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열전]]에서 분리


頠,字逸民。弘雅有遠識,博學稽古,自少知名。御史中丞周弼見而歎曰:「頠若武庫,五兵縱橫,一時之傑也。」賈充即頠從母夫也,表「秀有佐命之勳,不幸嫡長喪亡,遺孤稚弱。頠才德英茂,足以興隆國嗣。」詔頠襲爵,頠固讓,不許。太康二年,徵為太子中庶子,遷散騎常侍。惠帝既位,轉國子祭酒,兼右軍將軍。

 

배외(裴)는 자가 일민(逸民)이다. 넓은 도량과 높은 식견이 있어 널리 배우고 옛날의 일에 통했는데 어려서부터 명성이 있었다. 어사중승 주필이 만나보고 탄식하며 말하길 : 「배외는 마치 무기고 같아서 여러 가지 병기가 종횡하니 한 시대의 호걸이다.」라 하였다. 가충은 곧 배외의 이모의 남편이었는데 표를 올려 「배수는 황실을 보좌한 공훈이 있는데 불행하게 적장자가 죽어 남아있는 자식이 어리고 약합니다. 배외는 재주와 도덕이 우수하여 족히 나라를 이어 흥기시킬 수 있습니다.」라 하니 조서를 내려 배외로 하여금 작위를 잇도록 하였다. 배외는 굳게 사양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태강 2년 징벽하여 태자중서자로 삼았고 산기상시로 옮겼다. 혜제가 제위에 오르고 국자좨주에 보하고 우군장군을 겸하였다.

 

初,頠兄子憬為白衣,頠論述世勳,賜爵高陽亭侯。楊駿將誅也,駿党左軍將軍劉豫陳兵在門,遇頠,問太傅所在。頠紿之曰:「向於西掖門遇公乘素車,從二人西出矣。」豫曰:「吾何之?」頠曰:「宜至廷尉。」豫從頠言,遂委而去。尋而詔頠代豫領左軍將軍,屯萬春門。及駿誅,以功當封武昌侯,頠請以封憬,帝竟封頠次子該。頠苦陳憬本承嫡,宜襲钜鹿,先帝恩旨,辭不獲命。武昌之封,己之所蒙,特請以封憬。該時尚主,故帝不聽。累遷侍中。

 

당초에 배외의 형의 아들인 배경이 관직이 없는 신분이었는데 배외가 대대로 공훈이 있음을 논하여 고양정후의 작위를 내렸다. 양준이 장차 주살 당하려던 때에 양준의 패거리인 좌군장군 유예가 문 앞에 병사들을 진열 시키고 배외를 만나 태부(太傅,곧 양준)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배외는 그를 속이며 말하길 :「서액문 방향에서 공을 만났는데 소거(素車 :흰 포장을 치거나 장식을 하지 아니한 수레)를 타고 두 사람과 더불어 서쪽으로 나갔습니다.」유예가 말하길 :「내가 어디로 가야겠는가?」하니 배외가 말하길 :「응당 정위에게 가셔야 합니다.」하였다. 유예는 배외의 말을 따라 마침내 (지키던 곳을) 버려두고 떠났다. 얼마 후 조서를 내려 배외로 하여금 유예를 대신해 좌군장군의 직위를 겸하고 만춘문에 주둔하도록 하였다. 양준이 주살되는데 이르러 공로로 응당 무창후에 봉해져야 하는데 배외는 배경을 봉해달라고 청하였으나 황제는 끝내 배외의 차자인 배해를 봉했다. 배외는 배경이 본래 적자의 자리를 이어 거록군공의 작위를 세습해야 하는데 선제께서 은혜로운 성지를 내려 사양에도 불구하고 허락을 받지 못한 사정을 애써 진술하였다. 무창후의 봉작은 자기가 받은것이기 때문에 배경이 봉해질 수 있도록 특별히 간청하였다. 배해는 당시에 공주와 결혼했기 때문에 황제는 들어주지 않았다. 누차 옮겨 시중에 이르렀다.

