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37권, 14년(1519 기묘 / 명 정덕(正德) 14년) 11월 16일(병오) 3번째기사
정광필·안당·신상이 조광조 등에 대한 추고 전지의 부당함을 아뢰다



정광필 - 영의정
안당 - 우의정

중종 37권, 14년(1519 기묘 / 명 정덕(正德) 14년) 11월 29일(기미) 2번째기사
 정광필이 아뢰기를,
조광조 등은 악을 제거하고 선을 들어올리는 것을 일삼았으므로, 사람들이 감히 이의하지 않고 모두를 따랐습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가부를 상의해야 옳겠으나 혹 이의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선류(善類)를 억지한다 하여 배척할 것인데 신 등으로서는 어떻게 제재할 수 있었겠습니까?


중종 37권, 14년(1519 기묘 / 명 정덕(正德) 14년) 11월 15일(을사) 5번째기사
신상이 조광조 등을 죄주는 것에 대해 아뢰다


신상(申鏛) 【밤에, 이조 판서(吏曹判書)였던 신상(申鏛)을 갈아서 예조 판서(禮曹判書)로 삼고, 예조 판서였던 남곤(南袞)을 상(鏛)을 갈음하여 이조 판서로 삼았는데, 다 하비(下批)9573) 하지 못하고 구전(口傳)9574) 만 하였다. 성운·김근사(金謹思) 등도 이와 같았다.】 이 뒤에 와서 곧 아뢰기를,
“신이 보건대, 조광조 등은 고서(古書)만 보고 지치(至治)에 이르게 하고자 하였으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승진하여 세상을 경력(經歷)한 일이 없으므로 도리어 인정(人情)을 어겨 들끓게 한 잘못은 과연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죄주는 것이 괜찮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조정에서 이미 의논해서 한 것이니 조정의 처치대로 해야 한다.”


중종 37권, 14년(1519 기묘 / 명 정덕(正德) 14년) 12월 16일(병자) 1번째기사
 남곤이 아뢰기를,
정광필은 숙성한 덕이 이미 드러났고 수상(首相) 자리에 오래 있어 국사에 힘을 다하였으며 뚜렷한 허물이 없는데 문득 갈고서 신 등으로 갈음하게 하시니 임금의 뜻이 어찌하여 이러하신지 모르겠습니다. 한 관사(官司)의 장관도 가벼이 갈 수 없는데 더구나 대신을 쓰고 버리는 일을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한 달 안에 이미 안당(安瑭)을 갈고 또 이 두 사람을 갈면 신 등도 매우 미안합니다. 조정에서의 정사와 호령은 낱낱이 사방에서 듣고 자손이 지키는 것인데 어찌 가벼이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벼슬한 지 겨우 20여 년에 지위가 삼공에 이르면 조야(朝野)가 놀랄 것입니다. 이는 신이 사사로운 은혜를 입는 것이고 공정한 일이 아니니, 신이 혐의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국사가 글러질까 염려해서입니다. 또 대간이 아뢴 것은 저들을 그르다고 생각하므로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리를 죄다 찾아서 죄줄 수는 없으니, 대간의 뜻도 어찌 죄다 죄주려는 것이겠습니까? 임금께서 아시게 하려 했을 것입니다. 어제 정광필 등이 서계(書啓)한 사람을 죄다 죄줄 수 없다고 애써 말하였는데, 이제 또 모두 30여 인을 서계하였습니다. 선왕 때에 임사홍(任士洪)이 조정의 정사를 어지럽혔으므로 그 죄가 워낙 크나 유 3천 리(流三千里)에 그쳤습니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은 법에 의거해야 마땅하나, 경중을 헤아리는 것은 상께 달려 있습니다. 조광조 등은 임사홍과 같지는 않고 다만 백성에게 은택을 입히는 임금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남에게 저지될까 염려되기 때문에 자기와 뜻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여 스스로 소인이 되어가는 줄 몰랐던 것인데 어찌 문득 왕법으로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인심도 안정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죄가 있는 자는 죄주고 죄가 없는 자는 용서해야 인심이 안정될 것이다.”
하매, 남곤이 아뢰기를,
“모든 일은 반드시 만세 뒤의 자손을 위해 헤아려서 조처하여 성덕(聖德)에 누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남곤 - 이조판서


정승들과 판서 급 신하들이 조광조에 대한 사사를 반대했는데도 중종은 기어이 조광조를 킬


중종 때 신권이 우세였다면 중종은 그냥 신하들 말을 좇아서 조광조의 목숨만은 살려야하는게 정상 아닌가요 ㄲㄲ



중종 37권, 14년(1519 기묘 / 명 정덕(正德) 14년) 12월 29일(기축) 4번째기사
조광조를 제거하기 위해 중종이 홍경주에게 내린 밀지에 관한 사신의 논평

사신은 논한다. 조광조 등이, 정국 공신(靖國功臣) 중에 공이 없이 외람되게 기록된 자가 많다 하여 추삭(追削)하기를 청하여 논집(論執)하였다. 임금이 전에 이들을 치우치게 임용하였는데, 조정의 훈고(勳舊) 중에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고 임금도 그들을 꺼렸다. 이 논의를 일으키기에 이르러남곤이 홍경주(洪景舟)를 부추겨 ‘위망(危亡)의 화(禍)가 조석에 다가와 있다.’고 공동(恐動)하니, 임금이 더욱 의구하여 홍경주에게 여러 번 밀지를 내렸는데, 그 밀지에는 글의 뜻이 알기 어려운 것이 있고 언서(諺書)를 섞은 것도 있으므로 이제 기록하지 않으나 그 대개는 이러하다. “임금이 신하와 함께 신하를 제거하려고 꾀하는 것은 도모(盜謀)에 가깝기는 하나, 간당(奸黨)이 이미 이루어졌고 임금은 고립하여 제재하기 어려우니, 함께 꾀하여 제거해서 종사(宗社)를 안정하게 하려 한다……”



이후에 중종은 밀지를 통해 김안로를 제거.


정조는 중종의 환생인가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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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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