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범(呂範)은 자가 자형(子衡)이고 여남군 세양(細陽) 사람이다. 그는 젊어서 현의 관리가 되었고 용모와 자태가 빼어났다. 

그 읍 사람 중에 유씨(劉氏) 라는 자는 집안이 부유하고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여범은 유씨에게 구혼을 했다. 그 여자의 어머니는 여범을 싫어하여 딸을 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유씨는 이렇게 말했다.

"여자형을 보건대, 어찌 오랫동안 가난하겠는가?"

그리고 딸과 결혼시켰다. 

이후에 여범은 난리를 피해 수춘으로 갔다. 손책은 여범을 보고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여범은 그래서 자신이 몸을 굽히고 식객 1백 명을 이끌고 손책에게로 들어갔다. 

당시 태비가 강도(江都)에 있었는데, 손책은 여범을 보내 맞이하도록 했다. 서주목 도겸이 여범은 원씨(袁氏)를 위해 정탐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현의 관리에게 여범을 고문하여 취조하도록 지시했다. 여범이 신임하는 식객 가운데 건장한 자들이 그를 빼내 돌아왔다. 당시 여범과 손하(孫河)만이 항상 손책을 수행하며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며 상당한 고생을 하였으며, 위험하고 험난한 사오항에서도 피하지 않았다. 손책 역시 그들을 친척처럼 대우하여 언제나 함께 당(堂)에 올라 태비 앞에서 술을 마시며 즐겼다.

후에 여범은 손책을 따라 여강을 무찌르고, 군사를 돌려 함께 장강을 건너 횡강(橫江)•당리(當利) 까지 가서 장영(張英)과 우미(于靡)를 무찔렀으며, 소단양(小丹楊)•호숙(湖孰)을 함락시켰다. 그 후 여범은 호숙의 상으로 임명됐다. 손책은 말릉(抹陵)과 곡아(曲阿)를 평정하여 착융과 유요의 잔여 세력을 거둬들여 여범의 군사 2천 명과 기마 50필을 증가시켰다. 후에 여범은 완릉현의 령을 겸임했고, 단양의 도적들을 토벌하여 무찌르고 오군으로 돌아와 도독으로 승진되었다. (주)

(주)강표전에 이르길: 손책이 한가한 시간에 여범과 바둑을 둘 때, 여범이 말하기를 

"지금 장군은 사업이 나날이 커지고, 병력도 나날이 성대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먼 곳은 기강이 아직 정돈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잠시 도독을 겸임하여 장군의 부분을 보좌하기를 원합니다." 

라고 하자, 손책은 

"자형, 그대는 사대부이고, 게다가 수하에는 벌써 많은 수가 있으며 밖에서 공을 세웠는데, 어찌하여 또 작은 관직에 몸을 굽히게 하여 군대 안의 자질구레한 일까지 알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겠소!" 

라고 했다. 여범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고향을 버리고 장군에게 의탁한 자는 처자식을 위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일을 하려고 하는 자는 한 척의 배로 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은데, 만일 한 곳이라도 약한 부분이 있다면 곧바로 실패하게 됩니다. 이것 역시 저를 위한 계획이며 장군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라고 했다. 손책은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여범은 물러나자, 예복을 벗고 말 탈 때 입는 옷을 입고 채찍을 손에 쥐고 궁궐 문이 있는 곳으로 와서 자칭 도독을 겸한다고 했다. 손책은 이에 병부(符傳)을 주었고, 군사의 일을 맡겼다. 이로 인해 군중을 화목하고 엄숙하게 바로잡아 법령(威禁)을 크게 행하였다.

이때 하비의 진우(陳瑀)라는 자가 자칭 오군태수라고 하며 해서(海西)에 주둔하여 호족 엄백호(嚴白虎)와 내통했다. 손책은 직접 엄백호를 토벌하러 가고, 별도로 여범과 서일(徐逸)을 파견하여 해서에서 진우를 공격하도록 하였다. 그들은 진우의 대장 진목(陳牧)의 목을 베었다.

