憲字景思。少而穎悟,好交輕俠。及弱冠,更折節嚴重,修尚儒學,足不逾閾者數年。陳郡謝鯤、潁川庾敳皆俊郎士也,見而奇之,相謂曰:「裴憲鯁亮宏達,通機識命,不知其何如父;至於深弘保素,不以世物嬰心者,其殆過之。」

 

배헌은 자가 경사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협객들과 교제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약관에 이르러 완전히 좋아하는 바를 바꿔 유학을 숭상하고 익혔는데 몇 년동안 집 밖을 나오지 않았다. 진군의 사곤, 영천의 유애는 모두 재주가 출중한 선비였는데 보고서는 기이하게 여겨 서로 말하길 :「배헌은 정직하고 도량이 드넓으며 기틀에 통하여 운명을 아는 것은 그 아버지와 비교하여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깊이 침잠하여 순수한 마음을 보존해 세상의 일들로 마음을 쓰지 않는 것으로는 거의 아버지를 능가하는 것 같다.」

 

  初,侍講東宮,曆黃門吏部郎、侍中。東海王越以為豫州刺史、北中郎將、假節。王浚承制,以憲為尚書。永嘉末,王浚為石勒所破,棗嵩等莫不謝罪軍門,貢賂交錯,惟憲及荀綽恬然私室。勒素聞其名,召而謂之曰:「王浚虐暴幽州,人鬼同疾。孤恭行乾憲,拯茲黎元,羈舊咸歡,慶謝交路。二君齊惡傲威,誠信岨絕,防風之戮,將誰歸乎?」憲神色侃然,泣而對曰:「臣等世荷晉榮,恩遇隆重。王浚凶粗醜正,尚晉之遺籓。雖欣聖化,義岨誠心。且武王伐紂,表商容之閭,未聞商容在倒戈之例也。明公既不欲以道化厲物,必于刑忍為治者,防風之戮,臣之分也。請就辟有司。」不拜而出。勒深嘉之,待以賓禮。勒乃簿王浚官寮親屬,皆貲至巨萬,惟憲與荀綽家有書百餘帙,鹽米各十數斛而已。勒聞之,謂其長史張賓曰:「名不虛也。吾不喜得幽州,喜獲二子。」署從事中郎,出為長樂太守。及勒僭號,未遑制度,與王波為之撰朝儀,於是憲章文物,擬于王者。勒大悅,署太中大夫,遷司徒。

 

처음에 동궁의 시강을 지내고 황문이부랑, 시중을 역임하였다. 동해왕 사마월은 그를 예주자사, 북중랑장, 가절로 삼았다. 왕준이 권력을 잡고 배헌을 상서로 삼았다. 영가 연간 말에 왕준이 석륵에게 패배하고 조숭 등의 사람들이 군문에 이르러 사죄하며 번갈아가며 뇌물을 바치지 않는 사람이 없었는데 오직 배헌과 순작만이 태연하게 자택에 거하였다. 석륵은 평소부터 그 명성을 들었으므로 불러서 그들에게 말하길 :「왕준은 유주에서 포학하여 사람과 귀신이 모두 미워했네. 나는 공손히 하늘의 법도를 따라 백성들을 구원하여 모두들 기뻐하고 축하하는 사람들이 길에서 서로 만날 정도네. 두 사람은 더불어 함부로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미워하는데도 성신(誠信)이 단절되었으니 방풍씨의 주살은 장차 그 잘못을 누구에게 돌려야 하는가?」하니 배헌은 표정을 강직하게 하면서 눈물 흘리며 대답하길 :「신 등은 대대로 진나라의 영화를 입었고 받은 은혜가 융숭하고 무겁습니다. 왕준은 흉악하고 추솔하지만 오히려 진나라가 남겨 놓은 번국입니다. 비록 성스러운 교화를 기뻐하지만 의리상 성심(誠心)이 막힐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토벌하면서 상용의 집에 경의를 표했는데 상용이 창을 거꾸로 잡아 (자기의 주군에 대항했다는 ) 예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명공(곧 석륵)께서 이미 도덕으로 교화를 펼쳐 만물을 감응하게 하고자 하지 않으시니 반드시 형벌을 이용하여 다스리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방풍씨가 주살당한 것은 신의 책임입니다. 청컨대 관리에게 넘겨주시기 바립니다.」하고는 인사도 하지 않고 나가버렸다. 석륵은 심히 훌륭하다고 여겨 빈객의 예법으로 대우하였다. 석륵은 마침내 왕준의 관료와 친속들의 재산을 장부에 기록했는데 모두 재산이 거만에 이르렀으나 오직 배헌과 순작의 집에는 서책 백 여권, 소금과 쌀 수 십 곡이 있었을 뿐이었다. 석륵은 이를 듣고 그의 장사 장빈에게 말하길 :「이름은 헛되이 전해지지 아니한다더니 나는 유주를 얻은 것이 기쁘지 않고 두 사람을 얻은 것이 기쁘구나.」하고는 종사중랑의 대리에 임명하고 나가 장락태수를 지내게 하였다. 석륵이 제호를 참칭하는데 이르러 제도를 정비할 겨를이 없었는데 (배헌은) 왕파와 더불어 조정의 의례를 제정하였다. 이에 헌장, 문물이 왕자의 것과 비교될 정도의 모습을 갖추었다. 석륵은 크게 기뻐하여 태중대부의 대리로 삼고 사도로 옮겼다.

