陶璜,字世英,丹陽秣陵人也。父基,吳交州刺史。璜仕吳歷顯位。孫皓時,交阯太守孫住貪暴,為百姓所患。會察戰鄧荀至,擅調孔雀三千頭,遣送秣陵,既苦遠役,咸思為亂。郡吏呂興殺住及荀,以郡內附。武帝拜興安南將軍ㆍ交阯太守。尋為其功曹李統所殺,帝更以建寧爨谷為交阯太守,谷又死,更遣巴西馬融代之。融病卒,南中監軍霍弋又遣犍為楊稷代融,與將軍毛炅,九真太守董元,牙門孟幹ㆍ孟通ㆍ李松ㆍ王業ㆍ爨能等,自蜀出交阯,破吳軍于古城,斬大都督脩則ㆍ交州刺史劉俊。吳遣虞汜為監軍,薛珝為威南將軍ㆍ大都督,璜為蒼梧太守,距稷,戰于分水。璜敗,退保合浦,亡其二將。珝怒謂璜曰:「若自表討賊,而喪二帥,其責安在?」璜曰:「下官不得行意,諸軍不相順,故致敗耳。」珝怒,欲引軍還。璜夜以數百兵襲董元,獲其寶物,船載而歸,珝乃謝之,以璜領交州,為前部督。璜從海道出於不意,徑至交阯,元距之。諸將將戰,璜疑斷牆內有伏兵,列長戟於甚後。兵纔接,元偽退,璜追之,伏兵果出,長戟逆之,大破元等。以前所得寶船上錦物數千匹遺扶嚴賊帥梁奇,奇將萬餘人助璜。元有勇將解系同在城內,璜誘其弟象,使為書與系,又使象乘璜軺車,鼓吹導從而行。元等曰:「象尚若此,系必去志。」乃就殺之。珝ㆍ璜遂陷交阯。吳因用璜為交州刺史。

 

도황(陶璜)은, 자(字)가 세영(世英)이며, 단양(丹陽) 말릉(秣陵) 사람(人)이다(也).

부친(父) 도기(基)는, 오(吳)의 교주자사(交州刺史)였다.

도황(璜)은 오(吳)를 섬겨(仕) 벼슬(位)을 지낸(歷) 것으로 나와있다(顯).

손호(孫皓) 시기(時)에, 교지태수(交阯太守) 손주(孫住)가 탐욕하고 포학하여(貪暴), 백성(百姓)이 근심한 바(所患)가 있었다(為).

마침(會) 찰전(察戰=지명)에 등순(鄧荀)이 이르었는데(至), 멋대로(擅) 공작(孔雀) 3천(三千) 마리(頭)를 골라(調), 말릉(秣陵)에 보내니(遣送), 이미(既) 오랫동안(遠) 부역(役)으로 고통받았으므로(苦), 모두(咸) 반란(亂)을 생각하게(思) 되었다(為).

군(郡)의 관리(吏) 여흥(呂興)이 손주(住)와(及) 등순(荀)을 죽이고(殺), 이로서(以) 군(郡)이 내부해왔다(內附=투항).

무제(武帝=사마염)는 여흥(興)을 안남장군(安南將軍)ㆍ교지태수(交阯太守)로 삼았다(拜).

이윽고(尋) 그(其)는 공조(功曹) 이통(李統)에게 살해당한 바(所殺)가 되어(為), 무제(帝)는 다시(更) 건녕(建寧)의 찬곡(爨谷)으로(以) 교지태수(交阯太守)를 삼으니(為), 찬곡(谷) 또한(又) 죽어(死), 거듭(更) 파서(巴西)의 마융(馬融)을 보내(遣) 대신하게 하였다(代之).

마융(融)이 병(病)으로 죽자(卒), 남중(南中)의 감군(監軍) 곽익(霍弋)이 또한(又) 건위(犍為)의 양직(楊稷)을 보내(遣) 마융(融)을 대신했는데(代), 장군(將軍) 모경(毛炅)은, 구진태수(九真太守) 동원(董元), 아문장(牙門) 맹건(孟幹)ㆍ맹통(孟通)ㆍ이송(李松)ㆍ왕업(王業)ㆍ찬능(爨能) 등(等)과 함께(與), 스스로(自) 촉에서(蜀) 교지(交阯)로 나와(出), 오군(吳軍)을 고성(古城)에서(于) 깨뜨려(破), 대도독(大都督) 수칙(脩則)ㆍ교주자사(交州刺史) 유준(劉俊)을 참수하였다(斬).

