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행정구역이 소속 관직으로 되어 있네요. 주자사-주, 태수, 윤-군, 령-현


양주자사(揚州刺史): 전한 때는 자사의 지소가 없었으며 다른 주도 마찬가지다. 후한(後漢) 때의 치소는 역양(歷陽). 위(魏), 진(晉) 때는 수춘(壽春)이었다. 오()의 치소는 건업(建業)이었으며 진나라가 평정했다. 成帝咸康四年,僑立魏郡,別見。領肥鄉、別見。元城漢舊縣,晉屬陽平。二縣,後省元城。又僑立廣川郡,別見。領廣川一縣,宋初省為縣,隸魏郡。江左又立高陽、別見。堂邑二郡,別見。高陽領北新城、別見。博陸博陸縣霍光所封,而二漢無,晉屬高陽。二縣,堂邑,領堂邑一縣,後省堂邑并高陽,又省高陽并魏郡,並隸揚州,寄治京邑。文帝元嘉十一年省,以其民併建康。孝建元年,分揚州之會稽、東陽、新安、永嘉、臨海五郡為東揚州。大明三年罷州,以其地為王畿,以南臺侍御史部諸郡,如從事之部傳焉,而東揚州直云揚州。八年,罷王畿,復立揚州,揚州還為東揚州。前廢帝永光元年,省東揚州併揚州。順帝昇明三年,改揚州刺史曰牧。소속군은 10개이며 소속현은 80개이다. 인구는 143,296호(戶一十四萬三千二百九十六)에 1,455,685명이다.(口一百四十五萬五千六百八十五)


단양윤(丹陽尹): 진(秦) 나라 때의 장군(鄣郡)이며 치소는 오늘 날 오흥군(吳興)의 고장현(故鄣縣)이었다. 한나라 초기에는 오국(吳國)을 두었으나 오왕(吳王) 유비(劉濞)가 반란을 일으켜 패했기에 강도국(江都國)을 두었다. 무제(武帝) 원봉(元封) 2년(기원전 110년 10월 ~ 기원전 109년 9월) 단양군(丹陽郡)을 두었으며 치소는 오늘 날의 선성군(宣城) 완릉현(宛陵縣)이었다. 진무제(晉武帝) 태강 2년(281) 단양군을 나누어 치소는 완릉현(宛陵)으로 하는 선성군(宣城郡)을 만들었으며 단양군의 치소는 건업으로 하였다. 원제(元帝;사마예) 태흥(太興) 원년(318년) 단양태수를 단양윤으로 바꾸었다. 소속 현은 8개이다. 인구는 41,010호(戶四萬一千一十) 237,341명이다.(口二十三萬七千三百四十一)

건강령(建康令): 원래 이름은 말릉현(秣陵縣)이었다. 한나라(漢) 헌제(獻帝) 건안(建安) 16년(211)에 세워졌으며 손권(孫權)이 말릉현의 이름을 건업(建業)으로 고쳤다. 진무제(晉武帝;사마염)가 오를 평정하고 말릉으로 되돌렸다. 태강(太康) 3년(282), 말릉을 나눠 물 북쪽을 건업이라 하였다. 민제(愍帝;사마'업')가 즉위하고는 피휘하여 건강(建康)으로 바꾸었다.
말릉령(秣陵令): 본래 이름은 금릉(金陵)으로 진시황(秦始皇)이 말릉으로 고쳤다. 본래는 수도 주위 60리()를 다스렸으나 이제는 촌()만을 다스린다. 진안제(晉安帝) 의희(義熙) 9년(413), 수도를 이곳으로 옮겼으며 투장(鬭場)이 되었다? 있었다?(在鬭場) 恭帝元熙元年,省揚州府禁防參軍,縣移治其處。
단양령(丹楊令): 한나라의 옛 현이다. (너무 많이 나오는 문구라 한구현이라 씀요.)
강녕령(江寧令): 진무제(晉武帝) 태강 원년(280) 말릉을 나누어 임강현(臨江縣)을 만들었다. 태강 2년(281) 이름을 강녕으로 고쳤다.
영세령(永世令): 오나라가 율양현(溧陽)을 나누어 영평현(永平縣)을 만들었다. 진무제 태강 원년(280)에 이름을 영세로 고쳤다. 惠帝世,度屬義興,尋復舊。義興又有平陵縣,董覽吳地志云:「晉分永世。」太康、永寧地志並無,疑是江左立。文帝元嘉九年,以併永世、溧陽二縣。
율양령(溧陽令): 한구현. 오나라의 둔전(屯田)(도위)가 다스리던 곳이다. 진무제 태강 원년에 현령이 다스리는 것으로 되돌렸다.
호숙령(湖熟令): 한구현. 오(吳)의 전농도위(典農都尉)가 다스리던 곳이다. 진무제 태강 원년에 현령이 다스리는 것으로 되돌렸다.
구용령(句容令): 한구현.

