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21년 진이 통일을 완수했을 때 금 이외의 유일한 공식 화폐는 반량전뿐이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다양한 크기와 중량의 동전이 계속 유통되었으며, 심지어 반량전도 대부분 표준 중량에서 미달된 각종 동전들이 존속되었다. 이는 진이 기원전 3세기에 경쟁국들을 병합하면서 재정상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했음을 의미한다. 

비교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진 말년, 대규모 군사 도전에 직면한 다른 역사상의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났던 화폐 가치저하를 피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과정을 밝히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만약 상당한 함량 미달의 반량전 발행 문제가 진시황 이후 후계자들의 제위 기간이 짧았던 것과 정말로 연관이 있다면,

이는 제국 시대, 몇 번의 위기를 야기한 화폐 가치저하 문제 중 첫 번째로 기록 될 것이다.



한이 정권을 잡았을 때도 금동본위제가 유지되었다. 그래서 진에서 한 초기까지 강한 연속성이 관찰된다. 진의 화폐가 '중"하여 "실용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고 여겨진 까닭에 한의 초대 황제(유방)는 백성들의 사적 동전 주조를 허용했다. 기원전 110년대까지 많은 화폐 주조소가 동시에 존재했는데 황궁, 친왕, 제후, 개인업자 모두 동전 공급에 관여하였다. 당시 동전 무게가 일률적이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동전의 무게를 재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 시기 동안 기록된 가격 인플레이션은 사재기보다는 중량 미달의 동전을 높은 액면가로 부풀려 발행한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연관성은 이후의 문헌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 사기 ]와 [ 한서 ]로 대표되는 중국 사서에서는 화폐 대책을 초기 한의 통치자들이 주도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록에 고고학 자료들을 끼워 맞추려는 결과론적 시도 때문에 이 시대의 화폐 연구가 문헌을 위주로 한 해석의 틀에 국한되어 물질 증거의 자체 분석이 경시되었다. 무엇보다 동전 생산이 분산되어 있어 도식화된 분류가 어려웠다.


따라서 이상의 사서에서 기원전 186년 관레에 따라 '반량'이라는 명문이 새겨진(명목상 12수) 8수 짜리 동전이 발행되었다고 주장할 때 기존 관행과 완전히 단절된 결과물이라고 판대해서는 안 된다. 진대에 주조된 많은 반량전도 이미 사실상 비슷한 무게 표준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4년 후 오분(약 1.18cm)짜리 동전이 도입되었다. 기원전 175년을 배경으로 한 사건에서 "이전의" 개인의 동전 주조 금지가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관련 법령이 수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가정이 사실이라면, 추측컨대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여 동전 무게 부풀리기를 막거나 8수자리 동전을 액면가 12수짜리로 받아들이도록 강제함으로써 3분의 1 규모의 시뇨리지를 확보하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기원전 175년 문제는 개인의 화폐 주조를 금지하면서 4수짜리 동전 "사수반량"을 도입했다. 이 동전들도 마찬가지로 반량이라고 하며. 액면가치가 금속가치의 3배임을 암시했다. 따라서 한 제국의 첫 30년 동안, 실제로 유통되는 동전 무게가 감소한 것에 맞춰 점차 공식적으로 주화의 가치하락이 일어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반량전은 가끔 국가 당국에서만 따르던 진대의 표준 무게인 12수에서 좀 더 현실적인 8수나 4수로 다시 가치가 매겨졌다. 3세기 이후의 로마 제국과 비슷하게 이러한 개혁은 공식 무게 기준을 하향조정함으로써 중량 미달의 동전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 한서 ]에는 같은 해인 기원전 175년, 화폐 주조를 국가가 독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의의 상소가 기록되어 있다. 이 글은 한 제국 초기의 화폐 제도 운용을 이해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다. 이 기록에서는 납과 철을 섞은 합금으로 동전을 만들어 화폐의 가치를 떨어트린 자는 얼굴에 죄명을 문신으로 새기는 "경형"으로 엄격히 다스리지만, 애초에 서민들이 이처럼 사사로이 동전을 주조하는 이유가 그 가치를 떨어트리기 위해서라는 점을 지적한다. 개인의 동전 주조가 부활하자 이러한 범죄가 크게 증가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동전을 주조하기 위해 생업을 그만둘 정로로 개인의 동전 주조가 만연했다.


