甘卓,字季思,丹陽人,秦丞相茂之後也。曾祖寧,為吳將。祖述,仕吳為尚書。父昌,太子太傅。吳平,卓退居自守。郡命主簿ㆍ功曹,察孝謙,州舉秀才,為吳王常侍。討石冰,以功賜爵都亭侯。東海王越引為參軍,出補離狐令。卓見天下大亂,棄官東歸,前至歷陽,與陳敏相遇。敏甚悅,共圖縱橫之計,遂為其子景娶卓女,共相結託。會周玘唱義,密使錢廣攻敏弟昶,敏遣卓討廣,頓朱雀橋南。會廣殺昶,玘告丹陽太守顧榮共邀說卓。卓素敬服榮,且以昶死懷懼,良久乃從之。遂詐疾迎女,斷橋,收船南岸,共滅敏,傳首於京都。

감탁(甘卓)은, 자(字)가 계사(季思)이며, 단양(丹陽)사람이고(人), 진(秦)나라 승상(丞相) 감무(茂)의(之) 후손(後)이다(也).

증조부(曾祖) 감녕(寧)은, 오나라(吳) 장수(將)였다(為).

조부(祖) 감술(述)은, 오(吳)를 섬겨(仕) 상서(尚書)가 되었다(為).

부친(父) 감창(昌)은, 태자태부(太子太傅)였다.

오(吳)가 평정되니(平), 감탁(卓)은 거처(居)에서 물러나(退) 스스로를(自) 지켰다(守).

군(郡)에서 주부(主簿)ㆍ공조(功曹)에게 명하여(命), 효(孝)와 겸손(謙)이 드러났으니(察), 주(州)에서 수재(秀才)로 추천하여(舉), 오왕(吳王)의 상시(常侍)가 되었다(為).

석빙(石冰)을 토벌하는데(討), 공(功)으로 도정후(都亭侯)의 작위(爵)를 받았다(賜).

동해왕(東海王) 사마월(越)이 추천하여(引) 참군(參軍)이 되어(為), 내보내(出) 이호령(離狐令)을 맡겼다(補).

감탁(卓)은 천하(天下)가 대란(大亂)을 만나(見), 관직(官)을 버리고(棄) 동쪽으로(東) 돌아가는데(歸), 나아가며(前) 역양(歷陽)에 이르어(至), 진민(陳敏)과(與) 함께(相) 만났다(遇).

진민(敏)은 매우(甚) 기뻐하여(悅), 함께(共) 종횡(縱橫)의(之) 계책(計)을 꾀하며(圖), 마침내(遂) 그(其) 아들(子) 진경(景)에게 감탁(卓)의 딸(女)을 취하게(娶) 하며(為), 함께(共) 서로(相) 결탁했다(結託).

마침(會) 주기(周玘)가 의(義)를 주장하며(唱), 은밀히(密) 전광(錢廣)으로 하여(使) 진민(敏)의 동생(弟) 진창(昶)을 공격하게 하니(攻), 진민(敏)은 감탁(卓)을 보내(遣) 전광(廣)을 토벌하였고(討), 주작교(朱雀橋) 남쪽(南)에서 패하였다(頓).

마침(會) 전광(廣)이 진창(昶)을 살해하니(殺), 주기(玘)가 단양태수(丹陽太守) 고영(顧榮)에게 알려(告) 함께(共) 감탁(卓)의 설득(說)을 청했다(邀).

감탁(卓)은 본래(素) 고영(榮)을 존경하였고(敬服), 또한(且) 진창(昶)의 죽음(死)으로(以) 두려워(懷懼), 오랜 후에(良久) 비로소(乃) 좇았다(從之).

마침내(遂) 병(疾)을 가장하여(詐) 딸(女)을 맞이하고(迎), 다리를 끊어(斷橋), 배(船)를 남안(南岸)으로 거두어서(收), 함께(共) 진민(敏)을 멸망시키고(滅), 수급(首)을 경도(京都)에(於) 전했다(傳).


 

元帝初渡江,授卓前鋒都督ㆍ揚威將軍ㆍ歷陽內史。其後討周馥,征杜弢,屢經苦戰,多所擒獲。以前後功,進爵南鄉侯,拜豫章太守。尋遷湘州刺史,將軍如故。復進爵於湖侯。

원제(元帝)가 장강(江)을 건넌(渡) 초기에(初), 감탁(卓)에게 전봉도독(前鋒都督)ㆍ양위장군(揚威將軍)ㆍ역양내사(歷陽內史)를 주었다(授).

그후(其後)에 주복(周馥)을 토벌하고(討), 두도(杜弢)를 정벌하며(征), 여러(屢) 고전(苦戰)을 지냈는데(經), 사로잡은(擒獲) 바(所)가 많았다(多).

전후(前後)의 공(功)으로(以), 남향후(南鄉侯)의 작위(爵)에 올랐으며(進), 예장태수(豫章太守)가 되었다(拜).

