恃維牙爪。〈元與廖本作「牙爪」。他各本皆倒作「爪牙」。〉欲遣維前將軍伐中國。

강유()에게 의지하여() 아조(牙爪-어금니와 발톱, 용맹한 장수)로 여겼다. 강유()를 전봉(前將-선봉)으로 보내() 군사를 몰아(軍伐) 중국(中國-)을 정벌하고자 하였다().

[① 원풍본()() 요본(廖本)아조(牙爪)라 저술하였다()다른() 각본(各本)에서는 모두() 뒤집어서() 조아(爪牙)라 저술하였다().]


失策,又知會〈錢寫本此下衍意字。他各本無。〉志廣,會誅北〔來〕諸將。〈張、吳、何、王、浙、石本作「北來諸將」。張佳胤依裴注引增也。〔欲〕欲字原倒在下,當移此。〉

강유()가 이미() 계책을 잘못 꾸민데다가(失策), () 종회()의 뜻이 크다는 것(志廣)알았기에(), 종회()에게 북에서() () 제장(諸將)들을 베도록(-혹은 주살하도록) 하였다().

[① 전사본(錢寫本)은 이에() 뒤에() ()라는 글자()를 배치하였다(). 다른() 각본(各本)에는 없다().-전사본에는 가 아닌 를 배치했다는 듯.]

[ 장본(), 오본(), 하본(), 왕본(), 절본(), 석본(石本) (北諸將이 아닌) 북래제장(北來諸將)-()에서 온() 제장(諸將)이라 저술하였다(). 장가윤(張佳胤)은 배주(裴注)에 의거하여() () 더하였다(增也). ()이라는 글자()는 원래() 뒤집어서() 뒤에 있었는데(在下)마땅히() 이를() 옮겨야 할 것이다().]


諸將死,徐「欲」殺會,盡坑魏兵,還後主。〈張、吳、何、王、石本作「還復蜀祚」。浙本改「還後主」。〉

제장(諸將)들을 죽인 이후(), (강유는) 천천히() 종회()를 살해하고자 하여(), 위의 병사(魏兵)들은 모두 구덩이에 파묻고(盡坑), 후주(後主)가 돌아오도록 하였다().

[① 장본(), 오본(), 하본(), 왕본(), 석본(石本)이 저술하기를()촉조(蜀祚-촉의 제위)를 원래대로 회복하도록 하였다(還復). 절본(浙本)이 완개()하여환후주(還後主)라 하였다.]


密書通〈裴注引作與。〉後主曰:「願陛下忍數日之辱,臣欲使社稷危而復安,日月幽而復明。」魏太后崩,會命〔諸〕將發喪,〈各本舊無諸字。廖本注云:「按《通鑑考異》引,有諸字。當補。」〉因欲誅〈錢、《函》本訛作追。〉之。

밀서(密書)를 통해() 후주(後主-유선)에게 아뢰었다():원컨대() 폐하(陛下)께서 몇일(數日)동안의() 모욕()을 참으시면(), ()이 사직(社稷)이 위태로워도(危而) 다시 안전하게 할 것이며(復安), 일월(日月)이 빛을 잃었으나(幽而) 다시() 밝게 빛나도록() 하겠습니다.()의 태후(太后)가 붕()하였는데, 종회는 제장(諸將)들에게 발상(發喪)하도록 명하여, 말미암아() (제장들을) 베고자 하였다(誅之).

[ 배주(裴注)에서도 인용한다(引作).]

[② 각 판본(各本)의 경우()에는 (제장諸將) ()라는 글자()가 없다(). 요본(廖本)의 주석()에서 이르길():「《통감고이(通鑑考異)를 살펴서() 인용할 경우(), ()라는 글자()가 존재한다(). 마땅히() 고쳐야한다().]

[③ 전본()()() (가 아닌) 라고 잘못 저술한다(訛作).]


諸將半入,而南安太守胡烈等知其謀,燒成都東門,以襲殺會及維、張翼、後主太子璿〈何、王、浙、石本作。〉等。

제장(諸將)들중 절반() (태후의 발상을 위해) 들어왔는데(), 그러나() 남안태수(南安太守) 호열(胡烈)의 무리()는 그 꾀(其謀) (이미) 알아서(), 성도(成都)의 동문(東門)을 불태웠는데(), 이로써() 급습하여() 종회()와 더불어() 강유(), 장익(張翼), 후주(後主-유선)의 태자(太子) 유선()의 무리()를 살해하였다().

[ 하본(), 왕본(), 절본(), 석본(石本) (이 아닌) 라 저술한다().]


軍眾抄掠,數日乃定。

군사의 무리(軍眾)가 초략(抄掠-폭력으로 빼앗음, 학살도 포함될듯)하여, 몇일(數日) 이후 비로소() 진정되었다(). 


三月,後主家東遷洛陽。

3, 후주(後主-유선)의 거가(-온 집안)이 낙양(洛陽)으로 동천(東遷)하였다


丁亥,封安樂縣公,食邑萬〈元本作万。〉戶。賜絹萬匹,〈元本作万疋。〉奴婢百人,他物稱此。

정해(丁亥), (유선을) 안락현공(安樂縣公)으로 봉하여(), 식읍(食邑) 1만호(萬戶)를 주었다. 비단() 만필(萬匹)과 노비(奴婢) 백인(百人)을 주고(), 다른 물건(他物)들은 이에 알맞게 내렸다(稱此).

[① 원풍본() (이 아닌) ()이라 저술한다().]  

[② 원풍본() (萬匹이 아닌) 만필(万疋)이라 저술한다().]


弟兄〈各舊本俱作「兄弟」,廖本倒作「弟兄」。〉〈《三國志後主傳》無「弟兄」二字,郡作三。〉都尉,侯者五十餘人。

(유선의) 제형(弟兄)의 자손(子孫)은 군도위(郡都尉)로 삼고,  50여명(五十餘人)을 후()로 봉하였다.

[ () 구본(舊本) 모두()「兄弟(형제)라 저술하는데()요본(廖本)은 뒤집어서()「弟兄(제형)라 저술하였다().]

[삼국지(三國志)후주전(後主傳)에는제형(弟兄)이라는 두 글자(二字)가 없고()(郡都尉에서) ()을 삼()이라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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