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온(張溫)은 자가 혜서(惠恕)이고 오군(吳郡) 오현(吳) 사람이다. 아버지 장윤(允)은 재물을 경시하고 선비를 중시하여 주(州)와 군(郡)에서 이름을 빛냈으며, 손권(孫權)의 동조연(東曹掾)으로 임명되었다가 세상을 떠났다. 장온은 어려서부터 절조(節操)가 있었고, 용모가 매우 탁월했다. 손권은 그에 대한 말을 듣고 공경(公卿)들에게 질문했다.

“장온은 현재 누구와 견줄 만한가?”

대사농(大司農) 유기(劉基)가 말했다.

“전종(全琮)과 같은 무리가 될 수 있습니다.”

태상(太常) 고옹(顧雍)이 말했다.

“유기는 그의 사람됨을 상세히 모르고 있습니다. 장온은 그에게 필적할 만한 자가 없습니다.”

손권이 말했다.

“이와 같다면, 장윤이 죽지 않은 것이다.”

손권은 장온을 불러 만났다. 그의 문장 표현과 점(占)으로 하는 대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탄복하고 존경하게 했다. 손권은 태도를 고쳐 예의를 더했다. 그가 접견을 마치고 나가자, 장소는 그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늙은이가 마음을 의탁했으니, 당신은 마땅히 명백하게 해야 합니다.”

장온은 의랑(議郎)ㆍ선조상서(選曹尚書)로 임명되었고, 태자태부(太子太傅)로 승진했으며, 신임과 중시를 깊이 받았다.
그는 32세 때, 보의중랑장(輔義中郎將)의 신분으로 촉(蜀)나라로 가는 사신이 되었다. 손권은 장온에게 말했다.

“그대가 먼 곳으로 나가는 일은 마땅하지 않지만, 제갈공명(諸葛孔明)이 내가 조씨(曹氏 : 조조)와 마음을 통하려고 하는 까닭은 모르는 것이 걱정되기 때문에 몸을 굽혀 그대가 가는 것이오. 만일 산월(山越)이 모두 제거된다면 조비(丕)와 대규모로 교전하게 될 것이오. 외교 사신의 함의는 명령을 받되 말을 받지는 않는 것이오.”

장온은 이렇게 대답했다.

“신은 조정에 들어와서는 독자적으로 대응하는 재능이 없었습니다. 장로(張老)가 군주의 명예를 넓힌 공이 없으며, 또 자산(子產)이 사물을 진술한 효력이 없었으므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갈양(諸葛亮)은 계략을 통찰하므로 반드시 신성한 생각을 굽혀 가며 펼치는 것의 마땅함을 알것이며, 게다가 하늘에서 내려준 것과 같은 조정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제갈양의 마음을 미루어 보면, 틀림없이 의심이 없을 것입니다.”

장온은 촉나라에 도착하자, 궁궐로 나아가 장표를 올려 말했다.

- 옛날에 고종(高宗)은 상을 당했지만 오히려 은(殷)의 운명을 창성하게 하여 부흥하게 했고, 성왕(成王)은 어렸지만 주(周)의 덕행을 융성하게 하여 태평한 상태에 이르게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공훈은 하늘보다 높고, 명성은 하늘보다 넓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총명한 자태에 의지하여 이전의 고종과 성왕의 실례를 그대로 시행하여 정치적인 업무를 우수하게 보좌하게 보좌하는 자에게 주고, 수많은 현명한 신하들이 마음을 기울여 돕도록 하며, 각지의 사람들이 멀리서 당신 나라의 기세를 바라보고 위안과 신뢰를 느끼지 않는 자가 없도록 하십시오. 오나라는 부지런히 생각하고 힘을 펴서 장강 해안을 깨끗이 평정했습니다. 원컨대, 도의가 있는 군주와 함께 천하를 평정하고 통일시키는 일에 마음을 기울이십시오. 우리들의 결심은 하수(河水)와 같습니다. 그러나 군사는 흉하고 복잡한 것이고 우리들이 사용할 수 있는 병력은 너무 적습니다. 이 때문에 미천하고 이치를 거스르는 무리들의 치욕을 견뎌가며 신 장온으로 하여금 상황을 알려 우호적인 정의를 나타내도록 하였습니다. 폐하께서는 예의를 가장 숭상하므로 이 때문에 치욕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신은 멀리 변방 지역에서부터 당신의 근교에까지 이르면서 폐하의 위문을 여러 차례 받았고, 은혜가 가득찬 조서는 끊임없이 전해졌습니다. 신은 이러한 영광 때문에 스스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으며, 이런 두려움은 뜻밖에 놀란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삼가 우리 군주가 폐하께 보내는 편지 한 통을 바칩니다.