오(吳)는 우사(虞汜)를 감군(監軍)으로 삼고(為), 설후(薛珝)를 위남장군(威南將軍)ㆍ대도독(大都督)으로 삼으며(為), 도황(璜)을 창오태수(蒼梧太守)로 삼아(為) 보내니(遣),양직(稷)과 만나(距), 분수(分水)에서(于) 싸웠다(戰).

도황(璜)이 패하여(敗), 걸어서(保) 합포(合浦)로 물러났는데(退), 그(其)의 장수(將) 둘(二)이 죽었다(亡).

설후(珝)는 노하여(怒) 도황(璜)에게 이르어(謂) 말하였다(曰).

“겉으로는(表) 스스로(自) 적(賊)을 토벌한다(討) 하면서(若), 그러나(而) 장수(帥) 둘(二)이 죽었는데(喪), 그(其) 책임(責)은 어찌(安) 할 것인가(在)?”

도황(璜)이 말하였다(曰).

“하관(下官)이 뜻하는 대로(意) 행해지지(行) 아니한 것은(不得), 제군(諸軍)은 서로(相) 화합하지(順) 못하니(不), 그러하여(故) 패배에(敗) 이른(致)것입니다(耳).”

설후(珝)는 노하여(怒), 군(軍)을 이끌고(引) 돌아가고자(還) 하였다(欲).

도황(璜)은 밤에(夜) 수백의(數百) 병사(兵)로(以) 동원(董元)을 습격해(襲), 그(其) 보물(寶物)을 노획해(獲), 배(船)에 싣고(載而) 돌아오니(歸), 설후(珝)는 이에(乃) 사죄하였고(謝之), 이로서(以) 도황(璜)을 영교주(領交州), 전부독(前部督)으로 삼았다(為).

도황(璜)은 바닷길(海道)을 좇아(從) 생각지 못한(不意) 곳으로서(於) 나아가(出), 지름길로(徑) 교지(交阯)에 이르었는데(至), 동원(元)이 저항했다(距之).

제장(諸將)들은 장차(將) 싸우려 했는데(戰), 도황(璜)은 복병(伏兵)이 있어(有) 장내(牆內)를 끊을까(斷) 의심하여(疑), 긴 창(長戟)으로 줄지어서(列) 후미(後)를 두텁게(甚) 따르게 했다(於).

병사(兵)가 비로소(纔) 접촉했는데(接), 동원(元)이 거짓으로(偽) 퇴각하여(退), 도황(璜)이 추격하는데(追之), 복병(伏兵)이 과연(果) 나와(出), 긴 창(長戟)으로 대응하였고(逆之), 동원(元) 등(等)을 대파하였다(大破).

앞서서(以前) 얻은(所得) 보물(寶)에서 배 위(船上)에 있는 비단(錦) 물자(物) 수천필(數千匹)을 부엄(扶嚴)의 도적 대장(賊帥)인 양기(梁奇)에게 보내니(遺), 양기(奇)가 장차(將) 1만여명(萬餘人)으로 도황(璜)을 도왔다(助).

동원(元)에게는 용장(勇將)인 해계(解系)가 있어(有) 함께(同) 성 내(城內)에 있었는데(在), 도황(璜)은 그(其)의 동생(弟) 해상(象)을 꾀어(誘), 서신(書)을 해계(系)에게 주기로(與) 시키도록(使) 하며(為), 또한(又) 해상(象)으로 하여(使) 도황(璜)의 수레(軺車)를 타게 하니(乘), 북을 치며(鼓吹) 행렬을 따라(導從而) 나아가게 하였다(行).

동원(元) 등(等)이 말하였다(曰).

“해상(象)이 오히려(尚) 이(此)와 같다면(若), 해계(系)의 마음(必)은 뜻(志)을 저버린 것이다(去).”

이에(乃) 나아가(就) 죽였다(殺之).

