以譙周全國濟民,封城陽亭侯。秘書令正,舍妻子,隨侍後主,相導威儀,封關內侯。於是書令樊建、殿中督張通、侍中張紹亦封侯。〈此下舊各本連,當空格。〉

초주(譙周)는 온 나라(全國-전국)의 백성을 구제했음으로(濟民-제민), 성양정후(城陽亭侯)로 봉하였다(). 비서령(秘書令) 극정()은 처자(妻子)를 내버려두고(), 후주(後主-유선)를 수시(隨侍-따라서 모심)하였는데, (유선의) 위의(威儀-예법에 맞는 몸가짐)를 돕고() 이끌어서(), 관내후(關內侯)로 봉해졌다(). 이에(於是) 상서령(書令) 번건(樊建), 전중독(殿中督) 장통(張通), 시중(侍中) 장소(張紹) 역시 후()로 봉해졌다().

[① 이하(此下-문장의 뒷부분을 뜻하는 듯) 옛날() 각본(各本)은 서로 잇게 하는데()마땅히() 공격(空格-공백을 둠)하는 것이 맞다.-역자주: 아마 옛날 각본에서는 侍中張紹亦封侯 직후 劉氏凡得蜀五十年正와 연결한다는 것같음.]


劉氏凡得蜀五十年正,稱尊號四十二年。

유씨(劉氏)가 촉()을 얻은지() 무릇() 오십년(五十年)이 되었고, 존호(尊號)를 칭한지() 42(四十二年)이 되었다.

蜀郡太守王崇論後主曰:「昔世祖內資神武之大才,外拔四「屯」〔七〕〈顧廣圻校稿云:「屯,當作七。《東京賦》曰:授鉞四七。丁卯五月,得此一條。」廖本援之注。續云,「薛綜注:四七,二十八將」,則顧槐三補也。〉之奇將,猶勤而獲濟。然乃〈錢本下有外字,他各本無。張、吳、何、王、浙、石本作後。〉登天衢,車不輟駕,坐不安席。非淵明弘鑒,則中興之業何容易哉。後主庸常之君,雖有一亮之經緯,內無〈元及廖本作附。讀「疏附」。他各本皆訛作骨附。顧廣圻云:「附見《詩》。」〉之謀,外無爪牙之將,焉可包〈錢、劉、李、《函》本作苞。〉括天下也。」

촉군태수(蜀郡太守) 왕숭(王崇)이 후주(後主-유선)를 논하며() 말하였다():() 세조(世祖-광무제 유수)는 신무(神武-뛰어난 무용)와 대재(大才-탁월한 재주)를 안으로의 힘으로 삼고(內資), 밖으로는 사칠(四七)의 기장(奇將-뛰어난 장수)을 선발하여(), 가히 부지런하였기에(猶勤而) 성공을 꾀할 수 있었다(獲濟). 틀림없이 그리하여(然乃) 천구(天衢-천자의 길?)를 오를 수 있었으니(), 수레()도 가(-임금의 수레)에 그치지 아니하였고(不輟), 자리()에 앉아도() 편안하지 아니하였다(不安). 근본이 뛰어나거나(淵明) 식견이 넓지(弘鑒) 아니하니(), 중흥(中興)() 업적()이 어찌() 쉽겠는가(容易)? 후주(後主-유선)는 용상(庸常-범상함)한 군주()였으며, 비록() 제갈량() 한명()의 경위(經緯)가 있었지만(), 안으로는() 소부(疏附-아래를 잘 통솔하고, 위로는 잘 통솔함)의 꾀()가 없었고(-역자주: “할줄 몰랐으니라고 볼 수 있을 듯) , ()으로는 조아(爪牙-발톱과 어금니, 용맹한 장수를 뜻함)의 장수()가 없었으니(), 어찌(焉可) 천하(天下)를 포괄(包括)할 수 있었겠는가?

[① 고광기(顧廣圻)가 교고(校稿)하여 이르기를():「()을 마땅히() ()이라 저술해야 한다(). 동경부(東京賦)에서 이르기를(): 사칠(四七)에게 월(-도끼)을 내렸다(). 5(五月) 정묘(丁卯), 이에() 일조(一條)를 얻게되었다(). 요본(廖本)에 원지(援之)가 주를 달았다(). 병속()에 이르기를(),「설종(薛綜)이 주석을 달기를()사칠(四七)은 이십팔장(二十八將)이다, 이에 따라서(), 고괴삼(顧槐三) (내용을) 고쳤다(補也).]

[② 전본(錢本) (然乃) ()에 외()라는 글자()가 있고()다른() 각본(各本)에는 없다(). 장본(), 오본(), 하본(), 왕본(), 절본(), 석본(石本)은 후()라고 저술한다().]

[③ 원풍본()() 요본(廖本)라고 저술한다.(소부)疏附」라고 읽는다().  다른() 각본(各本)들은 모두() 骨附라고 잘못 저술한다(訛作). 고광기(顧廣圻)가 이르기를():()()에서 보인다().]

[ 전본(), 유본(), 이본(),()() (이 아닌) 라고 저술한다().]


