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13왕]]에서 분리



秦獻王柬,字弘度,沈敏有識量。泰始六年,封汝南王。咸寧初,徙封南陽王,拜左將軍ㆍ領右軍將軍ㆍ散騎常侍。武帝嘗幸宣武場,以三十六軍兵簿令不料校之,東一省便擿脫謬,帝異之,於諸子中尤見寵愛。以左將軍居齊獻王故府,甚貴寵,為天下所屬目。性仁訥,無機辯之譽。太康十年,徙封於秦,邑八萬戶。于時諸王封中土者皆五萬戶,以柬與太子同產,故特加之。轉鎮西將軍ㆍ西戎校尉ㆍ假節,與楚ㆍ淮南王俱之國。

진헌왕(秦獻王) 사마간(柬)은, 자(字)가 홍도(弘度)이며, 침착하고(沈) 민첩하여(敏) 식견(識)과 도량(量)이 있었다(有).

태시(泰始) 6년(六年), 여남왕(汝南王)에 봉해졌다(封).

함녕(咸寧) 초(初), 옮겨서(徙) 남양왕(南陽王)에 봉해졌고(封), 좌장군(左將軍)ㆍ영우군장군(領右軍將軍)ㆍ산기상시(散騎常侍)에 임명되었다(拜).

무제(武帝)가 일찍이(嘗) 선무장(宣武場)에 행차했는데(幸), 36군(三十六軍)의 병부(兵簿)로(以) 우두머리(令)가 군대(校之)를 세지(料) 못하였는데(不), (사마간이) 동쪽(東)을 한번(一) 살피고(省) 곧(便) 어긋난 부분(謬)을 풀어(脫) 들추니(擿), 무제(帝)가 뛰어나다 여겨(異之), 모든(諸) 자식(子) 중(中)에서(於) 특히(尤) 총애(寵愛)를 받았다(見).

좌장군(左將軍)으로서(以) 제헌왕(齊獻王)의 옛(故) 부서(府)에 거주하게 하며(居), 두터운(甚) 부귀(貴)와 총애(寵)가 있어, 천하(天下)에 소속(所屬)된 자들의 우두머리(目)가 되었다(為).

성품(性)은 인자하고(仁) 과묵하여(訥), 기변(機辯=언변)의(之) 명성(譽)은 없었다(無).

태강(太康) 10년(十年)에, 옮겨서(徙) 진국(秦)에(於) 봉해지니(封), 읍(邑) 8만호(八萬戶)를 받았다.

당시(時)에(于) 모든(諸) 왕(王)은 중원(中土)의 땅(者)에 봉해져(封) 모두(皆) 5만호(五萬戶)였는데, 사마간(柬)과(與) 태자(太子)만 같은(同) 출생(產) 이어서(以), 이러한 이유(故)로 특별히(特) 더해주었다(加之).


진서장군(鎮西將軍)ㆍ서융교위(西戎校尉)ㆍ가절(假節)에 임명되고(轉), 초(楚=초왕)ㆍ회남왕(淮南王)과(與) 함께(俱) 봉국(國)으로 갔다(之).

 

及惠帝即位,來朝,拜驃騎將軍ㆍ開府儀同三司,加侍中ㆍ錄尚書事,進位大將軍。時楊駿伏誅,柬既痛舅氏覆滅,甚有憂危之慮,屢述武帝旨,請還籓,而汝南王亮留柬輔政。及亮與楚王瑋被誅,時人謂柬有先識。

혜제(惠帝)가 즉위(即位)하자(及), 조정(朝)에 들어와(來), 표기장군(驃騎將軍)ㆍ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가 되었으며(拜), 시중(侍中)ㆍ녹상서사(錄尚書事)를 더했고(加), 지위(位)가 대장군(大將軍)으로 올랐다(進).

당시(時) 양준(楊駿)이 주살을 당하자(伏誅), 사마간(柬)은 이미(既) 외숙부(舅氏)가 멸족(覆滅)한 것을 괴로워하며(痛), 걱정(憂)과 불안(危)함으로(之) 근심하는 것이(慮) 많이(甚) 있었는데(有), 무제(武帝)의 뜻(旨)을 여러번(屢) 말하여(述), 국경(籓)으로 돌아가기(還)를 청하였으나(請), 하지만(而) 여남왕(汝南王) 사마량(亮)이 사마간(柬)을 보정(輔政)으로 머무르게 하였다(留).

사마량(亮)과(與) 초왕(楚王) 사마위(瑋)가 주살(誅)을 당하(被)자(及), 당시 사람(時人)들은 사마간(柬)이 앞선(先) 식견(識)이 있다(有) 생각하였다(謂).

 

元康元年薨,時年三十,朝野痛惜之。葬禮如齊獻文王攸故事,廟設軒懸之樂。無子,以淮南王允子郁為嗣,與允俱被害。永寧二年,追謚曰悼。又以吳王晏子鄴嗣。懷帝崩,鄴入纂帝位,國絕。

원강(元康) 원년(元年)에 죽으니(薨), 당시(時) 나이(年) 30(三十)세였고, 조야(朝野=조정과 민간)에서 몹시 애석하게 여겼다(痛惜之).

장사(葬)의 예(禮)는 제헌문왕(齊獻文王) 사마유(攸)의 고사(故事)와 같게 하여(如), 묘(廟)에는 헌현의(軒懸之) 음악(樂)을 세웠다(設).

자식(子)이 없어(無), 회남왕(淮南王) 사마윤(允)의 아들(子) 사마욱(郁)으로서(以) 계승하게(嗣) 하였는데(為), 사마윤(允)과(與) 함께(俱) 살해(害) 당했다(被).

영녕(永寧) 2년(二年), 시호(謚)를 추가하여(追) 도(悼)라 하였다(曰).

또한(又) 오왕(吳王) 사마안(晏)의 아들(子) 사마업(鄴)으로(以) 계승하게 하였다(嗣).

회제(懷帝)가 붕어하자(崩), 사마업(鄴)이 제위(帝位)를 받아들여(入) 계승하니(纂), 봉국(國)이 끊겼다(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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