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기에 쓰여진 역사서는 꽤 있는 편이다. 삼국은 각각 위서, 촉서, 오서를 후한 때 저술된 동관한기의 형태로 편찬하였다. 오서는 앞으로 다룰 예정이고, 왕침이 작성한 위서의 경우 왕침 자신도 진서에 열전이 있을 정도며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싶다면 Hou Kang, 'Bu Sanguo yiwen zhi', 3174/3-3175/1 / Yao Zhenzong, 'Sanguo yiwen zhi', 3220/3-3221/1, 삼국지집해 1:3a-b를 참고 바란다.

촉서의 경우는 Yao Zhenzong, 'Sanguo yiwen zhi', 3221/1-2를 참고하면 좋다. 배송지의 경우 촉서를 전혀 인용하지 않았지만 화양국지 11:8b-9a에서는 왕화(王化)라는 사람이 동관에서 촉서 집필에 참여했다고 적고 있다. 또한 삼국지 촉서에서도 인용한 양희의 계한보신찬의 상당 부분을 촉서에 넣었다고 진수가 언급한 것으로 보아 촉서의 상당 부분은 삼국지에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대해 촉한에 과연 사관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좀 재미난 논쟁거리가 있다. 진수가 후주전 말미에 평을 하면서 촉한은 사관을 두지 않았기에 (國不置史) 기록을 하는 관리가 아예 없었고, 재이 같은 것은 잊혀졌다고 적은 것이다. 그러면서 진수는 군사적 위급 사태였던 당시 상황이 제갈량으로 하여금 이런 일에는 미처 신경 쓰지 못하게 만든게 아닐까란 추측을 남겼다.

진수가 이런 말을 적긴 했지만 남은 증거로 보아 촉한에는 위나 오처럼 역사를 다루는 기관이 있었다. 만약 없었더라도 최소한 후한의 것과 비슷한 행동을 했을 걸로 추측되는 동관이 존재하며, 역사를 기록하는 학자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화양국지의 진수열전을 보면 동관비서랑을 지냈다고 되어 있는데 이런 기관은 당연히도 문서를 수집하고 그중 몇몇은 보존했을 것이다.

때문에 이는 오랜기간 동안 논쟁의 대상이었고, 기존 학자들의 토론의 경우 삼국지집해 (33;21a-b)에 노필이 잘 정리해 두었다. 이 진수의 발언에 대한 가장 타당한 해석은 촉에 정기적인 기록 보관 절차(regular archive)가 없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기록물 자체는 만들어 졌으나 촉에는 이걸 한나라처럼 매일 정리해서 보관하는 시스템이 전혀 구축이 안 되어 있었고, 진수는 이 때문에 원하는 기록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사관으로 임명된 사람은 자신의 의무를 망각하고, 이런 작업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국가는 국가대로 공식 역사 편찬 프로젝트를 마련하지 않아 몇몇 학자들이 개인적으로 역사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앞선 장에서 오나라를 행정체계를 다루면서 명부상으로는 존재하나 실제 하는 행위는 엉뚱한 직위들이 있었다고 얘기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오에서도 공식 역사 편찬은 중요한 일로 다뤄줬고 이는 정기적인 기록 유지로 이어진다.

이런 각국의 공식 역사서 말고도 정부를 위해 일하거나 정부 기록물에 접근 가능했던 사람들이 쓴 준공식 역사서도 존재하는데 동탁 밑에서 일하다가 216년 조조 밑으로 들어간 유애(劉艾)가 쓴 영제기와 헌제기가 그 예다. 이 유애에 대해 얘기를 더 하자면 수서 33:960에 유방(劉芳)이라는 사람이 쓴 한영헌이제기(漢靈獻二帝紀)라는 저서가 언급되는데 구당서 46:1991과 신당서 58:1459에서는 이 책의 저자를 유애라 언급하고 있다. 이걸로 보아 아마 수서에서는 애(艾)를 방(芳)으로 잘못 쓴 것 같다. 또 당나라 백과사전 초학기 30:737에서는 한제전(漢帝傳)이라는 저서를 유애가 194년에 썼다고 전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시호는 황제가 죽을 때 부여되는 것이기 때문에 234년 전에 헌(獻)이라는 단어는 들어갈 수가 없다. 이걸로 보아 아마 처음에는 헌제가 아닌 다름 이름으로 기록하다 유애, 혹은 이후 협력자가 나중에 헌을 집어넣은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저서는 전체 분량이 1 혹은 2권이라고 하며 보통 기나 전으로 묘사되고 현재는 일부만이 전해진다. 자세한 내용은 Yao Zhenzong, 'HouHan yiwen zhi', 2352/1-2를 보라.

