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沈,字處道,太原晉陽人也。祖柔,漢匈奴中郎將。父機,魏東郡太守。沈少孤,養于從叔司空昶,事昶如父。奉繼母寡嫂以孝義稱。好書,善屬文。大將軍曹爽辟為掾,累遷中書門下侍郎。及爽誅,以故吏免。後起為治書侍御史,轉秘書監。正元中,遷散騎常侍、侍中,典著作。與荀顗、阮籍共撰《魏書》,多為時諱,未若陳壽之實錄也。

 

왕침은 자가 처도로 태원 진양 사람이다. 할아버지인 왕유는 한나라 흉노중랑장이었다. 아버지인 왕기는 위나라 동군태수였다. 왕침은 어려서부터 고아가 되어 종숙인 사공 왕창에게 길러졌고 왕창을 아버지처럼 모셨다. 계모와 과부가 된 형수를 받듦에 효의로 소문났다. 책을 좋아하여 문장을 잘 지었다. 대장군 조상이 징벽하여 연리로 삼고 누차 옮겨 중서문하시랑이 되었다. 조상이 실패함에 이르러 왕침은 오래된 관리라는 명분으로 어려움을 면했다. 이후에 치서시어사로 임명되고 비서감으로 옮겼다. 정원 연간에 산기상시, 시중으로 옮기고 저작의 업무를 맡았다. 순의, 완적과 더불어 《위서(魏書)》를 지었는데 당시에 꺼린바가 많았기에 진수의 실록과 같지 않았다.

 

  時魏高貴鄉公好學有文才,引沈及裴秀數於東堂講宴屬文,號沈為文籍先生,秀為儒林丈人。及高貴鄉公將攻文帝,召沈及王業告之,沈、業馳白帝,以功封安平侯,邑二千戶。沈既不忠於主,甚為眾論所非。

 

당시에 고귀향공이 학문을 좋아하고 문재가 있어 왕침과 배수 등 몇 사람을 이끌고 동당에서 연회를 베풀고 문장을 지었는데 왕침을 일컬어 문적선생이라 하고 배수를 유림장인이라 하였다. 고귀향공이 장차 문제를 공격하려고 할 때 왕침과 왕업을 불러 알려줬는데 왕침과 왕업은 문제에게 달려가 고해바쳤으므로 공으로 안평후에 봉해지고 식읍이 2000호였다. 왕침이 이미 주군에게 불충하자 심히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尋遷尚書,出監豫州諸軍事、奮武將軍、豫州刺史。至鎮,乃下教曰:「自古賢聖,樂聞誹謗之言,聽輿人之論,芻蕘有可錄之事,負薪有廊廟之語故也。自至鎮日,未聞逆耳之言,豈未明虛心,故令言者有疑。其宣下屬城及士庶,若能舉遺逸于林藪,黜奸佞于州國,陳長吏之可否,說百姓之所患,興利除害,損益昭然者,給穀五百斛。若達一至之言,說刺史得失,朝政寬猛,令剛柔得適者,給穀千斛。謂余不信,明如皎日。」主簿陳廞、褚剨曰:「奉省教旨,伏用感歎。勞謙日昃,思聞苦言。愚謂上之所好,下無不應。而近未有極諫之辭,遠無傳言之箴者,誠得失之事將未有也。今使教命班下,示以賞勸,將恐拘介之士,或憚賞而不言;貪賕之人,將慕利而妄舉。苟不合宜,賞不虛行,則遠聽者未知當否之所在,徒見言之不用,謂設有而不行。愚以告下之事,可小須後。」

 

