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공격할 수 없는데 어찌하여 제갈량은 북벌군을 5차례나 일으켰는가.

여기에 대한 진수의 설명이 매우 재밌습니다.


"(제갈량이 믿기를) 자신이 죽은 후에 능히 중원을 짓밟고 위나라에 맞설 자가 없었기 때문에."


쉽게 말해서, 제갈량이 죽으면 남은 인재들로는 도무지 위나라 공략이 불가능하고 그럼 위나라가 촉나라를 먹을테니 최강의 카드(제갈량)가 아직 남아 있을 때 공격하자는 겁니다. 


얼핏 보기에는 이게 굉장히 오만하게 들릴 수 있지만,

219년에 관우가 형주를 상실하고 222년에 유비가 이릉에서 패전함에 따라 많은 촉한의 영웅호걸들이 명멸했습니다.

유비, 관우, 장비, 법정, 황권 등이 사라지고 풍습, 오반, 마량 등. 소위 말해 B급 무장들까지 상당수 전사함에 따라 촉한의 국력은 순식간에 기울어 나라 내부에서 능력과 인성을 합하여 제갈량보다 뛰어난 인재는 사실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엄의 경우 4차 북벌 당시 보여준 말도 안되는 거짓말로 그 인성의 한계를 드러냈고,

위연의 경우 전투는 잘하는데 지나치게 공격적이고(자오도 계책) 또 이미 219년에 한명의 용맹한 무장(관우)에게 대업을 맡기다가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어떤 참극이 벌어질 수 있는지 제갈량 스스로가 목격한 만큼 이들에게 북벌 총사령관의 직을 맡기는건 도박에 가까웠을 겁니다.


실제로 제갈량이 죽자 비의는 강유의 북벌을 막으며 "제갈승상 조차 하지 못한 일을 우리가 할 수 있을 리 없다. 차라리 영웅이 등장하기 전까지 기다람만 못하다"는 자학에 가까운 발언을 했으나, 촉한은 안타깝게도 한신에 버금가는 영웅이 탄생하기도 전인 263년에 멸망합니다.


군략의 측면에서 그나마 제갈량 사후 우수했던 인물이 (논란의 여지가 있겠으나) 강유인데 이 강유도 제갈량이 북벌을 통해 구한 항장降將이라는 점에서 봤을 때, 사실 제갈량이 생존해 있을 때 북벌을 감행하는게 촉한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제갈량이 명장인가, 아니면 명재상인데 분수를 모르고 군사권을 쥐었는가에 대한 논쟁은 진수가 생존할 때부터 있었습니다.

때문에 진수는 제갈량이 명장인지, 만일 명장이면 왜 북벌에 실패했는지에 대해 이렇게 해명합니다.



제갈량과 대적한 적장 중에는 영웅도 있었고 또한 병력이 부족해 열세였으며 공격과 수비는 다르다 (공격측인 제갈량이 더 불리했다). 때문에 여러해 군사를 일으켰으나 이기지 못했다.
과거에 소하가 한신을 천거했는데 이는 한 사람이 모든 장점을 가지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소하가 한신만큼 군략이 없으니 한신을 천거해 군략을 담당토록 했다).
제갈량은 정치를 잘하니 관중과 소하와 비견될 수 있으나 촉한의 장수들 중에 한신 같은 사람이 없어 끝내 대업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천명(운명)은 정해져 있어 한 사람의 지력으로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약소국이 강대국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약소국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강대국도 그만큼 실수를 많이 해야 합니다.

한고조는 한신, 장량, 소하를 최대한 활용했으나 항우는 유일한 범증을 버리는 실수를 했기에 역전극이 벌어질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제갈량이 상대한 인물은 조진, 사마의, 장합, 학소의 무리로 모두 역사에 이름을 남길법한 명장들이었습니다.


제갈량도 사람이니 당연히 단점이 있겠지요. 그럼 조조라고 없었을까요. 주유라고 없었을까요.


조조의 경우 그 개인이 뛰어난 명장이기도 했지만 휘하에 곽가, 정욱 등 우수한 참모진과 서황, 장합, 하후연 등 빼어난 용장들이 명령을 수행했습니다. 주유 역시 다르지 않아 주유의 지략은 출중하나 또한 휘하 여몽, 노숙, 감녕 등 우수한 인재들이 주유를 보필했습니다.


이 당시 과학 기술의 한계는 매우 뚜렷한데 공격측(제갈량)이 지형으로나, 물자로나, 국력으로나, 인재 개개인의 자질 모두가 위나라에 비해 불리했고 때문에 대업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이 이것을 극복해야만 했다라고 주장한다면,

이 사람들에게 제갈량에게 요구하는 덕목은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연노, 목우유마, 팔진도 같은거 말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 수준의 공돌이.

오병이어는 우습지도 않을 생산력을 보장할 천재적인 농업가.

유리한 지형에서 사마의가 지키는 진영을 정면 회전에서 거의 피해 없이 격파할 수 있는 용병술.

조진, 장합을 압도하는 지략 -> 1차 북벌에서는 조진을 낚았고 4차 북벌에서는 장합을 사살했습니다만.....

기타 등등.



이런 사람이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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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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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백랑

2013.10.11
13:15:02
(*.233.63.81)
연노, 목우유마, 팔진도 같은거 말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 수준의 공돌이.
오병이어는 우습지도 않을 생산력을 보장할 천재적인 농업가.
유리한 지형에서 사마의가 지키는 진영을 정면 회전에서 거의 피해 없이 격파할 수 있는 용병술.
조진, 장합을 압도하는 지략 -> 1차 북벌에서는 조진을 낚았고 4차 북벌에서는 장합을 사살했습니다만.....
기타 등등.

↑ 이런 의견은 그냥 말장난이고, 장기전하지 말고 속전으로 가야 한다 이거입니다. 아니면 최소 손권과의 양동으로 위나라 전력을 분산시켜놓기라도 하던가.
자기가 살아 있을 때 전쟁 일으키는 것은 최고집정관의 결단이므로 존중합니다. 하지만 그러러면 보다 좋은 전략을 갖고 와야 하는데 제갈량은 그러지를 못했어요.
그걸 비판하는 겁니다.

미백랑

2013.10.11
13:16:47
(*.233.63.81)
모택동은 장제스 이겼을 때 뭐 핵무기 써서 이겼습니까? 가끔씩 제갈량 옹호론자들이 하는 반론을 보면 헛웃음이 나옵니다.