설후(珝)ㆍ도황(璜)은 마침내(遂) 교지(交阯)를 함락했다(陷).

오(吳)는 이로인해(因) 도황(璜)을 등용해(用) 교주자사(交州刺史)로 삼았다(為).

 

璜有謀策,周窮好施,能得人心。滕脩數討南賊,不能制,璜曰:「南岸仰吾鹽鐵,斷勿與市,皆壞為田器。如此二年,可一戰而滅也。」脩從之,果破賊。

 

도황(璜)은 모책(謀策)이 있어(有), 베푸는 일(好施)을 두루(周) 다하니(窮), 능히(能) 인심(人心)을 얻었다(得).

등수(滕脩)가 여러번(數) 남쪽(南)의 도적(賊)을 토벌했는데(討), 없앨(制) 수 없었는데(不能), 도황(璜)이 말하였다(曰).

“남안(南岸)은 나(吾)의 염철(鹽鐵)을 의지하는데(仰), 시장(市)에 주지(與) 않고(勿) 단절시키면(斷), 모두(皆) 무너져(壞) 전기(田器)가 된다(為). 2년(二年)이 이와 같다면(如此), 한번 싸워(一戰而) 멸망시킬(滅)수 있을(可)것이다(也).”

등수(脩)가 좇으니(從之), 과연(果) 도적(賊)을 격파했다(破).




初,霍弋之遣稷ㆍ炅等,與之誓曰:「若賊圍城未百日而降者,家屬誅;若過百日救兵不至,吾受其罪。」稷等守未百日,糧盡,乞降,璜不許,給其糧使守。諸將並諫,璜曰:「霍弋已死,不能救稷等必矣,可須其日滿,然後受降,使彼得無罪,我受有義,內訓百姓,外懷鄰國,不亦可乎!」稷等期訖糧盡,救兵不至,乃納之。脩則既為毛炅所殺,則子允隨璜南征,城既降,允求復仇,璜不許。炅密謀襲璜,事覺,收炅,呵曰:「晉賊!」炅厲聲曰:「吳狗!何等為賊?」允剖其腹,曰:「復能作賊不?」炅猶罵曰:「吾志殺汝孫皓,汝父何死狗也!」璜既擒稷等,並送之。稷至合浦,發病死。孟幹ㆍ爨能ㆍ李松等至建鄴,皓將殺之。或勸皓,乾等忠於所事,宜宥之以勸邊將,皓從其言,將徙之臨海。乾等志欲北歸,慮東徙轉遠,以吳人愛蜀側竹弩,言能作之,皓留付作部。後幹逃至京都,松ㆍ能為皓所殺。乾陳伐吳之計,帝乃厚加賞賜,以為日南太守。先是,以楊稷為交州刺史,毛炅為交止太守,印緩未至而敗,即贈稷交州,炅及松能子並關內侯。

 

애초에(初), 곽익(霍弋)이(之) 양직(稷)ㆍ모경(炅) 등(等)을 보내면서(遣), 함께(與之) 맹세하며(誓) 말하였다(曰).

“만약(若) 적(賊)이 성(城)을 포위하여(圍) 100일(百日)이 안 되어(未)서(而) 항복하는 자(降者)는, 가속(家屬)을 주살하며(誅);만약(若) 100일(百日)이 지나도(過) 원병(救兵)이 도달하지 않는다면(不至), 내(吾)가 그(其) 죄(罪)를 받겠다(受).”

양직(稷) 등(等)은 100일(百日)을 지키지 못하고(守未), 양곡(糧)이 다되어(盡), 항복(降)을 청하는데(乞), 도황(璜)은 허락하지 않고(不許), 그에게(其) 양곡(糧)을 보내(給) 지키게(守) 하였다(使).

제장(諸將)들이 나란히(並) 간하니(諫), 도황(璜)이 말하였다(曰).

“곽익(霍弋)은 이미(已) 죽어(死), 양직(稷) 등(等)을 구하는(救) 것은 반드시(必) 불가능(不能)한데(矣), 마땅히(須) 그(其) 날(日)이 다 차(滿)게 되고(可), 그러한 후(然後)에 항복을(降) 받으면(受), 저자(彼)로 하여금(使) 무죄(無罪)를 얻게(得) 되니, 나(我)는 의(義)로서(有) 받고(受), 안(內)으로 백성(百姓)을 가르치며(訓), 밖으로는(外) 이웃나라(鄰國)를 품게 되니(懷), 또한(亦) 옳지(可) 아니(不)한가(乎)!”