구주춘추에서 말하길 : 초평삼년, 양주자사 진의(陳禕)가 죽자, 원술이 진우()를 양주목으로 삼았다. 후에 원술이 봉구에서 조공에게 패하여, 남인들이 진우를 배반하자, 진우가 그것을 막았다. 원술이 음릉으로 달아나, 진우를 해하기 위해 좋은말로 꼬득였는데, 진우는 그 계략을 알지는 못했으나, 겁이나서 원술을 공격하는 것을 바로 하지는 못했다. 원술이 회수 북쪽에서 군대를 집결시켜 수춘으로 향하였다. 진우가 두려워, 그 동생 진공염(公琰)을 보내 원술에게 화친을 청하였다. 원술이 그를 잡고 나아가니, 진우가 달아나 하비로 돌아갔다.

또 여범은 능양(陵陽)에서 조랑(祖朗)을 공격하고 용리(勇里)에서 태사자를 공격하는 일에도 참가했다. 일곱 현이 평정된 후, 여범은 정로중랑장으로 임명되었고, 강하로 출정하였다가 돌아올 때 파양을 평정시켰다.

손책이 세상을 떠나자, 여범은 오군으로 달려와 상례에 참가했다. 후에 손권이 재차 강하로 출정했을 때, 여범은 장소와 함께 남아서 지켰다.

조조가 적벽에 이르자, 여범은 주유 등과 함께 공격하여 무찔렀으므로 비장군으로 임명되고 팽택태수를 겸임했으며, 평택•시상•역양을 봉읍으로 삼았다.

유비가 수도로 돌아와 손권을 알현할 때, 여범은 유비를 구류할 것을 은밀히 요청했다. 여범은 후에 평남장군으로 승진하고, 군대를 시상에 주둔시켰다.

손권은 관우를 토벌하러 갈 때, 여범의 관소를 지나게 되었다. 그는 여범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전에 일찍이 그대의 말을 따랐더라면 이러한 수고로움은 없었을 것이오. 현재 나는 그들을 공격하여 취하려는데, 그대가 나를 위해 건업을 지켜주시오."

손권은 관우를 무찌르고 돌아갔다. 그는 무창을 수도로 삼고, 여범을 건위장군(建威將軍)으로 임명하고 완릉후(宛陵侯)로 봉한다음 단양태수(丹陽太守)를 겸임하도록 하고, 관소를 건업에 두어 부주(扶州) 아래 바다까지 다스렸으며, 바꿔서 율양(溧陽)•회안(懷安)•영국(寧國)을 봉읍으로 삼았다.

조휴•장료•장패 등이 공격해오자, 여범은 서성•전종•손소 등을 지휘해 수군으로 동구(洞口)에서 조휴 등을 막았다. 여범은 전장군으로 승진했고, 가절을 받았으며, 남창후(南昌侯)로 바꿔 봉해졌다. 그 당시 태풍을 만나 배가 전복되고 사람들은 물에 빠졌는데, 익사한 자가 수천 명이나 되어 군대를 돌렸다. 그는 양주목으로 임명됐다.

여범은 위엄 있는 모습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그가 관할하는 주의 백성들 가운데 육손(陸遜)과 전종 및 귀공자 같은 이들은 모두 그를 공경하고 정중하게 대하며 감히 가볍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의 거처와 복식은 그 당시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것이었지만, 근면하게 일을 하고 법령을 받들었기 때문에 손권은 그의 충성심을 기뻐하고 그의 사치를 질책하지 않았다. (주)

江表傳曰:人有白範與賀齊奢麗夸綺,服飾僭擬王者,權曰:「昔管仲踰禮,桓公優而容之,無損於霸。今子衡、公苗,身無夷吾之失,但其器械精好,舟車嚴整耳,此適足作軍容,何損於治哉?」告者乃不敢復言。    

