩니다. 물론 이 경우 군량수송이 더이상 되지 않음에 따라 중책을 유지할 수 없으니 하책인 퇴각을 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앞서도 말하였듯이 이렇게 보기에는 명제기의 포상과 앞뒤가 안맞고 이엄의 일에 대한 설명과돠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한진춘추대로의 완승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한진춘추가 말하는 수급과 군수품의 획득이 정밀한지 여부는 검증하기 어렵고 
다만 촉측에서 승리라고 주장할 수 있는 교전성과를 거두었다면 위나라 역시 교전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선제기의 주장대로 포위를 무너트려 제갈량이 밤중에 도망가지는 않았겠지만 사마의와의 교전결과 
북쪽의 제갈량군 역시 나름의 손실과 전략 전술적 손상을 입었고 거기에 더이상 군량이 수송될수 없는 상황이 맞물려
중책을 유지할 수 없음으로 퇴각하게 되었고 이것이 5월의 이엄의 보고 이후 상황의 변화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북벌의 실패는 누구이 책임일까요? 노성에서 사마의를 제대로 격파하지 못한 제갈량의 책임일까요? 
죽어라 싸운 위연 고상 오반 왕평의 책임일까요?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면 실패한 결과에 대한것은 어떻게 될까요? 

이엄은 결국에는 군량수송을 하지 못하게된 자신이 책임지게 될 것을 두려워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나 5월과 6월의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5월까지는 상규에서 곽회를 격파하였고 기산을 포위하며 우세에 있었지만 6월에 이르면 교전결과 촉군은 만족할만한 승전을 거두지 못하였고 손실 역시 적지 않습니다. 또한 포위망 나름의 문제가 생겼다고 할 수 있을겁니다. 

이런 상황은 이엄이 말한 군대의 위엄을 떨친후 돌아온다와는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치열하게 싸웠지만 손실만 보고 대단한 성과는 없는 것이지요. 조금더 선제기를 중심으로 본다면 촉군의 손실은 상당히 있을 것이고 이것이 포위망에 타격을 가했을 겁니다. 

더 기다리며 한번더 야전에서 제대로 기회를 잡아 사마의를 격파하기에는 이엄이 보고한대로 군량의 문제가 있습니다. 

제갈량은 오기를 부리지 않고 돌아왔고 이 결과 이엄으로서는 난감해질수 밖에 없습니다. 분명 퇴각을 권했지만 이런식의 퇴각은 합의한것도 바란것도 아니지요. 

또한 이렇게 될 경우 북벌군이 중책을 유지할 수 없게된 이유는 군량에 있고 자연재해가 원인이더라도 이엄이 책임을 지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으로 이엄전에서 말하는 거짓으로 놀란체 하였다는 진정으로 이런 퇴각에 놀랐거나 사서에서 결과를 가지고 꾸미는 말이거나 자신을 변호하기 위하여 놀란척 하며 말하였을 수 있습니다. 

이후 유선에게 표를 올린 것은 어떻게든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하여 장합의 죽인것을 포장하기 위함일 겁니다. 

거짓퇴각으로 장합을 유인하여 죽였다. 이렇게 된다면 퇴각원인이 위나라군을 유인한것이 되고 실제로도 성과가 있으며 
군량수송의 문제로 퇴각한것이 아니게 되는것입니다. 물론 이는 황제를 기망하는것이고 사실도 아닙니다. 

결국 이엄의 일은 이렇게 된것입니다. 

또한 노성의 교전은 어느 한쪽의 말이 완전히 들어맞는것이 아니라 양측 모두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촉군은 중책을 유지할 수 없었고 위군은 포위망에 타격을 가하는데에 성공하였던 것입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추격하여 만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이 역시 선제기에 나오는 기록이며 추격을 한것은 장합입니다.

그러나 장합은 이 추격에서 촉군의 화살을 넓적다리에 맞아 사망합니다. 

특히나 위략은 장합이 반대하였지만 사마의가 강요하였고 언덕에 숨어 쏜 화살에 맞았다고 하여 촉의 매복에 장합의 추격군이 
패배한것으로들 봅니다. 

또한 죽이거나 사로잡은것이 1만명이나 된다면 촉군의 완전한 대패가 될 것이고 선제기에 따르면 4차북벌 직후 두습과 설제가 말하기를 내년 보리가 익으면 제갈량이 다시 침범할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마의는 군량을 비축할것이라고 봅니다.

이는 촉군이 대패를 당했다면 나올 수 없는말로 선제기에서 볼 수 있는 점입니다. 촉이 진정으로 대패하여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면 보리가 익자마자 기산으로 나아갈수는 없을겁니다. 

그럼으로 선제기에서 말하는 만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는 심한 과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예 거짓인가에 대해서는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습니다. 

장합이 결국에는 전사했지만 그것이 반드시 패전을 말하지는 않으며 선제기의 추격하여 성과를 거둔것이 거짓이라고 볼만한 다른 반대기록은 없습니다. 

또한 사마의는 장합에게 추격을 강요했는데 이는 사마의가 볼  때 추격하면 충분히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촉군은 교전으로 인한 피로와 퇴군이 사기저하 그리고 군량수송문제로 인한 군량문제를 겪고있었습니다. 

추격의 적기라고 판단할만 합니다. 물론 장합은 이에 대하여 반대하였고 제갈량은 이에 대비하여 결국 장합이 전사했습니다만은 

장합전에 따른다면 교전이 이루어졌고 단순히 매복으로 인하여 장합이 패했을것이다는 위략의 숨어있던 궁노에 맞은것에 따른 추측일 뿐입니다. 

선제기와 장합전을 합쳐서 보면 장합은 추격하여 제갈량군과 교전하였지만 언덕에 숨어서 쏘는 궁노수의 화살에 넓적다리를 맞았고 추격의 결과 선제기에서 말하는 정도의 만명을 죽이고 사로잡는 정도는 아니지만 추격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넓적다리에 화살을 맞은것으로 인하여 결국 사망합니다. 

