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처사군님의 블로그


이해 곡식이 1 곡斛에 50여 만 전이었고, 사람이 서로 잡아먹어, 이에 관병 중 새로 모집한 이를 내보냈다. 도겸이 죽어, 유비가 그를 대신했다. 2년 봄, 정도定陶를 습격했다. 제음태수濟陰太守 오자吳資가 남쪽 성을 지켜, 

 

제음군의 치소 정도는, 주가 앞에 보인다.

 

고조우顧祖禹가 이르길 : 제음성은 본래 정도현 땅이다.

 

어떤 이가 이르길 : 한漢의 제음군 또한 이곳을 치소로 해, 세속에선 이를 좌성左城이라고 일렀으니, 좌측 산 남쪽에 있어서다. 후위後魏에선 이를 효창성孝昌城이라고 일렀다.

 

심흠한沈欽韓이 이르길 : 물러나 남쪽 성을 지킨 것은, 혹 이 곳일지도 모른다.

 

조일청이 이르길 : 남쪽 성은, 바로 정도의 남쪽 성이다.

 

함락하지 못했다. 때마침 여포가 이르러, 다시 그를 격파했다. 여름, 여포의 장수 설란薛蘭, 이봉李封이 거야钜野에 주둔해,

 

군국지 : 연주 산양군山陽郡 거야에, 대야택大野澤이 있다. 

 

유소주劉昭注 : 춘추春秋에선 서쪽으로 사냥하여 기린을 잡은 곳이라고 했다. 이아爾雅에선 10 수薮가 있는데, 노魯가 대야를 가졌다고 했다.

 

하승천何承天이 이르길 : 거야의 호택湖澤은 광대해, 남으론 수洙, 사泗와 통하고, 북으론 청清, 제濟와 이어진다. 옛 현의 옛 성은, 바로 택 안에 있다.

 

일통지 : 거야의 옛 성은, 지금의 산동 조주부 거야현 남쪽이다.

 

신당서新唐書 재상세계표宰相世系表 3 하에서 설薛 성姓 조목 아래 : 연주별가兖州別駕 설란은, 조조에게 살해당했다. 자식 설영薛永은, 자가 무장茂長으로, 촉선주蜀先主를 따라 촉에 들어가, 촉군태수가 됐다. 설영이 설제薛齊를 낳았는데, 자가 이보夷甫로, 파巴, 촉 2군 태수였고, 촉이 망하고, 호戶 5천을 거느리고 위魏에 항복해, 광록대부光祿大夫에 임명됐고, 하동河東 분음汾陰으로 옮겨, 세속에선 촉설蜀薛이라고 불렀다. (본래는 오금화가 인용한 것이다.)

 

내가 살피길 : 범서範書 당고열전黨锢列傳 아래에 산양의 장검張儉의 동향인으로 설란이 있는데, 이곳과의 거리가 멀지 않으니, 이와 같은 사람이라고 매우 의심된다. 즉 여포가 설란을 별도로 거야에 주둔시킨 것은, 아마도 그가 본군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계표에 근거하면, 여포의 장수 설란의 증조부 설고薛固가 산양태수이니, 또한 이때에 거처를 옮겼던 것인가?

 

태조가 이를 공격하니, 여포가 설란을 구원하나, 설란은 패하여, 여포는 달아났고,

 

역배기가 이르길 : 패敗를, 통지通志에선 방放이라고 썼다.

 

마침내 설란 등을 참살했다.

 

이전전李典傳 : 여포의 별가 설란, 치중治中 이봉이 이건李乾을 불러, 함께 배반하고자 하나, 이건이 듣지 않아, 마침내 이건을 죽였다. 태조가 이건의 자식 이정李整에게 이건의 병사를 거느리게 하고, 여러 장수와 설란, 이봉을 공격했다. 설란, 이봉이 격파됐고, 연주의 여러 현을 평정하는데 종군해 공을 세웠다.

 

순욱전 : 도겸이 죽어, 태조는 마침내 서주를 취하고, 돌아와 여포를 평정하고자 했다. 순욱이 이르길 : “하河, 제濟는 천하의 요지고, 지금 이미 이봉, 설란을 격파했으니, 만약 병사를 나눠 동으로 진궁을 공격한다면, 일거에 여포는 격파될 것입니다.” 태조가 이에 그만뒀다. 다시 여포와 싸우고, 병사를 나눠 여러 현을 평정했다. 여포가 패주해, 연주는 마침내 평정됐다.