 

時天下暫寧,頠奏修國學,刻石寫經。皇太子既講,釋奠祀孔子,飲饗射侯,甚有儀序。又令荀籓終父勖之志,鑄鐘鑿磬,以備郊廟朝享禮樂。頠通博多聞,兼明醫術。荀勖之修律度也,檢得古尺,短世所用四分有餘。頠上言:「宜改諸度量。若未能悉革,可先改太醫權衡。此若差違,遂失神農、岐伯之正。藥物輕重,分兩乖互,所可傷夭,為害尤深。古壽考而今短折者,未必不由此也。」卒不能用。樂廣嘗與頠清言,欲以理服之,而頠辭論豐博,廣笑而不言。時人謂頠為言談之林藪。

 

당시에 천하가 잠시 평안을 얻었는데 배외는 국학을 세우고 돌을 깎아 경전을 베껴 넣도록 주청하였다. 황태자가 이미 경전을 강독하고 공자에 대한 제사를 지냈으며 연회와 활쏘기 등의 의례가 아주 위엄 있고 질서정연하였다. 또한 순번으로 하여금 아버지 순욱의 뜻을 마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악기를 만들어 종묘와 조정에서 쓰이는 예악을 완비하게 하였다.

배외는 배운게 많았을 뿐만 아니라 겸하여 의술에도 밝았다. 순욱이 도량형을 정비할 때에 옛날에 쓰던 자를 얻었는데 세상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4분 정도 짧았다. 배외가 상소하여 말하길 :「응당 여러 도량을 고쳐야 합니다. 만약 전부 고칠 수 없다면 먼저 태의가 쓰는 측량도구를 고쳐야 합니다. 이것이 만약 차이가 난다면 마침내 신농, 기백의 올바름을 잃게 됩니다. 약물의 경중은 1분이나 1량만큼만 차이가 나더라도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게 만들 수 있으니 그 해악이 더욱 심합니다. 옛날의 사람들은 오래 살고 지금의 사람들은 짧게 사는 것이 반드시 이로부터 비롯되지 아니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끝내 쓰이지 않았다. 악광이 일찍이 배외와 더불어 청담을 하였는데 도리로 배외를 굴복시키고자 하였으나 배외의 말이 풍부하여 악광이 다만 웃고는 말하지 않았다. 당시의 사람들이 배외를 언담의 숲이라고 하였다.

 

頠以賈后不悅太子,抗表請增崇太子所生謝淑妃位號,仍啟增置後衛率吏,給三千兵,於是東宮宿衛萬人。遷尚書,侍中如故,加光祿大夫。每授一職,未嘗不殷勤固讓,表疏十餘上,博引古今成敗以為言,覽之者莫不寒心。

 

배외는 가태후가 태자를 좋아하지 아니한 것으로 인해 표를 올려 태자를 낳은 사숙비의 위호를 올려달라고 청하였고 이어 태자를 수호하는 군대를 늘려 3000명의 병사를 주도록 하였는데 이로써 동궁을 지키는 숙위가 10000명이 되었다. 상서로 옮기고 시중은 예전과 같았으며 광록대부를 더하였다. 매번 한 가지 자리를 받을 때 마다 은근히 굳게 사양하며 표소를 10여 번이나 올려서 널리 고금의 성패를 인용하며 말하였는데 읽어보는 사람 중에 마음이 놀라 떨지 않는 이가 없었다.

 

頠深慮賈后亂政,與司空張華、侍中賈模議廢之而立謝淑妃。華、模皆曰:「帝自無廢黜之意,若吾等專行之,上心不以為是。且諸王方剛,朋黨異議,恐禍如發機,身死國危,無益社稷。」頠曰:「誠如公慮。但昏虐之人,無所忌憚,亂可立待,將如之何?」華曰:「卿二人猶且見信,然勤為左右陳禍福之戒,冀無大悖。幸天下尚安,庶可優遊卒歲。」此謀遂寢。頠旦夕勸說從母廣城君,令戒喻賈后親待太子而已。或說頠曰:「幸與中宮內外可得盡言。言若不行,則可辭病摒退。若二者不立,雖有十表,難乎免矣。」頠慨然久之,而竟不能行。

 

