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욱(苟彧)의 자는 문약이요, 영천(潁川) 영음(潁陰) 사람이니, 낭릉령(朗陵令) 순숙(苟淑)의 손자다. 아버지 순곤(苟緄)은 제남상(濟南相)이 되었다. 순곤은 환관(宦官)의 (세력을) 두려워하여 중상시(中常侍) 당형(唐衡)의 딸로 순욱의 처를 삼았다. 순욱은 젊어서부터 재명(才名)이 있었으므로, (사람들의) 비웃음[譏議]을 면할 수 있었다. 남양(南陽)의 하옹(何顒)은 사람을 알아보는 것으로 이름났는데[名], 순욱을 보고는 기이하게 여겨 말하기를 “왕좌(王佐)의 재주로다.” 하였다.

① 袁宏漢紀, 彧作郁.

원굉(袁宏)의 후한기(後漢紀)에는 욱(彧)이 욱(郁)으로 되어있다.

② 朗陵, 縣, 屬汝南郡, 故城在今豫州朗山縣西南.

낭릉(朗陵)은 현(縣)이니 여남군(汝南郡)에 속한다, 옛 성이 지금의 예주(豫州) 낭산현(朗山縣) 서남쪽에 있다.

③ 緄音古本反.

곤(緄)의 음은 고(古)와 본(本)의 반절이다.

④ 典略曰, 衡欲以女妻汝南傅公明, 公明不取, 轉以妻彧.

전략(典略)에 이르기를 “당형(唐衡)은 딸을 여남(汝南) 부공명(傅公明)에게 처로 주려 하였으나 공명(公明)이 취하지 않으니, 바꾸어 순욱의 처로 주었다.” 하였다.

○中平六年, 擧孝廉, 再遷亢父令.① 董卓之亂, 棄官歸鄕里. 同邵韓融時將宗親千餘家, 避亂密西山中.② 彧謂父老曰, 潁川, 四戰之地也.③ 天下有變, 常爲兵衝. 密雖小固, 不足以扞大難, 宜亟避之.④ 鄕人多懷土不能去. 會冀州牧同郡韓馥遣騎迎之, 彧乃獨將宗族從馥, 留者後多爲董卓將李傕所殺略焉.

한나라 중평(中平) 6년, 효렴(孝廉)에 천거되고, 다시 벼슬을 옮겨 항보령(亢父令)이 되었다. 동탁(董卓)의 난이 일어나니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같은 고을사람 한융(韓融)이 이때 (자신의) 종친(宗親) 천여 집안을 거느리고 밀현(密縣) 서산(西山)으로 피란하였다. 순욱이 부로(父老-마을의 어른을 일컫는 말)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영천(潁川)은 사방(四方)이 싸울만한 땅입니다.[四戰之地] 천하에 변고가 있으면 늘 군사가 쳐 들어올 것입니다. 밀현(密縣)이 비록 조금 견고하나[小固], 큰 난리를 막아내기에는 부족합니다. 마땅히 빨리 이곳에서 피해야 합니다.”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고향) 땅에 대한 애착이 있어 능히 떠나지 못하였다. 마침[會] 기주목(冀州牧)이었던 같은 군(郡) 사람 한복(韓馥)이 기병(騎兵)을 보내어 (순욱 등을) 맞아들이니, 순욱이 이에 홀로 종족(宗族)들을 거느리고 한복에게 따라갔다. 머물러 있던 자들은 후에 대부분 동탁의 장수 이각(李傕)에게 죽고 노략질 당하였다.

① 亢父, (縣), 屬梁國, 故城在今兗州任城縣南. 亢音剛, 父音甫.

항보(亢父)는 현이니 양국(梁國)에 속하였다. 옛 성이 지금의 연주(兗州) 임성현(任城縣) 남쪽에 있다. 항(亢)의 음은 강(剛=항)이며, 보(父)의 음은 보(甫)이다.

② 密縣西山也.

밀현(密縣) 서산(西山)이다.

③ 四面通也.

