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묻길,
병가(兵家)의 급선무는 먹을 것을 풍족하게 하는 것이니, 병사가 있더라도 먹을 것이 없다면 이는 병사들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공명(孔明)이 기산(祁山)에 출동했을 적에 어찌 이러한 것에 대해 미리 강구하지 않아 매번 군량이 떨어져 물러났다가 맨 나중에서야 목우유마(木牛流馬)의 제도와 둔전(屯田)의 계책을 낸 것인가?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적을 죽이는 것은 급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어떤 사람이 큰 집을 가지고 있는데 적의 침입을 받아 쫓겨나 바깥 담장 밑에 있다면 적을 죽이는 것을 어떻게 천천히 할 수 있겠는가.” 하였는데, 이 말이 참으로 공명의 본심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적을 죽이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적을 헤아리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가령 한밤중 집에 침입한 적이 있더라도 의당 나의 무기를 가지고 좋은 위치를 확보하여 반드시 사로잡을 수 있는 형세를 만든 뒤에야 그 적을 내쫓든 죽이든 마음대로 할 것이니, 어찌 맨손으로 적의 칼날에 대들겠는가. 공명과 같이 지혜가 있는 자는 필시 자기편을 먼저 헤아리고 상대의 형편도 헤아렸을 것이니, 군병은 얼마나 써야 하고 군량도 얼마나 필요하며 서로 얼마 동안이나 대치할지에 대해서 아마 충분히 계획을 세워 놓았을 것이다. 매년 군사를 퇴각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금 시일을 지체시키면서 군량을 많이 저축하여 장기적인 방책을 세우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성패(成敗)와 이둔(利鈍)은 신이 미리 알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한 말은 바로 공명이 당당하게 행한 것을 나타낸 것으로 ‘국궁진췌(鞠躬盡瘁)’의 뜻이 조금 지체되거나 속히 한다고 해서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 이것은 혹시 별달리 불가피한 형세가 있어서 그런 것인가?

유학 한철유(韓喆裕)가 대답하길,
군병을 쓰는 데에 있어서 빼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 양식인데, 공명과 같이 지혜로운 자가 어찌 이에 대해 생각이 미치지 않았겠습니까. 그의 뜻에는 필시 ‘관중(關中)과 낙양(洛陽)의 것은 바로 우리의 관곡(館穀)이고 허창(許昌)과 영천(潁川)도 우리의 바깥 창고이니, 만약 한중(漢中)에서 계속해서 실어 온다면 이는 좋은 계책이 아니다’고 생각하였는데, 한(漢) 나라의 국운은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고 진령(秦岺)의 험함이 남다르며 적의 칼날은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되어 기산에 출동한 군사들이 거듭 식량이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각(邸閣)의 목우유마와 위남(渭南)의 둔전을 임종하기 6개월 전에 처음으로 만든 것에서도 ‘온갖 정성을 다 바쳐 죽은 뒤에나 그만두겠다[鞠躬盡瘁 死而後已]’는 뜻을 볼 수가 있습니다. 가령 기산에 여섯 차례 출동하기 전에 미리 준비를 했더라도 군사들은 기산과 오원(五原)의 들판에서 늙어갈 뿐이었을 것이니, 승패의 운수에 무슨 보탬이 되었겠습니까.
분류 :
홍재전서
조회 수 :
3123
등록일 :
2014.05.28
09:05:57 (*.203.36.95)
엮인글 :
http://rexhistoria.net/history_discuss/131121/af4/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rexhistoria.net/131121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7 홍재전서 [홍재전서(弘齋全書)] 진무제에게 양호는 간언하지 않았는가 venne 2014-06-04 2839
66 홍재전서 [홍재전서(弘齋全書)] 정중을 제후에 봉할때의 기록은 오류가 있는가 venne 2014-06-04 2284
65 홍재전서 [홍재전서(弘齋全書)] 공명의 인선과 처벌은 공정한 것인가 venne 2014-06-02 3039
64 홍재전서 [홍재전서(弘齋全書)] 유비가 황권을 용서한걸 어찌보는가 venne 2014-06-02 2956
63 홍재전서 [홍재전서(弘齋全書)] 두예가 음식을 보낸건 무슨 연유인가 venne 2014-05-29 2871
62 홍재전서 [홍재전서(弘齋全書)] 왕준, 두예, 산도의 견해에 대해 말해보라 venne 2014-05-29 2256
61 홍재전서 [홍재전서(弘齋全書)] 목우유마에 대해 대답해보라 venne 2014-05-28 2969
» 홍재전서 [홍재전서(弘齋全書)] 제갈량의 북벌은 어떻다고 말하겠는가 venne 2014-05-28 3123
59 홍재전서 [홍재전서(弘齋全書)] 유비가 비시를 좌천시킨 것을 어찌보는가 [2] venne 2014-05-27 2858
58 홍재전서 [홍재전서(弘齋全書)] 가후의 신묘한 통찰은 무엇으로부터 나오는가 [2] venne 2014-05-27 3328
57 홍재전서 [홍재전서(弘齋全書)] 청담이 진나라를 망하게 했다고 보는가 venne 2014-05-26 2967
56 홍재전서 [홍재전서(弘齋全書)] 진무제가 참위설을 금지시킨 것은 어떠한가 venne 2014-05-26 2347
55 홍재전서 [홍재전서(弘齋全書)] 팔진도에 대해 말해보라 venne 2014-05-23 3152
54 홍재전서 [홍재전서(弘齋全書)] 10만 백성이 따른것은 왕자가 될 조짐인가 [2] venne 2014-05-23 2598
53 홍재전서 [홍재전서(弘齋全書)] 진조의 잘못된 형벌은 무엇이 있는가 venne 2014-05-22 2326
52 홍재전서 [홍재전서(弘齋全書)] 오에 은척과 석인이 나타난건 재앙이라 할만한가? venne 2014-05-22 2242
51 홍재전서 [홍재전서(弘齋全書)] 유비의 세가지 실수는 어찌해서인가 venne 2014-05-21 2877
50 홍재전서 [홍재전서(弘齋全書)] 사마온공의 사족이 더 옳은가 venne 2014-05-21 2603
49 홍재전서 [홍재전서(弘齋全書)] 양호의 신의를 어찌보는가 venne 2014-05-12 2402
48 홍재전서 [홍재전서(弘齋全書)] 주자가 강(綱)에다가 쓴것은 왜인가 venne 2014-05-12 2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