 

이에 연주가 평정됨은, 순욱, 정욱의 공이다.

 

여포가 다시 동민東缗에서부터

 

군국지 : 산양군 동민이다. 일통지 : 동민의 옛 성은, 지금의 산동 제녕주濟甯州 근향현金鄉縣 동북쪽 20리다.

 

진궁과 만 여명을 거느리고 와서 싸웠는데, 당시 태조의 병사가 적어, 복병을 설치해, 기병奇兵을 풀어 공격하여, 대파하였다.

 

하후돈전夏侯惇傳 : 태조가 서주에서부터 돌아와, 하후돈은 여포를 정벌하는데 종군하다, 유시에 적중당해, 왼쪽 눈을 다쳤다.

 

위략魏略에서 이르길 : 군중에선 맹하후盲夏侯라고 불렀다.

 

위서에서 이르길 : 이때에 병사는 모두 나가서 보리를 취하느라, 남은 이가 천 명을 넘지 못해,

 

원본元本에선 능能을 급及이라고 썼다.

 

오금화가 이르길 : 능 자는 오자가 아니다. 원본에서 급이라고 쓴 것은, 응당 주관적으로 고쳐 쓴 것이다. 불능은, 불급을 말하는 것과 같다.

 

둔영은 견고하지 못했다. 태조가 이에 부인들에게 성가퀴를 수비하게 하고, 모든 병사로 그를 막았다. 둔 서쪽에 큰 둑이 있었고, 그 남쪽 수목이 깊숙하고 그윽했다. 여포는 복병이 있을까 의심하여, 곧 서로 이르길 : “조조는 속임수가 많으니, 복병 가운데로 들어가지 마라.” 군을 이끌고 남쪽 10여 리에 주둔했다. 다음날 다시 오니, 태조는 병사를 둑 안에 숨기고, 병사의 반은 둑 밖으로 내었다. 여포가 더욱 다가와, 곧 경병輕兵으로 도전하게 했다. 합전하고 나서, 복병이 곧 모두 둑으로 올라가,

 

한서음의漢書音義에서 이르길 : 승乘은, 등登이다.

 

보기가 나란히 나아가며, 대파하고, 그들의 북수레를 얻었고,

 

역배기가 이르길 : 북수레를, 소흥본紹興本에선 용거龍車라고 썼다.

 

그들의 영까지 추격했다가 돌아왔다.

 

하작이 이르길 : 여포는 아마도 타인에게 복병을 조사하게 했으나, 병사가 없음을 보고, 다시 온 것이다. 조조는 그가 그럴 거라고 미리 헤아려, 복병을 설치하고 기다렸다. 여포의 병사는 둑에 오른 자가 갑자기 일어남을 보고, 나온 이들이 뜻밖이라, 기운이 빠져, 마침내 격퇴당했다.

 

여포가 밤에 달아나, 태조는 다시 공격해, 정도를 함락시키고, 병사를 나눠 여러 현을 평정했다. 여포는 동으로 유비에게 달아났고,

 

유비는 당시 도겸을 대신해 서주목이 됐다.

 

장막은 여포를 따르며, 그의 동생 장초張超에게 가속을 거느리고 옹구雍丘를 지키게 했다.

 

군국지 : 연주 진류군 옹구다. 본래 기국杞國이다.

 

일통지 : 옹구의 옛 성은, 지금의 하남 개봉부 기현 치소다.

 

가을 8월, 옹구를 포위했다. 겨울 10월, 천자가 태조를 연주목으로 임명했다.

 

전대소가 이르길 : 초평 3년, 포신이 주리州吏 만잠萬潛 등과 동군에 이르러, 태조를 맞이하며 연주목을 겸하게 한 것은, 대략 임시로 이를 거느리게 한 것일 뿐이다. 이 때에 이르러 진짜가 됐다.