사면(四面)이 (외부와) 통하여 있는 것이다.[사통팔달이라는 뜻]

④ 亟音紀力反.

극(亟)의 음은 기(紀)와 력(力)의 반절이다.

○彧比至冀州, 而袁紹已奪馥位, 紹待彧以上賓之禮. 彧明有意數,① 見漢室崩亂, 每懷匡佐之義. 時曹操在東郡, 彧聞操有雄略, 而度紹終不能定大業. 初平二年, 乃去紹從操. 操與語大悅, 曰, 吾子房也.② 以爲奮武司馬, 時年二十九. 明年, 又爲操鎭東司馬.

순욱이 기주(冀州)에 이르니 원소(袁紹)가 이미 한복의 지위를 빼앗았었는데, 원소가 순욱을 상빈(上賓)의 예로 대하였다. 순욱은 총명(聰明)하여[明], 마음 속으로 헤아려 보고, 한실이 무너져 어지러워 질 것을 보았으므로, 매양 (나라를) 바르게 보좌할 뜻[匡佐之義]을 품었다. 이때 조조(曹操)가 동군(東郡)에 있었는데, 순욱은 조조에게 웅략(雄略)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고, 원소는 끝내 대업을 정할 수 없을 것임을 탁량(度量-헤아림) 하였다. 한나라 초평(初平) 2년, 이에 원소를 떠나 조조를 따랐다. 조조가 (순욱과) 더불어 이야기하고는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나의 자방(子房)이로다.” 하였다. (이때 조조는 분무장군이었으므로 순욱으로) 분무사마(奮武司馬)를 삼으니, 이때 나이 29였다. 이듬해, 또 조조(가 진동장군이 되니 순욱은) 진동사마(鎭東司馬)가 되었다.

① 數, 計數也.

수(數)는 헤아려 본다는 뜻이다.

② 比之張良.

(전한시대) 장량(張良)에 비한 것이다.

○興平元年, 操東擊陶謙, 使彧守甄城,① 任以留事. 會張邈陳宮以兗州反操,② 而潛迎呂布. 布旣至, 諸城悉應之. 邈乃使人譎彧③ 曰, 呂將軍來助曹使君擊陶謙, 宜亟供軍實. 彧知邈有變, 卽勒兵設備, 故邈計不行. 豫州刺史郭貢率兵數萬來到城下, 求見彧. 彧將往, 東郡太守夏侯惇等止之.④ 曰, 何知貢不與呂布同謀, 而輕欲見之. 今君爲一州之鎭, 往必危也. 彧曰, 貢與邈等分非素結, 今來速者, 計必未定, 及其猶豫, 宜時說之, 縱不爲用, 可使中立.⑤ 若先懷疑嫌, 彼將怒而成謀, 不如往也. 貢旣見彧無懼意, 知城不可攻, 遂引而去. 彧乃使程昱說范東阿,⑥ 使固其守, 卒全三城以待操焉.⑦

