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착치한진춘추(習鑿齒漢晉春秋) - 是年,吳將朱然入柤中,斬獲數千;柤中民吏萬餘家渡沔。司馬宣王謂曹爽曰:「若便令還,必復致寇,宜權留之。」爽曰:「今不脩守沔南,留民沔北,非長策也。」宣王曰:「不然。凡物置之安地則安,危地則危,故兵書曰,成敗,形也,安危,勢也,形勢御眾之要,不可不審。設令賊二萬人斷沔水,三萬人與沔南諸軍相持,萬人陸鈔柤中,君將何以救之?」爽不聽,卒令還。然後襲破之。袁淮言于爽曰:「吳楚之民脃弱寡能,英才大賢不出其土,比技量力,不足與中國相抗,然自上世以來常為中國患者,蓋以江漢為池,舟楫為用,利則陸鈔,不利則入水,攻之道遠,中國之長技無所用之也。孫權自十數年以來,大畋江北,繕治甲兵,精其守禦,數出盜竊,敢遠其水,陸次平土,此中國所願聞也。夫用兵者,貴以飽待飢,以逸擊勞,師不欲久,行不欲遠,守少則固,力專則彊。當今宜捐淮、漢以南, 退卻避之。若賊能入居中央,來侵邊境,則隨其所短,中國之長技得用矣。若不敢來,則邊境得安,無鈔盜之憂矣。使我國富兵彊,政脩民一,陵其國不足為遠矣。 今襄陽孤在漢南,賊循漢而上,則斷而不通,一戰而勝,則不攻而自服,故置之無益于國,亡之不足為辱。自江夏已東,淮南諸郡,三后已來,其所亡幾何,以近賊疆界易鈔掠之故哉!若徙之淮北,遠絕其間,則民人安樂,何鳴吠之驚乎?」遂不徙。

 

이 해에 오나라 장수 주연이 조중에 들어와 수 천명을 참하고 노획하므로 조중의 백성과 관리들 만 여가가 면수를 건넜다. 사마선왕이 조상에게 말하길 「만약 곧바로 돌아오도록 한다면 반드시 다시 도적들을 불러올 것이니 응당 당분간 머무르도록 해야 하오.」조상이 말하길 「지금 면수의 남쪽을 지키지 아니하고 백성들을 면수의 북쪽에 머물러두게 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니오.」선왕이 말하길 「그렇지 않소. 무릇 사물은 안전한 곳에 두면 안전한 것이고 위태로운 곳에 두면 위태로운 법이오. 그러므로 병서에서 이르길 : 성패는 형(形)에 있고 안위는 세(勢)에 있으니 형세는 무리를 이끄는 요체로 살피지 않을 수 없다 하였소. 만약 적 2만명이 면수를 끊고 3만명이 면수 이남의 군대와 대치하며 만명이 육로로 조중을 습격한다면 그대께서는 장차 어찌 구하려고 하시오?」하였으나 조상은 듣지 않고 끝내 (면수 이북으로 간 백성들로 하여금) 돌아오도록 하였는데 주연이 이후에 습격하여 격파하였다. 원회는 조상에게 말하길 「오초지방의 백성들은 유약하고 무능하니 영재나 대현의 인물은 그 땅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역량을 비교하자면 중국과 서로 항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상세이래로 항상 중국의 걱정거리가 된 이유는 대체로 장강과 한수를 수로로 삼고 배들을 쓸모로 삼으면서 유리하면 육지에 올라와 노략질하고 불리하면 물속으로 들어가 공격을 하려고 해도 길이 멀어 중국의 장기가 쓰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손권은 10년 이래 강북을 수차례 공격하고 갑병을 보수하며 방어를 정밀하게 하면서 수차례 도적질을 해 왔는데 감히 물에서 멀리 떨어져 육지의 평토에 주둔하는 것이 바로 중국이 듣기 원하는 바입니다. 무릇 군대를 움직이는 자는 배부른 상태에서 배고픈 자들을 기다리고 편안한 상태에서 지친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을 귀중하게 여기니 군대는 오래되길 원하지 않고 행군은 멀리가길 원하지 않으며 지키는 바가 적으면 견고하고 힘을 전일하게 쓰면 굳건해집니다. 당금에 응당 회한의 이남을 버려서 퇴각해 피하여야 합니다. 만약 적들이 중앙에 들어와 거하면서 변경을 침입해 온다면 곧 그 단점을 따라서 중국의 장기가 쓸모 있어지게 됩니다. 만약 감히 오지 못한다면 곧 변경이 안녕을 얻고 노략질하는 도적의 우환이 없게 됩니다. 우리나라로 하여금 부유하고 군대가 강성하며 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백성들이 화합하도록 한다면 그 나라를 정복하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 양양은 외롭게 한수의 남쪽에 있는데 적군이 한수를 따라 북상하면 곧 끊어져 통하지 않게 되니 한번 싸워 이기게 되고 공격하지 않아도 스스로 복종하게 되므로 놔둔다 하더라도 나라에 보탬이 없고 잃는다 하더라도 치욕이 되지 않습니다. 강하로부터 동쪽 회남의 여러 군들은 3명의 군주가 다스린 이래로 몇 번이나 잃었는데 적국의 강역과 가까워 쉽게 노략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백성들을) 회북으로 옮겨 그 사이를 멀리 끊어 놓는다면 곧 백성들이 안락한 생활을 누릴테니 어찌 놀라는 일이 있겠습니까? 」라 하였으나 마침내 옮기지 않았다.