 

노필이 살피길 : 이는 동소董昭가 위무제를 위해 서신을 써 장안의 여러 장수에게 보내, 각각 경중輕重을 따르며 성심성의를 다한 효과 덕분이다.

 

12월, 옹구가 무너져, 장초는 자살했다. 장막의 삼족을 멸했다. 장막은 원술에게 이르러 도움을 청하려 하나, 그의 무리에게 살해당했고, 연주가 평정돼,

 

모본에선 연兖을 곤衮이라고 썼으니, 오자다.

 

마침내 동으로 진陳 땅을 침략했다.

 

진 땅은 연주 서남쪽에 있는데, 여기선 동으로 침략했다고 이르니, 동 東자는 아마도 오자다.

 

군국지 : 예주 진국은, 치소가 진이다.

 

일통지 : 진현의 옛 성은, 지금의 하남 진주부陳州府 회녕현淮甯縣 치소다.

 

이해, 장안이 어지러워, 천자가 동으로 떠나나, 조양曹陽에서 패하여,

 

후한서 헌제기 : 왕사王師가 패해, 조양으로 행차했다.

 

소여蘇輿가 이르길 : 이는 춘추春秋의 서법을 따른 것으로, 당시에 천자는 병사가 없었는데, 사실이 아닌 것을 칭했다.

 

장회주 章懷注 : 조양은 계곡의 이름이다. 지금의 섬주陝州 서남쪽 7리에 있으니, 속세에선 이를 칠리간七裏澗이라고 일렀다. 최호崔浩가 이르길 : “남쪽 산에서부터, 북으로 하河에 통한다.”

 

군국지 : 사례 홍농군 홍농에, 조양정曹陽亭이 있다.

 

유소주劉昭注에서 인용한 진작晉灼이 이르길 : 현 동쪽 13리가, 헌제가 동으로 돌아오다 패한 곳으로, 조공이 호양好陽으로 고쳤다.

 

왕선겸王先謙이 이르길 : 조양은 지금 하남 섬주 영보현靈寶縣 동쪽에 있다.

 

현지 縣志 : 10리를 가면 호양포好陽鋪다.

 

동탁전에 상호 보인다.

 

하를 건너 안읍安邑으로 행차했다.

 

군국지 : 사례 하동군 안읍이다.

 

일통지 : 안읍의 옛 성은, 지금의 산서 해주解州 하현夏縣 북쪽이다.

 

범서 동탁전 : 하내태수河內太守 장양張楊이 건량을 바쳤다. 황제가 곧 안읍을 도읍으로 하였다.

 

건안 원년 봄 정월, 태조의 군이 무평武平으로 임하니,

 

군국지 : 진국陳國 무평이다.

 

일통지 : 무평의 옛 성은, 지금의 하남 귀덕부歸德府 녹읍현鹿邑縣 서북쪽 40리다.

 

관본 고증에서 이르길 : 태평어람 太平禦覽 에는 평 平 자가 없다.

 

노문초盧文弨가 이르길 : 무평은, 현 이름으로, 진국에 속했으니, 바로 아랫글의 “진상陳相이 항복했다”와 서로 맞다. 이 책에서 말한 맹진孟津, 관도官渡에 임한 류로, 하나뿐이 아니고 아주 많은 경우인데, 어찌 임무臨武를 지명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

 

심가본이 이르길 : 윗글에서 “동으로 진 땅을 침략했다”고 했고, 무평은 이미 진의 속현이니, 즉 금본에서 평 平 자가 있음이 옳다. 어람은 덜어내고 요약함이 많아, 혹 서로 돌려가며 베껴 씀이 잘못돼 빠진 것일지도 모른다.

 

노필이 살피길 : 노씨, 심씨의 두 설이 모두 옳으니, 아랫글의 “무평후武平候에 봉하다”가, 바로 이곳이다.

