楊駿,字文長,弘農華陰人也。少以王官為高陸令,驍騎、鎮軍二府司馬。後以后父超居重位,自鎮軍將軍遷車騎將軍,封臨晉侯。識者議之曰:「夫封建諸侯,所以籓屏王室也。后妃,所以供粢盛,弘內教也。后父始封而以臨晉為侯,兆於亂矣。」尚書褚䂮、郭奕並表駿小器,不可以任社稷之重。武帝不從。帝自太康以後,天下無事,不復留心萬機,惟耽酒色,始寵后黨,請謁公行。而駿及珧、濟勢傾天下,時人有「三楊」之號。

 

양준은 자가 문장으로 홍농 화음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왕관의 신분으로 고릉령, 효기,진군 2부의 사마를 지냈다. 이후에는 황후의 아버지라는 이유로 중임을 맡았는데 진군장군에서 거기장군으로 옮기고 임진후에 봉해졌다. 식자들이 의논하여 이르길 「무릇 봉건의 제후는 왕실의 울타리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후비는 제사지내는 용품을 마련하고 아내의 도리를 홍양하는 사람이다. 황후의 아버지가 처음 임진후에 봉해졌으니 난리의 조짐이다.」상서 저약, 곽혁은 더불어 표를 올려 양준은 그릇이 작기 때문에 사직의 중임을 맡을 수 없다고 하였다. 무제는 따르지 않았다. 황제는 태강연간 이후부터 천하에 일이 없으므로 다시는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주색에 빠져 지냈는데 비로소 후비의 무리를 총애하여 청탁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양준과 양요, 양제의 권세가 천하를 기울였는데 당시의 사람들 사이에 3양(三楊)이라는 칭호가 있었다.

 

  及帝疾篤,未有顧命,佐命功臣,皆已沒矣,朝臣惶惑,計無所從。而駿盡斥群公,親侍左右。因輒改易公卿,樹其心腹。會帝小間,見所用者非,乃正色謂駿曰:「何得便爾!」乃詔中書,以汝南王亮與駿夾輔王室。駿恐失權寵,從中書借詔觀之,得便藏匿。中書監華廙恐懼,自往索之,終不肯與。信宿之間,上疾遂篤,后乃奏帝以駿輔政,帝頷之。便召中書監華暠、令何劭,口宣帝旨使作遺詔,曰:「昔伊望作佐,勳垂不朽;周霍拜命,名冠往代。侍中、車騎將軍、行太子太保,領前將軍楊駿,經德履吉,鑒識明遠,毗翼二宮,忠肅茂著,宜正位上臺,擬跡阿衡。其以駿為太尉、太子太傅、假節、都督中外諸軍事,侍中、錄尚書、領前將軍如故。置參軍六人、步兵三千人、騎千人,移止前衛將軍珧故府。若止宿殿中宜有翼衛,其差左右衛三部司馬各二十人、殿中都尉司馬十人給駿,令得持兵仗出入。」詔成,后對廙、劭以呈帝,帝親視而無言。自是二日而崩,駿遂當寄託之重,居太極殿。梓宮將殯,六宮出辭,而駿不下殿,以武賁百人自衛。不恭之跡,自此而始。

 