양직(稷) 등(等)은 기간(期)이 다되어(訖) 양곡(糧)이 다해도(盡), 원병(救兵)이 오지(至) 않으니(不), 이에(乃) 항복하였다(納之).

수칙(脩則)은 이미(既) 모경(毛炅)이 죽인 적(所殺)이 있어(為), 수칙(則)의 아들(子)인 수윤(允)이 도황(璜)의 남정(南征)에 종사하였고(隨), 성(城)이 이미(既) 항복했는데(降), 수윤(允)이 원수를 갚기를(復仇) 청했지만(求), 도황(璜)은 허락하지(許) 않았다(不).

모경(炅)은 은밀히(密) 도황(璜)의 습격을(襲) 꾀했는데(謀), 일(事)이 드러나(覺), 모경(炅)을 잡아들여(收), 꾸짖으며(呵) 말하였다(曰).

“진(晉)나라 도적놈(賊)!”

모경(炅)은 소리질러(厲聲) 말하였다(曰).

“오(吳)의 개야(狗)!어찌(何) 도적(賊)의 무리(等)가 되겠느냐(為)?”

수윤(允)은 그(其)의 배(腹)를 가르며(剖), 말하였다(曰).

“다시금 도적놈의 짓을 하겠는가(復能作賊不)?”

모경(炅)은 오히려(猶) 욕하며(罵) 말하였다(曰).

“나(吾)의 뜻(志)은 너희(汝)의 손호(孫皓)를 죽이는 것인데(殺), 너의(汝) 아비(父)는 어찌(何) 개처럼(狗) 죽었(死)는가(也)!”

도황(璜)은 이미(既) 양직(稷) 등(等)을 사로잡아(擒), 나란히(並) 호송하였다(送之).

양직(稷)은 합포(合浦)에 도달해(至), 병(病)이 생겨(發) 죽었다(死).

맹건(孟幹)ㆍ찬능(爨能)ㆍ이송(李松) 등(等)은 건업(建鄴)에 이르어(至), 손호(皓)가 장차(將) 죽이려 하였다(殺之).

누군가가(或) 손호(皓)에게 권하였는데(勸), 맹건(乾) 등(等)은 일하는(所事)데에(於) 충성스러우니(忠), 의당(宜) 용서하여(宥之) 변방의 장수(邊將)로 쓰기를(以) 권하니(勸), 손호(皓)는 그(其) 말(言)을 좇아(從), 장차(將) 임해(臨海)로 옮기려 했다(徙之).

맹건(乾) 등(等)의 뜻(志)은 북(北)으로 돌아가고자(歸) 함이라(欲), 동쪽(東)으로 멀리(遠) 옮기는 것을(徙轉) 근심했는데(慮), 오인(吳人)들이 촉(蜀)을 그리워하는(愛) 까닭에(以) 죽노(竹弩)를 끼고 있으며(側), 찬능(能)에게 (일을) 행하도록(作之) 말하니(言), 손호(皓)는 작부(作部)를 맡겨(付) 억류했다(留).

후에(後) 맹건(幹)은 경도(京都)에서 달아나기(逃)에 이르니(至), 이송(松)ㆍ찬능(能)은 손호(皓)에게 살해(所殺) 당했다(為).

맹건(乾)은 오(吳)를 토벌(伐)할(之) 계략(計)을 진언해(陳), 무제(帝)는 이에(乃) 두텁게(厚) 상(賞賜)을 더해주니(加), 이로서(以) 일남태수(日南太守)가 되었다(為).

이에 앞서(先是), 양직(楊稷)이 교주자사(交州刺史)였고(為), 모경(毛炅)이 교지태수(交止太守)이었는데(為), 인(印=인수/벼슬)이 느려(緩) 도달하지(至) 못하(未)고(而) 패한(敗) 까닭에(以), 바로(即) 양직(稷)에게 교주(交州)를 추증하고(贈), 모경(炅)과(及) 이송(松)ㆍ찬능(能)의 아들(子)은 나란히(並) 관내후(關內侯)로 삼았다.




