周訪,字士達,本汝南安城人也。漢末避地江南,至訪四世。吳平,因家廬江尋陽焉。祖纂,吳威遠將軍。父敏,左中郎將。訪少沈毅,謙而能讓,果於斷割,周窮振乏,家無餘財。為縣功曹,時陶侃為散吏,訪薦為主簿,相與結友,以女妻侃子瞻。訪察孝廉,除郎中ㆍ上甲令,皆不之官。鄉人盜訪牛於塚間殺之,訪得之,密埋其肉,不使人知。    


주방(周訪)은,자(字)가 사달(士達)이며, 본래(本) 여남(汝南)군 안성(安城)사람(人)이다(也).    


한나라(漢) 말(末) 강남(江南)의 땅(地)으로 피난하여(避), 4세(四世)에 이르었다(至訪).    


오(吳)나라가 평정되자(平), 이로 인해(因) 집(家)을 여강(廬江) 심양(尋陽)으로 옮겼다.    


조부(祖) 주찬(纂)은 오나라(吳) 위원장군(威遠將軍)이다. 


부친(父) 주민(敏)은, 좌중랑장(左中郎將)이다.    


주방(訪)은 젊어서(少) 침착하고(沈) 의젓했으며(毅), 능히(而能) 겸양했으며(謙讓), 과단(果斷)하게(於) 나누어(割), 널리(周) 궁핍(窮乏)한 자들을 거두니(振), 집(家)에 남은(餘) 재물(財)이 없었다(無).    


현(縣)의 공조(功曹)를 하였는데(為), 때(時)는 도간(陶侃)이 산리(散吏=일정한 직무가 없는 벼슬)를 하였고(為), 주방(訪)이 주부(主簿)를 하도록(為) 천거하여(薦), 서로(相) 더불어(與) 친구(友)를 맺었고(結), 딸(女)을 도간(侃)의 아들(子) 도첨(瞻)에게 시집보냈다(妻).    


주방(訪)의 효행(孝)과 청렴(廉)함이 널리 알려지니(察), 낭중(郎中)ㆍ상갑(上甲)의 현령(令)이 제수됬는데(除), 모두(皆) 관직(官)에 가지(之) 않았다(不).    


향인(鄉人)이 주방(訪)의 소(牛)를 도둑질하여(盜) 무덤(塚) 사이(間)에서(於) 죽였는데(殺之), 주방(訪)이 얻으니(得之), 몰래(密) 그(其) 고기(肉)를 묻어(埋), 사람(人)으로 하여금(使) 알지(知) 못하게(不) 하였다.    


及元帝渡江,命參鎮東軍事。時有與訪同姓名者,罪當死,吏誤收訪,訪奮擊收者,數十人皆散走,而自歸於帝,帝不之罪。尋以為揚烈將軍,領兵一千二百,屯尋陽鄂陵,與甘卓ㆍ趙誘討華軼。所統厲武將軍丁乾與軼所統武昌太守馮逸交通,訪收斬之。逸來攻訪,訪率眾擊破之。逸遁保柴桑,訪乘勝進討。軼遣其党王約ㆍ傅劄等萬餘人助逸,大戰於湓口,約等又敗。訪與甘卓等會于彭澤,與軼水軍將硃矩等戰,又敗之。軼將周廣燒城以應訪,軼眾潰,訪執軼,斬之,遂平江州。    


원제(元帝=사마예)가 강(江=장강)을 건너기(渡)에 이르자(及), 참진동군사(參鎮東軍事)를 명(命)하였다.    


당시(時) 주방(訪)과 더불어(與) 성명(姓名)이 같은(同) 자(者)가 있어(有), 마땅히(當) 사형(死)의 죄(罪)인데,관리(吏)들이 일을 그르쳐(誤) 주방(訪)을 잡아들이니(收), 주방(訪)이 분하여(奮) 잡아들이는(收) 자(者)를 공격해(擊), 수십(數十) 사람(人)이 모두(皆) 흩어져(散) 달아나니(走), 능히(而) 스스로(自) 원제(帝)에게(於) 돌아갔는데(歸), 원제(帝)는 죄(罪)가 아니라(不之) 하였다.    


양열장군(揚烈將軍)이 더해짐으로서(尋以為), 병사(兵) 1200(一千二百)을 거느리고(領), 심양(尋陽)의 악릉(鄂陵)에 주둔하여(屯), 감탁(甘卓)ㆍ조유(趙誘)와(與) 화일(華軼)을 토벌했다(討).    


(주방이) 통솔하는(所統) 여무장군(厲武將軍) 정건(丁乾)이 화일(軼)이 통솔하는(所統) 무창태수(武昌太守) 풍일(馮逸)과(與) 교통(交通=교제하며 통함)하였는데, 주방(訪)이 참수(斬)해 수급을 거두었다(收).    


풍일(逸)이 주방(訪)을 공격(攻)하려 왔는데(來), 주방(訪)이 무리(眾)를 통솔해(率) 격파했다(擊破之).    


풍일(逸)은 달아나(遁) 시상(柴桑)을 지키니(保), 주방(訪)은 나아가(進) 토벌하는(討)게 승승장구(乘勝)하였다.    


