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의 경우에는 번역된 제갈탄전에 기재되어 있는 미번역 주석이나 파성넷의 한문정사 파트에 있는 것들을 발췌했습니다.

-대부분 이미 자치통감에서 번역된 것을 참고하는 격이기에 아주 새로운 내용은 없지만 또한 심각한 오역은 없으리라 자신합니다. 하지만 저로써도 발언이나 표문 등은 그리 자신있지가 않고 자치통감에서 편집한 내용은 제 스스로 해석하며 번역해야 했기 때문에 오역이 발생할 소지가 존재합니다.

-원문과 제가 해석한 번역을 같이 병기해서[ex: "말하였다(曰)"] 오류가 있다면 쉽게 꼬집을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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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語曰:是時,當世俊士散騎常侍夏侯玄、尚書諸葛誕、鄧颺之徒,共相題表,以玄、疇四人為四聰,誕、備八人為八達,中書監劉放子熙、孫資子密、吏部尚書衛臻子烈三人,咸不及比,以父居勢位,容之為三豫,凡十五人。帝以構長浮華,皆免官廢錮。


세어(世語)에서 말하길(曰): 이때(是時), 당세(當世-당대) 준사(俊士-준걸을 의미함) 산기상시(散騎常侍) 하후현(夏侯玄), 상서(尚書) 제갈탄(諸葛誕), 등양(鄧颺)이 무리를 지어(之徒), 서로를 품평하며 글을 쓰곤 하였는데(共相題表), 이에 하후현(玄)의 부류(疇) 네명(四人)을 사총(四聰이라 하였으며, 제갈탄(誕) 등 여덟명(八人) 모두(備)를 팔달(八達)이라 하였다. 중서감(中書監) 유방의 아들(子) 유희(熙), 손자(孫資)의 아들(子) 손밀(密), 이부상서(吏部尚書) 위진(衛臻)의 아들(子) 위열(烈)의 삼인(三人) 모두(咸) (하후현, 제갈탄 등에게) 견줄 바가 아니였지만(不及比), 아버지(父)의 세위(勢位)를 받아들여, 삼예(三豫)라 하였다. 이들은 총 15인(十五)이었다. 황제(帝-조예)는 이들이 겉만 화려할 뿐(浮華)이라 여겼으며 모두 관직으로부터 폐고(廢錮-종신토록 관리가 될 수 없게 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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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書曰:誕賞賜過度。有犯死者,虧制以活之。


위서(魏書)에서 이르기를(曰):제갈탄(誕)이 상사(賞賜-칭찬하고 물품을 줌)하는 바가 과도(過度)하였다. 살인을 저지른 자(犯死者-범사자)가 있었는데(有), 제도를 굽혀서(虧制以) 목숨을 보존하게 하였다(活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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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語曰:司馬文王既秉朝政,長史賈充以為宜遣參佐慰勞四征,于是遣充至壽春。

세어(世語)에서 이르길(曰): 사마문왕(司馬文王-사마소)이 이미(既) 조정(朝政)을 장악했을 무렵(秉), 장사(長史) 가충(賈充)은 이로써 참좌(參佐)를 마땅히 보내어 사정(四征)장군들을 위로(慰勞)해야 한다 하였는데, (사마소는) 이를 올바르게 여겨서 (가)충(充)을 수춘(壽春)으로 보냈다(遣).


充還啟文王:「誕再在揚州,有威名,民望所歸。今徵,必不來,禍小事淺;不徵,事遲禍大。」乃以為司空。


가충(充)이 돌아와서(還) 문왕(文王-사마소)에게 아뢰었다(啟): 「제갈탄(誕)이 양주(揚州)에 주둔하여, 위명(威名)이 있으니, 백성들은 (제갈탄에게) 소귀(所歸-따르다, 의탁하다)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望). 지금(今) 소환한다면(徵), 필히(必) 돌아오지 않고(不來), 일(事-반란)을 미숙하게 일으켜(淺) 화가 적을테지만(禍小); 불러오지 않는다면 (不徵) 일(事-반란)이 지체되어(遲) 화가 더욱 클 것입니다(禍大)」. 이로써(乃以) (사마소는 제갈탄을) 사공(司空)으로 삼았다(為).