九真郡功曹李祚保郡內附,璜遣將攻之,不剋。祚舅黎晃隨軍。勸祚令降。祚答曰:「舅自吳將,祚自晉臣,唯力是視耳。」踰時乃拔。皓以璜為使持節ㆍ都督交州諸軍事ㆍ前將軍ㆍ交州牧。武平ㆍ九德ㆍ新昌土地阻險,夷獠勁悍,歷世不賓,璜征討,開置三郡,及九真屬國三十餘縣。征璜為武昌都督,以合浦太守脩允代之。交土人請留璜以千數,於是遣還。

구진군(九真郡) 공조(功曹) 이조(李祚)가 군(郡)을 점유하고(保) 내부(內附)하니, 도황(璜)은 장군(將)을 보내(遣) 공격하나(攻之), 이기지(剋) 못했다(不).

마침 이조(祚)의 구(舅=장인?/외삼촌?)인 여황(黎晃)은 군(軍)에 종사했다(隨).

이에 이조(祚)에게 항복(降)하도록(令) 권하였다(勸).

이조(祚)는 대답하며(答) 말하였다(曰).

“구(舅)는 진실로(自) 오(吳)의 장수(將)이며, 저 이조(祚)는 진실로(自) 진(晉)의 신하(臣)이니, 오직(唯) 옳다(是) 생각하는(視)것에 힘을 쓸(力) 뿐입니다(耳).”

시간(時)이 지나가(踰)고(乃) (성을) 뽑았다(拔).

손호(皓)는 도황(璜)을(以) 사지절(使持節)ㆍ도독교주제군사(都督交州諸軍事)ㆍ전장군(前將軍)ㆍ교주목(交州牧)으로 삼았다(為).

무평(武平)ㆍ구덕(九德)ㆍ신창(新昌)의 땅(土地)은 험하여(阻險), 이민족(夷獠)들이 사나우니(勁悍), 지난(歷) 시대(世)엔 지나가는 이(賓)가 없었는데(不), 도황(璜)이 정벌하면서(征討), 개척하여(開) 3군(三郡)을 두니(置), 구진속국(九真屬國)이 30여현(三十餘縣)에 이르었다(及).

도황(璜)을 징소하여(征) 무창도독(武昌都督)로 삼으며(為), 합포태수(合浦太守脩)를 수윤(允)으로(以) 대신하게 했다(代之).

교주(交) 땅(土)의 사람(人)들은 도황(璜)에게 머무르기를(留) 청한 것이(請) 수천번(千數)인데(以), 이(是)에(於) 돌려보냈다(遣還).




皓既降晉,手書遣璜息融敕璜歸順。璜流涕數日,遣使送印綬詣洛陽。帝詔復其本職,封宛陵侯,改為冠軍將軍。

손호(皓)가 이미(既) 진(晉)에 항복하니(降), 手書遣璜息融敕璜歸順?

도황(璜)은 수일(數日)동안 눈물을 흘리며(流涕), 사신(使)을 파견해(遣) 인수(印綬)를 보내니(送) 낙양(洛陽)에 이르었다(詣).

무제(帝)는 조서(詔)를 내려 그(其)의 본래(本) 관직(職)을 회복시키며(復), 완릉후(宛陵侯)에 봉하였고(封), 고쳐서(改) 관군장군(冠軍將軍)으로 삼았다(為).