사마휘

2013.10.11
13:31:41
(*.234.26.150)
다른 건 고개를 주억일만 합니다만, 마오쩌뚱이 장제스를 이긴건 제갈량과는 정말 다르다고 생각됩니다만. 애초에 마오쩌뚱이 가진 기반이 제갈량보다 열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장제스가 무너지게 된 계기를 보면 마오쩌뚱이 잘해서가 아니라는 것이 정론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물론 대장정이니 하는 것들은 "기적"이라고 표현 할만큼 대단했던 것이긴 하지만, 여기서 제갈량의 북벌과의 비교대상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미백랑

2013.10.11
13:43:29
(*.233.63.81)
저는 개인적으로 모택동을 중국 군략가들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장제스가 무너지게 된 원인에는 국민당 자체의 부패도 크게 한몫했지만 모택동의 유격전술 및 기만전술도 엄청나게 큰 몫을 했지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독재자 정도로 치부하면서 인식이 별로 안 좋은데, 제가 군대 시절 접했던 서적이나 논문, 평론을 보면 모택동의 군사전술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룬 것들이 많더군요.

일단 모택동은 현대에서까지 통용되는 유격전술을 고안하여 상대적으로 열세인 병력을 갖고 강인한 군사를 괴롭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잘 나타난 대목이 한국전쟁 당시 미군과의 교전들이고요. 제갈량과는 군사적인 측면에서 확실히 격이 다른 사람입니다. 그냥 운빨로 치부하기에는 이룬 업적이 너무나 대단하죠.

사마휘

2013.10.11
13:51:51
(*.234.26.150)
마오쩌뚱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부분은 시각차이가 있음은 인정합니다만(전 마오쩌뚱의 업적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어디까지나 일세의 풍운아라는 시각을 견지합니다), '북벌과 마오쩌뚱의 상황은 비교대상이 아니다.' 라는 점을 강조했는데요.

인물의 군사적? 군략적?(이거 정말 적당한 표현이 필요하군요.) 재능은 비교해보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만, 그런 비교는 적당하지 않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었습니다.

미백랑

2013.10.11
13:58:48
(*.233.63.81)
글쎄요. 제갈량의 전술은 현대로 비유하자면 일종의 참호전인데, 모택동은 그와 완전히 반대되든 유격전술이죠. 중국애들도 제갈량 깔 때 모택동의 전술을 예시로 들면서 많이 깝니다. 기산 같은 험준한 산길로 진군하지 말고 동쪽으로 돌아서 적의 후방을 노리거나, 교란작전을 펼쳐야 된다고요.

그리고 제가 위에서 모택동을 언급한 것은 이 같은 이유보다는 일종의 비유입니다. 본문에서 '제갈량은 수류탄 만들어라' 이런 말이 나오니깐 '그러면 모택동은 핵무기 써서 이겼냐?' 라는 말로 문장 자체가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 거죠. 즉, 약소세력이 강대국을 이기는 것은 전략&전술의 우위가 기본적인 바탕이지, 수류탄, 초현대적인 무기의 개발 등 동떨어진 요소를 끌고 올 게 아니라는 취지로 말한 건데, 그냥 한줄댓글로 달다 보니깐 뭔가 혼선이 생긴 것 같네요.

사마휘

2013.10.11
14:12:19
(*.234.26.150)
제가 현대 중국적 자료 검토는 끽해봐야 곽말약 선생의 논의 정도 밖에 살펴보지 않아서(그 이후로도 조금 더 있긴 합니다만, 그나마 세세하게 본 것은 곽말약 정도가 끝이군요) 모택동의 전술을 예시로 들면서 많이 깐다고 하는 내용 자체를 모릅니다. 몇 번 듣긴 했어도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는 모른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전략전술의 부분에선 제가 어떻다 하고 비교하거나 코멘트를 하기에는 부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상황이 다르다는 것과 비교대상으로써 적당하지는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다른데 어떻게 전략과 전술이 같을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랄까요?

여담입니다만, 어쨌든 장제스가 마오쩌뚱을 대장정하게 만든 것도 대단한 일이고, 장제스의 세력이 안정화 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글쎄요. 대장정 이후 장제스는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는 점에서, 딱히 비교대상이 적당하지 않을 뿐입니다.

첨언으로 중국애들의 "제갈량을 까는 글"을 읽어보고 싶기는 하네요. 혹 주소나 자료가 있으시다면 공유 부탁드립니다.

미백랑

2013.10.11
14:26:10
(*.233.63.81)
제가 서적으로 읽었던 거라, 사회 나가서 찾아보려고 했는데 국방부 간행본 비스무리한 것들이라 찾기가 매우 힘들더군요.

일단은 http://blog.naver.com/begagi/50149486992 이것은 책에서 제가 일정부분 발췌한 것이고요

모택동이 직접 비판한 것에 대해서는 http://blog.daum.net/shanghaicrab/16153619 이게 있더군요.

그리고 처사군님이 게재하신 http://blog.naver.com/kyspert/110172379920 여기를 보시면

역대명장에 제갈량이 빠져 있는데, 그 주체가 현대 중국인이라는 점이 조금 이채롭더군요(유일하게 제갈량이 빠진 대목입니다).

저는 그 이유를 제갈량의 북벌전략이 현대에서는 많이 까이고 있다는 점을 들어 빠졌다는 것으로 추론하고 있는데

제가 접했던 자료들을 지금 다 찾을 수가 없어서 상당부분 노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계속 얻게 되는 대로 하나씩 사이트에 소개할 생각입니다.

신불해

2013.10.16
20:20:55
(*.48.202.38)
마오쩌둥의 군사적 능력은 대단하지만, 개인의 능력을 떠나 그게 중국 통일이라는 것으로 연결된다고 하면 일본군의 공격과 장학량이 없었으면 죽어도 불가능한 일이죠.

제갈량 보다 마오쩌둥이 낫다는 시각을 떠나 "마오가 했는데 제갈량은 왜 못했느냐" 라면 전혀 다른 상황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 같은 저서에서는 시안 사변이 없었어도 홍군이 장제스를 때려잡았을 것처럼 써 놓았지만 그거야말로 자위 중의 자위이고, 실제 중일전쟁 기간 중에 홍군의 활약도 몇번 임팩트로 부각되는 정도지 그 대부분은 국민당이 엄청난 희생을 내면서 상대한 부분이고.


전 제갈량>>마오 이런 소리를 하려는건 아니지만, 마오쩌둥이나 제갈량은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 있던 겁니다. 이것 역시 전혀 다르지만 차라리 유방과 제갈량이 그나마 비슷하겠네요. 앞서 말했듯이 이것도 전혀 다르지만 제갈량과 마오쩌둥의 상황에 비하면야.

미백랑

2013.10.11
13:34:34
(*.233.63.81)
참고로 이문열 삼국지에서 작가는 제갈량의 속내를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위나라가 전력을 들어 상대해온다면 중원 회복은 그야말로 꿈 같은 소리에 불과했다' 이것은 6차 북벌 당시 손권과의 양동을 계획하고 오장원으로 나갔을 때의 일인데, 손권이 만총에게 막혀 패퇴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갈량이 충격 받아 쓰러지는 대목입니다. 실제로도 그래요. 그냥 우직하게 힘 vs 힘으로 싸우면 촉은 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걸 어느 정도 만회하기 위해서는 전력분산 및 빠르게 거점을 타격하여 피해를 주는 속전속결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데 제갈량은 유리한 상황에서조차 그렇게 안 했다는 겁니다. 비판론자들은 그런 부분을 까는 거지 '수류탄 만들어라', '그냥 싸워서 이겨라'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게 아닙니다.