배외는 깊이 가태후의 어지러운 정치를 걱정하여 사공 장화, 시중 가모와 더불어 그를 폐하고 사숙비를 세우는 일을 의논하였다. 장화와 가모가 더불어 말하길 :「황제가 스스로 폐출하고자하는 의도가 없으신데 만약 우리들이 오롯이 이를 실행에 옮긴다면 황제께서 내심으로 이를 옳다고 여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또한 여러 왕들이 바야흐로 강성하고 붕당들이 다른 뜻을 가지고 있으니 아마도 재앙이 일촉즉발에 이르러 몸이 죽고 국가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러 사직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배외가 말하길 :「진실로 공의 걱정과 같습니다. 다만 어리석고 포학한 사람이 거리낌 없이 행동하여 난리가 서서 기다릴 수 있을 정도인데 장차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장화가 말하길 :「경들 두 사람은 오히려 또한 신용을 받고 있으니 부지런히 좌우에서 화복의 경고를 늘어놓아 크게 도리에서 어긋난 일을 못하도록 바랄 수 있습니다. 다행히 천하가 오히려 안녕하니 거의 가히 한가롭게 인생을 끝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 모의는 마침내 폐기되었다. 배외는 아침저녁으로 이모인 광성군을 설득하여 그녀로 하여금 가태후에게 태자를 친밀하게 대하도록 설득하게 하였다. 어떤 사람이 배외에게 말하길 :「다행히 중궁 내외에 마음속에 있는 말을 전부 할 수 있다면 좋은데 만약 하는 말이 시행되지 못한다면 곧 병으로 사직하여 물러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만약 두 가지 중에 아무것도 안한다면 비록 표를 10번 올린다고 하여도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배외는 한동안 슬프게 탄식하였으나 끝내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다.

 

遷尚書左僕射,侍中如故。頠雖后之親屬,然雅望素隆,四海不謂之以親戚進也,惟恐其不居位。俄復使頠專任門下事,固讓,不聽。頠上言:「賈模適亡,復以臣代,崇外戚之望,彰偏私之舉。後族何常有能自保,皆知重親無脫者也。然漢二十四帝惟孝文、光武、明帝不重外戚,皆保其宗,豈將獨賢,實以安理故也。昔穆叔不拜越禮之饗,臣亦不敢聞殊常之詔。」又表云:「咎繇謨虞,伊尹相商,呂望翊周,蕭張佐漢,咸播功化,光格四極。暨于繼體,咎單、傅說,祖己、樊仲,亦隆中興。或明揚側陋,或起自庶族,豈非尚德之舉,以臻斯美哉!曆觀近世,不能慕遠,溺於近情,多任後親,以致不靜。昔疏廣戒太子以舅氏為官屬,前世以為知禮。況朝廷何取于外戚,正復才均,尚當先其疏者,以明至公。漢世不用馮野王,即其事也。」表上,皆優詔敦譬。

 

상서좌복야에 옮기고 시중은 예전과 같이 하였다. 배외는 비록 가태후의 친족이었으나 덕망이 처음부터 높아 세상 사람들이 친척 때문에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자리에 오래 있지 않을까봐 걱정하였다. 얼마 후 다시 배외로 하여금 문하사를 전임하도록 하였는데 배외가 굳게 사양했으나 듣지 않았다. 배외가 상소를 올려 이르길 :「가모가 금방 죽었는데 다시 신으로 그 자리를 대체하게 하는 것은 외척의 희망을 높여 사람을 쓰는데 있어 사사로움에 치우쳐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외척들이 어찌 항상 능력이 있어 스스로를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들 친족을 무겁게 여겨 여기서 벗어나고자 하지 않는 인간들일 뿐입니다. 그러나 한나라의 황제 24명 중에서 오직 효문제, 광무제, 명제 만이 외척을 중요하지 않아 모두 그 종친을 보존할 수 있었으니 어찌 그들만이 홀로 현명했기 때문이었겠습니까, 진실로 안전한 곳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옛날 목숙은 예법에 지나친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신 또한 감히 정상에서 벗어난 조서를 받들 수 없습니다. 」또 표를 올려 이르길 :「고요가 우왕에게 간언하고 이윤은 상나라의 재상을 지냈으며 여망은 주나라를 도왔고 소하와 장량은 한나라를 보좌하여 모두들 공업을 세우고 교화를 이루어 빛이 천지 사방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을) 이은 사람들인 고단, 부열, 조기, 번중 역시 중흥을 이루었습니다. 혹 편벽되고 누추한 곳에서 들어 올려 썼고 혹 서족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니 어찌 덕을 숭상하는 행실이 이런 훌륭한 결과를 불러온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근세의 일을 두루 살펴보니 먼 곳을 앙모하지 못하고 가까운 사사로운 감정에 빠져서 태후의 친족을 많이 임용하여 시끄러움을 이르도록 하였습니다. 옛날에 소광은 태자로 하여금 외척들을 관속으로 삼지 못하도록 간언하였는데 전세의 사람들이 이를 예법을 아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하물며 조정에서 어떻게 외척을 취하겠습니까, 정히 다시 재주가 균등하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마땅히 소원한 사람을 앞세워 지극한 공정함을 밝혀야 합니다. 한나라에서 풍야왕을 쓰지 않은 것이 바로 그 예입니다.」표가 올라가고 난 이후에 다시 특별히 조서를 내려 취임을 재촉하였다.

