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체 글을 잘 쓰는 위인은 아닙니다만,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생각만 하기보다는 의견을 청해 듣는 게 좋겠다고 생각되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정황 해석에 맞춰 "의역"한다는 개념이라 조심스럽습니다만, 많은 의견을 제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문제 삼은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呂蒙稱疾詣建業,遜往見之,謂曰:「關羽接境,如何遠下,後不當可憂也?」蒙曰:「誠如來言,然我病篤。」遜曰:「羽矜其驍氣,陵轢於人。始有大功,意驕志逸,但務北進,未嫌於我,有相聞病,必益無備。今出其不意,自可禽制。下見至尊,宜好為計。」蒙曰:「羽素勇猛,旣難為敵,且已據荊州,恩信大行,兼始有功,膽勢益盛,未易圖也。」

[『三國志』, 卷五十八, 吳書十三 陸遜傳第十三]


1. 기존 해석

여몽(呂蒙)이 질병을 칭하여 건업으로 왔을 때, 육손은 가서 방문하고 이렇게 말했다.

"관우와는 국경을 접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멀리 내려왔습니까? 이후에 걱정할 만한 것이 없겠습니까?"

여몽이 말했다.

"진실로 당신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만, 나의 질병이 심합니다."

육손이 말했다.

"관우는 자신의 용기에 기대어 다른 사람을 능멸합니다. 처음으로 큰공을 세워 마음은 교만해지고 의지는 안일해졌으며 오직 북진에만 힘쓰고 우리에게는 경계의 마음도 두지 않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질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게 한다면, 틀림없이 더욱 방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 나가면, 그를 붙잡아 제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내려와 지존을 만나는 것은 마땅히 좋은 계략입니다."

여몽이 말했다.

"관우는 평소 용맹하여 그를 적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게다가 그는 벌써 형주를 점거하고 은혜와 신의를 대대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아울러 원래 공로가 있으며 담력과 기세가 성대하여 도모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정사삼국지방 with 파성넷, 정사삼국지, 육손전]


“始有大功”의 기존 해석은 “처음으로”라는 측면이 강합니다. 아무래도 始를 "비로소", 혹은 "처음으로"라고 보는 것은 문법상 응당한 법도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지만 "처음 혹은 비로소"라고 말할 만큼 공이 없었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혹자는 “大功”이라는 말에 주목하여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문이 드는 것은, 관우가 명장이니 아니니를 떠나서 관우 자체가 가진 위명이 고려한다면, 다소 과하게 낮추어 말한 처사로 고민해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2. “始有大功”, 始와 大功의 관계 재고

이하는 관우의 위명과 관련된 대략적인 사료들입니다.

이 해, 선주(先主)가 한중왕(漢中王)이 되어 황충을 후장군(後將軍)으로 임명하려 하니 제갈량이 선주(先主)를 설득하며 말했다.

“황충의 명망(名望)은 본래 관우, 마초와 동등하지 않았는데 이제 곧바로 동렬에 두려 하십니다. 마초, 장비는 가까이에서 그의 공을 직접 보았으므로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으나 관우는 멀리서 이를 들으면 필시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니 이는 불가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선주가 이르길 “내가 직접 이해시키겠소.”라 하고는 마침내 관우 등과 더불어 나란한 지위에 두고 관내후(關內侯)의 작위를 내렸다.
[정사삼국지방 with 파성넷, 정사삼국지, 황충전]

결국 장로는 달아났고 한중은 평정되었다. 유엽이 진언했다.