그리고 이 결과는 장합의 전사라는 촉의 대전공이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추격군으로 인한 촉군의 손실 또한 상당하다는 점을 알 수 있는것이 장합을 전사시켰음에도 이에 대하여 어떠한 포상이나 언급이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본 글의 주장에 따라 본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2월 
제갈량 출병 기산포위 

3월 
사마의 출병 
사마의 곽회와 비요에게 정병 4천을 주어 상규에 주둔시킴 
장합 옹과 미에 후진을 둘것을 간언 사마의는 전군만으로 적을 상대할 수 없다고 거절 
사마의와 장합 유미현으로 진군 
제갈량 상규로 진군 곽회격파 
사마의 급행하여 상규도착 제갈량 물러남 
사마의 진군하여 한양주둔 제갈량과 대치 
사마의 우금을 보내 제갈량 유인하나 제갈량 노성으로 물러남 
사마의 뒤이어 노성 도착 
장합 사마의에게 군사를 나누어 기습군으로 삼아 촉군의 후방을 칠것처럼 하여 기산의 압박을 풀것을 간언 사마의 거절
제갈량 남북으로 나누어 산에 의지하여 기산의 포위를 강화하고 단수시킴 

5월 
장마로 군량수송의 문제 발생 이엄이 호충과 성번을 제갈량에게 보내어 소식전달 및 군세를 떨친후 퇴각권유 
사마의 군량이 떨어짐 
관중에서 농우로의 군량수송이 논의됨
곽회 강족과 오랑캐들을 위엄과 은혜로 위로하며 집집마다 곡식을 거두고 노역을 공평하게 하여 현지보급 군량충족됨
가허와 위평 그리고 위나라 모든 장수들이 촉군과 교전할 것을 요청 계속하여 요청
11일 장합은 남쪽의 왕평을 사마의는 북쪽의 제갈량을 공격 
왕평이 굳게 지켜 장합 성과를 거두지 못함 
제갈량 위연 고상 오반을 보내 사마의와 교전 
제갈량군은 갑사 최대 수급 3천급 철갑 5천벌 각노 3천백개 획득 사마의군은 기산 포위망에 타격을 가함 
양군 대치유지 

6월 
제갈량 퇴각결정
사마의 장합에게 추격명령 장합 퇴각군을 쫓지 말것을 간언 사마의 거절 
장합 추격하여 제갈량군과 교전 궁노수의 화살을 맞고 사망 추격결과 촉군을 죽이거나 사로잡는 성과를 거둠 

7월 
조예 공적이 있는자들에게 차등있게 작위를 봉하고 관직을 올려줌 


각 월의 일이 시기상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고 대체로 시기가 정확히 나오지 않음으로 알 수 없지만 
5월 11일에 양군이 교전한것은 달력프로그램으로 알아본 결과에 따릅니다. 다만 시대마다 달력이라는게 달라질수 있음으로 말해두자면 5월 신사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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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룡

2016.09.27
22:11:32
(*.216.73.171)
그럼 글쓴이분께서 주장하시는 이엄에 관한 건은 어떻게 됬다는 건가요?
5월과 6월의 상황이 달라서 이엄이 저렇게 거짓말을 했다 하셨는데,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계속 장마비가 쏟아져 식량 운반이 지속되지 못했으므로, 이평은 참군 호충과 독군 성번을 파견하여 그의 뜻을 설명하고 제갈양에게 후퇴하여 돌아오도록 하라고 했다. 이평은 군대가 후퇴했다는 소식을 듣고, 거짓으로 날란체 하며 말했다.

"군량미는 아직 충분하거늘, 어찌하여 돌아옵니까?"

이평은 이렇게 하여 자기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책임을 벗어나고 제갈양이 진군하지 않은 잘못을 분명하게 나타내려고 했다. -이엄전-

이렇듯 이엄전에는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계속 장마비가 쏟아져 식량 운반이 지속되지 못했다고 나오는데, 5월은 봄이고 6월은 이제 겨우 여름의 시작일 뿐입니다. 근데 5월과 6월의 상황이 달라졌었다??
그리고 제갈량에게 "군량미는 아직 충분하거늘, 어찌하여 돌아옵니까?"라는 말을 하였는데, 솔직하게 군량운반을 장마비로 인해 못하였다고 하여 퇴각했으면 퇴각 그 자체로서 끝날 일인데, 구지 이렇게 거짓으로 후주와 제갈량을 농락하며 거짓을 꾸며야 했을까요?? 상대가 제갈량인데라고 하셨는데 이런 거짓말을 하는 것 자체가 제갈량을 상대로 했다는 것에서 자체로서 이상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것에는 분명 이엄의 다른 뜻이 있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겉으로 보면 그럴 듯 하지만 포상에 관한 것도 1차때 왕평에게 포상한 것은 가정에서 실책만 한 다른 이들과 유독 그 행보를 달리하고 홀로 뒷수습을 하였기에 (그가 아니였으면 뿔뿔히 흩어진 가정의 남은 군사들이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므로) 마속, 장휴, 이성, 황습과 같은 인물들과는 차이가 나고 따로 차등을 두기 위해 포상한 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3차 때의 포상도 명백한 성과물(무도, 음평)이 있으므로 포상한 기록이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2차, 4차 때의 북벌에서는 정벌전에서 얻은 성과가 없으므로 왕쌍도 죽였고 장합도 죽였음에도 그 과정속에 교전에서 이겼다 하더라도 따로 제갈량이 이것을 포상하기에는 정벌전에서 얻은 성과물이 없기 때문에 각 장군들에게 포상을 하기가 애매합니다. 그리고 위나라의 포상은 촉군을 퇴각하게 한 것 만으로도 포상의 근거가 될 수 있으므로 포상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이렇듯 촉은 정벌전이고 위는 수비전이므로 서로 다른 입장차가 존재하는데, 포상의 유무가 글쓴이 분의 추론의 근거가 되기에는 어느정도 부족한 점도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유수

2016.09.29
18:04:11
(*.232.5.53)
본문을 정독해주시길 바랍니다. 여름부터 가을이란 대목부터 문제로 당연하게도 6월은 가을이 아닙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화양국지에 따르면 비가 온것이 5월부터라고 하였지요. 왜 거짓말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본문에 나오지요. 1개월 사이에 무슨일이 생겼는가를 세가지로 나누어 보았고 3번이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1차를 말씀하신다면 마찬가지의 이유로 이엄과 달리 공을 세운 이들에게 포상을 해주는것은 가능한 일이지요. 또한 2차때 성과가 없다고 하셨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갈량전에 따르면 유선은 2차때 왕쌍을 죽인것을 공로로 인정하여줍니다. 그럼으로 마찬가지로 한진춘추대로라면 3번 싸워 모두 이기고 장합까지 죽인것에 대하여서 공로에 포상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위군을 격파하고 위나라의 이름있는 장수 장합까지 죽였으니까요.