촉나라에서는 그의 재간을 매우 귀중하게 여겼다. 장온은 나라로 돌아온 후 오래지 않아 예장군(豫章部)으로 들어가 대오를 편성하여 출병하였지만, 그 일의 공업은 추구한 것이 없었다.

손권(權)은 마음속으로 장온이 촉나라의 정치를 찬미한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고, 또 그의 명성이 너무 성대하여 백성들이 그에게 미혹되고 종국에는 자기를 위해 쓰이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하여 그에게 심한 상해를 입힐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마침 글염(暨豔)의 일이 발생하였고, 이 기회를 이용하여 장온을 들추어냈다.

글염(豔)은 자가 자휴(子休)이고, 역시 오군(吳郡) 사람이다. 장온이 그를 자신의 수하로 불렀다. 손권은 그를 선조랑(選曹郎)으로 임명했으며, 관직은 상서(尚書)가지 이르게 되었다. 글염의 성격은 정직하고 엄했으며 맑은 의론을 발표하기 좋아했다. 그는 당시 낭관(郎)의 관소가 혼탁하고 마구 뒤섞여 있어 대부분의 관원들이 알맞게 인선되지 못했음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착한 자와 사악한 자를 구별하고 어진 자와 어리석은 자를 구별하여 사용하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이가 백관들을 탄핵하고 삼서(三署)의 관리를 엄밀하게 선발해 대부분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폄하하여 낮은 지위로 강등시켰는데, 한 번에 몇 등급씩 강등되기도 했고, 옛날 지위를 지키고 있는 자는 열 명 가운데 한 명도 될 수 없었다. 그 중에서 관직에 있으면서 탐욕스럽고 비루하며 뜻이나 절개가 오염되고, 낮은 자들은 모두 군영의 막부에 배치되어 병사들을 다스렸다. 그래서 원한과 분노의 소리는 쌓이고 점점 참언이 일어나게 되었다. 글염과 선조랑(選曹郎) 서표는 전적으로 사사로운 감정을 사용하여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공평한 이치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고 다투어 말했다. 글염과 서표는 모두 죄로 인정되어 자살하게 되었다. 장온은 줄곧 글염ㆍ서표와 뜻을 같이 하였고 자주 편지를 교환하였으므로, 그 즉시 장온에게 죄가 있게 되었다. 손권은 관리에게 장온을 가두도록 하고 다음과 같이 명령을 내렸다.



曁艶 기염이라고도 읽지만 강희자전에서 광운, 집운에 따르면 曁은 거와 을의 반절이므로 글염으로 읽는다고 한다.


오록(吳錄)에 이르길:서표(徐彪)의 자는 중우(仲虞)로 광릉(廣陵)사람이다.