미백랑

2013.10.11
13:51:09
(*.233.63.81)
추가적으로 '촉 제일가는 인재가 있었을 때, 어떻게든 북벌해야 했다'라는 논리에 대해서도 저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론으로 반박하고 싶습니다.
이성계는 한국사에서 거의 Top급 장군인데,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옳지 않다면서 요동정벌을 만류합니다.
하지만 최영 역시 이성계에 꿀리지 않는 장군이므로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강행하죠.

자, 어차피 당시 최고집정관은 최영이었고 그 역시 능력 있는 장군이므로 그 판단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성계 역시 요동정벌을 수락하죠. 하지만 조건을 답니다.

'장마철에 쳐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다. 활줄이 풀려서 활을 쏘기가 어렵고, 압록강을 건너기 어려우며, 늪지가 생겨 군사들 사이에 역병이 돌 위험이 있다. 따라서 장마가 끝나고 날씨가 풀린 다음에 쳐들어가자'

하지만 최영은 강행했다가 결국에는 위화도 회군 맞고 실각하게 됩니다. 제갈량의 사정도 당시 최영과 비슷해요.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공격하는 것에는 근본적인 부담이 있었으며, 이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작전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제갈량에게 있어 장애요소들은 군량수송이 어렵다는 점과, 국력차가 있다는 점과, 상대가 방어전술로 나올 것이 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장기전술보다는 기공을 활용한 속전속결로 가야지요. 그런데 그렇게 안 했고 결국에는 실패~

망탁조의

2013.10.11
14:03:18
(*.155.148.94)
명나라와 조선이 요동을 두고 다툰거랑,
위진과 촉한이 정권을 두고 다툰거랑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까?

위진에게 있어 촉한은 '반역자'이자 '괴뢰 정부'로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정복해야 마땅한 '한족의 영역'입니다. 외교적으로 굽히건 어쩌건 해서 해결될 문지가 아니예요.

쓰촨성은 이미 기원전에 진나라에게 정복됐고 한고조 유방이 이 땅에서 일어난 이상 제갈량이 북벌을 하건 수성을 하건 위진은 언젠가 아무튼 군대를 동원해 촉한을 병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니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 다급한 시세였던 거예요.
이건 조조가 적벽대전을 일으킨 것과 똑같은 당위죠. 위진이 미쳤다고 군대 동원해서 그 험한 장강, 그 험한 검각을 건너려고 그 고생을 했겠습니까.

그럼 가만히 방어에 만족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기회가 올 것인가. 제갈량을 능가하는, 비의가 그토록 갈망한 백마탄 초인이 언젠가 촉한에서 탄생하여 위진을 정복할 것인가. 그런데 이미 역사적으로 봤듯 촉한이 멸망하는 그날까지 제갈량 이상의 기재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어에만 집중하여 때를 기다려야만 했다면, 중국중세사의 한 구절을 제 의견을 대신해 소개하겠습니다.
미야자키 이치사다 교수의 말에 따르면 " 지방정권이 퇴보정책을 취하면 다음에는 멸망이 기다릴 뿐이다."

미백랑

2013.10.11
14:05:22
(*.233.63.81)
전 방어만 하라고 한 적 없는데요. 이왕 나올 거면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방책을 들고 나오라고 했지. 이성계가 한 말을 보세요.
싸우지 말자는 게 아니라 장마 끝난 다음에 쳐들어가자 아닙니까.
아랫글과 연계해서 제갈량에게 있어 장애요소는 '장기전 no, 속전 yes'인데 제갈량은 계속 장기전으로 갔어요. 당연히 까여야죠.

망탁조의

2013.10.11
14:05:05
(*.155.148.94)
그리고 최영의 요동 정벌은 명나라군의 반격으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이성계 내부의 배신으로 실패한건데 이게 제갈량 북벌과 동일선상에서 비교될 수 있는 짝사건인지도 회의적이군요.

명군과 조선군은 싸우지도 않았는데 이걸 어떻게 제갈량의 북벌과 같이 비교할 수 있습니까.

미백랑

2013.10.11
14:06:47
(*.233.63.81)
이성계가 처음부터 배신했습니까? 이길 수 없는 전략인 거 알지만 최영이 우격다짐으로 보내서 갔다가, 진짜 상황이 절망적으로 돌아가니깐 회군한 거죠.

망탁조의

2013.10.11
14:11:22
(*.155.148.94)
아니 그러니까.
결국 요동정벌에서 최영의 전략과 제갈량의 전략이 비슷했다면,
그런데 최영의 전략은 실패했다. 그럼 제갈량의 전략도 어림없다. 이런 논리가 성립되는게 아닙니까.

그런데 요동 정벌은 정확히 말해 최영의 계책이고 전략이고 그냥 이성계가 배신하여 제대로 시험조차 못해봤는데 그럼 최영의 사례를 가지고 제갈량의 북벌을 비판하는 논거로 사용할 수 있느냐는 거죠.

그리고 명나라가 조선을 대하는 입장과 위진이 촉한을 대하는 입장이 같습니까. 조선(고려)은 이성계 말마따라 그냥 요동을 포기하는게 국익이지만 촉한은 언젠가는 위진이 촉한의 모든 영토를 정복하기 위해 올 대상인데.

조선(고려)가 요동 포기했다고 명나라가 한반도까지 쳐들어 올 일은 아니잖아요. 고려 말과 제갈량 북벌 당시 촉한이 정말 비슷했는지도 의문이고.

미백랑

2013.10.11
14:18:25
(*.233.63.81)
뭔 말인지 잘 모르겠군요. 제갈량 전략 어림없었잖습니까. 만일 촉에 한신 같은 애들이 있었으면 제갈량 전략 반대하고 성도로 돌려보냈겠죠.
가서 지원이나 하라고.

망탁조의

2013.10.11
14:25:12
(*.155.148.94)
그걸 어떻게 압니까?
한신 같은 애들이 제갈량을 돌려 보냈을지 안보냈을지. 불평불만하면서도 막상 지휘는 따랐을지 아니면 완전히 찬성했을지, 이도저도 아니면 반란을 일으켰을지. 위나라에 투항했을지. 탄핵안을 가결했을지. 아니면 간언하여 님 말씀따라 제갈량이 속전을 결행토록 마음을 바꿔 대업을 이뤘을지 그거 어떻게 압니까.

어떠한 명제가 진리라고 믿는건 좋은데 그 명제가 아무리 만고불변의 진리라도 그걸 증명하는 논거 자체를 가상 시나리오에 의지할 수는 없는 거죠.
더더구나 그 명제를 두고 사람마다 의견이 엇갈린다면 더더욱.

