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혜청이, 강원도의 정공(正供)을 경기의 예에 따라 쌀로 하여 민폐를 제거하기를 청하였는데, 왕이 따르지 않았다. 이에 앞서 선혜청이 강원도 공물을 쌀로 하자는 뜻으로 아뢰었는데, 상이 특별히 거행하지 말라고 명하였다<광해군일기(광해군 2년)>


2. 【사헌부가 선혜법(宣惠法)을 팔도에 시행하자고 청하니, 호조가 아뢰기를,】
“많은 사람들의 논의가 ‘방납을 금하지 못하면 국가의 경비를 계속 조달할 수 없고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되지 않을 텐데 장차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는가.’라고 한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변통하여 해결하는 것이 어찌 오늘날의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시험삼아 경기 지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백성들이 많고 무거운 요역(徭役)을 감당하지 못하여 뿔뿔이 흩어지고 원망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성명께서 왕위에 오르던 초기에 상신(相臣)에게 자문하여 새로이 선혜청(宣惠廳)을 설치하고 1년에 단지 쌀 16두를 거두었습니다. 그 처음에는 대개 경기 지방의 공물 징수에만 적용하려 하였는데, 쌀 16두를 거둔 뒤로는 경기 지방의 요역이 모두 지탱해 나갈 수 있게 되었고 공물 사주인들도 그것을 바탕으로 생활할 수 있었으며 국가의 경비도 궁핍하지 않아 경기 지방의 백성들이 그것에 힘입어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었으므로 모두가 성상의 은혜를 우러러 보았는데, 이는 실로 이미 시험해 본 명백한 징험입니다.
지금 헌부가 폐단의 근원을 깊이 인식하고 이 계사를 올렸으니 이에 의거하여 시행함이 편하고 이로우리라 여깁니다. 오직 성상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우리 나라가 토지에 따라 공물을 바치게 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런데 경기에서 쌀로 거두는 것이 한갓 본청(本廳)의 하인들이 교활한 짓을 하는 소굴이 되어 구애되는 점이 많으니 먼 장래를 경영하는 방법이 아닐 것 같다. 팔도에는 절대로 경솔하게 동시에 시행할 수 없다. 이 공사(公事)는 시행하지 말라.”
하였다.<광해군일기(광해군 6년)>



3. 유학 최기문(崔起門)이 상소하였는데, 대개는 팔도에 대동법(大同法)을 속히 시행하라는 것이었다.<광해군일기(광해군 8년)>


4. 전교하였다.
“일전에 인견했을 때 승지 유공량(柳公亮)이 선혜청(宣惠廳) 작미(作米)의 일이 불편한 점이 많아 영구히 시행할 수 없다는 것을 대략 말하였다. 당초 나의 생각에도 이는 진실로 시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여겼으나, 본청이 백성을 위해 폐단을 제거하고자 하기에 우선 그 말을 따라 행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시험해 보도록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공량의 말을 들으니 심히 두려운 생각이 든다. 예로부터 나라를 소유한 자가 모두 토양의 실정에 맞게 공물(貢物)을 바치게 한 데에는 그 뜻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방납(防納)으로 교활한 수단을 부리는 폐단을 개혁하고자 하여 이 작미의 일이 있었으니, 그 근원은 맑게 하지 않고 하류(下流)만을 맑게 하고자 한 데 가깝지 않은가.
나의 견해는 이와 다르다. 만약 폐단을 개혁하여 백성을 편하게 해주고자 한다면 마땅히 먼저 기강을 세우고, 방납하고서 지나치게 징수하는 것을 금하는 법을 거듭 자세히 밝혀 혹 금령(禁令)을 범하는 자가 있으면 법으로 다스려 조금도 용서하지 않고 조종(祖宗)의 헌장(憲章)을 준행해 어기거나 잊지 않는 것이 좋은 계책인 듯하다. 송(宋)나라의 신법(新法)171) 이 그 뜻이 어찌 백성을 괴롭히는 데 있었겠는가마는 마침내 구제하기 어려운 화를 불렀으니, 옛 헌장을 변경하는 것은 삼가지 않아서는 안 된다. 가령 이 일이 폐단은 없고 유익함만 있다 하더라도 춘궁(春窮)에 쌀을 내게 하는 것은 그 시기가 아닐 듯하니, 조사(詔使)가 돌아가고 가을이 와서 곡식이 많아질 때를 기다려 다시 의논해도 늦지 않다. 이 뜻을 대신에게 말하여 다시 의논해 아뢰도록 하라.<광해군일기(광해군 1년)>


5. 전교하기를,
“작미(作米)하는 한 가지 일을 혹 기전에만 시행한다면 그것은 그래도 괜찮다. 그러나 다른 도에까지 확산시킨다면 분명히 끝에 가서 난처한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이니, 나라를 다스리는 도로 볼 때 이렇게 해서는 안 될 듯싶다. 조종(祖宗)의 법제를 준수해 가면서 크게 폐단이 되는 것만 제거해 나가면 되지 꼭 변경시키려고 노력할 것은 없다. 혜택을 조금 베풀려다가 큰 근본을 망각하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 이 공사는 거행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광해군일기(광해군 2년)>



'무엇보다 광해군이 이 법의 확대에 반대했다. 오늘날, 대동법 실시는 광해군의 업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광해군은 대동법에 대해서 시종일관 부정적이었다.' -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 이정철 저 - 


왕실과 광해군의 지지 세력(ex. 기자헌)이 방납을 통해 이득을 얻는 점도 있었고, 또 대동법을 시행하려면 양전이나 기타 여러 가지 제도를 정비해야 했습니다. 거기에 기존의 체제를 바꿈으로서 생기는 혼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요. 개인적으로는 광해군이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에 광해군이 대동법의 확대를 반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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