회계태수(會稽太守): 진나라(秦)가 세웠으며 치소는 오현()이었다. 한나라 순제(順帝) 영건(永建) 4년(129)에 회계군을 분할하여 오군(吳郡)을 만들고는 치소를 산음현(山陰)으로 옮겼다. 소속된 현은 10개이며 인구는 52,228호(戶五萬二千二百二十八), 348,014명(口三十四萬八千一十四)이다. 去京都水一千三百五十五,陸同。

산음령(山陰令): 한구현.
영흥령(永興令): 한나라의 옛 여기현(餘暨縣)으로 오나라가 이름을 영흥으로 고쳤다.
상우령(上虞令): 한구현.
여요령(餘姚令): 한구현.
섬령(剡令): 한구현.
제기령(諸暨令): 한구현.
시녕령(始寧令): 하승천지(何承天)에 따르면 한나라 말기에 상우현(上虞)을 분할하여 만들었다. 하속회계기(賀續會稽記)에서는: '순제(順帝) 영건 4년(129) 상우현의 남족을 분할해 만들었다'고 기록했다. 속한지(續漢志)에선 보이지 않는다. 진 태강 3년(282)의 땅 목록에서는 그 이름이 보인다.
구장령(句章令): 한구현.
무령(鄮令): 한구현.
은령(鄞令): 한구현.

오군태수(吳郡太守): 회계군을 분할하여 만듬. 효무(孝武) 대명(大明) 7년(463) 度屬南徐,八年,復舊。속한 현은 12개. 인구는 50,488호(戶五萬四百八十八) 424,812명(口四十二萬四千八百一十二). 去京都水六百七十,陸五百二十。

오령(吳令): 한구현
누령(婁令): 한구현
가흥령(嘉興令): 본래 이름은 장수(長水)였으나 진나라 때 유권(由拳)으로 개명. 오나라 손권 황룡(黃龍) 4년(232;황룡은 3년밖에 없고 삼국지 기록에 따르면 3년231) 유권현에 아름다운 벼가 자라 화흥현(禾興)으로 개명함. 손호(孫晧) 때 아버지 손화(和)의 이름을 피휘해 가흥현으로 개명.
해우령(海虞令): 진무제 태강 4년(283) 分오현(吳縣)을 분할해之 우향(虞鄉)을 만듬.
해염령(海鹽令): 한구현. 오기(吳記): "원래 이름은 무원향(武原鄉)이었으나 진나라 때 해염현으로 바꿈".
염관령(鹽官令): 한구현. 오기(吳記)에선 "염관은 본래 가흥현(嘉興)에 속했으나 오나라가 해창도위(海昌都尉)라는 직위를 만들어 치소를 여기에 두었기에 후에 이름을 염관으로 고쳤다."라 하였으나 옳지 않다.
전당령(錢唐令): 한구현.
부양령(富陽令): 한구령. 원래 이름은 부춘(富春). 손권 황무(黃武) 4년(225) 때 동안군(東安郡)을 설치했으며 황무 7년(228)에 없앴다. 진나라 호무제(孝武) 때 간문제(簡文)의 모친인 정태후(鄭太后)의 춘(春)을 피휘해(아명 아춘) 부양현으로 고쳤다.
신성령(新城令): 절강(浙江) 서남쪽을 동계(桐溪)라 하는데 오나라가 신성현(新城縣)을 만들었으며 후에 동려현(桐廬)과 합쳐졌다. 진나라 태강(太康)년의 땅 목록에는 보이지 않는다. 장발(張勃)은: '진나라 말기에 만들었다'고 하였다. 태강 말년에 새로 만들고 다시 없앴는지도 모르겠다. 진성제(晉成帝) 함화(咸和) 9년(334년)에 다시 세워졌다.
건덕령(建德令): 오나라가 부춘현을 분할하여 만들었다.
동려령(桐廬令): 오나라가 부춘현을 분할하여 만들었다.
수창령(壽昌令): 오나라가 부춘현을 분할하여 신창현(新昌縣)을 만들었다. 진무제(晉武帝) 태강 원년에 이름을 수창으로 고쳤다.