이윽고(尋) 상주자사(湘州刺史)로 옮겼는데(遷), 장군(將軍) 이전(故)과 같았다(如).

거듭(復) 호후(湖侯)의(於) 작위(爵)로 올랐다(進).


 

中興初,以邊寇未靜,學校陵遲,特聽不試孝廉,而秀才猶依舊策試。卓上疏以為:「答問損益,當須博通古令,明達政體,必求諸墳索,乃堪其舉。臣所忝州往遭寇亂,學校久替,人士流播,不得比之餘州。策試之由,當藉學功,謂宜同孝廉例,申與期限。」疏奏,朝議不許。卓於是精加隱括,備禮舉桂陽谷儉為秀才。儉辭不獲命,州厚禮遣之。諸州秀才聞當考試,皆憚不行,惟儉一人到臺,遂不復策試。儉恥其州少士,乃表求試,以高第除中郎。儉少有志行,寒苦自立,博涉經史。于時南土凋荒,經籍道息,儉不能遠求師友,唯在家研精。雖所得實深,未有名譽,又恥衒耀取達,遂歸,終身不仕,卒於家。

중흥(中興) 초(初), 변방(邊)의 도적(寇)이 정리(靜)되지 않아(未)서(以), 학교(學校)가 점차 쇠퇴하여(陵遲), 특별히(特) 시험(試) 없이(不) 효렴(孝廉)을 받았는데(聽), 하지만(而) 수재(秀才)들은 오히려(猶) 옛(舊) 책시(策試=시험)에 의지하였다(依).


감탁(卓)은 상소(上疏)를(以) 하였다(為).

“손익(損益)을 대답하는건(答問), 마땅히(當) 모름지기(須) 옛(古) 법령(令)에 대해 널리 알아야 하며(博通), 정치의 형태(政體)에 밝고 통달해야 하니(明達), 모든(諸) 무덤(墳)을 뒤져서라도(索) 반드시(必) 구해야 하는데(求), 이와같이(乃) 뛰어나다면(堪) 마땅히(其) 추천해야 합니다(舉).

신(臣)은 일찍이(往) 도적(寇)의 난(亂)을 만나(遭) 주(州)를 욕보인(忝) 바(所)가 있으니, 학교(學校)는 쇠한지(替) 오래되고(久), 인사(人士)들은 널리 퍼졌고(流播), 나머지 주(餘州)에 비할(比之)수 없습니다(不得).

책시(策試)로(之) 말미암아(由), 학업(學功)에 의지하게(藉) 되어(當), 마땅히(宜) 효렴(孝廉)과 같은(同) 관례(例)임을 알려(謂), 더불어(與) 기한(期限)을 알려야합니다(申).”

상소(疏)를 아뢰니(奏), 조정(朝)은 의논하여(議) 허락하지(許) 않았다(不).

감탁(卓)은 이(是)에(於) 총명함(精)이 있는(加) 숨은 자(隱)를 찾아(括), 예(禮)를 갖추어(備) 계양(桂陽)의 곡검(谷儉)을 수재(秀才)로 삼기를(為) 추천하였다(舉).

곡검(儉)이 거절했으나 허락지 않고(辭不獲命), 주(州)는 두터운(厚) 예(禮)를 보냈다(遣之).

모든(諸) 주(州)의 수재(秀才)는 응당(當) 고시(考試)로 알려져있는데(聞), 모두(皆) 꺼려(憚) 가지(行) 않으니(不), 오직(惟) 곡검(儉) 한 사람(一人)만이 대(臺)에 이르어(到), 마침내(遂) 책시(策試)는 회복되지(復) 않았다(不).

곡검(儉)은 그(其) 주(州)에 선비(士)가 적음(少)을 부끄러워해(恥), 이에(乃) 표문(表)으로 시험(試)을 청하니(求), 이로서(以) 우수한 성적(高第)으로 중랑(中郎)을 제수했다(除).

곡검(儉)은 젊어서(少) 품은 뜻과 행실(志行)이 있어(有), 가난하면서도(寒苦) 자립(自立)하여, 경사(經史)를 널리 읽었다(博涉).

또한(于) 당시(時) 남쪽 땅(南土)은 시들고(凋) 황폐해(荒), 경서(經籍)는 길(道)을 잃었고(息), 곡검(儉)은 멀리서(遠) 스승과 벗(師友)을 구하기(求)가 불가능했고(不能), 오직(唯) 집(家)에서 연정(研精=연구가히가 뛰어남)이 있었다(在).

그러나(雖) 진실로 깊이(實深) 깨달은(得) 바(所), 아직 명예가 없고(未有名譽), 또한(又) (경서)의 통달(達)에 의지하여(取) 현요(衒耀=명성을 얻기 위해 뽐냄)함을 부끄러워해(恥), 마침내(遂) 돌아가(歸), 죽을때까지(終身) 관직에 나가지 않았고(不仕), 집(家)에서(於) 죽었다(卒).