강표전에 이르길 : 어떤 사람이 아뢰길 여범과 하제는 사치하는 것이 지나쳐 복식이 주제넘게 왕후에 버금간다고 하였는데 손권이 말하길

「옛날 관중이 예법을 넘었는데 환공은 우대하여 이를 용납하였지만 패업을 이루는데 손해가 없었다. 지금 자형과 공묘는 몸소 관중만큼의 실례가 없고 또한 기계가 정밀하고 상태가 좋으며 배와 수레의 정돈이 잘돼 있으니 이는 족히 군대의 위용을 지을 수 있는 것인데 다스림에 있어 무슨 손해가 있겠는가?」

하니 고해 바친 사람이 마침내 다시 무슨 말을 감히 하지 못했다.

당초, 손책은 여범에게 재무와 회계를 주관하도록 했다. 손권은 그 당시 나이가 어렸고 사사로이 여범에게 지나치게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여범은 이 일을 반드시 손책에게 알리고 감히 독자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당시 여범은 이 때문에 손권의 원망을 샀다. 

손권이 양선현의 장 직무를 맡았을 때, 공금을 사사로이 사용했다. 손책이 때때로 회계장부를 조사하였으므로, 공조(功曹) 주곡(周谷)은 항상 장부를 보충 기록하여 문책을 받지 않도록 했다. 손권은 그 당시에는 주곡을 매우 좋아하였다. 그러나 후에 그가 오나라의 일을 총괄하게 되었을 때는 여범이 충성스러웠기 때문에 신임을 두텁게 하였고, 주곡은 장부를 속여 고칠 수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임용하지 않았다.

황무 7년 (228), 여범은 대사마로 승진했다. 그러나 여범은 인수가 아직 그에게 전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을 떠났다. 손권은 직접 상복을 입고 애도를 표했으며, 사자를 보내 인수를 추증했다. 수도 건업으로 돌아왔을 때, 손권은 여범의 묘를 찾아가 이렇게 불렀다.

"자형!"

그는 말을 하며 눈물을 흘렸고 태뢰(太牢)로 여범을 제사지냈다. (주)

(주) 강표전에 이르길: 손권은 건업으로 수도를 옮기고, 부장이나 대신들, 문무백관을 성대하게 모집하여 연회를 개최한 일이 있었다. 그 당시 손권은 엄준(嚴畯)에게 말하기를, 

"나는 옛날에 노자경(魯子敬;노숙)의 재능을 찬탄하며 등우(鄧禹)에 비교했고, 여자형(呂子衡;여범)은 오한(吳漢)에 견주었는데, 듣건대 당신들은 이 평가를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은 어떻다고 말하겠는가?" 

라고 했다. 엄준은 자리에서 물러나며 말하기를, 

"신은 아직 그 취지를 이해할 수 없는데, 노숙과 여범이 총애를 받는 것은 두터우며, 실질 이상의 칭찬을 받았다고 합니다."


손권이 말하길 :


"옛날 등중화(鄧仲華 등우)가 광무(光武 유수)를 처음 만났는데, 광무는 이때 경시(更始 유현)가 시키는 것을 받아들여, 하북을 위무하고, 대사마의 일을 했을 뿐, 제왕의 뜻은 있지 않았다. 등우는 한나라의 업을 회복하기 위해 광무를 인도하였으니, 이에 등우가 처음 논의의 단서를 열게된 것이다. 자경은 총명하고 용감하여 다른 계략이 있어, 고가 한마디 말로 함께 시작하여, 곧 대계에 이르게 되었으니, 등우와 서로 닮았으므로, 그와 비교하게 된 것이다. 여자형은 충성하고 독실하며 밝고 곧은데, 성품은 비록 사치를 좋아함에도, 공을 걱정함이 먼저였으므로, 손해를 입는 것에 그치지않고, 원술을 피해 스스로 형에게 귀부하였으니, 형이 대장으로 임명하고, 별도로 부곡을 거느리게 하였는데, 형의 일을 걱정하여, 도독이 되기를 빌었고, 힘들여 돕고 수양하여 정돈하고, 그 뿐만 아니라 정성스럽고 부지런하니, 오한과 더불어 같은 무리이므로, 그와 견주게 된 것이다. 모두 가리키는 뜻이 있으니, 고가 그들을 편애하는 것이 아니다."


