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처사군님의 블로그


육강陸康의 자는 계녕季寧으로, 오군吳郡 오 사람이다. 조부 육속陸續은, 독행전獨行傳에 기록이 있다. 부친 육포陸襃는, 지조가 있어, 연이어 징소하나 이르지 않았다.

 

육강은 어려서 군郡에서 벼슬했는데, 의기가 장렬하다고 칭송돼, 자사刺史 장민臧旻이 무재茂才로 추거하여, 고성령高成令에 제수됐다. 현은 변경에 있었는데, 이전의 제도에선, 호마다 한 사람이 궁노를 갖추고 불우한 일을 대비하게 해, 왕래할 수 없었다. 장리長吏가 새로 이르면, 번번이 백성을 징발해 성곽을 보수했었다. 육강이 이른 후, 모두 그만두며 보내주니,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은혜와 신의로 다스려, 도적 또한 그쳐, 주군에선 그의 공적을 상표하였다. 광화光和 원년, 무릉태수武陵太守로 승진했고, 계양桂陽, 낙안樂安 2 군으로 전임되며 다스렸는데, 머무는 곳마다 그를 칭송하였다. 

 

당시 영제靈帝가 동인銅人을 만들고자 했으나, 국가의 비용이 부족하여, 이에 조서로 백성의 농토를 조사해, 이랑마다 10 전을 거두게 했다. 그러나 장마와 가뭄이 농작물을 해쳐, 백성들이 가난하고 고생스러웠었다. 육강이 상소하여 간하길 : “신이 듣기로 선왕께선 세상을 다스리며,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부역을 덜고 부세를 경감해서, 천하를 편안하게 하였고, 번거로움을 덜어주고 생략하며, 간단하고 쉬운 것을 중시했기에, 만민이 귀복했고, 영물도 덕에 응하였습니다. 말세의 쇠미한 임금은, 매우 호화롭게 사치하며, 일을 꾸밈이 끝이 없고, 제도를 일으킴이 하나가 아니라, 아랫사람을 힘들게 하며 해치고, 구차한 욕망을 쫓았기에, 백성은 탄식했고, 음양이 부딪혔습니다. 폐하의 성덕은 하늘을 받들어, 응당 교화가 융성해야 되나, 갑자기 조서를 받아보니, 이랑마다 농토의 세금을 거두게 하여, 동인을 만들려고 해, 엎드려 읽어본 후 애통하여, 비통한 마음에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게 됐습니다. 대저 열에 하나를 세금으로 거두니, 주周에선 이를 철徹이라고 일렀습니다. 철이란 통한다는 것으로, 그 법도가 만세에 통해 행해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선魯宣공이 이랑에 세금을 물어서, 메뚜기의 재앙이 이로 인해 발생했고, 애공哀公이 부세를 늘려서, 공자孔子가 이를 비난했습니다. 어찌 백성의 재물을 빼앗아, 쓸모 없는 동인을 만들 수 있겠으며, 성인의 경계를 저버리고, 스스로 망한 왕의 법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전傳에서 이르길 : ‘임금의 거동은 반드시 기록하는데, 기록해도 법도에 맞지 않으면, 후세에 어찌 따르겠는가?’ 폐하께선 의당 유의하고 성찰하셔, 폐해를 고치고 선을 따라, 만민의 원망을 막으셔야 하옵니다.” 상소를 쓰니, 조정의 총애받던 이가 이로 인해 육강이 망국을 인용하여, 임금의 총명에 비유해, 매우 불경하니, 함거에 가둬 정위廷尉에게 보내야 한다고 참소했다. 시어사侍御史 유대劉岱가 그 일을 맡아 살피고, 유대는 그를 위해 상표하여 풀어주라고 말해, 면직돼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다시 징소돼 의랑議郎에 임명됐다. 