“명공께서 보병 5천을 거느리고 동탁을 주살시키고, 북쪽으로는 원소를 쳐부수고, 남쪽으로는 유표를 정벌하여 중국의 9개 주(州)와 1백 개의 군(郡)의 10분지 8이 병탄되었으니, 위업은 천하에 진동하며 위세는 나라 밖까지 떨치고 있습니다. 이제 한중을 공략하자, 촉나라 사람들은 풍향을 바라보며, 담(膽)이 깨지고 막아내는 데 실패할까 두려워하고 있으니, 이전 것을 미루어 진격하시면, 촉나라는 격문(檄文)만 전해도 평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비(劉備)는 인걸(人傑)로서 도량이 있고 계략도 있지만, 촉나라를 수중에 넣은 지 얼마 안되므로 촉나라 사람들은 아직 믿고 의지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제 한중을 깨뜨렸으므로 촉나라 사람들은 놀라고 두려워하며 그 형국은 자연스럽게 기울어지게 됩니다. 귀신과 같은 명공의 통찰력을 이용하여, 그들이 기울어지는 것을 틈타 무너뜨리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그들을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두어 제갈양은 다스리는데 밝아 재상이 되고 관우와 장비는 삼군(三軍)을 뒤덮을 만한 용맹으로 장군이 되고, 촉나라 백성들이 이미 안정되었다면, 험준한 곳을 거점으로 하여 요충지를 지켜도 이길 수 없습니다. 지금 공격해서 취하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조조는 듣지 않고,[주] 대군을 데리고 돌아갔다. 유엽은 한중으로부터 돌아온 이후에 행군장사(行軍長史)가 되어 영군(領軍)의 직책을 겸하였다.

- 중략 -

황초 원년(220), 유엽을 시중으로 삼고 관내후의 작위를 하사했다. 손권이 관우를 주살한 후에 문제는 조칙을 내려 모든 신하들에게 물어 유비가 관우를 위하여 오나라에 보복하려는지 않으려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모두들 논의함에 있어서 한결같이 말했다.

“촉나라는 작은 나라일 뿐이며, 명장(名將)으로는 오직 관우만 있었습니다. 관우가 죽고 군대는 무너졌으며, 나라 안은 근심하고 두려워하는데, 다시 출동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유엽만은 혼자 이렇게 말했다.
[정사삼국지방 with 파성넷, 정사삼국지, 유엽전]

태조가 형주를 정벌하니, 유비는 오나라로 달아났다. 의논하던 사람들이 손권이 반드시 유비를 죽일거라 여기니, 정욱이 이를 헤아려 보고서 말하길

"손권이 이제 막 자리에 오른지라 해내(海內)가 그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조공께선 천하에 적이 없고 이제 막 형주를 점령하셔서, 그 위엄이 강표[江表=장강 이남 지역. 즉 동오]에 떨쳤으니, 손권에게 비록 지모가 있다한들 능히 혼자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유비에겐 빼어난 명성이 있고, 관우와 장비는 모두 1만 명을 상대할 수 있으니, 손권이 필히 그를 빌어 우리를 막으려고 할 것입니다. 세력을 풀어 나누기는 어렵고, 유비의 도움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으니, 또한 죽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라 했다. 손권이 과연 유비의 군대와 함께 태조를 막았다.
[정사삼국지방 with 파성넷, 정사삼국지, 정욱전]

손권이 군대를 보내 선주를 도와 조공을 막았고 조공이 군을 이끌고 물러났다. 선주는 강남(江南-장강 남쪽)의 여러 군을 거두어들이고는 으뜸 되는 큰 공훈을 세운 사람들을 봉배(封拜)하니 관우를 양양(襄陽)태수 탕구장군(盪寇將軍)으로 삼아 강북(江北-장강 북쪽)에 주둔하게 했다. 선주가 서쪽으로 익주(益州)를 평정할 때 관우를 동독형주사(董督荊州事-형주의 사무를 지휘 감독)로 임명했다.
[정사삼국지방 with 파성넷, 정사삼국지, 관우전]

노숙이 죽자, 여몽은 서쪽으로 육구에 주둔하며 노숙 군대의 인마 1만여 명이 모두 여몽에게 속했다. 또 한창태수(漢昌太守)에 배수되고, 하준(下雋) 유양(劉陽) 한창(漢昌) 주릉(州陵)을 식읍으로 했다. 관우와 땅을 나눠 접경하고 있었는데, 관우가 매섭고 빼어난데다 (오를) 병합하려는 마음이 있지만 또 그 나라가 상류에 있어 형세상 오래가기 어려움을 알았다.
[정사삼국지방 with 파성넷, 정사삼국지, 여몽전]

손권은 주유를 편장군으로 제수하고, 남군태수를 겸임토록 했다. 하준, 한창, 유양, 주릉을 그의 봉읍으로 삼게 하고, 강릉에 주둔하여 지키도록 했다. 유비는 좌장군의 신분으로 형주목을 겸임하고 공안에 주둔했다. 유비가 경까지 와서 손권을 알현했을때 주유가 상소를 올려 말했다.

