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楷,字叔則。父徽,魏冀州刺史。楷明悟有識量,弱冠知名,尤精《老》、《易》,少與王戎齊名。鍾會薦之于文帝,辟相國掾,遷尚書郎。賈充改定律令,以楷為定科郎。事畢,詔楷於御前執讀,平議當否。楷善宣吐,左右屬目,聽者忘倦。武帝為撫軍,妙選僚采,以楷為參軍事。吏部郎缺,文帝問其人於鍾會。會曰:「裴楷清通,王戎簡要,皆其選也。」於是以楷為吏部郎。

 

배해()의 자는 숙칙(叔則)이다. 아버지인 배휘는 위나라의 기주자사였다. 배해는 총명하고 견식이 있어 약관에 명성을 날렸는데 노자와 주역에 더욱 정통하여 어려서부터 왕융과 이름을 나란히 하였다. 종회가 그를 문제에게 추천하였는데 징벽하여 상국연으로 삼고 상서랑으로 옮겼다. 가충이 율령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배해를 정과랑(定科郎)으로 삼았다. 일이 끝나자 조서를 내려 배해를 어전집독(御前執讀)에 임명하고 (신하들이 올린 상소의) 타당성 여부를 평론하도록 하였다. 배해는 화술이 좋아서 주위 사람들이 주의를 집중하고 듣는 사람은 피곤을 몰랐다. 무제가 무군(撫軍)을 지냈을 때 막료들을 정밀하게 뽑았는데 배해를 참군사(參軍事)로 삼았다. 이부랑(吏部郎)이 결원되자 문제는 종회에게 타당한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종회가 말하길 :「배해는 청명하고 사무에 통달하였으며 왕융은 일처리 하는데 간요하니 모두 적합한 인선입니다.」라 하자 이에 배해를 이부랑으로 삼았다.

 

  楷風神高邁,容儀俊爽,博涉群書,特精理義,時人謂之「玉人」,又稱「見裴叔則如近玉山,映照人也」。轉中書郎,出入宮省,見者肅然改容。武帝初登阼,探策以卜世數多少,而得一,帝不悅,群臣失色,莫有言者。楷正容儀,和其聲氣,從容進曰:「臣聞天得一以清,地得一以寧,王侯得一以為天下貞。」武帝大悅,群臣皆稱萬歲。俄拜散騎侍郎,累遷散騎常侍、河內太守,入為屯騎校尉、右軍將軍,轉侍中。

 

배해는 풍채가 고매하고 용모가 영준하면서 널리 독서하여 특히 의리에 정통한지라 당시의 사람들이 옥인(玉人)이라 불렀고 또 칭하길 「배숙칙을 보면 마치 옥으로 만든 산에 가까이 가는 것 같아 빛이 사람을 비춘다.」라 하였다. 중서랑으로 옮겨 궁성을 출입하였는데 모든 사람들은 숙연히 용모를 바꿨다. 무제가 처음으로 즉위할 때 점괘를 뽑아 세수가 얼마나 오래갈지 점쳤는데 하나(一)를 얻자 황제는 불쾌해하고 중신들은 아연실색하여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배해는 용모를 단정하게 하고 소리를 온화하게 하며 종용히 나아가 말하길 :「신이 듣기로 하늘은 하나를 얻어 맑고 땅은 하나를 얻어 평안하고 왕후는 하나를 얻어 천하의 올곧음이 된다고 합니다.」라 하니 무제가 크게 기뻐하자 중신들이 모두 만세를 칭하였다. 얼마 후 산기시랑에 임명되고 점차 옮겨 산기상시, 하내태수가 되었으며 조정에 들어와 둔기교위, 우군장군을 역임하고 시중으로 옮겼다.

 

  石崇以功臣子有才氣,與楷志趣各異,不與之交。長水校尉季舒嘗與崇酣燕,慢傲過度,崇欲表免之。楷聞之,謂崇曰:「足下飲人狂藥,責人正禮,不亦乖乎!」崇乃止。

 

석숭은 공신의 자재로 재기가 있어 배해와 더불어 뜻한 바가 달라 서로 더불어 교제하지 않았다. 장수교위 계서가 일찍이 석숭과 더불어 연회에서 술을 마셨는데 교만이 도를 지나쳐 석숭은 표를 올려 관직에서 파면되도록 하고자 하였다. 배해가 이를 듣고 석숭에게 말하길 :「족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만드는 약을 먹여 놓고 올바른 예법으로 책망하신다면 또한 어긋난 것이 아니겠습니까!」라 하자 석숭은 마침내 그만두었다.