 

원술이 배치한 진상 원사袁嗣가 항복했다. 태조가 장차 천자를 영접하려니, 여러 장수 중 어떤 이는 머뭇거렸으나, 순욱, 정욱이 이를 권해, 곧 조홍을 파견해 군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가 영접하게 했으나,  

 

문약文若이 영접하길 권한 것은, 바로 한실漢室을 생각한 것이었기에, 욱전 彧傳 에서 그가 영접하길 권한 말을 상세하게 실었다. 중덕仲德이 영접하길 권한 것은, 천자를 끼고서 제후를 호령하려는 것으로, 조조를 위해 도모한 것이니, 조조에게 유비를 죽이도록 설득한 것과 동일한 의도이다. 당시 조조에게 한제漢帝를 영접하게 권한 자는, 또한 정충丁沖이 있다. 조조가 동으로 허許에 이르러, 정충을 사례교위司隸校尉로 삼음은, 진사왕전 陳思王傳 의 주에서 인용한 위략에 보인다. 정충은, 정의 丁儀, 정이丁廙의 부친이다. 

 

위장군衛將軍 동승董承과 원술의 장수 장수 장노苌奴가 요해지를 막아, 

 

통감에선 요해지에 근거해 그를 막았다고 적었다.

 

조홍은 나아갈 수 없었다.

 

통감고이에서 이르길 : 위지에선 이 일이 정월인데, 순욱전에선 천자를 영접함이 낙양에 도읍한 후라, 지금은 열전을 따른다.

 

조일청이 이르길 : 후한서 동탁전에선 “동승이 한섬韓暹의 어지러운 정치를 근심하여, 조조를 몰래 불렀다”라고 말하나, 여기선 동승이 조홍을 막았다고 이르니, 두 글이 같지 않다. 그러나 조공을 부름이, 본래 양봉을 추방하려고 도모한 것임은, 동소전 董昭傳 에서 살필 수 있다.

 

여남, 영천의 황건 하의何儀, 유벽 劉辟, 황소 黃邵, 하만何曼 등은, 무리가 각각 수만으로, 처음에 원술에게 호응했고, 다시 손견을 따랐다. 2월, 태조가 진군해 토벌하고 격파해, 유벽, 황소 등을 참살하니,

 

관본 고증의 이룡관李龍官이 이르길 : 건안 5년, 여남의 항복한 도적 유벽 등이 배반했으니, 즉 이 때는 아직 참살하지 않았다. 또한 우금전 于禁傳 에서도 “유벽, 황소 등을 참살했다”라고 이르나, 아마도 오자가 있는 것이다. 하작의 교정본에선 벽 辟 자를 잘못 덧붙인 거라고 했으니, 참으로 옳다.

 

전대흔이 이르길 : 유벽은 또한 촉선주전에 보이니, 본기의 글에 오자가 있는 것이다.

 

심가본이 이르길 : 이 글은 아마도 본래 “황소 등을 참살하니, 유벽, 하의와 무리가 모두 항복했다”라고 이른 것이나, 서로 돌려가며 베껴 쓰다 뒤섞여 어지러워진 것이다. 벽 辟 자가 소 邵 자의 위에 잘못있게 된 것이다.

 

하의와 그의 무리가 모두 항복했다. 천자가 태조를 건덕장군建德將軍으로 임명했고, 여름 6월, 진동장군鎮東將軍으로 승진시키며, 

 

조일청이 이르길 : 건덕은, 대략 잡호장군雜號將軍으로, 후에 다시 설치하지 않았다.

 

송서 백관지 : 진동장군은, 후한 말 위무제가 이를 차지했다.

 

속백관지 續百官志 주 : 헌제가 조조를 남중랑장南中郎將으로 삼았다.

 

내가 살피길 : 이는 노씨가 관본의 잘못에 근거한 것으로, 다른 본의 속지 續志 주에선 “헌제가 조식曹植을 남중랑장으로 삼았다”라고 썼다. 송백관지에서 “남중랑장은, 한헌제 건안 중, 임치후臨淄侯 조식에게 이를 차지하게 했다”라고 했고, 본지 조식전에서도 “태조가 조식을 남중랑장으로 삼았다”라고 하여, 남중랑장이 된 이는 조식이지 조조가 아님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비정후費亭侯에 봉했다.

 

비정은, 주가 권수卷首에 보인다.

 

군국지 : 산양군 호륙湖陸이다.

 

유소주에서 인용한 지도기 地道記 에서 이르길 : 현 서쪽에 비정성費亭城이 있으니, 위무제가 처음 봉해진 곳이다.