화일(軼)은 그(其) 무리(党)인 왕약(王約)ㆍ부차(傅劄)등(等) 만여명(萬餘人)을 보내(遣), 화일(逸)을 돕게하여(助), 분구(湓口)에서(於) 크게 싸웠는데(大戰), 왕약(約)의 무리(等)는 또한(又) 패하였다(敗).    


주방(訪)과(與) 감탁(甘卓)의 무리(等)는 팽택(彭澤)에서(于) 모여(會), 화일(軼)의 수군(水軍)장수(將) 주구(硃矩)의 무리(等)와(與) 싸우니(戰), 또(又) 패배시켰다(敗之).    


화일(軼)의 장수(將) 주광(周廣)은 주방(訪)에 호응(應)하여(以) 성(城)을 불사르니(燒), 화일(軼)의 무리(眾)는 궤멸하였고(潰), 주방(訪)은 화일(軼)을 잡아(執), 참수하여(斬之), 마침내(遂) 강주(江州)를 평정했다(平).    


帝以訪為振武將軍ㆍ尋陽太守,加鼓吹ㆍ曲蓋。複命訪與諸軍共征杜弢。弢作桔槔打官軍船艦,訪作長岐棖以距之,桔槔不得為害。而賊從青草湖密抄官軍,又遣其將張彥陷豫章,焚燒城邑。王敦時鎮湓口,遣督護繆蕤ㆍ李恆受訪節度,共擊彥。蕤于豫章ㆍ石頭,與彥交戰,彥軍退走,訪率悵下將李午等追彥,破之,臨陣斬彥。時訪為流矢所中,折前兩齒,形色不變。及暮,訪與賊隔水,賊眾數倍,自知力不能敵,乃密遣人如樵采者而出,於是結陣鳴鼓而來,大呼曰:「左軍至!」士卒皆稱萬歲。至夜,令軍中多布火而食,賊謂官軍益至,未曉而退。訪謂諸將曰:「賊必引退,然終知我無救軍,當還掩人,宜促渡水北。」既渡,斷橋訖,而賊果至,隔水不得進,於是遂歸湘州。訪複以舟師造湘城,軍達富口,而弢遣杜弘出海昏。時湓口騷動,訪步上柴桑,偷渡,與賊戰,斬首數百。賊退保廬陵,訪追擊敗之,賊嬰城處自守。尋而軍糧為賊所掠,退住巴丘。糧廩既至,複圍弘於廬陵。弘大擲寶物於城外,軍人競拾之,弘因陣亂突圍而出。訪率軍追之,獲鞍馬鎧杖不可勝數。弘入南康,太守將率兵逆擊,又破之,奔于臨賀。帝又進訪龍驤將軍。王敦表為豫章太守。加征討都督,賜爵尋陽縣侯。    


원제(帝)는 주방(訪)을 진무장군(振武將軍)ㆍ심양태수(尋陽太守)로 삼으며(為), 고취(鼓吹=임금의 행차 등 궁중의식 때 연주되던 군악계통 악기 편성)ㆍ곡개(曲蓋=수레 위에 받쳐 햇빛을 가리는, 자루가 좀 굽은 덮개)를 더해주었다(加).    


거듭(複) 명령(命)을 내려 주방(訪)과(與) 제군(諸軍)과 함께(共) 두도(杜弢)를 정벌하게(征)했다.    


두도(弢)가 길고(桔槔=두레박틀)을 만들어(作) 관군(官軍)의 선함(船艦)을 치니(打), 주방(訪)은 긴(長) 울퉁불퉁한(岐) 정(棖)을 만들어(作)서(以) 막으니(距之), 길고(桔槔)로 해(害)하지(為) 못했다(不得).    


그리고(而) 도적(賊)이 청초호(青草湖)로 나아가(從) 밀집된(密) 관군(官軍)을 뽑았으며(抄), 또한(又) 그들의(其) 장수(將) 장언(張彥)을 보내(遣) 예장(豫章)을 함락하니(陷), 성읍(城邑)이 불에 탓다(焚燒).    


왕돈(王敦)이 분구(湓口)에 진수(鎮)할 때(時), 독호(督護)인 무유(繆蕤)ㆍ이항(李恆)을 파견해(遣) 주방(訪)의 절도(節度=통제)를 받게하여(受), 함께(共) 장언(彥)을 공격하였다(擊).    


무유(蕤)가 예장(豫章)ㆍ석두(石頭)에서(于) 장언(彥)과(與) 교전(交戰)하였는데, 장언(彥)군(軍)이 물러나(退) 달아났으며(走), 주방(訪)이 창하(悵下)의 장수(將) 이오(李午)의 무리(等)를 통솔해(率) 장언(彥)을 추격해(追), 격파하여(破之), 장언(彥)을 진(陣)에서 참수하기에(斬) 이르었다(臨).    


주방(訪)이 유시(流矢=난데없이 날라오는 화살) 사이에(所中) 있을(為) 때(時), 앞(前)니(齒) 두 개(兩)가 부러졌는데(折), 형색(形色)이 변하지(變) 않았다(不).    


날이 저무니(及暮), 주방(訪)과 적(賊)과(與) 물(水)을 차단하여(隔), 적(賊)의 무리(眾)가 수배(數倍) 였지만, 스스로(自) 힘(力)이 대적(敵)할(能)수 없다는(不) 것을 알자(知), 이에(乃)초채자(樵采者=나무꾼) 같은(如) 사람(人)을 빽빽이(密) 파견해(遣) 내보내(出), 이(是)에(於) 결진(結陣=진을 침)하며 명고(鳴鼓=북을 울림)하고(而) 오며(來), 크게(大) 부르며(呼) 말하였다(曰).   