 

時以陳准子匡、韓蔚子嵩並侍東宮,頠諫曰:「東宮之建,以儲皇極。其所與遊接,必簡英俊,宜用成德。匡、嵩幼弱,未識人理立身之節。東宮實體夙成之表,而今有童子侍從之聲,未是光闡遐風之弘理也。」湣懷太子之廢也,頠與張華苦爭不從,語在《華傳》。

 

당시에 진준의 아들인 진광, 한위의 아들인 한숭이 더불어 동궁을 시위하고 있었는데 배외가 간하여 말하길 :「동궁을 세울 때에는 황제의 예비로 삼은 것입니다. 그가 더불어 노닐고 접촉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영준한 사람들 중에서 선택하여 응당 덕을 이룬 사람을 써야 합니다. 진광과 한숭은 유약하여 사람의 도리와 몸을 세우는 절도를 알지 못합니다. 동궁은 실로 숙성(夙成:나이는 어리지만 정신적ㆍ육체적 발육이 빨라 어른스러움)의 모습을 몸소 보여야 하거늘 지금 동자들이 시종한다는 소리가 있으니 멀리까지 미칠 수 있는 드넓은 도리가 아닙니다. 」민회태자의 폐위에 있어 배외와 장화가 힘써 다퉜지만 이를 따르지 않았으니 말이 《장화전》에 보인다.

 

頠深患時俗放蕩,不尊儒術,何晏、阮籍素有高名於世,口談浮虛,不遵禮法,屍祿耽寵,仕不事事;至王衍之徒,聲譽太盛,位高勢重,不以物務自嬰,遂相放效,風教陵遲,乃著崇有之論以釋其蔽曰:

 

배외는 깊이 당시의 풍속이 방탕하여 유학을 존중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였다. 하안, 완적이 본래부터 세상에 명성이 높고 입으로 부화하고 허탄한 말을 떠들면서 예법에 따르지 않았으며 녹봉을 헛되이 받아먹고 총애를 탐내는 것만 급급하여 관리의 사무를 돌보지 않았음을 걱정하였다. 왕연의 무리에 이르러서는 명성이 너무 성대하고 관직은 높고 세력은 중하여 세상의 일들에 간섭하지 않고 마침내 서로를 모방하며 풍교(風教:교육이나 정치의 힘으로 백성을 착하게 가르침)가 점차 쇠퇴해 가므로 이에 숭유론을 지어 그 폐단을 풀고자 하였는데 이르길 :

 

夫總混群本,宗極之道也。方以族異,庶類之品也。形象著分,有生之體也。化感錯綜,理跡之原也。夫品而為族,則所稟者偏,偏無自足,故憑乎外資。是以生而可尋,所謂理也。理之所體,所謂有也。有之所須,所謂資也。資有攸合,所謂宜也。擇乎厥宜,所謂情也。

 

"무릇 군본(群本)을 모두 섞으면 종극(宗極)의 도리가 된다. 바야흐로 무리의 다름으로 인하여 여러 종류의 구별이 생긴다. 형상이 다른 것은 모든 생물의 본체이다. (사물의) 변화와 감응이 복잡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도리의 흔적의 근원이다. 무릇 구별되어 무리를 이루면 곧 품부받은 것이 치우쳐지는데 치우쳐지면 자족할 수가 없는 연고로 바깥의 물자에 기대야 한다. 그러므로 태어면서부터 찾을 수 있는 것은 소위 도리(理)라고 하는 것이다. 도리가 깃들어 있는 몸통이 바로 소위 존재(有)라고 하는 것이다. 존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소위 물자(資)라고 하는 것이다. 물자에 있어 더욱 합당한 것은 소위 마땅함(宜)이라는 것이다. 그 마땅함을 선택하는 것은 소위 인정(情)이라고 하는 것이다.

