浚字彭祖。母趙氏婦,良家女也,貧賤,出入沈家,遂生浚,沈初不齒之。年十五,沈薨,無子,親戚共立浚為嗣,拜駙馬都尉。太康初,與諸王侯俱就國。三年來朝,除員外散騎侍郎。元康初,轉員外常侍,遷越騎校尉、右軍將軍。出補河內太守,以郡公不得為二千石,轉東中郎將,鎮許昌。

 

왕준은 자가 팽조이다. 어머니인 조씨는 양가의 딸이었는데 빈천하여 왕침의 집안을 출입하다가 마침내 왕준을 낳게 되었다. 왕침은 처음부터 왕준을 천시하였다. 15세에 왕침이 죽고 아들이 없자 친척들이 더불어 왕준을 후사로 삼도록 하였으며 부마도위에 임명하였다. 태강 연간 초에 제후들과 더불어 봉국으로 갔다. 태강 3년 조정에 들어왔고 원외산기시랑에 임명하였다. 원강 연간 초에 원외상시로 옮겼다가 월기교위, 우군장군에 임명되었다. 나가서 하내태수에 보해졌다가 군공은 2000석의 관리를 할 수 없기에 동중랑장에 임명되어 허창에 진수하였다.

 

  及愍懷太子幽于許昌,浚承賈后旨,與黃門孫慮共害太子。遷寧北將軍、青州刺史。尋徙寧朔將軍、持節、都督幽州諸軍事。于時朝廷昏亂,盜賊蜂起,浚為自安之計,結好夷狄,以女妻鮮卑務勿塵,又以一女妻蘇恕延。

 

민회태자가 허창에 유폐되는데 이르러 왕준은 가태후의 뜻을 받들어 황문 손려와 더불어 태자를 해쳤다. 녕북장군, 청주자사로 옮겼다. 얼마후 녕삭장군, 지절, 도독유주제군사로 옮겼다. 당시에 조정이 혼란하고 도적이 봉기하였는데 왕준은 스스로 안전할 계책으로 이적과 좋은 관계를 맺었는데 딸을 선비족의 무물진에게 시집보내고 다시 한 명의 딸을 소서연에게 시집보냈다.

 

  及趙王倫篡位,三王起義兵,浚擁眾挾兩端,遏絕檄書,使其境內士庶不得赴義,成都王穎欲討之而未暇也。倫誅,進號安北將軍。及河間王顒、成都王穎興兵內向,害長沙王乂,而浚有不平之心。穎表請幽州刺史石堪為右司馬,以右司馬和演代堪,密使演殺浚,並其眾。演與烏丸單于審登謀之,於是與浚期游薊城南清泉水上。薊城內西行有二道,演浚各從一道。演與浚欲合鹵簿,因而圖之。值天暴雨,兵器沾濕,不果而還。單于由是與其種人謀曰:「演圖殺浚,事垂克而天卒雨,使不得果,是天助浚也。違天不祥,我不可久與演同。」乃以謀告浚。浚密嚴兵,與單于圍演。演持白幡詣浚降,遂斬之,自領幽州。大營器械,召務勿塵,率胡晉合二萬人,進軍討穎。以主溥祁弘為前鋒,遇穎將石超于平棘,擊敗之。浚乘勝遂克鄴城,士眾暴掠,死者甚多。鮮卑大略婦女,浚命敢有挾藏者斬,於是沉于易水者八千人。黔庶荼毒,自此始也。

 

