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처사군님의 블로그


등애왕鄧哀王 조충曹沖은, 자가 창서倉舒다.

 

조일청趙一清이 이르길 : 자수 子修, 자환 子桓, 자건 子建 은, 모두 조씨가 자 子 를 자字로 삼았다. 그러므로 등애왕 조충은 나이가 어린데 먼저 죽어서, 아직 자를 가지지 못한 것이다. 창서는, 그의 아명으로, 홀로 여러 왕과 다르다. 지금 이러한 여러 왕의 자를 들추어냄은, 필시 모두 어린 것이 아니다. 고대에 남자가 20이 돼 관례를 올리면, 비로소 자를 가졌는데, 어찌 이름을 아직 하사하지 않고 먼저 자를 붙이는 도리가 있었겠는가? 이름이란, 자식이 태어나면 부친이 바로 그에게 이름 지어준 것으로, 만약 사서에서 여러 왕공의 이름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면, 조씨의 법도는 거의 따를 수 없다.

 

내가 상고하길 : 조씨가 창서를 아명으로 여기나, 맹목적으로 자신하는 거라고 자못 의심스럽다. 아랫글에서 조우曹宇의 자는 팽조彭祖, 조표曹彪의 자는 주호朱虎로, 이미 자가 자모子某는 아니다. 또한 위문魏文제에게는 자식 조개曹喈가 있었는데, 강보에서 바로 요절했으나, 이미 자가 중옹仲雍이었다. 조가의 법도는, 진실로 후대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창서란 호칭은, 본래 당우唐虞 때 고양씨高陽氏 팔원八元의 이름으로, 아마도 위무제가 그의 자식이 총영해서, 고대의 현인에 견줄 수 있었기에, 자 子 란 자字의 전례를 따르지 않고, 특별히 조충의 자로 삼은 것이다. 팽조, 주호 또한 당우 때 사람으로, 즉 위무제가 고대 사람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식의 자로 삼는 것이, 관례가 된 듯하다.

 

어려서 총명해 사물에 밝았고 영리하고 지혜로워,

 

이원 異苑 에서 이르길 : 꿩이 그것의 털을 사랑해, 물에 비치면 뛰어다녔다. 위무魏武제 때 남방에서 이를 바쳤다. 황제가 울며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자 했으나 방법이 없었다. 공자 창서가 큰 거울을 그 앞에 만들라고 명하니, 꿩이 형상을 보고 뛰어다니며 멈추지 않아, 마침내 지쳐 죽었다.

 

태어난 지 5, 6년이 돼, 지모가 미치는 바가,

 

관본 官本 고증 考證 에서 이르길 : 의 意 를, 원본元本에선 혜 慧 라고 썼다.

 

성인의 지혜와 같았다. 당시 손권孫權이 이전에 큰 코끼리를 보냈는데, 태조太祖가 그 무게를 알고자 해, 이를 신하들에게 물으나, 모두 그 방도를 내놓을 수 없었다. 조충이 이르길 : “코끼리를 큰 배의 위에 두고, 물의 흔적이 이른 곳을 새기고서, 물건의 무게를 측정하고 이에 싣는다면, 비교하여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칙 則 자 아래에는 응당 오증吳曾의 만록 漫錄 을 따라 부 不 자를 더해야 한다. 

 

하작何焯이 이르길 : 손책孫策이 건안建安 5년 죽어서, 당시 손권은 처음 정사를 다스렸다. 건안 15년에 이르러, 손권이 보즐步骘을 파견해 교주자사交州刺史로 삼으니, 사섭士燮이 형제를 거느리고 절도節度를 받들었으므로, 이후에는 혹 큰 코끼리를 보낼 수 있으나, 창서倉舒는 이미 건안 13년 전에 죽었으니, 이 일이 망령되고 꾸며낸 것임을 알 수 있다. 배에 두고 물을 새김은, 아마도 산술算術 중 본래 이러한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소진함邵晉涵이 이르길 : 능개재만록 能改齋漫錄 에서 인용한 부자 符子 에 연소왕燕昭王의 큰 돼지를 수관水官에게 명해 배를 띄워 무게를 단 일이 실려있으니, 이미 이전에 이러한 일이 있었다. 

