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계문신제도 비판

생각건대, 호당(湖堂)에 사가(賜暇)하는 것과 내각에서 초계하는 것은 태평한 세대의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나라에서 과거 보이는 법을 마련한 까닭은 어진이를 택해서 뽑고 그 능함을 알아서 등용하려 함이다. 이미 과거로 뽑아서 벌써 벼슬을 제수했고 이미 청화의 지위에 좌정했는데, 이 사람을 다시 시험하고 이 사람을 다시 고과(考課)하니, 이것이 어찌 어질고 유능한 자를 대우하는 도리인가! 후세의 실상 없는 글은 곧 광대들의 잡스러운 희롱이며 조충(雕蟲)의 작은 재주이다. 이것으로 놀이하고 잔치하거나, 혹 군신간에 서로 농지거리하는 데에 가까우면 호당의 제술(製述)하는 것도 진실로 좋은 일이 아니다. 하물며 초계하는 법은 새로 진출한 선비까지 널리 뽑으니, 총명함과 우둔함이 서로 섞이고, 공교로움과 졸렬함이 서로 나타나게 되어서, 덕 있는 사람을 대우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또 비록 총명한 사람이라도, 어전 지척(御前咫尺)에 돌아앉아서 여러 가지 경서를 강하도록 하니, 잘못 실패하는 때도 있어 황구(惶懼)한 땀이 등을 적시기도 한다. 혹 가벼운 벌이라도 받게 되면 졸렬함이 다 드러나는데, 동몽(童蒙)같이 때리며 생도(生徒)같이 단속한다.
한번이라도 이 선발을 거친 자는 의기가 움츠러들어서 감히 낯을 들어 일을 논하지 못하고 종신토록 머뭇거리기만 하며, 문득 임금의 사인이 되어버리니, 이것은 좋은 법제가 아니다. 신하로서 사적(仕籍)을 금규(金閨 : 조정)에 통한 자가, 무릇 포부가 있으면 혹 소장(疏章)을 올려서 일을 논하고, 혹 언의(言議)를 드려서 정사를 돕더라도 불가할 것은 없는데, 어찌 반드시 거자(擧子)로 굴복시켜서 그 포부를 시험하는 것인가?초계해서 과시(課試)하는 법은 지금부터 혁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경세유표>


요약 : 아니 이미 과거 시험을 붙어 학문적 능력을 입증된 사람들이 다시 교육 받는게 말이 됨? 더욱이 신하들을 다시 교육한답시고 신하들 기를 다 죽여버리니, 어찌 신하들이 제대로 된 정책을 입안할까?


2. 규장각 비판

생각건대, 규장각은 어제문자(御製文字)를 소장하는 곳이니, 그 직이 어찌 중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로 인해서 별도 아문을 세우는 것은 옛 사람의 뜻이 아닌 듯하다. 송나라 제도는 한 임금마다 어제가 있으면 문득 각(閣) 하나를 세웠는데 용도각(龍圖閣)ㆍ천장각(天章閣)ㆍ보문각(寶文閣)ㆍ휘유각(徽猷閣)ㆍ현모각(顯謨閣) 따위가 서로 잇따라서 설립되었고, 원(元)나라 사람도 그를 본받아서 또 규장각을 설치하였다. 우리 세조(世祖) 때에도 규장각을 설치하기를 의논했으나 실행하지 않았는데, 우리 선대왕이 효성이 깊어서 조상의 공덕을 빛내기 위해 드디어 각을 세웠으니, 이것은 매우 장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직이 너무 조촐하고 그 명망이 너무 빛나니, 이로부터 옥당이 드디어 낮아져서 선임(選任)하기에 남잡(濫雜)함이 많은데, 형편이 그럴 수밖에 없다.
열성(列聖)의 어제는 이미 명산에 감춰져 있고, 내원(內苑)에 있는 것은 또 봉모당(奉謨堂)에 감추어서 별도 수직하는 자가 있으니 학사의 규장각이라는 것은 명칭과 실제가 안 맞는다. 《일성록(日省錄)》과 《시정기(時政記)》가 동떨어지게 다른 것도 아니고, 소장된 서적도 홍문관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으며, 초계(抄啓)해서 권과(勸課)하는 정사도 또한 반드시 실효가 있는 것은 아니니, 규장각을 반드시 별도 아문으로 세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홍문관 부제학이 봉모당 직학사(直學士)를 겸무하고, 홍문관 수석교리(首席校理) 1명이 봉모당 첨학사(僉學士)를 겸하며, 수석정자 1명이 봉모당 대교(待敎)를 겸하여, 때에 따라 봉심(奉審)하고 때에 따라 폭쇄(曝曬)하여도 또한 모자라는 일이 되지 않을 것이다(檢書官 네 사람이 본래 어제 및 《일성록》을 정리하는데, 그 중 두 사람은 옥당에 남아서 어제를 정리하고, 그 중 두 사람은 史局에 보내서 編史하는 일을 돕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경세유표>