망탁조의

2013.10.11
13:55:53
(*.155.148.94)
그러니까 장기전인가, 속전인가 여부에서 무엇이 더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장기전이 틀렸으면 틀렸다. 속전으로 가야 한다고 반박할 사람조차 없었다는 것이 촉한의 현실입니다.

제갈량이 명장이면 (왜 속전을 하지 않아 혹은 다른 계책을 채택하지 않아) 북벌에서 실패했음? 에 대한 진수의 답변이 그렇구요.

조조의 경우 전략에나 전술에서 잘못된 판단을 할 때 다른 명장이나 참모진이 나와서 그건 그렇게 하면 안되고 이렇게 하십시오.
이런 식으로 간언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노선을 180도로 바꾼 경우가 한두번이 아닌데 제갈량의 북벌 그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야 간혹 있었습니다만,
북벌은 찬성하는데 지금처럼 하는건 안된다고 세부적인 전술 문제로 간언하는 사람이 있었던가요. 장완도, 비의도, 마속도, 강유도, 이엄도, 심지어 유선도 그걸 문제 삼지 않았는데. 위연이 제갈량에 대해 불만을 성토했다고 하는데 기껏 위연이 한다는 말이 자오곡 계책입니다.

제갈량 북벌의 실패는 제갈량의 실패가 아니라 그냥 촉한 인재진 전체의 실패라는 뜻이예요.

제갈량이 역량이 부족하여 북벌을 수행해선 안됐다면,
이미 이릉대전 이후로 촉한은 멸망하는 그날까지 그 누구도 북벌을 수행해서는 안됐고 그냥 공손히 나라를 위나라에 바치는 편이 낫다는 주장도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겠지요.

그리고 속전이라는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겁니까.
제가 보기에 속전 자체가 제갈량의 전공이 아닌 것 같은데 만일 자신의 전공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군사적 성과나 역량이 비판 받는다면 그럼 조조도 수전이 전공이 아니라 적벽에서 천하를 통일하지 못했으므로 비판 받아 마땅하게 됩니다.

미백랑

2013.10.11
14:02:53
(*.233.63.81)
위연이 속전으로 가자고 했지요. 자오곡은 위략에 나오는 말이고, 본전은 동관에서 만나자는 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http://blog.naver.com/begagi/50149486992 참고.

그리고, 촉한 인재진이 그 방책을 못 찾았으면 그냥 걔네들 능력부족을 까야지, 왜 어쩔 수 없다고 옹호를 합니까? 뭔가 선후관계가 뒤바뀐 거 같군요.

참고로, 제갈량이 1차 북벌에서 3군 항복한 상황에서도 속전으로 안 가고 산골짜기에서 뭉기적댄 것은 위나라 사람들도 의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원자의 평이지요. http://blog.naver.com/begagi/50150339261

미백랑

2013.10.11
14:04:03
(*.233.63.81)
그리고 적벽전에서 조조 잘했다고 옹호하는 사람 있나요? 100이면 90이 다 깝니다.
근데 제갈량은 왜 옹호하는 사람이 더 많은지 의문이죠.

망탁조의

2013.10.11
14:06:13
(*.155.148.94)
제갈량을 옹호하는 사람은 몇이나 되고 비판하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데요?
제가 보기에는 제갈량을 까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보이는데.

미백랑

2013.10.11
14:08:11
(*.233.63.81)
그러면 결국에는 제 의견에 동의하시네요. 조조도 적벽전 실패로 까이고, 제갈량도 북벌 실패로 까는게 당연하죠.
그런데 망탁조의님은 왜 옹호하시나요. 똑같은 기준으로 까겠다는데. 님은 조조 적벽전 실패를 옹호하시나요?

망탁조의

2013.10.11
14:13:23
(*.155.148.94)
조조 휘하에는 하후돈, 하후연, 서황, 조인, 곽가, 순욱 등이 있었고.
제갈량에게는 그런 사람들이 없었고.

근데 정확하게 몇대몇의 비율로 사람들이 제갈량을 무리하게 변호하나요? 제가 네이버에서 가끔씩 보면 장난 아니던데.

미백랑

2013.10.11
14:15:03
(*.233.63.81)
님이 옹호한다는 게 중요하죠. 지금 토론 상대방이 망탁조의님인데. 그리고 삼도만 가더라도 옹호론자들 넘쳐납니다.

망탁조의

2013.10.11
14:20:08
(*.155.148.94)
삼도는 네이버 카페의 일부이고 회원수가 제법 많은데 그중에서 실질적으로 제갈량빠가 얼마나 많은지요.
혹 몇몇 사람들이 토론 게시판에서 반복적으로 빠질하는 것을 하나의 거대한 여론으로 혼동하신 것은 아닌지요.

이 사이트만 해도 비로그인 사용자들 사이에서 제갈량이나 관우를 까는 하나의 여론이 있었지요. 그 사람들은 사이트 규정을 지키지 않아 처벌을 받았기에 그 목소리가 잠잠해졌을 뿐. 만일 규칙에 어긋나지 않았다면 지금쯤도 한명인지 둘인지 개별인지 모를 그 사람들이 열심히 글을 올렸겠지요.

이문열 삼국지, 나관중도 몰랐던 삼국지 이야기 등등 이래로 제갈량을 비판하는 책들도 (논리적으로 말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 오프라인에서 엄청나게 많고 적어도 제가 삼국전투기에 달린 덧글이나 블로그에 다른 사람들이 쓴글을 봐도 비판적인 여론도 제법 됩니다.

미백랑

2013.10.11
14:12:41
(*.233.63.81)
제가 항상 제갈량 옹호론자들과 토론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조금 논지 파악을 확실하게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 주장은 '제갈량 졸장' 이게 아니에요. 제갈량은 충분히 뛰어난 지휘관이고, 여러 가지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고군분투한 거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게 택한 전략은 실패했고, 그에 대한 분석을 하면서 당시 상황적으로 볼 때 속전속결이 보다 더 좋은 선택이었다... 라는 점을 강조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택하지 못한 부분에서 제갈량을 비판하는 것이고요. 즉, 제갈량의 선택은 최선이 아니었다는 논리인데

이상하게 말을 하다 보면 전혀 동떨어진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번에도 역시 그렇고요.

망탁조의

2013.10.11
14:14:42
(*.155.148.94)
그걸 무조건 제갈량 옹호론자들 탓으로만 돌리시는지 모르겠네요.

저하고만 토론해서 저하고만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저에게도 흠결이 있다는 주장이 가능하겠으나 모든 제갈량 옹호론자들과 모든 대화가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면 그건 미백랑 님의 논리 전개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뜻 아닌가요.

미백랑

2013.10.11
14:15:29
(*.233.63.81)
지금 님 비판하고 있는 겁니다.

망탁조의

2013.10.11
14:20:48
(*.155.148.94)
제가 항상 제갈량 옹호론자'들'과 토론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조금 논지 파악을 확실하게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주어는 복수인데 망탁조의 한 사람(단수)를 비판했다구요?