 

태조가 크게 기뻐하며, 곧 시행했다. 당시 군국軍國에 일이 많아, 형벌을 씀이 몹시 엄했다. 태조의 안장이 창고에 있었는데, 쥐에게 갉아 먹혀, 창고의 관리는 필시 죽을 거라 두려워하며, 상의한 뒤 면박하여 자수해 죄를 인정하고자 했으나, 다만 사면되지 못할까 두려웠다. 조충이 이르길 : “3일 후의 정오를 기다렸다가, 연후에 스스로 자수하거라.” 조충은 이에 도刀로 홑옷을 뚫어, 쥐가 갉아먹은 것처럼 하고는, 실망한 것처럼 속이며, 얼굴에 근심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태조가 이를 물으니, 조충이 대답하길 : “세속에선 쥐가 옷을 갉아먹으면, 그 주인이 불길하다고 합니다. 지금 홑옷이 갉아 먹혀, 이 때문에 두렵고 염려됩니다.” 태조가 이르길 : “이는 망령된 말일 뿐이니, 괴로워할 바가 아니다.” 곧 창고의 관리가 안장이 갉아먹힌 것을 알리니, 조조가 웃으며 이르길 : “아이의 옷이 곁에 있었는데도, 오히려 갉아 먹혔는데, 하물며 안장이 기둥에 걸렸던 것을 어쩌겠는가?” 하나라도 문초함이 없었다. 조충이 어질고 자애로우며 견식이 있고 사물의 도리에 밝음이, 모두 이런 류였다. 무릇 응당 죄를 지어 죽어야 하나, 조충이 몰래 일을 맡아 처리해, 힘입어 구제되고 용서받은 이가, 전후로 수십 명이었다.

 

위서 魏書 에서 이르길 : 조충은 매번 형벌을 당하는 이를 보고, 번번이 그들의 억울한 사정을 찾아 가려내서 은밀히 이를 다스렸다. 부지런히 일한 관리가, 과오로 죄를 범하면, 항상 태조에게 말하여, 과연 그를 너그럽게 용서했다. 분별하고 고찰하며 어질고 자애로움이, 타고난 성품과 함께 자라났고, 용모와 자태가 아름다워, 무리에서 남달랐기에, 특히 총애받았다.

 

신 배송지裴松之가 여기기론 “용모와 자태가 아릅답다”는 같은 류의 말이나, 이를 나눠 세 글자로 삼은 것이니, 또한 쓰면서 이에 같은 잘못을 덧붙인 것입니다. 

 

태조는 자주 신하들을 대할 때 칭찬하며 말해, 후사를 물려주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 13 세일 때, 건안建安 13년 질병에 걸려, 태조가 친히 목숨을 보존하길 청했다. 죽으니, 매우 슬퍼하였다.

 

영릉선현전 零陵先賢傳 : 주불의 周不疑 는, 영릉 사람으로, 어려서 남다른 재주가 있어, 태조가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고자 했다. 태조는 자식 창서가 어린 나이에 재주와 지혜가 있어 사랑하며, 주불의와 동류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창서가 죽고, 태조는 속으로 주불의를 꺼려, 이에 자객을 파견해 그를 죽였다.

 

본지 유표전 劉表傳 주에 보인다.

