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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관(弘文館)의 관원(官員)을 인정전(仁政殿) 앞에 모아 놓고 책문(策問)을 내어 이르기를,

"변방[邊圉]을 튼튼히 하지 않을 수 없고, 군수(軍需)를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에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하고, 금년에는 또 중국 사신(使臣)의 행차가 있어서, 평안도 연변(沿邊) 각진(各鎭)의 군량(軍糧)이 거의 다하였다. 이제 내지(內地)의 곡식을 운반하여 그 부족함을 보충하려 하는데, 어떻게 하면 육로(陸路)로 운반하여 인마(人馬)가 지치지 않고, 수로(水路)로 운반하여 배[舟楫]가 쉽게 통(通)할 수 있겠는가? 각기 마음속에 품은 바를 조목조목 진술하라."

하였다.<성종실록>


성종 : 육로, 수로 운영 방안 제시 ㄱㄱ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영사(領事) 한명회(韓明澮)가 아뢰기를,

"예전에 경상도(慶尙道)의 공세(貢稅)는 바닷가 언덕에 받아 모아서 이것을 배에 싣고 남해(南海)를 거쳐 전라도(全羅道)를 돌아 운반하였기 때문에 여러 번 배가 전복되는 근심이 있었습니다. 태종(太宗)께서 백성들을 걱정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스스로 충주(忠州)에 바치게 하였으므로, 이로 인하여 백성들은 배가 전복되는 근심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금년에 전라도의 공세(貢稅)가 전복되어 잃은 것이 거의 1천 석(碩)에 이르렀고, 사람들이 많이 익사(溺死)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전라도의 공세를 백성들이 스스로 충청도(忠淸道)에 바치도록 허락한다면, 또한 익사하게 되는 근심이 없을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금년에 익사한 자는 많지 않았다."

하였다. 한명회가 대답하기를,

"안행도(安行道)는 왕강(王康)205) 으로부터 비로소 뚫린 것입니다. 그러나 바다의 조수(潮水)가 왔다갔다 하면서 뚫렸다 막혔다 하여 마침내 성공하지 못하였으므로, 배가 이 곳에 정박하면 거의 다 부딪쳐서 부서지니, 진실로 염려됩니다. 경상도 밀양(密陽) 등의 고을은 길이 너무 머니, 오히려 육지로 운반하는 것이 낫습니다. 전라도의 공세도 지금은 아직 육지로 운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다시 의논해서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성종실록>



한명회 : 전라도에서 수로로 운반하다가 사람 많이 죽었는데, 이참에 육로로 전환하면 어떨까여?

성종 : 검토 ㄱㄱ

(뒷이야기 : 결국 수로가 더 편한걸로 결정됨)


상참(常參)을 받고 정사를 보았다. 호조 판서(戶曹判書) 허종(許琮)이 아뢰기를,

"평안도의 곡물 종자 7만여 석을 실어 나르기는 실로 어려운 일입니다. 수로(水路)로 옮기면 배가 뒤집힐까 두려운 데다가 곡물 종자는 바다 기운을 쐬면 벼의 이삭이 패지 않는다 하고 민폐(民弊)가 있더라고 육로(陸路)로 운반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흉년을 당하여 곡물 운반의 폐단이 적지 않을 것이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였는데, 임금이 말하기를,

"의정부(議政府)와 육조(六曹)에 의논하라."

하였다.<성종실록>


허종 : 수로 보다 육로가 더 좋다는 얘기가 있던데, 어떻게 할까연??

성종 : 검토 ㄱㄱ

(결론 : 그냥 바다로 옮기기로...)

백성이 있고 난 다음에야 전수(戰守)가 가능한 것이니 백성들을 옮겨 변방을 채우는 것이 어떻겠는가? 군대는 먹을 것이 충분해야 병졸들이 믿는 것이 있어 용기가 배가(倍加)되는 것이니, 경상도 연해(沿海)의 각 고을에 있는 쌀을 배를 이용하여 육진(六鎭)으로 운반하고 배가 못 가는 곳은 육로로 운반하되 만약 운반에 필요한 민력(民力)이 부족하면 종재(宗宰)들로 하여금 각기 소와 말을 내어놓게 하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선조실록>