위나라의 포상이 수비전이기에 다르다 하셨는데 패배만 연속하다가 적이 물러났다면 이에 대하여 크게 포상할 이유는 없지요. 그러나 정작 기록은 위나라측은 작위 봉하고 관직을 올려주며 여러명을 포상합니다. 입장차가 있다고 하여 공로를 평가할 전황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복룡

2016.09.30
22:21:48
(*.216.73.171)
제가 쓴 댓글을 잘 이해 못하신거 같은데 여름부터 가을까지라고 진수가 직접 쓴 정사 본전에 나오는데 5월과 6월은 그 중에 속해 있어 1개월 사이에 상황이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입증할만한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가지로 나누어 보셨다는 건 무얼 말씀하시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1차때의 포상이유는 위에서도 이미 언급을 했고 제가 말하는 성과라는 것은 정벌전을 나가서 정벌로서 얻어낸 성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전투에서 이겼든 졌든 북벌의 목적은 상대의 땅 한 줌이라도 얻어내어 위를 멸하는 것인데, 군량의 문제로 계속 퇴각을 했으니 보여지는 성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3차때와는 그 상황이 달라 3차때는 포상을 하였으나 그 이외에는 포상을 안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전투에서 대체로 패배했든 이겼든지간에 적을 물러나게 한 것 만으로도 위나라의 목적은 달성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장원에서 거의 대치만하다 촉이 물러났음에도 사마의가 태위로 승진하고 봉읍을 더욱 늘려준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제 말은 나라의 존재이유가 멸위인 촉한으로서는 계속해서 북벌을 시도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아무리 교전에서 이겼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포상할 성과물이란 것(무도, 음평 점령과 같은 얻어낸 성과물)이 없이 그것들을 일일히 포상하며 자축할 여유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1차 때의 왕평 포상과는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지요.

유수

2016.09.30
22:57:57
(*.232.5.53)
본문 제대로 안보신게 맞네요. 흔히 알려지는 한진춘추대로의 전황과 다르게 촉나라는 승전만 한게 아니라 손실 역시 입었고 5월까지는 기산을 포위하고 상규에서 적을 압박하기도 하였지만 6월의 노성전투는 한진춘추대로의 일방적인 촉의 승전이 아니라 전황이 달라졌다고 본문에 나와있지요. 근거가 없다고요? 진서 선제기를 몇번을 언급했는데 근거가 없다는 말을 하십니까?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분명 제갈량전에 왕쌍의 참수가 공로로 인정받았고 말하였고 땅을 얻지 못하였음에도 1차 북벌에서 왕평같은 이는 포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공로가 별로라서 포상하지 않았다는 본문의 주된 내용인데 왜 혼자 모순되는 말씀을 하십니까? 본문은 한진춘추와 달리 촉군은 그리 만족할만한 승전을 거두지 못했다입니다.

적을 물러나게 하기만 한걸로 목적은 달성이지만 연전연패하고 무리하게 추격했다가 고위급 장군이 전사하였다면 작위를 봉하고 봉읍을 늘려주고 관직을 올려줄 필요는 없지요. 되려 제대로 막지 못하고 전략실책으로 책임을 추궁받는게 정상이지요. 오장원이요? 오장원에서 사마의가 손실을 입은게 있습니까? 되려 오나라가 북벌하여 침공한 상황에서 한정된 지원으로 제갈량을 막아내었으니 4차북벌과는 상황이 다르지요. 게다가 곽회의 활약으로 북원에서 제갈량의 공세를 막아냅니다.

자축할 여유가 없다는건 님만의 상상이고요. 정작 제갈량전에서는 왕쌍 죽였다고 공로로 인정해줍니다. 1차때랑 다를게 뭐가 있습니까? 군량문제로 퇴각했지만 전투에서 공적이 있다면 포상하는건 당연한것이고 다만 현실은 전투에서 그리 괄목할 성과가 아니라 포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란게 본문입니다.

복룡

2016.09.30
23:23:55
(*.216.73.171)
제가 말하는 근거란 5월과 6월사이에 이엄이 처한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근거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전황 자체를 두고 근거가 없다고 한 것은 아니구요.
제갈량전의 왕쌍 참수가 공로로 인정받은 것은 사실이나 2차이후 바로 포상을 받지 않았습니다. 무도와 음평을 점령한 뒤의 확실한 성과가 있는 3차북벌 이후에 내려진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요지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차건은 이미 위의 댓글로서 답변이 충분한 것 같구요.

한진춘추대로 위군이 연전연패만 한 것은 아니고 만족할만한 승전을 거두진 못했을지언정 공로가 별로라서 포상하지 않았다는 것은 단정지을 수 없다고 봅니다. 물론 얻어낸 결과물이 없으니 유수님 말씀대로 만족할만한 승전을 거두지 못한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대로 정벌전의 목적달성엔 실패했으니 그래서 포상을 내려주면서 자축할 여유가 촉의 입장에선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오장원 건에서 그렇다고 제갈량의 북원공략외에 사마의가 전쟁에서 이겨서 촉을 패퇴시킨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려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자축할 여유가 없다는 것은 저만의 상상이라고요? 1차때랑 다를게 뭐가 있냐니요. 1차때의 퇴각이 군량문제였습니까? 맞지 않는 비유를 드시면서 제 의견을 저만의 상상으로 치부하시는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

유수

2016.09.30
23:35:50
(*.232.5.53)
5월에는 기산을 포위하고 위나라에 압박을 가하고 있었지만 6월에는 노성전투와 같은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전황의 변화에서 이엄이 처한 상황이 변했다는 겁니다. 촉나라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제갈량의 중책이 실패하였는데 이는 결국 군량문제 때문이니 이엄으로서는 위엄을 떨치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책임이 전과될것을 두려워 했다는 겁니다.

1차건은 위의 댓글로는 전혀 답변이 되지 못하지요. 마속이 잘못해서 북벌실패했지만 공로를 세운 왕평은 포상했고 군량문제로 퇴각을 했지만 공로가 세운자가 있다면 포상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어떻게 답변이 됩니까?

왕쌍의 참수가 결국 제갈량의 승상복귀의 공로중 하나로 유선이 인정하는데 바로 포상을 받지 않았다가 어떠한 상관이 있습니까? 촉이 자축의 여유가 없었다고 하는건 별다른 근거없는 발언이실 뿐이지요. 그말대로라면 촉은 무도음평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성과가 없는데 무장들은 그럼 모두다 승진할 이유가 없겠군요.

촉을 패퇴시키지는 않았지만 연패하지는 않았지요. 잘못이해하고 계시는데 위나라가 연전연패하지 않았고 나름 성과가 있기에 이러한 포상이 이루어졌다라는게 본문의 내용입니다. 연전연패하고 장합까지 일방적으로 죽었는데 작위를 봉하고 봉읍을 늘려주지는 않지요. 되려 책임자가 문책당하면 모를까요. 대체 이건에 대해서는 일부러 평가절하 하고 싶으신듯 합니다.