한편 위의 신하였던 어환은 전략과 위략을 지어 한나라 말기와 한나라를 계승한 위나라의 역사를 다뤘다. 수서 33,961에서는 전략이 89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구당서 46:1994&1989에서는 정사와 잡사에 전략이 50장, 위략이 38장으로 등록되어 있다. 신당서 58:1464에서는 위략만이 50장으로 잡사로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 전략을 위략으로 잘못 기록한 것 같다. 이걸로 보아 수서가 기록한 전략은 어환의 저서를 종합해서 기록한 가능성이 있어보이며, 이 경우 전략의 50장, 위략의 38장에 더해 도입부에 해당하는 장이 더해져서 89장이 된 것이다. Yao Zhenzong, Sanguo yiwen zhi, 3224/1-2를 참고하라.

이렇듯 전략과 위략을 혼동하는 경우가 잦긴 했지만 위략이 인용된 것들을 분석해보면 위략이 최소한 254년까지 다룬 것은 확실하다.


지금까지 소개한 저서 말고도 많은 역사서들이 존재하는데 이중 대부분이 배송지가 주석에 출처를 남겼기에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해야 될 것이 진수는 관료주의적 전통에 따라 이런 기록의 상당수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신의 역사서 삼국지에 넣었다는 것이다. 한편 배송지의 주목적은 진수의 기록을 반복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진수의 기술을 보충하는 것이었다. 진수는 국가의 공식 역사서나 그에 비견되는 저서에 접근이 가능했고 이중 몇 가지를 취사 선택해서 원하는 것을 넣었지만 진수가 버린 그 문장을 배송지는 주석으로 달아 남긴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는 큰 문제가 아니다. 배송지가 워낙 넓은 범위의 저서를 모았기에 3세기에 존재했던 중요한 문서는 진수가 본전에 적었거나 최소한 배송지가 주석에 넣었다고 가정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다만 진수가 다른 책의 내용을 그대로 베꼈을 경우 배송지는 굳이 주석을 달아 그 기록의 출처가 어딘지를 적지 않았는데 이 경우 해당 기록의 출처는 사라지게 되었다.

이것의 대표적 예로 오서의 1권을 장식하는 것은 손견과 손책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삼국지에서는 192/193년에 있었던 손견의 죽음을 끝으로 193-194년에 원술 밑으로 들어간 손책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배송지는 여기에 더해 손견의 초창기 생애와 전공을 더했고, 태몽까지 넣었다. 한 가지 재미난 것이 배송지가 손견 측에 넣은 기록 상당수는 손견 개인에 해당하는 기록이라기 보다는 손견-주준의 관계, 동탁이 손견에 남긴 평가 등으로 당시 한나라의 역사에 들어가는 범주라는 것이다. 앞서 1장에서 양주 정벌에서 손견이 관여한 정도와 옥새에 대해 얘기했던 것처럼, 손견전에 대해서 진수의 기록은 다른 기록에 비해 부족하고 부정확했다.

반면 손책 시기에 더해지는 주석은 이런 경향이 덜한 편이다. 손책전에는 보통 강표전과 오록에서 편지나 의견서, 손책이나 손책 이름으로 작성된 공식 문서 등을 인용한 편이다. 손책이 독립 군주가 된 것이 195년이고 죽은 것이 200년인데 다른 열전에서도 확인되듯 진수와 배송지 모두 이 시기에 대해 동일한 서술을 하고 있다.

이 두 열전은 아버지와 아들의 차이점을 보여준다. 손견은 비록 주류는 아닐지라도 전국 단위로 노는 선수였고, 손책은 지방에서는 중요할 지라도 전국적으로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기에 배송지가 진수가 생략한 기록을 많이 더했어도 상반된 기록이 생길 여지가 적은 것이다.