 

孔衍漢魏春秋 - 詔使太常王肅冊命太傅為丞相,增邑萬戶,群臣奏事不得稱名,如漢霍光故事。太傅上書辭讓曰:「臣親受顧命,憂深責重,憑賴天威,摧弊姦凶,贖罪為幸,功不足 論。又三公之官,聖王所制,著之典禮。至于丞相,始自秦政。漢氏因之,無復變改。今三公之官皆備,橫復寵臣,違越先典,革聖明之經,襲秦漢之路,雖在異人,臣所宜正,況當臣身而不固爭,四方議者將謂臣何!」書十餘上,詔乃許之,復加九錫之禮。太傅又言:「太祖有大功大德,漢氏崇重,故加九錫,此乃歷代異 事,非後代之君臣所得議也。」又辭不受。

 

공연의 한위춘추에 이르길 - 조서를 내려 태상 왕숙으로 하여금 태부를 승상으로 책봉하게 하고 봉호를 1만호 늘리며 군신들이 주의를 올릴 때 이름을 쓰지 못하며 한나라 곽광의 고사대로 하도록 하였다. 태부가 상서하여 사양하며 이르길 「신이 친히 고명을 받으며 걱정이 깊고 책임이 막중하였으나 천위에 기대어 간사한 무리들을 없애고 속죄할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으니 공로는 족히 논할 것이 못됩니다. 또한 3공의 관직은 성왕의 제도이며 전례에 적혀있는 것입니다. 승상에 이르러서는 진시황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한나라가 그대로 이어받아 바꾸지 않았습니다. 지금 3공의 관제가 모두 완비됐는데 이유 없이 다시금 총신으로 (승상을 삼는다면) 앞선 제도를 어긴 것이고 성명한 경전을 바꿔 진한의 길을 답습하는 것인데 비록 다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신이 응당 바로잡아야 하거늘 하물며 신 자신이 이에 당하여 굳게 다투지 않는다면 사방의 의논하는 자들이 장차 신을 무엇이라 하겠습니까!」상서하길 10여 번이 되자 조서를 내려 마침내 허락하고 다시 9석의 예를 가하였다. 태부는 다시 말하길 「태조께서 대공대덕이 있으시어 한씨가 높고 무겁게 여긴 연고로 9석을 내린 것입니다. 이는 곧 조대가 바뀔 때의 비정상적인 일이니 후대의 군신이 의논할 바가 아닙니다. 」하고는 또한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漢晉春秋 - 是時姜維亦出圍狄道。司馬景王問虞松曰:「今東西有事,二方皆急,而諸將意沮,若之何?」松曰:「昔周亞夫堅壁昌邑而吳楚自敗,事有似弱而彊,或似彊而弱, 不可不察也。今恪悉其銳眾,足以肆暴,而坐守新城,欲以致一戰耳。若攻城不拔,請戰不得,師老眾疲,勢將自走,諸將之不徑進,乃公之利也。姜維有重兵而縣軍應恪,投食我麥,非深根之寇也。且謂我并力于東,西方必虛,是以徑進。今若使關中諸軍倍道急赴,出其不意,殆將走矣。」景王曰:「善!」乃使郭淮、陳泰 悉關中之眾,解狄道之圍;敕毌丘儉等案兵自守,以新城委吳。姜維聞淮進兵,軍食少,乃退屯隴西界。

