曹志,字允恭,譙國譙人,魏陳思王植之孽子也。
조지(曹志)는 자가 윤공(允恭)이고 초국 초현 사람이니, 위나라 진사왕 조식의 얼자(孽子)이다.

少好學,以才行稱,夷簡有大度,兼善騎射。
어려서 학문을 좋아하여 재행으로 일컬어져 이간(夷簡)하고 도량이 크며 겸하여 기사(騎射)에도 뛰어났다.

植曰:「此保家主也。」
조식이 말하기를,

“이 아이는 집안을 보전할 주인이다.”

立以為嗣。後改封濟北王。
후사로 삼았다. 나중에 제북왕(濟北王)으로 고쳐 봉해졌다.

武帝為撫軍將軍,迎陳留王於鄴,志夜謁見,帝與語,自暮達旦,甚奇之。
무제(사마염)가 무군장군이 되어 진류왕(조환)을 업(鄴)에서 맞이할 때 조지가 밤에 알현하여 황제와 말을 나눴는데 저녁으로부터 아침까지 계속되었으니 심히 기특하게 여겼다.

及帝受禪,降為鄄城縣公。
황제가 선양받고 나서 그를 견성현공(鄄城縣公)으로 강봉했다.


詔曰:「昔在前世,雖曆運迭興,至於先代苗裔,傳祚不替,或列籓九服,式序王官。選眾命賢,惟德是與,蓋至公之道也。魏氏諸王公養德藏器,壅滯曠久,前雖有詔,當須簡授,而自頃眾職少缺,未得式敘。前濟北王曹志履德清純,才高行潔,好古博物,為魏宗英,朕甚嘉之。其以志為樂平太守。」


조서를 내려 말했다 :

옛적에 전세(前世)에 있어 비록 역운(曆運)이 번갈아 일어나도 선대와 먼 후손까지 이르도록 전조(傳祚)가 변함이 없으면 열번(列籓:제후)과 구복(九服:구주)에서 임금과 벼슬아치를 차례로 세웠다. 무리에서 명현(命賢)을 가려내어 오직 덕으로써 이를 내리는 것이니 대개 이를 가리켜[蓋至] 공변됨에 이르는 길이라 한다. 위씨(魏氏:위나라)의 뭇 왕공들은 장기(藏器)에 덕을 배양한 것이 이미 막히고 엉겨 허비된 지가 오래라, 전에 비록 조서를 내려[有詔] 마땅히 모름지기 간소하게 주도록 하였으나 근자에는[自頃] 중직(眾職:백관)이 적어지고 결락되어[少缺] 식서(式敘:법도와 의식)를 미처 얻지 못하였다.

전(前) 제북왕(濟北王) 조지(曹志)는 이덕(履德)이 맑고 순박하며, 재주는 높고 행실은 깨끗하여 옛것을 좋아하고 물상에 해박하니[博物] 즉 위나라의 종영(宗英:종실)으로 짐은 이를 심히 가상하게 여기는 바이다. 따라서 조지로 낙평태수(樂平太守)로 삼는다.

志在郡上書,以為宜尊儒重道,請為博士置吏卒。


조지가 군에서 상서(上書)하기를 마땅히 선비를 존중하고 도리를 무겁게 하여 박사(博士)에 이졸(吏卒)을 배치하여 달라고 청하였다.


遷章武、趙郡太守。
승진하여 장무태수[章武], 조군태수(趙郡太守)가 되었다.

雖累郡職,不以政事為意,晝則遊獵,夜誦《詩》《書》,以聲色自娛,當時見者未能審其量也。
비록 누차 군직에 있었으나 정사를 돌보는 것을 뜻에 두지 않았고, 낮에는 유렵(遊獵)을 즐기고 밤에는 시경, 서경을 통달하여 성색(聲色)을 소일거리로 삼으니 당시에 그를 본 사람은 능히 그의 기량을 살필 수 없었다.


咸甯初,詔曰:「鄄城公曹志,篤行履素,達學通識,宜在儒林,以弘胄子之教。其以志為散騎常侍、國子博士。」
함녕 초에 조서를 내려 말했다.

“견성공 조지는 독행(篤行)하고 이소(履素)하여 배움과 지식에 통달한 유림의 한 선비라 할 수 있으니 널리 주자지교(胄子之教)인 것이다. 조지를 산기상시, 국자박사로 삼는다.”

帝嘗閱《六代論》,問志曰:「是卿先王所作邪?」
황제가 일찍이 육대론을 보고 조지에게 물었다.