얼마 후 상서로 옮기고 경성을 나가 감예주제군사, 분무장군, 예주자사가 되었다. 진에 이르러 마침내 하교를 하여 말하길 :「자고이래로 성현은 비방하는 말을 듣기 좋아하여 여론에 귀를 기울였는데 꼴을 베는 사람도 기록할만한 일이 있고 짚을 지는 사람의 입에서도 조정에서 쓰일 말일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진에 당도하는 날부터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어 본적이 없으니 어찌 허탄한 마음을 밝게 보여주지 못하여 말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에 의구심을 들게 하였기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선포하건대 속성과 서민들은 만약 능히 산림에 은거하고 있는 현자를 추천하거나 주국에 간사한 사람을 쫓아내거나 관리들의 우열을 늘어놓거나 백성들의 근심을 이야기하여 이익을 흥기시키고 해악을 제거해 손익이 밝은 사람에게는 곡식 500곡을 내리겠다. 만약 이치에 알맞은 말을 하고 자사의 득실과 조정의 관후, 맹렬을 언급하여 강약의 적당함을 얻도록 하는 사람이 있다면 곡식 1000곡을 내리겠다. 나에게 신용이 없다고 말하겠지만 밝음이 하얗게 빛나는 태양과 같다.」주부 진흠과 저괵이 말하길 :「교지를 받들어 살피니 탄복스럽습니다. 하루 종일 노고와 겸손으로 지내고 있는데 비평을 듣고자 원하신다니 말입니다. 저희는 윗사람이 좋아하면 아래에서 응하지 않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데서 극히 간하는 말이 없고 멀리서 전해지는 훈계가 없는 것은 진실로 득실에 관련된 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교령을 반포해 내려 보내 상으로 권장한다면 장차 절개가 훌륭한 선비는 혹 상을 내리는 것을 꺼려 입을 닫고 재물에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이익을 선모하여 망령되이 자원할지도 모릅니다. 진실로 간언한바가 합당치 아니하면 상을 헛되이 행할 수 없으므로 곧 먼 지방에서 이를 들은 사람들은 당부를 알지도 못하고 헛되이 말한 바가 쓰이지 않음만 들어 그런 상을 설치하기만 했지 실제로 주지는 않는 다고 여길 것입니다. 저희들이 생각건대 아래의 백성들에게 알리는 일은 잠시 후에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沈又教曰:「夫德薄而位厚,功輕而祿重,貪夫之所徇,高士之所不處也。若陳至言于刺史,興益於本州,達幽隱之賢,去祝鮀之佞,立德於上,受分於下,斯乃君子之操,何不言之有!直言至理,忠也。惠加一州,仁也。功成辭賞,廉也。兼斯而行,仁智之事,何故懷其道而迷其國哉!」褚剨復白曰:「堯、舜、周公所以能致忠諫者,以其款誠之心著也。冰炭不言,而冷熱之質自明者,以其有實也。若好忠直,如冰炭之自然,則諤諤之臣,將濟濟而盈庭;逆耳之言,不求而自至。若德不足以配唐虞,明不足以並周公,實不可以同冰炭,雖懸重賞,忠諫之言未可致也。昔魏絳由和戎之功,蒙女樂之賜,管仲有興齊之勳,而加上卿之禮,功勳明著,然後賞勸隨之。未聞張重賞以待諫臣,懸穀帛以求盡言也。」沈無以奪之,遂從剨議。

 