황제의 병이 위독한데 이르러 고명대신이 없었는데 왕조를 개창하는데 도움을 준 공신들도 모두 이미 죽었으므로 조정의 신하들이 당황하여 어떻게 할 줄 몰랐다. 양준은 여러 신하들을 모두 배척하고 친히 황제의 신변에서 보살폈다. 이로 인해 문득 공경을 바꿔 자기의 심복을 심어놓았다. 황제의 병이 약간 나아지고 임용한 사람들이 적당하지 않음을 보고는 마침내 정색하며 양준에게 말하길 「어찌 이렇게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말인가!」하고는 곧 중서에 조서를 내려 여남왕 사마량과 양준이 더불어 왕실을 보좌하도록 하였다. 양준은 권세와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중서로부터 조서를 빌려 보고는 바로 숨겨버렸다. 중서감 화이가 두려워 스스로 가서 찾았으나 끝내 주지 않았다. 이틀간에 황제의 병이 더욱 위독해졌고 황후는 마침내 황제에게 양준을 보정으로 삼아달라고 주청하니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중서감 화이, 중서령 하소를 불러 구두로 황제의 뜻을 선포하여 유조를 짓도록 하였는데 이르길 「옛날 이윤과 강망은 보좌한 공훈이 불후하고 주발과 곽광은 명령을 받들어 명성이 왕대에 으뜸이었다. 시중, 거기장군, 행 태자태보, 령 전장군 양준은 덕성과 재능이 있고 견식이 심원한데다 동궁을 보좌하며 충성과 공경이 현저하므로 응당 그 지위를 바로 하여 3공으로 해 재상에 준하도록 한다. 양준을 태위, 태자태부, 가절, 도독중외제군사로 삼고 시중, 녹상서, 령 전군장군은 이전과 같이한다. 참군 6인, 보병 3000인, 기병 1000인을 설치하고 전 위장군 양요의 부로 옮기도록 한다. 만약 궁전에 머문다면 응당 시위가 있어야 하므로 좌우위의 삼부사마를 파견하여 각 20인, 전중도위사마 10인을 양준에게 주어 병장기를 지니고 출입할 수 있도록 한다.」조서가 완성되고 황후는 화이와 하소로 하여금 황제에게 보이도록 하였는데 황제는 친히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로부터 2일 뒤에 황제가 죽었는데 양준은 마침내 부탁받은 중임으로 말미암아 태극전에 거하였다. 황제를 장사지낼 때 6궁이 모두 전별하러 나갔지만 양준은 태극전에서 나오지 않은 채 무사 100명으로 자신을 지켰다. 불경한 흔적은 이로부터 시작하였다.

 

  惠帝即位,進駿為太傅、大都督、假黃鉞,錄朝政,百官總己。慮左右間己,乃以其甥段廣、張劭為近侍之職。凡有詔命,帝省訖,入呈太后,然後乃出。駿知賈后情性難制,甚畏憚之。又多樹親黨,皆領禁兵。於是公室怨望,天下憤然矣。駿弟珧、濟並有俊才,數相諫止,駿不能用,因廢於家。駿暗于古義,動違舊典。武帝崩未逾年而改元,議者咸以為違《春秋》逾年書即位之義。朝廷惜於前失,令史官沒之,故明年正月復改年焉。

 

혜제가 즉위하고 양준을 태부, 대독, 가황월로 승진시켜 조정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고 백관을 통솔하였다. 양준은 좌우가 자신을 이간질할까봐 마침내 외조카인 단광과 장소로 하여금 근시의 직무를 맡도록 하였다. 무릇 조명은 황제가 친히 보고 나서 태후에게 보이고 연후에야 나갈 수 있었다. 양준은 가황후의 성정이 제어하기 어려운 것을 알고 심히 두려워하고 꺼렸다. 또한 넓게 친당을 수립하고 모두 금병을 통솔하게 하였다. 이에 종실이 원망을 품고 천하가 분노하였다. 양준의 동생인 양요와 양제는 더불어 훌륭한 재주가 있었는데 수차례 서로 간언하여 멈추고자 하자 양준은 집에서 폐하여 임용하지 않았다. 양준은 고대의 의례에 어두워 움직이는 족족 전장에 어긋났다. 무제가 죽고 해가 지나지 않았는데 연호를 바꿨으므로 의논하는 자들은 모두 춘추의 해가 지나고 나서야 즉위를 기록하는 뜻에 어긋난다고 여겼다. 조정에서는 이전의 실수를 안타까워하여 사관으로 하여금 덮어버리라고 하였으므로 다음해 정월에 다시 연호를 고쳤다.

 

  駿自知素無美望,懼不能輯和遠近,乃依魏明帝即位故事,遂大開封賞,欲以悅眾,為政嚴碎,愎諫自用,不允眾心。馮翊太守孫楚素與駿厚,說之曰:「公以外戚,居伊霍之重,握大權,輔弱主。當仰思古人至公至誠謙順之道。于周則周召為宰,在漢則硃虛、東牟,未有庶姓專朝,而克終慶祚者也。今宗室親重,籓王方壯,而公不與共參萬機,內懷猜忌,外樹私昵,禍至無日矣。」駿不能從。弘訓少府蒯欽,駿之姑子。少而相昵,直亮不回,屢以正言犯駿,珧、濟為之寒心。欽曰:「楊文長雖暗,猶知人之無罪不可妄殺,必當疏我。我得疏外,可以不與俱死。不然,傾宗覆族,其能久乎!」

