而秘書令河南〈王、浙本作。〉正與皓比屋周旋,皓從微至著,不憎正,又不愛之,官不過六百石,常免於憂患。〈張、吳、何、王、浙、石本有小注云:「按《晉百官表》,厥字龔襲亦義陽人。建字長元。」張佳胤錄裴注文也。〉

그러나 비서령(秘書令) 하남(河南) 사람 극정()은 황호()와 함께 일을 처리하였는데(比屋周旋), 황호()가 미천하게 시작하여(從微) 귀한 신분에 이르었는데(至著-至貴의 오기가 아닌가 합니다), 원래() 극정()을 미워하지 아니하고(不憎), () 사랑하지도 아니하였는데(不愛之), 관직() 6백석()을 지나지 아니하였지만(不過), 일정하게() 우환(憂患)을 면하게 되었다().

[ 왕본(), 절본(浙本)에서는 극()이라 저술한다.-역자주: , 극정()이라 서술한다는 뜻.]

[② 장본(), 오본(), 하본(), 왕본(), 절본(), 석본(石本)에 기재된() 소주(小注)에 이르기를(): 「《진백관표(晉百官表)를 살펴보면()동궐()의 자()는 공습(龔襲)이며 또한() 의양인(義陽人)이라 한다. 번건()의 자()는 장원(長元)이다.장가윤(張佳胤)이 기록하기를() 배주(裴注)의 문장()이라 한다().]


五年,春正月,西河王琮卒。大將軍維惡皓之恣擅,後主,欲殺之。後主曰:「皓趨走小臣耳。往者董允切齒,吾常恨之。君何足介意。」維本羈旅自託,而功效無稱,見皓枝附葉連,懼於失言,遜辭而出。

(경요) 5 (262) () 정월(正月), 서하왕(西河王) 유종()이 졸()하였다. 대장군(大將軍) 강유()는 황호()가 자천(恣擅-멋대로 하는 것)하는 것을 미워하여(), 후주(後主-유선)에게 아뢰어(), 그를 죽이도록 하였다(欲殺之). 후주(後主-유선)가 말하기를:황호()는 추주(趨走-종종걸음으로 빨리 걷는 것)하는 소신(臣耳)에 불과하오. 옜날에 동윤이 (황호를) 절치(切齒-이를 갈며 증오함)하여, ()가 늘() 이를 한스럽게 여겼었소(恨之). 그대()가 어찌 개의(介意-마음데 두고 생각함)할 일이겠소? 강유가 본래() 기려(羈旅)가 되어 몸소 (나라에) 의탁하였는데, 공효(功效)라 칭할게 없으니(無稱), 황호(와 유선이) 지부엽련(枝附葉連-관계가 긴밀함을 뜻함)임을 보자(), 실언(失言)했음을 두려워하여(), 공손히 사례하고(遜辭) 물러났다().


後主敕皓詣維陳謝。維誘〈《三國志》裴注引此作說。〉皓求沓中種麥,以避內逼。皓承白後主。

후주(後主-유선) 황호()에게 칙서를 내려 명하여() 강유()에게 진사(陳謝-사죄)하도록 하였다. 강유()는 황호()를 달래어() 답중(沓中)에서 맥(-, 보리)을 농사할 것이라 청하니(), 이로써() 안으로의 핍박을(內逼) 피하게 되었다(). 황호()는 이를 받아들여() 후주(後主)에게 아뢰었다().

[ 삼국지(三國志)의 배주(裴注)에서는 이 구절을 인용하여(引此) (이 아닌) ()이라 저술하였다().]


秋,維出侯和,魏將鄧艾所破,還駐沓中。皓協比閻宇,欲廢維樹宇。故維懼不敢還。〈張、吳、何、王、浙、石本有小注曰:「按,沓中即古松州。去文州三百里。」亦張佳胤所增注。〉

가을(), 강유()가 후화(侯和)로 출병하여(), ()의 장수() 등애(鄧艾)에게 격파당하니(所破), 답중(沓中)으로 돌아와 머물렀다(還駐). 황호(皓協)가 염우(閻宇)와 협비(協比-결탁)하였는데, 강유()를 폐하고() 염우()를 대신하도록() 하고자 하였다(). 그런 까닭에(), 강유()는 두려워하여() 감히()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 장본(), 오본(), 하본(), 왕본(), 절본(), 석본(石本)에 기재되어 있는() 소주(小注)에 이르기를():살펴보면()답중(沓中)은 곧() 예전의() 송주(松州)이다. 과거의() 문주(文州) 삼백리(三百里)이기도 하다. () 장가윤(張佳胤) 주석을 덧붙였다(增注).]


六年春,魏相國晉文王命征南〈廖本注云:「當作西,見《三國志》。」〉將軍鄧艾、西將軍鍾會、雍州刺史諸葛,「益州刺史師纂李本作慕。」五道伐蜀。〈顧廣圻校稿云:「艾自狄道,自祁山,會分從駱谷、斜谷、子午谷。是五道。」〉

(경요) 6 (263) (), ()의 상국(相國) () 문왕(文王-사마소)이 정남장군(征南將軍) 등애(鄧艾), 진서장군(西將軍) 종회(鍾會), 옹주자사(雍州刺史) 제갈서(諸葛)에게 명하여익주자사(益州刺史) 사찬(師纂)을 이본(李本)에서는 모()라 저술하였다.-역자주: 사찬(師纂)이 아닌 사모(師慕)라 적었다는 뜻. 다섯 갈래의 길(五道)을 통해 촉()을 정벌하도록 하였다().

[① 요본주(廖本注)에서 이르길():「《三國志(삼국지)를 보면() 마땅히() (이 아닌) (西)라 저술해야 한다.-역자주: 정남장군이 아닌 정서장군.]

[ 고광기(顧廣圻)가 교고(校稿)하여 이르길():「등애(艾自)는 적도(狄道)를 통해 가고제갈서()는 몸소() 기산(祁山)을 통해 가고, 종회()는 군사를 나누어() 낙곡(駱谷), 사곡(斜谷), 자오곡(子午谷)을 통해 갔다(). 이것이 바로 다섯 갈래의 길이다(五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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