卓尋遷安南將軍ㆍ梁州刺史ㆍ假節ㆍ督沔北諸軍,鎮襄陽。卓外柔內剛,為政簡惠,善於綏撫,估稅悉除,市無二價。州境所有魚池,先恒責稅,卓不收其利,皆給貧民,西土稱為惠政。

감탁(卓)은 이윽고(尋) 안남장군(安南將軍)ㆍ양주자사(梁州刺史)ㆍ가절(假節)ㆍ독면북제군사(督沔北諸軍)로 옮겨(遷), 양양(襄陽)에 주둔했다(鎮).

감탁(卓)은 외유내강(外柔內剛=겉은 부드럽고 속은 강함)하여, 정치(政)를 관대하고 인자롭게(簡惠)하니(為), 어루만짐(綏撫)을(於) 잘하여(善), 세금(估稅)을 모두(悉) 감면하니(除), 저자(市)에는 가격이 두개인(二價) 것이 없었다(無). (즉, 모든 상인들이 같은 값으로 물건을 팔 정도로 거래가 투명했다는 뜻인 듯.)

주(州)의 경계(境)에는 어지(魚池)가 있어(所有), 옛날엔(先) 항상(恒) 세금(稅)을 요구했는데(責), 감탁(卓)은 그(其) 이익(利)을 거두지(收) 않고(不), 모두(皆) 빈민(貧民)에게 주니(給), 서쪽 땅(西土)에서는 은혜로운 정치(惠政)라 칭송(稱)하였다(為).




王敦稱兵,遣使告卓。卓乃偽許,而心不同之。及敦升舟,而卓不赴,使參軍孫雙詣武昌諫止敦。敦聞雙言,大驚曰:「甘侯前與吾語云何,而更有異!正當慮吾危朝廷邪?吾今下唯除姦凶耳。卿還言之,事濟當以甘侯作公。」雙還報卓,卓不能決。或說卓且偽許敦,待敦至都而討之。卓曰:「昔陳敏之亂,吾亦先從後圖,而論者謂懼逼面謀之。雖吾情本不爾,而事實有似,心恒愧之。今若復爾,誰能明我!」時湘州刺史譙王承遣主簿鄧騫說卓曰:「劉大連雖乘權寵,非有害於天下也。大將軍以其私憾稱兵象魏,雖託討亂之名,實失天下之望,此忠臣義士匡救之時也。昔魯連匹夫,猶懷蹈海之志,況受任方伯,位同體國者乎!今若因天人之心,唱桓文之舉,杖大順以掃逆節,擁義兵以勤王室,斯千載之運,不可失也。」卓笑曰:「桓文之事,豈吾所能。至於盡力國難,乃其心也。當共詳思之。」參軍李梁說卓曰:「昔隗囂亂隴右,竇融保河西以歸光武,今日之事,有似於此。將軍有重名於天下,但當推亡固存,坐而待之。使大將軍勝,方當崇將軍以方面之重;如其不勝,朝廷必以將軍代之。何憂不富貴,而釋此廟勝,決存亡於一戰邪!」騫謂梁曰:「光武創業,中國未平,故隗囂斷隴右,竇融兼河西,各據一方,鼎足之勢,故得文服天子,從容顧望。及海內已定,君臣正位,終於隴右傾覆,河西入朝。何則?向之文服,義所不容也。今將軍之於本朝,非竇融之喻也。襄陽之於大府,非河西之固也。且人臣之義,安忍國難而不陳力,何以北面於天子邪!使大將軍平劉隗,還武昌,增石城之守,絕荊湘之粟,將軍安歸乎?勢在人手,而曰我處廟勝,未之聞也。」卓尚持疑未決,騫又謂卓曰:「今既不義舉,又不承大將軍檄,此必至之禍,愚智所見也。且議者之所難,以彼彊我弱,是不量虛實者也。今大將軍兵不過萬餘,其留者不能五千,而將軍見眾既倍之矣。將軍威名天下所聞也,此府精銳,戰勝之兵也。擁彊眾,藉威名,杖節而行,豈王含所能御哉!溯流之眾,勢不自救,將軍之舉武昌,若摧枯拉朽,何所顧慮乎!武昌既定,據其軍實,鎮撫二州,施惠士卒,使還者如歸,此呂蒙所以剋敵也。如是,大將軍可不戰而自潰。今釋必勝之策,安坐以待危亡,不可言知計矣。願將軍熟慮之。」

왕돈(王敦)이 거병(稱兵)하여, 사신(使)을 보내(遣) 감탁(卓)에게 알렸다(告).

감탁(卓)은 이에(乃) 거짓(偽)으로 허락했는데(許), 하지만(而) 마음(心)은 같지(同之) 않았다(不).