엄준이 이에 따랐다.


여범의 장남은 이전에 죽었으므로 차남 여거(呂據)가 뒤를 이었다. 여거의 자는 세의(世議)이고, 부친이 높은 직책에 있었기 때문에 낭으로 임명됐다. 후에 여범이 질병으로 누워있게 되자, 여거는 부군교위•좌령군사로 임명됐다. 여범이 세상을 떠나자, 여거는 안군중랑장(安軍中朗將)으로 승진했다. 

그는 산월의 도적들을 여러 차례 토벌하였으며, 여러 교활한 적과 험난한 곳도 공격하는 곳마다 격파시켰다. 또 태상 반준을 따라 오계를 토벌하여 공로를 세웠다. 주연이 번성을 공격할 때는 여거와 주이가 성 밖의 포위를 격파시켰으며, 돌아올 때 편장군으로 임명됐다. 여거는 궁궐로 들어와 마한우부독(馬閑右部督)으로 임명되고, 월기교위로 승진했다.

태원 원년 (251), 폭풍이 불어 장강의 물이 범람하여 점점 성문 안으로 들어왔다. 손권은 사람을 시켜 물의 동태를 살피도록 했는데, 유독 여거 만이 사람들을 시켜 큰 배로 침해를 막는 것이 보였다. 손권은 이것을 기뻐하며 여거를 탕위장군(?魏將軍)으로 임명했다. 손권은 질병으로 누워있게 되자, 여거를 태자우부독으로 삼았다. 태자가 즉위한 후에는 우장군으로 임명됐다. 위나라가 동흥(東興)으로 출동했을 때, 여거는 달려 나가 토벌하여 공을 세웠다. 다음해, 손준이 제갈각을 살해하자 여거를 표기장군으로 승진시키고, 서궁(西宮)의 일을 처리하도록 했다. 

오봉 2년 (255), 여거는 부절을 받고 손준 등과 수춘을 습격했다. 여거는 돌아오는 길에 위나라 장수 조진(曹珍)을 만나 고정(高亭)에서 격파시켰다.

태평 원년 (256), 여거는 병사들을 인솔하여 위나라를 침략하였다. 여거가 회하에 이르기도 전에 손준이 죽어 사촌 동생 손침에게 자신의 직위를 잇도록 유언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여거는 매우 진노하여 병사들을 이끌고 돌아가 손침을 폐출시키려고 했다. 손침은 이 소식을 듣고 중서에게 조서를 받들게 하고, 문흠•유찬•당자 등에게 여거를 사로잡도록 했으며, 또 사촌 형 손헌(孫憲)을 파견하여 수도에 있는 병사들을 인솔해 강도(江都)에서 여거를 맞아 공격하도록 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여거에게 위나라로 투항할 것을 권유했다. 여거는 말했다.

"모반하는 신하가 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오."

그리고 자살했다. 손침은 여거의 삼족을 멸했다.


진수의 평: 평하여 말한다. ― 주치와 여범은 옛 신하의 신분으로 임용되었고, 주연과 주환은 용감함과 강열함으로 빛났으며, 여거, 주이, 시적은 장수의 재능이 있어 부친을 이어 계속 국가의 대들보가 될 수 있었다. 여범과 주환 같은 이는 편협되었지만 좋은 결말이 있었고, 여거와 주이는 이러한 허물이 없었지만 오히려 재앙을 당했는데, 이것은 그들이 만난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분류 :
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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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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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6
14:37:31
(*.0.203.140)
ㅋㅋ 이게 그 유명한 엄준 빼먹기군요.