 

호삼성이 이르길 : 조조의 조부 조등이 비정후에 봉해졌고, 양자 조숭이 습작했다가, 지금 조조에게 조숭의 작위를 물려받게 한 것이다.

 

군국지 : 패국 찬현酂縣에, 비정이 있으니, 조등이 봉해진 곳이다.

 

진지도기 晉地道記 : 호륙현 서쪽에 비정성이 있으니, 위무제가 봉해진 곳이다.

 

하작이 이르길 : 비정은 바로 조등이 이전에 봉해진 곳으로, 유소주에서 지도기를 잘못 인용한 것이다.

 

마여룡馬與龍이 이르길 : 위지에서 “건안 원년, 조조를 비정후에 봉했다”라고 하며, 계승하며 봉했다고 이르지 않았으니, 별도의 비정임을 알 수 있어, 하씨의 설은 옳지 않다.  

 

조일청이 이르길 : 동소전에서 “부친의 작위 비정후를 물려받았다”라고 이르니, 의당 패국에 있었던 것이나, 호륙현의 주대로라면 또한 산양에 있었던 것이다. (전의길錢儀吉의 설도 같다.)

 

노필이 살피길 : 유소주, 호삼성주 모두 두 설을 인용했고, 조씨, 전씨 또한 그러하나, 하씨, 마씨측은 각각 하나의 설을 주장했다. 동소전을 살피니, 양봉楊奉이 여러 장수와 함께 상표하여 조조를 진동장군으로 삼고, 부친의 작위 비정후를 물려받게 했다고 일렀다. (통감도 같다.) 혹 사서의 글에서 봉 封 자는 습 襲 자의 오자일지도 모른다. 예문유취 藝文類聚 권 51에 실린 후한헌제의 두 조서 중, 하나에선 “지금 조조를 진동장군, 영연주목으로 삼고, 부친 비정후 조숭의 작위를 물려받게 하며, 인수印绶와 부절符節, 간책简策을 아우르노라.”라고 일렀고, 또 다른 조서에선 “상장上將을 영예롭게 수여해 부월鈇钺의 소임을 다하게 하고, 옛 땅을 다시 식읍으로 삼게 해, 우수한 금과 같은 은혜를 더하며, 한 주를 감독하고 통솔하게 해, 책임지고 완성할 중임을 위임하노라.”라고 일러, 조조가 상서해 비정후를 사양하며 “이미 신의 미미한 공을 기록하시고도, 다시 선신先臣을 추술하시옵니다. (퇴는 의당 추라고 써야 한다.) 선신이 비록 가마를 떠받치며 미미한 공로가 있었으나, 응당 작위를 받지 않아야 하는데, 어찌 신 삼대까지 이르게 하시옵니까”라고 일렀으니, 조조가 습작함에 근거가 있어, 여러 설의 의심을 풀 수 있다. 또한 그가 받들고 영접하며 공을 세웠고, 다시 무평에 군을 주둔시켰기에, 무평후로 봉했다.

 

가을 7월, 양봉, 한섬이 

 

모본에선 섬 暹 을 ?로 썼으니, 오자다.

 

천자를 데리고 낙양으로 돌아왔다. 

 

헌제춘추에서 이르길 : 천자가 처음 낙양에 이르러, 성 서쪽 옛 중상시中常侍 조충趙忠의 집으로 행차했다. 

 

후한서 환자전 : 조충은, 안평安平 사람이다. 환제 때 소황문小黃門이 됐고, 양기梁冀를 주살하며 공을 세워서, 도향후都鄉侯에 봉해졌다. 영제 때, 중상시로 승진했고, 대장추大長秋를 겸했다. 황제가 항상 이르길 : “장상시張常侍는 내 아버지고, 조상시趙常侍는 내 어머니다.” 환관이 뜻을 이루고, 꺼리고 두려워하는 바가 없게 돼, 나란히 제택第宅을 세우며, 궁실을 모방했다. 영제가 죽고, 장양 張讓, 조충 등은 하진을 죽였다. 원소가 군을 통솔해 조충을 참살했다.

 

장양에게 궁실을 보수하게 하고, 전殿을 양안전楊安殿이라고 이름지었다.