“좌군(左軍)이 도착했다(至)!”    


사졸(士卒)은 모두(皆) 만세(萬歲)를 불렀다(稱).    


밤이 되니(至夜), 군중(軍中)에 명을 내려(令) 많은(多) 포(布) 에 불(火)로 밥(食)을 하고, 적(賊)에게 관군(官軍)이 왔다(益至)이르니(謂), 새벽이 되지도 않았는데 물러났다(未曉而退).    


주방(訪)이 제장(諸將)에게 이르며(謂) 말하였다(曰).   


“적(賊)은 반드시(必) 인퇴(引退=물러남)하니, 분명(然) 끝내(終) 우리(我)에게 원군(救軍)이 없다는(無)것을 알(知) 것이니, 응당(當) 돌아와(還) 사람(人)을 엄습할 것이므로(掩), 급히(促) 물(水)을 건너(渡) 북쪽(北)으로 가야한다(宜).”    


이윽고(既) [물을] 건너(渡), 다리(橋)를 끊으니(斷訖), 적(賊)이 결국(果) 이르지만(至), 물(水)이 막히니(隔) 나아가지(進) 못했고(不得), 이(是)에(於) 드디어(遂) 상주(湘州)로 돌아갔다(歸).    


주방(訪)이 거듭(複) 상주(湘)의 성(城)에서 주사(舟師=수군) 만들어(造), 군(軍)이 부구(富口)에 도달했는데(達), 두도(弢)는 두홍(杜弘)을 파견해(遣) 해혼(海昏)으로 나가게 했다(出).    


분구(湓口)에 소동(騷動)이 있을 때(時), 주방(訪)은 걸어서(步) 시상(柴桑)으로 올라가(上), 몰래 (강을) 건너(偷渡), 적(賊)과(與) 전투하니(戰), 수백(數百)명을 참수(斬首)했다.    


적(賊)은 물러나(退) 여릉(廬陵)을 지켰는데(保), 주방(訪)이 추격(追擊)하여 패배시키니(敗之), 적(賊)이 영성(嬰城=농성하며 굳게 지킴)하는곳에 은거하여(處) 스스로(自) 지켰다(守).    


곧이어(尋而) 적(賊)에게 군량(軍糧)이 있는 곳(所)을 약탈(掠)당해(為), 물러나(退) 파구(巴丘)에 머물렀다(住).    


양음(糧廩=양식)이 이윽고(既) 이르니(至), 거듭(複) 여릉(廬陵)에서(於) 두홍(弘)을 포위했다(圍).     두홍(弘)은 성(城) 밖(外)에(於) 보물(寶物)을 크게(大) 던져(擲), 군인(軍人)이 얻기 위해(拾) 다투니(競), 두홍(弘)은 이로 인해(因) 진(陣)이 갑자기(突) 어지러워지니(亂) 포위(圍)에서 탈출(出)이 가능했다(而).    


주방(訪)은 군사(軍)를 통솔하여(率) 추격하니(追之), 말(馬)안장(鞍)과 갑옷(鎧) 지팡이(杖?)를 얻었는데(獲) 하도 수가 많아서 셀 수가 없었다(不可勝數).    


두홍(弘)은 남강군(南康)에 들어갔는데(入), 태수(太守)가 장차(將) 병사(兵)를 인솔하여(率) 역격(逆擊=자기에게 향하는 군을 맞받아 침)하니, 또한(又) 격파되어(破之), 임하(臨賀)로(于) 도망갔다(奔).    


원제(帝)는 또한(又) 주방(訪)을 용양장군(龍驤將軍)으로 진급시켰다(進).    


왕돈(王敦)이 표(表)를 올려 예장태수(豫章太守)를 하게 했다(為).    


정토도독(征討都督)을 더했으며(加), 심양현후(尋陽縣侯)의 작위(爵)를 하사했다(賜).   


時梁州刺史張光卒,湣帝以侍中第五猗為征南大將軍,監荊ㆍ梁ㆍ益ㆍ寧四州,出自武關。賊率杜曾ㆍ摯瞻ㆍ胡混等並迎猗,奉之,聚兵數萬,破陶侃於石城,攻平南將軍荀崧于宛,不克,引兵向江陵。王敦以從弟暠為荊州刺史,令督護征虜將軍趙誘ㆍ襄陽太守硃軌ㆍ陵江將軍黃峻等討曾,而大敗於女觀湖,誘ㆍ軌並遇害。曾遂逐暠,徑造沔口,大為寇害,威震江ㆍ沔。元帝命訪擊之。訪有眾八千,進至沌陽。曾等銳氣甚盛,訪曰:「先人有奪人之心,軍之善謀也。」使將軍李恆督左甄,許朝督右甄,訪自領中軍,高張旗幟。曾果畏訪,先攻左右甄。曾勇冠三軍,訪甚惡之,自於陣後射雉以安眾心。令其眾曰:「一甄敗,鳴三鼓;兩甄敗,鳴六鼓。」趙胤領其父余兵屬左甄,力戰,敗而複合。胤馳馬告訪,訪怒,叱令更進。胤號哭還戰,自旦至申,兩甄皆敗。訪聞鼓音,選精銳八百人,自行酒飲之,敕不得妄動,聞鼓音乃進。賊未至三十步,訪親鳴鼓,將士皆騰躍奔赴,曾遂大潰,殺千餘人。訪夜追之,諸將請待明日,訪曰:「曾驍勇能戰,向之敗也,彼勞我逸,是以克之。宜及其衰乘之,可滅。」鼓行而進,遂定漢ㆍ沔。曾等走固武當。訪以功遷南中郎將ㆍ督梁州諸軍ㆍ梁州刺史,屯襄陽。訪謂其僚佐曰:「昔城濮之役,晉文以得臣不死而有憂色,今不斬曾,禍難未已。」於是出其不意,又擊破之,曾遁走。訪部將蘇溫收曾詣軍,並獲第五猗ㆍ胡混ㆍ摯瞻等,送于王敦。又白敦,說猗逼于曾,不宜殺。敦不從而斬之。進位安南將軍ㆍ持節,都督ㆍ刺史如故。    