 

識智既授,雖出處異業,默語殊塗,所以寶生存宜,其情一也。眾理並而無害,故貴賤形焉。失得由乎所接,故吉凶兆焉。是以賢人君子,知欲不可絕,而交物有會。觀乎往復,稽中定務。惟夫用天之道,分地之利,躬其力任,勞而後饗。居以仁順,守以恭儉,率以忠信,行以敬讓,志無盈求,事無過用,乃可濟乎!故大建厥極,綏理群生,訓物垂範,於是乎在,斯則聖人為政之由也。

 

인지의 능력을 이미 받고 비록 출처에 있어 다른 일에 종사하고 언행에 있어 다른 길을 가더라도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고 마땅함을 보존 하는 까닭은 그 인정이 하나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무리들의 도리가 더불어 있으면서도 서로를 해치지 않기 때문에 귀천의 제도가 형태를 드러내게 되었다. (올바름을) 잃게 되는 이유는 접촉하는 과정에서 생기는데 그러므로 길조와 흉조가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현인군자는 욕망이 끊을 수 없는 것이고 사물 간의 접촉에 합당한 시기가 있음을 알고서는 왕복하는 현상을 관찰하여 중용을 살펴 일을 정하였다. 오직 무릇 하늘의 도를 이용하고 땅의 이익을 나눠 그 힘을 다해 힘써 일하고 난 연후에야 욕망을 채웠다. 인순(仁順)에 거하고 공검(恭儉)을 지키면서 충신(忠信)에 따르고 경양(敬讓)을 행하였으며 뜻은 구하는 것을 가득 채우는 것에 있지 않고 일에는 지나치게 쓰는 바가 없으니 마침내 다스릴 수 있었다 ! 그러므로 그 규칙을 크게 세우고 편안히 백성들을 다스리고 훈계하고 규범을 드리웠으니 이에 있는 것이 바로 성인이 정치를 할 때 말미암는 바이다.

 

若乃淫抗陵肆,則危害萌矣。故欲衍則速患,情佚則怨博,擅恣則興攻,專利則延寇,可謂以厚生而失生者也。悠悠之徒,駭乎若茲之釁,而尋艱爭所緣。察夫偏質有弊,而睹簡損之善,遂闡貴無之議,而建賤有之論。賤有則必外形,外形則必遺制,遺制則必忽防,忽防則必忘禮。禮制弗存,則無以為政矣。眾之從上,猶水之居器也。故兆庶之情,信于所習;習則心服其業,業服則謂之理然。是以君人必慎所教,班其政刑一切之務,分宅百姓,各授四職,能令稟命之者不肅而安,忽然忘異,莫有遷志。況於據在三之尊,懷所隆之情,敦以為訓者哉!斯乃昏明所階,不可不審。

 

만약 마침내 밑천이 다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방자하게 행동한다면 곧 위해가 싹트는 것이다. 그러므로 욕망이 만연하면 환란이 오는 게 빨라지고 감정에 있어 절제가 없다면 원한을 품는 사람이 많아지며 자기 마음대로 일처리 한다면 (자기를 향한) 공격을 일으키게 되고 이익을 독점한다면 도적을 이끌고 오게 되는 것이니 가히 인생을 두텁게 하려다가 생명을 잃게 된다고 말할 만하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런 다툼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분쟁이 생기는 이유를 찾고자 한다. 무릇 치우침에서 폐단이 생겨나는 것을 보고 간략하고 덜어내는 훌륭함도 목격하고서는 마침내 귀무(貴無)의 논의를 밝혀 드날리고 천유(賤有)의 의론을 세웠다. 존재(有)를 천하게 여긴다면 반드시 형태의 바깥에 있어야 하고 형태의 바깥에 있다면 반드시 제도를 빠트리게 되며 제도를 빠트리면 반드시 방범을 홀시하게 되고 방범을 홀시하면 반드시 예법을 잊게 된다. 예법제도가 존재하지 아니한다면 정치를 할 수가 없다. 무리가 위를 따르는 것은 마치 물이 그릇에 거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감정은 익숙한바를 믿고 익숙하면 곧 마음이 그 일에 복무하게 되며 일에 복무하면 곧 이를 일컬어 당연한 도리라고 한다. 그러므로 임금은 가르치는 바를 신중히 하며 정치와 형벌 일체의 사무를 반포하는데 있어 백성들을 나누어 각자 사농공상의 4가지 직무를 받도록 하니 능히 (각 재능을) 품부 받은 자들로 하여금 엄숙하게 하지 않아도 안정되게 하고 홀연히 다른 생각을 잊어버려 뜻이 옮겨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물며 재삼(在三: 임금, 아버지, 스승)의 존귀함에 거하여 마음에 융숭한 감정을 품고서 두터이 교훈을 내리고자 하는 자이겠는가! 이는 곧 어둡고 밝음을 가르는 경계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夫盈欲可損而未可絕有也,過用可節而未可謂無貴也。蓋有講言之具者,深列有形之故,盛稱空無之美。形器之故有征,空無之義難檢,辯巧之文可悅,似象之言足惑,眾聽眩焉,溺其成說。雖頗有異此心者,辭不獲濟,屈於所狎,因謂虛無之理,誠不可蓋。唱而有和,多往弗反,遂薄綜世之務,賤功烈之用,高浮游之業,埤經實之賢。人情所殉,篤夫名利。於是文者衍其辭,訥者贊其旨,染其眾也。是以立言藉於虛無,謂之玄妙;處官不親所司,謂之雅遠;奉身散其廉操,謂之曠達。故砥礪之風,彌以陵遲。放者因斯,或悖吉凶之禮,而忽容止之表,瀆棄長幼之序,混漫貴賤之級。其甚者至於裸裎,言笑忘宜,以不惜為弘,士行又虧矣。