한나라 흥평(興平) 원년(元年), 조조가 동쪽으로 도겸(陶謙)을 치니, 순욱으로 하여금 견성(甄城)을 지키게 하고, 남아서 일을 처리하도록 맡겼다. 마침 장막(張邈)과 진궁(陳宮)이 연주(兗州)에서 조조에게 반기를 들고, 몰래 여포(呂布)를 맞아들였다. 여포가 이르자, 모든 성들이 모조리 그에게 호응하였다. 장막이 이에 사람을 시켜 순욱을 속여 말하기를 “여장군이 와서 조사군(曹使君)이 도겸을 치는 것을 도울 것이니 마땅히 빨리 군자(軍資=軍實)를 바치시오.” 하였다. 순욱은 장막이 변심하였음을 알고, 곧 군사들로 하여금 (성을 지킬) 준비를 하게 하였으므로, 그리하여 장막의 계책은 실행되지 못하였다. 예주자사(豫州刺史) 곽공(郭貢)이 군사 수만을 이끌고 견성 아래에 이르러, 순욱을 만나기를 요구하였다. 순욱이 장차 가려하자, 동군태수(東郡太守) 하후돈(夏侯惇) 등이 이를 말리며 말하기를, “곽공이 여포와 더불어 같이 모의하지 않았는지 어찌 알고, 경솔하게 그를 만나보려 하십니까? 이제 군(君)께서는 한 주(州)를 지키고 계시는데, (곽공에게) 가신다면 반드시 위험할 것입니다.” 하였다. 순욱이 말하기를 “곽공과 장막등은 나뉘어서 본래 결탁하지 않았는데, 이제 (우리에게) 속히 온 것은 (그들과) 계책이 (완전히) 정해지지 않은 것이고, 주저하고[猶豫] 있으니, 마땅히 이때 그들을 말로 달래면, (군사를) 쓰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중립(中立)하도록 할 수 있소. 만약 (만나주지 않아 그들이) 먼저 의심을 품게 되면, 저들은 장차 노(怒)하여 모의(謀議)를 성사시킬 것이니 가는 것만 못하오.” 하였다. 곽공이 순욱을 만나보니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고, 성을 공격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으므로 마침내 (군대를) 끌고 떠났다. 순욱이 이에 정욱(程昱)으로 하여금 범현(范縣)과 동아현(東阿縣)을 말로 달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수비를 공고(鞏固)히 하도록 하였으니, 마침내 세 성을 온전히 하여 조조가 얻을 수 있었다.

① 縣名, 屬濟陰郡, 今濮州縣也. 甄今作鄄, 音絹.

현(縣) 이름이다. 제음군(濟陰郡)에 속하였고, 지금의 복주현(濮州縣)이다. 견(甄)을 지금은 견(鄄)이라 쓰는데, 음은 견(絹)이다.

② 典略, 宮字公臺, 東郡人. 剛直烈壯, 少與海內知名之士皆相連結也.

전략(典略)에 (이르기를) “진궁(陳宮)의 자는 공대(公臺)이니, 동군(東郡) 사람이다. (사람됨이) 곧고[剛直] 씩씩하여[烈壯], 젊어서부터 해내(海內=천하)에 이름난 인사(人士)들과 더불어 모두 서로 결탁하였다.” 하였다.

③ 譎, 詐也.

휼(譎)은 속이는 것[詐]이다.

④ 魏志曰, 惇字元讓, 沛國人.

위지에 이르기를 “하후돈(夏侯惇)의 자는 원양(元讓)이니, 패국(沛國) 사람이다” 하였다.

⑤ 不令其有去就也.

(중립이란) 거취(去就=진퇴)를 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⑥ 魏志, 昱字仲德, 東郡東阿人. 范, 縣, 屬東郡, 今濮陽縣也. 東阿, 縣, 屬東郡, 今濟州縣也.

위지(魏志)에 이르기를 “정욱(程昱)의 자는 중덕(仲德)이니, 동군(東郡) 동아(東阿) 사람이다.” 하였다. 범(范)은 현이니 동군(東郡)에 속하였고, 지금의 복양현(濮陽縣)이다. 동아(東阿)는 현이니 동군(東郡)에 속하였고, 지금의 제주현(濟州縣)이다.

⑦ 三城謂甄范東阿也.

세 성은 견(甄), 범(范), 동아(東阿)를 말한다.

○二年, 陶謙死, 操欲遂取徐州, 還定呂布. 彧諫曰, 昔高祖保關中,① 光武據河內, 皆深根固本, 以制天下. 進可以勝敵, 退足以堅守, 故雖有困敗, 而終濟大業. 將軍本以兗州首事, 故能平定山東,② 此實天下之要地, 而將軍之關河也. 若不先定之, 根本將何寄乎. 宜急分討陳宮, 使虜不得西顧, 乘其閒而收熟麥, 約食蓄穀, 以資一擧, 則呂布不足破也. 今舍之而東, 未見其便. 多留兵則力不勝敵, 少留兵則後不足固. 布乘虛寇暴, 震動人心, 縱數城或全, 其餘非復己有, 則將軍尙安歸乎. 且前討徐州, 威罰實行, 其子弟念父兄之恥, 必人自爲守. 就能破之, 尙不可保. 彼若懼而相結, 共爲表裏, 堅壁淸野, 以待將軍, 將軍攻之不拔, 掠之無獲, 不出一旬, 則十萬之衆未戰而自困矣. 夫事固有棄彼取此, 以權一時之勢, 願將軍慮焉. 操於是大收孰麥, 復與布戰. 布敗走, 因分定諸縣, 兗州遂平.