국가가 독점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이유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졌다.

"백성들이 사용하는 동전의 군현마다 다르다. 어떤 지역에서는 동전이 가벼워 100전의 거래에 약간을 더해야 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동전이 무거워 똑같이 맞출 수가 없다." 공식 표준 무게는 무시되고 관리들은 자신이 강제할 수 없는 교환율을 임의로 정할 수도 없었다. 법령을 통해 공식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실제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요지의 이 상소는 사용자가 으레 동전을 액면가로 받아들이는 개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오히려 화폐의 교환가치는 무게 즉,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금속가치로 결정되며, 실제 화폐 사용자들은 무게에 따라 액면가치를 조정하며 다른 품질의 동전과 교환했다. 이는 명목가치의 가격과 '실제' 교환가치 사이의 지속적인 불일치를 야기했다.


현대의 관찰자라면 이 문제가 장기적으로는 그레셤 법칙의 효과에 의해 완화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즉, 가벼운 동전(질 낮은 동전)이 무거운 동전을 유통에서 몰아내고, 무거운 동전이 더 낮은 기준의 수익성을 갖도록 해야 했다. 그러나 가의는 통화량보다 많은 위조범을 처벌해야 하는 것에 더 신경을 쓴 것 같다. 기원전 1세기 [ 염철론 ]에서는 동전 무게의 다양함을 "옛 것은 신뢰하고 새것은 의심" 하며 "진짜로부터 가짜를 구분하지 못하여" "악화로 양화를 (그레셤 법칙) 교환하고, 가치를 부풀려 금액의 두 배로 교환" 하는 상인에게 사기를 당하는 농민들의 무지와 연결시킨다. 특히 지역마다 달랐던 화폐 제도가  기원전 1세기 무렵에는 전 제국에 걸쳐 일관되고 균일한 품질을 가진 화폐가 대량 생산되고 세금을 화폐로 징수하면서 농업 영역에서의 화폐 사용이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흐름이 촉발되었다. 그와중에 가치가 떨어지는 통화가 유통되는 것은 심각한 자산 가치의 문제를 가져올 수 있었다. 이 같은 시나리오에서 지식이 있는 중개인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화폐 교환을 조작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 가의가 제안한 해결책은 극단적이었다. 그는 동전 생산뿐 아니라 구리도 국가가 독점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리 공급을 차단하지 않은채 화폐 주조만 독점하면 통화 부족을 초래하여 불법 주조의 이익을 증가시킬 수 있으니 위조 동전 방지 대책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논지였다. "법령으로 동전 주조를 금하면, (유통되는 동전의 부족으로) 동전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동전의 가치를 높이면 (위조) 동전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욱 커진다. 따라서 불법 주조가 구름처럼 일어날 것이며, 이런 범죄를 '기시형'에 처한다 해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한 제국 초기의 유리한 위치에서 가의는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정식 화폐 공급을 늘리고 주조 기준을 표준화함으로써 위조 비용을 높이는 기술적인 방법을 도입하는 등의 대안을 생각하지 못했고 또 그러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이러한 해결책은 기원전 110년대에나 채택된다.


통화 공급을 국가가 통제하면 교환 수단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질 뿐 아니라 통치자가 화폐 공급을 늘리거나 줄여 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 등 다양한 이점이 따른다고 여겨졌다. "국가가 화폐를 통일하면 백성은 두 마음을 품지 않을 것이며, 국가가 화폐를 발행하면 백성들은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측면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백성에게 동전 주조를 허락하는 것은 통치자의 권력을 나누어 주는 것이니, 오래가는 정책이 될 수 없다." 이것이 단순한 추상적 우려만은 아니었다는 것은 기원전 2세기 중반 오왕吳王 유비劉濞가 "동산을 채굴하여 동전을 주조한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리하여 그의 부유함이 천자에 필적하여 그 후 마침내 들고 일어나 반역하였다." 라는 기록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잘막한 논평은 기원전 154년 한 제국의 남동부 제후국들이 연합하여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오초칠국의 난' 吳楚七國의 亂 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 같은 잠재적 위험성에도 개인의 동전 주조 관습은 무제 시기(기원전 140년~87년)까지 계속되었다.




The monetary systems of the Han and Roman empire / 로마와 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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