 

위문제의 창서뢰 蒼舒诔 에서 이르길 : 건안 15년 (유취 類聚 에선 오 五 를 이 二 라고 썼으니, 오자다.) 5월 갑무甲戊일, 동자 조창서가 죽어, 아아 슬프구나! 이에 뇌사誄詞를 쓴다. : 착한 아우를 생각하며, 순진하고 선량함을 기리노라. 참으로 아름다운 인품이 넉넉해, 하늘을 짊어진 빛이었노라. 이미 슬기로우면서 또한 어질어, 이에 부드러움이 굳셈을 다스렸고, 그의 덕이 관용하여, 더욱 행함을 의롭게 힘썼노라. 아아■■, 끝내 가슴에 품었노라. 의당 큰 복을 맞이해, 영원히 무강해야 했노라. 어찌하여 넓고 큰 하늘은, 영준한 이를 시들게 한 것인고? 아아 슬프구나! 생각컨대 사람의 삶이란, 느닷없는 아침 이슬 같구나. 백년도 촉박해, 힘써 부지런해도 길을 가다 날이 저무는구나. 하물며 너는 어릴 때 죽어, 13살인데 죽었구나. 어찌하여 하늘에게 저버려져, 경명景命을 이루지 못했을고? 슬픔을 아우르고 근심을 더하니, 실의에 빠져 의기소침하게 됐구나. 영원히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너를 슬퍼함이 한이 없구나. 너에게 좋은 배우자를 전하고, 너에게 아름다운 옷을 보내노라. 을유乙酉를 지나, 저 성 근처에 살게 하노라. 무덤을 늘림이 위엄있고 성하며, 침묘寢廟는 크나크구나. 사돈이 모여, 길을 채우니 네거리가 가득하구나. 수많은 관리들이, 수레를 높이는구나. 도성을 기울이고 읍을 흔들며, 곧 너의 무덤에 이르렀구나. 혼령이 있다면, 즐거워하길 바라노라. 아아 슬프구나!

 

예문유취 藝文類聚 45와 고문원 古文苑 에 보인다. 장부본 張溥本 자건집 子建集 에 창서뢰가 있는데, 잘못 수집한 것이다. 문제가 연장자였기에, 동자로 창서를 불렀다. 만약 자건이었다면 겨우 창서보다 4살 많을 뿐이다. 송본 宋本 자건집에선 이 뇌사를 싣지 않았다.

 

정안丁晏이 이르길 : 이 글과 조비의 다른 작품은 서로 비슷하나, 진사陳思왕의 질박하고 뛰어남과는 닮지 않았고, 또한 뇌사 안에 “의당 큰 복을 맞이해, 영원히 무강해야 했노라”란 구절은, 또한 진사왕이 아름답게 드러낸 바가 아니다. 장본張本이 예문 藝文 에서 인용한 바와 진사왕의 임성왕뢰 任城王诔 가 서로 이어져있어서 잘못 채택한 것이다.

 

문제가 태조를 위로하며 깨우치니, 태조가 이르길 : “이는 나의 불행이나, 너희들의 행운이리라.”

 

하작이 이르길 : 창서의 죽음은, 바로 적벽赤壁에서 군이 패한 해였기에, 더욱 괴로워 말을 가려서 하지 못했다.

 

손성孫盛이 이르길 : 춘추春秋의 의義에선, 입적立嫡할 때 연장자로 하지 현명한 이로 하지는 않는다. 조충이 비록 생존했더라도, 오히려 의당 세우지 않아야 하는데, 하물며 그가 죽고 나서, 이러한 말을 드러내는가? 시 詩 에서 이르길 : “쉽게 말하지 말라.” 위무제가 아마도 이를 경시한 것이다.

 

말을 할 때면 눈물을 흘렸고,

 

화타전 華佗傳 : 사랑하는 자식 창서가 병으로 위태로우니, 태조가 탄식하길 : “내가 화타를 죽여, 이 아이가 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게 만들었으니 후회스럽구나!” 

 

진씨甄氏의 죽은 딸을 구해 합장하며, 

 

병원전 邴原傳 : 병원의 딸이 일찍 죽었는데, 당시 태조의 사랑하는 자식 창서 또한 죽어, 태조가 합장하길 구하고자 하니, 병원이 사양해, 태조가 이에 그만뒀다.