2년, 도겸(陶謙)이 죽으매, 조조는 서주를 취하고 귀환하여 여포를 평정하려 하였다. 순욱이 간하여 말하기를 “옛적 고조(高祖)께서는 관중(關中)을 보호하셨고, 광무제(光武帝)께서는 하내(河內)에 의거하셨으니, 모두 기반을 깊이하고, 근본을 공고히 하셨으므로, 이로써 천하를 제압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나아가서는 적을 이기실 수 있었고, 물러나서는 굳게 지키실 수 있었으니, 그러므로 비록 어렵고 패배하셨어도 마침내 대업(大業)을 이루셨습니다. 장군께서는 본래 연주(兗州)로써 (기반을 삼아) 시작하셨으니[首事], 그리하여 능히 산동(山東)을 평정하셨습니다. 이곳은 진실로 천하의 요지(要地)요, 장군의 관중(關中)과 하내(河內)입니다. 만약 이를 먼저 평정하지 않으시고, 장군께서는 어느 곳을 근본하려 하십니까? 응당 먼저 (군사를) 나누어 진궁을 토벌하셔서, 종[虜=적들을 낮추어 말한 것]들로 하여금 서쪽을 돌아볼 수 없게 하시고, 그 틈을 타 익은 보리[熟麥]를 거두어, 적게 먹고[約食] 곡식을 저축하시면[蓄穀], 이 물자로써 한번 거병하여, 곧, 여포를 힘들이지 않고[不足] 깨트리실 것입니다. 가령(假令) 이를 버려두고 동쪽으로 가시오면, 편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병사를 많이 남겨두면 (그) 힘으로는 적을 이기지 못하고, 병사를 적게 남겨두면 후방이 견고하지 못합니다. 여포가 그 빈틈을 타서 침입(侵入=寇暴-적이 쳐들어오는 것)하면, 인심이 동요하여, 몇 개의 성은 온전히 할 수 있더라도, 그 나머지는 다시 소유할 수 없을 것인데, 장군께서는 어디로 돌아가시렵니까? 또한 예전에 서주를 토벌하여 (장군께서 그들에게) 징벌을 엄하게 실행하셨으니, 그 자제(子弟)들은 부형(父兄)이 (받은) 치욕을 생각하고, 반드시 그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지키고자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를 깨트린다 하더라도 오히려 보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들이 만약 두려워하여 서로 결탁한다면, 모두 안팎[表裏-단결한다는 뜻]이 되어, 보루를 견고히 쌓고[堅壁] 들판을 말끔히 하여[淸野-들의 수확물을 모두 거둬들여 쳐들어온 적이 양식으로 삼지 못하게 하는 전술] 장군을 기다릴 것이니, 장군께서 공격하여도 함락시키지 못하고, 약탈하려해도 빼앗을 것이 없어 열흘을 지나지 않아 10만의 군사가 싸우지 않아도 절로 곤란하게 될 것입니다. 무릇 일은 본래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는 것에 있어[선택하는 것에 있어서 라는 뜻], 한 때의 형세(形勢)를 저울질[權]하여 하는 것입니다. 원컨대 장군께서는 숙고(熟考) 하십시오.” 하였다. 조조가 이에 익은 보리를 전부 거두고, 다시 여포와 더불어 싸웠다. 여포가 패주(敗走)하자, 이로써 모든 현(縣)들을 나누어 안정시키니, 연주는 마침내 평정되었다.

① 高祖距項羽, 常留蕭何守關中.

고조(高祖)가 항우(項羽)와 대치할 때, 항상 소하(蕭何)를 남겨두어 관중(關中)을 지키게 하였다.