 

후한서 헌제기 : 8월 신축辛丑일, 남쪽 궁의 양안전으로 행차했다.

 

동탁전 : 장양은 자신의 공이라고 여겼기에, 양楊을 전에 이름 붙였다.

 

장회주에서 인용한 헌제기거주 獻帝起居注 에서 이르길 : 오래전 궁전이 모두 파괴돼, 급하게, 옛 기와와 재목을 주워, 공장工匠은 규정없이 지어, 지은 곳이 모두 볼만한 가치가 없었다.

 

8월, 황제가 곧 거처를 옮겼다.

 

양봉은 따로 양梁에 주둔했다.

 

군국지 : 사례 하남윤 양이다.

 

일통지 : 양현의 옛 성은, 지금의 하남 여주汝州 서쪽 40리다.

 

태조가 마침내 낙양에 이르러, 경도를 지키니, 한섬이 달아났다. 

 

후한서 동탁전 : 한섬이 공을 자랑하고 제멋대로 행동해, 동승이 몰래 조조를 부르니, 조조가 이에 대궐에 이르러 공헌했고, 공경 이하에게 보고해, 한섬, 장양의 죄를 상주하였다. 한섬은 주살될까 두려워, 단기로 양봉에게로 달아났다.

 

천자가 태조에게 절월節钺을 하사하고, 녹상서사 錄尚書事 로 삼았다.

 

진서 晉書 직관지 職官志 : 가절 假節 은, 오직 군사軍事에서 군령을 범한 자를 죽일 수 있었다. 가황월 假黃钺 은, 즉 내외의 여러 군을 총통總統하는 것이다. 녹상서사는, 지위가 상공上公으로, 삼공의 위에 있으니, 고대에 총재冢宰가 자신의 직분을 주관하던 의미와 같다.

 

조일청이 이르길 : 이는 조공이 새로운 체제를 만들기 시작하며, 내외를 맡고 아울러, 백관을 총람總覽했기에, 절월을 하사하고 나서, 다시 녹상서사로 삼았다.

 

헌제기 獻帝紀 에서 이르길 : 

 

수서 경적지 : 한의 영靈, 헌獻 두 제기 3권은, 한의 시중 유방劉芳이 지었으나, (방 芳 은 애 艾 의 오자다.) 이지러져서 완전하지 못하다. 양梁 때는 6 권이 있었다.

 

당경적지 唐經籍志 : 한의 영, 헌 두 제기는 6권으로, 유애劉艾가 지었다.

 

당예문지 唐藝文志 도 같다.

 

후강侯康이 이르길 : 수지에선 시중이라고 칭했다. 유애의 관직을 살피니, 시중은 헌제 흥평興平 년간이고, (후한서 헌제기에 보인다.) 다시 섬령陝令이 됐고, (삼국지 동탁전의 주에 보인다.) 동탁의 장사長史가 됐고, (후한서 동탁전에 보인다.) 종정宗正이 됐고, 다시 종정으로서 사지절使持節 행어사대부行禦史大夫가 됐다. (위지 무기 주에 보인다.) 그러나 수지에선 다만 시중이라 칭하는데, 어찌 저서가 흥평 년간에 있었겠는가? 지금 후한서 영기 靈紀, 헌기 獻紀, 동탁전의 주, 삼국지 무기, 동탁, 장양, 가후, 유언, 손견의 여러 전의 주를 살피니, 이 책을 자주 인용하며, 모두 흥평과 건안 초년의 일이고, 유애의 관위가 행어사대부에 이르고는, 후에 다시 그의 사적이 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일찍이 위魏에 들어간 적은 없는 것이다. 헌제란 이름은, 응당 후세 사람이 추가한 것일 뿐이다.

 

요진종姚振宗이 이르길 : 원기 袁紀 에서 “건안 원년 8월, 팽성상彭城相 유애를 열후로 봉했다”라고 하니, 유애는 시중으로 나오며 팽성상이 돼, 후에 봉해졌다가, 다시 들어가서 종정이 된 것이다.

