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국지 유후주지 번역본은 야매읹님의 일어 중역본이 있지만 경요 원년부터는 번역되어 있지 않아서 원문 번역을 시도해봤습니다.

=위키소스(https://zh.wikisource.org)에서 제공하는 화양국지본을 번역했습니다.

=원문은 검은색, 주석은 파란색으로 구분하고, 주석들의 배치는 최대한 원문의 배치를 따랐지만 번역에 따라서 일부 바꿨습니다.

=본문에 대한 번역은 어느정도 자신이 있지만 주석들은 최대한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역자주와 함께 번역했으니 다소 오류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말미의 왕숭과 상거의 평론은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서 번역했지만 몇몇 부분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셔서 읽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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景耀元年,維以誕破,退。還成都,復拜大將軍。史官言景星見。大赦,改元。

경요(景耀) 원년(元年-258), 제갈탄()이 격파당하자() 강유()는 퇴군하였다(退). 성도(成都)로 돌아오자(), 대장군(大將軍)으로 복배(復拜)하였다. 사관(史官)이 경성(景星)이 보였다고() 말하였다(). 대사(大赦-대사령)을 내리고, 연호를 고쳤다(改元).


宦人黃皓與書令陳祗相表裏,始預政。

환인(宦人) 황호(黃皓)() 상서령(書令) 진지(陳祗)는 서로 표리(表裏-뗄 수 없음을 뜻함)하였는데, 일찍히() (진지가 황호를) 조정의 일에 참여시켰다(預政).


皓自黃門丞至今年奉車騎〈宋、明、刻本俱作騎。錢寫本同《三國志》作都。〉尉、中常侍。姜維雖班在祗右,權任不如。

황호()가 스스로() 황문승(黃門丞)에 이르었는데(), 금년(今年-258)에 봉거기위(奉車騎尉), 중상시(中常侍)에 임명되었다. 비록() 강유(姜維)의 반열(班在)이 더 높았지만(祗右), 권임(權任-권한과 신임)은 같지 아니하였다(不如).

[① 송(), (), ()의 각 판본(刻本)에서는 모두() ()라고 저술한다(). 전사본(錢寫本)은 《三國志(삼국지)》와 동일하게() (騎가 아닌) ()라 저술한다().-역자주: , , 청의 화양국지 판본은 봉거기위(奉車騎尉), 삼국지에서는 봉거도위(奉車都尉).]


蜀人無不追思董允者。

촉의 사람(蜀人)중 동윤(董允)을 추사(追思-추억, 회상)하지 아니하는 자()가 없었다(無不).


時兵車久駕,百姓疲弊,太〈吳、何、王本作大。〉中大夫〈《三國志》作「中散大夫」。〉譙周著《仇國論》,言可文王,難漢祖。人莫察焉。

이때 병거(兵車-전쟁에 쓰이는 수레)를 오랬동안 몰아대니(久駕-역자주: 여러차례 전쟁을 일으켰다는 뜻인 듯.), 백성(百姓)들이 피폐(疲弊)해졌는데, 태중대부(太中大夫)①② 초주가《구국론(仇國論)》을 저술하여(), 문왕(文王)이 될 수 있다고 하였지만, 한조(漢祖-유방)이 되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이를 주의깊게 살펴보지(察焉) 아니하였().

[① 오본(), 하본(), 왕본(王本) (太가 아닌) ()라고 저술한다().]

[②《삼국지(三國志)》에서는 (太中大夫가 아닌)「중산대부(中散大夫)」라 저술한다().]


征北大將軍宗預自永安徵,拜〈顧廣圻校稿云:「考《三國志》,是軍大將軍。此恐誤也。」廖本注云,「當作軍,見《三國志》」。今按,《常志》與《陳志》恆多歧互。往往能證《陳志》之訛。時陳祗為尚書令加大將軍則預不能亦為鎮軍矣。「南」字不誤。說詳注釋。〉將軍,

領兗州刺史。

정북대장군(征北大將軍) 종예(宗預)가 몸소 영안(永安)에서 진수하였는데(), 진남장군(南將軍), 영연주자사(領兗州刺史)로 삼았다().