 

  及季龍之世,彌加禮重。憲有二子:挹、瑴,並以文才知名。瑴仕季龍為太子中庶子、散騎常侍。挹、瑴俱豪俠耽酒,好臧否人物。與河間邢魚有隙,魚竊乘瑴馬奔段遼,為人所獲,魚誣瑴使己以季龍當襲鮮卑,告之為備。時季龍適謀伐遼,而與魚辭正合。季龍悉誅挹、瑴,憲亦坐免。未幾,復以為右光祿大夫、司徒、太傅,封安定郡公。

 

석계룡의 시대에 이르러 더욱 예법을 더해 중용하였다. 배헌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배읍, 배곡으로 더불어 문학에 재주가 있다는 명성이 있었다. 배곡은 석계룡을 섬겨 태자중서자, 산기상시를 지냈다. 배읍과 배곡은 더불어 호협과 음주를 좋아하고 인물을 평가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하간사람인 형어와 사이가 안 좋았는데 형어는 배곡의 말을 훔쳐타고 단료로 도망갔는데 사람들에게 잡히자 형어는 배곡을 모함하여 자기를 시켜 석계룡이 선비를 습격할 것이므로 이를 그들에게 알려 준비하게 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당시에 석계룡이 마침 단료를 토벌할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이가 형어의 말과 완전히 들어맞았다. 석계룡은 배읍, 배곡을 모두 주살하고 배헌 역시 이 일에 연루되어 파면 당했다. 얼마 후 다시 우광록대부, 사도, 태부로 삼고 안정군공에 봉했다.

 

  憲曆官無干績之稱,然在朝玄默,未嘗以物務經懷。但以德重名高,動見尊禮。竟卒于石氏,以族人峙子邁為嗣。

 

배헌은 관직들을 역임하면서 일을 제대로 처리했다는 명성이 없었고 다만 조정에서 침묵을 지킬 뿐 일찍이 공무를 마음에 둔 적이 없었다. 다만 덕이 무겁고 명성이 높아 움직이는 데마다 융숭한 예우를 받았다. 끝내 석씨의 통치 아래에서 죽었고 친족인 배치의 아들인 배매를 후사로 삼았다.

 

  楷長兄黎,次兄康,並知名。康子盾,少曆顯位。永嘉中,為徐州刺史,委任長史司馬奧。奧勸盾刑殺立威,大發良人為兵,有不奉法者罪便至死。在任三年,百姓嗟怨。東海王越,盾妹夫也。越既薨,騎督滿衡便引所發良人東還。尋而劉元海遣將王桑、趙固向彭城,前鋒數騎至下邳,文武不堪苛政,悉皆散走,盾、奧奔淮陰,妻子為賊人所得。奧又誘盾降趙固。固妻盾女,有寵,盾向女涕泣,固遂殺之。

 