양주자사(梁州刺史) 장광(張光)이 죽었을(卒) 때(時), 민제(湣帝)는 시중(侍中)인(以) 제오의(第五猗)를 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ㆍ감형양익영사주(監荊梁益寧四州=감형양익영사주제군사)로 삼아(為), 스스로(自) 무관(武關)을 나가게했다(出).    


적(賊)은 두증(杜曾)ㆍ지첨(摯瞻)ㆍ호혼(胡混)의 무리(等)를 인솔하여(率) 나란히(並) 제오의(猗)를 영접하고(迎), 받드니(奉之), 병사(兵) 수만(數萬)을 얻어(聚), 도간(陶侃)을 석성(石城)에서(於) 격파하였으며(破), 평남장군(平南將軍) 순숭(荀崧)을 완(宛)에서(于) 공격하였는데(攻), 이기지 못하고(不克), 군대를 뒤로 물려(引兵) 강릉(江陵)을 향했다(向).    


왕돈(王敦)의 사촌동생(從弟) 왕고(暠)를 형주자사(荊州刺史)로 삼(為)고(以), 명(令)을 내려 독호(督護)ㆍ정로장군(征虜將軍) 조유(趙誘)ㆍ양양태수(襄陽太守) 주궤(硃軌)ㆍ능강장군(陵江將軍) 황준(黃峻)의 무리(等)에게 두증(曾)을 토벌하게(討)하는데, 여관호(女觀湖)에서(於) 대패(大敗)하니(而), 조유(誘), 주궤(軌)가 나란히(並) 우해(遇害=살해당함)했다.    


두증(曾)이 마침내(遂) 왕고(暠)를 축출하고(逐), 지름길로(徑) 면구(沔口)로 가(造), 도적(寇)이 해(害)하는(為)것이 심하여(大), 위엄(威)이 장강(江)ㆍ면수(沔)를 진동했다(震).    


원제(元帝)가 명(命)을 내려 주방(訪)에게 공격하게 하였다(擊之).    


주방(訪)은 팔천(八千)의 무리(眾)가 있었는데(有), 나아가(進) 돈양(沌陽)에 이르었다(至).    


두증(曾)의 무리(等)에서 정예(銳)군의 기세(氣)는 대단히(甚) 왕성하였는데(盛), 주방(訪)이 말했다(曰).   


“다른 사람보다 먼저 하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으니 군사의 훌륭한 계책이다.”    


장군(將軍) 이항(李恆)으로 하여금(使) 좌견(左甄)을 감독(督)하고, 허조(許朝)는 우견(右甄)을 감독하며(督), 주방(訪) 자신(自)은 중군(中軍)을 거느려(領), 기치(旗幟=깃발)을 높이(高) 펼쳤다(張).    


두증(曾)은 끝내(果) 주방(訪)을 두려워하여(畏), 먼저(先) 좌우(左右)견(甄)을 공격하였다(攻).    


두증(曾)은 용관삼군(勇冠三軍=용맹함이 삼군의 으뜸)하니, 주방(訪)이 매우(甚) 열악했는데(惡之), 스스로(自) 진(陣)의 뒤(後)에서(於) 꿩(雉)을 쏘아(射)서(以) 무리(眾)의 마음(心)을 안심시켰다(安).    


그(其) 무리(眾)에게 명령해(令) 말하였다(曰).    


“일견(一甄)이 패하면(敗), 북(鼓)을 세 번(三) 울리고(鳴), 두견(兩甄)이 패하면(敗), 북(鼓)을 여섯 번(六) 울려라(鳴).”    


조윤(趙胤=조유의 아들)은 그(其) 아버지(父)의 남은(余) 병사(兵)를 거느리고(領) 좌견(左甄)에 소속되었는데(屬), 힘껏(力) 싸우다(戰), 패하는데(敗) 다시(複) 집합시켜(合) 놓고(而), 조윤(胤)은 말(馬)을 달려(馳) 주방(訪)에게 알리니(告), 주방(訪)은 노하여(怒), 질책하며(叱) 다시(更) 나아가게(進) 명령했다(令).    


조윤(胤)은 호곡(號哭=목놓아 슬피 욺)하면서 돌아가(還) 싸웠다(戰).    


(전투가) 아침(旦)부터 시작하여(自) 신시(申)에 이르었는데(至), 양견(兩甄)이 모두(皆) 패하였다(敗).    