1차때는 패전했음에도 왕평이 포상받았는데 4차는 자연재해로 인한 군량문제였지요. 그럼 패전을 하여 제갈량이 스스로를 우장군으로 깍아버린 상황에서도 공로를 세운 사람이 있다면 포상받는게 당연한데 4차는 아무도 포상기록이 없음을 말한것인데 영토획득이 없음으로 포상이 없는건 당연하다를 받아들일만 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복룡

2016.10.01
00:09:24
(*.216.73.171)
아무리 그것이 군량이 이어지지 않은 것 때문에 위엄을 떨치지 못한 상황일지라도 자연재해로 인한 보급문제가 있었기에 그랬다면 그 책임이 전부 이엄에게 전과 된다고 보시는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중략)이평은 힘껏 변명하고 죄를 자백하고 사죄했다." -정사 이엄전-
보시는 바와 같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나중에 모두 고백했는데 제갈량은 그럼 그깟 책임회피 문제만을 문제 삼아 이엄을 서민으로 추락시켰을까요?

"..(중략)이평은 사마의 등이 관서를 설치하여 자신을 초청했다고 말했습니다. 신은 이평의 계산으로 출병한 기회를 틈타 신을 핍박하여 자신에게 이익을 얻도록 하려고 했음을 알았습니다..." -정사 이엄전-
이엄의 어떠한 계산이 있었음이 분명함을 제갈량이 상주한 것에 나타나 있는데 이엄이 고작 자신에게 책임이 전과될 것만을 우려해 그러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차때 왕평에게 포상한 것은 가정에서 실책만 한 다른 이들과 유독 그 행보를 달리하고 홀로 뒷수습을 하였기에 (그가 아니였으면 뿔뿔히 흩어진 가정의 남은 군사들이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므로) 마속, 장휴, 이성, 황습과 같은 인물들과는 차이가 나고 따로 차등을 두기 위해 포상한 점도 있었을 것입니다."
라고 이미 위의 댓글에서 언급했습니다. 왕평이 받은 포상은 완전한 패퇴가 되버린 가정싸움에서 나홀로 공을 세웠으므로 다른 모든 이가 강등을 면치 못하는 와중에 그것을 높이 드러내려는 제갈량의 숨은 의도가 있었을 것이란 말입니다.

1차때의 상황은 이러해서 포상한 것이므로 이미 언급을 하였고, 2차와 4차 때는 전투에선 이겼을지언정 목표로 삼은 성과물이 없으니 포상하며 자축할 여유가 없어서 그러하지 못했다고 저도 제갈량의 의도를 추론한 것입니다. 벌어진 교전에서 이겼어도 끝내 성과를 못 내었다면 어떻게 보면 이것은 이기나 마나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단순히 영토획득이 없기 때문에 포상이 없는게 당연하다고 언급한 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제갈량이 이끄는 촉의 입장에선 적을 조금 갉아 먹긴 했으나 계속해서 정벌전을 하려면 또 다시 계속해서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선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추론을 하는 것이지 단순히 전공의 유무로 포상이 내려질 것이라는 확정적인 가정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지금 유수님께서 주장하시는 것은 전공만 세우면 모두 다 승진할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라는 말이나 다름 없는 것인가요? 그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찌 제 의견을 그렇게 종이짝 밟듯이 얘기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위나라가 연전연패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글의 세부적인 추론과정에서 정확성을 추구하고자 근거로 든 예시들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일 뿐이니 오해하지는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수

2016.10.01
00:30:44
(*.232.5.53)
앞뒤가 맞지 않을게 무엇이 있습니까 결국 군량문제로 인해 퇴각한것은 사실임으로 이에 대하여 자신이 책임질거을 우려했음은 이엄전에 나오는 바이고 보셨을 것이니 더 말할필요가 없고 책임회피를 위해 황제에게 거짓말을 하였으니 그것만으로도 중죄입니다. 이엄이 추가적으로 어떠한 계산 제갈량의 모해나 자신의 명성이나 권위의 상승을 꽤하였을 가능성에 대하여서는 이전의 덧글에서 해석의 문제임으로 그것은 이렇다저렇다 말할게 없다고 하였습니다.

책임회피와 동시에 그렇나 노림수를 가졌을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는 것이지요. 숨은 의도가 있다는것 자체는 그럴듯하지만 패전한 상황에서도 공로가 있는자는 포상을 받는데 자연재해로 인하여 물러난 상황에서 공로가 있는자는 아무런 포상이 없다는건 말이 안되지요. 4차의 성과물 운운하시면 자기 논리에 모순이라는걸 모르시는듯 합니다.

적을 침공해야 하는 입장에서 여유가 없을 것이다라는 구체적인 발언은 있지도 않으셨고 관직이나 봉읍등의 방법으로 포상가능하며 촉은 일정 포상도 못할 정도로 빈궁한 국가는 아닙니다. 전공의 유무로 포상하는게 단순하다고 하신다면 황당할 뿐입니다. 전공 세우면 기본적으로 포상이 이루어진다는 당연한 것이 이지요. 그리고 역시나 본문은 제대로 읽지도 않으셨음이 다시 드러나고 있는데 촉이 한진춘추대로 연승하였고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면 포상을 받는것이 당연하지만 그러한 일은 없었다 이는 촉의 성과가 그리 대단하지 않다라는 겁니다.

촉이 대승을 거두고 연승만하였다면 북벌이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포상을 받는게 당연하다 그러나 선제기를 보면 그렇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라는 내용의 본문을 가지고 여유가 없다 4차 북벌은 성과가 없었다 1차랑 다르다라는 말만 하면 아무런 설득력이 없지요.

즉 본문은 촉은 성과를 내지 못하여 포상을 받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럼 대체 뭘 반론하려고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촉이 성과를 거뒀다면 4차북벌이 성공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전공을 세운이들에게 포상이 이루어진다라는 당연한 것을 말한 겁니다. 죽도록 싸워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결국 퇴각해야 되는 상황이었다면 대승을 거둔 이들에게 포상이 있는것 자체는 가능한겁니다.

단순히 영토획득이 없으니 포상이 없다고 언급한적 없다고 하셨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만?
그리고 1차때의 포상이유는 위에서도 이미 언급을 했고 제가 말하는 성과라는 것은 정벌전을 나가서 정벌로서 얻어낸 성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전투에서 이겼든 졌든 북벌의 목적은 상대의 땅 한 줌이라도 얻어내어 위를 멸하는 것인데,

이렇게 말하신게 누구입니까?

