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국지 유후주지를 보면 일부 내용을 빼고 다 번역이 되어있는것 같다. 이걸 다 번역하려고 찾아보니 코렐솔라님께서 미번역 부분을 표시할때 약간의 착오가 있었던 것같다.


먼저 연희 5년부분은


五年,春正月,西河王琮卒。大將軍維惡皓之恣擅,啟後主,欲殺之。後主曰:「皓趨走小臣耳。往者董允切齒,吾常恨之。君何足介意。」維本羈旅自託,而功效無稱,見皓枝附葉連,懼於失言,遜辭而出。後主敕皓詣維陳謝。維誘《三國志》裴注引此作說。皓求沓中種麥,以避內逼。皓承白後主。秋,維出侯和,為魏將鄧艾所破,還駐沓中。皓協比閻宇,欲廢維樹宇。故維懼不敢還。張、吳、何、王、浙、石本有小注曰:「按,沓中即古松州。去文州三百里。」亦張佳胤所增注。

번역이 안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표시하셨는데 사실 이 부분은 경요 5년으로 아래에 이미 번역이 되어 있는것 같다.( 기존 번역이 제대로 된건지는 확인해보지 않았음.)


진짜 연희 5년의 기록은 응당 이렇게 되어야 할것이다.


五年春正月姜維自漢中還屯涪縣大司馬琬以丞相亮數入秦川不克欲順沔東下征三郡朝臣咸以為不可安南將軍馬忠自建寧還朝因至漢中宣詔旨於琬琬亦連疾動輟計遷忠鎮南大將軍封彭鄉侯

 

(연희) 5년 봄 정월 강유가 한중으로부터 돌아와 부현涪縣에 주둔했다. 대사마 장완은 승상 제갈량이 수차례 진천에 들어가서 이기지 못한 것을 이유로 면수를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서 3군을 정벌하려고 했다. 조정의 신하들은 모두 불가하다고 하였다. 안남장군 마충馬忠이 건녕으로부터 조정으로 돌아왔는데 이로 인해 한중에 이르러 장완에게 황제의 조서를 선포했다. 장완 또한 연이어 병에 걸리자 계획을 그만뒀다. 마충을 진남대장군으로 옮기고 팽향후彭鄉侯에 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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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 9년의 기록은 원문을 어느정도 정리해서 아래와 같이 번역하였다.(마지막 부분은 응당 연희 10년에 들어가야 되는데 원문에서 9년으로 잘못 편입시켰으므로 주석을 지우지 않고 밝혔다.)



九年夏六月禕還成都大赦司農孟光眾責禕曰:「夫赦者偏枯之物非明世之所宜有也今主上賢仁百寮稱職有何旦夕之急數施非常之恩以惠奸軌之惡上犯天時下違人理豈具瞻之高美所望於明德哉?」禕但顧謝焉丞相亮時有言公惜赦者亮曰:「治世以大德不以小惠故匡衡吳漢不願為赦先帝亦言吾周旋陳元方鄭康成間每見啟告治亂之道曾不語赦也若景升季王父子歲歲赦宥何益於治?」故亮時軍旅屢興,〔不妄下也自亮沒後茲制遂虧蜀初闕三司之位以待天下賢人其卿士皆勳德融茂太常杜瓊學通行脩衛尉陳震忠惇篤粹孟光亮直著聞皆良幹也但光好指擿利病大長秋南陽許慈普記舊文矜妒成光祿來敏舉措不慎失勢事者指當世美名不及特進太常廣漢鐔承光祿勳河東裴雋,〔年資皆在其後而登據上列蓋以此其朝臣尚書巴西司學義陽胡博僕射巴西姚伷侍中汝南陳祗並讚事業。〔左將軍向朗以故丞相長史封顯明亭侯位特進。〕朗自去長史優遊無事乃鳩合經籍開門誘士講論古義不預世務是以上自執事下及童冠莫不宗敬焉冬十有一月大司馬琬卒謚曰恭侯。〔書令董允亦卒超遷蜀郡太守南陽呂乂為尚書令進姜維為衛將軍與大將軍禕並錄尚書事。「維出隴西與魏將郭淮夏侯霸戰剋之」。<按上十五字,《三國志姜維傳郭淮傳皆當在延熙十年疑舊傳寫者妄以後主傳是年未著此事改移茲訂正>

 