조왕 사마륜이 제위를 찬탈하는데 이르러 3왕이 의병을 일으켰는데 왕준은 군대를 거느리고 쌍방의 눈치를 보면서 격문을 (중간에서) 끊어 경내의 백성들이 의병에 달려가 자원할 수 없도록 하였다. 성도왕 사마영은 왕준을 토벌하려고 하였으나 그럴 겨를이 없었다. 사마륜이 주살당하고 안북장군으로 진호하였다. 하간왕 사마옹과 성도왕 사마영이 군사를 일으켜 낙양을 향하고 장사왕 사마예를 죽이자 왕준은 불평의 마음을 품었다. 사마영은 표를 올려 유주자사 석감을 우사마로 삼고자 청했는데 우사마 화연으로 석감을 대체하였다. 몰래 화연을 시켜 왕준을 죽이고 그 무리를 병탄하라고 하였다. 화연은 오환의 선우인 심등과 더불어 이를 모의하여 이에 왕준과 더불어 계성의 남쪽인 청천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계성에서 서쪽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었는데 화연과 왕준은 각각 하나의 길을 갔다. 화연은 왕준과 의장(儀仗:鹵簿)에서 만나 일을 도모하려고 하였다. 하늘에 폭우가 내려서 병기가 젖었기 때문에 결과도 없이 돌아와야 했다. 선우는 이로부터 그 종족의 사람들과 모의하여 말하길 :「화연은 왕준의 살해를 도모하였는데 일이 거의 완성되려는 때에 하늘이 갑자기 비를 내려 결과를 내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왕준을 돕는 것이다. 하늘의 뜻을 어기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니 나는 화연과 더불어 오래할 수 없다. 」하고는 마침내 왕준에게 모의를 알려줬다. 왕준은 몰래 계엄령을 내리고 선우와 더불어 화연을 포위했다. 화연은 백기를 들고 왕준에게 이르러 항복했는데 마침내 (왕준은) 화연을 참수하고 스스로 유주를 점거하였다. 군사용 기계를 대규모로 건조하고 무물진을 불러 호족과 진인을 합쳐 2만명의 군대를 진군시켜 사마영을 토벌하도록 하였다. 주부 기홍을 전봉으로 하여 사마영의 장수 석초를 평극에서 만났는데 이를 격패시켰다. 왕준은 승기를 타서 마침내 업성을 함락시켰는데 병사들이 난폭하게 약탈하여 죽은 사람이 아주 많았다. 선비족들이 부녀를 크게 약탈하였는데 왕준은 명령을 내려 감히 부녀를 숨기는 사람이 있거든 참수에 처한다고 하였기에 역수에 뛰어들어 죽은 사람이 8000명이나 되었다. 백성들이 해악을 입는 것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浚還薊,聲實益盛。東海王越將迎大駕,浚遣祁弘率烏丸突騎為先驅。惠帝旋洛陽,轉浚驃騎大將軍、都督東夷河北諸軍事,領幽州刺史,以燕國增博陵之封。懷帝即位,以浚為司空,領烏丸校尉,務勿塵為大單于。浚又表封務勿塵遼西郡公,其別部大飄滑及其弟渴末別部大屠甕等皆為親晉王。

 

왕준이 계로 돌아오고 나서 명성과 실력이 더욱 강성해졌다. 동해왕 사마월이 장차 황제를 영접코자하니 왕준은 기홍을 보내 오환의 돌격기병을 이끌고 선봉에 서도록 하였다. 혜제가 낙양으로 돌아와서는 왕준을 표기대장군, 도독동이하북제군사, 령 유주자사에 임명하고 연국을 박릉에 더하여 봉했다. 회제가 즉위하고 왕준을 사공, 령 오환교위로 삼고 무물진을 대선우로 임명하였다. 왕준은 또한 표를 올려 무물진을 요서군공에, 그의 부속 대표활과 그 동생 갈말의 부속인 대도옹 등을 모두 친진왕에 봉하도록 하였다.

 

  永嘉中,石勒寇冀州,浚遣鮮卑文鴦討勒,勒走南陽。明年,勒復寇冀州,刺史王斌為勒所害,浚又領冀州。詔進浚為大司馬,加侍中、大都督、督幽冀諸軍事。使者未及發,會洛京傾覆,浚大樹威令,專征伐,遣督護王昌、中山太守阮豹等,率諸軍及務勿塵世子疾陸眷,並弟文鴦、從弟末柸,攻石勒于襄國,勒率眾來距,昌逆擊敗之。末柸逐北入其壘門,為勒所獲。勒質末柸,遣間使來和,疾陸眷遂以鎧馬二百五十匹、金銀各一簏贖末柸,結盟而退。

 