자신의 의견을 종이짝 밟듯이 이야기 한다고 하시는데 왜 제 본문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말하시는지 저야말로 모르겠습니다.

유수

2016.10.01
00:33:47
(*.232.5.53)
제목 제갈량의 4차북벌 한진춘추만이 맞을까?
내용일부 요약

한진춘추대로 연전연승과 대승을 거두었다면 포상이 있어야 겠지만 그런 포상은 없었고 되려 위나라측은 상당한 포상을 하였다. 선제기라고 하여 부정만 할 수는 없고 이러한 내용들에서 볼 때 4차북벌은 한진춘추대로만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없다.

이런 내용인데 이에 대하여 촉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니 포상이 없는게 당연하다 그러니까 포상은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한다면 대체 무슨 논리입니까? 촉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해 포상이 없다는 내용의 본문을 대상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니까 포상이 없는것이다 그러니 근거가 부족하다고 한다면 말이 됩니까?

복룡

2016.10.01
00:55:32
(*.216.73.171)
"즉 본문은 촉은 성과를 내지 못하여 포상을 받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럼 대체 뭘 반론하려고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촉이 성과를 거뒀다면 4차북벌이 성공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전공을 세운이들에게 포상이 이루어진다라는 당연한 것을 말한 겁니다."
라고 방금 댓글에서 말씀 하셨는데 그럼 한진춘추의 기록들 자체를 부정하시는 것인지요?
촉나라 인물들은 아무런 포상을 받지 못했으니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 말은 곧 위나라는 포상이 있어서 성과가 있고 촉은 포상이 없으므로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이니 곧, 선제기라고 하여 부정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선제기만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라는 말이 되는데 자기 모순에 빠지는 것은 유수님 본인인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제가 말하는 성과라는 것은 정벌전을 나가서 정벌로서 얻어낸 성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전투에서 이겼든 졌든 북벌의 목적은 상대의 땅 한 줌이라도 얻어내어 위를 멸하는 것인데," 라고 첨부해주신 댓글예시에 정벌전이라고 분명히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에 대한 정벌전으로서의 추론의 근거들은 위의 댓글 중에 이미 언급을 하였구요.
부분부분만을 떼어서 그것이 마치 제 의견의 전체인양 싸그리 잡아서 비판하실 것이라면 더 이상의 토론은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미 제가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은 위의 댓글에 모두 나와 있으니 더 이상의 댓글은 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소중한 시간 내어주셔서 토론에 임해주신 점 감사히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하루하루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라며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유수

2016.10.01
01:12:18
(*.232.5.53)
결국 일부러 억지부리고 말이 안되는걸 느끼시고는 도주하시는군요. 도주하시겠다는데 말릴필요는 없지요. 하여간 신경써서 덧글달면 의미가 없어요. 다만 후에 보는 사람들이 이해를 못할터이니 덧글은 답니다.

한진춘추대로의 일방적인 촉나라가 성과를 거두었다면 촉나라에서 포상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런 기록은 없고 일방적으로 패배한 위나라는 되려 포상기록이 있는데 이런점에서 한진춘추대로 일방적인 촉나라의 승리가 아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동시에 선제기의 만명 참수나 공격해서 무너트리니까 제갈량이 도주했다는 과장이라고 분명이 적시되어 있지요.

복룡님 스스로 성과를 내지 못했으니가 포상이 없다고 하시기에 본문은 그런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하여 포상받지 못했다를 강조해서 말한것을 가지고 한진춘추를 부정한다는 말을 하면 하여간 억지를 매우 부리고 싶으셨나 봅니다. 해당 내용 위에 대단한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라는 내용은 무시하고 싶으셨는지 눈을 감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요.

하여간 본문을 정독해달라고 몇번을 말해도 일부러 안들어버리겠시겠다는데 어쩔수가 없지요. 어디에도 선제기만을 따라야 한다는 말은 전혀 없는데 빼액하시면 황당할 뿐이고요. 촉나라측에 대한 평가에 있어 본문에서 포상만 가지고 말한것도 아닌데 포상만 가지고 붙들도 늘어지신걸 보면 대체 왜그러는지 이해가 안갈 뿐이지요.

스스로 북벌에서 성과가 없어서 전공 포상이 없다라고 몇번이나 말하시고 자신이 말하는 성과가 영토 획득 즉 북벌의 성공임을 누누이 말하신 분이 누구신지 모르겠습니다. 1차 북벌도 정벌전이고 정벌이 되었던 뭐가 되었든 괄목한 공적이 있다면 포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전혀 이상할바 없지요.

하여간 결론은 본문은 제대로 안보면서 이런 덧글 다시는게 신기할 뿐입니다.

복룡

2016.10.01
01:37:51
(*.216.73.171)
어떤 때는 댓글의 부분만을 떼어서 비판하시고 어떤 때는 본문의 부분만을 떼어서 비판하거나 요지만 떼어서 비판하시니 요리조리 피하면서 눈 감으시는건 유수님 본인이신 듯 합니다.

저는 유수님께서 추론하신 근거의 핵심인 이엄의 건과 포상유무의 건에 포커스를 맞추어서 의문을 제기했는데, 본문을 정독하라고 그렇게 얘기하시면서 제가 달았던 댓글들은 아예 안보셨나 보군요. 눈가리고 아웅하면 될 일인줄 아시니 참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본인이 달았던 댓글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면서 꼼꼼히 체크해 보시기 바랍니다.

유수

2016.10.01
01:52:40
(*.232.5.53)
아무리봐도 본문안보고 말씀하시는게 눈에 보일뿐입니다. 한진춘추대로라면 대단한 전공으로 포상이 이루어질만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포상은 없었고 반면 위나라측은 상당한 포상이 이루어졌는데 이점에서 볼 때 촉나라측은 한진춘추대로의 성과를 거두었다 볼 수는 없다 라는 내용에 대하여 정벌전임으로 정벌전으로서의 성과가 없어서 포상을 하지 않았다라고 하는게 누구십니까? 그러면서 또 1차는 특별하다라는 말을 하시지요. 이미 이전의 제가 이해하는 대로라면의 내용의 덧글에서 님의 문제를 명확하게 지적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유수

2016.10.01
00:59:05
(*.232.5.53)
님의 말씀하시는 바를 제가 제대로 이해한게 맞다면 특별히 전공 세운 경우에는 포상이 있겠지만 예를 들어 1차 북벌의 왕평이지요. 그러나 북벌이 성공하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전공에 반드시 포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인 것인데 지금 말하는 대상인 본문은 4차북벌의 한진춘추대로의 전황으로 성과를 거두었다면 포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즉 특별한 전공 3연승과 그 중에서 성과가 괄목한 노성전투 그리고 장합의 사살과 같은 성과는 특별한 전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노성전투와 장합사살은 특별한 전공이지요. 그런데 이에 대하여 포상이 없는 것은 촉나라측에서도 손실이 있고 특별한 전공으로 볼 수 없다는 겁니다.