② 曹操初從東郡守鮑信等迎領兗州牧, 遂進兵破黃巾等, 故能平定山東也.

조조는 처음에 동군수(東郡守) 포신(鮑信)등을 따라 연주목(兗州牧)을 맡았다가[領], 마침내 진병(進兵)하여 황건적(黃巾賊)등을 격파하니, 그리하여 능히 산동을 평정하게 되었다.



建安元年,獻帝自河東還洛陽,操議欲奉迎車駕,徙都於許。衆多以山東未定,韓暹、楊奉負功恣睢,恣睢,肆怒貌。睢音火季反,又火佳反。史記:「盜跖日殺不辜,暴戾恣睢。」未可卒制。彧乃勸操曰:「昔晉文公納周襄王,而諸侯景從;左傳,卜偃言於晉侯曰:「求諸侯莫如勤王,諸侯信之,且大義也。」晉侯以左師逆王,王入于王城,取太叔於溫,殺之於隰城,遂定霸業,天下服從也。漢高祖為義帝縞素,而天下歸心。項羽殺義帝於郴,高祖為義帝發喪。高祖大哭,發使告諸侯曰:「天下共立義帝,北面事之。今項羽放殺義帝,大逆無道,寡人親為發喪,兵皆縞素。」自天子蒙塵,蒙,冒也。左傳臧文仲曰:「天子蒙塵於外,敢不奔問官守。」將軍首唱義兵,徒以山東擾亂,未遑遠赴,雖禦難於外,乃心無不在王室。尚書曰:「雖爾身在外,乃心無不在王室。」乃,汝也。今鑾駕旋軫,鄭玄注周禮曰:「軫,輿後橫木也。」東京榛蕪,義士有存本之思,兆人懷感舊之哀。誠因此時奉主上以從人望,大順也;秉至公以服天下,大略也;扶弘義以致英俊,大德也。四方雖有逆節,其何能為?韓暹、楊奉,安足恤哉!若不時定,使豪桀生心,後雖為慮,亦無及矣。」操從之。


及帝都許,以彧為侍中,守尚書令。操每征伐在外,其軍國之事,皆與彧籌焉。彧又進操計謀之士從子攸,魏志,荀攸字公達。太祖素聞攸名,與語大恱,謂彧曰:「公達非常人,吾得與計事,天下當何憂哉?」及鍾繇、郭嘉、魏志,嘉字奉孝,潁川人也。戲志才,籌畫士也,太祖甚器之,早卒。太祖與彧書曰:「自志才亡後,莫可與計事者。汝、潁固多竒士,誰可以繼之?」彧薦嘉,召見論天下事,太祖曰:「使孤成大業者,必此人也。」陳羣、杜襲、襲字子緒,潁川人。荀彧薦襲,太祖以為丞相軍謀祭酒,魏國建,為侍中。司馬懿、懿字仲達,即晉宣帝。戲志才等,皆稱其舉。唯嚴象為楊州,三輔決錄曰:「象字文則,京兆人。少聦博有膽智,為楊州刺史。後為孫策廬江太守李術所殺。」韋康為涼州,後並負敗焉。康字元將,京兆人。父端,從涼州牧徵為太僕,康代為涼州刺史,時人榮之。後為馬超所圍,堅守歷時,救軍不至,遂為超所殺。


袁紹旣兼河朔之地,有驕氣。而操敗於張繡,魏志,張繡在南陽降,旣而悔之,而復反。操與戰,軍敗為流矢所中。紹與操書甚倨。 陳琳為紹作檄書曰:「操祖父騰饕餮放橫,父嵩乞匄攜養,操贅閹遺醜。」並倨慢之詞也。操大怒,欲先攻之,而患力不敵,以謀於彧。彧量紹雖強,終為操所制,乃說先取呂布,然後圖紹,操從之。三年,遂擒呂布,定徐州。