吳既平,普減州郡兵,璜上言曰:「交土荒裔,斗絕一方,或重譯而言,連帶山海。又南郡去州海行千有餘里,外距林邑纔七百里。夷帥范熊世為逋寇,自稱為王,數攻百姓。且連接扶南,種類猥多,朋黨相倚,負險不賓。往隸吳時,數作寇逆,攻破郡縣,殺害長吏。臣以尪駑,昔為故國所採,偏戍在南,十有餘年。雖前後征討,翦其魁桀,深山僻穴,尚有逋竄。又臣所統之卒本七千餘人,南土溫濕,多有氣毒,加累年征討,死亡減耗,其見在者二千四百二十人。今四海混同,無思不服,當卷甲清刃,禮樂是務。而此州之人,識義者寡,厭其安樂,好為禍亂。又廣州南岸,周旋六千餘里,不賓屬者乃五萬餘戶,及桂林不羈之輩,復當萬戶。至於服從官役,纔五千餘家。二州脣齒,唯兵是鎮。又寧州興古接據上流,去交址郡千六百里,水陸並通,互相維衛。州兵未宜約損,以示單虛。夫風塵之變,出於非常。臣亡國之餘,議不足採,聖恩廣厚,猥垂飾擢,蠲其罪釁,改授方任,去辱即寵,拭目更視,誓念投命,以報所受,臨履所見,謹冒瞽陳。」又以「合浦郡土地磽确,無有田農,百姓唯以採珠為業,商賈去來,以珠貿米。而吳時珠禁甚嚴,慮百姓私散好珠,禁絕來去,人以飢困。又所調猥多,限每不充。今請上珠三分輸二,次者輸一,粗者蠲除。自十月訖二月,非採上珠之時,聽商旅往來如舊」。並從之。

오(吳)가 이미(既) 평정되니(平), 널리(普) 주군(州郡)의 병사(兵)를 줄였는데(減), 도황(璜)이 글(言)을 올려(上) 말하였다(曰).

“교주의(交) 땅(土)은 먼 지방(荒裔)이며, 험준한(斗絕) 지역(一方)이니, 언제나(或) 중역(重譯=2중번역)하고(而) 말하며(言), 산과 바다(山海)가 연결되어 있습니다(連帶).

또한(又) 남군(南郡=남쪽군?/남군?)에서 주(州)로 가는데(去) 바다(海)로 천여리(千有餘里)를 가야 하는데(行), 밖으로는(外) 임읍(林邑)과 겨우(纔) 700리(七百里) 떨어져 있습니다(距).

오랑캐(夷)의 우두머리(帥) 범웅(范熊)은 세상(世)의 떠도는 도적(逋寇) 이었지만(為), 스스로(自) 왕(王)을 칭하게(稱) 되어(為), 여러번(數) 백성(百姓)을 공격했습니다(攻).

또한(且) 연접(連接)한 것이 남쪽(南)에 이르니(扶), 종족의 무리(種類)가 섞인 것이(猥) 많고(多), 무리(朋黨)들은 서로(相)를 의지해(倚), 험한 곳을 등에 지고(負險) 따르지(賓) 않습니다(不).

일찍이(往) 오(吳)에 속한(隸) 시기(時)에도, 여러번(數) 배신해(逆) 침략하여(作寇), 군현(郡縣)을 쳐부수고(攻破), 장리(長吏)를 살해했습니다(殺害).

신(臣)은 약하고(尪) 우둔하(駑)나(以), 앞서(昔) 옛 나라(故國)에 벼슬한 바(所採)가 되어(為), 변방(偏)을 지키며(戍) 남쪽(南)에 있던 것이(在),10여년 이었습니다(十有餘年).

비록(雖) 전후(前後)의 정벌(征討)로, 그(其) 우두머리(魁桀)를 없앴지만(翦), 깊은 산(深山)과 후미진 굴(僻穴)로, 아직(尚) 도망쳐 숨은(逋竄) 자가 있었습니다(有).

또한(又) 신(臣)이 거느린(所統之) 병사(卒)는 본래(本) 7천여명(七千餘人)이었는데, 남쪽 땅(南土)은 따뜻하고 습하여(溫濕), 많은 자(多)가 기독(氣毒=병)이 생기니(有), 여러해(累年)동안 정벌(征討)이 있자(加), 죽어서(死亡) 줄어들어(減耗), 현재 있는 자도(其見在者) 2420명(二千四百二十人)입니다.

오늘날(今) 사해(四海)가 하나로(同) 섞여(混),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는데(無思不服), 마땅히(當) 전쟁을 그만 두고(卷甲清刃), 예악(禮樂)에 힘씀(務)이 옳습니다(是).

하지만(而) 이(此) 주(州)의(之) 사람(人)은, 의(義)를 아는(識) 자(者)가 적고(寡), 그들(其)의 안락(安樂)에 만족하니(厭), 화란(禍亂=재앙과 난리)이 되기(為) 좋습니다(好).