즉 님이 말하는 특별한 사례가 한진춘추 기준으로는 4차북벌에서 이루어졌음으로 포상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그러한 대단한 성과를 거두지 않았다는게 본문입니다. 이걸 지금 몇차례 말하고 있고 이미 본문에서 말한 내용인데 제발 본문을 정독하기 바랍니다.

복룡

2016.10.01
01:06:18
(*.216.73.171)
네, 근데 저는 그 포상의 유무만을 가지고 계속해서 정벌전을 강행해야 하는 제갈량의 촉나라가 포상할 건덕지도 없는 대단한 성과를 거두지는 않았다고만은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장합의 사살같은 전공은 아무리 손실이 있었다 한들 적장을 죽였다는 것은 적도 그마만큼 손실을 입었다는 것인데, 이것을 포상을 안했다 하여 포상을 내릴만한 전공이 없다고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습니까. 정사 본전의 간략한 기록들만 봐도 그렇게 단정적으로 포상의 유무로서 유추해낼 수 있는 간단한 것은 아니라고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렇게도 잘 이해하고 계시면서 위의 댓글들에선 유수님께서 제 의견을 좀 오해하고 계셨던 듯 합니다.

이만 소모적인 논쟁은 여기까지 하시고 각자의 추론을 존중하며 마쳤으면 좋겠습니다.

유수

2016.10.01
01:16:42
(*.232.5.53)
본문 어디에도 촉나라는 아무 성과도 없이 손실만 입었다는 내용은 한줄도 없습니다. 전공이 없었다는 내용도 없지요. 혼자서 상상하여 단정하여 반론하는 짓을 하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봤자 기가찰 뿐입낟. 소모적 논쟁이 이루어진것은 순전히 님께서 본문을 정독하지 않았기에 생긴일이지요. 앞으로 덧글을 다실때는 최소한 타인의 게시물을 정독한 후에 다시기 바랍니다.

복룡

2016.10.01
01:29:35
(*.216.73.171)
바로 위의 댓글에선 제 댓글을 어느정도 이해하셨던 듯한데 제 댓글을 모두 읽어보시고 하시는 소리신지 심히 의심스럽군요.
기가 차고 순전히 본문을 정독하지 않았기에 생긴 일이라고 제 추론 자체를 무시하시니 기가 찬다는 말은 적반하장이 따로 없군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댓글 하나 더 달고 갑니다.
그 차는 기 많이 채우셔서 귀하의 인생에서 부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어 보시길 바랍니다.(이미 이루셨다면 죄송합니다.)
허허~ 거하게 한 번 웃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유수

2016.10.01
01:48:20
(*.232.5.53)
하여간 남의 인생 운운하는걸 보면 수준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본문 어디에도 촉나라가 전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어느 한구절이라도 촉은 전공이 없다라고 본문에 나와있으면 긁어와보기 바랍니다. 추론자체가 본문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말하는것인데 무시당한다고 기분나쁘다면 제가 할 말이지요. 5월에 쓴글을 9월에 본문도 제대로 안읽고 말하시는 분이 무시당했다고 하는걸 보면 참 기이합니다.

제대로 읽었는지 의문스러운 본문 내용 일부

한진춘추로서 본다면 사마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고 곽회와 비요가 패전하고 이어 노성에서도 패전 특히나 사마의의 본대는
3천명의 수급이 확인될 정도의 대패를 합니다. 그리고 끝내 제갈량은 군량 부족으로 물러났는데 곽회는 패전하였고 비록 군량수송에 공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누가 공이 있어서 작위를 받고 관직이 올라가고 왜 사마의의 봉읍이 올라갈까요?

심지어 장합은 제갈량을 추격했다가 전사하며 위략에 따르면 장합이 반대했지만 사마의로 인해 부득이하게 출전했다가 전사한게 됩니다.

한진춘추만 가지고 본다면 상규패전 노성패전 목문패전으로 3차례나 패전합니다. 제갈량이 비록 인구나 영토를 획득하지 못했지만 장합을 죽였다는 성과를 가집니다. 이렇듯 모순되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화양국지에 따르면 비가 온것이 5월이며 이 때 이엄은 조운이 이루어지지 못함을 두려워 하여 제갈량에게 군대의 위엄을 적에게 떨친 후 돌아올것을 서신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제갈량은 6월에 이를 따라 퇴각합니다.

또한 군량수송에 있어 문제가 생길수 있음은 제갈량 또한 알고 우려하였고 화양국지에 따르면 이엄에게 상중하 계책이 있음을 말합니다.

상책은 적의 후방의 길을 단절 시키는것 중책은 적과 지구전을 하는것 하책은 퇴각하여 돌아가는 것입니다.
상책은 적극적으로 적에게 야전을 강요하는것이라면 중책은 심리적으로 야전을 강요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중책대로 끝내 사마의는 제장들의 요구로 야전에 나섭니다.


한진춘추 대로라면 위연은 사마의를 격파하는데 공을 세웠습니다만 위연전에는 이에 대한 말이 없습니다. 또한 이후 위연이 승진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물론 위연전에 없다는 것이 반드시 한진춘추의 내용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조진의 군대가 기곡의 조운을 이긴것에 대해서는 조진전에 기록이 없고 제갈량전에는 노성에서 교전한 사실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또한 왕평이 장합을 막은것은왕평전에 있지만 장합전에는 없습니다. 또한 장합을 막았음에도 이것으로 인한 승진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장비전에는 장비가 장합을 이겼다고 나오지만 장합전에는 장비와 겨루었다고 말하며 패전했을 장합이 탕구장군에 임명됩니다.

이러한 상반되는 점을 한가지만 보고 결정할 수 없을겁니다.

다만 한진춘추와 왕평전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왕평전에 따르면 왕평은 나가지 않고 굳게지켰고 한진춘추에 따르면 제갈량은 군대를 보내어 위연 고상 오반에게 나가 싸우도록 합니다.

즉 남쪽이 왕평군은 방어를 하였고 북쪽의 제갈량군은 맞서 나아가 싸웠습니다.

왕평은 방어에 성공한것이 확실하고 제갈량의 교전은 한진춘추와 선제기가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선제기대로라면 사마의는 포위망을 무너트렸고 한진춘추대로라면 제갈량은 사마의의 군대를 대파한게 됩니다.