미백랑

2013.10.11
14:28:59
(*.233.63.81)
기분 상하실 까봐 일부러 에눌러 표현했는데, 직접적으로 말할께요. 논지 파악을 제대로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1. 제갈량이 택한 전략은 실패했다.
2. 하지만 당시 촉의 사정으로는 장기전보다는 속전을 취하는 것이 정황적으로 타당했다.
3. 그렇게 하지 못한 제갈량을 비판한다.

제 논리가 이거에요. 이걸 반박하시려면, '속전은 얼토당토 않는 소리고, 제갈량이 취한 장기전이 최선이다' 이걸 들고 오셔야지
계속 하는 말씀은 논지와 동떨어졌으니 자꾸 토론이 산으로 흐르는 겁니다. 왜 수류탄 이야기가 나옵니까.

망탁조의

2013.10.11
15:06:59
(*.155.148.94)
속전이라는게 구체적으로 어떤겁니까?

미백랑

2013.10.11
15:16:54
(*.233.63.81)
1차에서는 3군 항복 후 기산에서 뭉기적대지 말고, 곧바로 가도로 나가 조인의 본군을 상대했어야 하며(이에 대한 원자가 평을 하죠)
2차에서는 잘 했습니다. 곧바로 요충지 타격했다가 안 되니깐 바로 퇴각했죠.
3,4차는 기산행인데 1차와는 달리 이미 기산행은 노출이 되어서 사마의도 곧바로 군사 모아 요충지 점거하고 반격합니다. 물론 회전에서 승전했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국지전의 승리일 뿐, 전세를 단숨에 가져오거나 하는 결전은 아니었죠. 실제로도 이엄의 구라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촉군은 군량부족이 심했기 때문에 설사 사마의에게 이겼다고 쳐도 계속 전쟁을 수행할 역량이 됐을지 의문입니다.
5차는 과감한 작전을 펼쳤는데(손권과의 양동 후 야곡 진출), 사마의가 전투를 안 받아준다고 농사 지으면서 시간만 끌다가 결국에는 죽어버리죠.

----------------------------

자, 이게 일반적인 반론들이고, 추가적으로 제갈량이 융중계에서 밝힌 것처럼 손권은 형주에서 양- 번 - 낙양으로 향하고, 제갈량은 기산으로 돌 것 없이 곧바로 진천으로 나가 위나라의 핵심을 찌르는 합동작전이 가장 승산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예전에 고찰한 글에서도 밝혔듯이, 촉 & 오는 이러한 협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가 않았지요.

그리고 제가 위에서 링크한 글에서 밝혔듯이, 기산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우회하여 적의 후방을 급습하는 작전도 생각해볼만 합니다(이에 대해 필자는 위연의 동관계책을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논자들은 선제기 기록을 애써 무시하는데, 사마의 또한 제갈량이 무공을 향해 동진하면 위험하다고 걱정합니다(근데 이거 구라라고 다 무시해버리더군요).

당시 분위기를 보세요. 1차에서는 제갈량이 3군 항복 후 기산에서 뭉기적대고 있었던 것을 의아해하며 5차에서는 맞수인 사마의가 직접 무공으로 안 가고 오장원으로 간 것을 기뻐합니다. 이런 기록과 당시 정황을 토대로(장기전이 불리하다는 촉군의 현실) 오늘날의 분석가들은 제갈량의 전략을 비판하고, 다른 대안들을 고찰하고 있는 겁니다.

속전으로 승전한 기록까지 찾아드려야 하나요?

망탁조의

2013.10.11
15:15:39
(*.155.148.94)
그리고 뭔가 엄청난 오해가 있는데,
속전이 정답이었다. 그런데 제갈량은 속전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제갈량은 틀렸다. 제갈량 비판!
충분히 이럴 수 있죠.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그걸 읽은 사람이 전부 다 속전의 참거짓 여부에 대해서'만' 토론을 해야만 한다는건 아니죠.

왜 속전을 생각하지 않았는지, 왜 속전을 못했는지, 정확히 말해 누구도 왜 속전에 대한 간언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논의도 할 수 있잖아요.
처음부터 이 글 자체는 제갈량의 북벌 당위와 실패 원인에 대한 진수의 개인적인 의견에 제 나름의 견해를 덧붙인 것에 지나지 않아요.

꼭 제갈량 북벌을 속전 했어야만 했다 여부에 대해서 한정해서 논박할 필요가 있나요. 나는 미백랑 님 뿐만이 아니라 이 사이트에 있는 모두와 소통하려는 사람인데.

미백랑

2013.10.11
15:21:22
(*.233.63.81)
님 본문의 논지가 정확하게 뭔가요.

'제갈량은 잘했는데 천운이 따르지 않아 실패했다' 이거 아니던가요? 제 의견은 '제갈량은 못해서 진 거다'라는 겁니다.

제갈량이 촉 제일의 인재였고, 북벌은 할 수 밖에 없는 당위성이 있었고... 이런 부분들을 비판하는 게 아닙니다.

전 본문에 나온 여러 논지들 중에서 '전략의 미흡함'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했는데, 저와의 토론에 임하셨으면 이에 대해서 논하셔야죠.

전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는 건득 적이 없습니다. 제가 다른 부분들까지 반론을 했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가 않지 않습니까.

ㅉㅉ

2013.10.11
15:36:09
(*.76.110.74)
1차는 마속이 가정에서 발리는 바람에 알 수 없지만,
2차는 미백랑 말대로 20일치 군량만 싸들고 가서 벌이는 속전이었고,
3차는 땅따먹기 성공했고,
4차도 사마의 바르는것까지 성공했는데 이엄이라는 '변수' 때문에 실패한거고
5차는 군량이 제대로 조달되지 못한 것 + 사마의의 우주방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장기전으로 간건데,

'속전'으로 가야했다고 추상적으로만 말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몇차에서 속전으로 가야했다고 주장하는게 더 나을듯

미백랑

2013.10.11
15:37:02
(*.233.63.81)
위에서 다 밝혔습니다. 댓글을 읽어보세요. 그리고 땅따먹기 성공했다고 하시는데... 제갈량 북벌 목적이 그냥 무도&음평 먹고 땡이라면 저도 뭐라 말 안 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무도 음평이 그렇게까지 눈여겨볼 땅인지도 의문이죠. 땅 따먹은 다음에 곧바로 조진이 촉을 공격했을 때 위나라 군사가 들어온 길 중 하나가 무도거든요. 무도 음평은 기산으로 가기 위한 중간과정이지 그 자체가 북벌목적이라고는 볼 수가 없습니다. 기산행과 종합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사안이죠.

망탁조의

2013.10.11
15:49:12
(*.155.148.94)
본문에 매우 직설적으로 말을 했는데 더 이상 부연 설명할 꺼리가 있나요.
진수가 생각한 제갈량의 북벌 당위와 제갈량이 명장이면 왜 실패했는가에 대해 추가 설명한 것이 이 글의 목적입니다.