 

양준은 스스로 본래 아무런 아름다운 명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원근의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마침내 위 명제가 즉위한 고사를 따라 대규모 논공행상을 하여 무리들을 기뻐하게 하고자 하였으나 정치하는 것이 엄격하고 세세하며 강퍅하여 자기 마음대로 하는 성격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풍익태수 손초는 본래부터 양준과 잘 지냈는데 그에게 말하길 「공은 외척의 신분으로 이윤, 곽광의 중직에 처해 조정의 대권을 장악하여 약한 군주를 보좌하고 있습니다. 응당 옛날 사람의 지극히 공정하고 지극히 성실한 겸양의 도리를 따를 것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주나라에는 주공과 소공이 재상의 업무를 맡고 한나라에는 주허와 동모가 있었으나 외척이 조정을 전권하여 끝내 성공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지금 종실의 황친들에게 권력이 중하고 지방의 번왕들이 강성한데 공께서는 그들과 더불어 정치를 상의하지 않고 안으로 질투의 감정을 품고 밖으로 사사로운 친당을 세우니 재앙이 곧 닥칠 것입니다.」양준은 따르지 못했다. 홍훈소부 괴흠은 양준의 고모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서로 친했는데 올곧아 돌려 말하지 않아 누차 올바른 말로 양준을 범하니 양요와 양제도 그 때문에 마음이 서늘하였다. 괴흠이 말하길 「양문장이 비록 어리석기는 하지만 오히려 죄가 없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응당 나를 소원하게 대할 것이다. 나는 그와 소원해 지겠지만 더불어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종족이 뒤엎어지는데 어찌 능히 오래갈 수 있겠는가!」

 

  殿中中郎孟觀、李肇,素不為駿所禮,陰構駿將圖社稷。賈后欲預政事,而憚駿未得逞其所欲,又不肯以婦道事皇太后。黃門董猛,始自帝之為太子即為寺人監,在東宮給事于賈后。后密通消息於猛,謀廢太后。猛乃與肇、觀潛相結托。賈后又令肇報大司馬、汝南王亮,使連兵討駿。亮曰:「駿之兇暴,死亡無日,不足憂也。」肇報楚王瑋,瑋然之。於是求入朝,駿素憚瑋,先欲召入,防其為變,因遂聽之。及瑋至,觀、肇乃啟帝,夜作詔,中外戒嚴,遣使奉詔廢駿,以侯就第。東安公繇率殿中四百人隨其後以討駿。段廣跪而言於帝曰:「楊駿受恩先帝,竭心輔政。且孤公無子,豈有反理?願陛下審之。」帝不答。

 

전중중랑 맹관과 이조는 본래 양준에게 대우받지 못했기에 몰래 양준이 사직을 도모한다고 날조하였다. 가황후가 정사에 참여하고 싶었으나 양준을 두려워하여 그 욕망을 드러내지 않았고 또한 며느리의 도리로 황태후를 섬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황문 동맹은 황제가 태자였던 시절부터 사인감에 있어 동궁에서 가황후를 모셨다. 가황후는 몰래 동맹과 소식을 통하여 황태후를 폐위시키는 것을 모의하였다. 동맹은 마침내 이조, 맹관과 더불어 몰래 서로 결탁하였다. 가황후는 다시 이조에게 명령을 내려 대사마, 여남왕 사마량으로 하여금 군대를 모아 양준을 토벌하도록 하였다. 사마량이 말하길 「양준의 흉폭을 보면 조만간 곧 죽을것이므로 걱정할 것이 없다.」 이조가 초왕 사마위에게 보고하니 사마위가 그렇다고 여겼다. 이에 조정에 들어갈 것을 구했는데 양준은 본래부터 사마위를 꺼렸으므로 먼저 불러들여 변을 도모하는 것을 막고자 마침내 허락하였다. 사마위가 이르자 맹관과 이조는 황제에게 주청하여 밤중에 조서를 만들어 내외의 군사로 하여금 계엄하고 사자를 보내 조서를 받들어 양준을 폐하고 후의 작위로 집에 돌아가도록 하였다. 동안공 사마요가 전중의 400명을 이끌고 그 뒤를 따라 양준을 토벌하였다. 단광이 무릎 꿇고 황제에게 말하길 「양준은 선제의 은총을 받아 정성을 다하여 정치를 보좌하였습니다. 또한 혼자의 몸으로 아들이 없으니 어찌 반역을 일으킬 도리가 있겠습니까? 원컨대 폐하께서 살피시기 바랍니다.」하였으나 황제는 답하지 않았다.