이런 경우 쌍방모두 승리를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명확한 사실이 한가지 도출됩니다.
한진춘추에서 말하는 사마의군대 대파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렇다면 반대로 사마의가 포위를 허물어트리고 제갈량은 밤중에 도망간것이 사실인가? 라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분법적 결과가 나오는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교전의 결과 한진춘추대로의 수급과 군수품의 획득이 있었더라도
사마의의 군대가 가사와 위평을 구출해 내거나 포위망이 한축을 뚫어 물자를 수송하여주거나 촉군 역시 상당한 피해를 입어
포위망의 유지가 어려워진다면 선제기에서 말하는 바가 틀리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며 그렇다면 명제기의 기록과 맞아떨어집니다.

즉 교전결과 사마의 역시 무언가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제갈량의 중책이 먹혀들은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한진춘추를 따른다고 하여도 사마의군을 완파하지 못하였고 대치상태가 됩니다. 물론 이 경우 군량수송이 더이상 되지 않음에 따라 중책을 유지할 수 없으니 하책인 퇴각을 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앞서도 말하였듯이 이렇게 보기에는 명제기의 포상과 앞뒤가 안맞고 이엄의 일에 대한 설명과돠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한진춘추대로의 완승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한진춘추가 말하는 수급과 군수품의 획득이 정밀한지 여부는 검증하기 어렵고
다만 촉측에서 승리라고 주장할 수 있는 교전성과를 거두었다면 위나라 역시 교전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선제기의 주장대로 포위를 무너트려 제갈량이 밤중에 도망가지는 않았겠지만 사마의와의 교전결과
북쪽의 제갈량군 역시 나름의 손실과 전략 전술적 손상을 입었고 거기에 더이상 군량이 수송될수 없는 상황이 맞물려
중책을 유지할 수 없음으로 퇴각하게 되었고 이것이 5월의 이엄의 보고 이후 상황의 변화입니다.

5월까지는 상규에서 곽회를 격파하였고 기산을 포위하며 우세에 있었지만 6월에 이르면 교전결과 촉군은 만족할만한 승전을 거두지 못하였고 손실 역시 적지 않습니다. 또한 포위망 나름의 문제가 생겼다고 할 수 있을겁니다.

이런 상황은 이엄이 말한 군대의 위엄을 떨친후 돌아온다와는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치열하게 싸웠지만 손실만 보고 대단한 성과는 없는 것이지요. 조금더 선제기를 중심으로 본다면 촉군의 손실은 상당히 있을 것이고 이것이 포위망에 타격을 가했을 겁니다.

더 기다리며 한번더 야전에서 제대로 기회를 잡아 사마의를 격파하기에는 이엄이 보고한대로 군량의 문제가 있습니다.

제갈량은 오기를 부리지 않고 돌아왔고 이 결과 이엄으로서는 난감해질수 밖에 없습니다. 분명 퇴각을 권했지만 이런식의 퇴각은 합의한것도 바란것도 아니지요.

또한 이렇게 될 경우 북벌군이 중책을 유지할 수 없게된 이유는 군량에 있고 자연재해가 원인이더라도 이엄이 책임을 지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노성의 교전은 어느 한쪽의 말이 완전히 들어맞는것이 아니라 양측 모두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촉군은 중책을 유지할 수 없었고 위군은 포위망에 타격을 가하는데에 성공하였던 것입니다.

특히나 위략은 장합이 반대하였지만 사마의가 강요하였고 언덕에 숨어 쏜 화살에 맞았다고 하여 촉의 매복에 장합의 추격군이
패배한것으로들 봅니다.

또한 죽이거나 사로잡은것이 1만명이나 된다면 촉군의 완전한 대패가 될 것이고 선제기에 따르면 4차북벌 직후 두습과 설제가 말하기를 내년 보리가 익으면 제갈량이 다시 침범할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마의는 군량을 비축할것이라고 봅니다.

이는 촉군이 대패를 당했다면 나올 수 없는말로 선제기에서 볼 수 있는 점입니다. 촉이 진정으로 대패하여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면 보리가 익자마자 기산으로 나아갈수는 없을겁니다.

그럼으로 선제기에서 말하는 만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는 심한 과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장합이 결국에는 전사했지만 그것이 반드시 패전을 말하지는 않으며 선제기의 추격하여 성과를 거둔것이 거짓이라고 볼만한 다른 반대기록은 없습니다.

또한 사마의는 장합에게 추격을 강요했는데 이는 사마의가 볼 때 추격하면 충분히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촉군은 교전으로 인한 피로와 퇴군이 사기저하 그리고 군량수송문제로 인한 군량문제를 겪고있었습니다.

추격의 적기라고 판단할만 합니다. 물론 장합은 이에 대하여 반대하였고 제갈량은 이에 대비하여 결국 장합이 전사했습니다만은

장합전에 따른다면 교전이 이루어졌고 단순히 매복으로 인하여 장합이 패했을것이다는 위략의 숨어있던 궁노에 맞은것에 따른 추측일 뿐입니다.

선제기와 장합전을 합쳐서 보면 장합은 추격하여 제갈량군과 교전하였지만 언덕에 숨어서 쏘는 궁노수의 화살에 넓적다리를 맞았고 추격의 결과 선제기에서 말하는 정도의 만명을 죽이고 사로잡는 정도는 아니지만 추격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넓적다리에 화살을 맞은것으로 인하여 결국 사망합니다.

그리고 이 결과는 장합의 전사라는 촉의 대전공이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추격군으로 인한 촉군의 손실 또한 상당하다는 점을 알 수 있는것이 장합을 전사시켰음에도 이에 대하여 어떠한 포상이나 언급이 없습니다.

유수

2016.09.29
18:34:21
(*.232.5.53)
이엄이 제갈량을 상대로 다른뜻이 있었는가는 보기에 따라 다른 해석의 문제로 제가 이렇다 저렇다 말할 필요는 없을듯 합니다. 다만, 본문은 화양국지에 따른 제갈량과 이엄이 본래 약속한 위엄을 떨치고 돌아온다가 성립되지 않아 이엄이 결과적으로 군량부족으로 전쟁을 지속하지 못하게 되었기에 이를 견책당할것을 우려하여 거짓말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복룡

2016.09.30
22:24:59
(*.216.73.171)
"이엄이 결과적으로 군량부족으로 전쟁을 지속하지 못하게 되어서 이를 견책당할 것을 우려해 거짓말을 하였다."
이것은 명백한 자연재해의 영향으로 군량조달을 하지 못한 것인데 어째서 이 때문에 견책당할 것을 우려하여 이엄이 후주와 제갈량 사이를 농간하면서까지 거짓말을 하였다고 주장하시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사실이 자연재해로 군량조달이 어렵다고 고했을 경우 이것 자체를 제갈량과 후주가 문제 삼아 이엄을 견책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으로 보여집니다.