- 옛날에 명령하여 장온을 불렀을 때는 텅빈 마음으로 그를 대하였고, 그가 오자 높은 관직을 주어 옛 신하들을 뛰어넘는 대우를 했다. 어떻게 그가 흉악하고 추악한 일을 꾀하고 혼자 다른 마음을 끼고 있었겠는가. 옛날에 글염의 부친과 형이 흉악한 역적에 기대었지만, 과인은 개의치 않았기 때문에 선발하여 임용해 글염이 어떠한 사람인지 관찰하려고 했다. 그의 마음을 관찰하니, 형태가 과연 드러났다. 그러나 장온은 그와 생사의 사귐을 맺었으니, 글염이 나아가고 물러난 것은 모두 장온으로 부터 발단된 것이다. 더욱이 그들은 서로 겉과 속이 되고, 함께 배와 등이 글염은 장온의 무리가 아니면 즉시 털을 불어 흠집을 구하여 허무맹랑한 죄명을 씌웠다. 또 이전에 나는 장온을 세 군을 감독하는 직책에 임명하여 그곳의 관원과 잔여 병마를 지휘하도록 했다. 당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걱정하여 신속히 돌아오려고 했기 때문에 계극(棨戟)을 주었고 권위로써 그를 장려했다. 그러나 그는 곧장 예장(豫章)으로 가서 표를 올려 오래된 사악한 무리들을 토벌할 것을 요구했다. 나는 믿고 그의 말을 받아들였으며, 특별히 요정(繞帳)ㆍ장하(帳下)ㆍ해번병(解煩兵) 5천 명을 그에게 주었다. 이후에 조비(曹丕)가 직접 회수(淮)와 사수(泗)를 침범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미리 장온에게 명하여 긴급한 상황이 있으므로 즉시 출동하도록 했다. 그런데 장온은 데리고 있는 장수들을 모아 깊은 산 속에 배치하였고, 명령을 받았지만 전쟁터에 이르지 않았다. 조비가 스스로 물러난 것에 의지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과거의 일이 어찌 깊은 계획이었다고 할 수 있는가. 또 은례(殷禮)라는 자는 본래 점후(占候)에 뛰어났기 때문에 불렀던 것인데, 장온은 앞뒤로 그를 촉(蜀)나라로 데리고 가기를 원하고 다른 나라에 알리고 그에 관해 과장되게 말했다. 또 은례가 돌아온 후에는 당연히 그의 본래 직무를 가까이 했어야 되는데, 장온은 그에게 상서호조랑(尚書戶曹郎)의 일을 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부서 안배는 장온에게 있었을 뿐이다. 또 장온은 가원(賈原)에게 내가 그대를 임용하여 가원을 대신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직접 국가의 은전을 팔아 자기의 형세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의 사악한 마음을 살펴보면 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나는 차마 그로 하여금 시신을 저자에 드러내게 할 수는 없기에, 지금 방축하여 본군으로 돌아가 하급 관원의 일을 하도록 하겠다. 아, 장온아, 죄를 면한 것이 다행이다!