五年,袁紹率大衆以攻許,操與相距。紹甲兵甚盛,議者咸懷惶懼。少府孔融謂彧曰:「袁紹地廣兵彊,田豐、許攸智計之士為其謀,先賢行狀:「豐字元皓,鉅鹿人。天姿瓌傑,權略多竒。」許攸字子遠。審配、逢紀盡忠之臣任其事,配字正南,魏郡人。忠烈慷慨,有不可犯之色。紹領兾州,委配腹心之任。英雄記曰:「紀字元圖。初,紹去董卓,與許攸及紀俱詣兾州,紹以紀聦達有計策,甚信之。」顏良、文醜勇冠三軍,統其兵,殆難克乎?」彧曰:「紹兵雖多而法不整,田豐剛而犯上,許攸貪而不正,審配專而無謀,逢紀果而自用,顏良、文醜匹夫之勇,可一戰而擒也。」後皆如彧之籌,事在袁紹傳。


操保官度,官度,即古之鴻溝也。於滎陽下引河東南流,其所保處在今鄭州中牟縣北官度口是也。與紹連戰,雖勝而軍糧方盡,與彧議,欲還許以致紹師。致猶至也。兵法曰:「善戰者,致人不致於人。」彧報曰:「今穀食雖少,未若楚漢在滎陽、成皐閒也。是時劉項莫肯先退者,以為先退則埶屈也。高祖與項羽於滎陽、成皐閒,乆相持不決,後羽請鴻溝以西為漢而退,高祖遂乘羽,敗之垓下,追殺之。公以十分居一之衆,言與紹衆寡相懸也。畫地而守之,言畫地作限隔也。鄒陽曰:「畫地而不敢犯。」搤其喉而不得進,搤音戹。搤謂捉持之也。已半年矣。情見埶竭,必將有變,此用竒之時,不可失也。」操從之,乃堅壁持之。遂以竒兵破紹,紹退走。封彧萬歲亭侯,邑一千戶。


六年,操以紹新破,未能為患,但欲留兵衞之,自欲南征劉表,以計問彧。彧對曰:「紹旣新敗,衆懼人擾,今不因而定之,而欲遠兵江漢,若紹收離糾散,糾,合也。乘虛以出,則公之事去矣。」操乃止。


九年,操拔鄴,自領兾州牧。有說操宜復置九州者,以為兾部所統旣廣,則天下易服。操將從之。彧言曰:「今若依 古制,是為兾州所統,悉有河東、馮翊、扶風、西河、幽、并之地也。公前屠鄴城,海內震駭,各懼不得保其土宇,守其兵衆。今若一處被侵,必謂以次見奪,人心 易動,若一旦生變,天下未可圖也。願公先定河北,然後脩復舊京,南臨楚郢,責王貢之不入。天下咸知公意,則人人自安。須海內大定,乃議古制,此社稷長乆之 利也。」操報曰:「微足下之相難,所失多矣!」遂寑九州議。