또한(又) 광주(廣州)의 남안(南岸)은, 6천여리(六千餘里)를 빙빙 돌면(周旋), 복종(賓屬)하지 않는(不) 자(者)가 곧(乃) 5만여호(五萬餘戶)이며, 더불어(及) 계림(桂林)은 복종할(羈之) 무리(輩)가 아니어서(不), 거듭(復) 만호(萬戶)에 필적합니다(當).

관역(官役)에 복종(服從)하는 경우(至於)는, 겨우(纔) 5천여 가구(五千餘家)입니다.

2주(二州=교주/광주)는 순치(脣齒=이와 잇몸)라, 바라건대(唯) 병사(兵)로 진압함(鎮)이 옳습니다(是).

또한(又) 영주(寧州)의 흥고(興古)는 상류(上流)를 의지해(據) 인접해 있는데(接), 교지군(交址郡)으로 가는데(去) 1600리(千六百里)이며, 수륙(水陸)이 나란히(並) 통하니(通), 서로(互相) 연결해서(維) 지켜야 합니다(衛).

주(州)의 병사(兵)는 마땅히(宜) 줄이면(約損) 안되고(未), 정성과 마음(單虛)으로(以) 가르쳐야 합니다(示).

군인(夫)은 전쟁(風塵之變)에서, 예사롭지 않음(非常)에 의지해(於) 나아갑니다(出).

신(臣)은 망국(亡國)의(之) 남은 자(餘)로, 채용되기(採) 부족(不足)한 생각(議)되는데, 성은(聖恩)이 널리(廣) 두텁게 받아(厚), 외람되게(猥) 국경(垂)을 다스리게(飾) 발탁되었으며, 그(其) 죄(罪釁)는 면제되어(蠲), 다시(改) 한 방면(方)의 책무(任)를 받아(授), 과거(去)의 수치(辱)는 지금(即)의 은총(寵)이 되어, 눈을 씻고(拭目)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更視),

받은 것(所受)을 갚(報)기 위해(以), 목숨을 던질(投命) 생각으로(念) 아뢰니(誓), 신중하게(臨履) 생각하시길(所見), 삼가(謹) 어리석음(瞽)을 무릎쓰고(冒) 진언합니다(陳).”

또(又)한 이로서(以) 말하였다.

“합포군(合浦郡)의 땅(土地)은 거칠어(磽确), 농부(田農)가 있질(有) 않으니(無), 백성(百姓)들은 오직(唯) 진주캐기(採珠)로서(以) 생업(業)으로 해(為), 장사꾼(商賈)이 거래(去來)하여, 이로서(以) 진주(珠)를 쌀(米)로 바꿉니다(貿).

하지만(而) 오(吳) 시기(時)에 진주(珠) 금지(禁)는 심히 엄격(甚嚴)하여, 慮百姓私散好珠???,거래(來去)를 금하고 막으니(禁絕), 사람(人)들으 이로서(以) 기곤(飢困)하였습니다.

또한(又) 고른 바(所調)가 많아(猥多), 매번(每) 채우지(充) 못한(不) 것이 심했다(限).

오늘날(今) 청하건대(請) 바치는(上) 진주(珠)를 셋으로 나누어(三分) 둘은(二) 보내고(輸), 다음 사람(次者)이 하나(一)를 나르면(輸), 대략(粗) 사람들은(者) 해소될 것입니다(蠲除).

진실로(自) 10월(十月)에서 2월(二月)에 이르기까지는(訖), 바치는(上) 진주(珠)를 캐(採)는(之) 시기(時)가 아니니(非), 상인(商旅)의 왕래(往來)가 예전과 같게(如舊) 허락해 주십시오(聽).”

나란히(並) 좇았다(從之).