「유비는 용맹하여 영웅다운 자태를 갖고 있으며, 관우와 장비처럼 곰과 호랑이 같은 장수를 끼고 있으므로 틀림없이 오랫동안 몸을 굽혀 다른 사람의 아래에 있을 사람이 아닙니다. 제 생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유비를 오군으로 불러놓고, 그를 위해 궁전을 성대하게 짓고 미녀와 진귀한 완구를 많이 주어서 그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관우와 장비 이 두 사람을 나누어 각기 한쪽에 배치하고 저 같은 자로 하여금 그들을 지휘하여 싸우게 한다면, 대사는 안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토지를 나누어 주어서 그들이 기반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고, 이 세 사람을 모아 함께 변방 땅에 있도록 한다면, 아마 교룡이 구름과 비를 얻어 끝내 연못 속의 물건이 안되는 것과 같이 될 것입니다.」
[정사삼국지방 with 파성넷, 정사삼국지, 주유전]

신 송지가 말하건대 「유후(劉后=유비)가 애쓰느라 촉을 험한 요새(관하(關河=함곡관과 황하)로 삼고 형초(荊楚)를 줄기로 삼자, 관우는 병사를 면수와 한수 위로 올리니, 그 뜻이 상국(上國)을 능멸하려 했으니, 비록 주인을 바로잡고 패업을 정하고자 하였다 해도 그 공을 기필할 수 없었지만, 그 위세가 멀리까지 떨쳤고 그 경략한 땅을 가졌다. 손권이 앙심을 품고, 위(魏)를 도와 위해(危害)를 제거하니, 이것이 종실자제의 근왕(勤王)의 군대를 잘라버리게 되었고, 조공의 도읍을 옮기는 계책을 이행하게 되어서, 한을 돕는 계책은 여기에서 그치었다. 의기(義旗)가 가리키는 곳에는 의당 손씨가 있었다. 삼가 대의로써 유비를 꾸짖는다면 답할 게 없다는 게 무슨 걱정이겠는가! 또한 관우와 유비는 서로가 마치 손발과 같아, 분노와 통한이 너무 깊으니, 이 오만하고 성긴 편지가 군대를 되돌릴 수 있겠는가? 이 편에 실린 것은 실로 글의 낭비다.
[정사삼국지방 with 파성넷, 정사삼국지, 제갈근전 배송지주]

24년(219년), 관우가 양양에서 조인을 포위하자, 조조는 좌장군 우금을 보내 주인을 구원하도록 했다. 때마침 한수가 불었기 때문에 관우는 수군을 이용하여 우금 등의 보병과 기병 3만 명을 전부 포로로 잡아 강릉으로 압송했다. 단지 양양성만은 함락시키지 못했다. 손권은 내심 관우를 두려워했지만, 겉으로는 자신의 공을 알리고 싶은 생각으로 조조에게 편지를 써서 관우를 토벌하는데 자신이 힘을 보태기를 청했다.
[정사삼국지방 with 파성넷, 정사삼국지, 제갈근전 오주전]

하나하나 세세하게 언급하면 좋겠습니다만, 이미 많이 알려진 내용이라 사료를 제시하는 것 정도로 그치겠습니다. 물론 지금 언급한 사료들이 “관우가 도대체 무슨 공을 세웠는데?”라는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을 주진 않습니다. 오히려 관우가 일정 이상의 거품을 가졌을 것이라는 의혹에 부채질을 하는 면이 없지 않죠. 여튼 이 부분은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기에 딱히 이렇다 할 의견을 제시하지는 않겠습니다.

정황은 이렇습니다. 질병으로 인해 건업으로 돌아온 여몽에게 육손이 질문합니다. 관우와 접경하고 있으면서도 “後不當可憂也(뒤가 근심스럽지는 않은가?)”라고 묻고, 여몽 또한 근심스럽다고 대답합니다. 이에 초점을 놓고 보면, 정황상 육손의 상황 분석 혹은 해석이라고 봐야 하는 만큼, 이 말의 명확한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당시 시기적 문제와 함께 결부시켜서 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저 대화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건 육손의 상황 분석하는 시점이 오나라 영역에 대한 명백한 적대적 행동을 하지도 않았던 시기라는 점입니다. (사실 이곳 분들에게 이러한 정황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만...) 긴장 상태는 지속되고 있겠지만요.