영가 연간에 석륵이 기주를 노략질하니 왕준이 선비인 문앙을 보내 석륵을 토벌했는데 석륵은 남양으로 도망쳤다. 다음해에 석륵이 다시 기주를 노략질하고 자사 왕빈을 죽였는데 왕준이 또한 기주를 다스리게 되었다. 조서를 내려 왕준을 대사마로 임명하고 시중, 대도독, 독유기제군사를 더하였다. 사자가 출발하지도 않았는데 낙양이 함락되었다. 왕준은 위령을 세우고 정벌을 오롯이 하여 도독 왕창, 중산태수 완표 등을 보내 군대를 이끌고 무물진의 세자 질육권, 동생 문앙, 종제 말배와 더불어 석륵을 양국에서 공격토록 하였는데 석륵은 무리를 이끌고 저항하였으나 왕창이 반대로 격패시켰다. 말배는 쫓아서 북쪽으로 그 첩문에 들어갔다가 석륵에게 사로잡혔다. 석륵은 말배를 인질로 삼고 밀사를 보내 화친을 구하니 질육권은 마침내 전마 250필, 금은 각 한상자로 말배의 몸값을 치르고 결맹을 맺은 이후에 퇴군하였다.

 

  其後浚佈告天下,稱受中詔承制,乃以司空荀籓為太尉,光祿大夫荀組為司隸,大司農華薈為太常,中書令李絙為河南尹。又遣祁弘討勒,及于廣宗。時大霧,弘引軍就道,卒與勒遇,為勒所殺。由是劉琨與浚爭冀州。琨使宗人劉希還中山合眾,代郡、上谷、廣寧三郡人皆歸於琨。浚患之,遂輟討勒之師,而與琨相距。浚遣燕相胡矩督護諸軍,與疾陸眷並力攻破希。驅略三郡士女出塞,琨不復能爭。

 

그후에 왕준은 천하에 포고하며 조서의 뜻을 받든다고 칭하며 마침내 사공 순번을 태위로 광록대부 순조를 사례로 대사농 화회를 태상으로 중서령 이환을 하남윤으로 임명하였다. 또한 기홍을 보내 석륵을 토벌하였는데 광종에 이르렀다. 당시에 안개가 많이 껴서 기홍이 군대를 이끌고 도로에 들어섰는데 창졸간에 석륵과 만나 석륵에게 살해당했다. 이로부터 유곤과 왕준이 기주를 쟁탈하였다. 유곤이 종족중의 유희를 시켜 중산으로 돌아와 무리를 모으게 하니 대군, 상곡, 광녕 3군의 사람들이 모두 유곤에게 귀의하였다. 왕준은 이를 걱정하여 마침내 석륵을 토벌하던 군대를 철수시키고 유곤과 더불어 대치하였다. 왕준은 연상 호구로 하여금 군대를 지휘하면서 질육권과 힘을 합쳐 유희를 공파하게 하였다. (이후에) 3군의 백성들을 몰아서 새외로 나가게 하니 유곤은 다시 다툴 수 없었다. .

 

  浚還,欲討勒,使棗嵩督諸軍屯易水,召疾陸眷,將與之俱攻襄國。浚為政苛暴,將吏又貪殘,並廣占山澤,引水灌田,漬陷塚墓,調發殷煩,下不堪命,多叛入鮮卑。從事韓咸切諫,浚怒,殺之。疾陸眷自以前後違命,恐浚誅之。勒亦遣使厚賂,疾陸眷等由是不應召。浚怒,以重幣誘單于猗盧子右賢王日律孫,令攻疾陸眷,反為所破。

 

왕준이 돌아오고 석륵을 토벌하고자 조숭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역수에 주둔하고 질육권을 불러 장차 더불어 양국을 공격하고자 하였다. 왕준은 정치를 하는데 있어 가혹하고 관리들 역시 탐욕스럽고 잔인하여 더불어 산택을 널리 점유하고 물을 이끌어 논에다 대며 분묘를 훼손하고 징발이 빈번해 백성들이 감당할 수 없었기에 많이 선비로 도망쳤다. 종사 한함이 간절하게 간언했지만 왕준은 노하여 그를 죽였다. 질육권은 스스로 전후로 명령을 어긴 것 때문에 왕준이 그를 죽일 것이 두려웠다. 석륵 또한 사절을 보내 두텁게 뇌물을 바쳤기에 질육권 등은 이로부터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왕준은 노하여 두터운 재물로 선우 의로와 아들인 우현왕 일률손을 유혹하여 질육권을 공격하도록 명했으나 오히려 격파당했다.