 

  楷性寬厚,與物無忤。不持儉素,每游榮貴,輒取其珍玩。雖車馬器服,宿昔之間,便以施諸窮乏。嘗營別宅,其從兄衍見而悅之,即以宅與衍。梁、趙二王,國之近屬,貴重當時,楷歲請二國租錢百萬,以散親族。人或譏之,楷曰:「損有餘以補不足,天之道也。」安於毀譽,其行己任率,皆此類也。與山濤、和嶠並以盛德居位,帝嘗問曰:「朕應天順時,海內更始,天下風聲,何得何失?」楷對曰:「陛下受命,四海承風,所以未比德於堯舜者,但以賈充之徒尚在朝耳。方宜引天下賢人,與弘正道,不宜示人以私。」時任愷、庾純亦以充為言,帝乃出充為關中都督。充納女于太子,乃止。平吳之後,帝方修太平之化,每延公卿,與論政道。楷陳三五之風,次敘漢魏盛衰之跡。帝稱善,坐者嘆服焉。

 

배해는 성정이 관대하고 두터워 다른 사람과 거슬러 원수 맺는 일이 없었다. 검소한 것을 고집하지 않아 매번 영화롭고 부귀한 곳에 가서 놀면 문득 진귀한 물건을 취하였다. 비록 거마나 기구, 복식들이라 하여도 짧은 시간 내에 곧바로 빈궁한 사람에게 베풀었다. 일찍이 별장을 경영하였는데 그의 종형인 배연이 보고 기뻐하자 즉시 별장을 배연에게 주었다. 양왕과 조왕은 모두 국가의 근친이자 당시의 존귀하고 중요한 사람들이었는데 배해는 매년 두 나라의 조세 100만전을 청하여 이로써 친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이 혹 이를 기롱하자 배해는 말하길 :「남아 있는 것을 덜어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것은 하늘의 도리이다.」라 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비방이나 칭찬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바를 행하는 것이 모두 이와 같은 부류였다. (배해는) 산도, 화교와 더불어 관직에 있으면서 덕이 있다는 명성이 성대하였는데 황제가 일찍이 묻길 :「짐은 천명에 응하여 때에 따라 천하를 다시 시작하였는데 천하의 소문에 있어 어떤 것이 옳다하고 어떤 것이 그르다 하는가?」하니 배해가 대답하길 :「폐하께서 천명을 받고 천하가 향응하는데 덕이 요순에 비할 수 없는 이유는 다만 가충의 무리들이 오히려 조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야흐로 응당 천하의 현인들을 끌어 들여 올바른 도리를 펼쳐야지 사람들에게 사사로운 감정을 내보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당시에 임개, 유순도 가충으로 말의 주제를 삼았으니 황제가 마침내 가충을 바깥으로 내보내 관중도독으로 삼았다. 가충은 딸을 태자에게 시집보내 끝내 이를 저지하였다. 오나라를 평정한 이후에 황제는 바야흐로 태평성대의 교화를 수립하고 매번 공경들을 불러들여 더불어 정치의 도리를 의논하였다. 배해는 3황5제의 정치를 진술하고 다음으로 한나라와 위나라가 창성하고 쇠퇴한 흔적을 서술하였다. 황체가 훌륭하다고 칭찬하고 앉은 사람들은 탄복하였다.