 

한진춘추에 이르길 - 당시에 강유 역시 출병하여 적도를 포위하였다. 사마경왕이 우송에게 묻길 「지금 동방과 서방에 일이 있어 두 쪽이 모두 위급한데 여러 장수들은 의지가 꺾였으니 어찌하면 좋은가?」 우송이 말하길 「옛날 주아부가 창읍을 견벽하니 오나라와 초나라가 스스로 패퇴하였는데 일에는 약해보이지만 강한 것이 있고 혹은 강해보이지만 약한 것이 있으니 살피지 않으며 안 됩니다. 지금 제갈각은 정예병들을 모두 끌고 와서 족히 예기를 드러내 신성에 주둔하여 한 번의 결전을 벌이고자 합니다. 만약 성을 공격하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전투를 청해도 그럴 수 없다면 병사들은 피로하게 될 것이니 기세가 장차 스스로 떠나게 되어 있어 여러 장수들이 빨리 출전하지 않는 것이 마침내 공의 이득입니다. 강유는 중병을 거느리고 현군으로 제갈각의 군세에 호응하는데 우리 땅에서 식량을 구하는지라 뿌리가 깊은 적이 아닙니다. 또한 말하길 우리가 동쪽에 힘을 모으고 있어 서쪽은 반드시 텅비게 될 것이므로 이로써 빨리 진군한 것입니다. 지금 만약 관중의 여러 군대로 하여금 빨리 진군하도록 하여 예상치 못하게 출병한다면 아마도 바로 도망칠 것입니다. 」하니 경왕이 말하길 「훌륭하구나!」하고는 이에 곽회, 진태에게 명령을 내려 관중의 군대를 모두 이끌고 적도의 포위를 풀고 관구검에게 명령을 내려 군대를 지휘하여 스스로 지키되 신성은 오나라가 마음대로 공격하게 내버려 두도록 하였다. 강유는 곽회의 군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듣고 군량이 적자 마침내 퇴각하여 농서의 경계에 주둔하였다.

 

臣松之案夏侯玄傳及魏略,許允此年春與李豐事相連。豐既誅,即出允為鎮北將軍,未發,以放散官物收付廷尉,徙樂浪,追殺之。允此秋不得故為領軍而建此謀。

 

신 송지가 생각건대 하후현전과 위략을 보면 허윤이 이 해 봄에 이풍의 사건에 연루되어 이풍이 이미 주살당하자 즉시 허윤을 진북장군으로 보냈는데 떠나기 전에 관부의 물품을 함부로 사용했다는 죄목으로 잡혀 정위에게 붙여지고 낙랑으로 유배당했는데 도중에 보낸 사람에게 살해당하였습니다. 허윤은 이 해 가을에 중령군이 되어 이 계책을 짤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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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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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댓글

코렐솔라

2016.10.06
00:3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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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 빠심으로 왜곡하면 주연의 활약으로 말미암아 조비에 이어 조상까지 양양을 버리려고 했다고 주장할 수 있겠군요 ㅋㅋㅋㅋㅋㅋ 아 나중에 써먹어야지. 제갈각은 뭐랄까 대응이 허망하고 허윤은 뭔가 예전에도 한 번 왜 그랬을까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는 기록이네요. 번역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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