왕돈(敦)이 배(舟)로 나아가(升)기에 이르었는데(及), 하지만(而) 감탁(卓)은 나아가지(赴) 않았고(不), 참군(參軍) 손쌍(孫雙)으로 하여(使) 무창(武昌)에 이르어(詣) 왕돈(敦)에게 그치도록(止) 간하게 하였다(諫).

왕돈(敦)은 손쌍(雙)의 말(言)을 듣고(聞), 크게(大) 놀라며(驚) 말하였다(曰).

“감후(甘侯)는 전(前)에 나(吾)와(與)한 의논(語)은 무엇(何)이었는데(云), (생각을) 고쳐서(更) 다름(異)이 있을(有) 따름입니까(而)! 내(吾)가 조정(朝廷)을 위협한다(危)는 걸 옳다고(正當) 생각(慮)하십니까(邪)? 내(吾)가 오늘날(今) 내려온 것은(下) 오직(唯) 간흉(姦凶)을 제거하려는(除) 것입니다(耳). 경(卿)은 돌아온다(還) 한다면(言之), 일(事)을 성사하면(濟) 응당(當) 이로서(以) 감후(甘侯)는 공(公)으로 삼을 것이오(作).”

손쌍(雙)은 돌아가(還) 감탁(卓)에게 알렸는데(報), 감탁(卓)은 결단(決)할 수 없었다(不能).

누군가(或) 감탁(卓)에게 우선(且) 거짓으로(偽) 왕돈(敦)을 허락하라(許) 말하며(說), 왕돈(敦)이 도읍(都)에 이르길(至) 기다리고(待而) 토벌하자 하였다(討之).

감탁(卓)이 말하였다(曰).

“옛(昔) 진민의 난(陳敏之亂)에서, 나(吾)는 또한(亦) 먼저(先) (진민을) 좇았다가(從) 후에(後) (진민을) 꾀했는데(圖), 그리하니(而) 논자(論者)들이 일컫기를(謂) 압박(逼)을 받자(面) 두려워하여(懼) (진민을) 꾀했다(謀之) 하였다. 비록(雖) 나(吾)의 뜻(情)은 본래(本) 그렇지(爾) 않으나(不), 하지만(而) 일(事)의 내용(實)은 같으니(有似), 마음(心)이 항상(恒) 부끄러웠다(愧之). 오늘날(今) 만약(若) 거듭(復) 그리한다면(爾), 누가(誰) 나(我)를 결백하다(明) 하겠는가(能)."

당시(時) 상주자사(湘州刺史) 초왕(譙王) 사마승(承)이 주부(主簿) 등건(鄧騫)을 보내(遣) 감탁(卓)에게 유세하여(說) 말하였다(曰).

“유대련(劉大連=유외)가 비록(雖) 황제의 총애(權寵)를 업었지만(乘), 천하(天下)에(於) 해(害)를 끼치진(有) 않았(非)습니다(也).

대장군(大將軍)께서 그(其) 사사로운 일(私憾)로(以) 조정(象魏)에 대해 거병(稱兵)했는데, 아무리(雖) 난(亂)을 토벌한다(討)고(之) 명분(名)을 내세워도(託), 실제로는(實) 천하(天下)의(之) 기대(望)를 잃었으니(失), 이는(此) 충신(忠臣)과 의사(義士)들이 잘못을 바로잡을(匡救之) 시기(時)입니다(也).

옛(昔) 노련(魯連=노중련)은 필부(匹夫)였지만, 오히려(猶) 바다에 빠질 뜻(蹈海之志=진나라가 황제가 되면 바다에 빠져 죽겠다고 역설한 일화)을 품었는데(懷), 하물며(況) 방백(方伯=지방관)의 임무(任)를 맡았는데(受), 신체와 나라를 함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位同體國者乎)!

오늘날(今) 만약(若) 하늘의 뜻(天人之心)을 따라(因), 환공(桓)ㆍ문(文)공의(之) 행동(舉)임을 주장하며(唱), 도리(大順)를 의지하여(杖) 이로서(以) 역적(逆節)을 없애고(掃), 의병(義兵)을 가지고(擁) 이로서(以) 왕실(王室)에 힘쓴다면(勤), 이는(斯) 천년(千載)동안(之) 돌아(運), 없어지지(失) 않을(不可)것입니다(也)."

감탁(卓)이 웃으며(笑) 말하였다(曰).

“환공(桓)과 문공(文)의(之) 대업(事)을, 어찌(豈) 내(吾)가 능한 바(所能)겠습니까만, 이에(於)이르어(至) 국난(國難)에 힘을 다하는 것은(盡力), 그(其) 뜻(心)과 같은(乃) 것입니다(也). 마땅히(當) 함께(共) 자세히(詳) 생각합시다(思之)."

참군(參軍) 이양(李梁)은 감탁(卓)에게 유세하며(說) 말하였다(曰).