 

  時駿居曹爽故府,在武庫南,聞內有變,召眾官議之。太傅主簿硃振說駿曰:「今內有變,其趣可知,必是閹豎為賈后設謀,不利於公。宜燒雲龍門以示威,索造事都首,開萬春門,引東宮及外營兵,公自擁翼皇太子,入宮取奸人。殿內震懼,必斬送之,可以免難。」駿素怯懦,不決,乃曰:「魏明帝造此大功,奈何燒之!」侍中傅祗夜白駿,請與武茂俱入雲龍門觀察事勢。祗因謂群僚「宮中不宜空」,便起揖,於是皆走。

 

당시에 양준은 조상의 옛 부에서 거하고 있었는데 무고의 남쪽에서 궁내에 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중관을 모아 상의하였다. 태부주부 주진은 양준에게 말하길 「지금 궁내에서 변고가 있으면 그 뜻을 알 수 있는데 반드시 환관들이 가황후를 위해 모의한 것으로 공에게 불리합니다. 응당 용운문을 태워 위의를 보이고 일을 꾸민 수괴를 찾아 만춘문을 열어 동궁과 외영의 군대를 끌어와서 공께서 친히 황태자를 보익하여 궁에 들어가 간사한 사람들을 취해야 할 것입니다. 궁전 안의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반드시 목을 베어 보내올 것이니 화를 면할 수 있을 겁니다.」양준은 성정이 나약하여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마침내 말하길 「위나라 명제가 이런 큰 공사를 하였는데 어찌 태울 수 있겠는가!」하였다. 시중 부지가 밤에 양준에게 말하여 무무와 더불어 운용문으로 들어가 사태를 관찰하길 청하였다. 부지는 이로 인해 여러 관료들에게 말하길 「궁중을 비워서는 안 되네.」하고는 곧 일어나 인사하니 이에 모두들 떠났다.

 

  尋而殿中兵出,燒駿府,又令弩士於閣上臨駿府而射之,駿兵皆不得出。駿逃於馬廄,以戟殺之。觀等受賈后密旨,誅駿親黨,皆夷三族,死者數千人。又令李肇焚駿家私書,賈后不欲令武帝顧命手詔聞于四海也。駿既誅,莫敢收者,惟太傅舍人巴西閻纂殯斂之。

 

얼마 후 궁전에서 병사가 나와 양준이 거처하던 부를 불태우고 또 노병들로 하여금 각위에 올라 양준의 부를 양해 화살 쏘니 양준의 병사들이 모두 나오지 못했다. 양준은 마구간까지 도망갔는데 창에 찔려 죽었다. 맹관 등이 가후의 밀지를 받아 양준의 친당을 주살하여 모두 감족을 멸하였으므로 죽은 사람이 수 천명이나 되었다. 또 이조에게 명하여 양준의 집의 장서를 모두 불태우라고 하였는데 가황후가 사람들로 하여금 무제가 양준에게 준 고명의 조서를 알지 못하게 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양준이 이미 주살당하고 감히 시체를 수습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오직 태부사인 파서사람 염찬만이 장사지내주었다.

 

  初,駿征高士孫登,遺以布被。登截被於門,大呼曰:「斫斫刺刺!」旬日托疾詐死,及是,其言果驗。永熙中,溫縣有人如狂,造書曰:「光光文長,大戟為牆。毒藥雖行,戟還自傷。」及駿居內府,以戟為衛焉。

 

당초에 양준이 고사 손등을 징소하면서 포피를 보냈다. 손등은 문에서 포피를 절단하면서 크게 소리쳐 말하길 「베고 베고 찌르고 찌르는구나!」10일만에 병을 가탁하여 죽은척했다. 이에 이르러 그 말이 과연 징험이 있었다. 영희 연간에 온현에 미친 것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글을 써 말하길 「위풍당당한 문장아 큰 창에 둘러 쌓였구나. 독약이 비록 행하여져도 창으로 오히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다.」양준이 내부에 거하는데 이르러 창병으로 스스로를 호위하였다.