주방(訪)은 북(鼓) 소리(音)를 듣고(聞), 정예(精銳)병사 8백명(八百人)을 선발하여(選), 스스로(自) 행주(行酒=술을 돌림)하며 마시게 하며(飲之), 칙령(敕)을 내려 망동(妄動=멋대로 행동함)하지 못하게하며(不得), 북(鼓) 소리(音)를 들으면(聞) 비소로(乃) 나아가게 했다(進).


적(賊)이 30보(三十步)가 안되는(未)곳에 이르자(至), 주방(訪)은 친히(親) 북(鼓)을 울리며(鳴), 장사(將士)들이 모두(皆) 등약(騰躍=뛰어오름)하며 달려가(奔) 다다르니(赴), 두증(曾)은 마침내(遂) 크게(大) 무너졌고(潰), 천여명(千餘人)을 죽였다(殺).    


주방(訪)이 밤(夜)에 추격하니(追之), 제장(諸將)들은 다음날(明日)까지 기다리자(待)고 청했으나(請), 주방(訪)이 말하였다(曰).    


“두증(曾)은 효용(驍勇=날래고 용감함)하며 전투(戰)에 능하지만(能), 향하는 곳에서(向之) 패(敗)하였으니(也), 저들(彼)은 피곤하며(勞) 우리(我)는 편안하여(逸), 이(是)로서(以) 이긴 것이다(克之). 의당(宜) 그들(其)의 쇠약(衰)해짐(及)을 탄다면(乘之), 멸망시킬(滅)수 있다(可).”    


고행(鼓行=북을 치며 나아감)하며 진군(進)해서(而), 마침내(遂) 한수(漢)ㆍ면수(沔)를 평정했다(定).    


두증(曾)의 무리(等)는 달아나(走) 무당(武當)을 지켰다(固).    


주방(訪)은 공(功)으로(以) 남중랑장(南中郎將)ㆍ독양주제군사(督梁州諸軍)ㆍ양주자사(梁州刺史)로 옮겼으며(遷), 양양(襄陽)에 주둔하였다(屯).    


주방(訪)은 그(其) 요좌(僚佐=보좌관)들에게 이르며(謂) 말하였다(曰).    


“옛날(昔)에 성복지역(城濮之役=춘추전국시대 진문공의 성복대전)에서, 진문공(晉文)은 성득신(得臣)이 죽이지(死) 못(不)해서(以) 우색(憂色=근심하는 빛)이 있었고(有), 오늘날(今) 두증(曾)을 베지(斬) 못했으니(不), 화난(禍難=재앙과 환난)이 그치지(已) 않았다(未).”


이(是)에(於) 출기불의(出其不意=생각지 않던 판에 나섬)하여, 또(又) 격파하니(擊破之), 두증(曾)은 둔주(遁走=도망쳐 달아남)했다.


주방(訪)이 거느린(部) 장수(將) 소온(蘇溫)이 두증(曾)을 거두고(收) 군(軍)에 이르었는데(詣), 나란히(並) 제오의(第五猗)ㆍ호혼(胡混)ㆍ지첨(摯瞻)의 무리(等)를 얻어(獲), 왕돈(王敦)에게(于) 보냈다(送).    


또한(又) 왕돈(敦)에게 아뢰어(白), 제오의(猗)는 두증(曾)에게(于) 핍박당했다(逼) 진술하며(說), 마땅히(宜) 죽여선(殺) 안된다고(不) 하였다.    


왕돈(敦)은 좇지(從) 않(不)고(而) (제오의를) 베었다(斬之).    


안남장군(安南將軍)의 직위(位)로 올랐으며(進), 지절(持節)ㆍ도독(都督)ㆍ자사(刺史)는 이전(故)과 같았다(如).   


初,王敦懼杜曾之難,謂訪曰:「擒曾,當相論為荊州刺史。」及是而敦不用。至王廙去職,詔以訪為荊州。敦以訪名將,勳業隆重,有疑色。其從事中郎郭舒說敦曰:「鄙州雖遇寇難荒弊,實為用武之國,若以假人,將有尾大之患,公宜自領,訪為梁州足矣。」敦從之,訪大怒。敦手書譬釋,並遺玉環玉碗以申厚意。訪投碗於地曰:「吾豈賈豎,可以寶悅乎!」陰欲圖之。即在襄陽,務農訓卒,勤於採納,守宰有缺輒補,然後言上。敦患之,而憚其強,不敢有異。訪威風既著,遠近悅服,智勇過人,為中興名將。性謙虛,未嘗論功伐。或問訪曰:「人有小善,鮮不自稱。卿功勳如此,初無一言何也?」訪曰:「朝廷威靈,將士用命,訪何功之有!」士以此重之。訪練兵簡卒,欲宣力中原,與李矩ㆍ郭默相結,慨然有平河ㆍ洛之志。善於撫納,士眾皆為致死。聞敦有不臣之心,訪恆切齒。敦雖懷逆謀,故終訪之世未敢為非。    

애초에(初), 왕돈(王敦)은 두증(杜曾)의(之)난(難)을 두려워하여(懼), 주방(訪)에게 이르며(謂) 말하였다(曰).    


“두증(曾)을 사로잡는다면(擒), 마땅히(當) 형주자사(荊州刺史)를 하도록(為) 상론(相論=서로 의논함)할 것이오.”   