書至,誕曰:「我作公當在王文舒後,今便為司空!不遣使者,健步齎書,使以兵付樂綝,此必綝所為。」乃將左右數百人至揚州,揚州人欲閉門,誕叱曰:「卿非我故吏邪!」徑入,綝逃上樓,就斬之。


조서(書)가 도착하자(至), 제갈탄(誕)이 말하였다(曰): 「내(我)가 삼공(公)에 이르는 것(作)은 마땅히(當) 왕문서(王文舒-왕창) 이후(後) 일텐데, 지금(今) 편히(便) 사공(司空)이 되겠소(為)! 사자(使者)를 보내지 아니하고(不遣), 건보(健步)가 조서를 가져오니(齎書), 만일(使) 이로써(以) 악침(樂綝)에게 병사를 준다면(兵付), 이는(此) 필히(必) 악침(綝)이 꾸민 일이오(所為). 」 곧(乃) 좌우(左右)의 백명(百人)을 거느리고(將) 양주(揚州)에 이르니, 양주인(揚州人)들이 문을 닫았는데(閉門), 제갈탄(誕)이 꾸짖으며 말하였다(叱曰):「경(卿)은 내가 아니었다면(非我故) 관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吏邪)!」곧바로 들어서니(徑入), (악)침(綝)은 상루(上樓)로 도망쳤는데, 이에 목을 베었다(就斬之).


魏末傳曰:賈充與誕相見,談說時事,因謂誕曰:「洛中諸賢,皆願禪代,君所知也。君以為云 何?」


위말전(魏末傳)에서 이르기를(曰): 가충(賈充)과(與) 제갈탄(誕)이 상견(相見)하여, 서로 말을 주고 받았는데(談說), 이에 제갈탄(誕)에게 일컫어 말하였다: 「낙양(洛)에 있는 모두가 어진데(中諸賢), 모두(皆) 선대(禪代-선양)하여, 군주의 일(君所)을 주관하기를(知) 원합니다(願). 군(君)께서는 이로써 어찌 생각하십니까? 」


誕厲色曰:「卿非賈豫州子?世受魏恩,如何負國,欲以魏室輸人乎?非吾所忍聞。若洛中有難,吾當死之。」充默然。


제갈탄(誕)이 얼굴색이 바뀌어(厲色) 말하였다(曰): 「경(卿)은 가예주(賈豫州)의 아들(子)이 아니오(非)? 세상(世)이 위(魏)의 은혜(恩)를 입었는데(受), 어찌하여(如何) 나라(國)를 저버리려 하고(負), 위나라 황실(魏室)을 다른 사람에 줄 수 있겠소(輸人乎)? 내(吾)가 듣고 참을 수 있는(忍聞) 일(所)이 아니오(非). 만약(若) 낙양에서(洛中) 어려운 일이 일어난다면(有難) 나(吾)는 마땅히(當) (이를 위하여) 죽겠소(死之). 」가충(充)은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였다(默然).


誕既被徵,請諸牙門置酒飲宴,呼牙門從兵,皆賜酒令醉,謂眾人曰:「前作千人鎧仗始成,欲以擊賊,今當還洛,不復得用,欲蹔出,將見人游戲,須臾還耳;諸君且止。」乃嚴鼓將士七百人出。