유수

2016.09.30
23:22:22
(*.232.5.53)
이것은 본문에서 말한것인데 왜 본문은 읽지 않고 이렇게 말하는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군요? 저로서는 삼국지를 토론하고 싶으신건지 아니면 일부러 어떠한 이유에서 시비를 걸고 싶은 악감정이 있으신건 아닌가 하는 오해가 생길 지경입니다. 화양국지에서 이미 제갈량과 이엄은 군량문제가 발생한것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지를 의논하여 결정하였습니다. 결정한 내용은 위나라를 상대로 위엄을 떨친 후 돌아온다 이니다. 그런데 이엄은 제갈량이 돌아오자 흔히 아는대로의 대응을 하지요. 그 원인에 대하여 이엄이 왜그러했는가에 대해서 5월까지는 전황이 촉에게 있어 유리하거나 문제가 없었지만 6월에는 교전에서 성과가 좋지 않아 위엄을 떨치지 못하였고 그 결과 이엄은 이러한 북벌의 결과가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올것을 우려하여 거짓말을 하였다는 겁니다. 6월에 제갈량이 퇴각하였다가 말이 안된다는건 무슨황당한 말입니까?

https://zh.wikisource.org/wiki/%E8%8F%AF%E9%99%BD%E5%9C%8B%E5%BF%97/%E5%8D%B7%E4%B8%83

夏六月,亮承平指引退。

九年春,丞相亮復出圍祁〈《函海》本作祈〉山。始以木牛運。參軍王平守南圍。司馬宣王拒亮,張郃拒平。亮慮糧運不繼,設三策〈劉本誤作榮。〉告都護李平曰:「上計斷其後道。中計與之持久。下計還住〈元豐錢、劉、李、《函》、廖、浙本作住。吳、何、王本作在。何一本作往。〉黃土。時宣王等糧亦盡,〈時下六字應是夾注。〉盛夏雨水。平恐漕運〈元豐與廖本作「漕運」。他各本倒作「運漕」。〉不給,書白亮宜振旅。夏六月,亮承平指引退。張郃至青〈何、王、石本作清。〉封交戰,為亮所殺。秋八月,亮還漢中。平懼亮以運不辨〈《函海》與吳、何、王、浙本作辦〉見責,欲殺督運領岑述。驚問亮何故來還。又表後主言亮偽退。亮怒,表廢平為民,徙梓潼。奪平子豐兵,以為從事中郎,與長史蔣琬共知居府事。時費禕〈吳、何、王本作禕,下同。〉為司馬也。

복룡

2016.09.30
23:28:13
(*.216.73.171)
6월에 교전에서 성과가 좋지 않아 위엄을 떨치지 못했다면 응당 이것은 제갈량의 책임으로서 치부될 것인데 어찌하여 이엄의 말대로 자연재해에 의해 보급을 하지 못한 이엄에게 책임이 돌아간다는 가설을 세우시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거짓을 고해야 하는 입장은 이엄이 아니라 오히려 제갈량 쪽입니다. 이것은 위의 댓글에서도 이미 언급한 것이므로 더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6월에 제갈량이 퇴각한 것이 아니라는 건 제가 잘못 안 것이므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일부러 어떠한 이유에서 시비를 걸고 싶은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므로 오해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저 의견을 도출하는 과정에서의 상황들에서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 뿐입니다.

유수

2016.09.30
23:43:15
(*.232.5.53)
몇번을 말하지만 본문을 제대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6월의 성과는 좋지못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수행하고 작전을 지속할 전투력과 전황은 되었지만 군량문제로 인하여 퇴각한 것이지요. 즉 제갈량이 패전하여 퇴각한게 아니라 군량문제로 퇴각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당연히 아시는 것임으로 강조할 필요는 없지요. 그럼 제갈량의 퇴각은 오로지 군량문제로 인한겁니다. 그런데 군량문제는 화양국지에서 이미 제갈량과 이엄이 서로 문제를 알고 어떻게 할지를 결정했습니다. 말씀하시는대로의 원래대로라면 이엄이 책임추궁을 당할일이 아니지요. 그런데 이엄은 제갈량이 돌아오자 이상한 언행을 합니다. 이것까지는 서로 동의하는 바일겁니다.

그럼 왜 이엄은 이런 행동을 했는가? 이것을 본문에서 3가지로 나누어 본겁니다. 그리고 3번 이엄이 견책을 두려워 했다는 것입니다. 이엄전에도 이엄이 자기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책임을 벗어나고 제갈량이 진군하지 않은 잘못을 분명하게 나타내려했다고 나오지요.즉 자신의 책임을 벗어나고 제갈량에게 돌리려 한겁니다. 이는 자신이 책임질 상황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인것이지요.

그리고 왜 그렇게 인식했는지는 본문에서 말했습니다. 위엄을 떨치고 돌아오지 못하였고 자연재해라고는 하지만 군량문제는 이엄의 담당입니다. 결국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올것이라 판단한것이지요.

복룡

2016.10.01
00:16:56
(*.216.73.171)
저도 몇 번을 언급하는지 모르겠는데 댓글을 제대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단순히 자연재해로 인해서 군량을 조달하지 못했다면 신이 아닌 이상 자연을 바꿀 도리가 대체 누구에게 있길래 이엄에게 책임이 돌아간다는 것인가요? 이것이 어떻게 이엄에게 책임을 전가시킬 수 있다고 이엄이 판단했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외 이엄에 관한 것들은 위의 댓글에서 언급하였으니 생략하겠습니다.

그리고 절대 오해는 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본문의 핵심요지 중 하나인 한진춘추의 기록만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글의 추론 과정 중에서 제가 언급한 것들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 뿐입니다.

유수

2016.10.01
01:13:51
(*.232.5.53)
일식이 일어나면 삼공이 물러나는 시대에 이엄이 이것은 다 자연재해 때문으로 아무책임없다고 가만히 앉아서 편안히 있을수 있는지 심히 의문스럽군요. 심지어 이엄전에는 책임을 회피하려했음이 나오는데도 말이지요.

복룡

2016.10.01
01:20:12
(*.216.73.171)
설령 그렇다고 해서 그런 상황이 맞다면 그런 상황에 이엄이 신이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상대는 계산에 능한 제갈량인데도 말이지요.

유수

2016.10.01
01:26:13
(*.232.5.53)
이엄의 실책이고 오판인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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