 

무릇 욕망을 채우는 것은 가히 덜 수 있는 것이지 하나도 없게 끊을 수 없는 것이고 지나친 쓰임을 절약할 수 있는 것이지 귀중하게 생각할만한 것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체로 말의 구비를 추구하는 사람이 있어 심하게 형체가 있는 것의 잘못을 늘어놓고 성대하게 허무한 것의 훌륭함을 칭찬한다. 형체가 있기에 증거가 있고 공허하여 아무것도 없는 뜻은 점검하기 어려우므로 교묘하게 논변하는 글은 가히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진실과 비슷한 말은 족히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 있으므로 대중이 듣고는 미혹당해 그 학설에 빠지는 것이다. 비록 자못 이와 다른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말이 받아들여지지 아니하고 압력에 굴하게 되므로 이로 인해 말하길 허무의 도리는 진실로 덮을 수가 없다고 한다. 선창하니 화답이 있고 많이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아 마침내 세상을 다스리는 일을 비난하고 공업 세우는 것을 천하게 여겨 부화하게 노니는 일을 고상하다 여기고 실무를 경영하는 현자를 낮게 여기게 되었다. 인정이 따르는 바는 오로지 명성과 이익에 불과하다. 이에 문장에 능한 사람은 그 말을 부연하고 어눌한 사람은 그 뜻을 칭찬하며 대중을 오염시켰다. 이에 말을 하면서 근거를 허무에 두면 이를 일컬어 현묘(玄妙)하다고 하고 관직에 처해 관리의 직무에 친하지 않으면 이를 일컬어 아원(雅遠)하다 하며 사람됨이 청렴과 절조를 흩트리면 이를 일컬어 광달(曠達)하다 하였다. 이에 힘써 노력하는 기풍은 더욱 점점 쇠미해져갔다. 방탕한 사람은 이로 인하여 혹 길흉의 예법에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거동의 위의를 홀시하고 장유의 질서를 폐기하여 귀천의 등급을 어지럽혔다. 그 심한 사람은 나체로 돌아다니면서 말하고 웃는 와중에 적당함을 잊어버리고 이런 것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을 통달하다고 여기니 선비의 몸가짐이 또한 일그러졌다.

 

老子既著五千之文,表摭穢雜之弊,甄舉靜一之義,有以令人釋然自夷,合于《易》之《損》、《謙》、《艮》、《節》之旨。而靜一守本,無虛無之謂也;《損》《艮》之屬,蓋君子之一道,非《易》之所以為體守本無也。觀老子之書雖博有所經,而云「有生於無」,以虛為主,偏立一家之辭,豈有以而然哉!人之既生,以保生為全,全之所階,以順感為務。若味近以虧業,則沈溺之釁興;懷末以忘本,則天理之真滅。故動之所交,存亡之會也。夫有非有,於無非無;于無非無,於有非有。是以申縱播之累,而著貴無之文。將以絕所非之盈謬,存大善之中節,收流遁於既過,反澄正於胸懷。宜其以無為辭,而旨在全有,故其辭曰「以為文不足」。若斯,則是所寄之塗,一方之言也。若謂至理信以無為宗,則偏而害當矣。先賢達識,以非所滯,示之深論。惟班固著難,未足折其情。孫卿、楊雄大體抑之,猶偏有所許。而虛無之言,日以廣衍,眾家扇起,各列其說。上及造化,下被萬事,莫不貴無,所存僉同。情以眾固,乃號凡有之理皆義之埤者,薄而鄙焉。辯論人倫及經明之業,遂易門肆。頠用矍然,申其所懷,而攻者盈集。或以為一時口言。有客幸過,咸見命著文,擿列虛無不允之征。若未能每事釋正,則無家之義弗可奪也。頠退而思之,雖君子宅情,無求於顯,及其立言,在乎達旨而已。然去聖久遠,異同紛糾,苟少有仿佛,可以崇濟先典,扶明大業,有益於時,則惟患言之不能,焉得靜默,及未舉一隅,略示所存而已哉!