장군(將軍) 낙통(駱統)이 표를 올려 장온을 변호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엎드려 생각해 보면, 폐하께서는 하늘에서 만든 빛나는 덕행과 신령이 계시한 성스러운 마음을 갖고 사방에서 우수한 인재들을 불러 모아 조정에 걸출한 인물들을 안배시켰습니다. 수많은 선비들은 넓고도 깊은 은혜를 받았으며, 장온 또한 가장 두텁게 받았습니다. 그러나 장온은 스스로 죄를 초래하여 쫓겨나게 되어 빛나는 은혜를 저버렸습니다. 그가 이와 같이 된 것을 생각하면 진실로 슬프고 통탄스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신은 바쁘게 왕래하는 사이에 나라를 위해 관찰하고 들어, 그 상황을 깊이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이치를 상세히 진술하는 것입니다. 장온은 확실히 마음속에 다른 마음이 없었으며, 일을 함에 있었어도 반역의 흔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그가 나이가 아직 적고 중임을 맡을 자질이 아직은 얕은데도 오히려 혁혁하게 융성한 은총을 입고 탁월하고 위대한 재능을 체험하여 인물의 좋고 나쁨을 극단적으로 평가하고 포폄의 의론을 받든 것입니다. 이리하여 권세에 힘쓰는 자는 그의 의론을 기피하였습니다. 이것은 신이 응당 상세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고, 조정이 상세하게 논구하여 관찰해야만 할 것입니다. 옛날에 가의(賈誼)는 지극히 충성스런 신하였고, 한문제(漢文)는 영명한 군주였지만, 주발과 관영의 한마디 말로 가의는 멀리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가의를 미워하는 자들의 증요하는 정도가 심하고, 참언하는 자들의 말이 교묘했기 때문입니다. 천하에 잘못 전해지고, 과실이 후대에까지 분명하기 때문에 공자는, ‘군주되는 것은 어렵고, 신하되는 것도 쉽지 않다.(為君難,為臣不易)’고 했습니다. 장온의 지혜는 비록 전국시대의 책사에게 미치지 못하고, 무예는 포효하는 호랑이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그의 넓고 아정한 기질, 우수한 덕행, 문장의 정채, 의론의 오묘함은 사람들을 뛰어넘을 만큼 탁월하고 세상에 화려하게 빛나므로, 세상 사람들 가운데 그에게 미칠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때문에 장온의 재화를 논하면 안타깝고 그의 죄를 말하면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폐하께서 위세를 인내하며 성덕을 펴고 현명하고 재능있는 자를 길러 대업(大業)을 촉진시켜 진실로 조정의 미덕을 밝힌다면, 사방에 있는 자들도 이것을 우러러 보게 될 것입니다. 국가는 글염에 대해서는 반역자의 일족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를 평민과 똑같이 보았기 때문에 먼저는 주치(朱治)에게 임명되었고, 또한 장온과 교제를 맺게 되었습니다. 군주와 신하의 의리는 의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며, 친구간의 사귐은 교제 중에서 가장 가벼운 것입니다. 국가가 글염을 의심하지 않은 것은 가장 중요한 의리가 됩니다. 이 때문에 장온 또한 글염과 사귀는 것을 의심하지 않은 것은 가장 가벼운 교제가 됩니다. 당시 세상 사람들은 앞에서 글염을 총애했고, 장온은 뒤에서 사사로이 친근하게 지냈습니다. 오랫동안 사악한 행동을 해온 백성들은 험한 산 속에 풀어놓으면 강인한 도적이 되고, 평탄한 토지에 안배시키면 강력한 병사가 됩니다. 때문에 장온의 생각은 오래된 사악한 무리들을 취하여 강력한 도적들의 침해를 제거하는 동시에 강력한 병사의 역량을 증진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다만 스스로 지휘하는 중에 알맞은 때를 잃어 공로가 그가 말한 것과 부합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가 보낸 병사들은 허안(許晏)과 비교하면 숫자의 많고 적음에 있어서 장온이 적었던 것은 아니며, 사용한 병사의 강함과 약함에 있어서는 장온이 허안보다 아래가 아니었으며, 진군하는 속도의 느림과 더딤에 있어서도 장온이 허안에게 뒤지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달이 되면,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전쟁터로 달려갔고, 감히 은례를 칭찬한 것은, 비록 신은 국경 밖에 있는 자와 사사로이 사귄 일은 없을지라도 또한 그 까닭은 헤아릴 수는 있습니다. 