미백랑

2013.10.11
15:54:49
(*.233.63.81)
이 당시 과학 기술의 한계는 매우 뚜렷한데 공격측(제갈량)이 지형으로나, 물자로나, 국력으로나, 인재 개개인의 자질 모두가 위나라에 비해 불리했고 때문에 대업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이 이것을 극복해야만 했다라고 주장한다면,
이 사람들에게 제갈량에게 요구하는 덕목은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연노, 목우유마, 팔진도 같은거 말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 수준의 공돌이.
오병이어는 우습지도 않을 생산력을 보장할 천재적인 농업가.
유리한 지형에서 사마의가 지키는 진영을 정면 회전에서 거의 피해 없이 격파할 수 있는 용병술.
조진, 장합을 압도하는 지략 -> 1차 북벌에서는 조진을 낚았고 4차 북벌에서는 장합을 사살했습니다만.....
기타 등등.

----------------------------

저는 이 대목에 대해 비판을 한 겁니다. 촉에 인재가 적은 건 걔네들 사정이지요. 왜 우리가 그런 것까지 신경써야 합니까?

제갈량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이 모든 것을 감안하고도 이길 수 있다는 예상이 있었기 때문에 군대 끌고 나온 겁니다.

그렇게 군대 끌고 나온 이상 거기에서 보여지는 전략, 전술이 허접하면 까이는 거지 뭔 말이 더 필요한가요.

못 이길 줄 알면서도 뛰어나온 거면 그냥 바보고. 안 그런가요?

---------------------

게다가 이 말을 하면 꼭 '한니발', '나폴레옹'을 예시로 들면서

그렇다면 패전장군들은 다 실패자냐? 그런 의견이 나오던데........ 한니발과 나폴레옹은 실패를 덮을 만한 업적이 있습니다.

근데 제갈량은 군사적으로는 그런 거 전혀 없어요. 한니발, 나폴레옹과 비견되는 거 자체가 실례인 사람입니다.

ㅉㅉ

2013.10.11
15:05:49
(*.76.110.74)
법학 좀 했길래 현실감각 좀 있나했는데 전혀 아니구만. 뭐? 속전을해? 그러다가 나라 망했으면 더 대차게 깔 사람일세.

사마휘

2013.10.11
16:02:08
(*.234.26.150)
이거 왠지 도돌이표인 것 같은데요.

미백랑

2013.10.11
16:16:57
(*.233.63.81)
이게 지금 제 아랫글과 연계해서 올라온 글이라, 전체적으로 토의가 길어졌는데 사마휘님 말처럼 도돌이표를 막기 위해서 논지 정리를 좀 하겠습니다.

1. 제갈량은 촉한 제일의 인재이다.
2. 제갈량이 살아 있는 동안에 북벌하는 것은 마땅하다.
3. 제갈량은 고군분투 했으나 위나라와의 근본적인 차이를 뒤집기에는 부족했다.
4. 3의 이유에는 인재부족, 국력부족, 군량보급의 애로, 전략&전술의 미흡함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이 중에서 제가 지적한 것은 4번의 '전략&전술의 미흡함' 이것입니다.
아랫글에서 밝혔다시피, 인재부족, 국력부족, 군량보급의 애로 등은 자연히 전쟁을 하기 전에 파악하고 대비해야 하는 장애요소이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장기전보다는 빠르게 승부를 보는 속전속결의 방법이 좋을 것 같은데, 제갈량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논리이지요.

저는 처음부터 이 논리를 일관했으며, 그 외의 사안들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는 것을 밝히는 바입니다.

오호

2013.10.12
00:41:45
(*.48.65.173)
논리가 명확하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사나이

2013.10.12
16:17:23
(*.103.140.13)
아래에 미백랑님이 직접 올리신 글에 댓글을 달까 하다가 이쪽이 아무래도 현재진행형인듯 하여 생각을 적어봅니다.
단순 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실로 생각의 폭을 한층 넓혀주는 새로운 시각이었습니다.

다만 아직도 의문점을 찍고 싶은 부분은 과연 북벌의 미완(혹은 실패)이라는 결과론적인 시각 하나만 갖고
제갈량의 군재를 통틀어 비판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점입니다.
그 해결책이 속전이란 것도 솔직히 근거가 빈약해보이고...

그리고 확연한 장애 요소는 단지 '니 사정이지 내 알바냐' 라고 단정할 문제가 아니라,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넘어가는게 맞다고 봅니다.
전쟁에서 군량이라는건 사람으로 치면 동맥 신경과도 같은 중요한 부분이지요.
이걸 애초에 밑지고 들어가는 상황이 뻔히 있는데 그걸 간과한다는 건 오류입니다.

싸우다가 적이 군량로를 차단했다던가 혹은 강우 때문에 군량 문제가 생겼다면,
이는 논박할 필요도 없이 그걸 계산하지 못한 장수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예 처음부터 조건 자체가 열악하게 설정되어 있는 것은 확실히 다른 문제지요.
절름발이와 정상인 둘 다 반드시 뛰어야만 하는 상황이 왔을 때,
전자가 제대로 못 뛴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어진 약점이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이지요.

목표가 있어도 열악한 조건 탓만 하는 이도 있고, 그걸 개선할 여지 없이 가만히 안주해버리는 이도 있습니다.
그것들에 대해 좋다 나쁘다 나눌 순 없겠지만 적어도 그걸 극복하려 노력한 이에겐 좀 더 특별한 가치가 붙는게
당연한 사실이지요.

제갈량은 애초부터 그런 조건을 감안하고 그에 맞게 전략을 잡았었고,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운송 시스템(목,유)은 물론 아예 근본적인 해결책(둔전)을 입안했습니다.
별다른 계책 없이 군재가 없어 그냥 기산 꼬라박만 했다는 게 아닙니다.

이미 이 부분에서 단지 속전을 안했다는 이유로 그의 전략과 전술에 대한 비판을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또한 아래 글의 답변 중에서 ' 솔직히 5차 북벌 때의 둔전도 성공했을지 모르겠다. ' 고 하셨지만,
이건 단지 제갈량 옹호/비판의 입장 차이에 따라 갈릴 이야기는 아니라고 보거든요.

적지나 다름 없는 곳 한복판에서 사실상의 전진 거점을 만들어 가장 고질적인 문제였던
군량 부족을 해결하려고 했던 노력이 비춰진다는 점은 명약관화한 사실이고,
전쟁하러 온 타국의 군대 주제에 토착 주민들이랑 새참타임 즐기는데 적장은 이를 가만 두고 봐야만 했었죠.
안 싸우려고 부절까지 받아놓은 상태였으니까요.
제갈량의 둔전 전략이 실패작이었다면 애초 이 부분에서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장 핵심인 속전 문제 말인데, 오히려 제갈량은 누구보다 속전을 지향했던 사람입니다.
그놈의 군량 문제 때문이지요.
오죽하면 배송지가 곽충5사를 비판하며 '제갈량이 군사 한 곳에 오래 둔 적이 없는데 무슨 소리냐' 라고 했을까요.