又曰:「鄧艾以疲兵二萬〈元本作万。〉〈張、吳、何、王、浙、石本作遠。〉出江油。姜維十萬之師,案道南歸,艾〈字當作易。〉成禽。禽艾已訖,復還拒會,則蜀之存亡未可量也。乃迴道之巴,遠至五城。使艾輕進,徑及成都。兵分家滅,己自招之。然以鍾會之知〈元本作志。廖本作知,他各本作智。〉略,稱子房;姜維陷之莫至,剋揵〈錢、劉、李、張、吳、何、王、浙、石本作「剋捷」。〉籌斥●〈元、錢、《函》、廖本作●。劉、李本作。張、吳、何、王、浙、石本作策。〉相應優劣。惜哉!」愚以維徒能謀一會,不慮窮兵十萬難制御,美意播越矣。

또 말하기를(又曰):등애(鄧艾)는 피곤한 병사(疲兵) 2(二萬)을 이끌고 강유(江油-지명)에서 쏟아져 나왔다(溢出). 강유(姜維)는 십만(十萬)의 군대()를 일으켜(), 안도(案道-목적으로 이끎)하기 위해 남쪽()으로 귀환하여서(), 등애()는 성금(成禽-집에서 기르는 동물, 사로잡혔다는 뜻인 듯)이 되었다(). 등애()를 사로잡는 것을() 얼마되지 아니하여() 끝마치고(), 다시() 돌아와() 종회()를 막아내었더라면(), () ()의 존망(存亡)을 가늠할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未可量也). 다만() (강유는) ()의 도로()에 돌아와서(), 멀리() 오성(五城)에 이르었다(). 설사(使) 등애()가 가볍게 전진하였다라도(), 지름길을 통해(徑及) 성도(成都)에 이를 수 있었을 것이다병사()를 분할하여() 나라를 멸망하였지만, 스스로()가 자초(自招)한 것이다(). 틀림없이() 종회(鍾會)의 지략(知略), 자방(子房)의 것이라 칭해졌다고 한다; 강유(姜維) (적이) 이르지 아니하였음에도(莫至) 함락되었는데(陷之), (강유와 종회의) 책략/지모()를 상응(相應)하여 우열(優劣)을 가린다면 (강유가) 극첩하여(剋捷-승리하여) (종회의) 꾀를 물리칠(籌斥) 것이다.() 아깝도다(惜哉)! (-상거) 생각에는() 강유()은 오직() 종회() 한명()의 능력()을 갖췄으니,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여(不慮) 궁하게 되고() 십만(十萬)의 병사()를 제어(制御)하는데 어려워 하여(), 아름다운 뜻(美意)을 가지고 파월(播越)했을 뿐이다().

[① 원풍본() (이 아닌) 이라 저술한다().] 

[② 글자()는 마땅히() (이 아닌) ()이라 저술해야 한다().]

[③ 원풍본()에서는 (이 아닌) ()라 저술하였다. 요본(廖本)은 지()라 저술하며()다른() 각본(各本)은 나란히() ()라고 저술한다().]

[④ 원풍본(), 전본(),(), 요본(廖本)이라 저술한다(). 유본(), 이본(李本) (이 아닌) ()이라 저술한다(). 장본(), 오본(), 하본(), 왕본(), 절본(), 석본(石本) (이 아닌) ()이라 저술한다().]

[⑤ 전본(), 유본(), 이본(), 장본(), 오본(), 하본(), 왕본(), 절본(), 석본(石本) (이 아닌)「剋捷(극첩)이라 저술한다().]

[※ 해당 문장의 일역문은 姜維は之を莫至に(いくらもなく)陷れたのだから,揵相優劣 (その知略を鍾と優劣で相させると克つものであったといえよう).이다.]


譔曰:〈元、《函海》作「讚曰」。〉諸葛亮雖資英霸之能,而主非中興之器,欲以區區之蜀,假已廢之命,北吞強魏,抗衡上國,不亦難哉。似宋襄求霸者乎!然亮政脩民理,威武外振。爰迄琬、,遵脩弗革,攝乎大國之間,以弱為強,猶可自保。姜維才非亮匹,志繼洪軌,民嫌其勞,家國亦喪矣。

가르치며 말한다(譔曰): 제갈량(諸葛亮)이 비록(영패(英霸)의 재능을 갖췄으나(), 주인(-유선)이 중흥(中興)의 그릇()이 아니였고(), 변변찮은(區區之) ()으로 이미() 폐기된 ()(廢之命)을 따라 강한 위()를 북탄()하고자 하였으며, 상국(上國-)과 항형(抗衡-맞먹다, 필적하다)하였으니, 또한() 어렵지() 아니하였던가(). 송양(宋襄-송양공)이 패자(霸者)를 탐했던() 것과 닮았도다()! 틀림없이() 제갈량은() 정사를 수행하여(政脩) 백성을 다스렸고(民理), ()으로는 위무(威武)를 떨쳤다(). () 장완()과 비의()에 이르어서는(), ()를 좇을 뿐 바꾸려 하지 아니하고(弗革), 대국(大國)들 사이에서(之間) 다스림으로써(攝乎) 약한 것(以弱)을 강하게 만들었으니(為強), 오히려() 스스로를 지키는 것(自保)이 옳았다(). 강유(姜維)는 재능()이 제갈량()의 짝()이 아니였으나(), 그 넓은 법도(洪軌)를 계승하였으니(志繼), 백성들은 그의 공로(其勞)를 싫어하였으며(), 집안과 나라(家國) 역시() 잃어버렸도다(喪矣)!

[① 원풍본(),함해(函海)본은 (譔曰)이 아닌찬하여 말한다(讚曰)이라 저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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