우스운 건, 공이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관우에게 오나라가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공이 있어야 “이 사람이 뛰어나다, 뛰어나지 않다.”를 분명하게 가릴 수 있을 것입니다만, 사료상으로는 거의 이름값에 지나지 않습니다. 육손의 말마따나 “始有大功”, 즉 이제야 처음으로 대공을 세웠다고 본다면, 기존의 긴장도를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 더 맞겠지요. 물론 관우가 호승심이 강하고, 무력이 뛰어나며, 전략 혹은 전술적 측면에서 재능을 보인 바가 있어 긴장한다고 한다면 일견 옳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始有大功”에 모순이 생기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는 “始有大功”이라는 문구가 한 번만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육손은 여몽에게 “始有大功,意驕志逸,但務北進(기존 해석 : 처음으로 대공을 세우게 되니 마음은 교만해지고 의지는 안일해졌으며, 오직 북진에만 힘쓰고 있다.)”고 한 이후, 여몽 또한 “兼始有功,膽勢益盛,未易圖也。(기존 해석 : 아울러 비로소 대공을 세워 담력과 기세가 성대해져 도모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처음으로 대공을 세웠다는 해석이 맞다면, 이후 나오는 “意驕志逸”는 다소 직접적인 연관을 갖지 못하는 말이 됩니다. 이 일견 옳게 보이지만, 의지가 안일해졌다라고 하기에는 이후 북진에 힘쓰는 것과 정면으로 대치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맥락상 원만한 연결이 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후 문장이 “今出其不意,自可禽制。(지금 불지불식간에 나간다면, 절로 잡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또한 여몽도 “이제야 대공을 세웠다”고 하는 만큼, “담력과 기세가 성대해”졌다고는 하지만 육손 말마따나 관우는 북진에만 매진하고 있는 만큼 막연히 “도모하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모호하지요.

아무튼 이러한 문제를 넘겨 두고, 육손의 말이 사실이라면, 실상 애써 관우를 경계했던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도록 만듭니다. 그간 無大功이었던 관우가 용맹하다는 이유만으로 지나친 대응으로 일관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위와 오 모두가 그 인물 하나에 경계하는 것이 이상할뿐더러, 이후 관우 북진 과정에서의 위의 대처 과정 혹은 오의 대처 과정이 지나칠 정도로 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始有大功”의 시점을 조금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테면 한중왕 즉위, 즉 유비의 개국 시점과 연관 지어 보는 것이 어떨까 하고 말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始有大功”을 보면, 아래와 같이 성립하게 됩니다.

1) 유비의 한중왕 즉위(새로운 국가의 성립)
2) 관우의 형주 관리(유비의 등극에 대해 큰 역할을 하지 못함)
3) 유비의 한중왕 즉위 이후 첫 대공
4) 국가 성립에 직접적인 큰 역할을 하진 못했지만, 개국 이후 첫 대공을 세웠기 때문에 일종의 자격지심을 해소. 그렇기 때문에 북진에 매진.


3. 정황상의 의역

어디까지나 정황과 그저 단상만 가지고 이은 것이라 구체적이진 않습니다만, 지금까지의 전제만으로도 새로운 해석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기반으로 의역 겸 재해석을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始有大功,意驕志逸,但務北進 : (개국 이래) 처음으로 대공을 세워 의지가 교만해지고 방자해져, 오직 북진에만 힘을 쓰고 있다."

"蒙曰:「羽素勇猛,旣難為敵,且已據荊州,恩信大行,兼始有功,膽勢益盛,未易圖也。 : 관우는 본디 용맹하여 그를 대적하기 어렵다. 또한 이미 형주를 점거하여 은혜와 신의를 대대적으로 행하는 데다, (개국 이래) 첫 대공을 세워 담력과 기세가 성대하니 도모하기 어렵다."


이와 같이 본다면, 관우의 북진에 대한 각국의 태도 변화와 대처가 일견 분명해집니다. 게다가 기존에 있었던 논쟁과 별개로 관우 북진 자체에 의미도 분명해지기도 합니다. 또한 앞서 언급하였던 “意驕志逸” 또한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여몽과 육손이 말한 始를 개국 이래 혹은 國始 정도로 파악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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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휘

2016.06.06
19:20:07
(*.33.178.84)
삼도에서 나온 논의를 추가합니다.
혹자가 開始로 읽고, 이를 안량 참살, 즉 관우가 시작부터 대공을 세웠다로 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전체 맥락에 오히려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므로, 이를 정황에 맞게, 맥락에 맞게 수정하여야 합니다.