제갈탄(誕)이 이미(既) 소환되었을 무렵(被徵), (누군가가) 청하여(請) 모든(諸) 아문(牙門)장군들을 위해 술자리를 벌였는데(置酒飲宴), 아문(牙門)장군들의 종병(從兵-따르는 병사들)을 불러서(呼), 모두에게(皆) 취하도록(令醉) 술을 내리자(賜酒), 여러 사람(眾人)들이 일컫어(謂) 말하였다(曰): 「전(前)에 제작한(作) 천명(千人)을 위한 개장(鎧仗-갑옷)이 비로소(始) 완성되었으니(成), 도적(賊)들을 치고자(擊) 해야 합니다(欲). 지금(今) 마땅히(當) 낙양(洛)으로 돌아가야 하지만(洛), (낙양으로 떠난다면) 다시 돌아와(復) 얻은 것을 쓰지(得用) 못할 것입니다(不). 잠시(蹔) 출병하고자(出) 해야 하거늘(欲), 장수(將)들은 사람(人)들을 보며(見) 놀이를 즐기니(游戲), 모름지기(須) 돌아올 것(還耳)을 권합니다(臾). 제군(諸君)들 또한(且) 그만두어야 합니다(止). 」이에(乃) 장엄한 북소리를 울리며(嚴鼓) 장사(將士) 칠백명(七百人)을 출병하였다(出).


樂綝聞之,閉州門。誕歷南門宣言曰:「當還洛邑,蹔出游戲,揚州何為閉門見備?」前至東門,東門復閉,乃使兵緣城攻門,州人悉走,因風放火,焚其府庫,遂殺綝。


악침(樂綝)이 이에 대해 듣자(聞之), 주문(州門)을 닫았다(閉). 제갈탄(誕)이 남문(南門)을 넘으며(歷) 선언(宣言)하기를: 「마땅히(當) 낙읍(洛邑-낙양)으로 돌아가야 할텐데(還), 잠시 출병하여 놀이를 즐길 뿐이니, 양주(揚州-악침)께서는 어찌하여(何為) 문을 닫습니까(閉門見備)? 」앞서서(前) 동문(東門)에 이르자(至), (악침이) 동문(東門)을 다시 닫으니, 이에(乃) 병사(兵)를 연성(緣城)으로 보내서(使) 문(門)을 공격하자(緣), 주의 사람(州人)들이 모두 달아나니(悉走), 바람에 따라서(因風) 방화(放火)하여, 부고(府庫)를 불태우고(焚), 마침내(遂) 악침(綝)을 살해하였다(殺).


誕表曰:「臣受國重任,統兵在東。揚州刺史樂綝專詐,說臣與吳交通,又言被詔當代臣位,無狀日久。臣奉國命,以死自立,終無異端。忿綝不忠,輒將步騎七百人,以今月六日討綝,即日斬首,函頭驛馬傳送。若聖朝明臣,臣即魏臣;不明臣,臣即吳臣。不勝發憤有日,謹拜表陳愚,悲感泣血,哽咽斷絕,不知所如,乞朝廷察臣至誠。」


제갈탄(誕)이 표문(表)을 올려 말하였다(曰):「신(臣)은 나라(國)의 중임(重任)을 받들어(受), 동쪽에 있는(在東) 병사(兵)를 거느렸습니다(統). 양주자사(揚州刺史) 악침(樂綝)은 오로지(專) 속일 뿐이며(詐), 신(臣)과(與) 오(吳)나라가 교통(交通-내통)한다 유세하여(說), 또(又) 이르기를(言) 조서를 받아(被詔) 마땅히 신의 자리(臣位)를 대신해야 한다 하였는데(代), 날이 지나갈수록(日久) 무상(無狀-버릇없음)해 하는 바입니다. 신(臣)은 나라(國)의 명령(命)을 받들어(奉), 자립(自立)하여 죽더라도(以死), 이단(異端)으로 끝마치지 아니할 것입니다(終無). 악침(綝)의 불충(不忠)에 분하여(忿), 오로지(輒) 보병(步)과 기병(騎) 7백명(七百人)을 거느려서(將) 금월(今月-이달)의 6일(六日)에 악침(綝)을 토벌하니(討), 바로 그 날(即日-즉일)에 그의 머리를 베어(斬首), 함두(函頭-머리를 담은 상자)를 역마(驛馬)를 통해 전송(傳送)하옵니다. 이와 같이(若) 성조(聖朝)의 명신(明臣)으로써, 신(臣)은 곧(即) 위(魏)의 신하(臣)입니다. 명신(明臣)이 아니라면(不), 신(臣)은 곧(即) 오(吳)의 신하(臣)입니다. 승리하지 못하여(不勝) 울분을 표출하는(發憤) 날이 있더라도(有日), 근배(謹拜-삼가 절한다)하여 표(表)를 올려 어리석음을 늘어놓습니다(陳愚). 비감(悲感-슬픔)하며 피를 토해내고(泣血), 경열(哽咽-오열함)하며 단절(斷絕)하고자 하니, 가는 바를 알지 아니하더라도, 조정(朝廷)에 구걸하여(乞) 신(臣)이 진실에 도달하는 것(至誠)을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