 

또한 이르길 : 장종원章宗源은 초학기 初學記, 어람에서 인용한 한제전 漢帝傳, 헌제전 獻帝傳 을 제시하며 이를 유애에게 돌리며, 당연히 헌 獻 을 한 漢 으로 삼고, 기 紀 를 전 傳 으로 삼았다고, 짝을 이루는 잘못을 인용하며 일컬었다. 헌제전을 살피니 황위를 선양한 많은 일을 실었고, 또한 산양공山陽公이 죽은 것을 말했으니, 당연히 위, 진 사람이 지은 것으로, 별도의 다른 책이다. 유애가 이미 헌제를 위해 기를 지었는데, 다시 전을 지었다는 것은, 필시 그렇지 않다. (요씨의 설은 후한예문지 後漢藝文志 권 2에 보인다.)

 

나머지는 건안 21년 헌제전의 주에 상세하다.

 

또한 사례교위司隸校尉를 겸하게 했다.

 

백관지 : 사례교위는, 한 사람으로, 비이천석 比二千石 이다. 효무제孝武帝가 처음 세웠는데, 부절을 가지고, 백관 이하와 경사의 가까운 군의 범법자를 감찰하고 고발함을 주관했다. 원제元帝가 부절을 거두어 들였다. 성제成帝가 없앴다. 건무建武 중 다시 설치하며, 나란히 한 주를 거느리게 했다. 

 

이조무李祖楙가 이르길 : 건안 원년, 조조가 사례교위를 겸했다. 18년 없앴는데, 거느리던 바는 나눠 옹주雍州에 속하게 했다. 아마도 조조가 이 해에 위공魏公이 돼서, 없앴다.

 

낙양이 잔파殘破돼, 동소 등은 태조에게 허許로 도읍하길 권했다. 

 

군국지 : 예주 영천군 허다.

 

유소주에서 인용한 두예杜預가 이르길 : 헌제가 천도하고, 허창許昌으로 고쳤다.

 

왕영린王英麟이 이르길 : 한의 영천 허현은, 본래 허국許國으로, 위문제가 허창으로 고쳤다.

 

춘추좌조기 春秋佐助期 에서 이르길 : 한漢은 허창 때문에 천하를 잃었다.

 

역원郦元이 이르길 : 위가 한의 운수를 이으며, 허창이라고 개명했다.

 

조일청이 이르길 : 허창은 위 황초 2년 고쳤으니, 유소주는 잘못된 것이다. (주수창의 설도 같다.)

 

일통지 : 허창의 옛 성은, 지금의 하남 허주許州 서남쪽이다.

 

9월, 거가가 환원轘轅을 나와 동으로 가서, 

 

환원관 轘轅關 은, 초평 원년에 보인다.

 

후한서 동탁전의 주에서 인용한 헌제춘추에서 이르길 : 거가가 낙양에서 나와, 환원에서부터 동으로 가니, 양봉, 한섬이 군을 이끌고 추격하였다. 경기병이 이미 이르렀는데, 조조가 복병을 두고 양성산陽城山 협곡 사이에서 요격해, 크게 물리쳤다.

 

후한서 헌기 : 8월 경신庚申일, 허로 천도했다. 기사 己巳 일, 조조의 영으로 행차했다. (원기, 통감도 같다.)

 

진지 陳志 에선 9월인데, 아마도 구 九 자가 오자다.

 

태조를 대장군大將軍으로 삼고,

 

속백관지 : 장군은 항상 설치하는 것이 아니며, 배반자를 정벌함을 주관했다. 공公과 대등한 것이 넷이니, 으뜸이 대장군이고, 다음은 표기장군骠騎將軍, 다음은 거기장군車騎將軍, 다음은 위장군衛將軍이다. 또한 전, 후, 좌, 우장군이 있다.

 

진서 직관지 : 한의 동경東京에선 대장군은 항상 설치한 것이 아니었는데, 이가 된 자는 모두 조정의 권력을 독점했다.

 

송서 백관지 : 대장군은 한 사람으로, 한의 동경 때 임관하고부터, 지위가 삼사三司의 위에 있었다.

 

위소 韋昭 의 변석명 辨釋名 에서 이르길 : 대장군은, 장군의 으뜸이다. 한 때 임금의 인척이 이가 되면, 혹 녹상서사이기도 했다.  