코렐솔라

2013.07.20
21:51:55
(*.52.89.88)
피쉬님이 그 빼먹은 부분을 번역해주셨습니다 오오오오 ㅜㅠ http://gall.dcinside.com/list.php?id=samgugji&no=312155&page=1&bbs=

구라뱅뱅

2013.09.10
18:34:36
(*.49.168.253)
초기 강표전에 번역 누락이 있네요.
自稱領都督,策乃授傳,委以眾事。由是軍中肅睦,威禁大行。
자칭 도독을 겸한다고 했다. (이후 누락)
(추가)
손책은 이에 병부(符傳)을 주었고, 군사의 일을 맡겼다. 이로 인해 군중을 화목하고 엄숙하게 바로잡아 법령(威禁)을 크게 행하였다.
# 傳은 符傳이며, 符傳은 指兵符 라 한다.
# 威禁 은 法令,禁令 이라 한다.

코렐솔라

2013.09.10
18:38:14
(*.166.245.166)
감사합니다 ㅜㅠ 여기서는 엄준과의 일화가 빠졌다는 것을 알고 구걸다닐 때 같이 했어야하는 부분인데 까먹었었군요. 번역 감사합니다!

구라뱅뱅

2013.09.11
09:15:12
(*.49.168.253)
누락건))
權破羽還,都武昌,拜範建威將軍,封宛陵侯,領丹陽太守,治建業,督扶州以下至海,轉以溧陽、懷安、寧國爲奉邑。
손권은 관우를 무찌르고 돌아갔다. 그는 무창을 수도로 삼고, 여범을 건위장군으로 임명해 단양태수를 겸임하도록 하고, 관소를 건업에 두어 부주(扶州) 아래 바다까지 다스렸으며, 바꿔서 율양(?陽)•회안(懷安)•영국(寧國)을 봉읍으로 삼았다.

1. 건위장군建威將軍 拜, 완릉후宛陵侯 封, 단양태수丹陽太守 인데, ===> 완릉후 내용이 빠졌네요.
2. 율양의 ? 한자 수정해 주세요.

코렐솔라

2013.09.11
09:17:34
(*.166.245.166)
건위장군으로 임명하고 완릉후로 봉한 다음으로 수정했고 율양의 ? 수정했습니다.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라뱅뱅

2013.09.11
13:19:23
(*.49.168.253)
누락건)
강표전에 이르길: 여범과 하제는 사치와 화려한 것을 좋아했다. 어떤 사람이 그의 복식은 신분에 상응하는 것이 아니며 왕자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옛날, 관중에게는 예의를 넘는 행동이 있었지만, 환공을 그의 탁월함을 보고 이것을 용납하였다. 그 일은 환공이 패업을 이루는 데 어떠한 손해도 끼치지 않았다. (여기 빠짐) "
라고 했다. 그래서 고했던 자는 다시는 감히 말하지 못했다.

빠진 부분 원문
今子衡、公苗,身無夷吾之失,但其器械精好,舟車嚴整耳,此適足作軍容,何損於治哉?”

코렐솔라

2013.09.11
13:58:45
(*.0.203.161)
한문 추가했습니다. 여범전이 번역 일부분만 번역한 대표적인 케이스군요;; 도움 감사합니다.

코렐솔라

2013.09.11
15:12:13
(*.0.203.140)
원술이 음릉으로 달아나, 진우를 제거하려 함으로 자주 말하였는데, 진우가 방편을 알지 못하고, 또한 두려웠으므로, 원술을 바로 공격할 수 없었다.-> 원술이 음릉으로 도망쳐 달콤한 말로 진우를 꼬드겼다. 진우는 원술의 거짓말을 눈치채지 못하고 다시 원술에게 눌려 원술을 금방 공격하지 못했다.

아리에스님의 번역으로 바꿉니다.

코렐솔라

2013.09.12
17:11:14
(*.52.91.73)
구주춘추 번역 관련은 http://rexhistoria.net/52175 여기 참고

코렐솔라

2016.05.29
17:52:53
(*.196.74.143)
여범전의 하제와 여범에 대한 사치 부분은 dragonrz님이 번역을 완성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rexhistoria.net/156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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