臣松之以為魏末傳所言,率皆鄙陋。疑誕表言曲,不至於此也。


신(臣) 송지(松之)는 위말전(魏末傳)이 전하는(所言) 모든 것이(率皆) 비루(鄙陋)하다 생각합니다(以為). 제갈탄(誕)이 표(表)에서 말하는 바(言)가 곡해되었으리라(曲) 의심되며(疑), 이런 지경(於此)에 이르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不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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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書曰:誕賞賜過度。有犯死者,虧制以活之。

위서(魏書)에서 이르기를(曰):제갈탄(誕)이 상사(賞賜-칭찬하고 물품을 줌)하는 바가 과도(過度)하였다. 살인을 저지른 자(犯死者-범사자)가 있었는데(有), 제도를 굽혀서(虧制以) 목숨을 보존하게 하였다(活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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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晉春秋曰:蔣班、焦彝言于諸葛誕曰:「朱異等以大眾來而不能進,孫綝殺異而歸江東,外以發兵為名,而內實坐須成敗,其歸可見矣。今宜及眾心尚固,士卒思用,并力決死,攻其一面,雖不能盡克,猶可有全者。」

한진춘추(漢晉春秋)에서 이르기를(曰): 장반(蔣班)과 초이(焦彝)가 제갈탄(諸葛誕)에게 말하여(言于) 아뢰었다(曰): 주이(朱異) 등(等)이 많은 무리(大眾)를 이끌고 왔지만(來而) 나아갈 수 없었기에(不能進), 손침(孫綝)은 주이(異)를 살해하고(殺) 강동(江東)으로 돌아가고(歸), 밖으로는(外以) 군사를 일으키라는(發兵) 명령을 내렸리면서(為名), 안으로는(內) 실상(實) 앉아서(坐) 성패(成敗)만을 기다리고 있으니(須), 그가 돌아간(其歸) 것이 과연 옳은지 봐야합니다(可見矣). 지금(今) 마땅히(宜) 무리의 마음(眾心)이 오히려 굳게 뭉쳐 있으며(尚固), 사졸(士卒)들도 (자기를) 사용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으니(思用), 힘을 합쳐(并力) 죽음을 결심하고(決死), 한쪽 방면(一面)을 공격한다면(攻), 비록 전부 이길 수(盡克) 없더라도(不能), 오히려(猶可) 안전해질 수 있습니다(有全者). 」

文欽曰:「江東乘戰勝之威久矣,未有難北方者也。況公今舉十餘萬之眾內附,而欽與全端等皆同居死地,父子兄弟盡在江表,就孫綝不欲,主上及其親戚豈肯聽乎?且中國無歲無事,軍民並疲,今守我一年,勢力已因,異圖生心,變故將起,以往準今,可計日而望也。」班、彝固勸之,欽怒,而誕欲殺班。二人懼,且知誕之必敗也,十一月,乃相攜而降。