“이것은 경의 선왕(조식)이 지은 것인가?”

志對曰:「先王有手所作目錄,請歸尋按。」
조지가 대답하여 말했다.

“선왕이 손수 지은 일록이 있으니 청컨대 돌아가 살펴보게 해 주십시오.”

還奏曰:「按錄無此。」
돌아가 상주했다.

“기록을 살펴보니 여기에는 없습니다.”

帝曰:「誰作?」
황제가 말했다.

“누가 지었는가?”

志曰:「以臣所聞,是臣族父冏所作。以先王文高名著,欲令書傳於後,是以假託。」
조지가 말했다.

“신이 듣건대 이는 신의 족부인 조경(曹冏)이 지은 것이라 합니다. 선왕의 글이 높고 이름이 있으니 후세에 책을 전하려고 (이름을) 가탁(假託)한 것입니다.”

帝曰:「古來亦多有是。」
황제가 말했다.

“옛날부터 또한 이런 일이 많았다.”

顧謂公卿曰:「父子證明,足以為審。自今已後,可無復疑。」
공경을 돌아보며 말했다.

“부자가 증명(證明)하니 충분히 살필 수 있었다. 지금부터 이후로는 다시 의심하지 말라.”


後遷祭酒。齊王攸將之國,下太常議崇錫文物。
후에 승진하여 좨주가 되었다. 제왕 사마유가 그 나라로 갈 때, 태상에게 내려 숭석(崇錫)할 문물(文物)을 논의하게 했다.

時博士秦秀等以為齊王宜內匡朝政,不可之籓。
마침 박사 진수(秦秀) 등이 말하기를 제왕(사마유)이 의당 내조(內朝)에서 광정(匡政)해야 한다고 말하며 번국은 불가하다고 하였다.

志又常恨其父不得志于魏,因愴然歎曰:「安有如此之才,如此之親,不得樹本助化,而遠出海隅?晉朝之隆,其殆乎哉!」
조지 또한 늘 그 아버지(조식)가 위나라에서 뜻을 얻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생각하였으므로 창연히 탄식(愴然)하며 말했다.

乃奏議曰:「伏聞大司馬齊王當出籓東夏,備物盡禮,同之二伯。今陛下為聖君,稷、契為賢臣,內有魯、衛之親,外有齊、晉之輔,坐而守安,此萬世之基也。古之夾輔王室,同姓則周公其人也,異姓則太公其人也,皆身在內,五世反葬。後雖有五霸代興,桓、文譎主,下有請隧之僭,上有九錫之禮,終於譎而不正,驗於尾大不掉,豈與召公之歌《棠棣》,周詩之詠《鴟鴞》同日論哉!今聖朝創業之始,始之不諒,後事難工。幹植不強,枝葉不茂;骨骾不存,皮膚不充。自羲皇以來,豈是一姓之獨有!欲結其心者,當有磐石之固。夫欲享萬世之利者,當與天下議之。故天之聰明,自我人之聰明。秦、魏欲獨擅其威,而財得沒其身;周、漢能分其利,而親疏為之用。此自聖主之深慮,日月之所照。事雖淺,當深謀之;言雖輕,當重思之。志備位儒官,若言不及禮,是志寇竊。知忠不言,議所不敢。志以為當如博士等議。」
이에 논의를 상주하며 말했다 :

엎드려 듣건대[伏聞] 대사마 제왕(사마유)이 동하(東夏:제나라)로 출번(出籓:번국으로 나아감)함이 마땅하여 물자를 준비하고 예를 다하여 두 백씨[二伯]와 같게 하라 하셨습니다. 지금의 폐하는 성군이시고 후직[稷]과 설(契)은 어진 신하이니 안으로 노나라와 위나라와 친하고[親], 밖으로 제나라, 진나라로 돕게 하면[輔] 앉아서 편안함을 지키게 되니 이를 바로 만세(萬世)의 터를 닦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옛적에 (주나라) 왕실을 협보하는 데에 있어 동성(同姓)이라 함은 즉 주공(周公)을 가리키는 것이고 이성이라 함은 즉 강태공을[太公] 가리키는 것이니, 모두 몸을 관내에 두고 다섯 대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반장(反葬)하였습니다. 그 뒤에 아무리 (춘추)오패(五霸)가 연이어 일어나서 제환공과 진문공이 임금을 속여 아래에서는 수도[隧:천자의 묘도(墓道)]를 청하는 참람됨이 있었고 위에서는 구석(九錫)을 내리는 예까지 있었지만, 마침내는 속인 것으로[譎] 바르지 못한 일이고 꼬리가 너무 크면 제어할 수 없다는[尾大不掉:미대부도] 것을 증험한 것이니,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하여 소공(召公)에게 《당체(棠棣)》의 노래를 주었겠으며, 주공이 시로서 《치효(鴟鴞)》를 노래하였겠습니까. 오늘날의 논의도 같은 것입니다!