 

때마침 여강廬江의 도적 황양黃穰 등이 강하만江夏蠻과 더불어 결합해 10여 만 명이었는데, 4 현을 공격해 함락해서, 육강을 여강태수로 임명하였다. 육강이 상벌을 자세히 밝히고, 황양 등을 격파하니, 잔당이 모두 항복했다. 황제가 그의 공을 기려, 육강의 손자 육상陸尚을 낭중郎中으로 임명했다. 헌제獻帝가 즉위하고, 천하가 크게 어지러웠는데, 육강은 위험을 무릅쓰고 효렴孝廉, 계리計吏를 파견해 조정에 공물을 바쳐, 조서로 상을 주고 위로하며, 충의장군忠義將軍을 더해줘, 관질이 중이천석中二千石이었다. 당시 원술袁術이 수춘壽春에 병사를 주둔시켰는데, 부곡이 굶주려, 사자를 파견해 병갑兵甲을 운송해주길 구했다. 육강은 그가 반역자라서, 문을 닫고 통하지 않으며, 안으로는 전쟁할 준비를 갖추어서, 장차 그를 막으려 했다. 원술이 대노하여, 그의 장수 손책孫策을 파견해 육강을 공격하게 하여, 성을 여러 겹 포위했다. 육강이 고수하니, 관리와 병사 중 이전에 휴가였던 이는, 모두 숨어서 돌아와, 한밤중에 성을 기어올라 들어왔다. 적을 맞이한지 2년이 지나, 성이 함락됐다. 한 달 남짓 지나, 발병해 죽으니, 향년 70이었다. 종족 백여 명은 굶주리며 고생하다, 죽은 이가 대략 반이었다. 조정에서 그의 절개를 지킴을 가엾게 여겨, 자식 육준陸儁을 낭중으로 임명했다.

 

어린 자식 육적陸績은, 오吳를 섬겨 울림태수鬱林太守가 됐는데, 박학하며 선정을 펼쳐, 당시에 칭송됐다. 어릴 때 일찍이 원술을 뵈러 가, 귤을 품다 땅에 떨어뜨린 것으로, 명성이 있었다.

조회 수 :
3238
등록일 :
2014.01.02
11:35:31 (*.52.91.73)
엮인글 :
http://rexhistoria.net/history_LaterHan/79078/fb1/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rexhistoria.net/79078

venne

2014.01.03
13:18:17
(*.36.149.5)
육적입장에서 원술은 애비죽인 원수나 다름없는데 육적회귤의 고사가 어떻게 일어난걸까요?

손책이 강동점거한건 194년이고 그전에 육강이 2년이나 싸우다 죽은건데, 싸우는 중에 방문할리는 없고.. 그 전이면 육적이 너무 어리고.. 그 후면 애비죽인 원수인데.. 뭐가 이렇게 꼬이죠?

코렐솔라

2014.01.03
14:36:02
(*.52.91.73)
그러게요. 타임라인이 엄청 꼬이게 되는데요? 제가 보기에 아마 위키에 있는 육강과 육적의 생몰년도 표기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에 따르면 손책이 강동에 출별한 이후에 육강이 죽어야 하니;; 그리고 육적의 나이는 6살이었으니 웬만큼 앞에 잡아도 문제 없을 것 같기는 하군요.

아니면 아버지가 죽은 다음이라도 일족을 위해 못할 것도 아니라고 보긴 합니다. 자기 자신도 원수의 동생 밑에서 관직을 지냈고 육손은 원수의 딸과 결혼했으니;;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후한서 목차링크 [2] 재원 2013-07-26 17739
137 개연열전 한은 2016-07-24 1051
136 곽옥열전 사마휘 2015-08-27 2006
135 허양열전 사마휘 2015-08-23 1873
134 원비열전 코렐솔라 2013-12-14 2499
133 원충열전 코렐솔라 2013-12-14 2373
132 원굉열전 코렐솔라 2013-12-14 3080
131 원창열전 코렐솔라 2013-12-14 2376
130 원외열전 코렐솔라 2013-12-14 2535
129 원봉열전 코렐솔라 2013-12-14 2360
128 원탕열전 코렐솔라 2013-12-14 2542
127 원경, 원팽열전 코렐솔라 2013-12-14 2395
» 육강열전 [2] 코렐솔라 2014-01-02 3238
125 조전열전 장기튀김 2013-11-29 2274
124 서강열전 -전량 코렐솔라 2013-11-21 2579
123 서강열전 -무익원검 코렐솔라 2013-11-21 2226
122 서강열전 -전사 코렐솔라 2013-11-21 3004
121 남만서남이열전 -백마저 코렐솔라 2013-11-21 2333
120 정중열전 코렐솔라 2013-11-19 2294
119 채륜열전 코렐솔라 2013-11-19 2457
118 조등열전 코렐솔라 2013-11-19 2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