문흠이 말하였다:「강동(江東-오나라)이 군사가 싸워 이긴 기세(戰勝之威)에 올라탄지가(乘) 오래이고(久), 북방(北方)에 어려움(難)이 있지 아니하였습니다(未有). 게다가(況) 공(公)은 지금(今) 십여만(十餘萬)의 무리(眾)를 일으켜(舉) (오나라에) 내부(內附-귀순)하였는데, 이 문흠(欽)과 전단(全端) 등(等)도 모두(同) 죽기 위해(死地) 자리 잡은데다가(居), 부자(父子)와 형제(兄弟)가 모두(盡) 강표(江表)에 있는데(在), 나아가(就) 손침(孫綝)이 하고자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不欲), 주상(主上)과 그(其) 친척(親戚)들이 어찌 즐겨만 듣겠습니까(肯聽乎)? 또 중국(中國-위)이 무사(無事)한 해를 보내지 아니하여(無歲), 군사(軍)와 백성(民)이 나란히(並) 피로한데다가(疲), 지금(今) 우리(我)들을 지키느라(守) 1년(一年)을 보냈으니, 세력(勢力)에 이미(已) 이로인해(因) 반역하려는(異圖) 마음(心)이 생겨서(生), 변고(變故)가 장차(將) 일어날지언데(起), 그동안(以往) 지금을 본보기로 했음에도(準今), 일수만을 세는 것(計日)을 옳게 여기기를(可) 바라는 것입니까(而望也)? 」 장반(班)과 초이(彝)가 굳게(固) 권하자(勸之), 문흠(欽)이 분노하여(怒), 그럼으로써(而) 제갈탄(誕)은 장반(班)을 살해하고자(殺) 하였다(欲). 그 두명(二人-장반, 초이)는 두려운데다가(懼), 또(且) 제갈탄(誕)이 필히(必) 패할 것(必)을 알았기에(知), 12월(十一月), 이에(乃) 서로를 이끌어서(相攜) 항복하였다(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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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晉春秋曰:文欽曰:「蔣班、焦彝謂我不能出而走,全端、全懌又率眾逆降,此敵無備之時也,可以戰矣。」誕及唐咨等皆以為然,遂共悉眾出攻。

한진춘추(漢晉春秋)에서 이르길(曰): 문흠(文欽)이 말하였다(曰):「장반(蔣班)과 초이(焦彝)는 우리(我)가 나가서(出) 도주하지(而走) 못할 것이라(不能) 이르었는데(謂), 전단全端과 전역全懌 또한又 무리를 이끌고率眾 거꾸로逆 항복하였으니降, 이는 적이 대비하지 않은 기회임으로, 이로써 싸우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제갈탄誕과(及) 당자(唐咨) 등 모두가 틀림없다 여겨서, 마침내 하나(共悉)의 무리로 출병하여(出) 공격하였다(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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干寶晉紀曰:數百人拱手為列,每斬一人,輒降之,竟不變,至盡,時人比之田橫。吳將于詮曰:「大丈夫受命其主,以兵救人,既不能克,又束手於敵,吾弗取也。」乃免冑冒陳而死。

간보(干寶)의 진기(晉紀)에서 이르기를(曰): 수백인(數百人)에게 공수(拱手-손을 마주잡는 행위)하여 나란히 서있게 하고(列), 매번(每) 한 사람(一人)을 참하니(斬), 번번히(輒) 항복하시키려 하였으나(降之), 도리어(竟) 변하지 아니하여(不變), 모두 죽게되자(至盡), 시인(時人-당대인)들은 전횡(田橫)과 견주어 비교하였다(比之). 오장(吳將) 우전(于詮)이 말하였다(曰): 「대장부(大丈夫)는 주인(其主)의 명령(命)을 받들어(受), 병사를 이끌고(兵) 사람을 구원하는데(救人), 이미(既) 이길 수 없게 되고(不能克), 또(又) 적에게(於敵) 손이 묶이게 되었으니(束手), 나(吾)라면 택하지 못할 것이다(弗取也). 」이에 투구를 벗고(免冑) (적의) 진(陳)으로 달려가(冒) 죽었다(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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干寶晉紀曰:初,壽春每歲雨潦,淮水溢,常淹城邑。故文王之築圍也,誕笑之曰:「是固不攻而自敗也。」及大軍之攻,亢旱踰年。城既陷,是日大雨,圍壘皆毀。誕子靚,字仲思,吳平還晉。靚子恢,字道明,位至尚書令,追贈左光祿大夫開府。