 

  時劉琨大為劉聰所迫,諸避亂遊士多歸於浚。浚日以強盛,乃設壇告類,建立皇太子,備置眾官。浚自領尚書令,以棗嵩、裴憲並為尚書,使其子居王宮,持節,領護匈奴中郎將,以妻舅崔毖為東夷校尉。又使嵩監司冀並兗諸軍事、行安北將軍,以田徽為兗州,李惲為青州。惲為石勒所殺,以薄盛代之。

 

당시에 유곤은 유총에게 쫓겨 피난하는 사람들이 많이 왕준에게 귀의하였다. 왕준은 날로 강성해졌기에 마침내 단을 세우고 상제에게 제사를 지낸 후 황태자를 세우고 뭇 관직을 구비하였다. 왕준은 스스로 령 상서령이되고 조숭, 배헌을 더불어 상서로 삼았으며 그의 아들로 하여금 왕궁에 거하고 지절, 령 호흉노중랑장으로 임명했으며 처남 최비를 동이교위로 삼았다. 또 조숭으로 하여금 감사기병연제군사, 행 안북장군으로 삼고 전휘를 연주자사에 이운를 청주자사에 임명했다. 이운이 석륵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에 박성으로 대신하였다.

 

  浚以父字處道,為「當塗高」應王者之讖,謀將僭號。胡矩諫浚,盛陳其不可。浚忿之,出矩為魏郡守。前渤海太守劉亮、從子北海太守搏、司空掾高柔並切諫,浚怒,誅之。浚素不平長史燕國王悌,遂因他事殺之。時童謠曰:「十囊五囊入棗郎。」棗嵩,浚之子婿也。浚聞,責嵩而不能罪之也。又謠曰:「幽州城門似藏戶,中有伏屍王彭祖。」有狐踞府門,翟雉入聽事。時燕國霍原,北州名賢,浚以僭位事示之,原不答,浚遂害之。由是士人憤怨,內外無親。以矜豪日甚,不親為政,所任多苛刻;加亢旱災蝗,士卒衰弱。

 

왕준은 아버지의 자가 처도(處道)라는 것이 ‘당도고(當塗高)가 응당 왕이 되리라’는 예언이라 받아들여 장차 제위를 참칭하려고 모의하였다. 호구는 왕준에게 간언하며 그 불가함을 강력하게 진술하였다. 왕준은 분노하여 호구를 위군수로 내보냈다. 이전의 발해태수 유량, 종자 북해태수 왕박, 사공연 고유는 더불어 간절하게 간언했지만 왕준은 분노하여 죽였다. 왕준은 평소부터 연국의 장사 왕제를 싫어했기에 마침내 다른 일을 핑계 삼아 죽였다. 당시의 동요에 이르길 :「10개의 주머니든 5개의 주머니든 조랑의 주머니로 들어온다.」라 하였는데 조숭은 왕준의 사위였다. 왕준은 이를 들고 조숭을 책망했으나 처벌할 수는 없었다. 또 동요에 이르길 :「유주의 성문은 마치 창고의 문과 같아 그 가운데 시체가 있으니 왕팽조다.」라 하였다. 여우가 부문에 걸터앉은 경우가 있었는가 하면 꿩이 청사에 날아 들어온 적도 있었다. 당시 연국에 곽원이라는 북주의 명 현자가 있어 왕준이 참위의 일로 상의하였으나 곽원이 대답하지 않으니 왕준은 마침내 그를 죽였다. 이로부터 선비들이 분노와 원한을 품어 내외에서 친근한 사람이 없었다. 교만과 전횡이 날로 심해 정무에 신경을 쓰지 않고 가혹한 조치를 많이 내린데다 큰 가뭄과 메뚜기 떼로 말미암아 사졸들이 쇠약해졌다.