(연희) 9년 여름 6월 비의가 성도에 돌아왔다. 가을 천하에 사면령을 내렸다. 사농 맹광孟光이 여러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비의를 질책하여 말하길 :「무릇 사면은 반신불수의 상태에서 하는 거지 밝은 세상에서 응당 할 바가 아닙니다. 지금 주상께서 현명하고 어질며 백관들이 자기 업무를 잘 처리하고 있는데 무슨 급한 사정이 있다고 수차례 사면을 실시하여 간악한 무리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까? 위로는 하늘의 때를 범하고 아래로는 사람의 윤리를 어기니 어찌 우러러볼 만한 높은 미덕이 있으며 희망할 바가 되는 명덕이 있겠습니까?비의는 다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뿐이었다. 당초 승상 제갈량이 집권하고 있을 때에 그가 사면에 인색하다는 말이 있었다. 제갈량이 말하길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큰 덕에 의한 것이지 작은 은혜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광형과 오한도 사면에 찬성하지 않았던 것이다. 선제께서도 말하길 내가 진원방과 정강성 사이를 주선하여 매번 보고 배우는 것이 있었는데 통치하는 원리가 구비되었지만 일찍이 사면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만약 유표나 유장 부자같은 경우에는 해마다 사면을 내렸는데 정치에 무슨 보탬이 있었는가?”그러므로 제갈량의 통치시기에는 정벌을 누차 행했지만 함부로 사면령을 내리지 않았다. 제갈량이 죽고나서 이 제도가 마침내 어그러졌다. 은 처음에 3공의 자리를 비워놓고 천하의 현인을 기다렸다. 그 경사卿士들은 모두 공훈과 도덕이 현저하였으니 태상 두경杜瓊 학문에 통달하고 품행이 좋았으며 위위 진진陳震은 충성스럽고 절개가 있었으며 맹광孟光은 올곧음으로 소문이 났는데 모두 훌륭한 인재였다. 다만 맹광은 이해를 지적하길 좋아했다. 대장추 남양사람 허자許慈는 옛날 일을 기억하여 질투하는 성격이 있었으며 광록 내민來敏은 행동이 신중하지 않았으므로 집정자의 뜻에 어긋나 당세에 미명美名이 있었다고는 하나 특진特進에 이르지 못했다. 태상 광한사람 담승鐔承, 광록훈 하동사람 배준裴雋은 경력이 뒤쳐졌는데도 그들보다 위에 거한 것은 대체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조정의 신하들로 상서 파서사람 사학司學, 의양사람 호박胡博, 복야 파서사람 요주姚伷, 시중 여남사람 진지陳祗가 더불어 사업을 도왔다. 좌장군 상랑向朗은 옛날 승상장사의 공로로 현명정후顯明亭侯에 봉해지고 특진特進을 더했다. 상랑은 승상장사의 직무를 그만두고 하는 일 없이 유유자적하게 되자 마침내 경적을 모으고 여러 선비들을 문도로 모아 경전의 옛 듯을 강론할뿐 세상일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위로는 집정에서부터 아래로는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그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겨울 11월 대사마 장완蔣琬이 죽자 시호를 공후恭侯라 하였다. 상서령 동윤董允 또한 죽었다. 촉군태수 남양사람 여예呂乂를 등급을 초월하여 상서령으로 삼았다. 강유를 위장군에 진급시키고 대장군 비의와 더불어 녹상서사를 겸했다.

강유는 농서로 출병하여 위나라 장수 곽회,하후패와 싸워 깨트렸다.<15글자는 삼국지 강유전과 곽회전을 보건대 모두 응당 연희10년에 있었던 일이다. 의심컨대 구전舊傳을 쓴 사람이 망령되이 후주전의 이 해 끄트머리에 이 일을 기록한 것 같다. 바꿔 옮기고 이에 정정하는 말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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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 14년의 미번역 기록으로 아래와 같이 표시하였는데 이는 사실 건흥 14년의 기록으로 위에 이미 번역되어 있다.(이 역시 번역의 정확성은 따로 검토하지 않았다.)



十四年夏四月,後主西巡,至湔山廖本注云:「當衍」。廖本依《後主傳》注云:「當有觀字」。茲不取,說在注釋。阪,觀汶川之流。武都氐王符《三國志‧後主傳》與《張嶷傳》並作苻。健請降,將軍張尉迎之,過期不〔至〕。大將軍琬憂之。牙門將巴西張嶷曰:「健求附款至,必無返滯。張、吳、何、王、石本同《三國志‧張嶷傳》作「必無他變」。元豐及錢、劉、李、《函》、廖本作「返滯」。張佳胤好用《陳志》文改《常志》,非是。聞健弟狡,不能同功,各將乖離,是以稽李本作嵇。耳。」健弟果叛就魏。健率四百家隨尉,居廣都縣。

연희 14년도 없습니다.


진짜 연희 14년의 기록은 모두 후대의 보충 및 정정으로 되어 있는데 응당 아래와 같이 되어야 할것이다.



十四年夏大將軍禕還成都復北住漢壽大赦。〕〈後主傳。〉〔尚書令呂乂卒以侍中陳祇守尚書令加鎮軍將軍〕。〈此上二十字原刻在十五年茲依呂乂傳移於此年

 

(연희) 14년 여름 대장군 비의가 성도로 돌아왔다. 겨울 다시 북쪽으로 가서 한수漢壽에 주둔했다. 대사면을 내렸다. <삼국지 후주전에 의거해 보충함> 상서령 여예呂乂가 죽었다. 시중 진지陳祇를 수 상서령으로 삼가 진군장군을 더했다. <위의 20글자는 원래 15년에 기록되어 있었는데 여기서는 여예전에 의거해 이 해(연희 14)으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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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혹시 원문을 읽을 때 도움이 되도록 [,] 표시는 주석을 단 사람이 보충해 넣은 부분으로 없는 내용을 다른 기록을 참고해서 넣은 경우도 있고 위치가 잘못됐다고 판된 부분을 옮겨서 올바른 위치에 놓았다는 표시로도 사용한다. 「,」 표시는 원문에 있으나 응당 삭제해야 되거나 올바른 내용이라 하더라도 위치가 잘못됐을 경우 그 잘못된 위치를 표시하기 위한 표시로 사용한다. <,>는 교정을 한 필자가 왜 이렇게 교정했는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부분이다. 


ps. 원문은 모두 'https://zh.wikisource.org/wiki/%E8%8F%AF%E9%99%BD%E5%9C%8B%E5%BF%97/%E5%8D%B7%E4%B8%83' 여기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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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코렐솔라

2019.12.18
18: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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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감사합니다. 저거 정리는 제가 졸속으로 한 거라 엉터리로 되어있는 거 많을거에요. ㅋㅋ 반영하겠습니다.

코렐솔라

2019.12.18
18:24:22
(*.46.174.164)
비의와 사면관련 얘기는 나름 재밌지 않나 해요. 후주전 말미의 제갈량과 사면일화가 여기서 이렇게 연결될 줄은??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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