간보(干寶)의 진기(晉紀)에서 이르기를(曰): 본래(初), 수춘(壽春) 매년마다(每歲) 큰 비가 내렸는데(雨潦), 회수(淮水)가 넘치니(溢), 항상(常) 성읍(城邑)이 잠겼다(淹). 그런고로(故) 문왕(文王-사마소)는 위(圍)를 축조하였는데(之築), 제갈탄(誕)은 비웃으며(笑之) 말하였다(曰):「이것(是-수춘)은 (이미) 단단하여(固) 공격할 수 없는 바인데(不攻) (위를 축조하는 것은) 스스로를 패배 시킬 뿐입니다(自敗也). 」(이후) 대군(大軍)이 공격을 하자(之攻), 극심한 가뭄이(亢旱) 해를 넘겼다(踰年). 성(城)이 이미(既) 함락되자(陷), 그날(是日)에 큰 비가 내렸는데(大雨), 위루(圍壘-위圍의 보루인듯)를 모두(皆) 훼손되었다(毀). 제갈탄(誕)의 아들(子) 제갈정(靚)은 자(字)가 중사(仲思)였는데, 오(吳)가 평정되자(平) 진(晉)으로 돌아왔다(還). 제갈정(靚)의 아들(子) 제갈회(恢)의 자(字)가 도명(道明)이었는데, 지위(位)가 상서령(尚書令)에 이르고(至), 좌광록대부(左光祿大夫)로 추증(追贈)되어 개부(開府-부서를 열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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傅子曰:宋建椎牛禱賽,終自焚滅。文欽日祠祭事天,斬于人手。諸葛誕夫婦聚會神巫,淫祀求福,伏尸淮南,舉族誅夷。此天下所共見,足為明鑒也。

부자(傅子)에 이르기를(曰): 송건(宋建)은 소를 잡아서(椎牛) 빌며 굿하였는데(禱賽), 끝에는(終) 스스로를 불살라서(自焚) 죽었다(滅). 문흠(文欽)이 어느날(日) 하늘(天)에 제사(祭事)를 지냈는데(祠), 사람의 손(人手)을 베었다(斬). 제갈탄(諸葛誕) 부부(夫婦)가 신무(神巫-무당)를 취화(聚會-모음)하였는데, 음사(淫祀)를 지내 구복(求福)하니, 복시(伏尸-엎어진 시체)로 회남(淮南)에 남고, 온 일족(舉族)은 모두 죽임당하였다(誅夷). 이를(此) 천하(天下)의 모두가 보게 되었으니(共見), 명감(明鑒-밝은 거울)이라 하여도 족할만하다(足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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習鑿齒曰:自是天下畏威懷德矣。君子謂司馬大將軍於是役也,可謂能以德攻矣。夫建業者異矣,各有所尚,而不能兼并也。故窮武之雄斃于不仁,存義之國喪于懦退,今一征而禽三叛,大虜吳眾,席卷淮浦,俘馘十萬,可謂壯矣。

습착치(習鑿齒)가 말하였다(曰): 이는 바로(自) 천하(天下)를 옳게 여겨(是) 외위회덕(畏威懷德-위력을 두려워하고 은덕에 감사함)한 것이다. 군자(君子)들이 사마(司馬) 대장군(大將軍-사마사)을 일컫어(謂) 전쟁을 하여(是役也), 가히(可) 덕을 가지고 공격할 수 있다고(能以德攻矣) 이르었다(謂). 대업을 세운 사람(夫建業者)들은 서로 달리하며(異矣), 각각(各) 숭상하는 바(所尚)가 있는데(有), 그럼으로써(而) 여러가지를 겸하려하는 것(兼并)은 불가하다(不能). 그러므로(故) 무력에 의존하는 영웅(武之雄)은 어질지 못해(不仁) 궁하고(窮) 죽게되고(斃), 의를 갖고 있는 나라(存義之國)는 나약하여 물러남으로(懦退) 망하게 되는데(喪), 지금(今) 하나의 정벌(一征)로 세명의 반란분자(三叛)를 사로잡고(禽), 오(吳)의 무리(眾)를 크게 포로로 삼은데다가(大虜), 회포 지역을 석권하여, 10만(十萬)의 포로를 잡으니(俘馘), 가히(可) 장하다 일컫을 수 있다(謂壯矣).

