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죠.


'그는 조조에 비해서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적벽전 이후까지 확고한 세력을 꾸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약간 의문입니다.


유비가 약했던 것은 기반이 없었다기보다는 개인의 능력이 부족했던 탓이라 보거든요.


난세에서 기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제가 보기에 세 가지, 즉, '인맥, 관직, 군사력'으로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유비는 이 세 가지 부분에서 어떠했을까?





먼저 인맥에 대해서는 그다지 부족할 것이 없다고 봅니다.


물론 조조나 원소, 원술처럼 명문호족의 신분으로 시작부터 천하의 재사들을 거느리는 주동적인 위치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특수한 경우고, 일반적인 군웅들 가운데서는 유비가 인맥으로 밀리 것이 없다고 보거든요.


조조도 처음 거병했을 때는 원소의 세력권에 편입되어서 움직였고


유비도 공손찬의 휘하에서 청주자사 전해와 같이 움직였으며,  도겸의 요청을 받아 소패에 주둔한 이후에는 백성과 호족들의 지지를 받아 서주목에 오르죠.




그렇다면 관직 부분에서는 어떨까?


사람들은 연의의 영향으로 유비가 관직운 없이 야인의 지위에서 천하를 누빈 것으로 알지만


의외로 유비의 관직운은 좋습니다. 별부사마로서 공손찬의 비호를 받기 시작한 이후에는 꾸준히 관직을 얻어 평원상(=태수)으로까지 오르게 되죠.


같은 시기 조조도 기껏해야 동군태수에 불과했습니다. 유비나 조조나 출발선은 똑같다 이거죠.


묘하게도 조조가 연주목이 되자, 비슷한 시기에 유비도 도겸으로부터 서주목을 양도 받습니다.


관직이나 지위면에서 유비가 다른 군웅들에 비해 뒤쳐질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소리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군사력은 어떨까?


조조는 반동탁연합 이후 양주자사 진온, 단양태수 주흔이 준 4천의 병력으로 세력을 일으킵니다.


그나마도 중간에 반란이 일어나면서 상당수의 병력을 잃었다가 원소의 천거에 의해 동군태수로 부임한 이후에나 자리를 잡게 되죠.


그 이후에는 흉노, 흑산적, 황건적 등을 토벌하면서 백성과 군사들의 머리수를 불리게 됩니다.


유비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유비는 공손찬 휘하에 있을 때부터 병력 1천과 오환의 기병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도겸의 요청을 받아 서주로 온 이후에는 단양병 4천을 추가로 얻습니다.


거기에다가 서주목으로 올랐다가 여포의 기습을 받아 소패에 주둔한 뒤에도 군사 1만을 얻었다는 것을 본다면


유비의 군사력 자체가 나약했다고만은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증거가 여포에게 서주를 빼앗기기 전 당대 제일가는 세력이었던 원술과 한 달 이상을 대치했다는 것이죠.




-----------------------------------------



결론적으로, 초창기 유비가 거병했을 당시로 놓고 보자면 다른 군웅들에 비해서 아주 여건이 좋았다고 판단됩니다.


조조와 비교해서도 크게 뒤지는 것은 없었고, 오히려 공손찬의 비호와 도겸의 사망 등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는 천시가 계속 찾아왔었죠.


하지만 유비는 그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해 기반은 통째로 잃고 조조에게 종속되는 처지에 빠집니다.


고작 1천의 병력으로 원술에게서 독립한 뒤 양주를 제패한 손책과 비교해본다면


유비는 얼마나 좋은 여건에서 난세를 살아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즉, 그가 초창기에 실패한 것은 스스로의 능력부족이지, 환경 탓이 아니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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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3.09.25
12:13:26 (*.233.6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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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욜롱

2013.09.25
12:26:49
(*.124.224.111)
손책이 양주를 제패한 것은 원술과 관계를 끊기 전이 아닌가요?

아리에스

2013.09.25
12:37:02
(*.20.202.173)
크게 관계가 없는것 같지만 이 부분은 짚어드려야할 것 같군요.

초기 원술에게 손견의 구장과 병력을 받은 손책은 오경과 손분의 도움을 받으나 유요가 도망친 후ㄱ오경과 손분이 원술의 부름을 받아 수춘으로 갑니다. 그 후의 군사적 행보는 원술과는 크게 관계가 없습니다.