국경 밖에서의 사사로운 사귐은 군주의 명령이 없이 개인적으로 서로 관계를 맺는 것으로, 국사(國事)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은밀히 서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만일 군주의 명령을 받들어 출행하여 한편으로는 양국 군주의 우호관계를 맺고, 아울러 이 기회에 개인적인 교분을 나눈다면, 이것 역시 사신의 통상적인 예입니다. 그러므로 공자는 이웃 나라에 사자로 갔을 때, 사사로이 사람들을 만나는 예의가 있었고, 계자(季子)가 중원의 여러 나라를 방문했을 때도, 역시 사사로이 연회를 열어 환담한 의례가 있었던 것입니다. 옛 사람들은 그 나라의 군주를 이해하려면 그 나라의 사신을 관찰하고, 그 나라의 사신이 통찰력을 갖고 을 보면 그 나라의 사신을 관찰하고, 그 나라의 사신이 통찰력을 갖고 있음을 밝힌 것이며, 장온을 사신으로 내보낸 것은 적합한 인선이었음을 알 수 있고, 다른 지역에 국가의 미덕을 나타내며, 다른 나라에 군주의 아름다운 명성을 드날리게 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진(晉)나라의 조문자(趙文子)가 송(宋)나라로 가서 경맹할 때, 굴건(屈建)에게 수회(범문자)를 칭찬했고, 초(楚)나라의 왕손재(王孫圉)가 진(晉)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 조앙(趙鞅)에게 좌사 의상을 칭찬했던 것입니다. 이들 역시 다른 나라의 중신에게 자기 나라의 신하를 찬탄하도록 한 것이며, 이것은 경전에서 국위를 떨쳐 그들을 칭찬한 것입니다. 외교적인 면에서 비평한 것은 아닙니다. 왕정(王靖)은 안에서는 시세를 걱정하지 않고, 밖에서는 전쟁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장온은 그에 대해 사심없이 탄핵했으며 거짓없이 추궁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장온은 왕정과 큰 원수지간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장온이 절개를 다한 명백한 증거인 것입니다. 왕정의 병력이 성대하고 중요한 관직에 임용된 것은 모두 가원이나 장강을 이깁니다. 하지만 장온은 오히려 개인적인 이익 때문에 왕정에게 안전을 구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찌 감히 가원이나 장강에게 은혜를 팔았겠습니까? 또 가원은 직무에 있어 근면하지 않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장온은 여러 차례 보기 싫은 안색으로 그를 대하고 날카로운 소리로 지탄했습니다. 만일 장온이 진실로 나라의 은혜를 팔아 혼란을 만들었다면 또한 가원을 탐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는 사실과 부합되지 않으며, 사람들에 대한 조사 역시 증거가 없습니다. 신이 사사로이 생각해 보면, 군주가 비록 신성하고 명철한 자태와 비상한 지혜를 갖고 있을지라도 한 사람의 몸으로써 수많은 백성들을 다스리고 층층 궁궐의 내부를 수행하고 나라의 사방 밖을 내려다보며, 수하 관원들의 감정을 돌아보고, 각종 국사의 규율을 구하는 것을 완전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본래는 마땅히 귀를 기울여 신하들의 말을 관찰해야 하므로 시각과 청각의 범위를 넓혀야 합니다. 현재 사람들의 장온에 대한 비난은 은근하지만, 신의 장온에 대한 변호는 말이 매우 교묘하고, 그 내용은 매우 완정합니다. 각자 말하는 바는 국가를 위하려고 하는 것이지, 누가 개인의 이익을 위하려고 말하겠습니까? 창졸간에 즉시 판별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그러나 폐하의 총명함과 예지에 의지하여 논의의 시비를 자세히 관찰하여 만일 마음으로 깊숙이 들어가 사상을 집중시켜 개황을 세분해 연구 조사한다면, 진정으로 어떻게 의심스러워 분명하지 않을 수 있고, 사실 어떻게 어두워 맑지 않겠습니까? 장온은 신을 좋아하지 않았고, 저 역시 장온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옛날의 군자는 모두 개인적인 원망을 누르고 군주의 시야를 확대시켰습니다. 그는 이전 세상에서는 탁월하게 행동했지만, 신은 그가 폐출당했기 때문에 뒤에서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랜 시간 동안 마음속에 품고있던 감정을 서술하여 저의 어리석은 견해를 폐하에게 바치는데, 이것은 실제로 조정에 충심을 다하는 것이지 장온 개인에 대해 연연해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손권은 끝내 낙통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6년이 지나 장온은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두 동생 장지(祗)와 장백(白) 역시 재능과 명망이 있었지만, 장온과 함께 폐출되었다.


