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시(費詩)가 좌천되자 군자들은 한중왕(漢中王 유비(劉備))이 대업(大業)을 이루지 못할 줄 알았다. 대저 한중왕과 조조(曹操)를 비교하면, 토지는 조조만큼 넓지 못하고, 백성들 수는 조조만큼 많지 못하고, 용병술은 조조만큼 능하지 못한 데 반해 한중왕이 의지할 것 단 한 가지는 신의(信義)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신의가 밝지 않으면 강약(強弱)으로 서로 다투게 될 뿐이다. 그러므로 “조조가 다급하게 하니 나는 너그럽게 하고, 조조가 포악하게 하니 나는 어질게 하고, 조조가 속임수로 하니 나는 진실되게 하겠다.”고 하였는바, 이렇게 매양 조조와 반대되게 해야 일을 이룰 수 있었으니, 이것은 가장 좋은 방책이다. 그런데 대적(大敵)을 쳐 없애기도 전에 먼저 황제에 올랐으니, 천하에 신의를 밝힌다는 뜻이 어디에 있는가. 비시의 의논은 시세(時勢)와 사리(事理)를 보는 것이 매우 밝았는데, 소열제(昭烈帝)가 그 의논을 따르지만 않았다면 그래도 이해할 수 있지만 불쾌하게 여기고 좌천시켰으니, 장차 어떻게 인심을 복종시킬 수 있겠는가.

진사 이조현(李朝鉉)이 대답하길,
형세는 완급의 구분이 있지만 간혹 늦추어야 할 것 같은데 급하게 해야 할 경우가 있고, 일에는 경권(經權)의 구별이 있는데 간혹 권도를 써도 상경(常經)에 합치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역적을 치고 원수를 갚는 것이 참으로 급무(急務)이고 상경이기는 하지만 헌제(獻帝) 때 한 나라가 망한 뒤에 400년이나 이어온 종사가 의탁할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만약 속히 황제의 위호(位號)를 정하여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조정의 기강이 끊어지지 않았고 정통(正統)이 귀속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지 않는다면 장차 어떻게 인심을 수습하여 나라의 역적을 치고 인군의 원수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소열제가 작은 혐의를 돌아보지 않고 대의(大義)로 결단하게 된 이유입니다. 그리고 비시의 말은 나름대로 한면으로는 일리 있는 견해지만 그의 관직을 좌천시켜 사람들로 하여금 완급과 경권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비시의 말이 과연 옳았다면 어진 무후(武侯 제갈량(諸葛亮))는 필시 황제의 위에 오르도록 권하는 계책을 세우지 않았을 것이고, 비시가 좌천될 때에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그를 구해 주었을 것입니다.
분류 :
홍재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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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4.05.27
10:36:49 (*.203.3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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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두앵

2014.05.27
14:24:43
(*.212.187.72)
홍재전서라든가 조선시대 선비들은 제갈량의 행동이나 어떠한 정치적 선택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비판과 의문 없이 그냥 수용하는 모습이 많네요.

비시의 좌천의 경우에는 잘모겠습니다...
비시의 말이 응당 사람의 도리라든가 유교적 가치관에서 마땅히 옳은 일이긴 하지만, 현실적인 상황에서 정권의 강화와 결속력 및 조위 타도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
황제에 올라다고 한다면 실리적인 측면에서 어느정도 비판을 감수할수 있지 않나 생각되기도 합니다.

근데 좌천되어진 것이 단순히 유비가 불쾌했다거나 자신이 황제에 올른 것을 이치와 도리로써 비판당하자 거슬렸던 마음으로 좌천을 시킨것이라고 한다면 옳지 못했던 행동이라고 볼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유비의 마음가짐은 어떤거였을까요?

venne

2014.05.27
15:39:55
(*.203.36.95)
반대이유가 우선순위의 차이로 신하일동은 즉위하여 대통이 끊어지지 않도록하고 조비를 친다이고 비시는 일단 슬로건을 내걸었으니 뭔가 행동을 보여주는게 먼저다라는 겁니다. 옳고그름을 따지기가 애매하죠.

수하들을 단결시키기 위해 좌천시켰다라는 견해와, 유비는 원래 야심가였고 진즉 제위를 노렸으므로 반대하는 비시를 숙청했다는 견해가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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