요약 : 의도는 좋은데 딱히 독립된 기구로 설치할 정도는 아닌듯. 실제로 홍문관하고 역할이 겹치고. 초계문신제도 딱히 좋은 것도 아니고

3. 장용영 비판

효묘조(孝廟朝)의 훈련영(訓鍊營)과 선왕조의 장용영(壯勇營) 교졸(校卒)들이 세력을 믿고 횡행하는 자가 많았는데, 관장들도 감히 그들에게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였다. 소위 금군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유를 가리키는 것이다.<목민심서>

내가 곡산 부사(谷山府使)로 있을 때 하루는 감사가 급히 관문을 띄워 연군(烟軍) - 연군이란 은광(銀壙)을 굴착하는 사람이다. - 200명을 징발하여 재령군(載寧郡)으로 가서 장용영(壯勇營)에서 둑 쌓는 일을 돕도록 독촉하였다. 나는 글을 올려 이를 거절하였더니, 다시 내려 온 관문은 더욱 엄중하였고, 또 편지로,
“근일(近日)의 일은 자기 의견만을 고집하는 것은 불가하다. 더욱이 이 장용영은 다른 아문과는 다르니 어찌 감히 이와 같이 하는가.”
하였기에 나는 답하기를,
“근일이란 성군(聖君)의 세대인데 어찌 불가하다고 하는가. 다른 아문의 일이라면 그래도 따를 수 있지만, 이 장용영의 일은 만약 백성을 동원해서 원망을 산다면 성상의 덕에 누를 끼침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고 또 전과 같이 보고하였더니, 감사는 일이 생길까 두려워 드디어 곡산은 그만두고 다른 고을만 부역을 시켰다.<목민심서>


관문(關文)을 보니 장용영(壯勇營)의 지령대로 해창파(海倉壩 파는 둑임)에 수도(水道)를 뚫어 소통시키는 데 있어 연군 30명을 본부(本府)에서 파견하라고 하였습니다.
본부에서 재령(載寧)까지의 거리가 3백여 리입니다. 설사 연군이 있다고 해도 3백 리 밖으로 징발하여 보낼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연군이란 금점(金店)ㆍ은점(銀店)에서 광물을 캐내는 데 익숙하여 돌을 뚫고 물을 빼낼 사람입니다. 부사가 부임한 뒤 광물 캐내는 것을 엄금하고 다 돌아가 농사짓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연군에만 익숙하여 농사지을 의사가 없는 자들은 다 다른 지방으로 옮겨갔고 비록 한두 명이 남아 있으나 찾아낼 수도 없었습니다. 또 지금은 추수도 끝나지 않았고 군병의 점고도 박두하였는데, 어찌 원지(遠地)의 과외(科外)의 역(役) 때문에 거듭 백성들을 소란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대저 장용영에서 제방을 만든다는 데 대하여 어리석은 백성들도 매양 그 문제를 왈가왈부하려고 합니다. 비록 그 부근 사람을 역에 동원시킨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말이 많을까 두려운데, 하물며 3백 리 밖의 백성들을 멀리 그 역에 보낼 수 있겠습니까.
만일 부득이하다면 부사는 의당 그의 봉급을 털어 제방 일을 할 자들을 고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선왕(先王)의 제도로 말하자면 ‘역(役)은 3일을 초과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30명을 3일 동안 고용할 품삯을 공문과 함께 보내겠습니다.
바라건대, 잘 살펴보시고 징발하여 파견하라는 명령을 빨리 철회하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다산시문집>


요약 : 장용영은 민폐덩어리


소위 말하는 '정조의 개혁책'의 그림자를 볼 수 있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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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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