왕침이 다시 가르쳐 말하길 :「무릇 덕이 박한데 자리가 두텁고 공로가 가벼운데 녹이 무거운 것은 탐욕스러운 사람이 따르는 바로 수준 높은 선비가 처하는 곳이 아니다. 만약 이치에 맞는 말을 자사에게 진술하여 본주의 이익을 흥기시키고 은거한 현자를 추천해 축타 같은 간녕한 인간을 쫓아내 위에서는 덕을 세우고 아래에서는 상을 받는다면 이는 곧 군자의 행할 바이거늘 어찌 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 지극한 이치를 직언하는 것은 충이요, 은혜가 하나의 주에 가해지는 것은 인이요, 공이 이루어졌는데 상을 사양하는 것은 렴이다. 이들을 모두 겸하여 실천하는 것은 인자와 지혜를 갖춘 사람이 하는 일인데 무슨 이유로 그 도리를 품고서도 그 나라를 미혹에 빠트린다는 말인가!」하니 저괵이 다시 말하길 :「요, 순, 주공이 충성스럽게 간언하는 사람을 불러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정성스러운 마음이 밖에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얼음과 숯이 말하지 않아도 차갑고 뜨거운 성질이 스스로 명백한 이유는 그런 실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충직을 좋아하는 것이 얼음이나 숯과 같은 자연스러운 성질이라면 직언하는 신하들이 장차 바글바글하게 뜰을 채울 것이고 귀에 거슬리는 말은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를 것입니다. 만약 덕이 당우에 비할만 하지 않고 밝음이 주공과 더불어하기에 족하지 못하다면 실로 얼음이나 숯과 같지 아니하므로 비록 무거운 상을 걸어두더라도 충성스럽게 간하는 말을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옛날에 위강은 이민족과 화친한 공로로 악공을 하사받는 상을 얻었고 관중은 제나라를 일으킨 업적이 있어 상경의 예법으로 대우 받았는데 공훈이 현저해진 이후에야 상으로 권하는 것이 따랐던 것입니다. 무거운 상을 펼쳐놓고 간언하는 신하를 기다리고 곡식과 비단을 걸어놓고 도리를 다한 말을 구하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왕침은 반박할 말이 없었으므로 마침내 저괵의 의논을 따랐다.

 

  沈探尋善政,案賈逵以來法制禁令,諸所施行,擇善者而從之。又教曰:「後生不聞先王之教,而望政道日興,不可得也。文武並用,長久之道也。俗化陵遲,不可不革。革俗之要,實在敦學。昔原伯魯不悅學,閔馬父知其必亡。將吏子弟,優閑家門,若不教之,必致遊戲,傷毀風俗矣。」於是九郡之士,咸悅道教,移風易俗。

 

왕침은 선정을 찾아 가규 이래의 법제와 금령을 살펴 시행되는 것들 중에서 훌륭한 것을 골라 좇았다. 다시 가르쳐 이르길 :「젊은이들이 선왕의 가르침에 관해 들어보지 못했는데 정치의 도리가 날로 흥성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무를 더불어 이용하는 것은 오래갈 수 있는 방법이다. 풍속이 퇴폐하였으니 개혁하지 않을 수 없다. 개혁의 요점은 실로 학문을 두터이 하는데 있다. 옛날에 원백노가 배우길 좋아하지 않자 민마보는 그가 반드시 망할 것을 알았다. 장리의 자제들이 한가하게 집에서 보내도록 하여 가르치지 않는다면 반드시 유희하는데 빠져 풍속을 상하게 할 것이다.」이에 9군의 선비들이 모두 도덕적 가르침을 기뻐하여 풍속이 바뀌었다.

 

  遷征虜將軍、持節、都督江北諸軍事。五等初建,封博陵侯,班在次國。平蜀之役,吳人大出,聲為救蜀,振盪邊境,沈鎮禦有方,寇聞而退。轉鎮南將軍。武帝即王位,拜御史大夫,守尚書令,加給事中。沈以才望,顯名當世,是以創業之事,羊祜、荀勖、裴秀、賈充等,皆與沈諮謀焉。

 

정로장군, 지절, 도독강북제군사로 옮겼다. 5등의 관작이 처음 건립됐을 때 박릉후에 봉해졌는데 위치가 봉국에서 두 번째이다. 촉을 평정하는 전역에서 오나라 사람들이 대거 나와 촉을 구한다고 소문내면서 변경을 소란스럽게 하였다. 왕침은 방어하는것에 법도가 있어 도적들이 듣고서는 물러났다. 진남장군으로 옮겼다. 진 무제가 왕위에 오르고 어사대부, 상서령에 임명하고 급사중을 더했다. 왕침은 재주와 명망이 있어 당세에 유명하였는데 이로 말미암아 창업의 일에 있어 양호, 순욱, 배수, 가충 등은 모두 왕침과 더불어 상의하였다.