이[=평정하기]에(是) 이르니(及) 왕돈(敦)은 채용하지(用) 않았(不)다.    


왕이(王廙=형주자사)가 직위(職)를 옮기기(去)에 이르자(至), 조서(詔)를 내려 주방(訪)으로(以) 형주자사(荊州)를 하게 했다(為).    


왕돈(敦)은 주방(訪)이 명장(名將)이고(以), 훈업(勳業=큰 공로)는 높고(隆) 무거우니(重), 믿지 않는(疑) 기색(色)을 띄었다(有).    

그(其)의 종사중랑(從事中郎) 곽서(郭舒)가 왕돈(敦)에게 유세하며(說) 말하였다(曰).    


“저의 주(鄙州)는 비록(雖) 도적(寇)의 난(難)을 만나(遇) 황폐(荒弊)하지만, 마침내(實) 무력(武)을 사용(用)할(為)수 있는(之) 나라(國)이니, 만약(若) 사람(人)에게 빌려준다면(假), 장차(將) 끝에(尾) 큰(大) 근심(患)이 있을(有)것이니, 공(公)께서 의당(宜) 스스로(自) 다스려야(領)하며, 주방(訪)은 양주자사(梁州)가 된다면(為) 족할 것입니다(足矣).”    


왕돈(敦)이 이를 좇으니(從之), 주방(訪)은 크게(大) 노했다(怒).    


왕돈(敦)은 손수(手) 편지를 써(書) 설명하며(譬釋), 아울러(並) 옥환(玉環=옥 반지)과 옥완(玉碗=옥 사발)을 보내(遺)서(以) 후한(厚) 뜻(意)을 표시했다(申).    


주방(訪)은 사발(碗)을 땅(地)에(於) 던지며(投) 말하였다(曰).   


“내가(吾) 어찌(豈) 상인(賈)처럼 천하게(豎), 보배(寶)로서(以) 기뻐(悅)하겠는(可)가(乎)!”    


몰래(陰) 도모(圖)하고자 하였다(欲).    


즉시(即) 양양(襄陽)에 있으면서(在), 농사(農)에 힘쓰며(務) 군사(卒)를 훈련시키고(訓), 채납(採納=사람을 들임)에(於) 근면하니(勤), 수재(守宰=관리)에 결원(缺)이 있으면(有) 즉시(輒) 보충하며(補), 그런(然) 다음에(後) 상부에(上) 말씀을 올렸다(言).    


왕돈(敦)은 근심하였고(患之), 그(其) 강함(強)을 꺼렸지만(而憚), 감히(敢) 통제(異)할수(有) 없었다(不).    


주방(訪)의 위풍(威風)은 이미(既) 저명하여(著), 먼(遠)곳과 가까운(近)곳에서 열복(悅服=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니, 지용(智勇=슬기와 용기)이 보통사람을 넘었고(過人), 중흥명장(中興名將)이 되었다(為).    


성품(性)은 겸허(謙虛)하고, 일찍이(嘗) 토벌(伐)한 공(功)을 따지지(論) 않았다(未).    


혹자(或)가 주방(訪)에게 물으며(問) 말하였다(曰).    


“사람(人)에게 작은 선행(小善)이 있지만(有), 스스로(自) 칭찬하지(稱) 않는 것이(不) 드뭅니다(鮮). 경(卿)의 공훈(功勳)은 이와(此) 같으니(如), 처음부터(初) 한마디(一言)도 없으니(無) 무슨 일입니까(何也)?”    


주방(訪)이 말하였다(曰).    


“조정(朝廷)이 위령(威靈=위엄과 높은 덕)하여, 장수와 병졸(將士)은 명을 받들었으니(用命), 주방(訪)이 어찌(何) 공(功)이(之) 있겠는가(有)!”    


병사(士)들이 이로서(以此) 무겁게 여겼다(重之).    


주방(訪)은 병사(兵) 훈련(練)을 간략히(簡) 마치며(卒), 중원(中原)에 힘쓰고자(宣力)하여(欲), 이구(李矩)ㆍ곽묵(郭默)과 더불어(與) 서로(相) 결의(結)했으며,황하(河)ㆍ낙양(洛)을 평정(平)할(之) 뜻(志)이 있음(有)을 서슴없이(慨) 불태웠다(然).    


어루만지고(撫) 받아들이는(納)것을(於) 잘하였으므로(善), 병사(士)의 무리(眾)는 모두(皆) 목숨(死)까지 바치려(致)하였다(為).

    

왕돈(敦)이 신하(臣)가 되지 않으려는(不) 마음(心)이 있음(有)을 알고(聞), 주방(訪)은 항상(恆) 이를 갈았다(切齒).    


왕돈(敦)이 비록(雖) 역모(逆謀)를 생각했지만(懷), 이러한 연고(故)로 주방(訪)이 죽을(終) 때(世)까지 감히(敢) 배반(非) 하려고(為) 하지 못했다(未).   


初,訪少時遇善相者廬江陳訓,謂訪與陶侃曰:「二君皆位至方嶽,功名略同,但陶得上壽,周當下壽,優劣更由年耳。」訪小侃一歲,太興三年卒,時年六十一。帝哭之甚慟,詔贈征西將軍,諡曰壯,立碑於本郡。二子:撫ㆍ光。       


처음에(初), 주방(訪)이 어렸을(少) 때(時) 훌륭한(善) 관상가(相者)를 여강(廬江)에서 만나(遇) 가르침(訓)을 말하는데(陳), 주방(訪)과(與) 도간(陶侃)에게 이르며(謂) 말하였다(曰).    