“옛날(昔) 외효(隗囂)가 농우(隴右)에서 반란하니(亂), 두융(竇融)은 하서(河西)를 지켜(保) 이로서(以) 광무제(光武)에게 귀순했으니(歸), 오늘의 일(今日之事)은, 이(此)와(於) 같습니다(有似).

장군(將軍)께서는 천하(天下)에(於) 중명(重名)이 있으니(有) , 다만(但) 마땅히(當) 推亡固存,앉아서(坐而) 기다려야합니다(待之).

대장군(大將軍)이 이기게(勝) 된다면(使), 장차(方) 마땅히(當) 장군(將軍)을 높여(崇) 이로서(以) 한쪽 방면(方面)의(之) 중임(重)을 줄 터이며;그(其)가 이기지(勝)못한다(不) 하여도(如), 조정(朝廷)은 반드시(必) 장군(將)으로서(以) 군(軍)을 대신하게할 것입니다(代之). 어찌(何) 부귀(富貴)하지 못함(不)을 걱정하시며(憂), 그리하여(而) 이런(此) 묘승(廟勝)을 버리시고(釋), 존망(存亡)을 한번(一)의 싸움(戰)으로(於) 결정하려(決)하십니까(邪)!"

등건(騫)은 이양(梁)에게 이르어(謂) 말하였다(曰).

"광무(光武)의 창업(創業)은, 중국(中國)이 아직 평정되지 않았고(未平), 예전(故) 외효(隗囂)가 농우(隴右)를 끊고(斷), 두융(竇融)이 하서(河西)를 겸병한 것은(兼), 각자(各) 한 방면(一方)을 근거하여(據), 솥밭처럼 천하를 이룬 것인데(鼎足之勢), (외효와 두융은) 문복천자(文服天子)인 까닭에(故得), 조용히(從容) 망설이고만 있습니다(顧望).

해내(海內)가 이윽고(已) 평정(定)되니(及), 군신(君臣)은 바르게(正) 위치하였고(位), 마침내(終) 농우(隴右)는(於) 경복되었으며(傾覆), 하서(河西)는 입조하였습니다(入朝).

왜냐하면(何則)?문복(文服)을 행하니(向之), 의(義)를 용납(容)하지 못해서(所不)입니다(也).

지금(今) 장군(將軍)은(之) 본 왕조(本朝)에서(於), 두융(竇融)에(之) 비할(喻)바가 되지 못합(非)니다(也).

양양(襄陽)은(之) 대부(大府=태부/왕돈)에게(於), 하서(河西)처럼(之) 굳건하지도(固) 못합(非)니다(也).

또한(且) 신하(人臣)의(之) 의(義)는, 국난(國難)을 편안히(安) 인내(忍)하고(而) 힘을(力) 다하지(陳) 않으니(不), 어찌(何) 이로서(以) 천자(天子)를(於) 북면(北面)하시려 하십니까(邪)!

대장군(大將軍)으로(使) 유외(劉隗)를 평정하게 하고(平), 무창(武昌)으로 돌아가(還), 석성(石城)의(之) 방어(守)를 증가시키고(增), 형주(荊)와 상주(湘)의(之) 식량(粟)을 끊게(絕)한다면, 장군(將軍)은 장차(安) 어디로 귀부하실 겁니까(歸乎)?

형세(勢)는 다른사람(人)의 손(手)에 있는데(在), 그런데도(而) 나(我)는 묘승(廟勝)에 자리하겠다(處)고 말하는 것은(曰),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未之聞也)."

감탁(卓)은 오히려(尚) 의심(疑)을 가져(持) 결정하지(決) 못했는데(未), 등건(騫)이 또한(又) 감탁(卓)에게 이르어(謂) 말하였다(曰).

"지금(今) 이미(既) 의군(義)을 일으키지(舉) 않았고(不), 또한(又) 대장군(大將軍)의 격문(檄)을 받지도(承) 않았는데(不), 이는(此) 필히(必) 재앙(禍)이 이른다는건(至之), 어리석은 자(愚)과 지혜로운 자(智)가 모두 아는 바입니다(所見也).

또한(且) 의논하는 자(議者)들이 어렵다고 하는 것은(之所難), 저들은 강하고(彼彊) 우리는 약하다는(我弱) 것인데(以), 이는(是) 허실(虛實=진실과 거짓)을 알지(量) 못하는(不) 자(者)입니다(也).

지금(今) 대장군(大將軍)의 병사(兵)는 1만명 남짓(萬餘)을 넘지(過) 않고(不), 그중(其) 남은 자(留者)는 5천(五千)이 되지 않는데(不能), 하지만(而) 장군(將軍)의 현재 무리(見眾)는 이미(既) 그 배나 됩니다(倍之矣).

장군(將軍)의 위명(威名)은 천하(天下)에 들리는 바(所聞)인데(也), 이(此) 부(府=양주자사부)는 정예(精銳)이니, 병사(兵)로 싸워 이길(戰勝之) 것입니다(也).