배해의 장형인 배려와 차형인 배강 모두 명성이 있었다. 배강의 아들인 배순은 어려서부터 현달한 직위를 역임하였다. 영가 연간에 서주자사가 되었는데 장사 사마오에게 주의 사무를 위임하였다. 사마오는 배순에게 형벌로 백성들을 주살하여 위엄을 세우라고 권하고는 많은 양인들을 병사로 징발하여 법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거든 죄를 따져 곧 사형에 처하였다. 서주자사로 있은 지 3년 만에 백성들이 원한을 품었다. 동해왕 사마월은 배순의 매부이다. 사마월이 이미 죽자 기독 만형은 곧 징발한 양인들을 데리고 동쪽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유원해가 장군 왕상, 조고를 보내 팽성을 향하도록 했는데 전봉의 기병 몇 명이 하비에 이르자 문무의 관료들이 가혹한 정치를 감당하지 못하고 모두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다. 배순과 사마오는 회음으로 도망갔는데 처자가 도적들에게 잡혔다. 사마오는 다시 배순을 꾀어 조고에게 투항하도록 하였다. 조고의 처는 배순의 딸이었는데 총애를 받았으므로 배순은 딸을 향해 눈물로 빌었으나 조고는 마침내 그를 죽였다.

 

  盾弟邵,字道期。元帝為安東將軍,以邵為長史,王導為司馬,二人相與為深交。征為太子中庶子,復轉散騎常侍,使持節、都督揚州江西淮北諸軍事、東中郎將,隨越出項,而卒於軍中。及王導為司空,既拜,歎曰:「裴道期、劉王喬在,吾不得獨登此位。」導子仲豫與康同字,導思舊好,乃改為敬豫焉。

 

배순의 동생인 배소는 자가 도기이다. 원제가 안동장군이 되어 배소를 장사로 왕도를 사마로 삼았는데 두 사람이 서로 더불어 깊이 교제하였다. 태자중서자로 징벽되고 다시 산기상시, 사지절, 도독양주강서회북제군사, 동중랑장으로 옮기고 사마월을 따라 항(項)으로 갔는데 군중에서 죽었다. 왕도가 사공이 되는데 이르러 이미 임명을 받아들이고는 탄식하며 말하길 :「배도기와 유왕교가 있었다면 내가 홀로 이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왕도의 아들인 왕중예가 배강과 자가 똑같았으므로 왕도는 옛 친구가 항상 생각나 마침내 (아들의 자를) 경예로 바꿨다.

 

  楷弟綽,字季舒,器宇宏曠,官至黃門侍郎、長水校尉。綽子遐,善言玄理,音辭清暢,泠然若琴瑟。嘗與河南郭象談論,一坐嗟服。又嘗在平東將軍周馥坐,與人圍棋。馥司馬行酒,遐未即飲,司馬醉怒,因曳遐墮地。遐徐起還坐,顏色不變,復棋如故。其性虛和如此。東海王越引為主簿,後為越子毗所害。

 

배해의 동생인 배작은 자가 계서로 기량이 드넓었는데 관직은 황문시랑, 장수교위에 이르렀다. 배작의 아들인 배하는 현리를 잘 말했고 말하는 음성이 유창하여 맑음이 마치 금슬의 소리와 같았다. 일찍이 하남 사람 곽상과 담론하였는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탄복하였다. 또 일찍이 평동장군 주복의 막하에서 사람과 더불어 바둑을 둔 적이 있었다. 주복의 사마가 술을 권했는데 배하는 즉시 마시지 않았고 사마는 취하여 화를 내면서 이 일로 배하를 질질 끌어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배하는 서서히 일어나 자리로 돌아가서는 안색이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로 전처럼 바둑을 두었다. 그의 성격은 이처럼 마음이 텅텅 비고 기운이 온화하였다. 동해왕 사마월이 불러들여 주부로 삼았는데 후에 사마월의 아들인 사마비에게 살해당했다.

 

  初,裴、王二族盛于魏晉之世,時人以為八裴方八王:徽比王祥,楷比王衍,康比王綏,綽比王澄,瓚比王敦,遐比王導,頠比王戎,邈比王玄云。

 

당초에 배씨와 왕씨 두 가문은 위진시대에 융성하였는데 당시의 사람들이 팔배를 팔왕에 견주었다. 배휘는 왕상과 비견되고 배해는 왕연과 비견되며 배강은 왕수와 비견되고 배작은 왕징과 비견되며 배찬은 왕돈과 비견되고 배하는 왕도와 비견되며 배외는 왕융과 비견되고 배막은 왕현과 비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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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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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한은

2017.01.14
22:48:39
(*.246.243.139)
왕씨일가랑 견주었다는 부분이 특히 두드러진 평가네요....

코렐솔라

2017.02.01
11:53:04
(*.46.174.164)
배순도 그렇고 이 시기에 죽는 애들 중에 이상한 일화를 가진 애들이 상당히 많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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