2차는 불과 20일짜리 속전, 3차 무도 음평 공략 역시, 길어봐야 2~3개월에 끝낸 성과입니다.
봄에 쳐들어가 그해 4월 손권 칭제 전에 끝낸 사업이니까요.
4차 상규, 노성전 역시도 3월에 조진이 죽었고, 6월에 퇴각했으니 앞에 1,2개월 덧붙인다 해도 3~5개월입니다.

오히려 정말 길어질 뻔했던 전투는 5차 하나 뿐이었지요.

그 마저도 속전의 단점 - 즉, 아무리 이겨봐야 맨날 군량이 발을 잡고 있으니 아예 보급 거점 만들고
진득하게 제대로 싸우는 것만 못하다. 는 결론에서 나온 대안이었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촉군과 붙기 싫어 안 싸우려고 별별짓을 다했던 건 위군이었죠.
합비전을 다양한 전략 전술이 나왔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하셨는데,
제갈량도 속전에 장기전에 유인계까지 다 써봤습니다. 오죽하면 여자 옷까지 보냈을까요.

특히 4차의 상규전의 경우, 노성전만큼 주목을 못 받지만 꽤나 1차 북벌의 모양새와 비슷하게 진행됩니다.

처음 기산을 포위하며 먹을것처럼 굴었던 까닭에 사마의가 상규 수비병 4천을 제외하고 전군을 보내 구원했지만
제갈량은 정작 기산엔 일부만 묶어두고 자기가 이끄는 본군은 상규로 돌아 곽회, 비요, 대릉을 격파합니다.
이에 놀란 사마의가 군사들을 다시 거두어 들이면서 대치상태로 들어가며 전투가 끝나지요.
노성전 역시, 왕평의 남부 공격군과 제갈량 본군이 나눠 싸운 전투였고, 여기서도 장합, 사마의를 깨며 대승합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3개월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군량 문제 때문에 보다 더 취약했을 퇴각 시에도 제갈량이 이끄는 촉군은
2차 땐 왕쌍, 4차 땐 장합을 사살합니다.

이 쯤 되면 표현하신대로 ' 죽었다 깨나도 위나라 못 이길 정도' 로 군재가 형편없다 말하는게 더 설득력 없어보이네요.

합비전은 모든 전략 전술을 다 써봤는데 위군이 다 막아냈으니 하늘이 손을 안들어줬다고 하셨는데
따지고보면 그거야말로 군재가 형편없는 부분이 아닐는지요. 이 부분은 조금 형평성이 어긋나셨던듯 싶습니다.

주유 남군 공략 같은 얘기도 누가 까심을 가지고 얘기하면 '그래서 결국 뭐, 오나라가 그거 기점으로 그 이상 나아갔나?'
라고 해버리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공으로 만들긴 쉽습니다. 하지만 주유의 군재가 어디 그런식으로 까일 일인가요.


사마의를 비롯한 위의 명장들이며 더 나아가서는 위군 전체가 촉에게 아예 전면전 금지를 외치며
학을 떼었던 시기는 제갈량 시대가 유일합니다.
건벽거수 말은 참 쉽고 실제로 효력을 거두긴했지만 북벌 정황을 보면 결국 쫄아서 못나왔다는 얘기일 뿐입니다.

4차 때는 그렇게 안싸운다고 노발대발하며 사마의를 겁쟁이라 놀리던 장수들이
정작 5차 때 총대장이 치욕을 당할 때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도 않고, 황제가 '싸우지 말라'는 부절을
갖고 오니 전군이 사기가 올랐다는 건 꽤나 재밌는 부분이지요.

정작 사마의가 행동을 개시한건 '제갈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지만,
그마저도 거짓인 듯 보이자 군대를 거두어 물러갔다는,
이건 그냥 두말할 필요없이 제갈량 한사람이 위군을 떨게했다는 얘기입니다.

그가 형편없는 군재를 지녔고, 그의 전략이 그저 변방에서 깔짝깔짝 대는 수준이었다면
나올 수 없는 장면입니다.

1차는 한번 출병하니 조야가 놀라고 3군이 우르르 항복할 정도였고,
그나마 면역이 생겼을 4차때에도 아예 조예가 직접 조진을 찾아가서 '서방의 일이 매우 중대하다' 고 언급할 정도로
위기로 여긴 사안인데 정작 후세에서 ' 별 일 아니었다' 고 해버리는건 너무 편파적인 시각이 아닐는지요.

제갈량이 창안, 발전시킨 팔진도의 경우는 서진에서도 사마염이 직접 장수들에게 익히라고 엄명을 내렸고,
이 결과로 명장 마륭은 팔진도를 써서 적은 병사로 독발수기능의 대군을 격파했습니다.
후대에 당 명장 이정이 개발한 육화진 역시도 팔진도의 아류였지요.

전 개인적으로 이거 하나만 봐도 북벌의 결과론적인 시각으로 제갈량 군재를 까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리저리 말이 많았습니다만 저도 제 논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1. 촉의 고질적인 군량문제는 제갈량의 북벌을 논할 때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사안이다.

2. 제갈량은 1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으며 그중에서도 5차의 전략은 핵심을 꿰뚫었던,
반드시 이행되어야 하는 '유일한 장기전' 이었다.

3. 오히려 제갈량 본인이 속전을 지향했고, 결과물도 좋았다.

4. 제갈량은 전투마다 다양한 전략을 제시했고, 퇴각 시에도 적을 사살, 패퇴시켰다.
-1차 기곡, 기산 병진
2차 속전(실패) 및 왕쌍 사살
3차 속전(성공) - 곽회 격파 및 무도 음평 공략
4차 속전 및 유인,별동전 - 상규, 노성전 대승. 사마의, 장합, 곽회 격파 및 퇴각시 장합 사살
5차 장기전, 퇴각시 사마의 본군 패퇴

5. 위군이 제대로 된 공격을 못하고 방어만 치중한 데에는 제갈량이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6. 그가 만든 진법인 팔진도는 대대로 명장들에게 쓰이고 그 효과도 좋았다.

7. 따라서 제갈량의 군재는 북벌 실패라는 결과론적인 관점 하나로 봐선 안된다.


다만 저 역시 마속 건은 쉴드쳐주기가 뭣한 부분. 또 다른 고견을 기다리겠습니다.