 

  楷子瓚娶楊駿女,然楷素輕駿,與之不平。駿既執政,乃轉為衛尉,遷太子少師,優遊無事,默如也。及駿誅,楷以婚親收付廷尉,將加法。是日事倉卒,誅戮縱橫,眾人為之震恐。楷容色不變,舉動自若,索紙筆與親故書。賴侍中傅祗救護得免,猶坐去官。太保衛瓘、太宰亮稱楷貞正不阿附,宜蒙爵土,乃封臨海侯,食邑二千戶。代楚王瑋為北軍中候,加散騎常侍。瑋怨瓘、亮斥己任楷,楷聞之,不敢拜,轉為尚書。

 

배해의 아들인 배찬은 양준의 딸과 결혼했는데 배해는 본래부터 양준을 경시하였기에 그와 더불어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양준이 정권을 잡자 마침내 위위로 옮기고 태자소사로 옮겼는데 한가로이 아무 일도 없이 침묵을 지켰다. 양준이 주살당하고 배해는 인척이라는 이유로 잡아들여져 정위에게 맡겨졌는데 장차 형벌이 가해지려 하였다. 이 날에 사건이 창졸간에 터져 종횡간에 살육하여 사람들이 모두 떨며 두려워하였다. 배해는 얼굴빛이 바뀌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 태연하였는데 지필을 찾아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시중 부지의 도움에 힘입어 사형을 면하고 파면되었다. 태보 위관, 태재 사마량은 배해가 올곧고 정의로워 아부하지 않음을 칭찬하며 응당 작위를 받아야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에 임해후(臨海侯)로 봉하고 식읍을 2000호로 하였다. 초왕 사마위를 대신하여 북군중후가 되고 산기상시가 더해졌다. 사마위는 위관과 사마량이 자신을 내치고 배해를 임명받게 해서 원망하였는데 배해가 이 소리를 듣고 감히 임명을 받지 못하고 상서로 옮겼다.

 

  楷長子輿先娶亮女,女適衛瓘子,楷慮內難未已,求出外鎮,除安南將軍、假節、都督荊州諸軍事,垂當發而瑋果矯詔誅亮、瓘。瑋以楷前奪己中候,又與亮、瓘婚親,密遣討楷。楷素知瑋有望于己,聞有變,單車入城,匿于妻父王渾家,與亮小子一夜八徙,故得免難。瑋既伏誅,以楷為中書令,加侍中,與張華、王戎並管機要。

 

배해의 장자인 배여는 먼저 사마량의 딸과 결혼했고 배해의 딸은 위관의 아들과 결혼했는데 배해는 내란이 그치지 않음을 걱정하여 바깥에 나가 진수하도록 구했고 안남장군, 가절, 도독형주제군사에 제수하여 장차 떠나려 할 때 사마위가 과연 조서를 가칭하여 사마량과 위관을 죽였다. 사마위는 배해가 일전에 자신의 중후를 빼앗으려 하였고 또한 사마량, 위관과 인척관계에 있음으로 인하여 몰래 사람을 보내 배해를 해치고자 하였다. 배해는 원래부터 사마위가 자신에게 원한이 있음을 안데다 변고가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홀로 수레를 타고 경성에 들어와서는 장인인 왕혼의 집에서 숨었는데 사마량의 작은 아들과 더불어 하룻밤에 여덟 차례나 숨은 곳을 옮겨 재난을 면할 수 있었다. 사마위가 이미 주살당하고 배해를 중서령으로 삼고 시중을 더하고는 장화, 왕융과 더불어 국가의 기밀을 관장하도록 하였다.

 

  楷有渴利疾,不樂處勢。王渾為楷請曰:「楷受先帝拔擢之恩,復蒙陛下寵遇,誠竭節之秋也。然楷性不競於物,昔為常侍,求出為河內太守;後為侍中,復求出為河南尹;與楊駿不平,求為衛尉;及轉東宮,班在時類之下,安於淡退,有識有以見其心也。楷今委頓,臣深憂之。光祿勳缺,以為可用。今張華在中書,王戎在尚書,足舉其契,無為復令楷入,名臣不多,當見將養,不違其志,要其遠濟之益。」不聽,就加光祿大夫、開府儀同三司。及疾篤,詔遣黃門郎王衍省疾,楷回眸矚之曰:「竟未相識。」衍深歎其神俊。

 