[① 고광기(顧廣圻)가 교고(校稿)하여 이르기를(): 「《삼국지(三國志)》를 살필 경우(), 진군대장군(軍大將軍)이 옳다(). 이는() 아마도() 오류라 할 수 있다(誤也).」 요본(廖本)의 주석()에 이르기를(), 「마땅히() (南이 아닌) ()이라 저술해야 하며(), 《삼국지(三國志)》에서 볼 수 있다(). 지금()《상지(常志)》와() 《진지(陳志)》를 살필 경우(), () 자주() 둘을 오가곤 한다(-역자주: 확실하지 않은 의역). 때때로(往往) 《진지(陳志)》의 그릇됨(之訛)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能證). 이때() 진지(陳祗)는 상서령(書令)을 역임하였는데() 진군대장군(軍大將軍)을 더하는 것은() 법칙에 의하면() 불능(不能)하니 또한 진군()을 역임한 것이다(). 「진남()」이라는 글자()는 그릇된 것이 아니다(不誤). 자세히 진술하여(說詳) 주석()을 설명하다()]


以襄陽羅憲」〔領〕〈依《晉書憲傳》改。《巴志》亦云「領軍」。〉軍,督永安事。吳大臣廢其主亮,立孫休,來告難,如同盟也。

이에 양양(襄陽) 사람 나헌()을 영군(), 독영안사(督永安事-영안의 사무를 감독하게 하였다)로 삼았다. ()의 대신(大臣-손침)이 황제() 손량()을 폐()하고, 손휴(孫休)를 세웠는데, 어지러움()을 내고(來告)하니, 동맹(同盟) (예전과) 같게 하였다().

[《진서(晉書)나헌전(憲傳)》에 의거하여() (에서領으로) 고친다().《파지(巴志)》또한() 이르기를() (軍이 아닌)「영군(領軍)」이라 한다.]


大將軍維議,以:「漢中錯守諸圍,適可禦敵,不獲大利。不若退據漢、樂二城,積穀堅壁。聽敵入平,〈顧校稿云:「廣圻按,後作坪。」〉且重關守以禦「大」〔之〕〈廖本注云:「當作之,句。見《三國志》。」茲據改。〉敵攻關不克,野無散穀,千里懸糧,自然疲退。此殄〈元本作餌。〉敵之術也。」於是督漢中胡濟卻守漢壽,將軍王含守樂城,護軍蔣「舒」〔斌〕〈《函海》本注云:「《蜀書》蔣琬、姜維二傳俱作蔣斌。」顧廣圻校稿亦註「斌」字。廖本注云:「當作斌,見《三國志》。」〉守漢城。

대장군(大將軍) 강유()가 논의하여(), 이를 근거로 시행하였다():「한중(漢中)에서 여러 위(諸圍)를 조수함(錯守)으로, 어적(禦敵-외적을 막음)을 할 수 있지만,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지 아니합니다. 한성(漢城)과 낙성(樂城)으로 퇴거(退據)하여 곡식을 쌓아두고(積穀) 견벽(堅壁)하는 것만 못합니다(不若). ()이 평지에 들어왔다는(入平) 소식을 듣는다면(), 또한() 중관(重關)을 진수()하여 적의 공세를(敵攻) 막아낸다면(以禦)()을 이기지 못할 것이고(不克), 들에도() 흩어져있는 곡식(散穀)이 없는데다가(), 천리(千里)나 되는 길로 곡식을 운반해야하니(懸糧), 자연히(自然) 피곤하게 되어() 퇴군할 것입니다(退). 이는() ()을 모조리 섬멸시킬() 수 있는 술책(之術)입니다().」이를 따라서 독한중(督漢中) 호제(胡濟)를 한수(漢壽)로 물러나서 지키도록 하고(卻守), 장군(將軍) 왕함(王含)에게 낙성(樂城)을 지키도록 하고(), 호군(護軍) 장빈(蔣斌)에게 한성(漢城)을 지키도록 하였다.

[① 고교고(顧校稿)에서 이르기를():「고광기(廣圻)가 살펴보기에는(),이후() (平이 아닌) ()이라 저술한다().]

[② 요본(廖本)의 주석()에서 이르기를(): 「마땅히() (大가 아닌) ()라 저술해야 한며(),구절()이 끊겼다().《삼국지(三國志)》에서 보인다().」이를() 근거()삼아 고친다().]

[③ 원풍본() (殄이 아닌) ()라 저술한다().]

[④《함해(函海)》본주(本注)에서 이르길:「《촉서(蜀書)》장완전(蔣琬傳)과 강유전(姜維傳)에서 모두 (장서蔣舒)가 아닌 장빈(蔣斌)이라 저술한다. 」고광기(顧廣圻)가 교고(校稿)하여 또한 풀어쓰기를(亦註), 「빈()」이라는 글자라 한다(). 요본(廖本)의 주석()에서 이르길: 「《삼국지(三國志)를 보니, ()이라 쓰는게 마땅하다(當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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