오흥태수(興太守): 손호(孫晧) 보정(寶鼎) 원년(266)에 오군와 단양군을 분할하여 만들었다. 속한 현은 10개이다. 인구는 49,609호(戶四萬九千六百九) 316,173명이다.(口三十一萬六千一百七十三) 去京都水九百五十,陸五百七十。

오정령(烏程令): 한구현. 오흥군을 만들기 전에는 오군에 속했다.
동천령(東遷令): 진무제 태강 3년(282냔) 오정현(烏程)을 분할하여 만들었다. 폐제(廢帝) 원휘(元徽) 4년(476) 동안현(東安)으로 이름을 고쳤다. 순제(順帝) 승명(昇明) 원년(477) 다시 동천현으로 되돌렸다.
무강령(武康令): 오나라가 오정현(烏程), 여항현(餘杭)을 나누어 영안현(永安縣)을 만들었다. 진무제 태강 원년에 이름을 무강으로 고쳤다.
장성령(長城令): 진무제 태강 3년(282): 오정현을 나누어 만들었다.
원항령(原鄉令): 한나라 영제(靈帝) 중평(中平) 2년(185) 고장현(故鄣)을 분할하여 만들었다.
고장령(故鄣令): 한구현. 오흥군을 만들기 전에는 단양군에 속했다.
안길령(安吉令) 한나라 영제 중평 2년 고장현을 분할하여 만들었다.
여항령(餘杭令): 한구현. 오흥군을 만들기 전에는 오군에 속했다.
임안령(臨安令): 오나라가 여항현(餘杭)을 분할하여 임수현(臨水縣)을 만들었다. 진무제 태강원년에 이름을 임안현으로 고쳤다.
어잠령(於潛令): 한구현. 오흥군을 만들기 전에는 단양군에 속했다.

회남태수(淮南太守): 진나라가 구강군(九江郡)을 만들었는데 그때의 영역은 여강군(廬江)과 예장군(豫章)을 포함했다. 한고제(漢高帝) 4년(기원전 204년 10월 ~ 기원전 203년 9월) 이름을 회남국(淮南國)으로 고쳤으며 이를 나누어 예장군(豫章郡)을 설치했다. 문제(文帝) 때는 또 이를 나누어 여강군(廬江郡)을 설치했다. 무제(武帝) 원수(元狩) 원년(기원전 123년 10월 ~ 기원전 122년 9월) 이름을 다시 구강군으로 되돌렸으며, 치소를 수춘현(壽春縣)으로 하였다. 후한(後漢) 때 치소를 음릉현(陰陵縣)으로 옮겼다. 위나라(魏)에서 이름을 다시 회남군 돌렸으며 치소는 수춘에 두었다. 진무제(晉武帝) 태강 원년(280)에 역양현(歷陽)別見。,당도현(當塗), 준도현(逡道)현을 다시 설치했고 태강 2년(281), 종리현(鍾離縣)을 다시 설치했으니 別見。모두 전후한(二漢)의 옛현과 같은 곳이다. 삼국시대(三國) 때는장강(江)과 회수() 지역이 전쟁터였기 때문에 회수와 장강 사이 수백리에 사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렇기에 회남군의 장강 북쪽에 위치한 모든 현에 해당하는 지역을 비워두고는 민호를 복구하지 않은 것이다. 오나라가 평정되자 백성들은 각각 자신들이 살던 현으로 돌아왔고 이에 현을 다시 세운 것이다. 뒤에 중원(中原)이 어지러워져 오랑캐와 도적들이 남쪽으로 자주 침범하자 회남에 살던 많은 백성들은 남쪽의 강을 건넜다. 성제(成帝) 초기에 소준(蘇峻), 조약(祖約)의 난이 장강과 회수 지역에서 터지자 오랑케와 도적들이 (회남군에) 또 많이 도달했기에 남쪽으로 강을 건너 도망친 사람이 많았다. 그렇기에 강남에 회남 모든 현을 교현(縣;땅은 강남의 것이지만 이름과 소속은 강북의 군현인 것.)으로 두었다. 晉末遂割丹陽之于湖縣為淮南境。宋孝武大明六年,以淮南郡併宣城,宣城郡徙治于湖。八年,復立淮南郡,屬南豫州。明帝泰始三年,還屬揚州。소속현은 6개이다. 인구는 5,362호(戶五千三百六十二) 25,804명(口二萬五千八百四十)이다. 去京都水一百七十,陸一百四十。