선조 : 수로 + 육로 통해 6진에 쌀 셔틀 ㄱㄱ

독운사(督運使) 이상길(李尙吉)이 아뢰기를,

"〈신이〉 삼가 해조의 사목(事目)을 보건대, 단지 배를 조발해서 교대로 실어 들여보내게만 하고 육운(陸運)하는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겨울이 점점 깊어져 바다에 바람이 높으니 수로로 실어 보내는 것은 형세상 그다지 쉽지 않습니다. 신이 우선 연해 지방으로 가서 해운의 편리 여부를 상세히 살펴보고, 한편으로는 군문(軍門)에 현재 저축된 군량의 수를 탐문하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군량이 매우 부족해서 부득이 겨울 이전에 대주어야 할 상황이라면 육로로 운반해야 하는데 일이 형세상 쉽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민력이 피폐한 때에 매우 염려됩니다. 육로로 운반할 계책을 묘당으로 하여금 미리 상세히 헤아려서 지휘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광해군일기(중초본)>


이상길 : 육로도 어렵지만, 겨울 땜에 수로가 더 고난이도인데, 육로로 군량 셔틀하면 어떨까여??

광해군 : ㅇㅋ


상이 두 정승에게 이르기를,

"발인 시기가 한창 더울 때이다보니 여사군(轝士軍)의 사상자가 필시 많을 것이다. 수로(水路)로 상여를 운반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김수흥이 아뢰기를,

"수로로 상여를 운반하는 데 대해 외부 의논 역시 대부분 편리할 것이라고 하기 때문에 신이 허적과 의논해 말씀드리려고 하던 중이었는데, 상께서 먼저 이에 대해 물으시니 매우 다행입니다. 수로는 강물이 불어오르더라도 상여를 편안하게 운반할 수 있을 것이므로 육로로 운반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육로로 가는 것은 정상적인 방법이고 수로로 가는 것은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므로 변통하는 데 대해서 신은 감히 책임지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물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배가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으므로 의물(儀物)들이 뒤섞이지 않으리라고 반드시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더러 불편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발인 시기가 한창 더울 때인 데다가 대여(大轝)가 매우 무거우며 칸수도 몹시 좁아서 여사군이 마음대로 발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니 만약 한쪽에서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사세상 전체가 넘어지고야 말 것이다. 그러면 사상자가 필시 1백 명 가까이 날 것이니 어찌 우려스럽지 않겠는가."

하자, 허적이 아뢰기를,

"요즈음 외부에서 육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할 것이라고도 하며 수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할 것이라고도 하는 등 결정이 나지 않고 분분하게 말하고들 있습니다만, 신은 본디 수로에 대해 익히 알고 있으므로 만일 장마를 만나게 되면 수로가 반드시 나을 것이라고 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발인할 때쯤 날이 가물어 수심이 얕아지면 어찌할 것인가?"

하니, 허적이 아뢰기를,

"수심이 얕으면 여울을 올라가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므로 육로보다는 물론 불편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울을 파헤치고라도 배를 운행할 수는 있습니다. 만일 장마를 만나 교량이 죄다 허물어지는 날에는 육로의 난처함이 수로보다 배나 될 것입니다. 이로 말한다면 두 길이 다 염려스러우나 육로의 우려가 더 심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여사군은 해당 부서로 하여금 그 수를 헤아려 정하게 하고 배도 해조로 하여금 새로 만들어 놓고 대기하게 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현종실록>

김수흥 : 육로 >>>>>>>>수로

허적 : 수로>>>>>>>>>>>>>>육로

현종 : 수로로 ㄱㄱ

 민진후가 말하기를,

"장녕전(長寧殿)의 어진(御眞)을 봉안(奉安)할 때에 감사(監司)는 수로(水路)가 편리하다 하고 유수(留守)는 육로(陸路)를 주장하였습니다. 수로로 받들고 가는 것은 본래 폐단을 없애려 한 것인데, 바닷길은 위험하니, 끝내는 육로의 편안한 것만 못합니다."

하고, 김우항도 또한 그 말을 옳게 여기니, 임금이 그대로 따르면서 절목(節目)을 십분 간략하게 하기를 명하였다<숙종실록>

민진후, 김우항 : 바다가 위험하므로 어진 봉안은 육로로 하는 걸로

숙종 : ㅇㅋ


이렇듯 조선은 여러 가지 이점 때문에 수로를 선택했지만, 그렇다고 육로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상황에 따라 수로가 여의치 않을 때는 육로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수로가 낫냐, 육로가 낫냐'는 논쟁은 조선 초부터 후기까지 꾸준히 제기되던 떡밥.

애초에 전근대에서는 수로>>>>>>>>>>>>>>>육로이고, 조선은 여기에 맞춰 정책을 추진했을 뿐인데, 이걸 문제 삼는 것부터가 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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