배해는 권세와 이익을 갈구하는 병이 있어 처해있는 곳을 기뻐하지 않았다. 왕혼이 배해를 위해 청하길 :「배해는 선제가 발탁한 은혜를 입었고 폐하의 총애를 얻었으니 진실로 충성을 다할만한 때입니다. 그러나 배해는 성격에 다른 사람과 경쟁하길 싫어하여 옛날에 상시를 지낼 때 나가 하내태수가 되길 청했고 이후에 시중이 되었을 때 다시 나가 하남윤이 되길 구했습니다. 양준과 더불어 사이가 좋지 않아 위위가 되길 구했고 동궁으로 옮기는데 이르러 자리가 당시 동류들의 아래에 있었는데도 담박히 물러나는 것을 편안히 여겼으니 유식한 사람이라면 그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배해가 지금처럼 버려져 있는 것은 신이 깊이 걱정하는 바입니다. 광록훈이 결원되었으니 가히 임용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장화는 중서에 있고 왕융은 상서에 있으니 족히 일을 처리할 수 있으므로 다시 배해로 하여금 그 사이에 들어가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명신은 많지 아니하니 응당 장차 봉양을 받고 그 뜻을 어기지 않아 원대한 이익을 얻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였으나 들어주지 않고 광록대부, 개부의동삼사를 더했다. 병이 위독해진 때에 이르러 조서를 내려 황문랑 왕연으로 하여금 병을 살피도록 보냈는데 배해가 머리를 돌려 왕연을 바라보며 이르길 :「끝내 서로 알고 지내지 못했구나.」하였고 왕연은 깊이 그 정신이 영준함을 감탄하였다.

 

  楷有知人之鑒,初在河南,樂廣僑居郡界,未知名,楷見而奇之,致之於宰府。嘗目夏侯玄雲「肅肅如入宗廟中,但見禮樂器」,鍾會「如觀武庫森森,但見矛戟在前」,傅嘏「汪翔靡所不見」,山濤「若登山臨下,幽然深遠」。

 

배해에게 사람을 알아보는 재능이 있었는데 처음에 하남에 있었을 때 악광이 군의 경계에 우거하였는데 명성이 없었으나 배해가 만나보고 기이하게 여겨 재부(宰府)에 들어가도록 하였다. 일찍이 하후현을 만나보고 말하길 「엄숙하게 종묘 가운데 들어가 다만 보이는 것은 예악의 도구들 뿐이다.」라 하였고 종회는 「무기고를 보는 것 같아 다만 창들이 앞에 보일 뿐이다.」부하는 「너무 드넓어 보이지 않는 바가 없다.」산도는 「마치 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 같아서 유연히 깊고 멀다.」。라 하였다.

 

  初,楷家炊黍在甑,或變如拳,或作血,或作蕪菁子。其年而卒,時年五十五,諡曰元。有五子:輿、瓚、憲、禮、遜。

 

당초에 배해의 집안에서 솥에서 기장을 요리했는데 혹 주먹처럼 변하고 혹은 피처럼 되고 혹은 무청자처럼 변하였다. 그 해에 죽었는데 당시의 나이가 55세로 시호를 원(元)이라 하였다. 5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배여, 배찬, 배헌, 배례, 배손이다.

 

  輿字祖明。少襲父爵,官至散騎侍郎,卒諡曰簡。

 

배여는 자가 조명이다. 어려서 아버지의 작위를 잇고 관직이 산기시랑에 이르렀는데 죽어서 시호를 간(簡)이라 하였다.

 

  瓚字國寶,中書郎,風神高邁,見者皆敬之。特為王綏所重,每從其遊。綏父戎謂之曰:「國寶初不來,汝數往,何也?」對曰:「國寶雖不知綏,綏自知國寶。」楊駿之誅,為亂兵所害。

 

배찬의 자는 국보인데 중서랑이었고 풍채가 고매하여 사람들이 모두 공경하였다. 특히 왕수에게 중시받았는데 매번 그를 따라 노닐었다. 왕수의 아버지인 왕융이 그에게 말하길 :「배국보는 처음부터 오지 않고 너만 자주 가는데 그건 왜 그런가?」하니 대답하길 :「배국보가 비록 왕수를 몰라준다고 하여도 왕수는 스스로 배국보를 이해하고 있습니다.」라 하였다. 양준이 주살당하던 때에 난병(亂兵)들에게 살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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