우호령(于湖令): 진무제 태강 2년(281) 단양현을 분할하여 만들었다. 오나라(吳)의 독농교위(督農校尉)가 다스리는 곳이었다.
당도령(當塗令): 진성제 때 준도현(逡道)과 함께 교현으로 두었다. 진나라 말기에는 우호현에 있었다.
번창령(繁昌令): 한구현. 본래는 영천군(潁川)에 속하였다. 위나라가 영천군을 분할해 양성군(襄城)을 만들었고 또 번창을 양성군에 속하게 하였다. 진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 양성군을 없앴고 양성군에 속한현을 회남군으로 이속시켰다. 우호현에 있었다.
양원령(襄垣令): 본래 이름은 무호(蕪湖)이다. 무호현은 한나라의 옛 현이다. 진나라의 말년에 양원현(襄垣縣)을 만들고 상당군(上黨)에 속하게 하였다. 상당군의 백성들이 남쪽으로 강을 건너오니 상당에 속한 현들을 무호현에 교군현(僑郡縣)으로 만들었다. 후에 상당의 군을 없애고 이에 속한 현을 회남군에 속하게 하였다. 문제(文帝) 원가(元嘉) 9년(432년) 상당현과 양원현을 없앴다.
정릉령(定陵令): 한구현. 본래 양성군에 속했다. 무호현 안에 있었다.
준도령(道令): 한나라 때는 준주현(逡遒)이었다가 진나라 때 준도현이 되었다. 무호현 안에 있었다.

선성태수(宣城太守): 진무제 태강원년에 단양군을 분할하여 설치. 속한 현은 10개 이다. 인구는 10,120호(戶一萬一百二十), 47,992명이다.(口四萬七千九百九十二) 去京都水五百八十,陸五百。

완릉령(宛陵令): 한구현.
광덕령(廣德令): 하지(何志)는 '한나라의 옛 현이다'라고 하였으나 전한과 후한의 군국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오나라가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회안령(懷安令): 오나라가 만들었다. (이하 오립)
영국령(寧國令): 오립
선성령(宣城令): 한구현
안오령(安吳令): 오립
경령(涇令): 한구현
임성령(臨城令): 오립
광양령(廣陽令): 한나라의 옛 능양현(陵陽)이다. 子明得仙於此縣山,故以為名。함강(咸康) 4년(338) 진성제 두황후(杜皇后)의 '陵'을 치휘해 광양으로 이름을 고쳤다.
석성령(石城令): 한구현

동양태수(東陽太守): 본래 회계서부도위(會稽西部都尉)가 다스리던 곳이다. 오나라 손호 보정(寶鼎) 원년(266) 때 만들어졌다. 속한 현은 9ㄱ0이다. 인구는 16,022호(戶一萬六千二十二), 107,965명이다. (口一十萬七千九百六十五) 去京都水一千七百,陸同。

잔산령(長山令): 한나라 헌제(獻帝) 초평(初平) 2년(191) 오상현(烏傷)을 분할하여 만들었다.
태말령(太末令): 한구현
오상령(烏傷令)
영강령(永康令): 적오(赤烏) 8년(245) 오상현(烏傷)의 상류 지역을 분할하여 만들었다.
신안령(信安令): 한나라 헌제 초평 3년(192) 태말을 분할하여 신안현(新安)을 만들었다. 진무제 태강 원년 때 이름을 신안(信安)으로 고쳤다.
오녕령(吳寧令): 한나라 헌제 흥평(興平) 2년(195) 손씨(孫氏)가 제기현(諸暨)을 분할해 만들었다. 속한서 군국지 유소의 주석에 따르면 건안 4년(199년) 손씨가 분할한 것이니 손책이 만든 것.
풍안령(豐安令): 한나라 헌제 흥평(興平) 2년(195) 손씨(孫氏)가 제기현(諸暨)을 분할해 만들었다. 위와 같음
정양령(定陽令): 한나라 헌제 건안(建安) 23년(218) 손씨(孫氏)가 신안현(信安)을 분할해 만들었다.
수창령(遂昌令): 손권 적오 2년(239) 태말현을 분할해 평창현(平昌)을 만들었다. 진무제가 태강 원년에 수창으로 이름을 고쳤다.