 

노자는 이미 5000글자의 문장을 지어 더럽고 난잡한 유폐를 물리칠 것을 표방하고 청정하고 정신이 하나로 되는 의미를 변별해 주장하였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석연히 스스로 깨닫게 하여 주역의 손괘, 겸괘, 간괘, 절괘의 뜻과 부합하였다. 청정과 전일은 본분을 지키는 것으로 허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고 손괘와 간괘의 부류도 대체로 군자의 도덕중 하나이지 주역의 중심이 되어 본무(本無)를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노자의 책을 보건대 비록 드넓어 도리가 있지만 말하길 「존재(有)는 허무(無)에서 생긴다.」하여 허(虛)를 주로 삼으니 치우쳐 일가의 학설을 세운 것이 아마도 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 사람이 이미 태어나서 생명을 보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데 보전하는데 있어 의지하는 것은 자기의 감정에 순응하는 것을 최고로 여긴다. 만약 취미가 사업을 일그러트리는데 가깝다면 곧 침닉의 틈이 열리게 되고 말단을 품고 본분을 잃어버리면 곧 하늘의 이치의 진실이 멸절된다. 그러므로 (사물들의) 움직임이 서로 간에 영향을 주는 것이 생존과 멸망의 기틀이 된다. 무릇 숭유론에 있어 존재를 비난하는 것은 귀무론에서 허무를 비난 하는 것이며 귀무론에서 허무를 비난하는 것은 곧 숭유론에서 존재를 비난하는 것이다. 이로써 방종의 유폐를 퍼트리면서 까지 허무를 숭상하는 글을 지은 것이다. 장차 이로써 비난하는 바의 성대한 잘못을 끊고 커다란 선의 중절(中節)을 보존하며 ; 도망쳐 숨는 이미 저지른 잘못을 거둬들여 마음속의 청정과 단정으로 돌아오고자 한 것이다. 응당 그가 허무를 문자로 삼았지만 뜻은 모두 존재에 있었으니 그런고로 그 말에 이르길 「서술한 바가 부족하다고 여긴다.」고 한 것이다. 만약 이렇다면 곧 그 의거한 길이 일방의 말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만약 말하길 지극한 도리는 허무를 숭상한다고 한다는 것을 믿는다고 한다면 곧 치우쳐져 정당함을 해치는 것이다. 선현은 식견이 통달하여 막힌바가 없이 자신의 심오한 의론을 드러냈다. 오직 반고의 저서가 비난하였으나 그 정을 꺾는데 부족하였다. 손경, 양웅은 대체로 이를 억눌렀으나 오히려 치우쳐 허락하는바가 있었다. 그렇게 허무의 학설이 날로 광범위하게 퍼져 여러 학자들이 선동하여 각자가 그 학설을 늘어놓았다. 위로 천지의 조화에서부터 아래로 모든 일까지 허무를 귀중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고 남아 있는 것은 모두 같은 부류였다. 감정은 많을수록 굳어지므로 마침내 이르길 모든 존재에 관한 이론은 모두 의리(義理)에 있어 저급하다며 욕하고 천시하였다. 인륜과 경전의 의미에 관해 연구하는 학자들은 마침내 문호를 바꾸었다. 배외는 두려워 그 마음에 품은 바를 펼쳤는데 공격하는 자가 성대하게 모여들었다. 혹자는 이를 일시의 언변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손님이 있어 다행히 방문하면 항상 문장을 짓는 것이 허무의 타당하지 못한 증거를 따온다는 말을 들었다. 만약 매번의 사안마다 올바르게 풀지 아니한다면 곧 귀무론의 학설을 무너트릴 수 없다. 배외는 물러나 생각건대 비록 군자가 중류를 따라 현달하길 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의론을 세우는데 있어서는 자신의 뜻을 드러낼 뿐이다. 그러나 성현의 시대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같고 다름이 분분하여 진실로 작은 비슷한 점이라도 있으면 가히 선현의 경전을 추숭하고 이루어 대업을 보좌해 당시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런즉 오직 말하는 바가 효력을 달성하지 못함을 걱정하는 것이지 어찌 입을 다물어 하나의 사례조차 언급하지 아니하여 (이런 생각이) 존재 하는 것조차 드러내 못하는데 불과 하겠는가 !