이렇듯 서로 상반되지 않은 의견임에도 불구하고 배송지는 많은 내용을 주석으로 더했는데 특이하게도 존재한 것이 확실함에도 배송지가 수록하지 않은 역사서도 있다. 손권이 손책의 뒤를 이은 직후 장굉이 지어 바친 손견과 손책의 열전이다. 오서에서 보듯 손권이 칭찬까지 했으니 당연히 보존이 됐을 것이고, 오 멸망까지 살아남았을 터인데 배송지는 전혀 언급을 안 한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진수가 삼국지를 쓸 때 손견과 손책 부분은 장굉의 저서를 거의 베껴서 만든 것이 아닐가 한다. 비록 진수의 저술에 의해 장굉의 저서는 잊혀졌지만 진수의 저서 안에 살아 있는 것이다.

이것을 기반으로 생각해보자. 손견과 손책이 활약한 것은 손권이 즉위하기 얼마 전에 일이었으니 그 둘의 일생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이때 손권의 나라는 초기 군벌이었기에 역사의 사실을 공정성 있게 그대로 기록하기를 바라기는 어려웠다. 애초에 장굉의 저서는 등장할 때부터 찬양이라는 문구가 나오지 않는가? 거기다가 손권 아래에 있던 장굉으로서는 10년 전에 중국의 동남 뿐만이 아니라 방방곡곡에서 활약한 손견의 생애를 파악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장굉의 경우 200년 이후에야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텐데 그렇다면 손견의 출생으로부터 50년은 지난 뒤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경우 이미 알려진 사실을 기반으로 열전을 작성해야 했고 일화는 지역에 도는 풍문과 손견의 오랜 장수로부터 수집해야 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작성됐을 터이니 손견전은 읽을 때 특히 더 조심을 가해야 마땅하다.

반면 손책의 경우는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손책이 죽은지 얼마 안 되어 편찬에 들어갔기에 문서의 상당수가 남아있었을 것이며 손책의 옛 동료들은 자신이 손책과 함께 신나게 활약한 얼마 전의 영웅담을 이야기 하고 싶어 안달이 났을 것이다. 그렇기에 여기서 생겨난 어려움은 사초가 적은 것이 아니라 과장을 어떻게 걸러내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기록은 뭔가 부족하다. 손책의 열전과 배송지가 인용한 부분을 제외하면 이 시기 기록은 분량이 매우 적어 손책의 부하 누구가 어디어디 원정에 손책과 동행했다, 어디어디에 주둔했다 정도만 적혀있을 뿐이다. 몇몇 믿기 힘든 일화들이 적혀있긴 하지만 손권 시기의 그 풍부한 기록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사실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기도 하다. 손책은 독립군주로 고작 5년만을 지냈을 뿐으로 당시 손책 진영에 있던 긴장감과 기대감은 사초 수집과 유지를 등한시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역사 기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손권 정부부터다. 손책 정권이 비록 손권 정권 바로 이전이며 장강 남쪽에 나라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는 하나 손책이 강남의 지방에서 이룩한 승리는 뒤이어 손권에게 찾아오는 서쪽과 북쪽에서의 위협과 적벽대전이라는 큰 위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손책은 전설이라 부르기 손색 없는 인물이었지만 이보다 더 극적인 것은 그 뒤를 이은 손권의 드라마였다.


Rafe 주: 그렇다고 배송지가 모든 것을 주석에 넣은 것은 아니다. 당나라 백과사전을 비롯해 다른 곳에 배송지가 기록하지 않은 내용들이 등장하며, 수서, 구당서, 신당서에서 이름만을 알 수 있는 저서가 발견되기도 한다. 앞서 여러 번 언급한 적 있는 Hou Kang과 Yao Zhenzong가 삼국시대에 쓰인 저서 목록을 정리해 두었으며 Ding Guojun, Wen Tingshi, Qin Rongguang, Wu Shijian, Huang Fengyuan은 진나라 시기 저서 목록을 정리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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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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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류쥬

2021.11.19
13: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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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손책전의 배송지 주는 오서 인용이 거의 없습는 것을 보고 저는 진수의 손책전이 오서를 거의 베끼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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