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昂既免縲絏,被甲橫戈,與其從子長命,推鋒徑進,所向披靡。帝及觀者,莫不壯之,即除直閣將軍,賜帛千疋。昂以寇難尚繁,乃請還本鄉招集部曲,仍除通直散騎常侍,加北平將軍。


及聞莊帝見害,京師不守,遂與父兄據信都起兵。爾朱世隆從叔殷州刺史羽生,率五千人掩至龍尾阪。昂將十餘騎,不擐甲而馳之。乾城守,繩下五百人追救,未及而昂已交兵,羽生敗走。昂馬槊絕世,左右無不一當百,時人比之項籍。神武至信都,開門奉迎。昂時在外略地,聞之,以乾為婦人,遺以布裙。神武使世子澄以子孫禮見之,昂乃與俱來。後廢帝立,除冀州刺史以終其身





앙은 포승에서 묶인 것을 면하자갑주를 입고 창을 가로로 쥐고 종자從子 장면長命과 칼끝을 나란히 하여 바로 나아가니 향하는 곳마다 쓰러졌다천자와 함께 보던 자들이 (고오조를장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었으니곧 집각장군直閣將軍을 제수하고비단 천 필을 하사였다앙은 아직 구난寇難이 무성하다 여겨 본향本鄉으로 돌아가 부곡部曲을 불러 모으길 청하였으므로이에 통직산기상시通直散騎常侍에 제수하고북평장군北平將軍을 더하였다.


장제가 해를 당하여 경사京師가 지켜지지 못한 것을 듣자마침내 부형父兄과 더불어 신도를 근거지로 기병起兵하였다.이주세륭의 종숙從叔 은주자사殷州刺史 우생羽生이 5천명을 거느리고 엄습掩襲하여 용미판龍尾阪에 이르렀다앙은 10여 기를 인솔하여 갑옷을 입지 않고 돌격하였다건은 성을 지키며 휘하의 5백인을 통제하여 뒤따라 구원하였는데아직 (고건의 구원병이이르지 않았음에도 앙은 이미 교전하였으니우생은 패주敗走하였다앙의 마삭馬槊은 세상에서 견줄 자가 없었고(절세絕世), 좌우左右는 일당백이 아님이 없었으니당시 사람들이 항적項籍에 견주었다. 무神武(고환高歡)가 신도信都에 이르러 문을 열고 봉영奉迎하였다. 앙은 그때 바깥에서 땅을 빼앗고 있었는데, 이를 듣고는 건을 아녀자라 여겨 베옷 치마布裙를 보내었다. 신무가 세자世子 징澄(고징高澄)을 보내어 자손子孫의 예禮로 만나도록 하였으니, 이에 앙은 (고징과) 함께 왔다. 후폐제後廢帝(원랑元朗)가 즉위하자 (고앙을) 기주자사에 임명하여 종신終身토록 하였다. 








2.

仍為大都督率眾從神武破爾硃兆于廣阿又討四胡于韓陵昂自領鄉人部曲王桃湯東方老等三千人神武將割鮮卑兵千餘人共相參合對曰:「敖曹所將部曲練習已久不煩更配。」神武從之及戰神武軍小卻兆等方乘之昂與蔡俊以千騎自栗園出橫擊兆軍大敗是日微昂等神武幾殆  


거듭 대도독大都督이 되자 무리를 거느리고 신무를 따라 광아廣阿에서 이주조爾硃兆를 격파하였다. 또한 한릉韓陵에서 4四胡를 토벌하였다. 앙은 스스로 향인부곡鄉人部曲(한인병漢人兵) 왕도탕王桃湯, 동방로東方老  3천 명을 거느렸는데, 신무가 장차 선비병鮮卑兵 1천여 명을 나누어 (고앙의 부곡에) 합하려 하였다. (고앙이) 대답하길 :



이 오조가 거느리는 부곡은 연습練習한지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성가시게 보충하거나 개선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무가 (고앙의 의견을) 따랐다. 전투를 벌일 때, 신무의 군사가 조금 물러나자 조의 군사는 기세가 올랐다.앙과 채준蔡俊이 몸소 천 기를 이끌고 율원栗園으로부터 나와 (이주조의) 측면을 공격하니, 조의 군이 크게 패하였다. 그 날, 앙 등이 없었다면 신무는 위태로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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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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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개미

2015.10.07
19:19:30
(*.46.1.248)
1. 병종이 창기병이네요. 무력도 높고 기마술에도 능해서 항우와 버금간다는 표현을 하는 것 같은데 항우는 먼치킨이라 비교하기에는 부족하네요.

2. 신무가 포로로 추측되는 선비족 1000여 명을 앙의 군에 보충하려고 하는데 군사관리를 잘 못하는 인물로 보여집니다. 신무가 군사를 물리면서 조의 군을 끌어 들인 뒤 앙의 기병이 측면을 공격했네요.
앙의 군세 추측 보병 2000, 기병 1000 도합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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