而未及安坐,喪王基之功,種惠吳人,結異類之情,寵鴦葬欽,忘疇昔之隙,不咎誕眾,使揚士懷愧,功高而人樂其成,業廣而敵懷其德,武昭既敷,文算又洽,推此道也,天下其孰能當之哉?

그러나(而) 아직은 자리에 편안하게 앉지 아니하여서(未及安坐), 왕기(王基)의 공(之功)을 포상하고(喪), 오(吳)나라 사람(人)들에게 은혜를 베푼데다가(種惠), 이류(異類-다른 종류)들에게 정(情)을 맺었다(結). 문앙(鴦)을 총애하고(寵) 문흠(欽)을 장사 지내어(欽), 과거(昔)에 벌어진 틈(隙)을 잊었고(忘), 제갈탄(誕)의 무리(眾)에게 허물(咎)을 주지 아니하니(不), 하여금(使) 양주(揚)의 선비(士)들에게 부끄러움(愧)을 품도록 하였다(懷). 공이 높아서 사람들은 그의 성공에 즐거워하였으며, 업적이 넓어서 적들도 그의 덕을 간직하도록 하였습니다. 그의 무(武)는 밝아(昭) 이미 널리 퍼지고(既敷), 그의 문산(文算) 또한(又) 흡족할만하니(洽), 이러한(此) 도(道)를 밀고 나간다면(推), 천하(天下)의 누가(孰) 능히(能) 당해낼 수 있겠는가(當之哉)?

喪王基,語在基傳。

왕기(王基)를 포상하는(喪) 말(語)은 왕기전(基傳)에 있다(在).

鴦一名俶。晉諸公贊曰,俶後為將軍,破涼州虜,名聞天下。太康中為東夷校尉、假節。當之職,入辭武帝,帝見而惡之,託以他事免俶官。東安公繇,諸葛誕外孫,欲殺俶,因誅楊駿,誣俶謀逆,遂夷三族。

문앙(鴦)의 일명(一名)은 문숙(俶)이었다. 진제공(晉諸公)이 찬하여(贊) 말하였다(曰): 문숙(俶)은 이후(俶) 장군(將軍)이 되어(為), 량주(涼州)의 오랑캐(虜)를 깨뜨려서(破),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名聞天下). 태강(太康, 280-289년) 연간 중(中), 동이교위(東夷校尉), 가절(假節)을 역임하였다(為). 마땅히 직분에 이르어야 하는데(之), 입조하여(入) 무제(武帝-사마염)에게 (일을) 사양하자(辭), 황제(帝-사마염)은 이를 보고(見) 미워하게 되어(惡之), 다른 일(他事)에서 문숙(俶)의 관직(官)을 면직시키도록(免) 부탁하였다(託). 동안공(東安公) 사마요(繇)는 제갈탄(諸葛誕)의 외손자(外孫)였는데, 문숙(俶)을 죽이고(殺) 싶어하여(欲), 말미암아(因) 양준(楊駿)이 주살당하자(誅), 문숙(俶)이 역모를 꾸몄다고(謀逆) 속여서(誣), 마침내(遂) 삼족(三族)을 멸하였다(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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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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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6.08.21
23:2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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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탄 전의 모든 미번역 주석을 번역해주셨군요. 감사합니다 ㅠㅠ

악침은 뭐랄까 참 비중 없게 죽는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매번 볼 때마다 오나라에게 연이어서 온 큰 기회였지만 오나라 전원+문흠, 제갈탄의 선택이 제대로 된 게 없다시피 한 느낌이 드네요. 그나마 우전이 한 건 했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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