​강한 무리(彊眾)를 끼고(擁), 위명(威名)을 의지하여(藉), 부절(節)을 지니(杖)고(而) 나아가면(行), 어찌(豈) 왕함(王含)이 막을(御)수 있겠(所能)습니까(哉)!

물을 거슬러 올라오는 무리(溯流之眾)는, 스스로(自) 구원하지(救) 못하는(不) 형세이며(勢), 장군(將軍)이(之) 무창(武昌)을 들어버리는 것은(舉), 마르고 썩은 나무를 꺽는 것과 같은데(若摧枯拉朽), 어찌(何) 고려(顧慮)하는 바(所)입니까(乎)!

무창(武昌)이 이미(既) 평정되면(定), 그(其) 군사물자(軍實)를 근거하여(據), 두 주(二州=형주/강주)를 진무하고(鎮撫), 사졸(士卒)에게 은혜(惠)를 베풀어(施), 고향에 돌아가려는 자(還者)를 고향에 간 것과 같이(如歸) 해주시면(使), 이는(此) 여몽(呂蒙)이 적(敵)을 이긴(剋) 방법(所以)입니다(也).

이와 같다면(如是), 대장군(大將軍)은 가히(可) 싸우지 않고도(不戰而) 스스로(自) 무너집니다(潰).

지금(今) 필승(必勝)의(之) 책략(策)을 놓고(釋), 편히 앉아(安坐) 위태로이 망함(危亡)을 기다린다면(以待), 지혜롭다(知計) 말할(言)수 없습(不可)니다(矣).

바라건대(願) 장군께서는(將軍) 깊이 생각해 주십시오(熟慮之)."




時敦以卓不至,慮在後為變,遣參軍樂道融苦要卓俱下。道融本欲背敦,因說卓襲之,語在融傳。卓既素不欲從敦,得道融說,遂決曰:「吾本意也。」乃與巴東監軍柳純ㆍ南平太守夏侯承ㆍ宜都太守譚該等十餘人,俱露檄遠近,陳敦肆逆,率所統致討。遣參軍司馬讚ㆍ孫雙奉表詣臺,參軍羅英至廣州,與陶侃剋期,參軍鄧騫ㆍ虞沖至長沙,令譙王承堅守。征西將軍戴若思在江西,先得卓書,表上之,臺內皆稱萬歲。武昌驚,傳卓軍至,人皆奔散。詔書遷卓為鎮南大將軍ㆍ侍中ㆍ都督荊梁二州諸軍事ㆍ荊州牧,梁州刺史如故,陶侃得卓信,即遣參軍高寶率兵下。

당시(時) 왕돈(敦)은 감탁(卓)이 도달하지(至) 않기(不)에(以), 후(後)에 변란(變)을 일으키는 것(為)을 두려워하여(慮在), 참군(參軍) 낙도융(樂道融)을 보내(遣) 힘써(苦) 요구하여(要) 감탁(卓)과 함께(俱) 내려오게 하였다(下=강을 내려감).

낙도융(道融)은 본래(本) 왕돈(敦)을 등지고자(背)하여(欲), 이로인해(因) 감탁(卓)에게 엄습하라(襲之) 유세하였는데(說), 어구(語)는 낙도융전(融傳)에 있다(在).

감탁(卓)은 이미(既) 본래(素) 왕돈(敦)을 좇고자(欲從)하지 않았는데(不), 낙도융(融)의 말(說)에 깨닫고는(得道), 마침내(遂) 결정하여(決) 말하였다(曰).


“나(吾)의 본래(本) 뜻(意)이오(也).”

이에(乃) 파동감군(巴東監軍) 유순(柳純)ㆍ남평태수(南平太守) 하후승(夏侯承)ㆍ의도태수(宜都太守) 담해(譚該) 등(等) 10여명(十餘人)과 더불어(與), 노격(露檄=격문)을 멀고 가까운 곳(遠近) 어디든(俱), 왕돈(敦)의 사역(肆逆)을 진술하며(陳), 통솔하는 사람(所統)을 인솔하여(率) 토벌하러 나섰다(致討).

참군(參軍) 사마찬(司馬讚)ㆍ손쌍(孫雙)을 보내(遣) 표문(表)을 받들어(奉), 조정(臺)에 가게 하고(詣), 참군(參軍) 나영(羅英)은 광주(廣州)에 이르어(至), 도간(陶侃)과 더불어(與) 약속(期)을 받아냈으며(剋), 참군(參軍) 등건(鄧騫)ㆍ우충(虞沖)을 장사(長沙)에 보내(至), 초왕(譙王) 사마승(承)에게 굳게 지키도록(堅守) 하였다(令).