선비욜롱

2013.09.25
13:20:43
(*.124.224.111)
예전부터 궁금했던 내용인데 감사드립니다.

아리에스

2013.09.25
12:40:17
(*.20.202.173)
관도 이전의 유비 능력은 확실히 내세울만한 게 적지 않나 생각합니다. 관우 장비에 대한 호평가는 대부분 이 시절에 이루어진 것이지요. 다만 유비가 조조 같은 완성형 군주는 아닌 것, 그리고 회북지역의 아비규환과 이로 인해 명멸한 군웅들을 생각해볼 때 살아남은 것은 유비의 능력이 어느 정도는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리에스

2013.09.25
12:46:37
(*.20.202.173)
즉 유비가 있던 동네가 워낙 정신나간 곳이라 유비가 기반 쌓기가 힘들었던 것이고 오히려 그런 곳에서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평가를 하고 싶네요. 조조라는 끈을 쥐긴 했지만 그 끈을 조조가 하사한건 아니니까요.

망탁조의

2013.09.25
12:59:29
(*.155.148.94)
먼저 인맥에 대해서는 그다지 부족할 것이 없다고 봅니다.
물론 조조나 원소, 원술처럼 명문호족의 신분으로 시작부터 천하의 재사들을 거느리는 주동적인 위치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특수한 경우고, 일반적인 군웅들 가운데서는 유비가 인맥으로 밀리 것이 없다고 보거든요.

망탁조의:
유비는 인맥으로 많이 불리한 위치에 서 있음. 조조는 조부가 1만전짜리 관직을 지를 정도로 부유했던 신흥 귀족이고 유비는 몰락한 방계 황족으로 돗자리, 짚신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함. 그러니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나, 주변의 환경이나, 친족의 레베루가 완전히 다름.
조조 정권 초창기에 하후돈, 하후연은 건국 공신 하후영의 후손이고 조인, 조홍은 조조와 한 집안 사람인데 조인의 할배가 조등의 형임.
요즘으로 치자면 강남에서 잘나가는 사람 a의 주변인과 지방의 길바닥에서 노점상하는 b의 주변인을 비교하는 격인데 당연히 a의 주변인들이 학력으로나 수입으로나 사회적 지위로나 더 우수할 가능성이 높고 이 당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함. 오히려 신분제 사회니까 더 심하면 더 심했지.
당장 조조와 유비가 정권을 창출한다고 했을 때 조조는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유비는 그럴 수 없었다는 것.
사실 피지배계급일 가능성이 높은 관우, 장비를 유비가 처음에 만난건 천운에 가까움.

다만 유비가 인맥 관리를 제대로 안한 정황은 있음. 유학자들이 유비와 잘 어울리지 못하고 유비가 방랑할 때 주로 무장들이 유비를 추종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눌러 앉거나 투항하는데 그런데 이걸 또 100% 유비 탓이라고 보기 애매함.

만일 그렇다면 진수 등이 유비의 오만한 태도에 대해 지적해야 마땅하고 또 이 당시 문관들은 결국 토지에 기득권을 기반하고 있는 호족들이라 그 토지를 전부 버려가며 유비를 따르기는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닐듯.
조조 같은 경우 정권에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으나 장막과 진궁의 반란 이후로 유비처럼 기반 자체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상황에 이르지는 못함.


조조도 처음 거병했을 때는 원소의 세력권에 편입되어서 움직였고
유비도 공손찬의 휘하에서 청주자사 전해와 같이 움직였으며, 도겸의 요청을 받아 소패에 주둔한 이후에는 백성과 호족들의 지지를 받아 서주목에 오르죠.

망탁조의: 조조가 원소의 세력권에서 독립하게 된 계기가 한헌제 옹립임. 이때 조조는 원소에게 자신보다 한직급 낮은 벼슬을 추천함으로 원소가 격노함. 그 전까지는 원소가 조조에게 이것저것 명령하며 베푸는 처지였는데 이제는 그게 역전됐음을 의미하는 사건이기 때문.

venne

2013.09.25
16:30:52
(*.111.7.21)
조조는 효렴으로 천거된 것부터 유비와는 시작이 다르다고 봅니다. 이미 중앙에서 관직생활을 해오다가 동탁암살을 시도함으로써 얻은 명성과 이미지가 적지 않죠. 의용군출신에 공손찬의 수하장수격인 유비와 비슷하게 시작했다는건 조금 수긍하기 힘드네요. 평원상과 동군태수라는 위치, 그리고 원소와 공손찬이라는 대세력의 비호 등 비슷한 점도 있지만 비교하기에는 조조에게 붙은 플러스 요인이 많이 있습니다..