 

유소주에서 인용한 채질蔡質의 한의 漢儀 에서 이르길 : 한이 흥하고, 대장군, 표기를 설치했으니, 지위가 승상에 버금갔다. 거기, 위장군, 좌, 우, 전, 후는 모두 금인과 자수였고, 지위가 상경上卿에 버금갔다.

 

무평후武平侯에 봉했다. 

 

무평은, 주가 앞에 보인다.

 

수경주 水經注 음구수주 陰溝水注 : 과수濄水는 다시 동으로 무평현의 옛 성 북쪽을 경유하니, 위무왕이 처음 이곳에 봉해져, 끝내 무武로 회하華夏를 평정했다.

 

호삼성이 이르길 : 무평현은 진국에 속하니, 이에 그곳을 취해 신무神武함으로 화란을 평정했다.

 

예문유취 권 51에 실린 조조가 상서하여 무평후로 늘려 봉함과 비정후를 사양하길 : 엎드려 스스로 세 번 살피니, 헌신하나 어리석고 못나고 소박하며, 재능과 뜻이 낮은데다, 나아가며 잘못을 바로잡으며 도운 공이 없고, 물러나며 남이 잃어버린 것을 주운 경사만 있습니다. 비록 견마犬馬의 미미한 공로가 있으나, 오직 신의 힘만이 아니었고, 모두 부곡의 장교의 도움 덕분이었습니다. 폐하께서 전에 선신先臣의 미미한 공을 추념하여, 신에게 작위를 잇게 하셔서, 조고祖考가 빛을 내 환하게 비춘 영화를 받았고, 신이 셀 수 없는 베품을 받았으나, 아직 추호도 스스로 은혜에 보답하려고 힘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과거 제후齊侯가 안영晏嬰의 집을 바꿔주고자 하니, 안영이 이르길 : “신의 죽은 아버지가 이곳을 받아들였으나, 신은 이를 이어받기에도 부족합니다.” 마침내 공명公命을 거스르며, 개인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신이 스스로 돌아보고 살피니, 떠맡고, 예전의 것을 식읍으로 삼는 은총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비록 위로는 덕이 높고, 아래로는 나눔을 이어받음이 있으나, 신의 3대가 자주 총애받아, 모두 가장 높은 지위를 거느려서, 올바른 도리가 손상됐는데, 어찌 감히 듣기 좋게 꾸며서 말하겠습니까!

 

살피건대 이 글에 근거하니, 비정후가 봉작을 물려받은 것임을 더욱 증명할 수 있다.

분류 :
위서
조회 수 :
5063
등록일 :
2013.11.18
19:57:02 (*.166.245.165)
엮인글 :
http://rexhistoria.net/history_commentary/72070/311/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rexhistoria.net/72070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삼국지집해 삼국지집해 목차 코렐솔라 2013-07-24 12693
공지 삼국지집해 삼국지집해의 도움말입니다. [2] 코렐솔라 2013-05-04 11519
57 오서 손익전 코렐솔라 2013-11-18 4761
56 오서 사섭전 코렐솔라 2013-11-18 5156
55 오서 손견전 [2] 코렐솔라 2014-01-17 5898
54 촉서 제갈량전1 코렐솔라 2013-11-18 6503
» 위서 무제기4 코렐솔라 2013-11-18 5063
52 오서 조달전 [6] 코렐솔라 2013-10-08 4670
51 촉서 동화전 [1] 사마휘 2013-10-05 4083
50 촉서 유장전 [1] 코렐솔라 2013-08-16 5980
49 촉서 유언전 코렐솔라 2013-08-09 5820
48 위서 등애전 코렐솔라 2013-07-09 7397
47 오서 여몽전 코렐솔라 2013-07-07 6286
46 위서 조충전 코렐솔라 2013-06-28 4593
45 위서 조삭전 코렐솔라 2013-06-28 4487
44 위서 조앙전 코렐솔라 2013-06-28 4587
43 촉서 장완전 코렐솔라 2013-05-26 5337
42 위서 여건전 코렐솔라 2013-05-23 4537
41 위서 장패전 [1] 코렐솔라 2013-05-23 5569
40 오서 정봉전 코렐솔라 2013-05-08 4368
39 오서 반장전 코렐솔라 2013-05-08 4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