在南三十年,威恩著于殊俗。及卒,舉州號哭,如喪慈親。朝廷乃以員外散騎常侍吾彥代璜。彥卒,又以員外散騎常侍顧祕代彥。秘卒,州人逼秘子參領州事。參尋卒,參弟壽求領州,州人不聽,固求之,遂領州。壽乃殺長史胡肇等,又將殺帳下督梁碩,碩走得免,起兵討壽,禽之,會壽母,令鴆殺之。碩乃迎璜子蒼梧太守威領刺史,在職甚得百姓心,三年卒。威弟淑,子綏,後並為交州。自基至綏四世,為交州者五人。

남쪽(南)에 30년(三十年) 있었는데(在), 위엄(威)과 은혜(恩)가 수속(殊俗=다른나라)에(于) 드러났다(著).

죽음(卒)에 이르니(及), 주(州)에서 통곡(號哭)이 있었으며(舉), 부모(慈親)와 같이(如) 장을 치렀다(喪).

조정(朝廷)은 이에(乃) 원외산기상시(員外散騎常侍) 오언(吾彥)으로(以) 도황(璜)을 대신했다(代).

오언(彥)이 죽으니(卒), 또한(又) 원외산기상시(員外散騎常侍) 고비(顧祕)로서(以) 오언(彥)을 대신했다(代).

고비(秘)가 죽으니(卒), 주(州)의 사람(人)들이 고비(秘)의 아들(子) 고참(參)을 핍(逼=찾아옴?/핍박?)하여 주(州=주자사)의 일(事)를 거느리게 했다(領).

고참(參)이 이윽고(尋) 죽으니(卒), 고참(參)의 동생(弟) 고수(壽)가 주(州)를 거느리길(領) 청했는데(求), 주(州)의 사람(人)들이 들어주지 않았지만(不聽), 굳게(固) 청하여(求之), 마침내(遂) 주(州)를 거느렸다(領).

고수(壽)는 이에(乃) 장사(長史) 호조(胡肇) 등(等)을 죽이며(殺), 또한(又) 장차(將) 장하독(帳下督) 양석(梁碩)을 죽이려 하니(殺), 양석(碩)은 도망쳐(走) 모면했고(得免), 병사(兵)를 일으켜(起) 고수(壽)를 토벌해(討), 포획하니(禽之), 고수(壽)의 모친(母)과 함께(會), 짐살(鴆殺之)하도록 명하였다(令).

양석(碩)은 이에(乃) 도황(璜)의 아들(子)인 창오태수(蒼梧太守) 도위(威)를 영접해(迎) 자사(刺史)로 받들었는데(領), 관직(職)에 있으면서(在) 백성(百姓)의 마음(心)을 두터이(甚) 얻었고(得), 3년(三年)만에 죽었다(卒).

도위(威)의 동생(弟) 도숙(淑), 도위의 아들(子) 도수(綏)는, 후에(後) 나란히(並) 교주(交州)자사가 되었다(為).

도기(基)부터(自) 도수(綏)까지(至) 4대(四世)동안, 교주(交州)자사가 된 사람(者)이 5명(五人)이었다(為).
 

 
璜弟浚,吳鎮南大將軍ㆍ荊州牧。濬弟抗,太子中庶子。濬子湮,字恭之;湮弟猷,字恭豫,並有名。湮至臨海太守ㆍ黃門侍郎。猷宣城內史,王導右軍長史。湮子馥,于湖令,為韓晃所殺,追贈廬江太守。抗子回,自有傳

도황(璜)의 동생(弟) 도준(浚)은, 오(吳)의 진남대장군(鎮南大將軍)ㆍ형주목(荊州牧)이었다.

도준(濬)의 동생(弟) 도항(抗)은, 태자중서자(太子中庶子)였다.

도준(濬)의 아들(子) 도인(湮)은, 자(字)가 공지(恭之)이며;도인(湮)의 동생(弟) 도유(猷)는, 자(字)가 공예(恭豫)인데, 나란히(並) 명성(名)이 있었다(有).

도인(湮)은 임해태수(臨海太守)ㆍ황문시랑(黃門侍郎)에 이르었다(至).

도유(猷)은 선성내사(宣城內史), 왕도(王導)의 우군장사(右軍長史)였다.

도인(湮)의 아들(子)은 도복(馥)인데, 또한(于) 湖令????,한황(韓晃)에게 살해(所殺) 되어(為), 여강태수(廬江太守)가 추증되었다(追贈).

도항(抗)의 아들(子) 도회(回)는, 스스로(自)가 열전(傳)이 있다(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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