十二年,操上書表彧曰:「昔袁紹作逆,連兵官度,時衆寡糧單,圖欲還許。尚書令荀彧深建宜住之便,遠恢進討之略,恢,大也。起發臣心,革易愚慮,堅營固守,徼其軍實,徼,邀也,音古堯反。遂摧撲大寇,濟危以安。紹旣破敗,臣糧亦盡,將舍河北之規,改就荊南之策。彧復備陳得失,用移臣議,故得反斾兾土,左傳:「南轅反斾。」杜預曰:「軍門前大旂。」克平四州。謂兾、青、幽、并也。向使臣退軍官度,紹必鼓行而前,鼓行謂鳴鼓而行,言無所畏也。敵人懷利以自百,各規利,人百其勇也。臣衆怯沮以喪氣,沮,止也。有必敗之形,無一捷之埶。捷,勝也。復若南征劉表,委弃兖、豫,飢軍深入,踰越江、沔,沔即漢水也。孔安國曰:「漢上為沔。」利旣難要,將失本據。而彧建二策,以亡為存,以禍為福,謀殊功異,臣所不及。是故先帝貴指縱之功,薄搏獲之賞;搏,擊也。高祖旣殺項羽,論功行封,以蕭何為最,功臣多不服。高祖曰:「諸君知獵乎?夫獵追殺獸者,狗也,而發縱指示獸者,人也。諸君徒能追得獸耳,功狗也。至如蕭何,發指示,功人也。」「縱」或作「蹤」,兩通。古人尚帷幄之規,下攻拔之力。張良未甞有戰鬬功,高帝曰:「運策帷幄中,決勝千里外,子房功也。」自擇齊三萬戶以封之。原其績効,足享高爵。而海內未喻其狀,所受不侔其功,侔,等也。臣誠惜之。乞重平議,增疇戶邑。」前書曰:「復其後代,疇其爵邑。」音義曰:「疇,等也,使其後常與先人等也。」彧深辭讓。操譬之曰:「昔介子推有言:『竊人之財,猶謂之盜。』左傳介子推,晉文公臣。況君竒謨拔出,興亡所係,可專有之邪?操不專功,欲分之於彧也。雖慕魯連冲高之迹,記曰,趙欲尊秦為帝,魯連止之,平原君乃欲封魯連。連笑曰:「所貴於天下之士,為人排患釋難解紛而無取也。即有取者,是商賈之士也,而連不忍為也。」將為聖人達節之義乎!」左傳曰:「聖達節,次守節。」於是增封千戶,并前二千戶。又欲授以正司,彧先守尚書令,今欲正除也。彧使荀攸深自陳讓,至于十數,乃止。操將伐劉表,問彧所策。彧曰:「今華夏以平,荊、漢知亡矣,可聲出宛、葉而閒行輕進,以掩其不意。」操從之。會表病死。魏志,操如彧計,表子琮以州逆降。


十七年,董昭等昭字公仁,濟陰人也。欲共進操爵國公,九錫備物,禮含文嘉曰:「九錫一曰車馬,二曰衣服,三曰樂器,四曰朱戶,五曰納陛,六曰虎賁百人,七曰斧鉞,八曰弓矢,九曰秬鬯,謂之九錫。錫,與也,九錫皆如其德。」左傳曰:「分魯公以大路大旂,夏后氏之璜,封父之繁弱,祝宗卜史,備物典策。」密以訪彧。彧曰「曹公本興義兵,以匡振漢朝,雖勳庸崇著,猶秉忠貞之節。君子愛人以德,不宜如此。」事遂寑。禮記曰「君子之愛人也以德,細人之愛人也以姑息」也操心不能平。會南征孫權,表請彧勞軍于譙,因表留彧曰:「臣聞古之遣將,上設監督之重,下建副二之任,史記,齊景公以田穰苴為將軍,扞燕。苴曰:「臣素卑賤,擢之閭伍之中,加之大夫之上,士卒未附,百姓不信,權輕,願得君之寵臣,國之所尊,以監軍,乃可。」景公許之,使莊賈往。即監督之義也。所以尊嚴國命,謀而鮮過者也。左傳曰:「謀而鮮過,惠訓不倦。」臣 今當濟江,奉辭伐罪,宜有大使肅將王命。文武並用,自古有之。使持節侍中守尚書令萬歲亭侯彧,國之望臣,德洽華夏,旣停軍所次,便宜與臣俱進,宣示國命, 威懷醜虜。軍禮尚速,不及先請,臣輒留彧,依以為重。」書奏,帝從之,遂以彧為侍中、光祿大夫,持節,參丞相軍事。至濡須,濡須,水名也,在今和州歷陽縣西南。吳錄曰:「孫權聞操來,夾水立塢,狀如偃月,以相拒,月餘乃退。」彧病留壽春,壽春,縣,屬淮南郡,今壽州郡也。操饋之食,發視,乃空器也,於是飲藥而卒。時年五十獻 帝春秋,董承之誅,伏后與父完書,言司空殺董承,帝方為報怨。完得書以示彧,彧惡之,隱而不言。完以示其妻弟樊普,普封以呈太祖,太祖陰為之備。彧恐事 覺,欲自發之,因求使至鄴,勸太祖以女配帝。太祖曰:「今朝廷有伏后,吾女何得配上?」彧曰:「伏后無子,性又凶邪,往甞與父書,言詞醜惡,可因此廢 也。」太祖曰:「卿昔何不道之?」彧陽驚曰:「昔已甞為公言也。」太祖曰:「此豈小事,而吾忘之!」太祖以此恨彧,而外含容之。至董昭建魏公議,彧意不 同,欲言之於太祖,乃齎璽書犒軍,飲饗禮畢,彧請間,太祖知彧欲言,揖而遣之,遂不得。留之,卒於壽春。帝哀惜之,祖日為之廢讌樂。祖日謂祭祖神之日,因為讌樂也。風俗通曰:「共工氏子曰脩,好遠遊,祀以為祖神。漢以午日祖。」謚曰敬侯。明年,操遂稱魏公云。