 

기도위騎都尉의 인수印绶를 추증하고, 완후宛侯 조거曹據의 자식 조종曹琮에게 조충의 후사를 받들라고 명했다. 22년, 조종을 등후鄧侯로 봉했다.

 

군국지 郡國志 : 형주荊州 남양군南陽郡 등이다.

 

일통지 一統志 : 등현의 옛 성은, 지금의 호북湖北 양양부襄陽府 양양현 동북쪽이다.

 

황초黃初 2년, 조충에게 시호 등애후鄧哀侯를 추증하고, 다시 호를 추가해 공으로 삼았다.

 

위서에 실린 책문策文에서 이르길 : 황초 2년 8월 병오丙午일, 황제가 이르길 : 아아 등애후 조충아, 과거 황천이 네 몸에 경사스러움을 모아, 총철聰哲한 재주를 더해줘, 어린 나이에 이루게 했도다. 응당 명백한 복을 길이 누려, 그 마지막을 이루어야 했다. 어째서 녹祿을 타지도 못하고, 요절했단 말인가! 짐이 천자의 계통을 이어, 사해를 가져서, 나란히 가까운 이들로, 번왕실藩王室을 세웠는데, 오직 너만은 이러한 영화에 이르지 못했고, 또한 장례도 다 갖추지 못했도다. 추도하는 마음에, 슬퍼하며 오래도록 애태웠도다. 지금 고릉高陵으로 옮겨 장사지내고,

 

전대소錢大昭가 이르길 : 이 고릉은 풍익馮翊의 속현이 아니다. 위지 魏志 에선 제후왕의 묘를 또한 능이라고 칭했고, 조자건의 시에서 “능묘를 지나며 부끄럽다”라고 했는데, 이 때에 이르러 고릉이라고 칭한 것이다.

 

노필 盧弼 이 살피길 : 고릉은, 위무제의 능으로, 창서가 위무제의 사랑하는 자식이였기에, 고릉으로 옮겨 장사지낸 것이다. 전씨의 설은 잘못된 것이다.

 

사지절使持節 겸 알자복야谒者仆射 낭중郎中 진승陳承을 보내, 시호 등공을 추증하며, 태뢰太牢로 제사지내게 하노라. 혼령이 있다면, 이곳에서 쉬며 귀염과 사랑을 받아 번영하거라. 아아 슬프도다!”

 

위략에서 이르길 : 문제가 항상 말하길 : “효렴孝廉이었던 가형家兄은, 진실로 그의 운명이었다. 만약 창서가 생존했다면, 나 또한 천하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3년, 조종의 작위를 올려, 관군공冠軍公으로 옮겨 봉했다. 4년, 기씨공己氏公으로 옮겨 봉했다.

 

군국지 : 남양군南陽郡 관군이다. 연주兖州 제음군濟陰郡 기씨다.

 

일통지 : 관군의 옛 성은, 지금의 하남河南 남양부 등주鄧州 서북쪽 40리다. 기씨의 옛 성은, 지금의 산동山東 조주부曹州府 조현曹縣 동남쪽이다.

 

태화太和 5년, 조충에게 시호 등애왕을 더해줬다. 경초景初 원년, 조종은 중상방中尚方에서 금물禁物을 만든 것에 연좌돼,

 

통전 通典 에서 이르길 : 한漢 말 상방尚方을 나눠, 중中, 좌 左, 우右 3상방으로 삼았다.

 

심흠한沈欽韓이 이르길 : 속한지 續漢志 : 상방령 尚方令 은, 뛰어난 솜씨로 어도검禦刀劍과 여러 아름다운 기물器物을 만드는 것을 주관했다.

 

호 3백이 깍였고, 작위는 도향후都鄉侯로 낮아졌다. 3년, 다시 기씨공이 됐다. 정시 7년, 평양공平陽公으로 전봉됐다.

 

평양은, 무기 권수 卷首 에 보인다.

 

경초, 정원 正元, 경원景元 중, 식읍이 여러 번 더해져, 전과 합쳐 천 9백 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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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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