 

夫至無者無以能生,故始生者自生也。自生而必體有,則有遺而生虧矣。生以有為已分,則虛無是有之所謂遺者也。故養既化之有,非無用之所能全也;理既有之眾,非無為之所能循也。心非事也,而制事必由於心,然不可以制事以非事,謂心為無也。匠非器也,而制器必須於匠,然不可以制器以非器,謂匠非有也。是以欲收重泉之鱗,非偃息之所能獲也;隕高墉之禽,非靜拱之所能捷也;審投弦餌之用,非無知之所能覽也。由此而觀,濟有者皆有也,虛無奚益於已有之群生哉!

 

무릇 극단적인 귀무론은 존재를 만들어 낼 수 없으므로 처음 생기는 것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생기자마자 반드시 몸체가 있어야 하는데 곧 존재가 빠진다면 생성에 있어 흠이 있게 된다. 생성은 존재를 자신의 본분으로 하는데 그런즉 허무는 존재의 이른바 빠트린 바이다. 그러므로 이미 생성된 존재를 기르는 것은 무용이 능히 완전히 할 수 있는바가 아니고 이미 존재하는 대중을 다스리는 것은 무위(無為)가 능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은 사업이 아니다. 그러나 사업을 관장하는 것은 반드시 마음으로부터 유래해야지 사업을 관장하는 것이 사업이 아니라하여 마음을 일컬어 허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장인은 기계가 아지만 기계를 관장하는 것은 반드시 장인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하는데 기계를 만드는 것이 기계가 아니라 하여 장인을 일컬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에 못 속의 물고기를 잡으려면 유유히 드러누워 노는 것으로 획득할 수 없고 높은 담의 새를 떨어트리기 위해서는 가만히 팔짱을 끼고 잡을 수 없으며 살피어 활시위를 당기고 낚시의 미끼를 쓰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로부터 보건대 존재를 다루는 것은 모두 존재이고 허무가 어찌 이미 존재하는 군생(群生)들에게 이익이 되겠는가 !"

 

王衍之徒攻難交至,並莫能屈。又著《辯才論》,古今精義皆辨釋焉,未成而遇禍。

 

왕연의 무리가 번갈아가며 공격하였으나 더불어 굴복시킬 수 없었다. 또한 《변재론》을 지어 고금의 정의(精義)에 관해 모두 변별하고 해석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화를 당했다.

 

初,趙王倫諂事賈后,頠甚惡之,倫數求官,頠與張華復固執不許,由是深為倫所怨。倫又潛懷篡逆,欲先除朝望,因廢賈后之際遂誅之,時年三十四。二子嵩、該,倫亦欲害之。梁王肜、東海王越稱頠父秀有勳王室,配食太廟,不宜滅其後嗣,故得不死,徙帶方;惠帝反正,追復頠本官,改葬以卿禮,諡曰成。以嵩嗣爵,為中書黃門侍郎。該出後從伯凱,為散騎常侍,並為乞活賊陳午所害。

 

당초에 조왕 사마륜이 가태후에게 아첨하며 섬겨서 배외가 아주 싫어하였으므로 사마륜이 수차 관직을 구했는데도 배외는 장화와 더불어 여러 차례 굳게 고집하여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이로 말미암아 심히 사마륜에게 원한을 샀다. 사마륜은 또 몰래 반역의 의도를 품고 먼저 조정의 명망있는 인물을 제거하고자 하여 가태후를 폐하는 김에 마침내 (배외를) 살해 하였으니 당시에 나이가 34세였다. 두 명의 아들인 배숭과 배해도 사마륜이 역시 해치고자 하였다. 양왕 사마동과 동해왕 사마월은 배외의 아버지인 배수가 왕실에 공훈이 있고 태묘에 배향되었으니 그 후사를 멸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고 말하였으므로 죽음에 이르지 않고 대방으로 유배당했다. 혜제가 반정하고 배외의 본관을 추인하여 회복하고 경의 예법으로 옮겨 장사지내고 시호를 성(成)이라 하였다. 배숭으로 하여금 작위를 잇도록 하였는데 중서황문시랑이 되었다. 배해는 경성을 나간 이후 숙부인 배개를 따랐고 산기상시가 되었는데 더불어 유랑하던 도적인 진오에게 살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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