지금의 성조(사마염)께서 창업(創業)을 시작하였을 때 처음에는 살펴 알지 못했으며 나중의 일 또한 이루기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難工]. 심은 줄기는[幹植] 강하지 않았고 가지와 이파리는 무성하지 않았습니다. 골경(骨骾)이 없으니 살갗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희황(羲皇:복희씨) 이래로부터 어찌 지금 이 하나의 성만이 홀로[獨] 있었겠습니까! 그(들의) 마음을 하나로 결속하기를 원하신다면 마땅히 (폐하도) 반석(磐石)의 굳건함이 갖춰야 할 것입니다. 무릇 만세의 이득을 향유하려고 하신다면 마땅히 천하의 의론과 함께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늘이 슬기롭고 밝은 것은[聰明] 우리 사람의 총명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진나라[秦]와 위나라[魏]가 홀로 위세를 제멋대로 부리다가 패하여 그 몸을 몰락시켰고[財得沒], 주나라와 한나라는 그 이치를 능히 나누어[能分] 친한 이와 친하지 않은 이를[親疏] 가리지 않고 등용하였는데 이는 성스러운 주인이[聖主] 골똘히 생각한 것[深慮]으로부터[自] 마치 해와 달처럼 비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일이 비록 얕아도 계획은 마땅히 깊어야 하고, 말이 비록 가벼워도 생각은 마땅히 무거워야 합니다. 지(志:자신을 가리킴)가 유관(儒官)의 벼슬자리에 있는데도 만약 말이 예에도 미치지 못하면[言不及禮] 이는 바로 지(자신)가 도적으로 (벼슬을) 훔친 것과[寇竊] 같습니다. 지의 충심은 말하지 않겠거니와 의론한 바는 도저히 아뢰지 않을 수가[不敢] 없습니다. 따라서 지(자신)가 박사 등과 더불어 의론한 것입니다.

議成當上,見其從弟高邑公嘉。嘉曰:「兄議甚切,百年之後必書晉史,目下將見責邪。」
의론이 이루어져 위로 올리기에 앞서[當上], 그 종제(從弟) 고읍공(高邑公) 조가(嘉)가 (이를) 보고 말하였다.

“형(兄)의 의론이 심히 절절하여[甚切] 백년 뒤에도 반드시 진나라의 역사에 기록되어 남을 것이나 지금 당장은[目下] 장차 책망이 없을 수가 없겠구나!”

帝覽議,大怒曰:「曹志尚不明吾心,況四海乎!」
황제가 의논한 것을 보고 크게 노하여 말했다.

“조지는 언제나 내 마음을 밝게 알지 못했는데 하물며 사해의 뜻을 알겠는가!”

以議者不指答所問,橫造異論,策免太常鄭默。
논의한 사람들에게 답을 내리지 않고 멋대로 이론(異論)을 지어낸 것을 이유로 태상 정묵(鄭默)을 책면(策免)했다.

於是有司奏收志等結罪,詔惟免志官,以公還第,其餘皆付廷尉。
그리하여 유사가 조지(有司) 등이 맺은 죄를 거두어 상주하니 조서를 내려 조지의 관직을 면해 집으로 돌려 보내고 남은 무리는 정위(廷尉)에게 보냈다.


頃之,志復為散騎常侍。
얼마 뒤에, 조지를 다시 산기상시로 삼았다.

遭母憂,居喪過禮,因此篤病,喜怒失常。
모친상을 당해 거상하며 예가 지나쳐 이로 인해 병이 심해지니 희로애락이 상도를 잃은 것이었다.

九年卒,太常奏以惡諡。
(태강) 9년에 졸하니 태상이 상주하여 악시(惡諡)를 주었다.

崔褒歎曰:「魏顆不從亂,以病為亂故也。今諡曹志而諡其病,豈謂其病不為亂乎!」
최포(崔褒)가 탄식했다 : 위과는 어지러울 때의 말을 따르지 않았으니 병을 어지러움으로 본 까닭이다. 조지에게 시호를 내리면서 지금은 그 병을 따지니 어찌 그 병을 어지러움이라고 하지 않는 것인가!

