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묻길,
어떤 사람은 공명(孔明)이 위연(魏延)의 계책을 쓰지 않은 것에 대해 너무 신중한 나머지 좋은 기회를 잃은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위연의 경우는 한 부대를 맡을 만한 용맹이 있는데 그의 말이 쓰여지지 못했고 공명의 경우에는 반드시 완벽하게 이길 형세를 보았는데도 군사들이 패배했기 때문에 후세에 보는 사람들이 단지 드러난 형적만을 가지고 그 득실을 논한 것일 뿐이다. 공명은 분수(分數)에 밝은 자이니, 위연이 말한 계책의 이해(利害)에 대해 필시 충분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만약 위연이 과연 자오곡(子午谷)을 거쳐 장안으로 출동했다면 가정(街亭)보다 더 심하게 전군(全軍)이 패배하지 않았으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가정에서 패배한 것은 마속(馬謖)이 지시를 어겼기 때문이다. 마속이 만약 길가와 물가에 보루(堡壘)를 구축하여 물 긷는 길이 끊기지 않았다면 요해처를 방어하는 데에 있어서나 접전하는 방략에 있어서 의당 한 가지도 실수한 것이 없었을 것이니, 이것이 어찌 공명이 적을 잘못 헤아린 탓이겠는가. 다만 장완(蔣琬)이 마속을 구하고자 했던 것은 공적으로 인재를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그렇다면 공명이 단호하게 군법(軍法)에 따라 처단한 것은 끝내 의심스러운 점이 없을 수 없다. 무릇 더할 수 없이 구하기 어려운 것이 인재이다. 더구나 사방으로 많은 보루를 설치하여 싸우는 때를 당하여 한 사람의 뛰어난 무사가 있으면 은연중 한 나라를 상대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 목공(秦穆公)이 맹명(孟明)을 죽이지 않자 끝내 효릉(殽陵)의 싸움에서 은혜를 갚았고, 진 문공(晉文公)이 특별히 임보(林父)를 사면해 주자 마침내 제후들 간에 맹약하는 자리에서 으뜸이 되게 하였으니, 인재를 잘 쓰면 이와 같이 된다. 마속에게는 비록 실제보다 지나치게 말하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공명이 남만(南蠻)으로 싸우러 갈 때에 “그들의 마음을 공략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으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지혜로운 생각은 보통 사람들이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공명이 맹획(孟獲)을 심복시킨 것은 실로 이러한 것을 힘입은 것이다. 어찌 죽을 목숨을 용서해 준 다음 공을 세워 갚으라 하고 군진(軍陣)에서 적과 싸우게 될 때마다 유익한 자문을 받아서 안 될 것이 있겠는가. 위연같이 성질이 드센 자도 휘하에 편비(偏裨)로 둔 것은 그의 재주를 아꼈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더구나 마속같이 충성스럽고 근실하여 믿을 만한 자의 경우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나는 이것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평(李平)과 같은 경우에는 상(上)의 뜻을 거짓으로 전하여 지시를 어긴 것보다 더 잘못하였고 군량을 제때에 공급하지 못하여 싸움에서 진 것과 마찬가지였는데 처벌은 삭직(削職)하는 데 그쳤으니, 이것은 또 무슨 이유에서 그렇게 한 것인가? 사씨(史氏)가 “공명이 사심 없이 법을 쓰는 것은 물처럼 공평하고 거울처럼 밝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마속을 죽이는 것이 옳고 이평을 죽이는 것이 옳지 않은 것은 법에 있어서 참으로 그럴 것이다. 그 경중을 헤아려 논할 수 있겠는가?

생원 민치복(閔致福)이 대답하길,
무후(武侯)가 위연의 계책을 쓰지 않은 것에 대해, 장식(張栻)이 “법에 따라 바르게 행동하기만 하였지 속임수로 헤아리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제갈량의 마음을 알았다고 할 만합니다. 마속을 군법에 따라 처단한 것은 한 속관(屬官) 때문에 법을 굽혀서는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평에 대해 법을 매우 가볍게 쓴 것은 이평의 직위는 열후(列侯)이고 마속은 참군(參軍)이기 때문입니다. 참군으로 보좌하는 지위에 있는 마속은 실제로 무후의 지시를 받아야 하지만 이평이 군량을 감독하여 운송하는 것은 이미 조정의 명령이 있었으니, 제갈량이 이평에게 어떻게 마속에게 했던 것처럼 단독으로 처벌할 수 있겠습니까. 사씨(史氏)가 말하기를, “제갈량이 이평의 과오에 대해 황제에게 보고했다.” 하였으니, 그가 처리할 방법은 이 정도일 뿐입니다. 그를 처벌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인군과 유사(有司)가 할 일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심 없이 법을 쓰는 제갈량이 어찌 이와 같이 매우 다르게 하였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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