미백랑

2013.10.12
17:10:07
(*.233.63.81)
이에 대해서는 제가 따로 댓글을 다는 것보다는 제 견해를 담은 글을 보여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링크로 대체합니다.

http://blog.naver.com/begagi/50150340026

제갈량이 속전을 원했다고 하는데, 제가 말하는 속전은 그게 아닙니다. 제갈량의 북벌전략은 기본적으로 근거지 확보였어요.
융중계처럼 적의 심장을 단숨에 노리는 전략이 아니라, 우회하여 영토를 넓힘으로써 국력을 신장한다는 것이 1차적인 목적이었지요.
(아마 이것은 형주상실의 대안으로 여긴 행동이라 봅니다)

하지만 이럴 경우 근본적으로 국력싸움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갈량으로서는 상대를 완전히 압도하지 않는 이상 성공하기가 힘든 전략이었다는 겁니다.
그 예가 바로 4차 북벌이에요. 노성에서 사마의를 격파하는 공을 세웠음에도 군량이 딸려서 이엄의 거짓말이 나오고 결국에는 한중으로 철수하죠.
이는 바꿔 말하면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촉군이 농서에서 전투행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이 3개월이라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옹양주겸병은 3개월 가지고는 목적을 달성하기에 너무나 부족한 시간이죠.
제갈량의 통솔력, 지휘력, 전투력 다 긍정합니다. 하지만 가장 근간이 되는 북벌전략이 애초부터 오류였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이긴다... 라는 조금 과격한 표현을 쓴 겁니다.

사나이

2013.10.12
18:38:40
(*.103.140.13)
포스팅 잘 봤습니다. 한눈에 봐도 정성이 가득 담긴 멋진 글이네요. 추후에 한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포스팅은 5차 북벌에 주안점을 두고 쓰신 듯 한데, 이 토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전에 쓰신 글이니 만큼,
굳이 건덕지를 잡아 반론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융중계를 입안할 때와 북벌 시의 전략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손권이 형주방면 역할을 해줬다면 좋겠지만 상식적으로 아무리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남의 전쟁에 부를 때마다 매번 지원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실 촉-오간의 긴밀한 협동으로 같이 양방향에서 위를 몰아쳤다면 참 좋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남중 정벌이나 제갈량 사망 당시의 모습을 봐도, 서로 병력 늘려가며 견제한 마당에
연계 공격은 한 두번 정도 말고는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5차 때의 최초 연계도 서로 수차례 사절파견하고 제갈량과 손권(feat.육손)이 서로 선물 나눠가며
도모한 친목의 결과물이니만큼 제갈량이 이에 대한 노력이 없었다고 보긴 힘들지요.
이번에야말로 군량 문제 신경 쓸 것 없이 제대로 한번 붙어보겠다 하고 나섰는데
오가 패퇴하고 제갈량도 100 여일만에 죽어버리는 통에 뭔가 보여줄 기회도 없었다는게 아쉬울 따름.

결과적으로 옹양주 겸병은 본격적인 북벌 전진거점 확보의 의미로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마따나 '적의 심장부를 노리는' 전략은 이게 없으면 불가능하니까요.
과거에 마초가 동관을 습격해 중원을 흔들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런 지형적 이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영토확장 한마디로만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이점들이 있지요.
아예 군량 문제 해결에 강족 기병 연계 용이 + 그 지방 특유의 날랜 기병 전력 확보는 물론
제일 중요한, 적의 심장부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옹양 겸병은 단순히 질질 끌면서 지역 하나 따먹는 수준이 아니라
북벌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전략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통상의 촉 루트는 미백랑님도 동의하셨다시피 결코 북벌에 적합하진 않으니까요.

이 모든 문제가 결과적으론 촉의 지형 - 군량 운반의 문제에 귀속된다고 봅니다.
다른 방법을 생각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촉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는 것이지요.

제갈량 군재 까는 내용의 근본을 잘 들여다보면 위연 자오곡 계책 류의 '기공'을 활용 안하고
신중히 나갔다는 점을 들어 '너무 안정적인 공격법' 이라며 대담성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쉽게 내는데.
이렇게 따지면 육손이나 사마의처럼 신중하게 나간 장수들 다 까여야 됩니다.

사마의가 함부로 제갈량에게 공격을 걸지 않았던 이유,
육손이 주환의 계책을 쓰지 않았던 이유, 제갈량이 위연의 계책을 쓰지 않은 이유,
이 모두가 하나의 답으로 통일 됩니다. '너무 위험하며 실패할 시 리스크가 크다'

실제로 사마의는 여론에 밀려 한번 붙었을 때 제대로 패배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위나라 처럼 강대한 나라도 그렇게 한번 패배한 후론 맞붙을 엄두를 못냈는데
촉이 그런 기공을 함부로 썼다가 패배했을 때 다가오는 충격은 말할 필요도 없을테지요.

육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석정전에서 거의 전멸에 가깝게 조휴군을 털고 있던 오군이 가규의 기책에 교전도 없이 물러났던걸 보면
육손의 판단이 얼마나 명철했고 주환의 계책이 얼마나 허술했던 것인지 알 수 있다고 봅니다.
6만의 본군이 함께 군집해 있을 때도 위험하다 판단하여 퇴각했는데
홀로 1만의 병사를 이끌고 다 점령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지요.

사마의의 건벽거수나 육손의 신중함은 '시세 적절한 판단' 이라고 불리며 딱히 까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유독 제갈량의 자오곡 반대만큼은 기공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로 폄하되는데 저는 이게 딱히 형평성 있어보이진 않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지적할 점이,
4차 북벌은 군량이 부족해서 이엄의 거짓말이 나온게 아니라 장마 때문에 '군량 운반'이 안됐던 것입니다.
가뜩이나 험로라 정상적인 날에도 무리가 따르는데 장마까지 와버리면 게임 끝이죠.
그러니까 애초부터 이런 리스크를 지고, 극복해가며 싸울 수 밖에 없는데 제갈량의 전략을 검토하는데 있어서
그걸 함부로 무시해버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원하고 원하지 않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속전속결을 할 수 밖에 없었고,
한시라도 빨리 옹양주를 얻어서 그걸 발판삼아 나아가려한 전략이 그렇게 오류일까요?
굳이 꼬집자면 저는 오히려 5차 식의 보다 근본적인 전략을 좀 더 일찍 시행하지 않았던 걸 비판하고 싶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조건 속에서 최선의 답을 찾아 싸운 것이 제갈량의 북벌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백랑

2013.10.12
19:29:19
(*.233.63.81)
네, 의견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제갈량이 취한 전략&전술은 최선이 아니었다는 논리를 견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위 댓글들에서 얼추 언급했고 앞으로도 관련 논의가 나올 때마다 보충하면서 주장할 생각입니다.
나머지는 그때 또 논했으면 좋겠네요. 일단, 제가 처음에 제기한 장애요소와 변수와의 차이점에서
'군량보급의 애로나 위나라와의 국력차이는 변수가 아니라 장애요소다. 따라서 장기전보다는 속전을 추구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라는 문장으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사나이

2013.10.12
19:42:41
(*.103.140.13)
함께 좋은 의견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이렇게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주시면 감사히 앙 물지요.
덕분에 정사 다시 한번 더 헤집으면서 좋은 공부했습니다.

d12d13

2019.02.02
02:54:03
(*.198.228.131)
미백랑님은 항상 처음엔 격하고 지나친어조로 인물을 깎아내리다가 논파당하면 제 의견은 그런관점이 아니고...하면서 회피하는데 그 편협하고 편파적인 시각을 6년이 지난 지금은 고치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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