於是諡為定。
그리하여 시호를 정(定)이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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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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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우

2020.08.06
23:06:02
(*.30.20.69)
번역 추가합니다.

詔曰:「昔在前世,雖曆運迭興,至於先代苗裔,傳祚不替,或列籓九服,式序王官。選眾命賢,惟德是與,蓋至公之道也。魏氏諸王公養德藏器,壅滯曠久,前雖有詔,當須簡授,而自頃眾職少缺,未得式敘。前濟北王曹志履德清純,才高行潔,好古博物,為魏宗英,朕甚嘉之。其以志為樂平太守。」
조서를 내려 말했다 :

옛적에 전세(前世)에 있어 비록 역운(曆運)이 번갈아 일어나도 선대와 먼 후손까지 이르도록 전조(傳祚)가 변함이 없으면 열번(列籓:제후)과 구복(九服:구주)에서 임금과 벼슬아치를 차례로 세웠다. 무리에서 명현(命賢)을 가려내어 오직 덕으로써 이를 내리는 것이니 대개 이를 가리켜[蓋至] 공변됨에 이르는 길이라 한다. 위씨(魏氏:위나라)의 뭇 왕공들은 장기(藏器)에 덕을 배양한 것이 이미 막히고 엉겨 허비된 지가 오래라, 전에 비록 조서를 내려[有詔] 마땅히 모름지기 간소하게 주도록 하였으나 근자에는[自頃] 중직(眾職:백관)이 적어지고 결락되어[少缺] 식서(式敘:법도와 의식)를 미처 얻지 못하였다.

전(前) 제북왕(濟北王) 조지(曹志)는 이덕(履德)이 맑고 순박하며, 재주는 높고 행실은 깨끗하여 옛것을 좋아하고 물상에 해박하니[博物] 즉 위나라의 종영(宗英:종실)으로 짐은 이를 심히 가상하게 여기는 바이다. 따라서 조지로 낙평태수(樂平太守)로 삼는다.

志在郡上書,以為宜尊儒重道,請為博士置吏卒。
조지가 군에서 상서(上書)하기를 마땅히 선비를 존중하고 도리를 무겁게 하여 박사(博士)에 이졸(吏卒)을 배치하여 달라고 청하였다.

코렐솔라

2020.08.07
14:07:51
(*.112.38.50)
넵 감사합니다. 반영했습니다.

독우

2020.08.07
16:36:57
(*.30.20.69)
또 추가했습니다. 바로 반영해주실 줄 몰랐네요. 번거로움을 드려 죄송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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志又常恨其父不得志于魏,因愴然歎曰:「安有如此之才,如此之親,不得樹本助化,而遠出海隅?晉朝之隆,其殆乎哉!」
조지 또한 늘 그 아버지(조식)가 위나라에서 뜻을 얻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생각하였으므로 창연히 탄식(愴然)하며 말했다.

“어찌 이러한 재주와 이러한 친함을 가지고도 수본(樹本:나무뿌리?)의 도움과 조화로움을 얻지 못하고 바다의 한 구석[海隅]으로 멀리 쫓아내는 것인가? 진나라 조정의 융성함이 이로써 위태해지리라!”

乃奏議曰:「伏聞大司馬齊王當出籓東夏,備物盡禮,同之二伯。今陛下為聖君,稷、契為賢臣,內有魯、衛之親,外有齊、晉之輔,坐而守安,此萬世之基也。古之夾輔王室,同姓則周公其人也,異姓則太公其人也,皆身在內,五世反葬。後雖有五霸代興,桓、文譎主,下有請隧之僭,上有九錫之禮,終於譎而不正,驗於尾大不掉,豈與召公之歌《棠棣》,周詩之詠《鴟鴞》同日論哉!今聖朝創業之始,始之不諒,後事難工。幹植不強,枝葉不茂;骨骾不存,皮膚不充。自羲皇以來,豈是一姓之獨有!欲結其心者,當有磐石之固。夫欲享萬世之利者,當與天下議之。故天之聰明,自我人之聰明。秦、魏欲獨擅其威,而財得沒其身;周、漢能分其利,而親疏為之用。此自聖主之深慮,日月之所照。事雖淺,當深謀之;言雖輕,當重思之。志備位儒官,若言不及禮,是志寇竊。知忠不言,議所不敢。志以為當如博士等議。」
이에 논의를 상주하며 말했다 :