 

  及帝受禪,以佐命之勳,轉驃騎將軍、錄尚書事,加散騎常侍,統城外諸軍事。封博陵郡公,固讓不受,乃進爵為縣公,邑千八百戶。帝方欲委以萬機,泰始二年薨。帝素服舉哀,賜秘器朝服一具、衣一襲、錢三十萬、布百匹、葬田一頃,諡曰元。明年,帝追思沈勳,詔曰:「夫表揚往行,所以崇賢垂訓,慎終紀遠,厚德興教也。故散騎常侍、驃騎將軍、博陵元公沈蹈禮居正,執心清粹,經綸墳典,才識通洽。入曆常伯納言之位,出幹監牧方岳之任,內著謀猷,外宣威略。建國設官,首登公輔,兼統中朝,出納大命,實有翼亮佐世之勳。其贈沈司空公,以寵靈既往,使沒而不朽。又前以翼贊之勳,當受郡公之封,而固辭懇至,嘉其讓德,不奪其志。可以郡公官屬送葬。沈素清儉,不營產業。其使所領兵作屋五十間。」子浚嗣。後沈夫人荀氏卒,將合葬,沈棺櫬已毀,更賜東園秘器。咸寧中,復追封沈為郡公。

 

황제가 선양을 받는 데 이르러 좌명의 공훈을 인정 받아 표기장군, 녹상서사로 옮기고 산기상시, 통성외제군사를 더했다. 박릉군공에 봉하였는데 굳게 사양하고 받지 않자 현공으로 작위를 올리고 식읍을 8100호로 하였다. 황제가 바야흐로 정무를 맡기려고 하였는데 태시2년에 죽었다. 황제는 소복을 입고 슬픔을 나타냈는데 장례용품, 조복 1구, 의복 1벌, 돈 300000, 포 100필, 장전(葬田) 1경을 내리고는 시호를 원(元)이라 하였다. 다음 해에 황제는 왕침의 공훈을 생각하여 조서를 내려 이르길 :「무릇 지나간 행적을 표창하는 것은 현자를 숭상하여 교훈을 드리우기 위한 것이요 신종추원의 도를 행하는 것은 덕을 두터이 하여 교화를 일으키고자 한 것이다. 고 산기상시, 표기장군, 박릉원공 왕침은 예법을 행하여 정도에 거하고 마음이 청정하고 순수하였으며 전적을 연구하여 재주와 학식이 넓고 심오하였다. 조정에 들어와서는 상백, 납언의 자리를 맡고 나가서는 사방의 제후를 감독하였으며 안에서는 책모를 드러냈고 밖에서는 권위와 모략을 펼쳤다. 나라를 세우고 관직을 설치할 때 가장 먼저 재상의 지위에 올라 조정을 다스리며 황명을 출납하니 실로 제업을 보좌한 공로가 있다. 왕침을 사공공으로 추증하여 기왕의 업적에 대한 총애가 현저하여 없어지지 않도록 하라. 또한 이전에 보좌한 공로로 응당 군공에 봉해져야 하는데 굳게 사양함이 간절하여 그 양보하는 덕을 가상하게 여겨 뜻을 빼앗지는 않았다. 군공의 관속으로 송장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왕침은 본래 청렴하고 검소하여 산업을 경영하지 않았다. 그가 지휘하던 병사들로 하여금 집 50간을 만들도록 하라.」

아들인 왕준이 자리를 이었다. 이후 왕침의 부인인 순씨가 죽자 장차 합장하려는데 왕침의 관이 이미 부패했으므로 다시 장례용품을 하사하였다. 함녕 연간에 왕침을 군공으로 추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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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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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댓글

코렐솔라

2017.07.09
15: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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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서에서도 대놓고 불충하니 사람들이 수군수군거렸다 기록하고 있군요 ㅋㅋ 과연 육항쪽에 보낸 병력을 생각하면 왕침은 어느정도 병력을 막았는지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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