“두(二) 군(君)께서는 모두(皆) 지위(位)가 방악(方嶽=제후)에 이르며(至), 공명(功名)이 거의 같으나(略同), 다만(但) 도(陶)는 상수(上壽=장수)을 얻고(得), 주(周)는 응당(當) 하수(下壽=단명)이니, 우열은 오직 생년으로부터 말미암을 것입니다(優劣更由年耳).”


주방(訪)은 도간(侃)보다 한 살(一歲) 어렸는데(小), 태흥(太興) 3년(三年) 죽으니(卒), 당시(時) 나이(年)가 61(六十一)세였다.    


원제(帝)가 곡(哭)하는 것이(之) 심히(甚) 서러웠고(慟), 조서(詔)를 내려 정서장군(征西將軍)을 추증하며(贈), 시호(諡)를 장(壯)이라 하고(曰), 본군(本郡=양양)에(於) 비(碑)를 세웠다(立).    


아들은 둘인데(二子):주무(撫)ㆍ주광(光)이다.


[주무열전]으로 분리

[주초열전]으로 분리

[주경열전]으로 분리  
[주효열전]으로 분리  
[주광열전]으로 분리  
[주중손열전]으로 분리  


初,陶侃微時,丁艱,將葬,家中忽失牛而不知所在。遇一老父,謂曰:「前崗見一牛眠山汙中,其地若葬,位極人臣矣。」又指一山雲:「此亦其次,當世出二千石。」言訖不見。侃尋牛得之,因葬其處,以所指別山與訪。訪父死,葬焉,果為刺史,著稱甯ㆍ益,自訪以下,三世為益州四十一年,如其所言雲。    


처음에(初), 도간(陶侃)이 미시(微時=보잘 것 없음)할 때, 부모가 상을 당하니(丁艱), 장차(將) 장사지내는데(葬), 집안(家中)에서 돌연히(忽) 소(牛)를 잃었(失)고(而) 있는(在)곳(所)을 알지(知) 못했다(不).    


한(一) 노부(老父)를 만났는데(遇), 이르며(謂) 말하였다(曰).    


"앞(前)산(崗)에서 한(一) 소(牛)가 산(山)의 굽혀진(汙) 중간(中)에서 자는걸(眠) 봤는데(見), 그(其) 땅(地)에 만약(若) 장(葬)한다면, 위극인신(位極人臣=신하로서의 최고의 지위에 오름)이리라(矣)."    


또한(又) 산에 낀 구름(山雲) 하나(一)를 가리켰다(指).    


“이(此) 또한(亦) 그(其) 다음이니(次), 마땅히(當) 대대로(世) 이천석(二千石)관직이 나올 것이오(出).”    


말(言)을 마치자(訖) 보이지(見) 않았다(不).    


도간(侃)은 이윽고(尋) 소(牛)를 얻었고(得之), 이로인해(因) 그(其) 곳(處)에 장(葬)하며, 장소(所)를 가리키(指)면서(以) 주방(訪)과(與) 산(山)을 나누었다(別).    


주방(訪)의 부친(父)이 죽자(死), 그곳(焉)에 장(葬)하니, 결과적으로(果) 자사(刺史)를 하였고(為), 주방(訪)부터(自) 밑으로(以下) 영주(甯)ㆍ익주(益)의 칭호(稱)가 나타났고(著), 삼세대(三世)동안 익주(益州)를 다스린게(為) 41년(四十一年)이니, 그(其) 말씀(言雲)한 바(所)와 같았다(如).     


史臣曰:夫仁義豈有常,蹈之即君子,背之即小人。周子隱以跅弛之材,負不羈之行,比凶蛟猛獸,縱毒鄉閭,終能克己厲精,朝聞夕改,輕生重義,徇國亡軀,可謂志節之士也。宣佩奮茲忠勇,屢殄妖氛,威略冠於本朝,庸績書於王府。既而結憾朝宰,潛構異圖,忿不思難,斯為隘矣。終於憤恚,豈不惜哉!劄、筵等負俊逸之材,以雄豪自許,始見疑於朝廷,終獲戾于權右,強弗如弱,信有征矣。而劄受委扞城,乃開門揖盜,去順效逆,彼實有之。後雖假手凶徒,可謂罪人斯得。朝廷議加榮贈,不其僭乎!有晉之刑政陵夷,用此道也。周訪器兼文武,任在折沖,戡定湘、羅,克清江、漢,謀孫翼子,杖節擁旄,西蜀仰其威風,中興推為名將,功成名立,不亦美乎!孟威陷跡虜廷,抗辭偽主,雖圖史所載,何以加焉!(미번역)


贊曰:平西果勁,始邪末正。勇足除殘,忠能致命。宣佩懋功,三定江東。劄雖啟敵,筵實懷忠。尋陽緯武,擁旄持斧。曰子曰孫,重規疊矩。孟威抗烈,心存舊主。


평서(平西=주방)는 과감하고 굳세며(果勁), 처음은 어긋났으나(始邪) 끝은 바로잡혔다(末正).    