 

  浚之承制也,參佐皆內敘,唯司馬遊統外出。統怨,密與石勒通謀。勒乃詐降于浚,許奉浚為主。時百姓內叛,疾陸眷等侵逼。浚喜勒之附己,勒遂為卑辭以事之。獻遺珍寶,使驛相繼。浚以勒為誠,不復設備。勒乃遣使克日上尊號於浚,浚許之。

 

왕준이 황제의 뜻을 받들어 관리를 임명할 때 모두 궁내의 직함이었고 오직 사마 유통만이 밖으로 나갔다. 유통은 원한을 품고 몰래 석륵과 더불어 모의하였다. 석륵은 마침내 왕준에게 가짜 항복하여 왕준을 주군으로 받들기로 허락했다. 당시에 백성들이 내부에서 반기를 들고 질육권 등은 침범해 핍박해오고 있었다. 왕준은 석륵이 자기에게 귀부한 것을 기뻐하였고 석륵은 마침내 겸손한 말로 왕준을 받들며 진귀한 보물을 헌상하고 사절이 서로 잇달아 왕래하도록 하였다. 왕준은 석륵이 진실로 항복하리라 여기고 다시 대책을 준비하지 않았다. 석륵은 마침내 사절을 보내 날짜를 정해 왕준으로 하여금 존호에 오르라고 하였고 왕준은 이를 허락하였다.

 

  勒屯兵易水,督護孫緯疑其詐,馳白浚,而引軍逆勒。浚不聽,使勒直前。眾議皆曰:「胡貪而無信,必有詐,請距之。」浚怒,欲斬諸言者,眾遂不敢復諫。盛張設以待勒。勒至城,便縱兵大掠。浚左右復請討之,不許。及勒登聽事,浚乃走出堂皇,勒眾執以見勒。勒遂與浚妻並坐,立浚於前。浚罵曰:「胡奴調汝公,何凶逆如此!」勒數浚不忠於晉,並責以百姓餒乏,積粟五十萬斛而不振給。遂遣五百騎先送浚于襄國,收浚麾下精兵萬人,盡殺之。停二日而還,孫緯遮擊之,勒僅而得免。勒至襄國,斬浚,而浚竟不為之屈,大罵而死。無子。

 

석륵은 역수에 군대를 주둔시켰는데 독호 손위는 그 속임수를 의심하여 달려가 왕준에게 말하고는 군대를 이끌고 석륵을 방어하라고 권했다. 왕준은 듣지 않고 석륵으로 하여금 곧바로 앞으로 나올 수 있게 하였다. 무리들이 의논하여 모두 말하길 :「오랑캐는 탐욕스럽고 신용이 없으니 반드시 속임수가 있을 것이므로 청컨대 막으시기 바랍니다.」라 하였다가 왕준이 분노하여 말하는 사람들을 베고자 하니 무리들이 마침내 다시 감히 간언하지 못했다. 성대하게 자리를 차리고 석륵을 기다리고 있었다. 석륵이 성에 이르자 바로 병사들을 풀어 크게 노략질하였다. 왕준의 좌우에서 다시 토벌할 것을 청했지만 허락하지 않았다. 석륵이 청사에 오르자 왕준은 마침내 당에서 도망쳤으나 석륵의 무리가 잡아서 석륵 앞에 대령하였다. 석륵은 마침내 왕준의 처와 더불어 앉고는 왕준을 앞에 서있도록 하였다. 왕준은 욕하여 말하길 :「오랑캐 노복 따위가 주인을 속여? 이토록 흉역할 수가 있는가!」하니 석륵은 왕준이 진 왕조에게 불충한 일을 나열하며 더불어 백성들을 궁핍에 빠지게 만들고도 쌓인 곡식 50만곡을 진휼에 사용하지 않은 것을 탓했다. 마침내 500명의 기병을 보내 먼저 왕준을 양국으로 호송하도록 하고는 왕준 휘하의 정병 1만명을 거둬들여 모두 죽였다. 이틀 머물고 돌아갔는데 손위의 무리가 이를 격파하니 석륵은 겨우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석륵이 양국에 이르러 왕준을 참수하였는데 왕준은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크게 욕하다 죽었다. (왕준은) 아들이 없었다.

 

  太元二年,詔興滅繼絕,封沈從孫道素為博陵公。卒,子崇之嗣。義熙十一年,改封東莞郡公。宋受禪,國除。

 

태원 2년 조서를 내려 끊어진 것을 잇도록 하여 왕침의 종손인 왕도소를 박릉공에 봉했다. 죽고 나서 아들인 왕숭이 자리를 이었다. 의희 11년 동완군공으로 바꿔 봉했다. 송나라가 선양을 받은 이후 봉국이 제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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