사마휘

2013.09.25
19:42:08
(*.234.26.150)
인맥의 덤은 가문인데, 가문의 덕을 본 조조나 원소와는 달리 가문의 덕을 봤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것 같은데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나요?

사나이

2013.09.25
23:40:55
(*.103.140.13)
유비의 능력부족이 원인이라면 더더욱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후반기에 전성기를 맞아 결국 천하를 세개로 나눠버린 이유에서 막혀버립니다.

당장 스타를 예로 들어봐도, 초반부터 본진 관리 잘해서 멀티먹고 쭉쭉 커가는 애를 상대로
본진 털리고 다른 멀티에서 다시 시작해서 이기긴 참 힘들지요.
그 한번의 털림과 재건도 힘든데 두번 세번 계속되면 그 게임 볼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꿋꿋이 재기에 성공해 상대와 대등한 싸움을 벌이는
드라마같은 상황이 연출되곤 하지요. 그런 장면들이 바로 명경기라 불리는 것일테구요.
이쯤 되면 설령 악전 고투끝에 패배한다 하더라도 패자에게 박수가 돌아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한낱 게임 속 전장의 재기도 힘든데, 온갖 영웅들이 난립했던 난세에야 오죽했겠습니까.
기반을 잡는 것도 어중이 떠중이들과 영웅들이 오만 잡탕밥으로 난립해서
아웅다웅 할 때 쉬운 일이지, 잡다한 애들 어지간히 정리되고 알짜배기들만 남은 시대에
한다는 것의 난이도 차이는 비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애초에 주인의 능력이 형편없는(혹은 비교적 떨어지는) 세력들은 초반에 다 털려나가 죽었습니다.
그 강성하던 공손찬이며, 여포 원술은 물론이거니와 유요니 엄백호니 셀 수 없이 많은 꼬꼬마들 전부.

그 와중에도, 말씀하신대로 '초반에 다른 군웅들에 비하면 꽤나 유복한 환경이었던' 유비는,
비록 기반은 잃었을 지언정 그 어느 군웅도 하나 끝내 끝장을 보진 못했었지요.
이거 하나만 봐도 유비가 능력없다는 이야기가 오히려 힘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고 애가 무슨 병풍이나 쩌리급이라 당대 영웅들 눈에도 안차서 아오안 했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원소같은 경우는 패하고 도망치는 애를 제발로 300리나 뛰쳐나와 맞이하곤 했을 정도이며
그렇게 털어버리는 와중에도 조조는 유비를 맞수로 규정하길 망설이지 않았지요.

역시 또 허구한날 털려가지고 오는 기반도 없는 양반을 손권이며 노숙이
'조조를 상대할 자는 유비 밖에 없다' 고 말하며 그의 힘을 빌리려 했으며,
주유 역시도 유비를 가만 놔두었다간 큰일이 벌어진다며 그를 억류하려 했음을 본다면,

초반의 실패로 유비의 능력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당시 유비를 끝장내지 못했던
모든 군웅들&유비를 높이 평가한 원소, 조조, 손권,주유 모두의 판단을 깎아내리는 일이 됩니다.

애초에 주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이 유비의 두려움을 평할 때, 제갈량이나 관장의 능력을 말하기 전,
반드시 유비의 영명이나 인걸로서의 능력을 짚고 넘어가는 것을 본다 해도,
그를 단지 부하 때문에 성공한 운 좋은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ㄷㄷㄷ

2013.09.26
04:53:38
(*.135.72.177)
오 마이 갓.... 역사적 기본 소양 없는 사람이 원전사료를 직접 접할 때 나오는 폐단이 이 글에서 다 나타나네요.. 후한말 시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아예 없는 글입니다.

여문사과

2017.02.20
20:48:05
(*.197.131.27)
원래 촉까로 유명한 사람이니 그러려니 해야죠. 객관적으로 사료를 볼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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