정서장군(征西將軍) 대약사(戴若思=대연)은 강서(江西)에 있었는데(在), 앞서(先) 감탁(卓)의 서신(書)을 얻고(得), 표문(表)으로 올리니(上之), 조정(臺)의 안(內)에서는 모두(皆) 만세(萬歲)를 불렀다(稱).

무창(武昌)은 동요했고(驚), 감탁(卓)의 군사(軍)가 이른다(至) 말하니(傳), 사람(人)들은 모두(皆) 흩어졌다(奔散).

조서(詔書)를 내려 감탁(卓)을 옮겨(遷) 진남대장군(鎮南大將軍)ㆍ시중(侍中)ㆍ도독형양이주제군사(都督荊梁二州諸軍事)ㆍ형주목(荊州牧)으로 삼아(為), 양주자사(梁州刺史)는 이전(故)과 같게 하였고(如), 도간(陶侃)은 감탁(卓)의 서신(信)을 받고는(得), 즉시(即) 참군(參軍) 고보(高寶)를 보내(遣) 병사(兵)를 인솔해(率) (강을) 내려가게 하였다(下).




 卓雖懷義正,而性不果毅,且年老多疑,計慮猶豫,軍次豬口,累旬不前。敦大懼,遣卓兄子行參軍仰求和,謝卓曰:「君此自是臣節,不相責也。吾家計急,不得不爾。想便旋軍襄陽,當更結好。」時王師敗績,敦求臺騶虞幡駐卓。卓聞周顗ㆍ戴若思遇害,流涕謂仰曰:「吾之所憂,正謂今日。每得朝廷人書,常以胡寇為先,不悟忽有蕭牆之禍。且使聖上元吉,太子無恙,吾臨敦上流,亦未敢便危社稷。吾適徑據武昌,敦勢逼,必劫天子以絕四海之望。不如還襄陽,更思後圖。」即命旋軍。都尉秦康說卓曰:「今分兵取敦不難,但斷彭澤,上下不得相赴,自然離散,可一戰擒也。將軍既有忠節,中道而廢,更為敗軍將,恐將軍之下亦各便求西還,不可得守也。」卓不能從。樂道融亦日夜勸卓速下。卓性先寬和,忽便彊塞,徑還襄陽,意氣騷擾,舉動失常,自照鏡不見其頭,視庭樹而頭在樹上,心甚惡之。其家金櫃鳴,聲似槌鏡,清而悲。巫云:「金櫃將離,是以悲鳴。」主簿何無忌及家人皆勸令自警。卓轉更很愎,聞諫輒怒。方散兵使大佃,而不為備。功曹榮建固諫,不納。襄陽太守周慮等密承敦意,知卓無備,詐言湖中多魚,勸卓遣左右皆捕魚,乃襲害卓于寢,傳首於敦。四子散騎郎蕃等皆被害。太寧中,追贈驃騎將軍,謚曰敬。

감탁(卓)은 비록(雖) 정의(義正)를 품었으나(懷), 하지만(而) 성품(性)은 과감하고(果) 굳세지(毅) 못하고(不), 또한(且) 나이가 많아(年老) 의심(疑)이 많으니(多), 생각하면서(計慮) 유예(猶豫=시일을 늦춤)하니, 군(軍)은 저구(豬口)에 거처를 두고(次), 수십일(累旬)동안 나아가지(前) 않았다(不).

왕돈(敦)이 크게 두려워하여(大懼), 감탁(卓)의 조카(兄子)인 행참군(行參軍) 감앙(仰)을 보내(遣) 화해를(和) 구하며(求), 감탁(卓)에게 사죄하며(謝) 말하였다(曰).

“군(君)께서 이러는 것은(此) 스스로(自) 신하(臣)의 절개(節)를 지키는 것이니(是), 서로(相) 책망(責)할수 없(不)소(也). 우리(吾) 집안(家)의 위급함(急)을 헤아리면(計), 부득이 하게 그럴 수밖에 없소(不得不爾). 생각건대(想) 바로(便) 군사(軍)를 양양(襄陽)으로 돌리면(旋), 마땅히(當) 다시(更) 우호(好)를 맺어야 하오(結).”

당시(時) 왕군(王師)은 패하여(敗績), 왕돈(敦)은 조정(臺)의 추우번(騶虞幡)을 구하여(求) 감탁(卓)을 멈추었다(駐).

감탁(卓)은 주의(周顗)ㆍ대약사(戴若思=대연)이 살해당했다(遇害) 듣고(聞), 눈물을 흘리며(流涕) 감앙(仰)에게 이르어(謂) 말하였다(曰).