임해태수(臨海太守):  본래 회계동부도위(會稽東部都尉)가 다스리던 곳이다. 전한 때 도위의 치소는 은현(鄞)이었으며 후한 때는 회계군을 나누어 오군을 만들었는데 이때 치소를 장안현(章安)으로 옮긴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손량(孫亮) 태평(太平) 2년(257) 임해군이 만들어졌다. 속한 현은 5개이다. 인구는 3,961호(戶三千九百六十一) 24,226명이다.(口二萬四千二百二十六) 去京都水二千一十九,陸同。

장안형(章安令): 속한지(續漢志): "옛 야현(冶)은 민(閩)의 땅에 있었는데 광무제가(光武) 이름을 장안으로 고쳤다. " 진태강기(晉太康記): "본래 은현(鄞縣) 남쪽에 있던 회포향(回浦鄉)이란 곳이었는데 한나라 장제(章帝)가 장화(章和;87~88) 연간에 장안현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르겠다.
임해령(臨海令): 오나라가 장안현을 분할해 만들었다.
시풍령(始豐令): 오나라가 처음 시평현(始平)이라 하며 만들었고 진무제가 태강 원년에 이름을 시풍현으로 고쳤다.
영해령(寧海令): 하지(何志)에 따르면 한나라의 옛 현이다. 하지만 전한, 후한의 군국지와 진나라 태강 연간에 만들어진 지리지를 살펴보면 그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낙안령(樂安令): 진 강제(康帝)가 시풍현을 분할하여 만들었다.

영가태수(永嘉太守): 진 명제(明帝) 태녕(太寧) 원년(323) 임해군을 분할하여 만들었다. 속한 현은 5개이다. 인구는 6,250호(戶六千二百五十) 36,580명(口三萬六千六百八十)이다. 去京都水二千八百,陸二千六百四十。

영녕령(永寧令): 한나라 순제(順帝) 영건(永建) 4년(129) 장안현을 분할하여 동구향(東甌鄉)을 만들었다. 혹자에 따르면 순제(順帝) 영화(永和) 3년(138)에 이를 영녕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안고령(安固令): 오나라가 처음 나양현(羅陽)을 만들었으며 손호(孫晧)가 이를 고쳐 안양현(安陽)이라 하였다. 진무제가 태강 원년에 안고현으로 이름을 고쳤다.
송양령(松陽令): 오립
낙성령(樂成令): 진 효무제(孝武) 영강(寧康) 3년(375) 영녕현을 분할하여 만들었다.
횡양령(橫陽令): 진무제가 태강(太康) 4년(283) 횡서선둔(橫藇船屯)을 시양현(始陽)이라 하였으며 이름을 다시 고쳐 횡양현이라 하였다.

신안태수(新安太守): 한나라 헌제(獻帝) 건안(建安) 13년(208) 손권(孫權)이 단양군을 분할하여 신도군(新都)을 만들었으며 진무제가 태강 원년에 이름을 신안으로 고쳤다. 속한 현은 5개이다. 인구는 12,518호(戶一萬二千五十八) 36,651명이다.(口三萬六千六百五十一)去京都水一千八百六十,陸一千八百。

시신령(始新令): 손권이 흡현(歙)을 분할하여 만들었다.
수안령(遂安令): 손권이 흡현을 분할하여 신정현(新定縣)을 만들었으며 진무제가 태강 원년에 이름을 수안현으로 고쳤다.
흡령(歙令): 한구현.
해녕령(海寧令): 손권이 흡현을 분할하여 휴양현(休陽縣)을 만들었으며 진무제가 태강 원년에 이름을 해녕현으로 고쳤다. 흡현을 분할해 제현(諸縣)을 두었고 또 이를 분할해 여양현(黎陽縣)을 두었으나 대명(大明) 8년(464) 이를 모두 없애고 해녕현과 합쳤다.
이령(黟令): 한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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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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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댓글

코렐솔라

2021.10.03
22:28:51
(*.219.68.249)
얼마 안 했는데도 뭔가 나오는 거 보니 이거부터 건드려야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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