엎드려 듣건대[伏聞] 대사마 제왕(사마유)이 동하(東夏:제나라)로 출번(出籓:번국으로 나아감)함이 마땅하여 물자를 준비하고 예를 다하여 두 백씨[二伯]와 같게 하라 하셨습니다. 지금의 폐하는 성군이시고 후직[稷]과 설(契)은 어진 신하이니 안으로 노나라와 위나라와 친하고[親], 밖으로 제나라, 진나라로 돕게 하면[輔] 앉아서 편안함을 지키게 되니 이를 바로 만세(萬世)의 터를 닦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옛적에 (주나라) 왕실을 협보하는 데에 있어 동성(同姓)이라 함은 즉 주공(周公)을 가리키는 것이고 이성이라 함은 즉 강태공을[太公] 가리키는 것이니, 모두 몸을 관내에 두고 다섯 대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반장(反葬)하였습니다. 그 뒤에 아무리 (춘추)오패(五霸)가 연이어 일어나서 제환공과 진문공이 임금을 속여 아래에서는 수도[隧:천자의 묘도(墓道)]를 청하는 참람됨이 있었고 위에서는 구석(九錫)을 내리는 예까지 있었지만, 마침내는 속인 것으로[譎] 바르지 못한 일이고 꼬리가 너무 크면 제어할 수 없다는[尾大不掉:미대부도] 것을 증험한 것이니,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하여 소공(召公)에게 《당체(棠棣)》의 노래를 주었겠으며, 주공이 시로서 《치효(鴟鴞)》를 노래하였겠습니까. 오늘날의 논의도 같은 것입니다!

지금의 성조(사마염)께서 창업(創業)을 시작하였을 때 처음에는 살펴 알지 못했으며 나중의 일 또한 이루기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難工]. 심은 줄기는[幹植] 강하지 않았고 가지와 이파리는 무성하지 않았습니다. 골경(骨骾)이 없으니 살갗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희황(羲皇:복희씨) 이래로부터 어찌 지금 이 하나의 성만이 홀로[獨] 있었겠습니까! 그(들의) 마음을 하나로 결속하기를 원하신다면 마땅히 (폐하도) 반석(磐石)의 굳건함이 갖춰야 할 것입니다. 무릇 만세의 이득을 향유하려고 하신다면 마땅히 천하의 의론과 함께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늘이 슬기롭고 밝은 것은[聰明] 우리 사람의 총명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진나라[秦]와 위나라[魏]가 홀로 위세를 제멋대로 부리다가 패하여 그 몸을 몰락시켰고[財得沒], 주나라와 한나라는 그 이치를 능히 나누어[能分] 친한 이와 친하지 않은 이를[親疏] 가리지 않고 등용하였는데 이는 성스러운 주인이[聖主] 골똘히 생각한 것[深慮]으로부터[自] 마치 해와 달처럼 비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일이 비록 얕아도 계획은 마땅히 깊어야 하고, 말이 비록 가벼워도 생각은 마땅히 무거워야 합니다. 지(志:자신을 가리킴)가 유관(儒官)의 벼슬자리에 있는데도 만약 말이 예에도 미치지 못하면[言不及禮] 이는 바로 지(자신)가 도적으로 (벼슬을) 훔친 것과[寇竊] 같습니다. 지의 충심은 말하지 않겠거니와 의론한 바는 도저히 아뢰지 않을 수가[不敢] 없습니다. 따라서 지(자신)가 박사 등과 더불어 의론한 것입니다.

議成當上,見其從弟高邑公嘉。嘉曰:「兄議甚切,百年之後必書晉史,目下將見責邪。」
의론이 이루어져 위로 올리기에 앞서[當上], 그 종제(從弟) 고읍공(高邑公) 조가(嘉)가 (이를) 보고 말하였다.

“형(兄)의 의론이 심히 절절하여[甚切] 백년 뒤에도 반드시 진나라의 역사에 기록되어 남을 것이나 지금 당장은[目下] 장차 책망이 없을 수가 없겠구나!”

코렐솔라

2020.08.10
13:07:01
(*.46.174.164)
계속 반영해주시면 저야 좋죠 ㅎ 감사합니다. 반영했습니다. 저러고도 사마유 내보냈다가 죽는 거군염 ㅠ 개인적으로 숭석 같이 잘 안 쓰는 단어는 한글로 풀어쓰는 게 검색할 필요가 적어져서 더 좋았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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