開始라는 의미로 파악한다면, 그건 안량 참살이라기보다는 관우의 북진으로 봐야 더 적합합니다. 안량 참살이 등장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문맥이기 때문이죠. 또한 북진의 시기와 일치하는 만큼, 그것을 기준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 따라서 "(북진을) 시작하자 대공을 세워 의지가 교만해지고 방자해져, 오직 북진에만 힘을 쓰고 있다.", "이미 형주를 점거하여 ~, (북진을) 시작하자 대공을 세워 담력과 기세가 성대하니 도모하기 어렵다." 정도가 되겠네요. 일견 옳게 보입니다. 진수의 문장 구성 특징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육손의 말에 북진이 이미 들어가 생략했다고 볼 수도 있을 여지가 있으니까요.

dragonrz

2016.06.06
21:39:05
(*.226.145.238)
전체적으로 하신 말씀을 다 읽어봤는데 독해력이 안좋아서 인지 잘 이해가 안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본문에는 해석하는데 (건국이래)라는 말을 집어넣었고 댓글을 보니 (북진을)이라는 말을 넣으셨는데 어디서 그런 내용이 나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始의 의미를 開始로 본다면 응당 '큰 공 세우는 걸 개시하여' 마음이 교만하고 방종하여 운운해야 맞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 큰공을 북진과정에서 세운 것으로 본다면 굳이 앞에 (북진을)이라는 표현을 넣을 필요가 없고 (건국이래)라는 표현은 더욱 의구심이 듭니다. 그리고 당연히 육손이나 여몽이 관우의 평생을 조감해서 지금 처음 공을 세운다고 말한것도 아닐것으로 생각됩니다. 본래 전쟁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니 지금 전쟁을 시작해 공을 세우기 시작하였으니 마음이 거기에 쏠려 방비를 소홀히 할 거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혹 깊은 내용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는게 아닌가 두렵네요.

사마휘

2016.06.07
00:46:50
(*.33.178.84)
일견 이해가 가질 않는다면, Dragonrz님이 독해력이 떨어지시는 것이 아니라 제가 글을 잘못 쓴 것이지요. 죄송합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다듬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삼도에도 동일하게 올렸습니다. 그곳에서 의견을 제시해 주신 분이 몇 분 계시는데, 그 중 始를 현대 중국어로 봤을 때 開始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즉, 문장 구조가 開始有(해당 중국어로는 뭘 쓸지 의문입니다만)大的功績 정도로 구성될 것이고, 그렇다면 "시작하면서부터 (안량 참살이라는) 대공이 있어"로 읽힌다고 하셨구요. 저는 이 의견에 맥락상 맞지 않는다며 회의적이었고요. 그래서 차라리 開始로 본다면 맥락상 "(북진을) 시작하자 대공을 세워~" 정도로 읽는 것이 더 옳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야 육손의 시유대공과 여몽의 겸시유공을 일관된 맥락에서 읽을 수 있으니까요.


(건국 이래)라는 표현이 들어간 건, 아무래도 정황상 의역을 하면 그러하지 않을까라는 의미였습니다. 시기상 한중왕 즉위와 일치하니까요. 그렇다면 "국가가 시작(国始)되자마자큰 공을 세웠다" 정도로 파악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해 본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본문에서 언급했으나, 지금은 북진, 즉 "전쟁을 시작하고부터" 정도로 파악하는 것이 더 적합하겠다고 생각 중입니다. 그래서 구태여 (북진을)이라고 넣었던 것이고요. (북진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도, 단순히 문맥상 받아들이기 편하게 하기 위함입니다만.. 허허)


사실 제 의도대로 읽어주신 게 맞습니다만, 구구절절 설명이 길지 않았나 싶습니다.


괜히 이 해석 문제를 들고 왔다는 생각도 합니다만, 파성에 있는 기존 육손전 해석이 문자적으로만( 말 그대로 "처음" 정도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받아들이기에 써 본 글입니다.


고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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