會稽典錄曰:餘姚虞俊歎曰:「張惠恕才多智少,華而不實,怨之所聚,有覆家之禍,吾見其兆矣。」諸葛亮聞俊憂溫,意未之信,及溫放黜,亮乃歎俊之有先見。亮 初聞溫敗,未知其故,思之數日,曰:「吾已得之矣,其人於清濁太明,善惡太分。」臣松之以為莊周云「名者公器也,不可以多取」,張溫之廢,豈其取名之多 乎!多之為弊,古賢既知之矣。是以遠見之士,退藏於密,不使名浮於德,不以華傷其實,既不能被褐韞寶,挫廉逃譽,使才映一世,聲蓋人上,沖用之道,庸可暫 替!溫則反之,能無敗乎?權既疾溫名盛,而駱統方驟言其美,至云「卓躒冠群,煒曄曜世,世人未有及之者也」。斯何異燎之方盛,又撝膏以熾之哉!文士傳曰: 溫姊妹三人皆有節行,為溫事,已嫁者皆見錄奪。其中妹先適顧承,官以許嫁丁氏,成婚有日,遂飲藥而死。吳朝嘉歎,鄉人圖畫,為之贊頌云。


회계전록에 이르길 : 여요의 우준(虞俊)이 탄식하여 말하길 「장혜서는 재주가 많고 지혜가 적으며 화려하기만 할뿐 실질이 적어 원망이 모이는 바이니 집안을 뒤엎는 재앙이 있는 것을 나는 그 징조를 보았다.」제갈량은 우준이 장온을 걱정하는 것을 들었을 때 믿지 않았다가 장온이 방출되자 제갈량은 마침내 우준의 선견지명에 탄복하였다. 제갈량이 처음 장온의 패망을 듣고 그 이유를 몰라 며칠 동안 생각하다 말하길 「나는 그 이유를 알았다. 그 사람은 청탁이 너무 밝고 선악이 너무 분명하였다.」    


신 송지가 생각건대 장주가 말하길 「명성은 더불어 사용하는 기구이니 많이 취할 수 없다.」하였는데 장온이 폐해지게 된 것은 어찌 명성을 취하는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많이 가지면 폐가 된다는 것을 고대의 현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달견을 가진 선비는 물러나 스스로를 감추어 명성이 덕을 넘지 못하게 하고 화려함이 실질을 상하게 하지 못하게 하니 이미 자신의 재주를 덮어 감출 수도 없고 청렴을 꺾고 명예에서 도망치지 못하여 재주가 한 세대를 빛내고 명성이 사람들의 위를 덮게 하니 중용의 도리가 잠시라도 폐해질 수 있겠습니까! 장온이 곧 이와 반대로 행동하니 능히 패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손권은 이미 장온의 명성이 왕성한 것을 미워하였는데 낙통이 계속 그 훌륭함을 말하면서 심지어 언급하길 「재주가 군중을 초월하고 한 세대를 빛내니 세상 사람들 중에 미칠 수 있는 자가 없다.」하였습니다. 이는 불의 기세가 바야흐로 강성한데 또 기름을 끼얹어 더 잘 타게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문사전에 이르길 : 장온의 자매 3명은 모두 절개를 지키는 행동이 있었는데 장온의 사건과 관련하여 이미 결혼한 사람들도 모두 재가하도록 강제되었다. 두 번째 여동생이 먼저 고승(顧承)에게 시집갔는데 관에서 정씨에게 시집가도록 했다. 결혼을 하고 며칠 있다가 마침내 독약을 먹고 죽었다. 오나라 사람들이 찬탄했고 향인들은 그림을 그려 그녀를 위해 찬송하였다.

분류 :
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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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3.05.01
13:22:28 (*.148.5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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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03
01:41:33
(*.52.89.88)
낙토->낙통으로 수정했습니다.

코렐솔라

2013.07.11
16:42:10
(*.0.203.174)
한문 주석 추가하고 오록은 쉬워서 그냥 제가 번역

코렐솔라

2016.05.29
17:50:13
(*.196.74.143)
우준에 대한 내용과 배송지에 이에 대한 편, 누이동생에 대한 내용은 dragonrz님의 번역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rexhistoria.net/156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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