 

  永寧初,詔曰:「舅氏失道,宗族隕墜,渭陽之思,孔懷感傷。其以蓩亭侯楊超為奉朝請、騎都尉,以慰《蓼莪》之思焉。」

 

영녕 연간 초에 조서를 내려 이르길 「외삼촌이 도리를 잃어 종족이 몰락하였는데 위양(渭陽)의 사모가 진실로 아픔을 느끼게 한다. 모정후 양초를 봉조청, 기도위로 삼아 육아(蓼莪)의 사모를 위로하도록 하라.」

 

  珧字文琚,曆位尚書令、衛將軍。素有名稱,得幸于武帝,時望在駿前。以兄貴盛,知權寵不可居,自乞遜位,前後懇至,終不獲許。初,聘后,珧表曰:「曆觀古今,一族二后,未嘗以全,而受覆宗之禍。乞以表事藏之宗廟,若如臣之言,得以免禍。」從之。右軍督趙休上書陳:「王莽五公,兄弟相代。今楊氏三公,並在大位,而天變屢見,臣竊為陛下憂之。」由此珧益懼。固求遜位,聽之,賜錢百萬、絹五千匹。

 

양요는 자가 문거로 상서령, 위장군을 역임하였다. 본래부터 명성이 있어 무제의 총애를 받았는데 당시의 명망이 양준보다 앞섰다. 형의 존귀가 성대한 것을 보고 권세와 총애는 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 스스로 사직을 구하여 전후로 간절함이 지극하였으나 끝내 허락을 얻지 못했다. 당초에 황제가 황후와 결혼할 때 양요는 표를 올려 이르길 「고금을 살펴 봐서 한 집안에 황후가 2명 난 경우는 일찍이 가문을 보전해 경복의 재앙을 입지 아니한 적이 없었습니다. 청컨대 이 표를 종묘에 보관해 뒀다가 만약 신의 말처럼 된다면 재앙을 면할 수 있게 해주시기 바랍니다.」하니 이를 따르도록 하였다. 우군독 조휴가 상서하여 진술하길 「왕망은 5공을 형제가 번갈아 가면서 지냈습니다. 지금 양씨의 3공은 더불어 고관에 거하여 하늘에서도 변고가 누차 나타는데 신은 감히 폐하를 위해 이를 걱정합니다.」이로 말미암아 양요는 더욱 두려워하였다. 굳게 사직을 구하니 들어주고 전 100만, 비단 5000필을 내렸다.

 

  珧初以退讓稱,晚乃合朋黨,構出齊王攸。中護軍羊琇與北軍中侯成粲謀欲因見珧而手刃之。珧知而辭疾不出。諷有司奏琇,轉為太僕。自是舉朝莫敢枝梧,而素論盡矣。珧臨刑稱冤,云:「事在石函,可問張華。」當時皆謂宜為申理,合依鐘毓事例。而賈氏族党待諸楊如仇,促行刑者遂斬之。時人莫不嗟歎焉。

 

양요는 당초에 겸양으로 칭해졌으나 만년에 마침내 붕당을 규합하여 제왕 사마유를 수도에서 쫓아냈다. 중호군 양수와 북군중후 성찬은 모의하여 양요를 보면 친히 죽이기로 하였다. 양요는 이를 알고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관리에게 양수를 탄핵하도록 상주하여 태복으로 옮기게 하였다. 이로부터 조정에서 감히 그에게 반항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아름다운 평론도 다하게 되었다. 양요는 형벌에 임해 원한을 토로하며 말하길 「일이 모두 석함에 있어 장화에게 물어보면 된다.」라 하여 당시의 사람들이 모두 응당 심리를 제대로 하여 종육의 사례에 맞도록 해야 한다고 여겼다. 가씨의 족당들은 양씨집안을 원수처럼 여겨 형을 집행하는 자를 재촉하여 마침내 참수하였다. 당시의 사람들 중 탄식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濟字文通,曆位鎮南、征北將軍,遷太子太傅。濟有才藝,嘗從武帝校獵北芒下,與侍中王濟俱著布袴褶,騎馬執角弓在輦前。猛獸突出,帝命王濟射之,應弦而倒。須臾復一出,濟受詔又射殺之,六軍大叫稱快。帝重兵官,多授貴戚清望,濟以武藝號為稱職。與兄珧深慮盛滿,乃與諸甥李斌等共切諫。駿斥出王佑為河東太守,建立皇儲,皆濟謀也。

