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29
略始濟淮,明帝拜略侍中義陽王,食邑千戶。略至闕,詔曰:「昔劉蒼好善,利建東平,曹植能文,大啟陳國,是用聲彪盤石,義鬱維城。
략(略)이 회(하)를 건너 돌아오자 명제는 시중 의양왕에 임명하고 식읍 천 호를 주었다. 략이 궁궐에 이르자 조칙을 내렸다.
"과거의 유창은 선을 좋아하여 동평을 잘 다스렸고 조식은 문장에 능하여 진국을 크게 이끌어 나갔다. 그 명성은 번국들 사이에서 크게 빛났고 의리는 종족들 사이에 굳건하였다."
- 낙양가람기 4권. 추선사(追先寺) 번역은 서윤희 역 <낙양가람기> 에서 발췌 -
직접 번역을 시도했다가 <是用聲彪盤石> 부분에서 막혀서 포기... 북위의 효명제(숙종) 때의 종친인 원략(元略)은 권력을 멋대로 휘두르는 원차(元叉)를 제거하기 위해 거병했다가 실패하고 양나라로 도망쳤지만, 효명제의 요청에 따라 다시 북위로 돌아갑니다. 효명제는 원략을 시중에 임명하고 의양왕에 봉했는데, 곧 동평왕으로 바꿔 봉했습니다. 이때 효명제는 원략을 뜻이 있고 절조가 있고 시작과 끝이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하며 원략을 한나라 때의 유창과 위나라 때의 조식에 비유했습니다.
비록 효명제가 조식을 직접적으로 평가한 것은 아니지만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라는 말로 유명한 유창과 함께 조식을 언급한 점은 조식의 생각과 행동이 유창에 견줄 정도로 모범적인 것으로 평가받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