“나(吾)의(之) 걱정은(所憂), 바로(正) 오늘과 같은(今日) 일이었다(謂). 매번(每) 조정사람(朝廷人)의 서신(書)을 받으면(得), 항상(常) 오랑캐(胡寇)를(以) 우선시(先) 하라(為)했는데, 소장지화(蕭牆之禍=내란)이 갑자기(忽) 있음(有) 깨닫지 못했다(不悟). 또한(且) 성상(聖上)께서는(使) 원길(元吉=자치통감에선 아무일도 없으시다고 함)하시고, 태자(太子)께서도 탈(恙)이 없으신데(無), 내가(吾) 왕돈(敦)을 상류(上流=무창)에 보낸다면(臨), 또한(亦) 감히(敢) 문득(便) 사직(社稷)을 위태롭게(危)하지는 않을 것이다(未). 나(吾) 지름길로(徑) 가(適) 무창(武昌)을 점거하면(據), 왕돈(敦)의 형세(勢)는 핍박(逼)받아, 반드시(必) 천자(天子)를 협박해(劫) 이로서(以) 사해(四海=천하)의(之) 희망(望)을 끊을 것이다(絕). 양양(襄陽)으로 돌아가(還), 다시(更) 생각하며(思) 훗날(後)을 꾀함(圖)만 못하다(不如).”

즉시(即) 군(軍)을 돌리도록(旋) 명하였다(命).

도위(都尉) 진강(秦康)은 감탁(卓)에게 유세하여(說) 말하였다(曰).

“지금(今) 군사를 나누면(分兵) 왕돈(敦)을 취하긴(取) 어렵지 않으니(不難), 오직(但) 팽택(彭澤)만 끊으면(斷), 상류와 하류(上下)는 서로 나아가지(相赴) 못하며(不得), 자연히(自然) 흩어질 것이니(離散), 한번 싸워(一戰) 사로는 게(擒) 가능(可)합니다(也). 장군(將軍)은 이미(既) 충절(忠節)이 있는데(有), 중도(中道)에(而) 그만두는 것은(廢), 다시(更) 장군(軍將)을 해칠 것이며(為敗), 장군(將軍)의(之) 아랫사람(下)들은 또한(亦) 두려워(恐) 각각(各) 문득(便) 서쪽으로 돌아가는 것(西還)을 청할 테고(求), 지킬(守)수 없을(不可得) 것입니다(也).”

감탁(卓)은 좇지(從) 않았다(不能).

낙도융(樂道融) 역시(亦) 하루밤(日夜)동안 감탁(卓)에게 빠르게(速) (강을) 내려가라(下) 권했다(勸).

감탁(卓)의 성품(性)은 예전엔(先) 너그럽고 온화했는데(寬和), 돌연(忽) 강압적이고(彊) 막힌 사람(塞)으로 변해(便), 지름길로(徑) 양양(襄陽)으로 돌아왔는데(還), 의기(意氣)가 복잡하였고(騷擾), 거동(舉動)이 보통때와 다르니(失常), 거울(照鏡)에서(自) 그(其) 머리(頭)가 보이지(見) 않으니(不), 뜰의 나무(庭樹)를 보게(視) 되면(而) 머리가(頭) 나무(樹) 위(上)에 있으니(在), 마음(心)이 심히(甚) 두려워하였다(惡之).

그(其) 집안(家)에서 금궤(金櫃)가 울었는데(鳴), 소리(聲)가 망치로 거울을 때린 것(槌鏡) 같으니(似), 고요하고 슬펐다(清而悲).

무당(巫)이 말하였다(云).

"금궤가 장차 갈라지려고 하기 때문에(金櫃將離), 슬피 우는 것입니다(是以悲鳴)."

주부(主簿) 하무기(何無忌)와(及) 집안 사람(家人) 모두(皆) 스스로(自) 방비(警) 하라(令) 권했다(勸).

감탁(卓)은 오히려(轉) 더욱(更) 말을 듣지 않고(很愎), 간언(諫)을 들으면(聞) 번번이(輒) 화를 냈다(怒).

병사(兵使)를 흩어(方散) 농사를 짓게 하였고(大佃), 그리고(而) 방비(備) 하지(為) 않았다(不).

공조(功曹) 영건(榮建)이 굳게(固) 간했지만(諫), 받아들이지 않았다(不納).

양양태수(襄陽太守) 주려(周慮) 등(等)이 은밀히(密) 왕돈(敦)의 뜻(意)을 받들어(承), 감탁(卓)의 방비(備)가 없음(無)을 알고(知), 호수(湖)에(中) 물고기(魚)가 많다(多)고 속여서 말하며(詐言), 감탁(卓)의 좌우(左右=측근) 모두(皆)를 보내(遣) 물고기(魚)를 잡도록(捕) 권하고(勸), 이에(乃) 감탁(卓)을 침실(寢)에서(于) 습격해 살해하여(襲害), 수급(首)을 왕돈(敦)에게(於) 보냈다(傳).

4남(四子) 산기랑(散騎郎) 감번(蕃) 등(等)은 모두(皆) 살해당했다(被害).

태녕(太寧) 중(中)에, 표기장군(驃騎將軍)을 추증하고(追贈), 시호(謚)를 경(敬)이라 했다(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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