용맹(勇)은 재앙(殘)을 없애기(除) 충분했으며(足), 충성(忠)은 그 몸을 희생(致命)하기에 이르었다(能).    


선패(宣佩=주기의 자)는 공로가 뛰어나(懋功), 세 번(三) 강동(江東)을 평정했다(定). 


주찰(札)은 비록(雖) 적(敵=왕돈)을 인도했으나(啟=성문 열어준거), 주연(筵)은 진실로(實) 충성(忠)을 품었다(懷).    


심양(尋陽=주방)은 위무(緯武=위무경문/문무를 겸비)하여, 깃발을 들고(擁旄) 도끼를 쥐었다(持斧).    


아들과 후손으로 말하자면(曰子曰孫), 법을 중시하고(重規) 거듭 새겼다(疊矩).    


맹위(孟威=주효) 강하게 저항하였으니(抗烈), 마음(心)엔 옛 주인(舊主=동진황제)만이 있었다(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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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rz

2016.07.11
18:45:10
(*.226.145.238)
근래에 번역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많아 기쁩니다. 번역하신 글을 잘 읽었습니다. 지적을 말씀하셨으니 몇마디 드리고자 하는데 시간이 나시면 저의 번역도 한번 검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訪薦為主簿 : 주방(訪)을 주부(主簿)를 하도록(為) 천거하여(薦) , 이 부분은 응당 주방이 천거하는 주체가 돼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除郎中、上甲令,皆不之官 : 낭중(郎中)이 제수되었고(除), 상갑(上甲=음력 초하루)에 명령해(令), 관청(官)에 모두 없게(皆不) 하였다., 이 부분은 응당 낭중, 상갑령에 임명하였는데 모두 관직에 가지 않았다의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3.密埋其肉, 乃密遣人如樵采者而出 : 두 군데의 密자는 응당 몰래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4.조(趙)를 꾀어(誘) : 여기서 조유는 사람의 이름이 아닌가 합니다.
5.빠르게 돕게하여(助逸) : 여기서도 逸은 풍일의 이름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6.관리(李)들이 항상(恆) : 여기서도 이항은 인명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7.未曉而退 : 새벽(曉)까지 물러나지(退) 않았다(未)., 이 부분은 응당 새벽이 되지도 않았는데 퇴각하였다의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8.尋而軍糧為賊所掠 : 이 부분은 얼마후 군량에 적에게 약탈당하여의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9.先人有奪人之心,軍之善謀也 / 即在襄陽 : 이부분의 번역이 누락됐습니다.
10.人有小善,鮮不自稱。: 사람(人)에게 작은 선행(小善)이 있지만(有), 스스로(自) 칭찬하지(稱) 않으면(不) 빛납니다(鮮). , 이 부분은 응당 사람에게 작은 선행이 있으면 스스로 칭찬하지 않는 자가 드물다는 의미인것 같습니다.
11. 優劣更由年耳: 생년(年)의 말미(由)의 끝(耳)엔 더욱(更) 넉넉하지(優) 못할 것이다(劣)., 이 부분은 응당 우열은 오직 생년으로부터 말미암는 다는 의미인것 같습니다 .

대강 읽어 눈에 띄는 문제점 (같은 것만) 나열했는데 혹시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말한 것이라면 지적부탁드립니다.

한은

2016.07.11
22:48:06
(*.64.173.35)
除郎中、上甲令,皆不之官
이 부분은 상갑령이라는 관직이 있는지를 잘 몰라서 번역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先人有奪人之心,軍之善謀也

이 부분은 번역이 잘 안되서 스킵한것 같은데 혹시 어떤식으로 해야 할 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未曉而退

이 부분의 퇴각의 주체가 누구인지요.... "새벽이 되지 않았는데 [적이] 퇴각하였다." 입니까?

나머지 부분은 반영했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됬습니다.

dragonrz

2016.07.12
00:10:14
(*.226.145.238)
상갑령의 경우는 상갑현의 현령인것 같은데 찾아보니 동진 원제때의 지명이라고 하더군요. 혹 당시의 정황과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先人有奪人之心,軍之善謀也 : 이 부분은 아마도 "다른 사람보다 먼저 하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으니 군사의 훌륭한 계책이다." 정도의 의미인것 같습니다.

퇴각의 주체는 주방의 말을 들으나 문의를 보나 원군이 온줄로 착각한 상대방 측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방금봤는데 더 읽기 좋게 본문을 바꾸셨네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서로 정보를 교환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코렐솔라

2016.07.12
15:59:57
(*.196.74.143)
왕돈과 관련이 깊은 인물이군요.. 번역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은

2016.07.12
19:19:56
(*.64.173.35)
왕돈이 조적이랑 주방때문에 반란을 못했다고 하죠.... 도간열전은 차마 너무 길어서 끝까지 못해서 중간에 갈아탔습니다..ㅋㅋ;;;

코렐솔라

2016.07.12
16:00:44
(*.196.74.143)
그건 그렇고 사지방이라니 ㄷㄷㄷㄷ 군대가서 공부하는 사람도 대단하다고 하는데 번역하는 것은 정말 장난이 아닌 듯 합니다.

코렐솔라

2017.07.06
16:55:26
(*.74.127.63)
평 부분 번역 없는 것은 없다고 표기하고 있는 것은 한은님의 번역을 추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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