 

양제는 자가 문통이고 진남장군, 정북장군을 역임하고 태자태부로 옮겼다. 양제는 재주가 있었는데 일찍이 무제를 따라 망하에서 수렵하였는데 시중 왕제와 더불어 베옷을 입고 덧옷을 걸쳤는데 말을 타고 각궁을 잡은 채로 황제의 수레에 앞섰다. 맹수가 돌출하자 황제가 왕제에게 명해 쏘게 하였는데 한번의 발사로 고꾸라졌다. 얼마 후 다시 한 마리가 나타났는데 양제가 명령을 받들고 쏘아 죽이니 육군이 크게 환호하고 유쾌해하였다. 황제는 무관을 중요하게 여겨 귀척들의 명망대로 수여했는데 양제는 무술실력으로 인해 자리에 걸맞은 사람이라고 칭해졌다. 양제는 형 양요와 더불어 지나치게 만족하는 것을 염려해 마침내 외조카인 이빈 등과 같이 절실하게 간언하였다. 양준이 왕우를 배척해 하동태수로 나가게 하고 황태자를 세우는 일등은 모두 양제의 모의였다.

 

  初,駿忌大司馬汝南王亮,催使之籓。濟與斌數諫止之,駿遂疏濟。濟謂傅咸曰:「若家兄征大司馬入,退身避之,門戶可得免耳。不爾,行當赤族。」咸曰:「但征還,共崇至公,便立太平,無為避也。夫人臣不可有專,豈獨外戚!今宗室疏,因外戚之親以得安,外戚危,倚宗室之重以為援,所謂脣齒相依,計之善者。」濟益懼而問石崇曰:「人心云何?」崇曰:「賢兄執政,疏外宗室,宜與四海共之。」濟曰:「見兄,可及此。」崇見駿,及焉,駿不納。

 

당초에 양준은 대사마 여남왕 사마량을 꺼려 빨리 번국으로 가라고 재촉하였다. 양제와 이빈은 수차례 간언하여 멈추게 하니 양준은 마침내 양제와 소원해졌다. 양제가 부함에게 말하길 「만약 가형께서 대사마를 불러들여 몸을 물려 양보한다면 가문이 재앙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멸족하는데 이를 것이다.」부함이 말하길 「다만 불러 돌아오게 해서 더불어 공평하게 정사를 처리하여 태평을 이룩한다면 양보할 필요가 없다. 무릇 사람의 신하는 권한을 오롯이 해서는 안 되니 어찌 외척만 해당되겠는가! 지금 종실들이 소원하니 외척들과 가까이 하여 안녕을 얻을 수 있고 외척이 위급하다면 종실의 권위에 의지해 구원을 얻으니 소위 잇몸과 이가 서로 의지하는 것은 훌륭한 계책이다.」하였다. 양제는 더욱 두려워 석숭에 묻길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한가?」석숭이 말하길 「그대의 형이 정권을 손에 잡고 종실을 소외시키니 응당 사해와 더불어 정무를 처리해야 합니다.」양제가 말하길 「형을 본다면 가히 이를 언급할 만하다.」석숭이 양준을 보고 이런 말을 했지만 양준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後與諸兄俱見害。難發之夕,東宮召濟。濟謂裴楷曰:「吾將何之?」楷曰:「子為保傅,當至東宮。」濟好施,久典兵馬,所從四百余人皆秦中壯士,射則命中,皆欲救濟。濟已入宮,莫不歎恨。

 

이후에 여러 형들과 더불어 해를 당했다. 재난이 발생한 날의 저녁에 동궁에서 양제를 불렀다. 양제가 배해에게 말하길 「내가 장차 어찌해야 하겠는가?」하니 배해가 말하길 「그대가 몸을 보존하고자 한다면 응당 동궁에 가야하네.」양제는 베푸는 것을 좋아하여 오랫동안 병마를 관장하여 따르는 400여명의 병사가 모두 진 지방의 장사들로 화살을 쏘면 명중시킬 수 있었는데 모두들 양제를 구하고자 하였다. 양제가 입궁하자 탄식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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