論曰:自遷帝西京,山東騰沸,詩曰:「百川沸騰。」天下之命倒縣矣。趙岐注孟子曰:「倒縣猶困苦也。」荀君乃越河、兾,間關以從曹氏。間關猶展轉也。察其定舉措,措,置也。立言策,崇明王略,以急國艱,豈云因亂假義,以就違正之謀乎?言彧本心不背漢也,誠仁為己任,期紓民於倉卒也。紓,緩也,音舒。及阻董昭之議,以致非命,豈數也夫!世言荀君者,通塞或過矣。常以為中賢以下,道無求備,智筭有所研踈,原始未必要末。斯理之不可全詰者也。夫以衞賜之賢,一說而斃兩國。兩國謂齊與吳也。端木賜字子貢,衞人也。田常欲伐魯,仲尼令出使勸田常伐吳,常許之。賜又至吳,請夫差伐齊。又之越,說句踐將兵助吳。又之晉,說以兵待吳伐齊之弊。吳旣勝齊,與晉爭彊,晉果敗吳,越襲其後,遂殺夫差。故子貢一出,存魯,亂齊,破吳,彊晉,霸越。彼非薄於仁而欲之,蓋有全必有喪也,斯又功之不兼者也。子貢不欲違仁義而致晉,但其事不兼濟也。言彧豈願彊曹氏令代漢哉?事不得已也。方時運之屯邅,易曰:「屯如邅如。」邅音竹連反。非雄才無以濟其溺,功高埶彊,則皇器自移矣。謂魏太祖功業大而神器自歸也。此又時之不可並也。蓋取其歸正而已,亦殺身以成仁之義也。


贊曰:公業稱豪,駿聲升騰。權詭時偪,謂詭辭以對卓。揮金僚朋。揮,散也。北海天逸,音情頓挫。逸,縱也。頓挫猶抑揚也。越俗易驚,孤音少和。直轡安歸,高謀誰佐?直轡,直道也。言其道無所歸,謀謨之高欲誰佐也。彧之有弼,誠感國疾。功申運改,迹疑心一。迹若可疑,心如一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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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2013.10.15
23:43:11
(*.65.131.125)
이 후한서 순욱전은 번역이 중단된 건가요?

코렐솔라

2013.10.16
00:11:00
(*.166.245.166)
제가 구한 글이 아니라 전 잘 모르겠군요. 다만 번역이 끝까지 다되어 있지 않은 것은 맞아 뒤의 부분은 원문을 채워넣었습니다. 불편을드려 죄송합니다.

재원

2013.10.16
14:17:25
(*.14.120.102)
하다 말은 버전이 파성넷에 있었습니다.

숨은바람

2018.03.17
21:14:38
(*.142.69.185)
조조 진영에서 가장 비중 있는 인물이 순욱입니다
누군가,,,,, 완역을 부탁드립니다

무명

2018.03.19
18:03:20
(*.66.61.251)
완전히 만족은 못하시겠지만 정태, 공융과 함께 첨부된 후한서 순욱전 일어판입니다.(진서도 파자 ㅠㅠ)
http://www.geocities.co.jp/Playtown-Spade/4838/g_kan70retu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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